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56)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 

불을 켜고 걸어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무시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오자마자 내 어깨를 잡아채듯 뒤로 돌린 그의 시선이 곧장 내 목덜미에 닿았다. 

그의 얼굴이 점차 붉어진다. 

숨소리가 가빠진다 싶은 순간,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위에 올라타 죽일 듯이 주먹을 놀리는 그에게 고스란히 맞아 주었다. 

배 위를 가격하는 힘은 굉장히 셌다. 

“손 끝 하나 대지 말라고 했건만!!!!!!!! 그 자국은 뭐야!!!!!! 

왜 그따위 걸 내서 오냔 말이다!!!!!!!!!!!!!!!!!!!!!!!!!!“ 

“.... 쿨럭......이 정도쯤은 친구의 인사야. ....항상 이렇게 인사했는걸..?” 

“..뭐?!” 

기침을 토하며 말하자 가격하던 주먹을 허공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멱살을 잡아챈다. 

허리가 들려 그의 얼굴과 맞붙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기침을 계속 해대는 내게 그가 다시 말했다. 

“뭐라고? 이런 자국을 내는 게 친구의 인사라고 지금 말한 거냐?” 

“... 그래... 쿨럭.....” 

“그 자식은 너한테 흑심이 있는 놈이잖아!!!!!! 

그런 놈이 이런 짓을 하는데도 가만히 있었단 말이냐?! 

대체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왜 그렇게 신경 쓰지? 내가 이런 자국을 내고 온 게 그렇게나 거슬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 생활 그만두자. 

이 생활 그만두는 즉시 내게 그런 생각 갖지 않을 테니, 그만 두자. 

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가도록 해. 물론 연수와 잘 살기를 바란다.“ 

“..............” 

당황한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똑바로 섰다. 

그리고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잘 자라고 말한 뒤 침대에 누웠다. 

벽 쪽으로 바짝 붙어 누워 시트를 푹 뒤집어썼다. 

잠시 후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 왜 당신은 항상 멋대로지..? 내일 끝내자고?!... 쿡... 그럴 수 없어. 

남은 시간은 다 채울 거다. 그 시간동안 무척이나 괴롭히고 싶어졌어, 당신을.“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하지만 내면에는 짙은 분노가 깔려 있다. 

낮게 속삭인 그는 침실을 나갔다. 

시트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있다가 그가 나가는 소리에 몸을 바로 해서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과연 내가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평생 후회 없이 살려면 지금의 결정이 꼭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를 내 곁에 있음으로 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것이 내 본심이었다. 

지금의 결정은 잘된 것일까... 

확신할 수 없다... 

D-6 

눈을 떠보니 앞에서 자고 있는 그가 보였다. 

어느새 들어와 잠을 잤는지, 곤히 자고 있다. 

평소처럼 날 꽉 껴안고 있는 그의 팔 안에서 몸을 빼내었다. 

난 아직도 갈등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를 만난 후부터 항상 그랬었으니, 이렇게 더욱 혼란스러워진 지금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내 행동에 대해 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와 헤어지기 6일 전.. 

달력에 표시해놓은 동그라미가 6일 앞으로 다가왔다. 

침대에 앉아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 뒤, 세수를 간단히 마쳤다. 

주방으로 가 아침을 차리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11시.. 시간상으로 봤을 때는 불쾌한 전화가 아니었지만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받자 진우였다. 

“현조야~!!! 이 녀석 좀 데려가.. 여기서 안 가고 버틸 참인가 봐...... 

정말 이 놈의 정 떨어지는 새끼가 내 옆에 붙어서 꼼짝을 안 해.. 어제부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야.. 이 새끼 좀 어떻게 해 봐~~~!!!!!“ 

“... 휴우... 바꿔봐.” 

바꾸라고 하자마자 구원자를 만난 듯 진우가 냉큼 전화를 바꿨다. 

승준의 목소리를 들으니 굉장히 쉬어 있다. 

“...왜..” 

“나와라. 같이 점심이나 먹자. 진우도 데려오고..” 

“....... 알았다...나쁜 놈아....” 

전화를 끊은 뒤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그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하게 눈을 뜬 그는 곧 내 손을 잡아당겼다. 

꼭 끌어 안겨지며 침대에 쓰러지자마자 내 위로 몸을 기댔다. 

눈앞에 보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쳐다보다가 눈을 내려 그의 눈가를 쳐다보았다. 

미소를 짓고 있는지 눈가가 살짝 반달형으로 휘어있다. 

“....... 괴롭히고 싶다는 거 진심이었어. 어떻게 괴롭혀줄까?” 

“훗. 되도록이면 내가 즐겁도록...” 

하체를 살짝 들어올리자 그의 허벅지와 마찰했다.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며 그의 눈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입술이 부드럽게 닿았다. 

혀로 살짝 핥아준 뒤, 다시 말했다. 

“하지만.. 괴롭히는 건 잠시 후에 하지.... 점심 약속 있거든.” 

힘을 주며 그를 몸에서 떼어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걸어갔다. 

뒤로 돌아보자 그가 침대에 앉아 날 노려보고 있다. 

“어딜 간다는 거지?” 

“승준이랑 진우랑 같이 점심하기로 했다.” 

“......... 가지 마.” 

“... 가고 싶은데..? ..... 아..... 너도 같이 갈 생각 있으면 같이 가고...”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그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옷을 갈아입었다. 

편하게 옷을 다 갈아입은 뒤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같이 갈 생각이 있는 건지 따라나설 폼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옷을 입는 걸 보다가 거실로 나오자, 다시 한 번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들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잘 지내냐..?” 

“.. .. 성현준.....?” 

“그래, 나다...그 녀석이랑은 아직도 같이 살고 있는 거냐?” 

“물론...” 

“..................... 내일 모레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서 보자.” 

“.. 뭐? 내일 모레? 그렇게 일찍 온단 말이야?” 

“그래...!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 

"............. 휴우... 사랑해....” 

조그맣게 속삭인 녀석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멍하게 한 곳을 응시하다가 전화를 닫았다. 

가기 전 공항에서 보았던 뒷모습 그대로 여전히 불안함에 떨고 있는 녀석이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얼른 몸을 돌려 미소를 지었다. 

“다 됐으면 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이 잡혀졌다. 

눈을 맞추자 시선을 돌리며 현관을 나선다. 

끌려가듯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도, 차에 가기 전까지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차문을 열려고 손을 뻗을 때에야 놓아주는 손이 약간 시리다. 

조금 더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올라탄 그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보고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뭐야.. 이 자식은 왜 데려왔어?!” 

“.......... 김승준... 조용히 하고 앉아.” 

“나보고 어리다고 뭐라고 하더니, 당신이 더 어린 것 아냐?” 

승준의 말에 조용히 하라고 하자, 옆에서 주환이 끼어들었다. 

싸울 듯한 폼으로 대립해 서 있는 둘을 잡아 의자에 앉혔다. 

상대편에 승준과 진우를 앉히고, 반대편에 주환과 내가 앉자마자 주문을 하러 온 

종업원에게 음식을 시켰다. 

침묵이 흐른 후, 진우가 말을 꺼냈다. 

“현조 너가 이 자식 좀 어떻게 해봐.” 

승준을 가리키며 말한 진우는 승준이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 

탁자에 팔을 기대고 앉아 그들을 쳐다보다가 나른하게 웃음을 지었다. 

진우 녀석이 틱틱 거리자 화내며 이것저것 내뱉는 승준은, 보기에도 우스워 보였다. 

키는 커도 하는 짓은 무척 귀여운 진우와, 

그와는 반대로 조금 더 작아도 화를 내며 인상을 찌푸린 승준은 

분위기 자체가 틀렸다. 

그런 두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시선을 옆으로 약간 돌리자 나를 보고 있는 주환이 보인다. 

눈을 맞추고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김주환..!! 꽃집에서 알바 한다더니 어떻게 된 거냐?” 

“어머, 정말 주환이네? 너 어떻게 된 거야? 아르바이트 끝났어?” 

탁자 너머를 쳐다보자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서서 주환을 보고 있다. 

주환보다는 작아 보이는 체구의 두 남자는 어려 보였다. 

옆에 서 있는 여자도 어린 나이답게 귀여움이 넘쳐흘렀다. 

친구인 듯한 모습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주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걸 귀로만 듣고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물 잔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주환의 친구들이 옆에 계신 분들은 누구냐는 질문이 들렸다. 

주환이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평소처럼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주며 인사하자, 남자 두 명의 사이에 있던 여자애가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짓는다. 

“... 안녕하세요.. 저기.. 굉장한 미남이시네요. 그런데.. 주환이 너 이런 분을 어떻게 

안 거야? 혹시 꽃집에..?“ 

주환이 대답을 하지 않아, 내가 대신 꽃집을 하는 여자 분의 전남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흥분한 듯 손뼉까지 치는 여자였다.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하자, 여자애 옆에 있던 키가 훤칠한 어려 보이는 남자 한 명이 

합석하자고 제안했다. 

승준과 진우를 보자 눈을 찡그리고 싫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미소를 지어주고 다시 그들에게 시선을 돌려 앉으라고 말했다. 

어느새 인원수가 세 명이 늘어버린 탁자는 소란스러워졌다. 

주환은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밝은 미소였다. 

손짓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폼이 또래의 남자애다운 모습이다. 

잠시 쳐다보다가 승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날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투로 한숨까지 내뱉는다. 

다시 물을 한 잔 마시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체할 것 같아...” 

앞에 앉은 진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귀여운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데, 갑작스럽게 소란스럽던 소리들이 사라졌다. 

왜 그러나하고 쳐다보자, 한참 재미있게 떠들던 주환의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한 뒤, 음식을 내오는 종업원에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금새 탁자 위로 음식들이 갖가지 차려졌고,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종업원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소곤거리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 저기 저 분.. 정말 멋있다... 대쉬하면 안 되겠지? 

이혼한 거 얼마나 됐을까? 웃음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야. 

내 이상형이야.“ 

황당한 기분으로 그 소리를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 진우와 승준을 쳐다보았다. 

조금 더 속삭이며 말했더라면 안 들렸을 그 말을.. 

그 여자애의 큰 목소리에 모두 듣고 말았다. 

주환의 짜증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 먹을 거면 다른 데 가서 앉아. 시끄럽다, 너희들..” 

“앗-! 그렇다고 때리냐~!” 

살짝 이마를 콩 때리는 주환의 손놀림은 친구 사이의 애정이 서려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그 상대가 여자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시 음식 먹는 것에 집중했다. 

소란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그들이 죄송했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해 보이는 다른 한 명의 남자애가 예의바르게 고개까지 숙이며 말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자 당황한 듯 내 손을 쳐다보던 그 남자애는 

얼굴까지 붉히며 내 손을 잡았다. 

미소를 지어주며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말한 뒤 손을 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애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악수를 하던 여자애는 다음에 또 보자며 윙크를 던졌다. 

당황한 기분으로 손을 놓았다. 

그리고 탁자를 벗어나는 그들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승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이래서 내가 남자고, 여자고, 다~ 라이벌로 보는 거야..” 

“응.. 이해가 가. 현조 저 녀석은 학생 때부터 이랬었어..” 

그에 응하는 진우의 목소리. 

그리고 옆에서 내 손을 잡아오는 주환의 뜨거운 손길.. 

테이블 밑에서 내 손을 잡은 그는 날 쏘아보듯이 쳐다봤다. 

계속 그의 눈을 쳐다보다가 다시 음식을 먹었다. 

“....... 승준아.. 무시해...” 

진우의 다독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승준의 이 가는 듯한 목소리.. 

“절대 음식이 안 넘어가. 진우야. 너가 계란말이 만들어줘. 나 갈란다.” 

승준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우가 울상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부탁하듯이 애절하게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진우가 

너무나 귀여워 보여서 주환에게 잡힌 손을 빼내어 승준의 팔을 잡았다. 

“더 놀다 가..” 

그러자, 내 팔목을 주환이 팍 움켜쥐었다. 

놀라서 쳐다보자 눈빛이 강렬하다. 

승준의 팔을 놓고, 다시 투덜거리는 승준이를 일어나서 안아 주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든 말든 꼭 끌어안았다가 놔주었다. 

진우의 질투하는 듯한 눈빛에 진우 또한 꼭 껴안아준 뒤 진우의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다음에 보답할 테니까 나중에 보자, 진우야..” 

고개를 위 아래로 크게 끄덕인 진우는 승준의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갔다. 

“............... .......... 당신 말이야..”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 그를 보자,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던 그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서둘러 계산을 한 뒤, 식당을 나섰다. 

“얼른 시동 걸어.” 

“................ 또 뭔가 화난 게 있는 모양이군... 넌 화난 걸 섹스로 푸는 모양이야..?” 

“조용히 하고 시동 걸어...” 

그의 말대로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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