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56)

‘텅텅-! 쾅쾅쾅-!!’ 

잠 속에서 헤매는 귀 속으로 엄청난 소음이 파고들었다. 

눈을 찡그린 채 잠을 계속 청하려 했지만 이런 몰상식한 소음을 내는 인간에게 

화가 끓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으로 한 달음에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누가 아침부터 문을 이렇게 두드리는 거야!!!!!” 

“................ 오호, 좋은 거 봤다..” 

능글맞은 웃음을 띄우며 악마 새끼가 내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었다. 

오늘도 또한 진우의 일과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화난 상태로 달려 나왔기에 온몸은 

갑작스런 추위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악마 녀석의 시선도 한몫 했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아침부터 왜 소란을 떠는 거야.. 널 기다리는 떡대가 많다며..!!! 

왜 아침부터 와서 난리를 치는 거냐..!!!“ 

“.... 이게 혼자 심심할까봐 와줬더니 욕을 하네...” 

드러난 내 어깨 위로 팔을 올린 악마는 그대로 거실로 날 이끌었다. 

이끌려서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고, 악마 녀석은 싱글거리며 내 몸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조용히 녀석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앗! 키스마크 발견!!!!!” 

“........?! 키스마크 따위 안 만들었다...” 

“..................... 오, 그 녀석 신기한 녀석일세...” 

호들갑을 떨며 내 등에 딱 달라붙은 녀석은 그대로 등의 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쓰다듬으며 

중얼중얼 거렸다. 

난 주환이가 키스마크를 만드는 걸 본 적이 없었으므로 무슨 농담을 하느냔 식으로 쳐다봤다. 

게다가 등이라니.. 난 그런 것.. 

“안 보이는 데다 이런 걸 만들면 안 되지~~~ 디게 이쁘다, 야... 나도 여기다 하나 

만들어도 될까?“ 

“..저리 꺼져!!! 변태 새끼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등을 힘껏 빨아들이는 녀석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썼다. 

날개뼈 부분을 한참 빨아들이던 녀석이 만족의 웃음을 지으며 날 올려다봤다. 

확 패버릴까 하는 유혹이 강하게 들었지만 참고 물었다. 

“정말로 거기에 키스마크가 있단 말이야?” 

“.............. 큭큭.. 그럼 내가 거짓말 치냐? 보여줘? 보여줘?” 

녀석의 말이 의심쩍어 계속 묻는 나에게 녀석은 보여준다며 거울 두 개를 꺼내왔다. 

난 그런 걸 느낀 적도 없었고, 하는 걸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나한테 그런 걸 만들 이유도 없기에 궁금한 마음이 들어 녀석을 말리지 않았다. 

앞뒤로 거울을 갖다댄 녀석에 의해 등이 보였고, 

갑작스레 진한 붉은 빛이 눈에 띄었다. 

“어, 그건 내가 만든 거다.. 그 옆에 꺼..” 

“.......... 재수 없어..” 

내 말에 인상을 팍 쓰던 그가 옆으로 거울을 돌려 다른 걸 보여주었다. 

등의 한 가운데보다 좀 올라온 곳에 아까 것보다 더 붉은.. 동그랗게 새겨진 것이 보였다. 

점점이 붉은 빛을 띄는 그 것은 악마 말대로 예쁘게도 새겨져 있었다. 

“.. 정말 예쁘네.. 근데 이거 누가 만든 거야? 난 모르는 일인데...” 

“너 정말 바보냐?! 딱 보니 어제 만든 거구만..” 

녀석의 말에 수긍할 수 없는 이유는.. 

어제 욕실에서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한 뒤 침대에 그냥 엎어져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탈진한 몸을 이끌고 나와 침대를 봤을 때 녀석은 이미 소파에서 잠들었는지 없는 상태였고, 

난 나 혼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누가 내 등에 키스마크를 만든단 말인가... 

“우리 방에 귀신이 있나...” 

“......... 켁.. 너 정말 띨띨함의 극치를 달리는구나... 어쨌든 눈보신 실컷 했으니 

내가 세우기 전에 옷이나 입지 그러냐...?“ 

“... 뭘 세운다고?” 

한참 그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하던 난 녀석의 말에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넌 사랑하면 멍청해지는 타입이구나...?” 

“..... 뭐라고?!” 

“어쨌든 옷이나 입어라.. 그리고 나 밥 줘.. 어제 가져간 거 떡대 녀석이랑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어... 너무 맛있어서 싸우면서 먹었다니까..“ 

한 대 패려다 타이밍을 놓친 난 그대로 악마에 의해 방으로 떠밀려졌다. 

방에 들어와 옷을 입으면서도 키스마크에 대한 의문에서 풀려날 수가 없었다. 

옷을 후다닥 다 갈아입고 다시 거실로 나와 악마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너가 어제 새벽에 만든 거 아냐? 내 가슴 갖고 놀았잖아?” 

“진짜 바보 같은 짓 좀 그만 해라. 어?! 밥이나 차려!!!!” 

정말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주방으로 들어가 밥을 차렸다. 

오늘은 허리 아픈 걸 느낄 새도 없었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점점 더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악마와 하루 종일 씨름을 했다. 

입씨름, 몸씨름..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난 저녁이 되자 완전히 탈진을 해 버렸다. 

내일은 오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고, 그대로 녀석을 내쫓았다. 

떡대와 약속이 있다며 부리나케 나가는 녀석... 

녀석에게 바리바리 싸준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들... 

달랑달랑 신나게 달려가던 녀석이 다시 돌아와 현관에 서 있는 나에게 달라붙었다. 

“혀어엉~~ 잊은 거 없어? 응? 얼른 얼른~ 요~기다가 쪽~해줘야지~” 

눈빛만은 위협적으로 빛내며 내게 볼을 내민다. 

하지만 곧 방긋- 내 최대의 약점, 녀석의 미소를 이용해 굴복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볼 거라는 위험한 생각과는 달리 몸은 움직여 현관문 앞에서 녀석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아니, 하려고 했다. 

입술을 가져간 순간, 녀석이 갑작스레 고개를 휙하고 돌려 버린 것이었다. 

돌려진 곳은 입술이었고, 내 입술은 악마의 입술에 안착했다. 

그대로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굉장한 쇼크에 빠져 허우적대는 날 버려둔 채 녀석은 엘리베이터로 가서 여유만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까 달려갔을 때 엘리베이터를 눌러뒀던지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타려는 녀석 뒤로 얼핏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다. 

낯익은 그림자였지만, 화가 난데다가 소름이 돋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히 판가름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탄 녀석은 싱긋거리며 문을 닫았다. 

내려가는 걸 보던 난 얼른 문 안으로 들어왔다. 

“왔어? 오늘도 많이 추웠지? 벌써 겨울이 오는가 보다.. 응?” 

내 말에도 대꾸 없이 평소보다 더 싸늘한 발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지른다. 

어제 내 행동이 많이 거슬렸나보다.. 라고 생각을 했지만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건 힘이 드는 일이었다. 

악마의 말대로 내가 정말 바보가 된 것 같다. 

처음 하는 일에 무지한 바보 말이다... 

주환이 욕실에서 나오기 전에 밥을 차릴 생각으로 얼른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주섬주섬 아까 녀석을 챙겨주면서 나눠두었던 반찬들과 찌개들을 식탁에 차렸다. 

손놀림을 차츰 빨리하고 있는 도중 주환이 욕실에서 나왔다. 

주방으로 오지 않고 거실로 향하는 그... 

당황해서 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밥 안 먹을 거야? 어디서 먹고 왔니?” 

“지금 또 나갈 거야. 신경 쓰지 마” 

“.. 아, 친구들이랑 만나는가 보구나..? 술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됐어. 연수누나[현조 부인이었던 여인 이름..]랑 식사하기로 했어.” 

“.........” 

“너 혼자 먹어.” 

“.......아, 그러냐.. 알았다. 그럼 몇 시에 올 거지?” 

“기다리지 마” 

그리고는 머리를 털며 말리던 그는 수건으로 툭툭 털어내며 방으로 다시 걸어갔다. 

사라지자마자 멍하게 서 있던 발걸음을 주방으로 돌렸다.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다. 

나와 같이 식사를 하고, 나와 같이 침대에서 잠을 자자고... 가지 말고... 

가지 말고.. 나와 같이... 

머리가 점점 아파온다. 

깨질 것처럼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찌개가 싸늘히 식어가는 게 보인다. 

그와 함께 그의 향수 냄새가 후각으로 스며들었다. 

시선을 들자 정장으로 한껏 멋을 낸 그가 현관문에 서서 구두칼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반짝 윤이 나게 닦여진 구두.. 

주름이 반듯이 잡힌 정장.. 

향수 냄새.. 잘 생기고 훤한 마스크... 

아무 말도 없이 현관을 나선다. 

난 배웅할 생각도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아 그를 볼 뿐이었다. 

눈이 새빨개지고 열이 올랐다. 

얼굴에서 열이 나는 듯 화끈화끈 거린다. 

점차 그 느낌이 증가되어 온몸이 화끈거렸다. 

뜨거운 느낌에 식탁 위에 올려진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뭐든 쥐어 패고 싶은 심정... 

다 부수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쏘아 보았다. 

결국 내 풀에 지쳐 그대로 소파에 털썩 누워 버렸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가 오면 평소의 나처럼.. 그래.. 그냥 나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그를 향해 웃고..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말을 거는 나.. 

점점 그녀와 잘 되 가고 있으니 행운을 빈다고 속삭여줄 수 있는 거만한 나.. 

한 달 동안은 내게만 충실하라고 고집하는 냉정한 나... 

하지만 그가 보지 않는 지금은 이대로 쓰러져 있고 싶다. 

눈을 감고 눈물이 맺히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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