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56)

“야, 죽 먹어. 그 새끼 너 아무것도 안 챙겨줬지? 계속 빈속이면 

감기 더 안 나아.“ 

“벌써 아침인가?“ 

“그래. 일어나, 얼른.” 

“......... 윽.” 

일어나려다 말고 침대에 풀썩 고꾸라졌다. 

녀석이 얼른 옆으로 다가와 내 몸을 일으켜 주었다. 

열 받은 표정으로 씩씩거리더니 소리쳤다. 

“그 자식 오면 내가 죽여 버려도 뭐라고 하지 마! 

이런 놈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 내가 하라고 했어. 내가 정신 나간 놈이니까 날 죽여라.” 

“..뭐, 뭐야..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지 마. 개새끼야!” 

녀석이 얼른 얼버무리더니 죽을 후후 불고 난리가 났다. 

몸을 베개에 기대어 편히 앉은 난 허리와 엉덩이의 고통보다는 나른함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몸이 축축 늘어지는 기분이 열에 들떠 허공을 헤매는 것만 같다.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녀석이 퍼서 후후 불어주는 

죽을 조금씩 맛보았다. 

역시.. 너무나 맛없어서 뱉어버리고 싶을 만큼 죽은 굉장했다. 

“그 표정은 뭐냐.. 뱉고 싶어? 뱉으면 죽는다. 얼른 다 삼켜.” 

녀석의 협박에 가까운 말에 겨우 꿀꺽 삼켰다. 

이 기회에 날 죽이려고 하는 녀석의 수법 같다. 

미각을 모두 마비시킬 만큼 특별한 죽의 맛을 느끼며 한 그릇을 강제적으로 다 비웠다. 

다 먹고 나자 날 베개에 눕혀주고 녀석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잠시 후. 역시나 그릇 깨먹는 소리가 요란히도 귓가에 울렸다.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려다 몸의 상태에 말없이 포기했다. 

속으로 없는 살림에 애도를 표하며 눈물을 적셨다. 

곧바로 욕을 지껄이며 깨진 그릇을 치우는 소리가 또 요란히도 들렸다. 

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녀석을 조금 쳐다보자니 손이 잔뜩 베여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눈을 찡그리자 녀석이 헤실 거리며 옆으로 와서 앉았다. 

손을 내 입술에 대는 것을 보자니 빨아달라는 투다. 

하긴, 난 침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주의였고, 녀석이 어디 다쳤다고 하면 입으로 핥아 주었다. 

그 것도 녀석의 입이 닿을 수 없는 곳을 핥아준 거였지만, 

지금 녀석은 손가락을 다쳐놓고도 뻔뻔스럽게 아파 누워있는 나에게 손가락을 들이미는 것이다. 

“니가 빨아.” 

“....... 헉, 야 그거 너무 야한 말 아니냐..?” 

그 말에 물론 난 한참 녀석을 노려보았다. 

내 눈빛 공격에도 끄떡없이 빙글거리며 쳐다보더니 자신의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꽤나 에로틱하게 빨고 있다. 

떡대들을 이 기술로 후린 건 아닌가 싶었다. 

“니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지금은 아무 감정도 없단다, 동생아.” 

“..... 쳇, .... 그러면 또 자자. 나도 옆에서 잘래. 너 보살피느라고 밤새 못 잤단 말이야.” 

“.. 휴우, 이리와.” 

내가 약해지게 귀여운 얼굴로 애교스럽게 속삭이는 녀석에게 또 져버린 나는 

녀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내 어깻죽지에 고개를 묻고 가슴을 만지작거린다. 

피할 힘도 없어 그냥 두었더니 더욱 대범하게 만져댄다. 

“..... 준아..?” 

“아 씨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입으로는 화를 내면서도 어떻게 손은 가슴을 애무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난 한숨을 푹 내쉬고 녀석을 그냥 두었다. 

그리고 서서히 옅은 잠에 빠져 들었다. 

빠져드는 내 위로 녀석의 그림자가 비치자마자 입술에 키스가 쏟아졌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의 수없는 키스에 미소 짓고 녀석을 팔로 안아 주었다. 

“.......... 사랑해 ... 현조야.” 

“... 그래.. 그래.. 내 귀여운.... 악마 새끼..” 

“........... 아으으으.. 진심이란 말이야!!!!!”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녀석을 무시한 채 더욱 곤히 잠에 빠져 들었다. 

내 위에 앉아 소리를 지르는 괴물 따위 내 동생이 아니라 생각하며... 

눈을 조금 떴다. 

어슴푸레해진 방 풍경을 눈동자만 돌려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방문에 서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려다 보니 내 팔을 베고 누워 곤히 잠든 녀석이 보였다. 

다시 방문을 보니 거실의 불을 등진 채 얼굴에 표정 없이 서 있는 그가 보였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몸을 반쯤 일으킨 내 옆으로 다가온 그는 내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즉시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 성현조. ....” 

“...........” 

나직한 목소리.. 

허스키의 감미로운 음악인 듯 가슴에 젖어드는 목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 난 너가 싫어..” 

시리듯 쏘아보는 시선에 겨우 눈을 맞추었다. 

맞추자마자 정확히 눈 속으로 파고드는 그의 눈빛에 입술을 달싹였다. 

눈빛이 마주친 채로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 너가 죽도록 밉다. ...”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 

아니, 너무나 격렬해서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또 다시 시선을 마주한 채로 몇 초가 흘렀다. 

입술만 달싹거리는 날 보다 못한 그가 내 몸을 일으켰다. 

안겨진 채로 현준의 팔에서 벗어나게 된 난 그의 품에 안겨 거실로 나가게 되었다. 

가볍게 내 몸을 소파로 옮긴 그는 현준이 입혀줬던 파자마의 단추를 풀었다. 

“....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 이 짓 하는 건 싫지가 않아...” 

풀면서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 

침을 삼키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를 지금 올려다보았다간 평생 그의 옆에서 있게 해 달라고 구걸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눈을 떠서 쳐다보면 안 된다. 

그저 그의 조용한 음성과 술 냄새와 함께 베나오는 입김을 느낄 뿐이었다. 

힘없는 팔을 들어 그의 목에 조용히 둘렀다. 

“.......... 씹... 너가 이렇게 ... 목에 팔을 두르는 것도 싫지 않아...” 

“.........”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내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게 문제야!!!!! 넌 남자에다가 서른한 살이나 된 아저씨야.. 

난 연수 누나를 사랑해. 넌 싫어. 그런데 왜 이런 짓은 싫지가 않은 거야!!!!“ 

“.......... 하아.. ....... ” 

“.... 연수 누나를 안으려고 했어. 

호텔방으로 들어가 연수 누나가 옷 벗는 걸 보는데 할 수가 없었어... 젠장..... 

...... 떨려서 손이 움직이질 않았어...... “ 

침을 다시 한 번 삼켰다. 

가슴에 입술을 댄 채로 속삭이던 녀석이 시선을 내 입술에 고정시켰다. 

내 심장의 쿵쾅거림이 들릴 것이다. 

귀가 그 곳에 있으니 아마도 크게 들릴 테지... 

내 입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욕망이 있다. 

그 이면에는 싫어한다는 그의 말처럼 증오가 가득하다. 

욕망과 증오라니.. 

그의 말에 쿵쾅거리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죽이고 싶었다. 죽이고 싶을 만큼 그가 미웠다. 

연수를 안으려고 했다. 

“..... 연수 누나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 

침을 또 다시 삼켰다. 

“받아 주었어. 하하... 연수 누나도 이혼하기 전부터 날 좋아했대. 

웃기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 

대답 없는 내 입술을 더욱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내가 침을 삼키자 잠시 목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내 가슴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할짝거리며 한참 키스하던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 .. 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 

“........ 쿡..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난 둘 사이에 낀 훼방꾼에 불과해. 

불쌍해할 필요 없어. 며칠 후에 조용히 사라져 줄 훼방꾼일 뿐이다.“ 

“그래. 넌 훼방꾼이야. 연수 누나와 나 사이에 껴서 항상 날 비참하게 했던 놈이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수 누나와 결혼했던 나쁜 새끼야.“ 

“... 그래..... 연수랑 잘 되서 다행이다, 김주환. 

하지만 나와의 시간이 아직 보름 정도 남은 건 알고 있지..?“ 

겨우 눈가에 힘을 주어 슬픔을 삼키고 속삭였다. 

평소처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겨우 말했다. 

그래도 쓴웃음의 조각이 보였는지 그가 고개를 들고 내 눈동자를 직시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 ....... !” 

시선의 마주침 속에서 심장의 울림소리만이 요란한 시간이 지나고 그의 눈빛이 변한다 

싶은 순간, 까칠한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입술을 어린아이처럼 부비던 그는 내가 혀를 내밀자 입을 벌려 혀를 빨아 당겼다. 

힘껏 빨아 당겨져 움찔 놀라자 그가 입술을 떼어냈다. 

혀가 내밀어진 상태로 멍하게 올려다보자 손가락으로 내 혀를 만지작거렸다. 

짭쪼롬한 손가락의 살결에 혀를 뺀 채로 그냥 있었다. 

타액이 마르자 그가 다시 입술을 내려 혀를 핥았다. 

촉촉이 젖어들자 만족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다시금 만지작거렸다. 

한참 만지던 그는 어린아이처럼 불만의 신음을 토하더니 내 입술에 격한 키스를 했다. 

무작정 테크닉 없이 밀어붙이는 키스에 잠시 혼란에 빠졌다. 

입술이 문질러지고 혀에 핥아지기를 수차례.. 그가 입술을 떼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쪽쪽 소리와 함께 유두가 빨렸다. 

소파에 뉘여 진 채로 멍하니 당하던 난 잠시 후 그의 행동이 멈춘 걸 깨달았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심장의 떨림을 느끼며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술을 먹으면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그인 건 알았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그도.. 많이 혼란스러운 걸까.....? 

“................. 한 달이고 뭐고, 지금 당장 끝내면 안되겠냐?” 

이런 소란 속에서 잠이 깼으면 벌써 깼을 녀석이 조용히 나타나서 물었다. 

“더 지켜보고 싶다. 평생 못 볼 텐데.. 더 보고 싶어....” 

“..........후우... ........ 그 자식 그냥 그렇게 두고 넌 침대에 다시 가서 자라. 

몸도 안 좋은 놈을 데리고 대체 .................. 휴우..... 휴우....... 휴우.....“ 

“아니, 이렇게 있을래.”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으로 그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무척 따뜻하다. 

슬프게 미소 짓자 현준이 녀석이 욕을 퍼부어대며 방으로 들어갔다. 

“.......... 사랑한다, 김주환...” 

조용히 속삭이고 가슴에 기댄 그의 뺨도 살짝 만져보았다. 

그가 잠든 후에만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 

피부에 느껴지는 산뜻함에 젖어드는 가슴으로 한참 만지작거렸다. 

‘뚜르르르-’ 

전화가 울린다. 

그를 바라보며 쓰다듬고 있은 지 벌써 몇 시간째... 

전화가 울리는 걸 바라보다가 그냥 두었다. 

조금 후에 전화는 끊겼다. 

그의 피부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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