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56)

‘딩동-’ 

“누구세요?” 

“.. 성현조씨. 택배 왔습니다.” 

나른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택배가 올 만한 일이 없었기에 의아해 하며 문을 열었다. 

선물 상자 같은 걸 들고 온 택배회사 직원은 내가 받아들자 자신의 회사 이름을 외치며 

사라졌다. 

누가 선물을 준 건가 하고 리본을 풀었다. 

열자마자 나온 건.. 하늘하늘 거리는 연분홍색 앞치마였다. 

끈이 많이 달렸지만 결코 음식 할 때 쓰라고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앞치마를 앞에 둘러보았다. 

꽤나 짧아서 허벅지 바로 위에서 달랑거리는 걸 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던 중 전화가 울렸다. 

잠시 패닉 상태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고, 

주책 맞은 웃음소리가 또 들렸다. 

“.. 와하하하-!! 선물 잘 받았냐, 현조야? 나도 너의 깊은 뜻에 동조하고자 

돈 좀 투자했다..“ 

“.. 뭐..?” 

“너 지금 그 꼬마 애달프게 하려고 작전 세운 거 아니냐? 

좋아, 아주 좋은 작전이다, 현조야.“ 

“.. 무슨 헛소리야,!” 

“.. 어험. 어쨌든 아무 것도 입지 말고 그 앞치마만 입어 봐라. 효과 만빵이다. 

녀석... 그 꼬맹이가 얼마나 애달파 할지 눈에 선하다, 선해.. 쯧쯧... Good Luck 이다 

우리 현조~“ 

그러더니 전화를 뚝 끊었다. 

황당한 기분으로 웃음을 지으며 앞치마를 쳐다보았다. 

대체 어디다가 도청 장치를 해놨길래 그런 것까지 알고 이따위 걸 선물한 건지 모르겠다. 

이마를 짚고 앞치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결코 나쁜 선물 같지는 않다. 

형에게 만족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날 저녁에는 그 앞치마를 입지 않았다. 

돌아온 주환을 향해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어주고 저녁밥을 차려 주었을 뿐이다. 

내 웃음에 기분 나쁜 듯 보였지만 밥은 아주 잘 먹어주었다. 

“.. 오늘도 다쳐서 왔네...?” 

“........ 신경 꺼.” 

“.. 연수가 그런 건 익숙해져서 잘 하니까 연수 시켜. 

왜 처음 접하는 너가 해서 그렇게 다치는 거냐...“ 

‘-탁-’ 

내 말에 밥 먹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소리가 나도록 내버렸다. 

날 노려보던 그는 곧 뒤 돌아 주방을 나섰다. 

소파에 앉아 책을 펴드는 걸 보니 꽤나 화가 난 것 같다. 

한숨을 그가 모르도록 내쉬고 식탁을 치웠다. 

다 치우고 설거지를 끝냈을 때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야, 성현조, 문 열어~” 

현준이었다. 

주환을 쳐다본 뒤 현관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바람과 함께 들어온 현준은 뒤에 끌리듯 들어오는 명호를 향해 얼른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인상을 쓰자 녀석이 싱글거리며 내 온몸을 훑어본다. 

“.. 어라? 안 입었네...?” 

“....... 대체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 큰형이 전화해서 은근슬쩍 얘기해 줬거든. 쳇.. 아깝다.. 언제 입을 생각이야?” 

“.. 절대 안 입는다..” 

현준은 분명 앞치마 입은 날 보러 온 것이었고, 명호는 끌려 온 것이 분명했다. 

딱 잘라 말하자 현준이 혀를 차며 뒤에 앉아 있는 주환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얼른 다가가 현준의 팔을 잡아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 안 먹었으면 차려줄 테니까 먹어라.” 

“..... 오호, 입막음이 분명한데.. 쩝.. 그럼 밥이나 먹지, 뭐.. 야, 박명호, 너도 와서 앉아” 

멀뚱히 서 있는 명호까지 끌어다가 식탁에 앉히고 내가 밥을 내오기만 기다린다. 

밥을 소리가 나도록 식탁에 내려놓고 식탁 앞자리에 앉았다. 

“.. 야, 성현준. 너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 

“............ 우물.. 그냥.. 뭐.. 이것저것..” 

“명호야, 이 녀석 여기 왜 온 건지 알아?” 

“....... 쩝..... 음, 맛있다, 현조야.!!” 

저 녀석까지 내 말을 회피한다. 

밥을 맛있게 먹어대는 녀석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다 먹으면 볼 일도 없으니 나가라. 일찍 자야 되니까.” 

“.. 알았다.. 나도 이 녀석이랑 볼 일 있으니까 나가주지..” 

명호를 가리키며 말한 현준은 명호의 볼이 붉어지자 음흉하게 웃었다. 

날 향해 눈을 빛내는 녀석을 못 본 척 자리에서 돌아섰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 없다.” 

내 말에 더욱 소리를 내며 밥그릇을 긁어대는 현준이었다. 

웅얼대는 소리를 들으니, 냉정한 녀석이라는 둥, 질투도 안 하는 녀석이라는 둥, 

자기 나름대로는 불만일 것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녀석에게 그런 것들을 느낄 만큼 감정을 풀어 놓은 것이 아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별로 대꾸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 곳에서 나왔다. 

소파로 가 주환의 옆에 앉기 전 구급약을 가져갔다. 

내가 걸어가는데도 관심 없이 책만 읽던 주환은 자신의 손을 끌어당기자 그제야 날 

쳐다보았다. 

“손 치료해야지. 가시에 찔리기도 많이 찔렸군.. 이건 가위로 낸 거냐..?” 

“...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꺼져. 내 손 만지지 말고... 저리 꺼져.” 

그의 거부의 말과 손을 뿌리치는 행동에 그에게서 벗어났다.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TV를 틀었다. 

잠시 거친 숨을 내뱉던 그는 작은 소리로 욕을 중얼거리고는 침실로 사라졌다. 

그제야 어깨 위에 있던 긴장을 풀고 억지로 미소 짓던 얼굴도 풀었다. 

눈을 감고 뒤에 기대듯 앉았다. 

“....... 성현조. 많이 망가지는구나. 앞치마 입는 날 꼭 콜 해라. 

일초내로 달려와 줄 테니...“ 

현준은 맛있었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주방에서 명호를 끌고 나와 현관문을 열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잠시 망설이는 듯 주춤했다. 

“난 너와 있을 때 항상 그렇게 망가졌었다.”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녀석은 명호를 데리고 집에서 나갔다. 

문이 닫혔고, 집안이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갔다. 

벌써 잠을 자려는 듯 침대에 누운 그가 보였다. 

눈을 감고 있는 걸 보니, 이미 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침대 위에 조심스레 앉았다. 

부드러운 머리를 쓸어 주다가 입술을 내려 이마 위에 짧게 키스했다. 

그리고 개켜진 이불을 들고 그 곳에서 나왔다. 

그와의 약속대로 소파 위에서 잘 생각이었다. 

아침을 차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밥을 먹는 그를 본 뒤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 그에게 잘 다녀오라고 키스를 했다. 

내 키스에 찡그린 눈썹으로 날 한참 내려다보던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섰다. 

집안을 청소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걸레질도 했다. 

말끔히 시트도 빨았고, 새로운 시트도 깔았다. 

빨래도 돌려서 잘 널어놓았다. 

다 마치고 나자 점심시간이었다. 

별로 생각이 없었기에 무시하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하릴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잠시 뒤에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 들자 형의 잔뜩 실망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어제 안 입었냐? 더 애태울 생각이야..? 

사진까지 찍을 생각이었는데 말짱 꽝이었잖아. 젠장.... 

오늘은 꼭 입어라, 알았냐? 그래야 이 형이 돈을 번다.. 그 것도 꽁돈 말이다. 

와하하하-!“ 

“.... 쿡.. 변태영감.. 그따위 앞치마를 입고 나더러 뭘 하라는 건데..?” 

“..... 크흐흐흐.. 그야 물론 유.혹.을 해야지. 그 청년을 말이다.” 

“.. 주환이가 넘어올지 안 넘어올지 그걸로 내기를 한 건 아니겠지..?” 

“오오-! 너가 이제야 우리들을 파악했구나. 물론 그걸로 내기를 했다만...?” 

“..... 그래..? 형은 어디에다 돈을 걸었지?” 

“............... 난 물론 너의 섹~시한 엉덩이를 봤으니 넘어간다에 걸었다~!! 와하하하-!!” 

형의 방정맞은 웃음소리를 듣다가 픽 웃음을 지었다. 

“그럼 오늘 형이 돈을 따겠네? 돈 따게 해주면 나한테 뭘 해줄 거지?” 

“......... 오오-!! 잘할 생각이 있는 게냐? 좋아, 뭘 해주련?” 

“도청 장치 당장 다 빼 버리는 조건이다.. 주환이 넘어오면.... 

그 땐 그 따위 것들 몽땅 다 버리는 거야. 알았어?!“ 

“... 아, 알았다... 쩝.. 그거 비싼 건데.. 어디다 써 먹지...” 

“............. 현준이 자식 요새 떡대들 후리고 다니더라. 다시 외국으로 가기 전까지 조금 써먹어.” 

마지막으로 날 괴롭히던 현준이까지 들먹거리며 말했다. 

내 말에 만족한 듯 형은 또 다시 주책 맞은 웃음을 터뜨린 뒤 전화를 끊었다. 

오늘 밤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약간 한숨을 내쉬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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