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아내가 하는 꽃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
5일 근무제로 인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 아내를 위해 투자하게 된 나는
아내의 꽃집에 나가 일을 거들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보게 되는 그...
남자이면서도 꽃을 좋아하는 건가 싶었다.
일주일에 두 세 번꼴로 이 곳에 온 다는 그는 항상 장미만 사간다고 했다.
10송이의 장미를 일주일에 두 세 번꼴로 사가다니.. 정말로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걸 깨닫게 된 건 내 아내를 쳐다보는 그의 눈길을 발견하고부터였다.
나도 그가 올 때마다 항상 관찰을 해왔기에 그가 무슨 눈빛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굉장히 애절했다.
그는 키가 크다.
나도 189로 굉장히 큰 키인데.. 그도 나만큼이나 키가 큰 것 같다.
어쩌면 3이나 5센티 정도 더 클지도...
그는 굉장히 말랐다.
말랐지만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속은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꽃을 주던 손에 스치던 그의 피부가 그걸 말해주었다.
뭔가 서늘하면서도 땀이 차지 않은 산뜻한 피부였다.
기분 좋다고 느낄 만큼...
그의 마스크는 훌륭하다.
항상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그가 장미꽃을 사가면서까지 내 아내의 얼굴을 보려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싫어할 여자는 없을 듯한데..
비록 유부녀라도 유혹하기만 한다면 단번에 넘어갈 듯한 얼굴임에도..
그는 대쉬하지 않는다.
내 아내는 둔하다.
그런 그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이미 그와 내가 대화를 시작한지 일년이 지났다.
“안녕하세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낮은 허스키는 그의 마스크와 어울려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을 남긴다.
허공을 긁듯이 지나가는 목소리는 마치.. 긴장된 파동을 가르는 듯하다.
내 아내 또한 기분 좋은지 연신 웃음이다.
나도 또한 얼굴에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를 보면 항상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 장미 엄청 좋네요? 누나, 오늘도 열 송이만 주세요.”
“주환아, 오늘도 장미 사가는 이유 안 말해줄 거니?
벌써 1년째인데 정말 궁금하다.. 그쵸, 여보?“
아내가 명랑하게 물어온다.
항상 밝게 생활하는 아내는 목소리조차 굉장히 밝다.
따뜻한 이 꽃집과 잘 어울린다고 할까..
조금 웃다가 대답했다.
“쿡.. 당신도 올 때마다 묻지 좀 마.. 주환이 난처해하잖아..
여자친구가 장미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 또 주환이가 장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내 말에 인상을 조금 찌푸리는 그는 여전히 끌릴 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투덜투덜 거리며 여자친구는 없다고 하는 폼이 정말 귀엽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장미를 포장하는 아내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귓가에 살짝 속삭였다.
그가 들을 정도로..
“여보, 사랑해..”
“어머.. 현조씨~ 손님 있는 데 그러면 어떡해요~”
여전히 소녀처럼 날 현조씨라고 부르는 아내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내 팔에서 벗어난다.
난 또 한 번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내 예상대로 꽤나 화난 표정이지만 숨기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나이는 21살..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대학생이었고,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며, 이 곳에는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딴에는 그가 감정을 잘 숨기는 것으로 알 테지만 내 눈에는 그 것이 귀여운 몸짓으로만
비춰진다. 감추고 싶고 감춰져야 하기에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 31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설렜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듯싶다.
“주환아, 다음에 올 때는 꼭 가르쳐줘야 돼~~~”
“쿡.. 누나는 뭐가 그렇게 궁금해요.. 비밀이니까 절대 안 가르쳐 줄 거예요”
농담을 던지며 살포시 웃음을 던지는 그의 고혹적인 눈웃음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등을 돌려 가게를 나선다.
그의 팔에는 장미가 한 다발 안겨져 있다.
정말 소중한 듯이 양 팔에 꽉 끌어안은 폼이 아기를 떨기지 않으려 조심하는
초보엄마의 모양 같다.
괜히 가슴이 쓸리는 듯 해 시선을 돌렸다.
쇼윈도우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꽤나 가슴이 아프다.
꽃집은 한달에 한 번 정기휴일을 갖는다.
셋째 주 일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 것은 가게를 시작하고부터 3년 동안 변함이 없다.
돌아오는 다음주 일요일이 셋째 주로 쉬는 날이었다.
수요일이었다.
난 아내에게 저녁을 먹다 말고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그를 일요일 저녁 식사에 초대하자고..
일년간 단골 고객인데 한 번쯤 초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아내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소녀처럼 볼을 붉히는 폼이.. 뭔가 더 있는 듯싶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내 딴에도 숨기고 있는 것은 많았고 아내라고 해서 나에게 비밀이 없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아내와 나는 서로 간섭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사이에 아이도 없었기에
각자 생활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내 말에 아내가 기뻐하는 표정을 지어봐야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가 내 아내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에 더 관심이 갈 뿐이다.
“주환이 학생 일요일 날 올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현조씨는 음식 뭐 했으면 좋겠어요?
손님도 초대하는 마당에 맛있는 걸 내놔야 할 텐데.. 내가 음식 솜씨가 없어서 좀
걱정이에요...“
“당신 음식 솜씨는 걱정하지 마.. 내가 먹고도 배탈 안 나는 걸 보면 분명히 맛없는 건
아닐 테니까.. 아마 주환이도 맛있어 할 걸..?“
“현조씨도 참~”
금요일 저녁의 대화였다.
아내는 굉장히 들떠있었고, 나 또한 괜히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너무나 기대되는 일요일이었기에...
“딩동-”
“아.. 왔나봐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재빠르게 웃음을 토하며 달려가는 아내는 소녀 같았다.
그를 초대하는 것이 저렇게나 기쁘다는 것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집에 손님을 부른 것이 기쁜 것일까...
아내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하는 동안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