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잠이 들었었던 것 같다.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온다.
도란거리며 들려오는 말소리.
세현의...그리고 그의.
"누군지 알거 같아?"
".....!!....."
"알고 있는거로군. 어떡할거야?"
".................."
"야! 이자식아! 민휘야. 다른 사람도 아닌 민휘라구.
그런데 이렇게 새색시처럼 앉아만 있을거야? 엉? 말을 하라구."
"시끄러워. 민휘 깨겠어."
"젠장. 네자식의 머리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너 민휘 사랑하는거 맞어? 맞냐구. 말해봐 이자식아!"
"난..."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기대하지 않는 말이 튀어나올 거 같았기 때문에.
난...민휘를 사랑하지 않아...
두려움에 질식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세...세현아..."
밖의 목소리를 통과해주던 얇은 문을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어. 민휘야."
"동훈씨..."
"뭐야? 더 누워있어."
"저...하지만."
"누.워.있.어."
"응......."
아무런 말도 못했다.
바보처럼.
나 너무 아프다고. 옆에 있어달라고.
그 어떠한 말도 못한채 다시 방으로 몸을 밀어넣어야만 했다.
그리고 원치않는 잠을 자기 위해 어렵게 어렵게 눈을 감았다.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내가 원하는...
그리고 그가 원할지도 모르는...
며칠 후, 얼마간의 요양을 끝낸 후 난 다시 가게에 나가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세현의 잔인함을 욕하던지 간에, 오히려 난 세현의 옆에 있을 시간이 더
늘게되어 행복했다.
그만이 나의 안전한 보호막이였다.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한가지 바뀐 점은 내가 받는 손님이 동훈씨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세현의 배려 안에서.
- 똑똑
"들어와."
"동훈씨. 또 오셨네요."
"응..."
기분좋은 미소를 나에게 항상 보여준다. 이사람은...
"쿡. 여기 이렇게 계속 오시면 돈은 언제 벌어요?"
이제는 서로 개인적인 것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허물없는 관계가 되었다.
"안되면 세현한테 빌붙어서 살지뭐."
"킥...세현이가 동훈씨를 과연 받아줄까요...?"
- 똑똑
"누구세요...?"
뻔히 동훈씨와 있는 자리에는 세현이 한번씩 얼굴을 내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현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파 필요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들어와."
하지만.
"저기...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서..."
"무슨 일이지?"
기대하던 그가 아니다.
마담 누나가 이곳엔 왜...?
"저기 민휘야. 사장님이 부르신다. 어서가봐."
세현...그사람이?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시간인데 왜...?
"어서 가보도록 해...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무슨 일이지? 같이 갈까?"
"아니요...다녀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그러지 뭐. 다녀와."
"네..."
지금 동훈씨와 함께 있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데 왜...?
궁금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름을 느끼며 [owner's room]앞에 다다랐다.
- 똑똑
"....................?"
대답이 없다.
- 똑똑
"세현....들어가도 돼?"
".........들어와."
약간은 쉰듯한. 불안한 목소리.
무슨...일일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향기가 나는 곳.
"무슨 일이야?"
들어온 나에게는 시선한번 주지 않은채, TV의 거대한 화면에 그의 온신경을 집중하는
듯 했다.
화면만을 바라보던 그가 내가 손짓을 했다.
"뭔데 그래?"
그에게 한걸음씩 다가갔다. 한걸음씩 천천히...
멀뚱이 서있음이 민망했던 나는 세현이 집중하고 있는 화면에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헉!!!!!!!"
".................."
거대한 브라운관에 있는건.......나......?!
"저...저...저........"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중에 하나다."
건조한 목소리.
"이...이건...이건...."
"민휘야......"
"싫어!! 싫다구. 보기 싫어...흐흑......"
어느덧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다.
그때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나와...그 새끼와의 관계가...시중에서 유통......?!
개같은....
"뭐...뭐야. 이거 뭐야? 응? 왜...왜이게 여기 있는거야? 흑...흐흑..."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싫어...그딴거 싫어...그거 나 아냐...나 아니라구..."
뒷걸음질 끝에 다가온건 등에 대여진 딱딱한 벽.
"하민휘......"
TV앞에 앉아있던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나의 몸을 끌어당겼다.
"이거놔...!! 놓으란 말야. 저건 내가 아니야....내가 아니라구."
"도피하지마. 저건 너야..."
"싫어...저거 나 안할꺼야. 안할거라구...흑...저거 없애버려. 빨리 내눈앞에서 없애...흑..."
"봐! 네눈으로 봐야해."
자신의 품으로 나를 밀어넣던 그가 화면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거놔!! 나 싫어!! 싫다구!!!!!!"
"눈떠. 이건 니가 봐야돼. 니가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구. 보란 말이야."
화면에서는 묶여있는 내 다리를 벌리고 막 애널을 공격해 들어가는 살덩이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을 비틀며 간신히 저항아닌 저항을 해대는 나의 모습도...
"욱....웩....!!!"
"........!!!........"
비싼 카페트에 내 입에서 게워낸 오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저자식이...누군지 알지?"
"흑.....흐흑......"
"그자식 맞는건가?"
"흑...응..."
"휴우...그렇다 이거지."
"흑....세현아...미안해...미안..."
뭔지도 모를, 어울리지도 않을 미안을 그의 앞에서 되풀이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가 나를 내쫓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흐느낌에 섞여나오는 미안...소리.
"됐어. 이제 나가봐."
"세...세현아..."
"그리고 당분간은 동훈이네 집에 가있어라. 내가 허락은 맡아놓았으니..."
"세...세현...왜...?"
"나가봐."
"세현아......."
"나가라구!!!!"
......버림......받은건가......?!
끝...장이다.
동훈씨 집으로 온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세현의 목소리도, 하다못해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완벽한 버림.
"민휘야. 안자니?"
달콤한 목소리.
나를 지탱해주는 끈이 없다면...아마 저 사람에게...
"네. 죄송해요. 걱정마시고 주무세요."
"그래. 너도 어서 자렴."
"네..."
돌아 누웠다.
그에게 자지 않음을 들키지 않게 위해서.
세현으로 인해 내 마음이 아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민휘야..."
".........네?"
"안아줄까?"
"네??"
"힘들면....안아주기라도 할게, 그것도 안되겠니?"
"도...동현씨..."
어느덧 그가 내옆에 다가옴을 느꼈다.
세현과 다른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어느샌가 그의 품안에 들어가 있는 나를 느끼게 되었다.
...............간만에 잠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