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56)

“여보세요..?” 

“............... 나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하며 빨래를 하며 부산을 떨어대던 난 전화가 울려서야 

겨우 몸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큰형이었다. 

평소와 틀리게 음울한 목소리가 왠지 형님 같지 않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 너... 도청장치 발견한 게냐....?” 

“아직 못 봤는데.. 떼어준다면서 왜 안 떼어주는 거야..” 

“......... 휴우... 너도 모르는 새에 어딘가로 떨긴 게로군... 

그거 비싼 건데...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 끊어.” 

냉정하게 말한 뒤 전화를 뚝 끊었다. 

어찌 되었든 형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액정을 보니 진우 녀석이다. 

“........야!! 성현죠!!!!!!!!!!!!!!!!! 대체 무슨 놈의 친구가 그래! 너가 내 친구 맞냐?! 

내 친구 맞냐고!!!!!!!!!!!! 너 유학 보낼 수 없어! 알아서 해!!!!“ 

“........ 진우야.. 너 나이가 몇이냐...” 

전화를 받자마자 고래고래 말을 퍼부어대는 녀석에게 조용히 말하자 

녀석이 그제야 씩씩거리는 숨으로 서른하나라고 대답해 준다. 

역시 귀여운 녀석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 이씨.. 왜 웃고 지랄이야?! 너 유학 못 가!! 아니 보낼 수 없어!!! 

절대 안 돼!!!!!!!!!!!!!!!!!“ 

“쿡쿡.. 어이, 고진우. 제발 떼쓰지 좀 마라. 갔다가 금방 돌아올 거다. 

누가 거기서 평생 산다든..? 그러니까 울지 말고..“ 

“누가 울었다고 그래!!!! 재수 없어, 재수 없어, X같은 놈.. XX같은 새끼... 

너 따위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추락해 버려라. 제길...“ 

녀석의 말을 들으며 빙긋 웃으면서도 즐거워지지 않는 마음에 녀석을 얼른 달래었다. 

“알았다. 가다가 추락해서 죽으면 되는 거냐? 그래도 난 갈 거다. 

그렇게 마음을 굳혔으니 가야만 해. 진우야. 나 이 곳에 제 정신으로 못 있을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해야 돼. 그러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마라.“ 

“..... 병신... 니 맘대로 해. 대신 일년이다. 그 이상은 안 봐줄 거다.” 

속으로 한숨을 눌러 삼키고 부드럽게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녀석이 전화를 끊는다며 뚝 끊어 버렸다. 

여전히 자기 할 말만 하면 끊는 녀석이었다. 

전화를 놓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진우에게 말했듯, 난 이 곳에 있으면 제정신일 수가 없을 것이다. 

꽃집으로 찾아가, 주환과 연수가 사는 곳을 찾아가, 내가 어떠한 일을 벌일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날 이해하고,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날 대하겠다는 주환에게 

잠시 거친 마음을 가졌었다. 

차라리 억지로라도 주환을 갖고 싶다고.. 계속 연수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마음과는 틀린 마음을 가졌었다.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도, 나와 같이 있음으로 해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노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뿐.. 

모든 걸 포기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주환을 사랑한다. 

아직도 사랑한다. 

미래에도 이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주환에게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며칠 후, 그와 헤어지는 날, 난 말해줄 수 있다. 

널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연수와 행복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 

지금도 말해줄 수 있다.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지막 남은, 욕심의 찌꺼기가 말하길 거부하고 있다. 

그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미소를 조금 더 받고 싶다는 욕심이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 뒤로, 

이 상황을 지속시켜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끝나는 날, 그와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날,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너를 사랑하지 않노라고. 

“.. 다녀왔어.” 

“아, 왔어? 밥 준비해 놨으니까 얼른 씻고 와.” 

내 말에 미소로 답한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걸 보고 아까 만들어 놨던 반찬들을 식탁에 차렸다. 

찌개도 뜨겁게 데우고 수저와 젓가락도 가지런히 준비했다. 

식탁을 다 차리고 밥을 푸자마자 주환이 나왔다. 

식탁에 앉는 그의 앞에 밥을 놔주고 찌개도 퍼 그의 앞에 놔주었다. 

잘 먹겠다고 말한 그는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인사를 받게 된 난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의 앞에 앉아 나 또한 밥을 먹었다. 

점심을 안 먹어서인지 속이 조금 안 좋았다. 

겨우 한 입 두 입 먹다가 결국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그런 내게 왜 안 먹느냐며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의례히 묻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속이 안 좋다고 나 또한 평범하게 대답했다. 

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기분 나쁜 듯 찡그렸던 눈가는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살짝 눈을 내려뜬 채 밥을 먹는 그는 정말 맛있다는 듯 밥을 한 그릇 더 먹었다. 

평소라면 무뚝뚝하게 밥그릇만 내밀었을 그인데 오늘은 자신의 입으로 

맛있으니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 

다행이라고 웃으며 밥을 한 그릇 더 주었다. 

식은 찌개 대신 따뜻하게 데워진 찌개도 한 그릇 더 퍼주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턱을 괴고 쳐다보았다. 

“.. 할까?” 

그가 먼저 제안한다. 

차를 끓여 내가자마자 내 손목을 잡으며 말하는 그를 놀라 바라보았다. 

귓가가 빨개져 있다. 

“... 저.. 난 당신과 그거 하는 것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사실은 좋아하는 것도 같고.. 당신이 위에 올라와서 허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성을 잃고 덤비게 돼... 그러니까..“ 

“... 아.. ....그럼 씻고 올께. 들어가 있어.” 

그를 방으로 들여보내 놓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아침에 그가 말했던 대로 그는 정말 날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생 보지 않을 상대라고 생각하니 이젠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은 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기다리던 그는 내가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그의 몸만큼 마르긴 했지만 운동으로 인해 적당한 근육이 자리 잡은 내 몸을 그가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주환보다 작다고는 해도 남자치고는 꽤나 큰 키였다. 

이런 날 안는 기분이 좋다는 것은 그에게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흐려지는 눈동자는 다급함을 비추어내고 있었다. 

그는 이런 나를 보면서도 흥분하는 것이다. 

연수를 사랑한다는 그였다. 

하지만 남자인 내 몸을 보면서 흥분을 한다. 

내 신음소리에 온몸으로 반응한다. 

“....... 하아...” 

오늘만큼은 신음을 참았다. 

꼭꼭 눌러 삼키고 그에 의해 흔들렸다. 

머릿속을 비웠다. 

그저 진실하게 내 몸을 안아오는 그의 체온만 느꼈다. 

내 귓가에 만족스러운 신음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내 몸 속에서 사정하는 그를 느끼며 몸을 떨 뿐이었다. 

“..........” 

“......... 왜..?”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편하게 뜨여진 눈동자에 어색함을 깨려 물었다. 

내가 묻자 빙긋이 웃던 그는 심장이 떨릴 새도 없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 아니, 지금 보니 이 곳에 점이 있다 싶어서..” 

“....... 아.. 점이 아니라 흉터야. 형들 때문에 포크에 한 번 찔렸거든. 

그게 점처럼 남아 있는 거지. 어쨌든 구멍이 세 개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그가 만지는 부분은 광대뼈가 있는 곳으로 큰형과 둘째형이 셋째형의 고자질에 

싸움을 벌이다가 위협적으로 포크를 흔들던 것에 지나가던 내가 맞았던 것이었다. 

그 포크에 무언가가 묻어 있었는지 낫지 않고 흉터가 남아 있었다. 

얼핏 보면 연하지만 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고 얼른 그의 손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뺨을 쓰다듬던 손으로 입술을 더듬는다. 

“.. 입술도 무척 부드럽네... ..... 어... 수염 났다..” 

그의 손을 다시 슬쩍 밀쳤다. 

그리고 농담 식으로 아침마다 이렇게 자란다고 대꾸해 주었다. 

그제야 시선과 손길에서 벗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에 걸터앉아 옷을 입으려고 하자 주환이 뒤에서 벌떡 일어났다. 

등에 무언가가 닿는다. 

날개 뼈 부분에 닿은 것은 그 곳을 세게 빨아 당기고 있었다. 

잠시 앉아 있다가 그가 얼굴을 떼었을 때에야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 알몸으로 당당히 앉아 내 어깨를 잡아오는 그가 보였다. 

“.. 뭐지..?” 

“뭐긴.. 키스마크.. 날개 뼈가 굉장히 섬세하게 생겨서 키스마크 하나가 들어가면 

굉장히 섹시하거든. 쿡쿡. 늙은이답지 않게 피부는 끝내주는 것 같단 말이지. 

이봐, 아저씨. 뭘 그렇게 멍청하게 쳐다보는 거지..?“ 

“....... 아.. 그런 건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왜...?” 

그의 눈이 갑작스럽게 강렬해졌다. 

내 말에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으스러질 것처럼 잡고 다그치듯 왜냐고 묻는다. 

“.... 이유를 모르는 건가..?” 

“........... 물론 알고말고.... 나 말고 다른 남자, 아니.. 당신 형제한테 안기려면 

이런 자국 따위 없어야 하니까 그러는 건가..?“ 

어깨가 점점 아파온다. 

쥐어짜듯 움켜쥔 손을 잡고 어깨에서 떼어냈다. 

그러자 으르렁거리듯 이를 드러내며 내 뒷머리를 꽉 쥐었다. 

놀라서 피할 새도 없이 목덜미가 세게 깨물렸다. 

피가 나올 정도로 세게 깨물고는 빨아들인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머리를 떼어내려 하자 더욱 달라붙어 피까지 모두 빨아먹을 듯 

목덜미에 입술을 박았다. 

찌릿하게 피가 그의 입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 이런 자국을 내놨으니 어떤 짓도 하지 않겠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음 짓는 그의 입가가 붉다. 

“........ 김주환. .. 현준이는 유학생활 때문에 다시 돌아갔다... 

내 몸을 보고 있는 사람은 지금 너밖에 없어." 

"그래서..?" 

".. 한 가지 묻겠는데... 너 연수와 잠자리를 같이 했나..?“ 

“....... 말했잖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 그렇다면 나와의 섹스는 어떻다고 했지?” 

“...................... 말.. 했잖아.... 나쁘지 않다고...” 

“나에게 처음으로 솔직해진 너한테 묻는 거다. 다시 대답해봐..” 

“....... 씨발..!!!!!!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좋다!!! 당신 같은 아저씨의 거기를 뚫으면서도 

기분이 좋아 돌아가실 정도라고!!!!! 대체 묻는 의도가 뭐야?!“ 

거칠게 말하는 그를 끌어 당겼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게 된 그는 잠시 벗어나려고 하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품에 안고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 주환아.. .... 날 거절하려면 제대로 해줘.” 

“...........” 

대답 없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내게서 떼었다.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계속 쳐다보며 미소 짓자 그가 손을 뻗어 입가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의 이마 위에 살짝 입을 맞추고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그에게서 떨어졌다. 

알몸이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의 흥분을 무시한 채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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