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56)

“허유.. 잔돈 받아가야지, 총각..!~” 

뒤에서 아주머니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댄다. 

아파트 근처에 시장 통이 있기에 한 번 와봤는데.. 새벽시장이라 굉장히 싱싱하고 야채도 

많이 늘어져 있었다. 

사실 대형 마트 같은 것이 나에겐 어울린다고 모두들 여길지 모르나 난 시장이 좋다. 

모두가 사는 듯한 냄새가 나는.. 싱싱함과 쾌활함,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뭔가 살아있다는 떠들썩함.. 그 것이 좋았다. 

저렇게 더러워진 옷을 입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동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이었고, 나 또한 그들을 본받고 싶었다. 

지금도 또한 야채를 10000원 조금 넘게 사고는 아주머니에게 20000원을 드렸다. 

아주머니의 거스름돈을 주려는 손에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가 두툼히 뭉쳐져 있다. 

그 걸 무시하고는 이렇게 야채만 들고 걸어오는 중이다. 

뒤에서 소리를 질러 이목을 집중 시키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야채만 산 것이 생각나 근처에 있는 생선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 

생선을 조금 샀다. 

여전히 거스름돈은 거스르지 않은 채 또 시장 통을 걸어 나왔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아주머니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족하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불우 이웃에게 봉사하는 사람 또한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완전한 천사표 

사람이란 없다. 그 것을 알기에 난 만족도 없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내가 지금 행한 행위도 절대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이다.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맑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즐겁게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가슴이 텅 비어 조금 썰렁할 정도로 붕 떠 있다. 

이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응어리도 아니요, 그렇다고 뭔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크게 부풀어진 공간에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는 가슴의 설렘... 

생소하기에 더욱 즐겁다.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리며 흘러나온다. 

도마 소리에 리듬감마저 실린다. 

찌개가 끓고 있는 요란한 소리도 들리고, 주방 안에는 살아있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살아있다는 느낌... 내가 제일로 소중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는 기분이다. 

찌개를 끓여 불을 꺼놓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그가 도착한 것이다. 

이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하라고 했었기에.. 

사생활 전화인 그 핸드폰만 켜놓고 있었기에 그의 전화가 확실하다. 

물이 묻은 손을 수건으로 닦고 전화를 받아 들었다. 

“지금 다 왔으니까 나와” 

여전히 반말.. 

이제는 존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끼는 건지 어느새 자연스럽게 반말을 한다. 

난 물론 그 것이 좋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반말을 받는 기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열 받을 일이지만.. 쿡쿡.. 

그가 하기에 기분이 좋다. 

“알았어. 00아파트 입구에 와 있어.” 

“....미친 자식..” 

또 투덜거리며 전화를 뚝 하고 끊어버린다. 

그를 만날 적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는 욕이 잦다. 

하긴, 내가 그를 화나게 하는 일이 많으니, 하지만 나는 그가 화내는 게 좋다. 

유일한 감정 표현... 

난 재빨리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가을이라 조금 싸늘한 날씨였기에 그가 기다리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뛰어가는 동안에도 심장이 운동한다. 격렬하게.. 

다급함을 숨기고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해 하며 그의 앞에 섰다. 

뛰어온 나를 보며 또 인상을 찌푸린 그는 여전히 잘생긴 얼굴 그대로다. 

내가 좋아하는 마스크... 

“미친놈처럼 뛰어오긴.. 나이에 맞게 좀 생활하지 그래..?!” 

“.... 너무 기대가 되서 뛰지 않을 수가 없었어.. 얼른 가자, 밥 해놨거든.. 아침 밥 

안 먹었지?“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이 해준 아침밥 먹고 싶대?!” 

또 투덜거린다. 

무표정은 여전하지만 눈동자에는 표정이 떠올라 있다. 

불쾌함.. 뭔가에 잔뜩 화가 난 눈동자... 

그의 눈동자는 그도 모르는 감정을 표출해낸다. 

나만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웃음이 자꾸 베어져 나와 미칠 것만 같다. 

“.. 자꾸 실실거릴래?!!!! 제발 나이 값 좀 해!!!!!!!!!!!” 

“아, 미안,, 너만 보면 즐거워.... 쿡쿡..” 

“젠장, 완전히 돌았어..” 

아파트 안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8층을 눌렀다. 

날 따라 안으로 들어온 그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서서는 무표정하게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난 물론 그런 그를 관찰하고 있다.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선다. 

804호라 적혀진 문을 열고 그에게 손짓했다. 말없이 집안으로 들어선 그는 주방 쪽을 

힐끔 본다. 내가 끓여놓은 생태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집안 전체에 가득 퍼져 있었다. 

“얼른 밥 먹자.. 생태찌개 끓여놨거든..? 좋아하니?”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좋아하는 모양이다. 긍정할 수 없으니 무 대답이겠지.. 

난 얼른 식탁으로 가서 밥을 차렸다. 

아까 해놓은 밑반찬을 식탁 중간에 차려놓고, 금방 한 압력밥솥의 밥을 펐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생태찌개를 국자로 퍼서 그의 밥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를 부르려고 주방을 나와 보니 거실의 소파에 앉아 우두커니 TV를 보고 있다. 

그 모습을 조금 감상하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긴 다리가 무척이나 섹시하다. 

청바지가 그의 다리에 달라붙어 있어서 밥 보다는 그를 먹고 싶어진다. 

“밥 먹어, 뭐 재미있는 거 하나?” 

“. 안해..” 

조용히 대답한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지나쳐 주방으로 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서 식탁에 앉은 그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물을 마시고는 조용히 식사를 한다. 

정말로 조용히 먹는다. 아무런 소리 없이, 야금야금 없어지는 그의 흰 쌀밥... 

난 그의 앞에 앉아 조용히 먹는 그를 쳐다보며 밥을 먹었고, 그 밥은 평소보다 달았다. 

“맛있니? 입맛에 맞아야 되는데..” 

정말은 내 음식 솜씨에 자신이 있었다. 원래가 깔끔한 걸 좋아하고, 식사를 비롯하여, 

모든 걸 인스턴트라는 걸 질색하는 나였기에 10년을 자취를 해가며 배운 음식 솜씨였다. 

비록 3년 동안은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었기에 실력이 녹슬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먹어본 

바로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 동안 밥을 안 한 것치고는 말이다. 

그는 대답 없이 무표정하게 밥을 먹더니 조용히 밥그릇을 내민다. 

“더 줄까? 왜 이렇게 말이 없지? 나랑은 말하기 싫은가?” 

“..... .. 너라면 끔찍이 싫어하는 상대의 밥을 먹으면서 오늘 저녁에 할 행위를 걱정하는데 

말이 나오겠냐?!?!?!?!?!?!?!?!?!!?!?!!?!?!?!?!?!“ 

“.. 쿡.. 쿠쿠쿡.... 하하핫.. 하하하하핫....” 

행위를 걱정한 다구..?! 

푸하하핫.... 

나를 자꾸만 웃게 하는 그는 얼굴이 또 일그러져 있다. 

또 욕을 할 것 같아 재빨리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밥그릇을 들고 밥을 더 퍼주었다. 맛있게 먹는 듯 보여 기분이 좋다. 

아까만큼 한 그릇 퍼주자 아무 말도 없이 아까보다 더 찌푸려진 얼굴로 밥을 먹는다. 

“많이 먹어, 오늘 강의 있니?” 

“없어” 

“아, 그럼 더 많이 먹어.. 그리고 말이야..” 

“...." 

말없이 내 말을 기다리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저녁에 그 행위를 한다고는 말 안 했는데..?!” 

“,,,,,,,,,” 

그 말에 얼굴이 조금 빨갛게 익는 그... 

섣불리 판단한 자신이 조금 창피하겠지... 하지만 내가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닌걸... 

“밥 먹고 나서부터 할 거거든..” 

“....켁!!!” 

지금 말에는 꽤나 놀랐는지 밥을 먹다말고 목에 걸린 듯 기침을 뱉어낸다. 

식탁에 금새 그가 흘린 밥풀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다. 

그의 입가에까지 밥풀이 묻어서 조금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그는 그것을 뗄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나는 조금 의미심장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건너편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뻗자마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그... 

지금 당장 하자는 건줄 알고 놀라는 거겠지... 쿡쿡... 

그의 입가에 붙은 밥풀을 떼어내어 중지에 묻은 밥풀을 혀로 핥아먹었다. 

눈으로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중지만 세운 내 손의 밥풀은 생각만큼이나 달콤하다. 

아니, 좀더 달콤하다. 

그의 눈동자에 당황이라는 것이 스민다. 

그 눈동자 속의 나는 밥풀이 없음에도 여전히 손가락을 핥고 있다. 

뚜렷하던 당황의 표정이 금새 불쾌함으로 변한다. 

그 표정을 보고는 손가락을 내려 다시 밥을 먹었다. 

아까보다 밥맛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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