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3)

_00006 

초등학교 5학년의 여름방학식. 

솔직하게 말해서, 네 2집앨범이 쫄딱 망해버리길 바랐었다. 

"데이비드 이번 노래, 진짜 좋지않냐? 

반태성 더 멋있어졌어- 

오늘 첫방하는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볼거야. 아아-!" 

우리반 여자애들은 여름방학보다 너의 앨범발매에 더 흥분해있었다. 

앨범을 사면 나눠주는 포스터를 다들 한장씩 품에 끌어안고 호들갑이였다. 

한심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야, 김란우. 

너 반태성이랑 친하잖아. 싸인씨디같은거 선물받았어?" 

가슴이 뜨끔했다. 

정식으로 앨범이 발매되기 2주일 전쯤, 

데이비드의 멤버들이 싸인한 씨디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예리한 것들. 

단 한곡만 다른 멤버중 한명이 작사를 했을뿐, 

8곡 중에서 7곡이 모두 너의 작사, 작곡이였다. 

편곡과 프로듀싱에도 모두 반태성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찍혀나왔다. 

그러니, 데이비드는 반태성 원맨쇼라고하는 소리가 안 나올수가 없었다. 

"그냥 뭐..." 

"너, 그 핸드폰도 반태성이 사준거라며?"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가 말끝마다 반태성, 반태성하고 말이 짧았다. 

거슬리게시리. 

반태성이 니 친구냐? 

"너하곤 상관없잖아."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너하고 나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 대한 일이라면 지나가는 누구라도 다들 궁금해한다는걸 알았지만, 

나는 너를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착각속을 헤매면서 

너의 삶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삶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전국민이 다 네 이름을 알게 되고, 네가 만든 음악을 듣고있는데 

그런데도 나는 네가 여전히 나에게만 관심이 있고 

내가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아니, 내가 그랬으니까.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나게 들떠서 실내화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입술에서는 

저마다 네 이름이 쏟아져나왔다. 

왠지 기운이 빠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막바지 준비를 하는 한달 반정도 동안은 

조금이나마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웠는데. 

"김란우!" 

터덜터덜 걷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높이 올려묶은 포니테일에 양쪽 귀에서 달랑이는 귀걸이. 

어른같은 옷차림에 나보다 5cm 정도는 더 큰 키. 

소위, 우리반 날라리 여자애들 중에 여왕쯤 되는 여자애였다. 

너를 극성스럽게 좋아하기로도 유명했다. 

너를 두고 내 남편, 내 남편하는 꼴이 안그래도 눈에 가시였다. 

여왕님께서 나같은 젖비린내나는 어린애한테 무슨 볼일? 

"너, 여름방학 때 뭐하니?" 

예쁘장하기는 했지만 어설프게 어른흉내를 낸 차림새가 영 거북스러웠다. 

"몰라." 

근데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렇게 헤실거려. 

"넌 그렇게 무뚝뚝한게 좋더라." 

야, 넌 무뚝뚝한거랑 싫어하는 것도 구분 못하냐? 

주머니속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웅- 하고 울렸다. 

액정에 '반'이라고 뜬다. 

마음이 급해졌다. 

뭐야, 하는 표정으로 그애를 약간 올려다봤다. 

"너, 나랑 사귈래?" 

같은 반 남자녀석들이 의심쩍은 비디오테잎을 돌려본다는걸 알고있었다. 

여자애들이 가방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게는 들려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짜증스러웠다. 

맞지않는 옷처럼, 서툴게 칠한 립스틱처럼. 

뭔가 어색하고 한껏 과장된 얘기들. 

모두들 어른이 되고싶어 했고,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건

가장 절박한건, 나였다.

내 신경은 온통, 주머니속에서 울리는 전화에 쏠려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전화기 너머의 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닥달하고 있었다. 

"너는 걔가 마음에 들어?" 

아직 그 전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너는 다음 질문을 또 꺼내놓았다. 

점점 너답지 않았다. 

"별로. 그냥 너무 날라리같아." 

"날라리? 란우가 그런 말도 알아?"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학교에서도 6학년 다음으로 형이였고 

내후년이면 중학교도 가는 것이다. 

그런 나를 너는 언제까지나 여섯살 취급이였다. 

몇일 전에도 더이상 내가 카드 수집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너였다. 

"난 아직도 란우가 아기같은데, 여자애한테 고백도 받고. 

아- 정말, 형은 왠지 섭섭하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자라는데도, 늑장을 부리는 시간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런데도 아직까지 열두살이라는게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그런 나를 두고 아직도 아기같다니. 

너같은 놈은 천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래서, 그래서 란우야, 그애랑 정말로 사귈거야? 아니지? 

아직 형아도 여자친구 없는데, 혼자 의리없이 그러지 않을거지, 란우는?" 

왜인지 모르지만 발끈 화가 치솟았다. 

네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불쾌했다. 

농담인척 하고 있었지만, 반쯤은 진심이 담겨있었고 

아닌척 하고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가 그 말속에 숨어있었다. 

네가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몰라." 

라고 톡 쏘아붙였다. 

기분이 자꾸만 울렁울렁했다. 

약간 어지러운 것도 같고, 몽롱한 것도 같다. 

이런 기분은... 뭘까. 

"란우야, 형이랑 여름방학에 같이 놀러갈까? 

란우 어디 가보고 싶은데 없어? 

영국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 영국. 

형이랑 영국 갈까?" 

본격적으로 2집 활동이 시작되면, 분명 또 눈코 뜰새없이 바빠지고 

일주일에 한 번 얼굴보기도 힘들어 질거면서 

너는 지키지도 못할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또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다. 

자꾸만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너의 목소리에 기분이 묘했다. 

뭔가 내 기분을 맞추려고 이것저것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싫지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의 토요일. 

거리에는 하얗게 빨아 널어놓은듯한 뽀얀 햇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강아지. 

귓가에 간지러운 너의 목소리. 

반태성 나, 기분이 이상해. 

첫사랑이 시작될 나이였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너의 2집앨범 첫방송. 

우리 엄마와 네 어머니 사이에 얌전히 앉아서 너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웅- 우우웅-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전화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액정화면에 깜빡이는 이름은, 반. 

잔뜩 긴장해서 연거푸 물을 마시고있는 우리 엄마와 네 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정작 너는 별로 긴장하고있지 않은 모양이였다. 

그런 타임에 나한테까지 전화할 정신이 있었던걸 보면. 

"란우야, 형아 잘하라고 뽀뽀해줘!" 

게다가 그 와중에도 뽀뽀타령이라니. 

정말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초등학교 5학년쯤 되면, 자기를 어린애로 알고있는 어른들이 당황할까봐 

일부러 어린이인척 연기를 해주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네가, 자꾸 나에게 그런 연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싫어어." 

그래도 일단 튕긴다. 

김란우니까. 

"안돼! 란우가 뽀뽀 안해주면, 긴장해서 무대에서 넘어질거같아!" 

몇일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이미 첫방송을 핑계로 뽀뽀를 받아냈었다는걸 너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었지만 

착한 어린이는 연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마음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데, 겉으로는 어린이를 연기해야 한다는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네 어머니와 우리 엄마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중이 보는 앞에서 전화기에다 대고 쪽. 하고 싶지는 않은데.

사나이 체면에... 

"란우야, 형아 이제 곧 올라가야돼! 빨리!" 

나도 안돼, 반태성. 

이런식은 곤란하다고.

"김란우! 나 화낸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였다. 

그깟 전화기 뽀뽀 한번에 화낸다는 말까지 꺼낸걸 보면. 

"한번만 할거니까 잘 들어. 

또 저번처럼 못 들었으니까 다시 하라고 하면 안돼." 

그 날 낮부터, 기분이 자꾸만 이상했다. 

늘상 너에게 하던 뽀뽀인데, 자꾸 입에 침이 마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입술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겨우, 전화기 뽀뽀일 뿐인데. 

"알았어! 여기 시끄러워서 잘 안들리니까 크게 해야돼!"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대기실 한켠에서 

한쪽귀엔 전화기를 대고, 다른 한쪽귀는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내 입술끝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고있을 너의 모습. 

-츕 

"하하하하하!" 

너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란우 너, 이제 엄마한테도 안해주면서 태성이형한테는 해주는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놀리기까지 했다. 

그런거 아니라고. 

저렇게 조르는데 어쩔 수 없잖아. 

게다가, 나한테 화낸다고까지 했단말이야.

"우리 이쁜 란우! 

란우 위해서 형아, 열심히 할게!" 

뭘 몰라도 한참 몰라. 

날 위해서라면, 가수같은거 당장 그만뒀어야지. 

너의 두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은 '반란' 

나와 함께있을때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 표정같은건 완전히 감춰버린채로 

너는 카메라를 노려본다. 

사람들을 향해 명령한다. 

나의 전화기 뽀뽀 한번에 애걸복걸하는 반태성은 화려한 의상속에 숨긴채로 

당돌한 스물한살의 반태성은 멜로디 한마디로 사람들을 깨워낸다. 

나를 버리고 떠난 6개월동안에 만들어낸 리듬과 가사로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매혹시킨다. 

너는 노래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손을 뻗지 않을 수 있어? 

새로움을 원하던 너에겐 new를 뛰어넘는 my perfect body & soul 

강함을 원하던 너에겐 모든 힘을 집어삼키는 my black wild eyes. 

심장을 뿌리채 바칠 수 있는 나의 용기앞에 

그만 포기해. 너는 나에게로 뛰어들 수 밖에 없어. 

내가 써내려간 운명의 분명한 단 한줄은 

너는 내것. 

너는 내것. 

너는 내것이라는, 이 세상의 위대한 시작과 끝. 

너의 두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은 반란.

내 핸드폰의 단축번호 0번은, 반.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걸때 네 핸드폰 액정에 깜빡이는 이름은, 란. 

너는 내것. 

너는 내것이라는, 이 세상의 위대한 시작과 끝. 

_20060215_김다윗 

네가 나의 뮤즈였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 내가 너의 뮤즈가 되어줄게. 

천국의 샘처럼 영원히 마르지않는 

너의 영감이 되어줄게. 

세상의 끝과 끝이 되어줄게. 

그것을 서로 맞붙여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고 

그안에 모든것을 가두어버리자. 

너에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