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56)

“..... 연수씨군..?” 

“...............” 

주환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커져 있는 눈동자에 비치는 건 연수의 모습..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상진군의 모습... 

그런 주환에게 앞에 앉아 있던 승준이 말했다. 

“저런.. 연수씨가 데이트를 나왔나 보군.. 하긴.. 남자가 필요할 만도 하지... 

남자 없이는 못 사는 여자니까.. 큭큭...“ 

“.................. 입 닥쳐...” 

조용하게 뇌까린 주환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앉은 자세가 점점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살짝 찌푸린 채 지켜보는 나에게 시선을 돌린 승준이 다시 주환에게 말했다. 

“가보지 그래..? 그리고 그와 함께 현조와의 관계는 끝이다. 

너의 감정에 확신한다면 지금 니 행동이 확실해야 할 거다.“ 

주환이 눈길을 승준에게 돌렸다. 

날카롭게 노려보던 주환은 곧 나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너가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난 현조를 가질 테니... 

삼일 후에 현조를 갖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니 

얼마나 좋으냐.. 어서 가보라고...“ 

주환의 시선이 내게서 비껴나 연수에게로 향했다. 

다시 한 번 내 눈을 쳐다보던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일 먼저 끝나든 말든..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연수 누나가 궁금해. 

어제부터 뜬 눈으로 밤 새웠어. 내 짐은 곧 가지러 가겠어.“ 

단호하게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한 주환이 몸을 틀어 연수에게로 달려갔다. 

당황한 듯 보이는 연수가 뭐라고 몇 마디를 하는 듯 보였고, 

주환은 감정적으로 상진군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의 큰 목소리가 가게를 울려 내 귀에도 들렸다. 

“.. 연수 누나는 내 사람이야!!! 감히 어디서 넘보는 거지??!!!!” 

상진군이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고, 난 고개를 살짝 틀었다. 

손바닥으로 눈가를 문지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우는 듯 시끄러운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연수가 놀랐다는 듯 날 쳐다본다. 

여전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주환을 보다가 상진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상진군이 변명하듯 말했다. 

“... 그저 연수씨에게 한 번만 데이트를 해달라고 했을 뿐이에요!!!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한 걸 연수씨가 거절했고, 전 그걸 빌미로 

데이트 한 번만 하자고 설득한 것뿐입니다!!!!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연수씨 곁에 있다는 것도 알았고.. 죄송합니다....“ 

말을 잃은 듯한 주환을 보다가 가게 안에서 빠져 나왔다. 

뒤따라 나온 승준이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이제 만족하냐? 확실하게 채였지? 큭큭..” 

“......... 그래.. 확실해서... 좋긴 하다..” 

“저 녀석은 어디서 구했냐? 정말인 것처럼 말한다..?” 

“..................... 아아...” 

승준의 말을 들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애써 똑바로 걸으려했다. 

“..어이, 택시 잡아줄 테니까 타고 가라...” 

“.......아...” 

대답할 수조차 없을 만큼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잔뜩 찌푸려진 눈가를 다시 한 번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택시를 잡으며 

내 몸을 지탱해주는 승준에게 기대었다. 

“미련 곰탱이 같은 자식...” 

낮게 투덜거리는 승준의 말을 들으며 뜨거운 눈가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 내렸다. 

D-2 

잠에서 깨어 멍하게 뜨여진 눈을 잠시 깜빡였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흐르지 않는 눈물로 인해 

더욱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잠이 들었었다. 

잠을 자면서도 식은땀을 흘려댔었는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욕조 쪽으로 몸을 기대고 힘없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켰다.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그에게 믿음을 주었을 때부터, 사랑으로 모자라 믿음까지 주며 

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 것을.. 

이렇게 심장이 쿡쿡 쑤시며 아파올 것이라는 걸... 

더 큰 배신감에 비참할 정도로 망가질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온몸이 아우성을 하며 아파오는 것도 

마음이 아파 몸도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처럼 아플 거라는 건 몰랐었다. 

심장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낄 거라는 것도 몰랐었다. 

과감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적거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확실하게 되면 분명히 포기하고 

이 집을 떠날 것이라고... 

지금 마음도 그랬다. 

계속해서 아파오지만 지금의 마음은 편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행스러웠다.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음에... 

평생 단 한 번뿐일 사랑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 

쓴웃음을 지은 채 욕조의 뜨거운 물 속으로 가라앉듯이 누웠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물 속을 그 어느 날 날 안아주었던 그의 따뜻한 품이라 느끼며.. 

“... 후우.. 이제 다 끝난 건가..” 

목욕을 마치고 나서부터 짐 정리를 시작했었다. 

이 곳으로 올 때부터 없었던 짐은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와 옮겨야 할 큰 짐밖에는 

없었다. 그 나머지 것들도 이삿짐센터에 시키면 되었지만 내가 손으로 일일이 쌌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 옷을 갈아입었다. 

한 쪽에 싸둔 주환의 짐을 쳐다보다가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그 곳에서 빠르게 걸어 나왔다. 

현관문을 잠그고, 그리고 마음의 문도 잠갔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다. 

“.. 여보세요?” 

집에서 유일하게 들고 나온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운전하며 받아들자 쾌활하게 느껴지는 현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현조야..!” 

“....아.. 그래..” 

“......... 너 목소리가 왜 그러냐?” 

잔뜩 잠겨있는 목을 풀려고 하자마자 현준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피식 웃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목이 잔뜩 잠겼는데..!!! 

또 감기 걸린 거 아냐??! 그 꼬마 새끼는 어디 갔어..?!“ 

“........... .... 아아... 연수의 품으로..” 

“..............” 

농담 식으로 대답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꽃집으로 

달려가 주환이를 팰 녀석이었으므로.. 아니, 내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염려스러웠으므로 

겨우 농담 식으로 얼버무렸다. 

“후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것도.. 모든 게 한 달 전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되었을 뿐이지..” 

“그래서.. 지금 너가 있는 곳은?” 

“.................. 글쎄... 눈앞에 호텔이 보이는군...” 

“이름을 대란 말이야!!!!” 

“....... oo 호텔이다... 그 곳에서 당분간 있을 생각이야.” 

갑작스럽게 울컥하는 가슴을 못 이겨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운전하는 그대로 눈가만 찌푸린 채 잔뜩 잠긴 목을 풀었다. 

심호흡 비슷한 숨을 내쉬고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차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벨 보이가 다가와 차에서 내렸다. 

서둘러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옆의 벽 쪽으로 힘없이 기댔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몸과 마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빠르게 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기대어 억눌린 숨을 토해내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눈가는 뜨거웠지만 쓰라릴 정도로 아팠지만 눈물은 흘러내리질 않았다. 

더욱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계속 서 있었다. 

조금씩 나아질 때까지, 내가 내 자신을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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