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56)

“저녁 먹어, 어떻게 넌 하루 종일 책만 읽냐?!” 

“시끄러워, 잔소리 하지 마.. 니랑 같이 사는 한 달 동안 나한테 잔소리 하면 나이고 뭐고 

상관없이 패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저녁 7시.. 

첫 날이 어이없이 저물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그의 생각만 하던 나는 

그를 위해 저녁을 지었다. 

저녁을 하면서도 내가 좀 웃긴다는 생각을 했고, 그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마누라 같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는 하루 종일 내가 들어가서 책을 보라고 한 이후로 침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저녁을 먹으라고 해서야 겨우 나와서는 저렇게 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겨우 억누르고는 식탁을 차렸다. 

가만히 앉아 밥 주기를 기다리는 그는 귀여운 강아지 같다. 

그 모습을 보자 저절로 마음이 풀어져 헤벌쭉 미소가 베어 나온다. 

“자꾸 내 얼굴 보면서 미친 것처럼 웃지 좀 마.. 정 떨어지는 얼굴이니까..” 

톡톡 쏘아대는 그.. 

밥을 놔주자 숟가락을 들고 조용히 밥을 먹는다. 

나도 밥을 퍼서 그의 맞은편에 앉아 그를 따라 조용히 밥을 퍼먹었다. 

아침과 같이 밥맛은 무척 달다. 

그와 생활하는 한 달 동안 계속 이렇게 밥맛이 있겠지..? 

“더 줄까?” 

“안 먹어, 더 먹으면 토할 것 같애..” 

“왜? 맛없어?” 

“.. ... 멍청이..” 

또 투덜거리더니 내 얼굴을 확 째려보고는 거실로 나선다. 

그의 뒷모습에 식탁에서 일어나 그릇을 정리했다. 

식기세척기에 그릇들을 담고 식탁을 닦고 아침에 샀던 과일을 들고 거실로 나섰다. 

벌써 귤이 나와서 굉장히 맛있어 보이 길래 조금 샀었다. 

귤을 갖고 나가자 이번에는 다른 책을 들고 읽고 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다. 

몸집도 큰 그가 쪼그리고 앉아 다리에 책을 올리고 있는 폼이 곰을 연상시킨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쭉 뻗은 다리.. 

곰 보다는 표범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는 ... 

“자, 귤 먹어.” 

“...” 

아무 말도 없이 그가 슥 쳐다보더니 하나를 가져가 반을 뚝 자르더니 반 중의 하나를 

껍질을 깐다. 까서는 통째로 한 입에 다 넣어 씹어 먹는다. 

너무나 무식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입가에 흘러내리는 과즙이 섹시해 

보이기도 한다. 저 것은 과연 어떤 맛일까... 

그의 타액처럼 달콤할까. 새콤할까.. 

그가 다섯 개를 아작 낼 때까지 단 하나의 귤도 먹지 못한 나는 그저 멍하니 그가 먹는 

모양을 쳐다볼 뿐이었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너 미쳤어?” 

그런 나를 보다 못한 그가 어이없다는 투로 묻는다. 

입술에서 약하게 흐르는 과즙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멍하니 시선을 올려 그의 눈과 마주쳤다. 

“미쳤군, 미쳤어.. 완전히 맛이 갔군... 지금 니 눈 완전히 풀린 거 아냐?” 

“.. 후우... 미안..”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사과를 했다. 

가만히 앉아 그를 멍하니 쳐다본 것은 왠지.. 변태짓거리 같았기에... 

그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으로 날 노려보더니 먹던 귤을 그릇에 냅다 던진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던 그는.. 욕실 문을 붙잡고 내게로 몸을 돌려 톡 쏘아붙인다. 

“내가 먼저 씻는다.. 얼른 해치우고 말자고..” 

그리고는.. 욕실 문이 쾅..하고 닫혔다. 

잠시 후, 멍해 있는 머리 속으로 샤워의 물줄기 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과 젖은 몸을 보며 욕실에 들어와 떨리는 손으로 옷을 벗고 

샤워 아래에 섰다.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다.. 

자신은 어떠한 여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서른한 살이 된 이 나이까지 여자라면 질릴 만큼 안아봤었다. 

아내와 결혼한 뒤에도 시시때때로 밖으로 나와 여자들을 안았었으며, 그 어떤 여자도 

나에게 육체적 흥분 말고는 주지를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떨리는 손가락은.. 감정을 주체 하지 못해 떨리고 있는 것이다. 

감정.. 섹스에 감정이 섞인다. 

그것은 섹스라고 부를 수 없는 것.. 

사랑을 나누다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그런.. 감정적 공유... 

그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사랑을 나누는 그와의 교감 어린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떨리는 내 손이 말해주며, 긴장된 내 몸이 말해준다. 

지금.. 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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