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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자라고 있었어.
다른 애들보다 더디게 자라는 키대신, 마음만큼은 하루가 다르게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무럭무럭
내가 미처 따라잡지도 못할만큼의 빠르기로.
그래서 나는, 어떻게 추스려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자꾸 불거지기만하는 그 마음때문에 내 안은 온통 엉망이 되버린거야. 알겠어?
정말로 너밖에 모르는 구제불능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나도 싫었다고.
이거 왜 이래.
총구에서 튕겨져 나가는 총알처럼.
우주를 향해 쏘아올린 로켓처럼.
그 어느때보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있던 너를 향해
나는 그대로 돌진했다.
N극과 S극.
눈치를 살피면서 피곤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싫었다.
오랜만에 본 쑥스러움, 보고싶어 힘들었던 원망.
그런걸 이것저것 계산할 틈이 없었다.
그럴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안기지 못하면, 쓰러질 것 같은데.
네 어깨를 조금 넘길만큼 커버렸지만
조그만 애들처럼 풀쩍 뛰어올라 네 목에 매달려 버렸다.
두 뺨과 두 심장이 맞닿고, 네개의 팔이 서로의 몸을 옭아매고
그제서야 휴우 살았다, 하고 네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마지막이지?"
일생을 함께였는데 고작 반년을 보지 못했다고
내 눈이 그 얼굴을 잊을리 없는데
이마부터 턱까지 몇 번이나 더듬어봤던 내 손도 그 얼굴의 섬세한 윤곽을 잊을리가 없는데
왜 이러지? 떨린다.
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길고 거친 모험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처럼
몹시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눈동자에 내 마음이 더 단호해졌다.
두 번 다시 너를 혼자서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그랬다가는 이번엔 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혼자 죽어갈것만 같았다.
"나 봤는데, 하나도 안 좋아?"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머리카락이며 얼굴이며 두 손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없는 네가 조금 섭섭했다.
"아니..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형은, 란우가 자꾸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심장이 한 번 뛸때마다 쿠궁, 쿠궁, 하고 점점 커지는 기분이였다.
머리위로 열이 확 끼치는게 느껴졌다.
너는 여전히 웃지않는 얼굴로
내 두손을 잡아다가 네 뺨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마치 내 육체의 존재를, 내가 정말로 네 눈앞에 있다는 증거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듯이.
뭐가 그렇게 애틋한거야 정말.
"란우야.."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모든 생기를 다 빨려버린 사람처럼, 너 자체가 회색의 재가 되어 돌아올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비행기에 오르는게 아니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네옆에 남아있어야 했다.
나는 너무 미안해져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내가 옆에서 웃어줬어야 했는데.
"란우야.."
으응, 하고 몇번이나 대답했지만
너는 내 이름만 계속 부를뿐이였다.
혼자서 불러보는 네 이름과 노트에 쓰여져있는 네 이름만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부르는 내 이름도 못지않게 서글펐다.
분명 그때의 넌, 무슨 말을 하고싶은 것 같았는데.
꼭 그 말을 삼키기 위해서 대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힘들어 보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 시원하게 외쳐버리면 좋을텐데.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으면, 나도 너에게 아무 위로도 해줄수가 없잖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린애가 아니야.
너의 하이드는 바다건너까지 너를 따라왔던 것일까.
내 힘으로는 정말, 네 안에서 하이드를 몰아낼 수 없었던걸까.
도대체 넌, 얼마나 강한 악마와 계약을 했던걸까.
갈비뼈가 옥죄이도록 나를 꽉 끌어안은 너의 품에서
내 입안에 계속 맴돌던 한마디는..
그저 위로하고 싶어서가 아니였다.
그 말의 뜻같은거 잘 모르긴했지만, 내 안의 누군가가 자꾸만 나를 네앞으로 떠다밀었다.
나는 싫다고 뒤로 빼는데, 내 안의 누군가는 막무가내였다.
말해, 말해.
"나도.. 형아가 너무 좋아.."
아니, 난 못해.
좋아한다는 맞장구에도 이렇게 온 몸이 화끈거리는데
그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고작해야 난,
_츕
같은 반 남자애들 중에는 벌써 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게 어린애 대하는 말투를 쓰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
엄마도 더이상 내 뺨을 부비거나 억지로 볼에 뽀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엄마아빠 몰래 야한 영화를 본적도 있었다.
금발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의 하늘거리는 슬립이 바닥으로 떨구어 졌을 때
나도 모르게 얼른 채널을 바꿔버리고 말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시치미 뚝 떼고 아무것도 모르는척을 하면서
너에게 입을 맞추었다.
더이상 예전처럼 '귀여운 어린이'가 아니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다 알아버렸으면서도
네 품에서 나는 천연덕스럽게 그걸 모르는척 하고 있었다.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네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말이 없는 네가 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
잠시 동안 정지 상태로 멈춰있던 너는 무릎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힘겹게 웃어보이면서 내 양볼을 꼬집었다.
이젠 나 조차도 조금도 고쳐줄 수 없을만큼 넌 병들어 버린건가, 하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내 입술뽀뽀도 이젠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거야?
나를 보면 다 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 함께 있으면, 예전처럼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나 자신을 몰락한 영웅을 구출할 요정쯤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르기만 하면, 네가 환한 얼굴로 돌아온다고 생각했으니까.
기껏해야 어린애 주제에.
너는 욕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한건, 나도 미안한데
그렇게까지 매몰찰것도 없었잖아.
이젠 그러면 안된다는거 알면서도, 한번은 모른척 눈감아 보고 싶었다.
너도 같이 모르는척 해주면, 우리 계속 입맞춰도 되는거니까.
그것이 너와 나의 마지막 입술뽀뽀였다.
아무리 어려도
세상을 몰라도
둘이서만 있고 싶은건 알지
조금이라도 닿아있고 싶은건 알지
이유같은건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나는, 어릴때부터 너를 좋아했으니까.
너와 나는, 어릴때부터 쭉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되돌려 물음표를 붙일 필요는 없는거잖아.
너는 놀랄만큼 연기력이 뛰어났다.
가수를 하지않고 연기자를 했어도,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다.
무대위에만 올라가면 어찌나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는지,
나는 네가 무대위에서만큼은 정말로 행복한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였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카리스마로 자자한 데이비드의 반태성이 달라졌다고
네 팬들도 언론도, 떠들썩했다.
하여간에 쉼없이 웃어줬으니까.
스케줄도 대폭 늘어났다.
가요 프로그램 위주이기는 했지만, 데이비드를 위해서 특별제작한 프로그램에는
딱히 가리지않고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
덕분에 한 몇일 셀프 카메라가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너는 나를 찍는 것만큼은 절대 안된다고 제작진에 못을 박았다.
데이비드 반태성의 열세살 난 옆집 남동생, 이라는건
방송제작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입맛도는 가십이였겠지만
방송국 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해놓은 네 심기를 건드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네 바로옆에 있고 싶은데
옷깃이라도 좋으니까 너와 닿아있고 싶은데
주말에 어쩌다가 스케줄을 같이 다니게 되어도,
너는 자꾸만 나를 매니저형에게 맡기려고 했다.
차에 남아있으라고 할때가 많았다.
그럼 나는 또 심술이 나서 팔짱을 껴고 창밖만 내다보았고
호텔로 돌아오면 너는, 그제서야 가면을 벗은 사람처럼
나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것이였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개의 가면을 바꿔 쓰는 네 모습이 너무 측은해보여서
나는 예전처럼 어리광도 마음껏 부릴수가 없었다.
한없이 갈증을 느끼는 내 마음을 너에게 징징댈수가 없었다.
나까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포스를 마구 풍겨대면서
나를 품에 꼭 안고 침대위로 쓰러져 몇 분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는거야.
달콤한 멜로디로 수많은 소녀들의 가슴을 분홍빛으로 물들여버린
너의 'dance dance dance'도, 내 귀에는 쓸쓸하게 들렸다.
네가 다정해 졌다고 기뻐하는 소녀들의 눈에는
너의 그 위태로움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널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네가 아무리 나를 아껴줘도
호텔 룸안에서 뭐든 내맘대로 하게 해줘도
그때의 나는 더이상, 침대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걸로는 만족할수가 없었고
아무리 네가 내게 다정하게 굴어도
내 마음 어딘가는 채워지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했다.
그건 굉장히 짜증스러운 일이였다.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울어도, 뒤집어 눕혀달라고 울어도, 아프다고 울어도
무조건 젖병만 물려주는 어설픈 초보엄마처럼.
나를 꼭 끌어안고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부르면서 네가 삼켜냈던 얘기.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였을까.
그렇다면 조금쯤은 용서할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왜 그런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됐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너무 많은걸 욕심내서 그래.
내가 바랐던건 너 하나였다고.
그때까지도 나는 너밖에 몰랐다고.
그래야 된다고 가르쳐줬잖아, 네가.
머리카락을 만져달라고 쳐다봐도, 뺨에 입맞춰달라고 쳐다봐도
품에 꼭 안아달라고 쳐다봐도
그저 가만히 날 마주 보기만했던, 숨터지게 둔해빠진 반태성.
도대체 누가 그렇게 예뻤던건대?
그대여, 아주 예쁘네요.
나와 춤춰주겠어요?
우리의 스텝을 허공으로 끌어올려주는
청춘의 선율위를 두 발로 사뿐히.
나는 그대를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레퍼토리를 보이겠어요.
그대는 너무 예뻐.
나와 춤춰요.
저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면
그때 나와 함께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요.
밤새도록 우리 주변을 맴돌던 음표들의 반짝임을 아직 간직한채로 함께 잠이 들어요.
약속해요.
손만 잡을게요.
나는 기다릴 수 있는 남자에요.
그대는 정말, 너무 예뻐.
제발 나와 춤춰요.
_데이비드, dance dance dance
_20050227_김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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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로등의 역광을 받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내 앞까지 걸어왔을 때
운동화발로 꽁초를 짓이겼다.
사람들은 잠들어있어. 괜찮아.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너에게도 한개비를 권했다.
물론, 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웃으면서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버릇대로 왼쪽 눈을 약간 찡그렸다.
너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망설일 것 없어.
나는 애써왔다고.
봐, 별거 아니잖아.
툭툭 털면 털어지는 것.
정말로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런 제목의 드라마, 혹시 알고 있어?
미안하다 사랑한다
#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