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3)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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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라는건 아무리 봐도 사람이름이지, 그룹이름 같지는 않았다. 

너는 그 '데이비드'의 반태성이였다. 

"꺄악- 란우야- 

어쩜 이렇게 귀여워. 학교 갔다오니?" 

집앞에 진을 치고있던 네 팬들은 괜히 나까지 붙잡고 호들갑이였다. 

과자나 사탕, 딱지, 공책, 장난감. 심지어 신발이나 옷을 선물해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날도 여지없이 그 중 한명이 분홍색 상자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네가 나를 귀여워하는걸 알고, 혹시라도 나를 통해서 

네 환심을 사볼까하는 수작이라는걸 내가 모를리없다. 

흥. 

"엄마가 이런거 받아오는거 아니랬어요." 

내 볼을 쥐어뜯는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얼굴도 되게 못생겨가지고 너 좋다고 따라다닌다는게, 정말 화가 다 났다.

"괜찮아, 이거 비싼것도 아니야. 그냥 란우, 공부할때 쓰라고. 학용품." 

교복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던 그녀들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뭐라고해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내 한마디 한마디에 귀여워 죽겠다는듯, 깔깔거렸다. 

"란우야, 태성이형 지금 집에 있니?" 

나원참. 

"나도 학교에서 지금 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가방끈을 붙잡고 놔주지않는 그녀들의 목적은 

그래, 오직 너 하나였다. 

까르르- 

열한살 짜리의 톡쏘는 대답에 그녀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또 한바탕 웃어젖힌다. 

하도 꼬집어대는 바람에 볼따구가 다 얼얼했다. 

"김란우." 

꺄아악- 

이번에는 꺄아악, 이다. 

빌라 현관에서 네가 걸어나온다. 

그녀들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구르며, 어떡해 어떡해만 연발할 뿐이다. 

난 가방을 다시 고쳐메고 너를 본채만채하면서 현관으로 들어갔다. 

밝게 염색한 머리카락에 짙은 선글라스가 바보같다. 

"김란우!" 

뒤에서 네가 한번더 불렀지만, 난 부지런히 계단을 오를 뿐이다. 

"란우야-" 

성큼성큼 두세개씩 계단을 뛰어올라온 너는 나를 붙잡아 세웠다. 

무릎을 접어 눈높이를 맞추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학교 갔다오는거야?" 

"......" 

보면 모르나. 

"형이 너 귀찮게하지 말라고 잘 얘기할게." 

별로 네 말을 들을 것 같진 않은데. 

"진짜 형하고 이제 얘기 안할거야?" 

너는 움켜쥔 내 어깨를 작게 흔들었다. 

어린 나에게 무슨 힘이 있었을까. 

나는 결국엔 너를 용서하고 말리라. 

네가 없으면 안되는건 나니까, 아쉬운건 내쪽이니까. 

열한살 꼬맹이를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어도 되는건가. 

그건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였다고 기억한다. 

후우- 

고개를 꺾은채로 대답이없는 내 양어깨를 쥐고 너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소리에 열한살짜리의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란우야." 

이번엔 내 대답을 바라고 부른게 아니였다. 

너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내 턱이 네 어깨에 닿았다. 

네 커다란 손이 내 등에 둘러졌다. 

내 작은 심장이 네 심장과 겹쳐졌다. 

내 귀와 네 귀가 부드럽게 맞닿았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나는, 조금씩 너를 용서하려 하고있었다. 

나를 품에 안은채로, 너는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란우야. 네가 그러면, 형이 너무 괴롭다." 

너도 웃긴 놈이다. 

열한살 짜리를 붙잡고 괴롭다는 고백을 하고있었으니. 

그러나 정작 열한살 짜리는 그 말에 안도했다. 

적어도 내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정도는 된다는 얘기니까. 

나때문에 괴롭다고 하지 않았나. 

네 품안에서 마음이 급속도로 누그러지는걸 느꼈다. 

"형아한테 뽀뽀 한 번만 해줘." 

너는 품에서 나를 놔주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반태성, 이 뻔뻔한 놈. 

입술뽀뽀라는건, 내가 정말정말 기분좋을때만 내리는 특별상이였는데 

죽을 죄를 진 주제에 입술뽀뽀를 요구하다니. 

"란우야- 한번만." 

너는 다시 한 팔로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나는 새침을 떨면서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속으론 고민하고 있었다. 

해줘? 말어? 

-춥 

고민하고있던 내 열한살의 순결한 입술을 네가 먼저 덮쳐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전에, 다시 한번 나를 꽉 껴안았다. 

"란우야, 형아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리고는 내 머리를 한번 흐트러뜨리고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넌 선수였다. 

그 날부터 나는 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으니까. 

네가 가수가 되는걸 그토록 싫어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너는 그 이전보다 더 많이 내게 신경을 써주었다. 

몇일씩 못볼만큼 바쁠때에는, 네 방에서 자고있으라는 말을 

네 어머니를 통해서 전하기도 했다. 

"형아가 란우 보고싶다고, 오늘 형아 방에서 자고있으란다, 란우야." 

어쩌면 가수가 되는게 내 생각처럼 위험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순진한 열한살 김란우는 조금씩 타협을 시작했다. 

네 방에서. 네 체취속에서. 너의 체온을 그리워하면서. 너를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그보다 훨씬 어렸을때부터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너를 보면 좋아하고, 너를 못 볼때는 형아형아 네 이름을 입에 달고 살고. 

왜 그랬을까. 

형제없이 혼자 자라서 너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던걸까.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고 내 말이라면 깜빡 죽는척을 해주는 네가 

어린 마음에 그저 좋았던걸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난 지나치게 맹목적이였다. 

어려서 그랬을까. 

"우리 꼬맹이- 우리 란우-" 

술에 취한 너를 처음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너는 불도 켜지않고 곧장 침대로 기어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술냄새에 잠이 확 달아났다. 

"뽀뽀-" 

너는 다짜고짜 내 얼굴을 붙잡고 입술부터 갖다대었다. 

난 필사적으로 네 얼굴을 밀어냈지만, 너는 막무가내였다. 

"란우야, 우리 란우, 빨리빨리 예쁘게 커야지." 

너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그 안에 나를 가두었다. 

내 머리칼위에 자꾸만 입을 맞췄다. 

술냄새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네 냄새를 맡을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렇게 아가야? 언제 크는거야, 도대체." 

난 대답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빨리 커버리는 거라고. 

"란우 너, 커서 이 형아 다 잊어버리는거 아니야? 

힘들게 키워서 남 좋은 일 시키는거 아니냐고-" 

너는 나를 다섯살 취급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기억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장애다. 

그리고 말은 바른 말로, 네가 언제 날 힘들게 키웠던가. 

난 전혀 기억에 없는데. 

내가 너때문에 혼자서 힘들게 자란 기억은 있어도. 

"란우야, 우리 란우가 형아 지켜줘야돼. 알았지?" 

평소같지않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절거리다가 

너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앉아 잠이 든 너를 내려다보았다. 

익숙해진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네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완연한 어른의 것이였다. 

어둠속에서도 하얀 이마와 날렵한 콧날, 칼로 잘라낸듯한 얼굴선이 뚜렷이 눈에 잡혔다. 

내 손은 아직도 네 손가락의 첫째마디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내 키는 여전히 네 가슴아래에서 머물렀다. 

옷도 갈아입지않고 곯아떨어진 네 얼굴이 어린 내 눈에도 고단해 보였다. 

가수라는것도, 꽤 고달픈 일인지 모른다. 

검지손가락으로 네 이마부터 턱끝까지 천천히 선을 그어본다. 

커다란 어른. 

처음부터 중학생이였던, 나처럼 어린애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을것 같은, 나의 영웅. 

내 손바닥으로 그 뺨을 다 가려보았다. 

손가락끝에 속눈썹이 걸려 간지러웠다. 

술에 취해 잠든 네 얼굴을 보고있으니 왠지 안쓰러워졌다. 

그동안 모질게 굴었던 것들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를 꼭 안아주었다. 

지켜준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네말대로 내가 너를 지켜주리라 생각했다. 

바보처럼. 

'데이비드'의 인기는 가히 신화적이라고 할 만 했다. 

우리반 아이들도 너의 싸인을 받아다 달라고 아우성이였다. 

나야 뭐, 원래도 인기가 많긴했지만 

반태성 옆집에 산다는 이유로 덩달아 학교에서 유명인이 되어버렸다.

그때쯤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너를 보는것도 얼마쯤 재미있어졌다. 

여자 연예인들과 짝지어 나오는 프로그램은 빼고. 

물론, 사랑한다느니 좋아한다느니 서로 같지도않은 고백을 해가면서 

시청자를 놀려먹는 다른 연예인들에 비하면 너는 점잖은 편이였지만 

어쨌든간에 네가 약한척하는 여자 연예인들을 들쳐안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어린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런 날은 어쩌다가 너를 만나게 되어도 괜히 쌀쌀맞게 굴었다. 

그럼 너는 또 내 기분을 맞춰주느라 진땀을 뺐다. 

그까짓 꼬맹이가 뭐라고. 

네 집앞에 진을 친 그녀들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만가고 

이제는 그녀들의 호들갑을 대하는데에도 제법 능숙해졌을 때쯤, 

「그룹 데이비드, 1집 활동 접고 당분간 활동 중단」

드디어 너도 잠적이라는걸 하게 되었다. 

연말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방송활동을 접고 

인사드려야할 몇몇 분을 찾아뵙고. 그리고.

미국으로 가버린다고 했다. 

잠적을 하면 너를 더 많이 볼 수 있을거라 기대하고있던 나에겐 날벼락과도 같았다. 

미국이라니. 열한살에게 그건 달나라나 마찬가지였다. 

"형아가 먼저 가있을테니까, 나중에 란우가 아줌마랑 같이 형아보러 와. 알았지?" 

어떻게 알았는지, 집앞에는 벌써 기자들과 그녀들이 몰려와 아수라장이였다. 

"싫어, 지금 갈래." 

그때쯤 벌써 80%는 너를 다 용서한 나였다. 

지금 나를 또 한번 버리고가면 그 수치가 얼마까지 낮아질지는 나도 몰랐다. 

마이너스 무한대까지 곤두박질칠지도 모를 일이였다. 

"지금은 안돼. 너무 위험해. 밖에 사람들 봤지? 

공항에는 더 많이 있을거야. 

그러니까 란우는 다음에 아줌마랑 같이 와. 응?" 

털모자를 눈 바로 위까지 눌러쓰고 

멋대가리없는 시커먼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린 너는 

자꾸만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아무리 가까이 끌어당겨도, 

네가 입고있는 점퍼가 너무 두툼해서 네 몸의 부피가 느껴지질 않았다. 

"란우, 핸드폰 갖고 싶다고 했지? 

자, 형아가 주는 선물이야. 

이걸로 언제든지 형아한테 전화할 수 있어. 좋지?" 

너는 조그만 상자안에 든 핸드폰을 건넸다. 

엄마한테 핸드폰을 사달라고 매일 조르기는 했지만, 

엄마는 매번 열한살 짜리에겐 필요없다는 말뿐이였다. 

우리반에서도 세 명밖에는 가진 애가 없었다. 

상자안에 든 것은 번쩍번쩍한 최신형 기종이였다. 

"태성아, 애한테 뭐 그런걸 사주니." 

엄마는 네가 나에게 핸드폰을 사준게 못마땅한 것 같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너의 선택은 탁월했다. 

난 그 핸드폰에 눈이 멀어, 크게 응석부리지 않고도 너를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핸드폰에 마음이 뺏겨버린 나를 붙잡고 

너는 한 번이라도 더 뽀뽀를 받아내려 안달이였다. 

그 후로 이주일 정도, 

티비에서는 네가 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외울때까지 보여줄 셈이였다. 

끈질기게 너를 추적하는 기자들때문에 

너와 통화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아줌마랑 같이 미국에 오라던 네 말도 결국은 지켜지지 않았다. 

너를 기다릴수도 없는 네 방은, 나에게는 없느니만 못했다. 

나는 차마 그 방문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걸 열면, 달래지지 못한 그리움들이 그 안에서 한꺼번에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네 체취와 네 흔적속에 나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 해 겨울을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보냈다. 

그리고 5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여름의 이른 문턱을 넘어, 마침내 죽일놈의 네가 돌아왔다. 

6개월만에 마주한 네앞에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이짓을 몇 번 더 해야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겁에 질려버렸다. 

누가 뭐라고해도, 어린이는 안정된 정서와 환경속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너는 내게서 그 권리를 완전히 박탈해 버렸다. 

내 유년은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든 상황에 대한 격한 감정으로 얼룩져있다. 

나는 너무 일찍 좌절과 상처를 맛보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렇게 비뚤어진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손으로 목을 조르지 않았다 뿐이지, 

너는 어린애에게 정말로 잔인한 놈이였다. 

반태성, 변태아동학대자. 

_20060209_김다윗 

이젠, 그 무엇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대답은 비관적이다. 

난 참 광대다. 

난 참 광대하다. 

그래서이모양인가보다.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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