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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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매달리는 너를 

내가 왜 등떠밀면서 보내야 하는건지, 그건 나도 답을 알 수 없었는데. 

"내가 있어줘야돼! 

형아옆에 내가 있어줘야 된다고!" 

네말대로였다. 

난 네가 옆에 있어줘야 했다. 

하지만 란우야, 지금 말고 나중에. 

"야, 반태성! 지금 말해봐! 

나야, 데이비드야?" 

공항으로 가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너는 나를 설득하기에 바빴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란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였다. 

우는 모습 마저도 가슴 저릿하게 사랑스러운 너니까. 

그 두 뺨을 내 손에 담고 가지말라고 말하고싶은건 오히려 이쪽이니까. 

데이비드인지 너인지 대답하라고? 

잘들어, 김란우. 

"그런 말이 어디있어. 란우는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어." 

내 셔츠를 붙잡고 흔드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나라고해서, 흔들리지 않는줄 알아? 

너는 놀라서 딸국질을 하기 시작했다. 

너의 긴 속눈썹은 눈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구어졌다. 

검지손가락으로 눈물을 지워주었다. 

너의 얼굴을 만질 수 있고, 내 팔안에 안을 수 있고 

네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반태성만이 가져야 합당한 김란우. 

"그럼.. 그럼 다 그만두면 되잖아! 

나랑 같이 가서 예전처럼 우리 다같이 살면 되잖아!" 

아무리 같은 빌라에서 현관문 마주 보고 옆집 형아, 동생으로 살아왔다지만 

나이차이가 적어서 같이 뒹굴면서 후레쉬맨 놀이를 했던 것도 아니고 

아홉살 차이나 나는 옆집 동생이 뭐가 그렇게 애틋하고 마음이 가서 

지금까지도 친동생처럼 끔찍이 아끼면서 옆에 끼고 귀여워 하느냐고. 

너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물었다. 

뭘 그렇게 피한방울 안 섞인 아홉살 아래 옆집 동생한테 죽고 못사느냐고. 

그렇게 너를 물고 빠는 나도 이상하지만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고 또래들과 어울리기 좋아할 나이에 

내 손 꼭 붙들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너도 참 별난 애라고. 

세상에 이런일이, 에 한번 나가도 될 것 같다고. 

"나중에. 

조금만 있다가 나중에. 꼭 그렇게 될거야. 형이 약속할게." 

너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꼭 깨문 네 아랫입술이 또 한번 바르르 떨려왔다. 

아아. 

"필요없어! 

이제 나중같은거 안 믿어! 

내가 더 소중하다는거 다 거짓말이야!" 

해가 지나 열세살이 된 너의 막무가내 주먹질은, 제법 아팠다. 

키가 내 턱까지 자랐고, 얼굴에서는 서서히 소년티가 나기 시작했다.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 같았던 내 어린 뮤즈의 소년기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너는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네 안에서의 내 자리를 지키기위해 

얼마나 교활하게 움직였어야 했는지. 

너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했는지.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아동심리학 책까지 사서 봤다면 

다들 나를 미친놈이라 하겠지. 

누가 뭐라고해도 좋다. 

나는 내것을 지킬 뿐이다. 

네 가슴에 온통 나에 대한 상처뿐이라는걸 알았지만 

내가 만든 상처는 결국, 나만이 치유할 수 있는 것. 

나는 그 상처를 모두 보상해줄 생각이였다. 

조금만 참으라고, 날마다 내 안에서 너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제 그렇게 멀지 않았어. 

공항 라운지에 나란히 앉아, 네 어깨를 자꾸만 내곁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이제 잠시 후, 네가 저 엔트런스 안으로 사라지고나면 

나는 페르세포네를 하데스에게 넘겨준 데메테르처럼 아무것도 돌보지 않게 될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나를 덮칠 것이다. 

나는 그 겨울을 이겨낼 생각도 없이, 모든 것을 내맡길 것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는, 내 뮤즈없이 쥐어짜낸 고통의 멜로디들을 하나씩 늘어놓겠지. 

어쩌다, 네가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운이 좋은 날에는 

너의 사랑스러움에 바치는 달콤한 선율들도 뱉아 내겠지. 

그렇게 또, 한장의 앨범이 다 채워지면 

나는 그것이 마치 무(無)에서 창조된 유(有)인 마냥, 

내 이성과 재능이 만들어낸 하모니인 마냥 

사람들앞에 던져 놓겠지. 

모든 것은, 너를 가지려는 나의 추악한 이기심. 

모든 시와 노래는, 너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함으로 선택받은 나의 아름다운 인내. 

"마지막이라고 약속해." 

너의 진지한 얼굴이 나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처럼, 다시 만날때도 네 얼굴에 온통 내 이름뿐일거라고, 너도 약속해. 

반태성, 그 말은, 마음속으로. 

나는 말없이 웃으면서 새끼손가락을 너에게 내주었다. 

꼼꼼하게 도장까지 꾸욱 눌러찍은 너는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심장에 귀를 대었다. 

네가 열세살이 될 동안에도 내 마음이 변함없다는게 

오히려 네가 세상에서 하루를 더 산만큼 

너를 담는 내 마음도 하루치씩 더 늘어난다는게, 그게 증거야. 

너와 내가 하나라는. 

아니면 내가 왜, 열세살 짜리 꼬맹이한테 목숨이 걸린 것처럼 이러고 있겠어. 

나도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잊으면 안돼, 김란우. 

네 전부를 아는 사람은 나야. 

네 전부를 함께 겪어온 사람은 나야. 

내가 지배하고 내가 이끌어온 너를, 네가 멋대로 망가뜨리면 안돼. 

"정말 약속한거야. 

다시 또 한다고 하면, 나도 엄마아빠랑 멀리 이사가 버릴거고 

다시는 형아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만나지 않을거야. 

거짓말이 아니야." 

단순히, 나를 겁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걸 알 수 있었다. 

열세살의 진심이였다. 

너만의 어떤 각오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까지 가수를 해야된다는거, 난 이해 못하겠어. 

내가 어린애라서 이해 못하는게 아니잖아!" 

다시금 네 눈에 촉촉한 물기가 스며왔다. 

고통스러워했던 내 모습이 너에게는 생각보다 더 큰 충격이였던 것이다. 

그 모습까지 네게 보일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스스로를 조율하는데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아무리 정당한 목적이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 시킨다해도 

그런 나라고 해도, 

네가 너무 많이 우는건 싫으니까. 

아무리 그게 나때문이라고 해도, 그 작은 네가 견딜 수 없을만큼의 고통은 나도 싫었으니까. 

"약속할게. 

마지막이야." 

더 버텨낼 자신은 나도 없었다. 

너를 못보고 보내는 시간은, 모르긴 몰라도 너보다 내게서 더 큰 시련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짓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는 나 자신과도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너도 어린이라는 그 갑갑한 갑옷을 벗어버릴테니, 

나에게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데이비드라는 낡아빠진 수법은 필요없어질 것이다. 

마지막 불꽃놀이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아름답게.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진 그 틈을 타서, 나는 네 손을 잡고 달아날거야. 

약속해. 

"입술뽀뽀." 

너는 젖은 눈망울로 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이별앞에 네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있었고 

나는 야비하게도 그 무너진 마음에 기대고 싶었다. 

입술뽀뽀를 해줄때 

네가 언제나 눈을 질끈 감는다는걸,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것도. 

_츕 

안녕. 내 꼬맹이. 

다시 또 나는 음침하고 습한 동굴속으로 기어들어가야 하겠지만 

괜찮아. 너를 위한 마지막 불꽃놀이를 준비할게. 

잊으면 안돼. 

지금 내가 이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를. 

그 이유도, 잊으면 안된다는 당부도 

아무것도 입밖으로 꺼낼 수 없게했던, 9년이라는 맹렬한 강줄기. 

이제 그 강줄기는, 얼마쯤 줄어있기는 한걸까? 

난 안보여. 

네가 내게 말을 좀 해줘.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 

내 티셔츠에 반쯤 묻혀있는 소년의 얼굴. 

2년 사이 이렇게 망가져 버린건, 그건 누구 탓이지? 

「내가 이렇게 된게 다 누구때문인데」 

라고 쏘아붙였던 네 말이 대답을 대신한다. 

괜찮아. 

나때문에 찢긴 상처는 내가 고쳐주면 돼.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받은 상처만 없으면, 그걸로 괜찮아. 

너는 내것이니까, 

내가 아닌 다른 것의 흔적은 안돼. 

"가지마.." 

내 셔츠자락을 눈물로 흠뻑 적신 너의 입술에서 나온 그 말은 

깊은 황홀경속으로 나를 몰아간다. 

말 잘듣는, 나의 착한 김란우. 

어린이는 언젠가 자라서 소년이 되고 소년은 또 어느새 청년이 된다. 

하지만 내가, 열세살의 어린 너를 눈앞에 두고 연애감정을 느꼈던건 결코 아니였다. 

그 감정의 이름이 뭔지는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일이였다. 

당장의 내게는 네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마저 힘에 부쳤으니까. 

너를 힘들게 하는만큼 나도 힘이 들었고 

네가 나를 못보는 동안에는, 나도 너를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똑같은 고통을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의 몸과 마음에는 똑같은 것들이 새겨져 있다고 말이다. 

세월이 갈수록, 더더욱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이, 완전한 하나를 향해서. 

그것이 비극으로 가득찬 하나이든, 환희로 가득찬 하나이든 

나에게는 모두 다 같은 하나이다. 

너와 내게 씌워진 '아홉살 차이'라는 신의 시기를 찢어버리고 

끝끝내 너를 내것으로 지키기 위해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였다. 

그 희생은 너와 내가 함께 치룬 것이다. 

나에게는, 너를 내것으로 지켜낼 의무가 있었다. 

네가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아파해도 

내게서 벗어난 너보다 괴로울리는 없다. 

내가 안다. 

네가 너무 어려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너와 나는, 각기 따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궁극의 정의. 

김란우 

네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해. 

_20060224_김다윗 

네가, 더이상은 위험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무모한 행동과 충동적인 모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것들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아직은. 아직은 조금만 더. 

나는 이 위태로운 눈빛을 간직하고 싶다. 

날카롭고 매정하고, 완전하게 아름다운 반짝임을 버리고 싶지가 않다. 

절벽끝에서 춤을 춰라. 

입맞추고 끌어안고 연애하고 이별해라. 

윙크와 미소를 아끼지마라. 

술에 취해라. 연기를 들이마셔라.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하는 악마. 

내 머리위의 두 뿔로 너를 기쁘게 해줄게. 

그러니 아직은 

먼저 일어서지마. 

my last night and my last lady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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