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56)

‘뚜르르르-’ 

핸드폰이 울린다. 

오후3시... 

그가 할 일은 없을 텐데.. 핸드폰이 울리는 게 이상하다 싶어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액정에 뜨는 화면은 처음 보는 번호... 

난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엉덩이가 쑤시는 데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가져다 받았다. 

받자마자 정중한 목소리가 들린다. 

왠지 낯이 익은 정중한 목소리... 

조금 생각을 하다보니, 

“비디오 가게입니다.” 

라고 답을 준다. 

난 그제야 아.. 라고 대답하고는 무슨 일이냐고 의아하게 물었다. 

비디오 테잎을 가져다주지 않은 것 때문일 텐데도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 그렇게 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뻔뻔한 것 같다. 

“어제 그저께 빌리신 비디오 테잎 때문에 전화 드린 건데요.. 

예정대로라면 어제 반납하셨어야 하는데, 아직 반납이 안 되어서요.“ 

너무 정중한 말투.. 

조금 질려 버려서 지금 가져다준다고 그대로 말해 버렸다. 

엉덩이와 허리가 이렇게나 아픈 놈이 행여나 잘 가져다주겠다. 라고 속으로 또 중얼거렸다. 

내 말에 그 쪽에서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조폭같은 그의 얼굴과 몸집을 생각해 보면서 그 말투를 듣자니 너무 안 어울려서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아,허리야... 미치겠군...” 

투덜투덜, 발걸음 소리도 축 처져서 들리는 게 기분이 영 안 좋다. 

어제는 그렇게 하루 종일 누워 있었으니 오늘 부작용쯤이야 알았건만... 

이렇게 테잎까지 반납해야 하는 내 신세는 나를 좀 처량하게 한다. 

이런 평일 날, 집에서 노는 나를 비디오 가게 주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실직자 정도로 생각하겠지.. 

피식거리며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디오 가게 문에 붙었던, 반납이 늦었을 시에 붙는 벌금을 내기 위해서.. 

들어가자 정중한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어서 오십시오” 

뭔가 비디오 가게 주인이 하는 말과는 조금 동떨어진 말 같이 들리는 그의 말투에 

피식피식 웃음이 자꾸 나온다. 

그의 언발란스함에 처음에 들었던 공포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 그를 볼 때의 느낌은 너무 웃긴다 정도였다. 

테잎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의자에 앉아서 위협적인 키는 조금 커버가 되는 듯 보인다. 

나도 정말 큰 키라고 생각했었건만, 조금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몸집도 나보다 훨 크니까 말이다. 

“벌금이 있습니다만” 

“아,네..얼마죠?” 

“500원만 주시면 되는데요...” 

흠... 그 정도의 벌금을 받으면.. 비디오 가게의 매상에 영향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런 가게 해서 한달에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까..등등을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짤랑이며 

거슬리던 동전을 꺼내었다. 

다행이 그 속에 500원짜리가 있었기에 그 돈을 그의 손에 올려놓고는 미소를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사정이 있으면 늦을 수도 있죠.. 다음에 또 오시면 하루,이틀 늦으시는 건 

벌금같은 것 안 받으니까 많이 오세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고개를 꾸벅하고 돌아서자 그가 미소를 짓는다. 

어색한 미소에 저절로 웃음이 나와서 마주 미소를 지어주었다. 

비디오 가게 주인은 너무 웃긴다. 

‘후루룩-’ 

음.. 조금 짠가..? 

찌개 맛을 보던 나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입맛이 써서 그런지 음식의 맛을 알 수가 없었다. 

신경 써서 음식을 하려고 했건만, 피곤하다고 외치는 몸은 미각 따위 모르겠다는 듯 

협조를 안 해주는 것이다. 

잔뜩 신경을 쓰다보니 칼에 손가락까지 베였다. 

혼자 살기 시작하고부터 손가락에 상처 따위 내지 않았었건만, 오늘 난 상처에 

조금 화가 났다. 손을 입에 물고 아까운 피를 핥아먹다가 구급상자 통을 열었다. 

침을 묻혔으니 소독은 생략하고 밴드만 간단히 붙였다.[컥..;-작가]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아까 비디오가게에 갔다가 시장에 들러 사온 재료들로 

이것저것 다시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밑반찬이란 것은 굉장히 까다로워서.. 한 번 만들고 나면 보람이 넘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제일 생각 없이 먹는 것임에도 만들기 전에는 뭘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 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에 더욱 짜증이 났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거겠지.. 

지쳐서 자고 싶다.. 

밑반찬을 다 만들고 보니 저녁 6시다. 

두 시간을 꼬박 만들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흐른다. 

침대에는 어제 더럽혀 놓은 시트가 있다는 생각에 다시금 아찔해졌다. 

음식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엉망인 데다가 냄새가 나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시트를 욕실에 휙 던졌다. 

옷장을 열고 새 시트를 하나 꺼내어 탁탁 털어내고 침대 위에 덮었다. 

지금은 시트를 빨 힘이 없으니 나중에 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트를 옆으로 잘 치워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지냈다는 생각에 주부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고, 

왜 위험한 채팅에 빠져드는지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을 하게 된다. 

이따위 것을 생각하는 지금도 내 자신이 한심하다.. 

저녁 7시.. 

그가 올 시간인데 아직 오질 않는다. 

이 시간까지 뭘 할까 하는 생각에 조금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저녁 8시가 되니 차츰 걱정이 된다. 

뭔가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야금야금 머리를 파고든다. 

저녁 9시... 

여전히 오지 않는 그.. 

일부러 피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다. 

어린애도 아닌데.. 이런 걱정을 하는 게 그에게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그를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위안을 한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보니 밤10시가 되어 버렸다. 

포기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두었던 그릇들을 랩으로 씌워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주방을 치우고 거실에만 불을 켜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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