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56)

“넌 여자가 아니야. 남자야. 자존심도 없냐?” 

“있어. 아니, 없어졌어.” 

“난 누나를 사랑해도 자존심은 지키고 있다.” 

“사랑은 여러 개의 모습을 가졌어. 누구나 다 다른 사랑을 하는 거야. 

너랑 나는 별개의 존재라고 너가 말했다시피 사랑도 다르게 해야 하는 거다. 

난 나대로의 첫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고.. 너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야. 

한 달 후 에는 미련 없이 널 떠날 거다. 너가 연수와 행복해지는 걸 보고나서.. 

한 달에 만족한 뒤에 떠날 거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은 질투해도 뭐라고 하지 말아줘. 

솔직히 어제 너가 호텔로 연수와 들어갔다는 말에 가슴에서 질투가 끓어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달이다. 한 달 후 에는 이런 짓 너에게 하지 않을 거야. 

이미 열흘이 지났어. 조금만 더 참아줘. 그 후에는 너가 원하고 원하던 연수를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만 자자.. 피곤하겠다.“ 

세 번의 섹스 후 지쳐서 잠이 들려하는 나에게 그가 물었고. 

난 조용히 그에 답했다. 

꽤나 차분했다고 자부하지만, 목소리가 떨렸던 건 인정한다. 

두 번째의 사랑 고백이었다. 그 것은... 

처음보다 더 마음 절절한 사랑 고백이었다. 

조용한 그는 잠들었다. 

내 말이 끝나고 조금 뒤 그의 편안한 숨소리가 들렸다. 

그의 등에 뺨을 갖다 댔다. 

샤워를 해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살결에 뺨을 문질러보고 손으로 살짝 쓰다듬어보았다. 

그리고 내 손톱자국이 남은 등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내 등에 있던 것처럼 빨간 자국을 남겨주고 싶었다. 

‘-츄웁-’ 

한참 빨아들이자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등에는 아주 예쁜 키스마크가 하나 생겼다. 

그에 만족한 뒤 등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 뛰는 소리를 음악으로 삼아 잠에 들었다. 

질투에 미쳤던 악마는 이미 저 속으로 숨어 있었다. 

눈을 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욕실로 가서 볼일을 봤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했다.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 마셨다. 

‘뚜르르르-’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에 전화를 받았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아파트 앞이니까 나와. 어제 못 먹었던 점심 먹으러 가자.” 

“........ 전화하지 말고 얼굴 보이지도 말랬더니 형 말이 우습냐?!?!” 

“응. 한심한 소리 말고 얼른 나와. 오늘은 형이 좋아하는 동생으로 온 거야. 

당장 안 나오면 여기서 알몸으로 시위한다.“ 

“...지금 나갈 테니 기다려.” 

평소와 같은 날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나가던 길목에 현준이 서 있었다. 

난 천천히 다가갔고, 악마 녀석은 하루 사이에 홀쭉해진 뺨으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런 모습 또한 어울리기에 적잖이 놀랐다. 

녀석은 내가 항상 봐오던 그 동생이 아닌 것 같았다. 

“형” 

다가가자 형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낯선 건지... 

그건 현준이 평소처럼 애교 섞인 목소리가 아니라 무뚝뚝하고 차가운 음성으로 그 말을 

했기 때문이겠지. 

이 녀석은 정말 내 동생으로 날 보러 온 것이다. 

“응. 뭐 먹으러 갈까?”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은 아냐?” 

“글쎄. 얼른 가야지. 차는 너가 끌어라. 운전할 정신이 아니라서.” 

“바보새끼..” 

평소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가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야~! 너 요새 뭐하는 거야? 놀러도 안 오고..” 

명호였다. 비디오가게 문을 열고 날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난 손을 들어 흔들어주며 다가갔다. 

현준이 놀란 시선으로 명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툭 치자 녀석이 날 보며 악마의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명호에게 달려가 찰싹 안긴다. 

“야, 박명호. 오랜만이다?” 

“.........준..!” 

내 벙쪄 있는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준은 악마의 웃음을 띄우며 명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 같건만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사나운 명견의 충성을 받는 주인의 몸짓이다. 

“..준.. 어..어떻게.. 여..여기에는.. 유..윽..!!유학..” 

말을 하다말고 현준의 기습적인 뽀뽀에 놀라 윽 소리를 내며 떨쳐냈다. 

저런 귀여운 행동이 현준의 마음에 쏙 들었겠지. 

그나저나.. 명호가 말했던 준이라는 녀석이 저 악마였군... 

난 수긍하며 둘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자 현준이 고개를 돌려 싱긋 미소를 짓는다. 

“날 따라다니던 떡대 녀석이야..” 

“알고 있어. 명호랑 친구다..” 

“오. 명호와 친구라고..? 그렇군. 그럼 오늘 형이 생일인 것도 알겠네? 명호야?” 

“........... 몰랐는데... 저.. 저기.. 친구 된지 얼마 안 되서...저...” 

“오늘이 누구 생일이라고?” 

다시 되물었다. 

“아무튼 지 생일은 꼭 잊어버리더라. 잔말 말고 차키나 내놔. 명호 너도 가자.” 

“가..가게..” 

“그건 닫고 오면 되겠지?” 

내 생일이라고..? 

둘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안절부절못한 명호의 귀여운 행동을 보면서도 웃지 못했다. 

오늘이 평범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맞는 말이었군. 

오늘이 내 생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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