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이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허리가 조금 욱신거리고 있었다.
어젯밤 소파에서 했던 건 허리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기분이 무척 좋았고,
주환의 능동적인 행동에 더욱 흥분했었다.
찰랑거리며 손목에서 느껴지던 그 묵직한 감촉에 더욱 환희에 젖어들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어제 주환이 무심코 내 살을 빨아들이며 만들어 놓은 키스마크가 한두 개 보였다.
뒤로 할 때도 빨아들이는 걸 느꼈었기에 등에도 아마 남아있을 것이다.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소파로 가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 기분은 더욱 우울해져만 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키를 들고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잠시 밖에서 서성였다.
11월의 중순답게 많이 쌀쌀해진 날씨가 온몸에 느껴졌다.
이미 낙엽은 모두 떨어져 있었고, 센티멘탈해질 풍경이었다.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도 없는 아파트 내 놀이터에 가서 앉았다.
그네에 가만히 앉아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삐걱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그넷줄에 매달려 한참 앞뒤로 움직이다보니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한참 울린 뒤에 받아들자 현준이다.
“어디냐?”
“집이지.”
“휴우.. 와라. 여기로.”
“움직이기 싫어.”
“잔말 말고 와!”
“... 현준아..”
고함을 질러대는 녀석을 조용히 불렀다.
대꾸 없이 조용히 있는 녀석에게 조금씩 말을 꺼내었다.
“너.. 정말 나 사랑하냐..?”
“.......... 병신. 그럼 내가 그런 걸로 장난 치냐?!”
“..... 유학 생활 접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 뭐?”
“한 달 후에 말이다. 유학생활 접지 말고 거기에 있으라고.”
“............. 무슨 소리지..?”
“이 생활 끝나면 한국을 떠나려고.”
잠시 현준이 말을 않는다.
녀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화를 내기 전 얼른 말을 꺼내었다.
“여기에 있으면 내가 자존심이고 뭐고 다 잃고 주환이한테 매달릴 것 같아서..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헤어지면 병신처럼 매달릴까봐.. 도저히 여기에는 못
있을 것 같다...“
“너 지금 꿩 대신 닭이란 거냐? 내가 니 도피처야?!”
“응. 도망 칠 곳을 너가 마련해줬으니까 너한테로 도망치려고..”
“재수 없어!!!!!!!!!!!!!!!!!!!! 개새끼야!!!!!”
귀가 따갑게 소리치는 녀석에게 다시 조용히 말을 해주었다.
“너가 그렇게 싫다면 다른 곳으로 혼자 떠나도 좋아.
어쨌든 끝나는 날 난 한국을 떠날 거니까.“
“누가 싫다고 했어?! 자존심 상한다는 거지!!!!!!!!!!!”
“....... 그럼 자존심 상하지 않게 나 혼자 떠나마.”
“씨발!!!”
거친 욕 소리와 함께 녀석이 이를 갈아댄다.
그리고는 잠시 뒤 자존심은 필요 없으니 자신과 함께 가자고 거칠게 소리쳤다.
“지금 갈게.”
차를 세우자마자 녀석이 거칠게 올라탔다.
올라타자마자 내 멱살을 쥐더니 앞뒤로 마구 흔들어댔다.
골이 울리는 것 같아서 녀석을 떠밀자 녀석이 잽싸게 피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여전히 힘은 날 능가하는 녀석이었다.
“.. ..... 성현준. 여기 호텔 앞이다. 아무리 썬팅 되 있어도 저 많은 사람들이
안 보이는 거냐?”
“보라고 해!!!!”
내 말에 소리를 지르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어 입술에 키스했다.
거친 키스에 입술을 조금 열어 주었다.
내 행동에 더욱 흥분한 듯 혀를 힘껏 밀어 넣은 현준은 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더욱 진하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숨이 점차 가빠온다.
반항할 생각이 없는 날 알아챈 듯 서서히 손에 힘을 풀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속으로 파고들은 손가락이 두피에 느껴졌다.
능동적으로 키스에 응하는 내 입술에 신음을 뱉은 현준은 한 번 더 내 입술을
핥은 뒤 떨어졌다.
“유학이고 뭐고 한국을 떠나서 나와 가는 즉시 이런 짓 서슴없이 막 할 테니까
각오해. 싫다고 해도 억지로 할 테니까.“
“..... 별로 싫지는 않은데..?”
“........................... 씹..!!”
현준은 내 말에 잔뜩 인상을 쓰며 거친 행동으로 다시금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격렬히 키스해왔다.
하지만 정말이었다.
녀석의 키스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현준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입술을 매만져 보았다.
차에서 내리기 전 또 다시 날 잡아먹을 듯 키스하던 현준이었다.
녀석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지던 키스였다.
그래서 녀석에게 싫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주환에게 키스하면 그 또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동정심을 보이던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내 키스에 응하지는 않았을까..
나와 섹스를 하지 않았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보다 더욱 마음이 울적해졌다.
지금 이 사랑은 첫사랑이었다.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하는 처음의 사랑이었다.
난 가슴에 묻다 못해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현준을 이용하는 것밖에는 못 하는 병신이었다.
“............. 으.음..”
몸이 무겁다.
일어나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다 휘청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침을 어렵게 삼키다 보니 목도 굉장히 아픈 것 같다.
겨우 일어나 주방으로 가 물을 삼켰다.
차가운 물이 들어가자 타들어가듯 뜨겁던 식도가 갑작스런 찬기에 따끔거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현준을 만나러 갈 때까지만 해도 그냥 몸이 피곤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이렇듯 아프지는 않았었는데...
열로 인해 흐려진 시야에 도저히 못 서있을 것 같아 침실로 어렵게 발을 디뎠다.
침대에 털썩 눕자마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목이 타는 것 같다.
물이 마시고 싶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위에서 뭐가 내리누르는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천근만근 되는 듯한 눈꺼풀을 힘겹게 올려 떴다.
희미한 시야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무..물...좀..”
어렵게 입을 달싹였다.
내 말을 들은 듯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림자는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 다시 잡혔다.
입 속에 물이 흘러 들어왔다.
생명수처럼 마시던 난 이마에 차가운 무언가가 놓여지는 걸 끝으로
또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