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56)

차키를 건네주자마자 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액정을 보자 진우 녀석이다. 

녀석.. 늦잠 자고 허둥지둥 전화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여보세요” 

“생일 축하해. 현조야.” 

“응. 늦었구나..?” 

“..... 윽.. 그럴 수도 있지. 개새끼야!! 챙겨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아!!! 

넌 내 생일 한 번이라도 챙긴 적 있어?!!!“ 

“지금 당장 달려 와. 선물 사가지고 오도록 하고. 10분 내로 안 오면 너 떼놓고 

명호랑 현준이랑 점심 먹으러 갈 테니 알아서 해라.“ 

“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여기서 거기가 거리가 얼만데 10분이야!!! 

20분 내로 갈 테니까 기다려!!!! 가면 죽일 줄 알아!!!!!!!“ 

“..쿡쿡. 알았어. 귀여운 진우 강아지. 얼른 발발거리고 오도록 해.” 

뭐라고 내 말에 욕을 퍼부어대는 진우가 듣도록 핸드폰을 탁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그리고 차의 조수석에 탔다. 

“늬들은 가서 선물 사와. 점심 먹으러 가는 건 선물 받고 나서야.” 

“저 거렁뱅이 심보.! 공짜 많이 바라다가 40도 안 되서 대머리 된다. 이 아저씨야!!!” 

툴툴거리면서도 현준은 명호를 끌고 어디론가 간다. 

난 조수석에 앉아 느긋이 뒤로 기대었다. 

“저녁엔 너네 집 가서 술 파티 하자.” 

역시 술을 밝히는 녀석답게 진우는 점심을 먹자마자 집으로 가자고 모두를 이끈다. 

이미 진탕 밖에서 시간을 보내었고, 그나마 어둡던 마음이 위로가 되는 중이었다. 

그들을 보내놓고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착잡해져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가 떠들썩하도록 시끄러운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집으로 들어갔다. 

“아, 벌써 왔어?” 

“...”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주환이가 보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와 있는 주환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밝게 묻자 그가 고개를 들고 

내 옆에 떨거지들을 쳐다본다. 

떨거지들은 그런 눈빛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 집인 듯 들어가 주섬주섬 사온 봉지들을 

끌러대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그들을 사이에 두고 주환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녀석의 무심한 듯한 눈빛에 그저 웃음을 지어주고 날 끌어다 소파에 앉히는 진우 녀석 때문에 

주환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진우가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좀 노려보자 녀석이 툴툴거리며 내 머리를 때린다. 

“친구보다 애인이 중하다 이거냐?! 잔소리 마라. 나 여기 앉을 거다..” 

그리고는 주환을 보며 말을 건다. 

여전히 툴툴거리며 말하는 폼이 주환에게도 못마땅한 감정이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너도 여기 앉아서 술 마셔라. 오늘 현조 놈 생일이다.” 

진우의 말에도 그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생일이라고 해도 별 상관없다는 거겠지.. 

진우의 못마땅한 투덜거림을 못 듣는 척하며 음식을 풀고 난리를 떨어대는 현준과 명호를 

쳐다보았다. 

탁자 위에는 이미 어수선하게 많이도 차려져 있었다. 

다 차리자마자 샴페인을 펑 하고 터뜨린 현준은 흘러내리는 샴페인을 잔에 나눠 따랐다. 

주환이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지만 그는 들어가지 않고 소파에 여전히 앉아 있었다. 

주환의 몫까지 따른 현준은 한 잔씩 돌렸다.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케이크 위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는 현준을 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꽤나 귀엽게 생일축하 노래를 영어로 불러준다. 

현준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내 볼에 키스를 날렸다. 

“생일 축하해, 형. 촛불 꺼. 오랜만에 생일 챙겨주는 것 같다.” 

현준의 말과 키스가 끝나자마자 모두가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정작 듣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음에도 쓴웃음을 지으며 케이크 위의 초를 향해 

입김을 불었다. 

후-하고 불려진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며 꺼졌다. 

“자, 건배하자~!” 

여전히 귀엽게 구는 현준이 잔을 높게 들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가운데로 잔을 모았다. 

모두의 행동에 손에 들린 잔을 노려보던 주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쨍 소리와 함께 부딪혀진 잔을 들고 모두들 원샷으로 술을 비웠다. 

잔을 비우자 이젠 모두들 내가 아까부터 풀어보고자 했던 선물들을 하나씩 내 앞에 건넸다. 

“풀어봐.” 

“응.” 

현준이 자신의 선물을 치면서 말했고, 난 리본의 끈을 천천히 풀었다. 

좀 크다싶은 상자였는데 열자마자 얇은 천들이 나왔다. 

살이 비칠 정도로 얇은 천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브리프였다. 

무척 야한 속옷을 선물한 현준은 능글맞게 웃으며 내 볼에 다시 키스를 날렸다. 

“나랑 둘이 잘 때만 입어야 돼. 쿡쿡.."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현준아.“ 

내 말에 심통난 듯 입술을 귀엽게 삐죽인 현준은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자신이 앉아 있는 

소파에 앉힌다. 

“여기 앉아서 다른 것도 풀어봐.” 

주환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현준이 끌어당긴 곳은 주환의 바로 앞이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시선을 내게서 돌렸다. 

난 얼른 선물을 풀었다. 

진우가 다소곳이 앉아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흘깃 돌렸다가 다시 선물을 보았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왔다.” 

“넌 항상 이런 것만 선물하더라. 내가 애냐?” 

진우가 준 선물이란 초등학생들이 메야 할 것 같은 귀여운 가방이었다. 

분홍빛이 도는 가방은 주머니도 매우 많았고, 앞에는 커다란 키티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나더러 이걸 어디다 쓰라는 거냐..” 

“선물 살 시간이 없길래 내가 제일 아끼는 걸 갖다 줬더니.. 나쁜 놈... 

싫으면 다시 내놔!!! 내 보물 1호란 말이다!!!!“ 

“됐어, 됐어. 보물 1호로 저 구석에 잘 처박아 둘께.. 고맙다, 고진우..” 

내 말에 인상을 쓴 채 화를 내려고 하는 진우를 무시하고 명호의 선물을 풀었다. 

그 중에 제일 양호한 선물이 들어 있었다. 

“준이가 성인용품점 가서 사라고 하는 걸 뿌리치고 시계 하나 샀다.” 

“고맙다. 현준이 말은 되도록이면 무시하는 게 너한테도 이로워.” 

내 말에 얼굴을 붉힌 명호는 현준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현준의 얼굴이 화가 나서 일그러져 

있자 팔에 매달려 미안하다고 애원했다. 

현준의 성격을 아는 난 그저 그렇거니 하고 선물을 옆으로 잘 치워뒀다. 

주환의 시선이 느껴져 그를 쳐다보았다. 

날 보는 주환에게 또 다시 미소지어준 뒤 시선을 돌렸다. 

“술이나 따라.” 

옆에 앉은 현준을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리고 말했다. 

날 노려보던 현준은 사온 술을 잔에 따른다. 

그런 후에도 주환의 시선이 느껴져 몸이 움찔 떨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난 뭔가 낯선 것을 하나 발견했다. 

탁자 위에 비어 있던 꽃병이 지금은 장미꽃이 잔뜩 꽂혀져 있었다. 

의아한 시선을 던지다가 주환을 쳐다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잔에 술이 따라지는 걸 묵묵히 보고 있었다. 

“얼른 마시자.” 

진우의 말과 함께 모두들 술을 들고 건배를 했다. 

나 또한 주환에게서 시선을 돌려 술잔을 가져갔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은 굉장히 썼다. 

“혀어엉~~~~ 딸꾹.. 나.. 쉬 마려워.. 같이 가자.. 응???” 

술에 잔뜩 취한 악마가 내 왼팔에 들러붙어서 화장실에 가자고 애원하고 있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떡이 되어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귀여운 척 하며 말해도 술 냄새가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내가 인상을 쓰자 녀석은 더욱 울상을 하며 내 팔에 엉겨 붙는다. 

“혀어엉~~!!!! 얼른, 얼른~!!! 나 쌀 것 같단 말이야!!!!!!” 

어제 그런 고백을 받아놓고 평소처럼 녀석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어서 망설였다. 

결국 녀석의 눈빛세례에 못 이겨 화장실로 녀석을 데려갔다. 

바지를 끌러주고 안달하는 녀석을 변기에 세워주자 시원하게도 볼일을 본다. 

볼일을 마치고 휙 몸을 돌리는 녀석의 브리프를 올려주고 바지를 채워주었다. 

“.. 히끅.. 형.. 형 너무 너무 멋있어. 키득키득..” 

그리고는 내 어깨에 기대어 딸꾹질을 해댄다. 

결국 포기의 한숨을 내쉬고 녀석을 질질 끌며 거실로 나왔다. 

나오자 역시나 술이 떡이 된 진우 녀석이 나를 보며 화를 버럭버럭 냈다. 

“나도!! 나도 마려우니까 나도 !!!!!!!!!!!!!!!!!!!!!!” 

“.. 고진우.. 질투할 걸 질투해라.” 

내 냉정한 말에 현준처럼 울상을 지으며 내 오른팔에 덥썩 엉겨 붙었다. 

결국 두 마리의 짐승을 두 팔에 감은 채 주환의 시선을 피해 소파에 앉았다. 

결국은 울음을 터뜨린 악마 새끼 덕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젠 명호까지 나서서 내 목을 

칭칭 감았다. 

“왜 늬들만 현조 독차지하고 난리야~~!!! .. 딸꾹.. 나도 할래..!!” 

세 명의 시끄러운 술주정뱅이들에게 감싸여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주환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내가 시선을 돌리자 몸을 일으켰다. 

방으로 걸음을 돌리는 그의 등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자 현준이 울다가 못 마땅한 듯 내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린다. 

“..... 쳇.. 형.. 형~~~ 저딴 자식이 뭐가 좋아~!!!” 

현준의 말에 주환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결국 다시 시선이 마주쳤고, 그와 동시에 현준에 의해 다시금 고개가 돌려졌다. 

술에 취해 흥얼흥얼거리는 명호와 진우에게 감싸여진 내 몸을 잽싸게 빼내더니 

자신의 무릎 위로 내 몸을 올렸다. 

놀라서 저지시키려 하자 더욱 강한 힘으로 내 어깨를 움켜잡더니 그대로 내 입술에 

키스했다. 

격렬한 키스와 술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아 숨을 헐떡이자 더욱 진하게 키스를 퍼붓는다. 

혀가 들어와 온 입안을 적시고 다녔고, 술 냄새로 머리가 띵하게 만들었다. 

조금 참고 있다가 녀석에게 잡힌 어깨를 어렵게 빼내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술에 취하니 녀석 또한 정신이 없는지 그와 동시에 머리가 치워졌다. 

숨을 헐떡거리며 녀석의 머리를 더 때려주었다. 

그리고 현준의 무릎에서 얼른 내려왔다. 

세 명의 술 취한 놈들을 거실에 내팽개치고 쾅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는 주환을 따라갔다. 

“김주환..” 

“가서 변태 새끼들이랑 더 놀지 그래?” 

그도 술을 많이 먹는 것 같았는데 별로 취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귓바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내게 말을 하는 입 속에서는 술 냄새가 퍼져 나왔다. 

“탁자 위에 장미는 어떻게 된 거지?” 

“.. 큭큭.. 그거? 오늘 꽃집 갔다가 받아 온 거다. 왜?” 

말투는 멀쩡하지만 말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린애 같은 말투는 저번에 내 배를 깨무는 그와 닮아 있었다. 

내가 손을 올려 그의 뺨을 훑자 그가 흠칫하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연수가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얘기했나?” 

“글쎄..” 

녀석의 눈빛이 틀려졌다. 

분노한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던 난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그의 목젖이 울리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내 고개를 힘껏 위로 쳐들었다. 

시선이 다시 마주쳤고 그가 사납게 말했다. 

“늬들 형제 아니지?!” 

“.... 뭐라고?” 

“저 새끼랑 너랑 형제 아니잖아!!!” 

“... 형제 맞다. 아까 그건 술 취해서 장난 한 거야.” 

“피식. 웃기고 있네.” 

비웃음을 짓던 그는 그대로 고개를 내려 내 입술에 격렬히 키스했다. 

다급하게 느껴지는 혀의 놀림에 입을 열어 반겼다. 

혀가 쏘듯이 들어와 입 속을 대범하게 탐하고 다녔다. 

짙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몸을 더욱 밀착시키고 그의 키스에 몰두했다. 

“....읍..” 

부드럽고 격렬하게 키스하던 그가 갑자기 내 혀를 힘껏 깨물었다. 

입 안에 비릿함이 가득 번져나갔다. 

피 맛이 느껴지는 타액을 꿀꺽 삼키고 입술을 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일그러져 내 목을 움켜잡은 채 나직이 속삭이고 있었다. 

너 따위 증오할 거라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현관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가 쾅 소리와 함께 닫혔다. 

피가 흐르는 듯한 입가를 손으로 훑었다. 

새빨간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왔다. 

신음을 뱉으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눈을 꼭 감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현준이 들어와 내 몸을 위에서 덮쳐누를 때까지... 

“내 연기 어땠어? 저 꼬마 심통난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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