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56)

‘퍽퍽퍽!!!! 쾅쾅쾅!!!!!!’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머릿속까지 울리는 큰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니..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다... 

게다가 그 소리에 합세해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 

눈을 크게 뜨고 얼른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커다란 몸집이 쾅 하고 현관문을 밀어 젖히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날 보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위아래로 눈동자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이 무식한 자식아!!! 너 여기 나 혼자 사는 줄 알아??!!! 

옆 호에서 얼마나 시끄럽겠어! 이 얼간이 같은 자식아!!!!!!!!!!!!!!!!!!!!!!!!!!!!!!“ 

내가 화를 냄에도 불구하고 무대포이자 다혈질인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내 몸만 쳐다보고 

있다. 그 눈을 따라가 보자니 내 몸.. 알몸인 내 몸 이었다. 

그걸 알아챈 나는 그의 놀란 얼굴이 너무 귀여워져서 싱글싱글 웃었다. 

“아잉, 자기~ 맨날 봐놓고 뭘 그렇게 놀라~~~” 

그리고 그에게 몸을 붙이자마자 또 놀라고 말았다. 

이 장정인 녀석 뒤로 비디오 가게 주인이 떡하니 서 있었다. 

게다가 놀란 눈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더듬더듬 말까지 더듬는다. 

“..저,저기..지.... 진우야.. 나, 가.... 갈께..... 이런 사이인 줄 모르고... 죄..죄송합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뒤로 돈다. 

난 굳어 있는 진우 녀석을 흔들어 댔다. 

녀석이 곧 얼굴을 활활 불태우며 날 노려본다. 

그러다가 재빨리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치고는 뒤로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비디오 가게 

주인을 잡는다. 

내 예상대로 그는 진우의 친구인 것 같다... 

“야, 저 자식이 장난치는 거니까 들어가.. 가긴 어딜 가.. 소개시켜 줄게” 

“..푸풋... 푸하하하하핫...” 

그 자리에서 그렇게 호쾌하게 웃어 젖히고 말았다. 

그 둘의 모습이 쌍둥이처럼 꼭 닮아 있었던 것이다. 

곰 두 마리라니.. 너무나 귀여운 테디 베어가 생각나 몸이 움찔 달아오른다. 

놀리는 재미가 두 배로 늘어난 것 같다... 

내 웃음에 얼굴을 찡그리는 폼까지 완전 붕어빵이다... 

몸을 빙그르 돌려 거실로 들어가 웃음이 멈추지 않는 배를 얼싸안고 소파를 뒹굴었다. 

미친놈처럼 쳐다보든 말든... 

“음.. 그럼 친구니까 말 놓자..” 

비디오 가게 주인의 이름은 박명호였고, 나이도 동갑으로 꽤나 귀여운 성격이었다. 

내 말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진우를 쳐다보는 폼이 너무 귀엽다... 

속으로만 웃고 진우 녀석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아까 내가 알몸으로 문을 열은 게 기분이 많이 나쁜지 날 노려보는 녀석... 

싱글싱글 웃음을 띄우자 더욱 얼굴을 굳힌다. 

들어오자마자 질색을 하며 옷을 입으라는 녀석에게 등을 떠밀려 방으로 들어가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나였다. 

그리고 차를 내오자 맛있게 홀짝이면서도 날 노려보는 녀석... 

“명호야, 진우랑 농구 같이 했었다며? 그래서 그렇게 키가 크구나...” 

그런 진우를 무시하고 명호와 대화를 나누는 나... 

역시 진우 놀리는 재미에 사는 나였다. 

셋이서 재잘재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밥 지을 시간.... 

“애완동물 밥해야 되는데....” 

“뭔 애완동물이 밥을 해서 줘야 먹냐? 사료 먹여!” 

진우가 내 말에 버럭 화를 낸다. 

그리고 애완동물이 어디 있나 찾는 눈치다. 

당연히 없을 텐데, 이 집에 들어와서부터 한 번도 못 봤으면서도 찾는 게 너무 귀엽다... 

곰 두 마리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찾는 게 귀여워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둘의 몸을 일으켰다. 

몸은 커다래서 몸무게도 엄청 나가는지 기를 써서 일으켜 세웠다. 

“얼른 가라, 애완동물 올 시간이야” 

“.... 보고 가면 안 되냐?? 오늘 밤까지 명호랑 같이 여기서 술 마시려고 온 건데..?” 

“.................... 흠..........조금 땡기네..” 

사실 요새 술을 전혀 먹지 않았기에 술이 고픈 것도 사실이었다.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녀석을 쳐다보니 녀석이 가서 술을 사온다며 코트를 챙겨 입는다. 

명호는 멀뚱히 서서 진우 녀석을 쳐다보고 있다. 

난 주환이가 오면 불편해 할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진우 녀석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어깨를 달싹거리다가 소파에 다시 앉았다. 

명호를 보며 옆 자리를 툭툭 두드리자 훈련 잘 된 사나운 명견마냥 옆에 와서 앉는다. 

둘이서 한 참 TV를 보고 있었다. 

‘철컥’ 

문 열리는 소리에 보니 주환이가 들어오고 있다. 

들어오자마자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 

그러다 TV 소리를 들었는지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날 보다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명호를 쳐다본다. 

놀란 듯 보더니 날 다시 쳐다본다. 

“왔어? 내 친구야, 인사해..” 

“...............” 

말 없이 서 있는 그... 

인상 쓰는 걸 보니 굉장히 싫은 기색이다. 

내가 어색하게 웃자 그가 더욱 인상을 쓴다. 

그러다가 방으로 휙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려다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다시 몸을 돌렸다. 

진우가 들어오며 입김을 후후 불고 있다. 

“아, 오늘 엄청 춥네. 가을 날씨가 뭐 이러냐...” 

“사올 거 없어서 아무거나 사 왔으니까 잔말 말고 먹어라..”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고는 날 끌고 거실 방바닥에 앉아 봉다리를 주섬주섬 끄른다. 

그리고 방문에서 나오는 주환이를 보고 놀라는 눈치... 

주환이가 마치 자기 집인 양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폼을 보고는 더 놀란다. 

나도 좀 놀랐으므로 얼떨떨하게 쳐다보다가 주환이에게 걸어갔다. 

“너도 술 마실래? 오랜만에 술이나 마시자길래 그냥 놔뒀지...같이 마시자.. 

저녁 안 먹었지?“ 

“먹었어. 그리고 술 안 먹어.. 너나 실컷 먹어..” 

“아, 그러지 말고 같이 마시자~~ 응?” 

내가 그의 옆에 앉아 팔에 매달리자 그가 휙 하니 내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욕을 할 것 같은 얼굴로 날 노려보다가 입을 다문다. 

거실에 앉은 곰 두 마리를 천천히 돌아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읽던 책을 소파에 휙 던지고는 다시 코트를 주섬주섬 입는다. 

코트를 입은 그는 아무 말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난 소파에 앉아 그냥 그를 쳐다만 봤다. 

그가 나간 뒤 곰 두 마리에게 다가가 앉자마자 진우가 화가 난 얼굴로 날 다그친다. 

“뭐야?! 저 싸가지 없는 새끼는?! 

우리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구만 왜 너한테 반말 짓거리야?? 누구냐, 저 새끼“ 

“.. 내가 말한 애완동물인데..?” 

싱글거리며 말하자 진우가 날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린다. 

“너 진짜 미친 거야?! 저 새끼 누구냐고!!!!!!!!!!!!!!!” 

“................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 

내 말에 갑작스런 정적이 흐른다. 

명호 또한 놀랐는지 내 말에 날 훑어본다. 

“....... 단단히 미쳤구나.........” 

숨소리가 거친 진우가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코트를 입는다. 

그리고는 말없이 현관을 나선다. 

날 죽어라 팰 줄 알았으므로 황당한 기분으로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명호를 보니 그 또한 일어나려 한다. 

난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야, 너도 가면 안 되지.. 나랑 술 마셔야지~~~” 

지금 있던 일을 몽땅 본 명호는 내 얼굴 표정이 이상한지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긴, 기분 좋게 웃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 마시자~~” 

그의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주고는 내 술잔에도 가득 부었다. 

억지로 건배를 시키고 한 입에 다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가 목구멍을 꿀꺽 넘어간다. 

“캬아~~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죽이는구만, 진우 이 자식이 내 취향은 또 정확하게 

꿰뚫어서 안주도 맛있는 걸 사왔을 텐데... 음.. 좋지~~ 명호 너도 이거 좋아하냐?“ 

쾌활하게 말하는 날 또 힐끔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로 남자를 사랑하는 거냐?” 

쿡쿡.. 난 그의 터프한 말투에 웃음을 터뜨렸다. 

날 보면서 얼어있던 그와, 정중하던 말투와, 지금의 터프한 말투... 

그 중 지금 모습이 제일 그와 어울리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단호한 그의 모습이 너무나 그와 잘 어울려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할 정도로 그는 과감한 성격이 분명했다. 

나도 그에 못지않는 과감한 성격이었기에 대답을 해 주었다. 

예스라고... 

그 말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처음 보는 그의 진심어린 미소에 좀 놀라서 쳐다보았다. 

굉장한 미남이다.. 

무뚝뚝할 때는 몰랐는데 웃고 나니 굉장한 미남... 

눈꼬리가 눈웃음을 치며 내려오는 모양이 여자 꽤나 울릴 팔자다... 

턱을 궤고 그를 쳐다보다가 왜 웃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나도 남자를 사랑하거든” 

“켁..!!!” 

소주를 한 잔 벌컥 마시던 난 놀라서 사레가 들렸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날 보며 더 진한 미소를 짓더니 방바닥에 있는 티슈를 꺼내 내 입가를 

닦아준다. 

“아직은 내 사랑을 받아주는 상대가 없지만 남자밖에 사랑할 수 없는 몸이다..” 

무뚝뚝한 말투.... 

“아까 보니까 니가 사랑한다던 사람은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던데... 

잘 되길 빈다.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는지도 좀 궁금하다.. 

이혼한지 얼마 안 됐다고 진우한테 들었는데...“ 

“....... 아.. ...주환이는 내 아내를 사랑해..” 

아, 이런 말까지 꺼내다니.. 내 자신에 엄청 놀라 버렸다. 

비디오 가게 주인으로서 그를 보긴 했었지만, 말을 트게 된 건 지금이 처음인데 

난 자연스럽게 그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고 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곰이다... 

재주 있는 곰은 동물원에 가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눈을 쳐다보자니 눈동자가 굉장히 진실하다... 

그의 진실함에 이런 말을 털어놓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술을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 가슴 아픔에 대해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해 주었다. 

처음으로 남 앞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게 된 나는 조금 어색했지만 그의 편안함에 

끌려 모두 털어놓고 말았다. 

끝내는 울었던 것도 같지만, 그건 기억 안 나는 걸로 치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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