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6)

거울을 보니 눈이 새빨갛다. 

잠을 자지 않고 새벽 3시가 넘도록 소파에 주저앉아 있다보니 다리도 조금 쑤셨고 

허리도 찌뿌듯했다. 

그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계만을 쳐다보며, 일 초 일 초 새겨 보며 주환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새벽 3시 10분... 

여전히 오지 않는다. 

평소였다면 12시전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을 나였지만, 

그걸 버티며 아무것도 안한 채 앉아 있다보니 서서히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눈은 감기려 하고 있었고, 그 것을 오기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흔들-’ 

몸이 흔들리고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잠을 자다 놀라 일어나 보니 소파에 누워 있었다. 

앉아서 깜빡 잠에 들었다가 기울어지면서 누워진 것 같았다. 

약하게 햇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6시.. 

주환이의 흔적은 없었다.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러 머리 아픈 걸 진정시킨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갔다. 

냉수로 샤워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촤르륵 쏟아지는 물줄기의 서늘함에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잠시 뜨거운 몸을 식힌 뒤 온몸에 비누칠을 했다. 

습관처럼 몸을 문지른 뒤 다시 찬물을 끝까지 틀어 머리 위로 쏟아지게 했다. 

따갑게 어깨로 가슴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계속 맞고 있었다. 

“어이, 우리 나가서 점심 먹을까?” 

“넌 낮에는 할 일 없냐?” 

“많지만 너를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거야. 같이 가서 맛있는 것 먹자. 응? 알았지? 

지금 데리러 와. 차 끌고 00호텔 앞으로. 당장..!“ 

녀석의 일방적인 전화에 눈살을 찌푸린 뒤 달칵하고 끊긴 전화를 멍하니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옷을 입었다. 

아무 옷이나 걸친 뒤 조금 전까지 젖어 있었던 머리를 빗어 넘겼다. 

가는 머리카락이 정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키를 집어 들고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나도 이 집에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 오늘은 날씨 좋다. 자, 얼른 운전해. 00동 은소반이라고 알아?” 

“몰라” 

“내가 가면서 얘기해 줄 테니까 우선 차 몰아” 

녀석의 말에 시동이 걸린 차를 출발시켰다. 

아무런 투덜거림 없이 녀석의 말대로 행동하자 녀석이 이상한 듯 내 이마를 짚어본다. 

그리고 열은 없는데...라고 중얼중얼 거리며 그 또한 아무런 반항 없이 받는 내가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 앞만 쳐다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니, 뭔가 다른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녀석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야, 너 서방 말이야... 어제 보니까 연수씨랑 내가 묵는 호텔에 들어오더라...?” 

“...?!” 

그 말에 그대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끼익 하고 세워지자 녀석이 놀랐는지 숨을 집어삼켰고 난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내 눈빛이 녀석을 사납게 쏘아보자 냉소적인 눈웃음을 치며 내 손을 탁 밀친다. 

“하여간.. 성질 하나는 알아줘야 돼..” 

“..... 당장 다시 말해 봐..!! 뭐? 어딜 둘이 들어갔다고???”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다른 방.. 이라고 말해야 하나...” 

“....................... 젠장.!!!!” 

난 녀석의 멱살을 놓고 그대로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주먹을 쥔 채 운전대를 몇 번 때리자 감은 눈가로 서러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아친다. 

내 행동을 묵묵히 보던 녀석이 내 머리를 끌어갔다. 

조용히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녀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해준 녀석은 

내가 울분에 몸을 부들부들 떨자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다. 

“연수씨랑 그 꼬마랑 무슨 관계냐?” 

“...........................주환이가 그녀를 좋아한다..” 

“오호.. 멋진 일이군...” 

“... 장난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야... 사전조사를 철저히 했다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 

조금 진정이 된 난 녀석의 손을 휙 밀치고 운전석에 기대듯 앉았다. 

눈을 감고 말하자 녀석이 훗하고 웃는다. 

“물론 다 알고 있지. 그치만 그건 내가 몰랐던 사실인 걸~” 

“.... ......내가 주환이한테 한 달 동안 같이 살자고 했어..” 

“그래서?” 

“아내를 주겠다고 조건을 걸었어. 연수를 사랑하니까.. 연수를 주겠다고.. 

그러면 너를 나한테 주겠냐고.. 그러면 한 달 동안 나와 생활하자고.. 

날 안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다..“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한 현준이는 그 말에 이를 바드득 갈아댄다. 

잠시 후 주먹 쥔 내 손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녀석이 꽉 잡았다. 

아픔에 잔뜩 찡그리고 쳐다보자 녀석이 아무런 표정 없이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쥐었다. 

“뭐하는 거야, 변태 새끼야!!” 

“너.. 너가 그렇게 자존심 없는 인간이었냐?” 

“.........” 

“그깟 꼬마 새끼 하나 때문에 너가 .. 안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점점 더 험악해지는 손아귀의 힘에 턱과 손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손을 펴서 거부하고 싶었지만 손은 너무나 꽉 쥐여져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턱을 붙잡은 힘이 잠시 약해지더니 그대로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거세게 잡혀져 앞으로 고개를 숙여지게 된 내 이마 위로 녀석의 입술이 느껴졌다. 

입술을 붙인 채로 현준은 감정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따위 자식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냐... 

널 싫어하는 녀석한테.. 왜.....“ 

“널 이렇게나 사랑하는 놈이 떡하니 옆에 버티고 있는데... 

바보 같은 새끼.. 이상한 쪽으로만 둔해빠진 새끼... 내가 참고 또 참았는데.. 

남자 새끼한테 그따위 짓을 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절대...!!“ 

사납게 중얼중얼 내 얼굴에 입술을 대고 말하던 녀석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입술을 거칠게 막아 버렸다. 

놀라서 휘둥그레진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는 눈동자... 

격렬한 폭풍이 치는 듯 일그러진 채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녀석의 눈동자는 처음이라 얼이 빠져 녀석의 키스를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물론 녀석의 말을 한 자도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혀가 거칠게 파고들어온다. 

파고들어온 혀는 움찔 도망치려하는 혀를 잡아채 뽑힐 듯 빨아 올렸다. 

그 힘에 혀와 입술을 온통 타액으로 적신 채 녀석의 힘에 굴복해 가고 있었다. 

격렬했던 키스가 한바탕 끝이 나고 현준이 내 몸을 사정없이 끌어안았다. 

나보다 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날 품에 안은 현준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내가 놀라던 말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내며 말하고 있었다. 

“절대 널 그따위 꼬마한테 주지 않겠어..”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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