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56)

“.. 뭐라고?” 

“내 연기 어땠냐고.” 

“.. 저리 비켜” 

“싫어. 저 곰 두 마리는 거실에 내버려두고 여기서 단란하게 둘이 자자~” 

“꺼지라고 했다. 성.현.준.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좋은 말 할 때 저리 비켜라.” 

“무섭게 굴기는.. 그냥 이렇게 안고 자자.” 

내 말에도 끄떡 않고 내 몸을 부둥켜안은 녀석은 내 옆으로 털썩 몸을 뉘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 

녀석의 가슴을 좀 의아하게 쳐다보자 녀석이 싱긋 웃음을 띠웠다. 

연기가 어땠냐고 물은 놈답게 아까와는 달리 전혀 술 취한 기색이 없었다. 

능구렁이처럼 얼핏 미소를 띠던 녀석은 곧바로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한다. 

“잘 자, 형.”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곧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녀석의 긴 속눈썹이 덥히는 걸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꽉 안겨진 상태라 팔을 움직이기가 힘들었지만 겨우 움직여 만져 주었다. 

이 녀석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 잠이 잘 들곤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귀엽고 악마 같은 내 동생 녀석이란 생각에 어떤 짓을 해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내가 잠시 쓰다듬어 주자 잠시 뒤 녀석이 눈을 떠서 똑바로 날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남자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화들짝 놀라 얼른 손을 떼어 내었다. 

“.. 알겠냐? 너가 머리카락 만져줄 때마다 잠은 안 자고 이상한 상상만 했었다. 

그러니까 그만 둬.“ 

“..........” 

하체를 밀착시키는 녀석에 의해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파악해 버렸다.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만 봐도 짐작은 했었지만 뚜렷한 반응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 어색해진 난 녀석의 눈동자를 피해 몸을 돌렸다. 

그제야 꽉 붙들었던 내 몸을 놔준 현준은 침대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나갔다. 

녀석은 다 큰 성인 남자였고, 

녀석은 날 사랑한다고 했다.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난 슬퍼졌다. 

이유도 모른 채 슬퍼졌다. 

한 달을 채운 뒤에는 정신병원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 후욱.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잠을 자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내가 잠을 자는 침대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일어나다가 다시 털썩 뒤로 눕고 말았다. 

거대한 살덩이가 내 배를 짓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무언가 털 뭉치도 다리 어딘가를 짓누르고 있었다. 

정신이 퍼뜩 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니.. 완벽한 난장판 그 자체였다. 

어느새 올라왔는지 거대한 곰 두 마리가 날 가운데 끼고 누워 있었다. 

팔을 가슴에 올린 채, 다리를 내 허벅지에 올린 채.. 

게다가 내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저 털 뭉치는 현준의 머리카락이 분명했다. 

진우의 발이 있는 곳에 머리를 베고 잘도 자고 있었다. 

녀석들을 질려서 바라보다가 살덩이들을 하나씩 치웠다. 

치우다말고 시트를 보니.. 누군가가 침대에 오물을 토해 놨다. 

지독한 냄새는 그 곳이 근원인 것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끔찍한 기분에 얼른 녀석들을 발로 밟아 깨웠다. 

꾸물대며 일어난 녀석들.. 깨워도 끝까지 안 일어나는 명호 녀석까지 다 깨운 뒤 

조사를 시작했다. 

끝까지 자신은 아니라고 우겨대는 녀석들에게 화가 나 너희들 셋이 모두 치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씨,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치워!!! 난 생각도 안 난단 말이다!!!” 

“생각 안 나니까 너가 한 짓이야. 얼른 치워..” 

진우 녀석의 반항에 매 한 방과 함께 냉정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명호 녀석도 중얼대며 뭐라고 투덜거린다. 

내가 한 번 노려봐주자 그제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얼른 치우자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시트를 걷어 버티고 있는 진우와 현준을 끌고 가는 명호 덕에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거실을 나와 난 또 경악하고 말았다. 

“여기다가는 또 누가 저런 짓을 한 거야!!!! 여기도 당장 다 치워!!!!” 

술과 안주거리로 빠짐없이 거실에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열 받아서 한참 씩씩거리다가 욕실로 쳐들어가 녀석들을 한 대씩 더 패준 뒤 반항하는 녀석 

들에게 한 대씩 더 선사해주었다. 

걸레를 빨아서 들고 나와 힘껏 방을 닦았다. 

시큼한 안주 상하는 냄새가 뜨거운 방바닥의 열과 함께 콧속으로 스며들어 질식할 것만 같았다.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다시 방을 닦았다. 

그러다가 다시 욕실로 들어가 제일 만만한 진우 녀석을 끌고 나왔다. 

“넌 저기부터 닦아” 

“. 아씨. 왜 나만 갖고 지랄이야.” 

“....... 시트는 저 둘이 빨아도 충분하니까 넌 걸레질을 해야 하는 거다. 얼른 시작해라.” 

“젠장. 지가 시어머니도 아니고. 부려먹는 건 열라 잘 해요.” 

꿍얼대는 녀석을 다시 한 대 더 패준 뒤 조용히 걸레질하는 녀석을 확인하고 걸레질을 다시 시작했다. 

한참 하다가 녀석에게 전임한 뒤 난 주방으로 갔다. 

녀석들을 생각해 해장국이라도 끓일 생각이었다. 

북어포 사온 게 있기에 그 것으로 국을 끓였다. 

녀석들에게 반찬 따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냉장고에 먹다 남은 

반찬들을 꺼내 식탁에 차렸다. 

시트를 다 빨았는지 땀을 흘리며 욕실에서 나온 두 녀석들은 베란다에다가 갖다 널며 

또 꿍얼거린다. 

진우 또한 걸레질을 다 했는지 욕실로 들어가 걸레를 빨아서 나왔다. 

밥을 먹으라고 소리치자 언제 투덜거렸는지도 잊은 채 걸신들린 사람들 마냥 발발거리며 뛰어온다. 

용케 잘 찾아 앉은 녀석들은 맛있다며 밥을 두 공기씩 먹었다. 

숙취에 시달리는 녀석들 같지 않았다. 

진우를 태워다주러 가는 길에 꽃집을 보았다. 

그저 스치며 본 가게 안에는 연수 혼자 앉아 있었다. 

안심한 마음으로 진우를 태워다 주었다. 

“잘 가라. 다음에 또 놀러가마. 그리고..” 

녀석이 내리려다말고 차에 다시 타더니 문을 닫았다. 

조수석에 앉아 무섭게 노려보는 녀석을 쳐다보고 있자니 다시 말을 한다. 

“그 자식한테 너무 목매지 마라. 이 세상에 널린 게 널 사랑해줄 사람이다. 

너한테 막 대하는 그런 자식한테는 목매지 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다.“ 

“..휴우.. 한 달 동안은 목맬 생각인데... 어쩌냐.. 고진우..?” 

“한 달? 왜 한 달은 목을 매야 한다는 거냐?” 

“한 달 동안만 주환이를 내가 갖겠다고 약속했거든.” 

“..... 왜지?” 

“사랑하니까. 하지만 주환이는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성현조. 너 정말 ... 휴우.... 

원래의 너로 돌아와라. 지금 널 보면 위태로워서 보기가 안쓰럽다. 

이제 우리 나이 벌써 서른하나다. 새로운 사랑에 목 맬 나이가 아니야. 

한 달을 평생하고 바꿀 생각이냐? 그게 그렇게 소중하냐고..“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앞만 보는 내 얼굴을 자신에게로 돌린 녀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나에게 고정한 채 

자신의 일처럼 날 걱정해주고 있었다. 

“이런 사랑을 평생 언제 해보겠냐. 지금이라도 해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진우. 그리고 너나 걱정해라. 눈물 닦고. 병신같이.. 하여튼 겉은 조폭 저리가라 면서 

속은 어린애라니까. 뚝해!!!“ 

내 말에 콧물까지 훌쩍거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비벼댄다. 

옷에 콧물을 묻히든 눈물을 묻히든 가만히 놔두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시 가만히 있던 녀석이 

커다란 머리통을 갑자기 들어 날 쳐다보았다. 

“나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 난 주환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재수없는 새끼...” 

“.. 쿡쿡.. 그거면 대답된 거 아니냐?” 

“몰라! 개새끼야!!!!!!! 평생 너만 보면서 결혼도 안 할 꺼다!!!!!”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속사포처럼 소리친 녀석은 얼른 차에서 내렸다. 

내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리자 문을 쾅 닫고는 카페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카페 문을 열기 전 다시 차를 돌아보며 버려진 어린아이처럼 쳐다보는 진우의 눈에 

웃음을 멈췄다. 

썬팅된 차라 내 표정이 안 보일 터라서 조금 슬프게 미소 지었다. 

저 녀석은 초심을 끝까지 고수하는 녀석이었다. 

그 것을 내가 처음으로 깨버렸다. 

나에 대해 처음 갖은 생각은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 다가가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런 생각을 깨부순 것은 나였다. 

그런 뒤 갖게 된 나에 대한 생각이 진우에겐 초심이었다. 

그 것을 고수할 것이 뻔히 보였다.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날 보며 저런 표정을 짓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길들인 자는 길들여진 자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얼른 진우에게 여자를 한 명 소개시켜줘야겠다. 

미치고 펄쩍 뛰며 화를 낼 녀석이지만.. 

카페의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어 천천히 몰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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