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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같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으로 자랐을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쁘게 커라, 예쁘게 커라
날마다 기도하기는 했지만
이제서야 신은 내 편을 들어줄 마음이 생긴건가.
예뻐도 너무 예쁘게.
누구든지 손을 뻗지 않고는 못견딜만큼
아슬아슬하고 반짝반짝하게 빚어놓으면, 도리어 위험하지 않은가.
아니면 이것도, 신의 새로운 질투심인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너를 보내줬는데
아니, 그건 보내준게 아니라 놓아준거였지만 어쨌든
나에 대한 미움으로 꽉 차있을 지언정
너는 나를 떨쳐내지는 못한 것이다.
기쁘다.
말할 것도 없이 기쁘다.
다 지난 일인데 뭐, 하면서 날 다 털어내 버렸을까봐 무서웠으니까.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도, 함께 견뎌냈던 슬픔도
그저 어렸던 날들의 먼 추억으로 남겨버리고
날 낯선 사람 보듯이 할까봐.
그 2년 동안에 날 다 지워내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세계속으로 섞여 들어갔을까봐.
하지만
튕겨져 나온 눈빛.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불안정함.
무언가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갈구하는 모순.
그 모두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있는, 가느다란 실루엣.
정말 다 컸다, 이제.
'어린이'라는 족쇄가 남긴 마지막의 마지막 흔적까지도 깨끗이 씻겨져 나간
이마와 콧날과 속눈썹과 입술을 나는 감격적으로 바라본다.
기다리던 동시에 두려워했던 날은 마침내 닥치고야 말았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났지만
그건 곧 너에게, 나외에 다른 것들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너는 나없이 어딘가에서 술도 배우고 담배도 배운 것이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
내 꼬맹이가 술에 취해서 내 무릎위에서 잠들어 있다는게, 있을법한 일인가.
느릿느릿 딴청만 부리던 시간은, 결국에 여기까지 오긴 온 모양이다.
열일곱이라는 너의 나이는 과연 나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물론, 그것에 관계없이 너는 내것이지만.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내 옷깃을 꼭 쥐고 잠이 들어버린 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강한 연민과 안쓰러움에 측은한 마음이 들다가도
그 어여쁜 생김을 들여다보다가 한순간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에 휘말리는 것이다.
내 꼬맹이에게 키스라니.
네가 좀 컸다고, 아이의 모습을 버렸다고
금새 너에게 딴맘을 품는 내 모습에 질려버렸다.
고등학생이 됐어도, 어설프게 담배를 배웠어도
술에 절어 인사불성이 됐어도. 너는 아가다.
내게는 햄버거를 사달라고 조르는 여섯살의 네가 눈에 훤하다.
잠에 취한채로 안아달라고 보채는 일곱살의 네가 어제같다.
자기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는줄은 모르고
울지 말라며 나를 안아주던 그 좁은 품이 생생하다.
여기까지 나를 지켜준, 내가 지탱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이유. 세상속의 유일한 오아시스. 파라다이스.
내 몫으로 돌려진 단 하나의 value.
나밖에 모르는 아름다운 너로 성장하기를 바래오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모든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아연실색한다.
숨통이 좀 터지리라 믿었는데.
막말로, 알건 다 아는 나이가 된 네앞에서
어쩐지 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을거란 예감이 든다.
다 알것 같아서, 오히려 말할수가 없다.
더이상 눈가리고 아웅식의 내 사기극에 넘어가 줄 것 같지가 않다.
내 말이라면 뭐든지 결국엔 수긍하고 말았던 순진했던 나이는 다 끝났다.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뭘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난 이제, 그 무엇으로 너를 지켜낼 수 있단 말인가.
세상천지에 도사리고있는 수많은 유혹들.
그것들이 아무 재미없는 것이라고, 난 어떻게 너를 설득할건가.
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엔, 넌 너무 많이 자라버렸다.
그것도, 너무 예쁘게 자라버렸다.
내것을 노리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있을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니 코끝이 비릿하게 역겹다.
잠들어있는 너를 내려다본다.
매끈하게 칠해진 도자기처럼 결이 고운 뺨을 손등으로 가만히 쓸어본다.
뺏길 수 없다.
어떻게 지켜온 너인데.
정말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다 버려서 얻어낸 단 하나인데.
여기까지와서 넘겨줄수는 없다.
나는 그러려고 너에게 전념해 왔던게 아니다.
살짝 벌어진 틈새로 고른 숨을 흘리는 조그만 입술에 손가락을 대본다.
들숙날숙한 숨결에 손가락이 간지럽다.
검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살짝 당겨본다.
연한 입술속살이 드러난다.
완벽한 핑크빛이다.
타액에 촉촉히 젖어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시킨다.
꽉 끌어안고 싶다.
그래, 네가 정말 '내것'이라면, 모든것이 그래야 했다.
어느 한 부분만 내것인 것은, 정말 내것이 아니다.
너의 사랑스러운 영혼은 물론이고, 네 안의 마음과
위태로운 눈빛과 엉망으로 헝클어진 교복 셔츠 하나까지도
네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 내것이어야 했다.
어렸던 네가 가진 것이라고는 천진함과 입술뽀뽀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네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내가 용납할 수 있을까.
네가 누군가와 나누는 첫키스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몸을 섞는 내 꼬맹이를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뇌 자체가 상상을 거부하고 나섰다.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그만하란다.
맞다.
너의 모든 것은, 내가 가져야 합당하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새삼스럽게 지금에와서 그 룰이 변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나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
내가 너를 가지고 싶어하는건, 무척이나 오래된 얘기.
나는 열달을 기다려서 너를 처음 만났고
네가 자체적으로 발표하는 '인기순위'에서 너의 부모님을 제치고 늘 1위를 독주했으며
무엇이든 너의 처음을, 너의 최상을 내가 다 가져왔다.
너는 순결한 첫 제물을 언제나 나에게 바쳐왔다.
잔뜩 상기된 두 뺨으로. 내 칭찬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는 그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을 의무로 알고 살아왔다.
설명해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
숫자 9 라는걸 병적으로 싫어했던 내 컴플렉스.
너를 여기까지 내것으로 지켜오기 위해서 내가 해온 쇼들은 말로 다 못한다.
김란우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해라.
해가 지나면 너는 이제, 열여덟.
아찔한 나이다.
셔츠 단추를 풀고 넥타이를 벗겨내고, 재킷과 바지를 다 벗기는 동안에도
너는 인사불성이였다.
완전히 곯아 떨어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건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꾸만 그 하얀 팔다리에 시선이 간다.
거기 담긴 것은 네 모든 것을 내가 가져야 한다는 '정당한' 욕구만은 아니다.
너의 성장자체가 내게는 놀랍고 신기하고 감개무량한 일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얼마쯤의 순수한 호기심도 담겨있다.
얼마쯤의.
가늘고 길게 뻗은 팔다리의 얇은 윤곽은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그 허리의 경이로움은 도저히 남자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의 휘어지는듯한 부드러운 곡선도 아니다.
섬세하면서도 나른하고
천진하면서도 도발적인,
나긋나긋한 동시에 쌀쌀맞을 것 같은 앙큼함이 거기에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기만해도
잽싸게 달려들어 할퀴어 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거기에 맴돈다.
나는 서둘러 너에게 반바지를 입힌다.
속살에 내 손끝이 닿는 기분이 어질어질하다.
이불을 잘 덮어주고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져나와 담배를 한대 피워문다.
연기를 평소보다 더 깊숙이 들이마시자
척추를 타고 알싸함이 번진다.
나는 끝까지 가본적이 없다.
이건, 내 최대의 비밀이다.
데이비드로 데뷔하기 전에도, 옷벗고 덤벼드는 여자들만도 여럿이였다.
데뷔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달려본적이 없다.
특별히 어떤 목적때문에 참아왔던건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에 하기가 싫어졌다.
한껏 달아올라서 내쪽에서 바짝 열을 올리다가도
갑자기 피시식, 하고 김이 빠져 버렸다. 매번.
처음 한 번 물고를 텄으면, 맛을 봤으니 안하고는 못 살았겠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모르니 크게 괴로울 것도 없었다.
심신이 황폐해지도록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지내온 것도 한몫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스물여섯 해 동안 주무르기만 해왔다.
여기서 더 늦춰지면 변태가 될지도 모른다.
애무의 테크닉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눈을 뜨려고하는 욕망은
이십육년을 잠들어있던 터라 몹시 시장할텐데.
괜찮을까.
네가 잠들어있는 침대쪽을 쳐다보면서 또 한모금을 깊숙이 빨아들인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의 작은 부피감이다.
너의 체온으로 부드럽게 데워져있을 저 침대안에서
과연 내가 잠들 수 있을까.
좋아해서? 사랑해서?
그런건 남들의 얘기다.
만나고 이별하는 갑남을녀들의 식상해빠진 연애얘기다.
이유는 그런게 아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나는 거기에 얌전히 따르고 있는 것 뿐.
내가 어떻게 망가질지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에 너를 풀어준 것에 대한 답례일까.
너없이 쓴맛을 봐야했던 2년의 세월에 대한 달콤한 보상일까.
그래서 넌 저렇게 예쁘게 자라있는걸까.
좋아해서? 사랑해서?
그런건 따질 필요가 없다.
너를 내가 갖는 것만큼 이 세상에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없는거니까.
너를 갖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앞에, 나는 도달했다.
어린이일 때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갈갈이 패밀리 시리즈를,
15세가 되면 말랑말랑한 로맨틱코미디와 사나이다운 액션영화를,
그리고 드디어 18세가 되면, 키스에서 끝나버리는 로맨틱코미디와는 안녕이다.
침대위로 두 주인공이 쓰러지고나면, 그 이후엔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18세 이상은 관람할 권리가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나에게 너는 18세 이상 관람가의 영화와도 같았다.
영화관앞에 서서 포스터가 걸린 여러 영화중에 무엇을 볼지 고른다.
물론, 볼만한 영화들에는 거의가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물론 나는, 무엇이든 내키는대로 볼 수가 있다.
법적인 18세를 넘긴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관람가 영화의 티켓을 구입한다.
신나서 내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는 너에게 팝콘도 사서 안겨준다.
나에게 너는 선택이 아닌, 필수.
너를 떨어뜨려놓고 혼자서 15세든 18세든 마음껏 감상하는 대신에
나는 기다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해가 지나면 너는, 열여덟.
말만 들어도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려오는 열여덟.
물론, 18세 이상 관람가라는건 만으로 계산한 나이다.
정식으로는 스무살이 넘어야만 티켓을 끊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겠지.
보호자 동반이니까.
약속해요
손만 잡을게요
나는 기다릴 수 있는 남자에요
그건 벌써 4년 전 얘기다.
_20060301_김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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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얘기한적 있었던가
너 정말로 섹시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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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