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욱, 머리야..”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머리를 감싸 쥐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어질어질 거리는 시야에 변기를 잡고 한참 앉아 있다가 양치질을 대충 했다.
세수까지 한 뒤 나와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웠다.
다시 눕자마자 침대 저쪽에 뭔가 물체가 보였다.
“............... 끄응..”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자는 폼을 보자니 진우 녀석 같다.
웅크린 채 구석에 쳐 박혀서 자는 녀석을 잠시 쳐다보다가 주환이는 어디에 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어제 저 녀석을 불러서 술을 같이 마셨는데..
진우가 오기 전에도 난 이미 술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진우 녀석이 날 데려다 재웠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담 주환이는 어디에 있는 건가..?
어젯밤도 연수와 호텔방을 간 건 아닌가 싶어서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옆에 곤히 자고 있는 곰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 아..우.. 뭐야... 머리 울려~!!”
잠에서 덜 깬 듯 나를 보며 화를 내던 진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베개에
헤딩을 한다. 얼굴이 붉어져 베개에 푹 고개를 숙인 채 내 시선을 피한 진우는
내가 어깨를 잡으며 말을 꺼내려하자 움찔 놀라며 내게서 피했다.
“....... 내가 벌레냐, 고진우..?”
“....... 우..우..... 개.. 개새끼..... 개만도 못한 자식................ 재수 없는 새끼.....”
“..... 당장 일어나, 그리고 옷 입고 너네 집 가라.”
나에게 얼굴도 못 들고 욕을 퍼부어대는 녀석에게 조용히 뇌까리자 녀석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꽉 쥐고선 얼마나 흔드는지 안 그래도 아팠던 머리가 더욱 아파졌다.
“. 이.. 이.. 넌 생각 안 나겠지만 난 지금 생생하게 기억난단 말이다!!!!!!!!!!!!!!!
그 자식이랑.. 그 .... 그... 놈이랑.. 내 눈 앞에서.... 으윽.... 으으으으윽.....“
“......... 뭐..? 니 눈앞에서 내가 뭘 어쨌는데...”
“. 몰라!!! 씨팔놈아!!!!!!!!!!!”
험악하게 내뱉더니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갔다.
흔들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녀석을 얼른 붙잡았다.
아무래도 주환에게 뭔가 실수를 한 것 같다.
꼬치꼬치 캐묻자 녀석이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는 내 시선을 피한다.
지금은 안 되겠다 싶어 녀석에게서 손을 떼었다.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놀라는 폼이 겁먹은 곰 같아서 맘이 상했다.
“밥이나 먹고 가라. 자식..내가 뭘 했기에 손만 닿으면 놀라냐....”
“........ 몰라, 몰라, 몰라, 묻지 마, 개놈아!”
여전히 소파에 앉아 꿍얼꿍얼 욕을 하는 녀석을 무시하고 주방으로 가 밥을 차렸다.
밥을 먹이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어제 내가 과연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맛있는 밥 냄새가 나자마자 곰이 침을 삼키며 식탁에 와서 앉았다.
그러다 또 내 시선과 마주치자 얼른 못 본 것 마냥 소파로 도로 가 앉는다.
어깨를 조금 으쓱거리다가 녀석을 따라 나갔다.
“야, 밥 먹어. 내가 그렇게나 못된 짓 했냐?”
“..............그.. 그래, 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너 이미 ......... 윽....”
말을 하다말고 끊은 녀석은 후다닥 식탁으로 달려가 앉았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식으로 밥을 쏜살같이 먹더니 물까지 후다닥 다 마셔 버렸다.
내가 식탁에 앉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금 놀라며 서 있자 녀석이 코트를 주워 입고는 내 시선과 손을 피해 도망치듯 현관을 나섰다.
“... 그, 그 자식 오면 물어봐, 새끼야!!!”
결국 아무런 말도 못 들었다.
‘달칵-’
“......... 왔니..”
저녁이 되자 들어온 그를 향해 힘없게 웃었다.
숙취 때문에 띵하던 머리가 이젠 괜찮음에도 하루 종일 겪다 보니 힘이 다 빠져 버린 것이다.
내게 시선을 고정한 그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로 다가온 그는 예상의 빗나감 없이 내 턱을 갈겼다.
갑작스런 눈앞의 충격에 아찔해서 턱을 감쌌다.
다시 한 번 때리려는 그의 손목을 콱 움켜잡았다.
“왜 때리는 건지 이유나 들어볼까..”
“... 미친놈한테는 매라는 약이 특효다..”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다시 때릴 것처럼 주먹질을 하는 그에게 한 번 더 맞아줬다.
분이 풀리면 그에게서 내가 어떤 미친놈의 짓을 했는지 들을 생각이었다.
두 대를 더 때린 그는 그제야 멈추고 내 몸을 밀쳤다.
“..... 정말 너한테는 질려 버렸다, 앞으로 그런 짓 또 했다간 죽는다.”
“내가.. 어제 무슨 짓을 했다는 거지..? 진우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러는 거냐..“
“입 닥쳐. 썩은 주둥이로 지껄이지 마. 친구 앞에서 그런 짓 해놓고 민망하지도 않냐?
술 취해서 까맣게 잊어버리면 되는 거야?“
화난 그의 얼굴에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에 똑바로 서서 올려다보자 주먹을 꽉 틀어쥔 채로 내 몸을 다시 밀쳤다.
옆으로 비켜 그의 손길을 피한 뒤 그를 소파로 끌었다.
그를 앉히고 그 옆에 앉아 그의 뺨을 두 손으로 잡아 내 쪽을 보게 했다.
“말해줘.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알고 나서 사과할 테니. 어서..”
“.. 큭... 친구 자식을 앞에 두고 침대에서 섹스를 했지. 너란 녀석이 말이야..”
“............. 뭐..?”
놀란 눈동자를 그대로 마주친 채 그를 쳐다보자 뺨에 올려진 내 손을 뿌리쳤다.
“.. 그래서.. 너와 내가 진우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했다. 그 말인가..?”
“........”
말이 없는 그를 계속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채였기에 그의 표정이 조금은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짓을 했는데도.. 분노의 감정만이 있을 뿐, 혐오란 것은 없어 보였다.
“.. 쿡.. 그 자식 좋은 구경 했겠는데... ?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 손을 그리도 피했었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과장해서 웃었다.
결국 한참 웃다가 그에게 어깨를 잡혔다.
웃는 낯으로 돌아보니 찡그린 채 낮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너와 그 자식은 그런 걸 보여주고도.. 웃을 수 있는 사이란 거냐...?”
“... 그래, .. 그 녀석은 ... 친구라기 보단 내 지기라는 말이 어울리지..
모든 걸 걸 수 있는 녀석이다. 아마도 내일 오전쯤 되면 다시 전화해서 날 야단칠 거다.
진우는 그런 녀석이야.“
“.....훗. 굉장한 친구를 두셨군. 변태 주위엔 변태만 꼬인다는 건가...? 큭..”
“.. 그러는 너야말로. 나에게 꼬였으니 변태 아닌가...?”
“. 뭐라고?! 죽고 싶어?!!!!”
내 멱살을 사정없이 쥐어 올린 주환은 주먹을 그러쥔 채 코가 닿을 만큼 내 얼굴을 당겼다.
뜨거운 숨결을 그에게 내뿜으며 다시 속삭였다.
“.. 왜 진우가 보는데도 날 피하지 않았지..?
술 취한 날 주먹으로 한 대 팼으면 나가 떨어져 잠을 잤을 거야...
그 시선을 즐기면서 날 안은 건 아냐..? 왜 진우에게 모든 걸 다 보여 준 거야..? 응..?“
숨을 가쁘게 내쉬던 그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 다시 밀쳐 내었다.
귓가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싶은 순간, 그가 내 위에 올라탔다.
다리를 벌려 그를 감싸자 그가 내 목덜미를 꽉 움켜쥐었다.
“..... 너 따위 죽여 줄 테다... 너 따위.............”
정말 죽일 것처럼 목을 조여 온다.
숨이 탁 하고 막히는 감각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앞의 까만 공간을 보며 점차 호흡 곤란으로 숨을 헐떡였다.
내 귓가에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내 목을 조르는 그의 손길도 느껴진다.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그의 숨소리가 가까워진다 싶은 순간, 입술 위에서 그의 숨결을 느꼈다.
부드럽게 닿았던 입술은 곧 격렬하게 바뀌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호흡곤란과 함께 입이 막히는 감각에 점차 더 헐떡이고 있었다.
침을 삼킬 수가 없어 죽을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눈을 뜨자 그의 뜨겁게 열이 오른 눈동자가 보였다.
눈가를 찡그리자 그가 손에 힘을 조금씩 풀었다.
귓가에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 이대로.. 죽이고 싶다.. 정말... 내가 못 보게... 널 죽여 버리고..
편하게 되고 싶다....“
“...... 쿡.. 쿡쿡쿡.... 아하하하핫.......”
웃음에 더욱 화난 듯한 그를 보며 팔을 들어 올렸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살짝 쓰다듬었다.
거부하지 않는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내 미소에 미간에 그려지는 주름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 김주환.. 난 네 손에 죽을 수 있어. 그렇지만 아직은 안 된다.
이 생활이 끝난 뒤에.. 너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그 때가 되면 네가 직접 날 죽여도 돼.
연수와 행복하게 되면.. 그 때가 되면.. 똥 한 번 밟았다 생각하고 지내라.
네 눈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지금 네가 느끼는 살인 충동도 말끔히 사라질 테니
그 때 까지만 기다려. 후훗.. 난 너에게 똥이 되 버렸군....“
“.........”
“.... 아아, 이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은 건가보다...
지금 내 기분이라면 닭살스러운 노래가사도 쓸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저리 비켜. 저녁이나 먹자.“
싱긋하고 미소까지 지어준 뒤 그에게서 벗어났다.
어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그에게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결국 뒤돌아서며 잔뜩 표정이 굳어지는 나였다.
“... 오늘은 별로 안길 기분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하고 자자.”
샤워까지 마친 후 침대로 들어오는 그를 향해 말하자 그가 좀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벗어났다.
“할 마음 없으면 난 소파에서 잔다. 너와 같이 잘 마음 없어.”
“....... 후우.. 내 옆에 누워서 자면 안 될까?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는 모습 별로
보기 안 좋아. 구석에 쳐 박혀서 조용히 잠만 잘 테니 여기 떨어진 곳에 누워서
자라. 자, 얼른 누워.“
팔을 끌어당겨 침대에 눕히고 옆에 보조 등을 껐다.
살짝 스친 가슴으로 내 심장소리가 전해질까 두려워 얼른 뒤돌아 누웠다.
“.. 잘 자라.. ”
조용히 말한 뒤 벽을 한참 쳐다보며 누워 있었다.
뒤편에서 그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그 긴장된 분위기에 가슴이 뛴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
숨을 멈추고 있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그의 숨소리에 맞춰 숨을 쉬다가 점점 고르게 내뱉는 그의 숨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안심이 되어 눈을 감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고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