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56)

이혼을 했다. 

내가 휴가를 받은 첫 날이었다. 

법원에서 돌아온 아파트는 그의 물건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의 제안을 받던 그 날 이삿짐을 풀어 정리를 해 놓았었고, 그나마 사람 사는 집같이 해 놨었는데 또 다시 이렇게 망가진 집을 보자니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다. 

워낙에 집이 더러우면 싫어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다. 

내일부터가 그와 같이 살날이었다. 

내일부터 한 달간.. 그와 이 곳에서 동거를 한다. 

그의 물건에 손을 대면 그가 싫어할 것이 뻔히 보이기에 되도록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거실 

한 구석에 몰아 놓았다. 

이 곳은 원룸 아파트로, 좀 좁은 걸로 장만했다. 

침실도 단 하나였고, 방이란 더 없었다. 거실 하나와 방 하나, 욕실 하나, 주방 하나가 다였다. 

이렇게 오붓한 공간은 큰 공간보다 그의 맘에 들 것이 분명했다. 

나 또한 그와 큰 공간에 같이 있고 싶지 않다. 

침실만 있으면 이 집은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적당히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있다. 

내일 일이 너무나 기대되어 잠도 오질 않는다. 

더 할 일은 없었고, 느긋이 누워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를 처음 봤던 날, 그와 처음 대화를 했던 날, 그에게 처음 갈망을 느낀 날, 

그의 사랑을 받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질투를 했던 날, 모두 기억이 난다. 

왜 나는 남자여서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경멸을 받아야 하는가.. 

미친놈처럼 그런 구걸 섞인 제안을 한 내가 그렇게나 초라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에 든 상대에게 그 정도 굽히는 건 할 수 있었다. 

하긴, 예전의 나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사랑이란 걸 해본 적이 없으니 내 모든 걸 주고 싶고, 그 사람을 가지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자존심이란 것도 중요치 않고, 사람을 반쯤 미치게 

한다는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가슴앓이라는 것.. 그 것 또한 해보고 싶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 그 것을 느낀 듯싶다. 

운명이란 걸까.. 운명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그 것만은 운명이라 칭하고 싶다. 

내 가슴이 살짝 떨리며 내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속삭였던 일도 기억한다. 

지금 그 제안을 하고 받아들이는 시간까지 계속 심장이 아팠었다. 

물론 즐겁기도 했었다.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 하아..... 주환아....” 

입으로 소리 내어 그의 이름을 한 번 불러 보았다. 

그를 부르게 해줄 수 있는 이름이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일은 그가 오기 전에 아침 일찍 시장을 다녀와야겠다. 

혼자 자취하던 실력이 3년 만에 다시 되살아날지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봐야겠지..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그리고 그를 먹고 싶다. 

먹고 싶다.. 

간절하다... 

그를 갖고 싶다... 먹어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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