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56)

“..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응~ 그렇게 격식 안 차려도 돼~~~ 주환이는 오랫동안 봐 왔으니까 괜히 얼 필요 없어~” 

웃음 뒤로 다정한 말을 건네던 아내는 주환이를 이끌어 거실 소파에 앉힌다. 

그리고 날 보며 인사를 안 하냐고 질책을 한다. 

나는 잠시 생각하던 걸 멈추고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잘 왔어, 아내가 신경 써서 음식을 준비 했으니까 아마 입맛에 딱 맞을 거야, 식사 한 다음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할까?” 

“네~ 좋죠~” 

얼굴에 연신 미소를 띠는 그는 불긋한 얼굴에 밝은 표정을 한 가득 품었다. 

아내를 쳐다보는 눈망울이 반짝인다. 

주방으로 서둘러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참 여리고 가녀려 보인다. 

모든 남성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킬 타입이다. 

솔직히 결혼하기 전 내 이상형과는 부합하지 않는 여성이었지만 내 형편과 딱 맞는 

집안이었기에 받아들였었다. 

지금도 딱히 그녀가 맘에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다른가 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확연히 돋보이며 빛나고 있으니.. 

식사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가 이렇게나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니.. 처음 알게 된 그의 모습이었다. 

아내 또한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내내 웃음을 입가에 달고 있다. 

그 또한 나 따위가 있는 줄 모르겠다는 듯, 아내의 상기된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다. 

만약 내가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남편이었다면 그의 그 눈빛 하나만으로 살인을 

저지를 충동이 느껴졌을 거다. 

하지만 난 아니기에 이렇듯 흥미가 가는 거겠지.. 

왠지 모를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도.. 

“정말 잘 먹었습니다. 음식 솜씨 좋으시네요, 누나..” 

“어머, 정말 맛있었니? 괜히 예의 차리는 거 아냐?” 

식사가 끝나고 술까지 한 잔 마신 그는 현관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런 그의 말 한마디에 밝은 얼굴을 하고선 애교스런 웃음을 짓는 아내.. 

난 잠시 그런 아내를 쳐다보았다. 

결혼 내내 지어본 적 없던 표정을 짓는다. 

나는 끌어낼 수 없는 표정... 

그 또한 붉게 물든 얼굴이 그 나이의 남자답게 생기가 넘친다. 

그를 쳐다보며 인사 대신 물었다. 

“술 마셨는데 잘 갈 수 있어?” 

“물론이죠~ 이렇게 마시는 건 마시는 것도 아닌걸요. 요즘 애들이랑 얼마나 많이 마시는데요..” 

술에 취한 듯 말이 뭔가 통일성이 결여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혀 꼬인 발음은 굉장히 귀엽다. 

발갛게 물들은 얼굴도 또한 ... 

난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에 그도 마주 웃어준다. 

“난 아직 술 모자란데.. 같이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더 마실까? 여보, 괜찮겠어?” 

“어머, 현조씨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요..” 

“아, 그냥 조금만 더 마시고 오지 뭐..” 

“주환이 학생도 내일 학교 가야 할 텐데..” 

“조금만 마시고 올께..” 

아내가 말하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외투를 집어 들고 그와 같이 집을 나섰다. 

그 또한 억지로 끌려오는 기색이 역력하다. 

술을 더 먹을 거였으면 집에서 더 먹었으면 좋았겠지.. 그에겐 말이다. 

하지만 난 그와 단둘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오래전부터 미뤄왔던 일이다. 

오늘은 꼭 제안을 해야겠다. 

근처 자주 가는 바에 가니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조금 구석진 곳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건너편에 앉은 그를 보았다. 

역시 훤칠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것이 못마땅하다는 투다. 

하지만 그런 얼굴 또한 귀엽게 보이는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조금만 마시자. 어차피 얘기나 조금 하려고 온 거니까..” 

“네.. 무슨 얘기인데요?” 

굉장히 불안한 표정.. 

내가 무슨 얘기를 꺼낼지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아마도 내가 아내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거겠지. 

알아채기야 그를 처음 봤을 때 알았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쓰는 문제가 아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야 그는 긴장된 표정을 조금 풀었다. 

아마도 내가 화난 얼굴이 아니어 서겠지.. 

살짝 미소까지 지어주고 나서야 그가 긴장을 완전히 다 풀어버린다. 

조용히 입을 열자 그가 열이 오른 눈동자를 내게 고정시킨다. 

난 그 눈동자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표정이 드러나는 그의 눈동자는 갖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내 아내를 좋아하나?” 

“....!!!!!!!!!!” 

내 단도직입적인 말에 그가 놀라고 벙찐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눈동자에 나타나는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얼굴 전체가 다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역시 포커페이스를 자신하는 그답다고 생각했다. 

나도 겨우 알아볼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아 있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사실 주환이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지. 

말을 안 했을 뿐이야.. 아마 다른 남편이었다면 칼 들고 길길이 뛸 만큼 노골적인 눈빛을 

아내에게 보내는데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이나 필요치 않은 장미를 사가고.. 아내가 주는 장미를 

소중한 듯이 안고 가는 널 말이지..“ 

“... .......만약 제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떡하실 거죠? 왜 다른 남편이었다면 이란 말을 

붙이는 건데요? 당신은 누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그는 역시 다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얼굴이 붉어져 화를 내며 날뛸 텐데도.. 그는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 

조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냉정히 내게 물어온다. 

갑작스럽게 내 제안을 꺼내기가 망설여진다. 

나도 역시 인간이긴 한가보다.. 

“물론 좋아는 하지, 내 아내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건 아냐.. 

내 평생에서 사랑이란 건 해보지도 보지도 못했으니까..“ 

내 말에 갑자기 발끈한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화난 표정은 숨기질 못하는가 보다. 

짜릿한 기분이 들만큼 통쾌하다. 

“그렇다면 왜 누나와 결혼을 한 거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왜 결혼을 한거냐구요..” 

“부모님이 허락했으니까..” 

훗.. 정말 기분이 짜릿해지는 표정을 짓는군.. 

그를 화나게 하는 건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는 그는 평소보다 훨씬 남자답다. 

포커페이스의 얼굴 또한 남자답지만 지금은 좀 더 야성적인.. 그런 매력이 느껴진다. 

거칠고 사나운.. 그런... 내 이상형에 가까운.. 

“쿡쿡.. 얼굴 표정 좀 풀지 그래.. 날 잡아먹으려는 표정이군.. 

아마 회 떠먹고 싶을 정도로 내가 밉겠지? 넌 아내를 사랑하는데 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내를 독차지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잠시 말을 끊었다. 

내 말에 조금 차분해진 얼굴을 한 그는 내 다음 말이 궁금한 듯 내게 눈동자를 맞춘다. 

마주친 눈동자의 갈색 빛이 마음에 파고든다. 

가슴으로..가슴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빛이다. 

잠시 그 눈빛에 감탄하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제안할 것이 있어.” 

“제안이요?” 

아마 많이 궁금할 것이다. 

내가 무슨 제안을 꺼낼 것인지.. 

난 그가 더 애타하도록 술잔을 느긋이 기울였다. 

쓰디쓴 술의 향이 목구멍을 타고 스며든다. 

콧속에 스며드는 향은 그의 향과 닮았다. 

독함과 부드러움이 겸비된 향.. 

또 한 번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눈동자가 다시 허공에서 마주친다. 

“널 안게 해주면 내 아내를 주지.” 

“.........!!!!!!!!!!!!!!!!” 

약간 황당하단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러다가 차츰 그 말을 이해한 듯 표정이 굳어진다. 

그 변화를 지켜보다가 그의 얼굴에 아까보다 더 심한 분노가 떠오르자 설명을 덧붙였다. 

“싫은가? 인간이란 사랑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굉장히 약해지지.. 

너도 틀리진 않을 텐데.. 꽃을 사러 올 때마다 아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 내가 아내에게 남편의 의무를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화가 안 나나? 아내를 소유하고 싶지는 않나..? 그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반 

적인 욕구지.. 너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거겠지..“ 

잠시 말을 놓은 사이 그가 재빨리 내 멱살을 잡아챘다. 

반대편에서부터 뻗어온 팔은 마른 듯함에도 근육질이었고 힘도 넘쳐났다. 

저 몸을 가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바짝 마른다. 

“그 더러운 입으로 한 마디만 더 한다면 패 버리겠어!!!!” 

“왜 더러운 입이라고 하지? 내가 틀린 말을 한 건가? 내 아내를 사랑하지?” 

“.. 이젠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당장 누나와 헤어져!!!!! 

당신 같은 인간과 같이 살은 누나가 불쌍할 뿐이야!! 

그런 당신에게 속은 나 자신도 비참할 정도로 싫어!!! 젠장!!.. ....밖으로 나와!!“ 

가게 안의 모두가 이목을 집중하자 그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내 멱살을 잡은 채로 

끌고 나간다. 

내 얼굴에 머무른 미소를 보고는 더욱 열 받은 표정으로 씩씩거린다. 

표정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한 미소였지만 그는 모를 테지.. 

더욱 감정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자마자 거리에 날 패대기치듯 내버린다. 

바닥에 입술이 쓸려 피가 조금 베어나 왔지만 미소가 아직도 떠나질 않는다. 

굉장히 즐거운 기분이 든다. 

“웃지 마!!! 뭐가 웃기다고 쳐 웃는 거지?!!! 내게 왜 그런 제안을 꺼낸 건지 

말해.. 당장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테다..“ 

“널 안고 싶으니까.. 아내는 필요 없이 너를 안고 싶어서 제안한 거다..” 

“미친 자식..!!!!!당신 같은 인간을 믿었다는 게 화나!!!!!!! 날 그런 눈으로 봐왔다는 

것조차 미치도록 불결하고 징그러워..!!! 그런 제안을 들은 내 귀를 잘라서 버리고 

싶을 정도야.. 당신의 그 제안이 아니더라도 누나는 내가 가질 테니 걱정 마.. 

당신 같은 인간에게 그대로 둘 만큼 난 멍청한 인간이 아니니까.. 

당신이 말했듯이 나도 인간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갖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당신 아내를 빼앗기 싫어서 여태 보고만 있었지만 당신이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망설일 필요도 없겠지..“ 

“쿡.. 불륜을 저지르겠다는 얘기로 들리는군...” 

“.. 너 따위와는 이혼 시킬 거라고 얘기했잖아!!!” 

“.. 아.. 이런.. 뭘 모르는군.. 그녀는 친정 식구들의 말을 정말 잘 듣지.. 

나와 결혼한 것도 사실은 친정 식구들 등쌀에 밀려서 한 것뿐이야.. 

이혼에 관련된 것도 내 동의 없이 무작정 밀어붙일 만큼 그녀가 과감한 것도 아니고.. 

한 가지 알려주겠는데.. 결국.. 그녀나 나나 똑같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결혼한 것은 

서로가 똑같다고..“ 

바닥에 뉘여 졌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너는 처음 봤을 때부터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대는 처음이라서 

이런 미친 방법을 쓰지만.. 정말로 널 갖고 싶어.. 

하지만 너는 그런 마음이 없잖아? 그래서 너가 원하는 걸 주겠다는 거야.. 

이건 제안이야. 협박 따위가 아니라.. 서로에게 공평하게 이득이 가는 일이라고.. 

받아들여.. 그리고 그녀를 가져..“ 

“.... ... 당신 단단히 미쳤군.. 도덕적으로 뭔가 상당히 결여된 사람 아냐?” 

쿡.. 쿡쿡.. 

갑작스럽게 웃음이 튀어나온다. 

아까 쓸린 입술이 조금 쓰리게 아파오지만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도덕성..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보가 터진 건 어쩔 수 없다. 

“.. 너야말로 도덕성 결여 아닌가? 불륜은 윤리적으로 어긋난 것일 텐데..?” 

“입 닥쳐!!! 적어도 남자를 탐하지는 않아!!!” 

아아. 남자를 탐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가지고 있었군.. 

하지만 어쩐다.. 나도 남자고 그도 남자인 것을... 

난 그를 가지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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