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니 눈이 새빨갛다.
잠을 자지 않고 새벽 3시가 넘도록 소파에 주저앉아 있다보니 다리도 조금 쑤셨고
허리도 찌뿌듯했다.
그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계만을 쳐다보며, 일 초 일 초 새겨 보며 주환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새벽 3시 10분...
여전히 오지 않는다.
평소였다면 12시전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을 나였지만,
그걸 버티며 아무것도 안한 채 앉아 있다보니 서서히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눈은 감기려 하고 있었고, 그 것을 오기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흔들-’
몸이 흔들리고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잠을 자다 놀라 일어나 보니 소파에 누워 있었다.
앉아서 깜빡 잠에 들었다가 기울어지면서 누워진 것 같았다.
약하게 햇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6시..
주환이의 흔적은 없었다.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러 머리 아픈 걸 진정시킨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갔다.
냉수로 샤워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촤르륵 쏟아지는 물줄기의 서늘함에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잠시 뜨거운 몸을 식힌 뒤 온몸에 비누칠을 했다.
습관처럼 몸을 문지른 뒤 다시 찬물을 끝까지 틀어 머리 위로 쏟아지게 했다.
따갑게 어깨로 가슴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계속 맞고 있었다.
“어이, 우리 나가서 점심 먹을까?”
“넌 낮에는 할 일 없냐?”
“많지만 너를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거야. 같이 가서 맛있는 것 먹자. 응? 알았지?
지금 데리러 와. 차 끌고 00호텔 앞으로. 당장..!“
녀석의 일방적인 전화에 눈살을 찌푸린 뒤 달칵하고 끊긴 전화를 멍하니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옷을 입었다.
아무 옷이나 걸친 뒤 조금 전까지 젖어 있었던 머리를 빗어 넘겼다.
가는 머리카락이 정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키를 집어 들고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나도 이 집에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 오늘은 날씨 좋다. 자, 얼른 운전해. 00동 은소반이라고 알아?”
“몰라”
“내가 가면서 얘기해 줄 테니까 우선 차 몰아”
녀석의 말에 시동이 걸린 차를 출발시켰다.
아무런 투덜거림 없이 녀석의 말대로 행동하자 녀석이 이상한 듯 내 이마를 짚어본다.
그리고 열은 없는데...라고 중얼중얼 거리며 그 또한 아무런 반항 없이 받는 내가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 앞만 쳐다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니, 뭔가 다른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녀석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야, 너 서방 말이야... 어제 보니까 연수씨랑 내가 묵는 호텔에 들어오더라...?”
“...?!”
그 말에 그대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끼익 하고 세워지자 녀석이 놀랐는지 숨을 집어삼켰고 난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내 눈빛이 녀석을 사납게 쏘아보자 냉소적인 눈웃음을 치며 내 손을 탁 밀친다.
“하여간.. 성질 하나는 알아줘야 돼..”
“..... 당장 다시 말해 봐..!! 뭐? 어딜 둘이 들어갔다고???”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다른 방.. 이라고 말해야 하나...”
“....................... 젠장.!!!!”
난 녀석의 멱살을 놓고 그대로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주먹을 쥔 채 운전대를 몇 번 때리자 감은 눈가로 서러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아친다.
내 행동을 묵묵히 보던 녀석이 내 머리를 끌어갔다.
조용히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녀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해준 녀석은
내가 울분에 몸을 부들부들 떨자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다.
“연수씨랑 그 꼬마랑 무슨 관계냐?”
“...........................주환이가 그녀를 좋아한다..”
“오호.. 멋진 일이군...”
“... 장난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야... 사전조사를 철저히 했다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
조금 진정이 된 난 녀석의 손을 휙 밀치고 운전석에 기대듯 앉았다.
눈을 감고 말하자 녀석이 훗하고 웃는다.
“물론 다 알고 있지. 그치만 그건 내가 몰랐던 사실인 걸~”
“.... ......내가 주환이한테 한 달 동안 같이 살자고 했어..”
“그래서?”
“아내를 주겠다고 조건을 걸었어. 연수를 사랑하니까.. 연수를 주겠다고..
그러면 너를 나한테 주겠냐고.. 그러면 한 달 동안 나와 생활하자고..
날 안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다..“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한 현준이는 그 말에 이를 바드득 갈아댄다.
잠시 후 주먹 쥔 내 손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녀석이 꽉 잡았다.
아픔에 잔뜩 찡그리고 쳐다보자 녀석이 아무런 표정 없이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쥐었다.
“뭐하는 거야, 변태 새끼야!!”
“너.. 너가 그렇게 자존심 없는 인간이었냐?”
“.........”
“그깟 꼬마 새끼 하나 때문에 너가 .. 안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점점 더 험악해지는 손아귀의 힘에 턱과 손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손을 펴서 거부하고 싶었지만 손은 너무나 꽉 쥐여져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턱을 붙잡은 힘이 잠시 약해지더니 그대로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거세게 잡혀져 앞으로 고개를 숙여지게 된 내 이마 위로 녀석의 입술이 느껴졌다.
입술을 붙인 채로 현준은 감정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따위 자식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냐...
널 싫어하는 녀석한테.. 왜.....“
“널 이렇게나 사랑하는 놈이 떡하니 옆에 버티고 있는데...
바보 같은 새끼.. 이상한 쪽으로만 둔해빠진 새끼... 내가 참고 또 참았는데..
남자 새끼한테 그따위 짓을 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절대...!!“
사납게 중얼중얼 내 얼굴에 입술을 대고 말하던 녀석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입술을 거칠게 막아 버렸다.
놀라서 휘둥그레진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하는 눈동자...
격렬한 폭풍이 치는 듯 일그러진 채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녀석의 눈동자는 처음이라 얼이 빠져 녀석의 키스를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물론 녀석의 말을 한 자도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혀가 거칠게 파고들어온다.
파고들어온 혀는 움찔 도망치려하는 혀를 잡아채 뽑힐 듯 빨아 올렸다.
그 힘에 혀와 입술을 온통 타액으로 적신 채 녀석의 힘에 굴복해 가고 있었다.
격렬했던 키스가 한바탕 끝이 나고 현준이 내 몸을 사정없이 끌어안았다.
나보다 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날 품에 안은 현준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내가 놀라던 말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내며 말하고 있었다.
“절대 널 그따위 꼬마한테 주지 않겠어..”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