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56)

조용히 차를 몰아 공항에 도착했다. 

녀석이 비행기에 타기 직전 살짝 안아주자 날 휙 밀쳤다. 

“.. 열흘 뒤에 보자. 절대 데리러 올 테니 이렇게 안지 마.” 

말이 끝난 후 냉정한 표정으로 명호에게 인사를 건넨 현준은 몸을 돌렸다. 

뒷모습을 조금 바라보다가 명호와 공항을 나섰다. 

저 녀석은 내가 열흘 뒤에 자신을 따라 나서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날 사랑했다고 고백했던 녀석.. 

막상 내가 자신과 같이 간다고 하니 그 사실이 무척 미심쩍을 것이다. 

절대 녀석과 같이 가야 한다. 

난 내 생각이 열흘 뒤에도 절대 변함없을 거라고 믿고 있다. 

차를 몰아 점심이나 먹자며 시내 한 곳에 차를 세웠다. 

진우의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가는 길에 보게 될 꽃집이 두려워 갈 수가 없었다. 

그가 그 곳에서 연수의 일을 도와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곳을 지나치는 것조차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축 처진다. 

오는 길에 명호의 가게에 들러 비디오를 하나 가져왔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비디오를 틀었다. 

화면에 비쳐지는 영상을 되도록 집중해서 보려고 했다. 

겨우 잘 보고 있다 싶은 순간 스르르 잠이 쏟아 졌다. 

난 정말 잠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켠 채 잠이 들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어딘가로 옮겨지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의 시트 위로 몸이 눕혀졌다. 

허리에 감겨진 손을 내 손으로 꼭 잡았다. 

차갑다 싶은 손을 따스한 손으로 감싸고 눈을 올려 떴다. 

주환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 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간다 싶은 순간 

팔을 들어 그의 머리를 끌어 내렸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굶주린 것처럼 입술을 핥는 주환을 더욱 꼭 껴안고 입술을 벌렸다. 

내 몸 위로 올라탄 주환이 더욱 짙은 키스를 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뛴다.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따뜻하게 될 때까지 결코 놓지 않았다. 

입술이 닳을 것처럼 키스하던 주환은 입술을 내려 목덜미를 스쳐 내려가 

가슴 위의 단추를 끄른 뒤 그 곳에 키스했다. 

살짝살짝 빨아들이다가 입 속으로 한껏 빨아들인 주환은 그 와중에도 잡고 놓지 않는 

손을 빼내었다. 

조금 서운해 하다가 놓여진 손이 가슴을 움켜잡자 약한 신음을 흘렸다. 

입술 사이로 흐르는 신음 소리에 주환이 고개를 들었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주환이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남자로서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한 그 것이었다. 

처음.. 나 따위 녀석과 섹스하면 서던 그 것도 다시 죽겠다고 했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속으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힘껏 끌어당겨 거칠게 입술을 부딪쳤다. 

항상 리드하던 그에게 내가 다시 한 번 주도권을 잡게 된 순간이었다. 

그가 나와 섹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의해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그렇게 느끼도록 그의 몸을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다리를 벌려 앉았다. 

거칠게 이어져 있던 입술을 떼어내고 그의 셔츠를 풀었다. 

그의 다친 손가락을 옆으로 치워놓고 내 스스로 옷을 벗었다. 

내 가슴을 만지려는 손을 다시 한 번 옆으로 치웠다. 

지금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듯 그가 다급한 욕망을 내보이며 허리를 들었다. 

그에 맞춰 바지와 브리프를 벗었다. 

그의 옷도 모두 벗기고 그 위에 다시 걸터앉았다. 

허리를 한껏 젖히고 애널 사이로 처음에 했던 그대로 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또 다시 느껴지는 익숙한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손가락을 더욱 움직였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내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그대로 내 손을 빼낸 뒤 허리를 내렸다. 

잘 들어가지 않자 거칠게 욕을 내뱉는다. 

그런 그의 손을 치우고 내 손으로 엉덩이를 더욱 벌렸다. 

다른 손으로 그의 페니스를 살짝 잡은 뒤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애널 사이로 끼웠다. 

살짝 끼워진 틈을 타 얼른 엉덩이를 조금씩 내렸다. 

그와 함께 그의 입술에서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점점 더 채워져 끝까지 들어가게 되자 그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숨을 헐떡이며 쳐다보다가 내가 얼굴에 힘을 잔뜩 주며 찡그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부드러운 손놀림에 얼굴을 펴고 볼을 살짝 그의 손바닥에 문질렀다. 

한참 문지른 뒤 속에서 더욱 거세어지는 그를 위해 허리를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손바닥 위에 다친 곳을 혀로 살짝 핥았다. 

그리고 손을 옆으로 치웠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그의 숨소리에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절정에 맞춰 부드럽게 날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파문이 더 커지고 커져 온몸이 떨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절정이 너무나 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점점 더 뜨겁다. 

그런 날 계속 부드럽게 쳐다보는 그에 의해 더욱 뜨거워졌다.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아 얼른 고개를 숙여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것일까. 

현준의 등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힌 지금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일까. 

그에게서 벗어나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현준을 보며 생각한 바로 오늘.. 

왜 그는 저토록 아름답고 부드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걸까. 

잠시 가슴을 가라앉히며 이어진 채 앉아 있었다. 

한숨을 그의 귓가에 내쉴 때 그가 다시 나의 안에서 반응했다. 

귀를 조금씩 핥아 주었다. 

“.... 응... 아..너무.. 뜨거워..” 

의도적으로 유혹적인 목소리를 내며 귓가를 핥았다. 

더욱 커진 그에 의해 신음이 자꾸만 흘러 나왔다. 

완벽하게 모양새를 갖춘 그의 위에서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심장이 자꾸만 죽을 듯이 뛰고 있다. 

내 심장소리에 맞춰 그의 심장도 나만큼이나 뛰고 있다. 

따뜻하다. 

온몸이 포근하게 감싸여진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엄마 뱃속의 따뜻한 양수 속에서 기분 좋게 잠들어 있는 착각이 들만큼 

무척이나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뜨기가 싫어 꿈지럭거리다가 왜 이렇게나 따뜻한 건지 궁금해 눈을 살짝 떴다. 

뜨자마자 벌거벗은 가슴의 살결이 보였다.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올렸다. 

듬직하게 근육이 자리 잡은 팔이 내 쪽으로 뻗어와 등을 감싸고 있었다. 

더욱 시선을 올렸다. 

침을 삼키는 듯 움직이는 목젖이 보인다. 

이번에는 더욱 시선을 올려 입술을 보았다. 

그리고 남자다운 코를, 그리고 조금 높다 싶은 광대뼈를.. 그리고 날 향해 빛을 내며 

뜨여진 눈을.. 그 눈을 가리는 짙은 속눈썹을 보았다. 

시선을 그 곳에 멈췄다. 

눈동자를 마주한 채 따뜻하게 안겨 있었다. 

등으로 더욱 꽉 조여드는 팔에 의해 얼굴이 그의 목에 닿았다. 

겨우 시선의 마주침이 멈추었고, 그제야 참던 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손끝을 움직여 그의 팔을 치웠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그에게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의아스럽게 그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내 시선에 어색하게 웃음 짓는 그는.. 내게 지금껏 해오던 얼굴과는 많이 달랐다. 

뜨겁게 일그러지는 눈가를 손으로 감쌌다. 

그 시선 하나에, 어색한 미소 하나에 이토록이나 가슴이 뜨거워지다니... 

왜 이렇게나 눈이 아파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눈가를 손으로 가린 채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내 팔에 닿은 그의 손이 뜨겁다. 

“.. 휴우.. 내가 그 동안 너무 잘못한 것 같아서..... ” 

“내가 연수 누나를 사랑하던 일년 동안 연수 누나가 당신에게 

미소 짓던 얼굴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었는지 잊었었나보다.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했었지.. 그 마음을 짓밟아서 너무 미안하다. 

그 상대가 누구든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같은데... 내가 당신에게 너무 못된 짓만 

한 것 같아서 갑자기 무척 미안해졌어.“ 

“................. 무슨 말이지..?” 

“연수 누나에게 충고를 들어 버렸다, 어제. 

사랑이라는 건 모든 사람을 악마로 만든다고... 그런 말을 들었어.“ 

“......... 그래서.. 나에게 대했던 것들을 지금 후회한다는 건가..?” 

“후회하지는 않아. 남은 기간동안 못되게 굴지 않겠다는 거다. 

당신 말대로 어차피 평생 보지 않을 사람들이다. 

당신이 제안한 건 끝까지 지킬 생각을 했었어.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 

지금까지 당신이 날 싫어하도록 더욱 못되게 굴었던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이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거야.“ 

“.......아..... 그래.. 그런가..” 

“..... 당신이 연수 누나와 살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지. 

당신이 없을 때 연수 누나와 함께 한 달만이라도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그럼 평생 꽃집에 가지 않고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지. 이제야 겨우 그 마음과 지금 당신의 마음이 같다는 걸 알았어.“ 

“.... 아, ....정말 고맙군.” 

그의 손을 살짝 옆으로 치우고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침대에서 벗어나 비틀거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욕실로 걸어갔다. 

뜨겁게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가만 놔두었다. 

주먹을 꽉 쥐고 가슴을 두드렸다. 

너무 아파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절대 그의 그런 동정 받고 싶지 않다고 소리쳐 버리고 싶은 걸 참았다. 

너희들의 행복한 마음으로 빵 한 조각 거지에게 던져주는 식으로 

나에게 동정하는 것 따위 원치 않는다고.. 

그 빵 한 조각에 더욱 배부르고 싶어 할 거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씻겨지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차분해지는 듯한 기분으로 샤워의 물줄기를 껐다. 

다시 냉정하게 얼굴을 굳힌 뒤 욕실에서 나왔다. 

그가 날 향해 미소 지었다. 

갑작스럽게 굳은 심장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겨우 걸음을 옮겼다. 

옷장으로 걸어가 수건을 꺼내 몸을 닦고 옷을 입으려고 했다. 

뒤에서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전과 같이 느껴지는 숨결...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 것에 웃음이 섞였다. 

“.. 마음이 편해졌어. 모든 걸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하다. 

남은 시간도 이렇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의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정말 편한 듯한 웃음을 짓는다. 

마주 웃어줄 수 없어 그의 팔을 살짝 뿌리친 채 옷을 입었다. 

옷을 다 입고 방을 나와 주방으로 갔다. 

그와 함께 욕실의 문을 열고 그가 들어갔다. 

그걸 보고 밥을 차렸다. 

나도 편하게 생각해 버리자고 생각했다. 

그가 잘 대해주면 잘 대해주는 데로.. 그의 말대로 어차피 며칠 남지 않은 시간 

그의 미소를 보고 끝낼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거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평생 보지 않을 상대.. 어차피 얼마 있지 않아 헤어질 상대.. 

그런 사이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나도 그처럼 편해지기로 했다. 

물론 그렇게 되지 못할 걸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편하다. 

지금 생활이 무척 편하다. 

며칠만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줄 그이니까 나는 편할 것이다. 

샤워를 다 하고 나온 그는 오늘 반찬은 뭐냐며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질문을 했다. 

친한 형에게 하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에게 나 또한 마주 웃어주며 평소와 같다고 

중얼거렸다. 

편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밥을 먹었다.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먹으며 연수에게가 아닌 

나에게 짓는 그의 미소는 굉장히 가슴을 떨리게 한다고 위안했다. 

그 것으로 된 거라고 다시 속으로 다짐했다.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으니 잘된 거다. 

“내일은 연수 누나 쉬는 날인데. 나도 노는 날이거든. 같이 영화 보러 갈까?” 

“..... 그래. 재미있는 영화 뭐가 있나 봐둘게.” 

살짝 미소 짓던 그는 내가 볼에 입을 맞추며 잘 다녀오라고 하자 화를 내지도 

무시하지도 않은 채 잘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문을 닫고 들어와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에게 말했듯이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 위해 신문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에는 청소를 해야겠다. 

빨래도 밀렸으니 시트와 같이 빨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TV도 봤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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