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먹어치울 듯 페니스를 핥아대던 현준의 온기가 몸 위쪽에서 사라졌다.
‘퍽-!!!!!!!’
격렬한 타격 음이 다시 한 번 더 들렸고 눈가를 가렸던 팔을 재빨리 옆으로 치우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현준과 주환의 얼굴은 이미 한 대씩 맞아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증오로 눈을 불태우며 씩씩거리던 주환은 커다랗게 쥐어진 주먹을 다시금 현준을 향해
내뻗었다.
그 것을 가뿐히 막아낸 현준은 곧 주환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거실 바닥으로 주환이 나자빠졌다.
“... 어이, 꼬마. 우리 솔직해 지자고.”
퉷-하고 거실 바닥에 침을 뱉은 현준이 주환의 옆으로 무릎을 살짝 구부려 앉으며 말했다.
여전히 이글거리는 시선을 현준에게 보내던 주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난 성현조 사랑한다. 넌?”
“...............”
“난 성현조를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할 수 있다. 넌?”
“....................”
“난 성현조를 사랑하기 때문에 널 패는 거다. 넌?”
“....... !!!”
“난 성현조를 사랑하기 때문에 섹스할 수 있고, 눈에 거슬리는 널 패는 거다.
넌 무슨 본분으로 그따위 짓을 서슴없이 하는 건지 솔직하게 불어 보실까?“
차갑게 가라앉은 현준의 목소리에 대답 없이 시선만 불태우며 현준을 노려보던
주환은 그 시선을 빠르게 내게로 돌렸다.
볼 쪽이 부풀어 올라 있어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쳐다보자 그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 됐어, 현준아. 섹스는 내가 제안을 했기 때문이고, 널 팬 것은...
너가 빈정거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충분해. 그러니까 그만 둬. 호텔로 돌아가자.“
체념하듯 말하는 내 얼굴을 쳐다보는 시선이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하게 소리치는 현준의 냉정한 목소리..
“웃기지 마라. ....김주환. 제 3의 객관적인 사람으로서 말해볼까?”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켜 벗겨져 있던 바지를 주워 입었다.
내게서 시선을 돌려 현준을 바라보는 주환을 보다가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걷는 도중 차가운 현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주환 넌 말이지.. 저 빌어먹을 정도로 둔해 빠지고 빌어먹을 정도로 사람 우습게
만드는 저 성현조 새끼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다.
솔직히 말해 보자고. 솔직히 떠벌려봐. 꼬마. 연수씨를 사랑한다고 했지?
연수씨를 사랑하는 녀석의 눈이 왜 항상 현조에게만 향해 있는 거냐..?“
“................그런 적 없어!!!!!!!!”
“..아아. 그런가? ... 후훗... 여기까지.. ...힌트는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떠먹여 줬는데도 이 기회를 놓친다면
넌 똘빡 새끼고.. 평생 미련스럽게 살 운명인 거겠지.“
욕실로 걸어가던 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는 내 등 뒤로 다가온 현준이 어깨를 감쌌다.
바닥에 여전히 반쯤 누워 있는 주환을 지나쳐 내 몸을 끌고 현관 쪽으로 다가가던 현준이
다시금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주환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무리 괴로워해도 이 녀석 건네주지 않을 테니까. 이건 형제로서 하는 말이니까 명심해라.”
현관문을 여는 현준의 손을 따라 가며 정신을 차렸다.
문을 나서다 말고 뒤로 돌았다.
그리고 주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 열쇠는 이 문을 잠그고 버려도 좋아. 그리고.. 연수와 행복해라.”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그의 눈동자를 보며 몸을 돌렸다.
현준이 마지막 선택을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에게 주었던 마지막 기회를 그가 서슴없이 배신한 것처럼
또 한 번 내게 잔인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편했다.
쾅-하고 닫히는 문 너머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움켜쥔 주먹으로, 날 올려다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가 보이더라도 말이다.
상처 입은 건 나라고, 그렇게 상처 입은 듯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소리치며
그를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도 말이다.
완벽한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버림 받은 듯한 괴로워 보이는 눈동자는 말이다.
나와 행복할 것인가,
연수와 행복할 것인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답은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현준의 어깨에 기대었다.
“...난 시집가야 할 처녀가 아니다, 현준아.”
“누가 뭐랬나..”
“너가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야.”
“그 녀석이 열 받게 하니까 한 말이다. 좀더 괴롭히고 싶은 걸 참은 것만도
기적이라고. 그런 시선을 보내면서 어떻게 연수씨에게 갈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휴우.. 그 꼬마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든 말든 그건 이제 너의 관할이 아닌 거다.
너가 말한 대로 평소의 현조로 돌아와. 이렇게 내 어깨에 기대는 것도 평소 너가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 비겁한 건 너 같다, 성현준..”
“.. 후훗.. 생리적인 고통이 따를 때에는 비겁한 것도 나쁜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한 현준의 손은 잔뜩 부푼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 너에게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말했었다. 내 잘못 아니니까 너 혼자 해결해.”
냉정하게 말해주고 현준에게서 벗어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가 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에 빠르게 올라탄 녀석이 꿍얼거리며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현준을 보며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 순간
비상구 쪽의 문이 쾅-하며 열렸다.
“잠깐..!!”
문 쪽을 보며 차에 시동을 걸려던 손을 멈추었다.
현준이 녀석이 혀를 끌끌 차더니 창가를 보던 눈길을 내게로 돌렸다.
그런 녀석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주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만 기다려!”
“................. 쿡.. 다급한 모양인데...”
비웃음이 다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현준이 녀석을 본체만체 차에서 빠르게 내렸다.
내리자마자 내 앞으로 와서 우뚝 선 주환이 가쁜 숨을 내쉬며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 무슨 일이지?”
“........ 헉... 헉..... 할 말이 있어...”
“...........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온 거냐...”
숨을 고르며 빠르게 말을 내뱉는 주환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묻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주환이 고개를 들며 내게로 시선을 맞추었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눈동자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 미안해... ”
“........”
“... 그동안 미안했다.”
“................”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어깨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이 잠시 후 떨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내 어깨를 느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내 얼굴을 살핀다.
그런 그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 잘 살아라.”
그렇게 말한 그는 곧 몸을 돌려 내게서 멀어졌다.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가는 그의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완전히 끝이었다.
앞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보지 않을 것이다.
그도, 나도 이제 서로에게 남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서로가 우리였던 적도 없었다.
남남이었던 사람 둘이 억지로 부대끼며 살던 그 순간이 끝나 홀가분하게
관계를 청산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이젠 지치고 피로하다.
역시 내 나이에 할 사랑은 아닌 것 같다.
너무나 격렬하고 너무나 뜨거운, 한 번 손대면 더 이상 헤어 나오질 못해 발버둥쳐야만
하는 무척 피로한 정신싸움이 그 것이었다.
이젠 쉬고 싶다.
너무나 쉬고 싶다.
내 병들고 찢어진 가슴도 이젠 쉬게 해주고 싶다.
눈을 꽉 감고 주환의 등에서 몸을 돌렸다.
운전석의 문을 열고 얼른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 입구쯤 걸어가는 주환을 지나쳐 차를 끌고 그 곳을 나왔다.
지나치는 순간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이, 잠깐 저 앞에서 차 세워.”
아파트 정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현준이 말했다.
아파트 상가 앞에서 차를 세우자 녀석이 기다리라고 하며 명호가 하는 비디오가게로
뛰어갔다.
잠시 후 녀석이 얼굴 가득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명호를 부축하며 걱정스럽다는 듯
챙겨 나왔다.
다리를 쩔뚝거리며 걸어 나온 명호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차에 올라타는 명호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옆에 같이 올라타는 현준이 녀석을
흘낏 쳐다보며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얗게 변한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괜찮다며 출발하자고 했다.
“얼굴도 그렇고 몸도 구부정하고.. 혹시.. 이 녀석이...”
“....... 너 때문에 너무 열 받아서... 억지로 했다, 됐냐?!”
차를 출발시키며 명호를 향해 꼬치꼬치 캐묻자 옆에서 명호를 간호하듯 있던 현준이
거칠게 소리쳤다.
하얗던 얼굴이 붉어진 명호가 주먹을 날릴 기세로 현준이를 밀쳤고
그 주먹을 막은 현준이 싱긋 미소 지었다.
“죽을 듯이 좋아해 놓고 그러지 마라.”
“....이.. 이.... 개, 개....... 후우.... 너가 유학가기 전에 한 번 한 뒤로는 전혀 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정없이... 며칠 됐는데도 이 모양이니,
현조야.. 이 녀석 좀 어떻게 해줘라. 감당하기 벅찬 녀석이야.“
“............. 아아.... 억지로 하다니 대단한걸. 명호 너 보기보다 실력 좋구나.
현준이 저 녀석 떡대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말이야.“
“........................... 그, 그러냐...”
한숨 비슷한 대꾸를 하며 명호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거냐?”
“......... 아, 오랜만에 진우네 카페 가볼까 하고.”
“괜찮은 거냐?”
명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괜찮다고 미소 지어주며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잔뜩 인상을 쓰고 말았다.
옆에 있던 현준이 툭 말을 뱉었다.
“괜찮을 리가 있냐. 저 표정 좀 봐라. 억지로 괜찮은 척 하려고 어깨에 힘주고
있잖냐. 정말 바보 같은 놈이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차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진우의 카페로 가며 쳐다본 꽃집에서 생글거리는 연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더욱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차의 속도를 높이는 순간, 가게 안에 있던 연수와 눈이 마주쳤다.
지나치는 순간이었지만 내가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고 운전에 집중했다.
손이 조금씩 떨려와 운전대를 콱 잡았다.
카페로 향하는 길은 이래서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