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M─ (93/101)

13 .M─

령의 추측이 적중했다. 최근에 있었던 왕실주재 파티 도촬 파일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왕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미녀를 수차례 발견했다.

타샤 스웨인, 27세. 사교계에 데뷔한 지 고작 3주째. 지방의 하급 문신귀족의 외동딸로서, 부모의 사망으로 수도로 상경. 최근 푸셔의 딸과 접촉이 더럽게 잦았다.

스웨인 양은 은은한 동양란 같은 미녀였다. 이리나와 딴판이었다. 왕도 색다른 매력을 느낀 듯, 이리나와 희희낙락하는 와중에도 타샤에게 자주 그윽한 눈길을 던졌다. 눈알을 뽑고 싶었다.

“자연산 숫처녀래. 믿겨져? 24세까지 가톨릭 계열의 기숙사제 대학에서 위트와 학식, 미모를 겸비한 학생회장으로 이름을 떨침. 2년간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이거 큰일인데. 우리가 고른 처녀는 잽도 안 되겠어.”

쿠퍼헤드가 말했다. 이어서 레오파드가 집무실로 들어와 말했다.

“지금 뉴스에 누가 나오나 한번 봐.”

텔레비전을 켰다. 코에 석고붕대를 감은 채 입에는 체온계를 물고 끙끙거리는 로터스가 뉴스화면에 등장했다. 작자의 연기력이 마넨을 훌쩍 능가했다.

왕실주재 파티는 이번 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나는 오후 2시까지 새 후보 리스트를 뽑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1시 30분에 쿠퍼헤드가 업무실로 들어왔다.

“음. 뭐냐.”

“뭐기는. 한번 봐. 네 명을 골라 봤어. 청순파 세 명, 섹시파 한 명. 푸셔처럼 나도 청순파를 집중적으로 골라봤는데, 제일 괜찮은 처녀는 소피야 보트키나. 긴 생머리에 약간 사시인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인이지. 독실한 가톨릭에 동거 경력도 없고. 처녀막이야 현대의학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고.”

나도 쿠퍼헤드가 민 후보에 올인했다. 닳아빠진 헤테로 플레이보이의 강력추천이 부끄럽지 않은 발군의 청순미였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네 여인 모두 오는 왕실주재 파티에 급파하라고 지시했다. 인해전술로 맞서 볼 참이었다.

그리고 오후 4시, 차 모임을 빙자하여 기획실로 불러 모은 검사들을 만났다. 검사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우선 그들의 노고를 열렬히 치하하고, 터무니없는 박봉을 15분간 성토한 다음, 본론을 꺼냈다.

혹 자네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바르디 공작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귀족 아이들을 초대하여 티파티를 연다는데, 얼마 전 내가 황당한 소문을 접했다. 그 미남 공작이 티파티에서 아이들을 교묘하게 성추행한다고 하더라! 누가 퍼뜨린 소문인지 몰라도 정말 악의적이지 않느냐? 세상에나, 티파티에서 공작이 아이들과 홍차 좀 마셨다고 성추행범으로 몰다니! 이거 무서워서 이웃집 아이와 차 한잔 마시겠느냐! 아,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자자, 차 식겠다. 차린 건 없지만 편안하게 시간 즐기다가 가라.

검사들은 노련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곧 싱긋이 웃었다. 검사들은 차를 마시는 내내, 아이들과 핫초코 좀 마셨다가 졸지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려 큰 고통을 당한 20세기의 어느 흑인 팝스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검사들을 오늘 불러 모은 이유는 만에 하나 티파티에서 칼의 성추행 증거를 잡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이로써 기초공사는 완료했다. 증거 유무와 상관없이 검사들은 칼을 희대의 소아성애자로 작업해 줄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칼의 티파티가 열리는 토요일까지 땅딸보 왕에게 미녀를 주선하는 뚜쟁이 노릇뿐이었다. 염병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금요일, 무려 여섯 송이의 꽃들에 둘러싸여 함박웃음을 짓는 크루거의 사진이 각종 일간지 탑을 차지했다. 점심 때 알토넨이 “칼에게서 오전에만 여섯 차례나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해왔다. 나는 일절 무시하라고 명령했다.

놈은 이제 끝났다. 암만 몸부림쳐도 소용없었다. 그러게 인간은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적당히만 부렸으면 푸셔에게 버림받고 내게 제거당하는 몰락까지 겪지는 않았다.

일단 놈을 지켜보기로 했다. 내 판단에 칼이 곱게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퇴근하기 직전 업무실로 들어온 레오파드가 뉴스를 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칼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재포니카를 맹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로터스 푸셔의 조속한 쾌유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제법 볼만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워 펄쩍펄쩍 뛰는 꼴이 아주 짜릿했다. 나는 픽픽 웃었다.

하하하.

역시 샤일록의 후예였다. 때를 아는 철새가 현명한 철새인 법이다. 내가 칼이라면 얼른 물러나서 일신의 안전부터 도모했을 터였다.

어깨를 으쓱거리고 일어났다. 오는 토요일부터 몹시 바빠질 예정이었다. 그때까지는 레이에게 충실할 생각이었다. 보석점에 들러 진주 팔찌를 구입한 다음,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진주 팔찌를요? 아니, 이걸 출근할 때 차고 간다고요?”

레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나는 네,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주가 재클린 오나시스 같은 여자만이 착용하는 보석이라는 건 편견입니다. 손목에다가 차면 의외로 남자에게도 어울리는 보석이 진주죠. 레이와 내 것, 두 세트 구입했어요. 부담 갖지 마십시오. 어차피 가짭니다.”

나는 진주 팔찌를 직접 손목에 걸어 셔츠단추를 잠갔다.

“이렇게 하면 보일락 말락 하죠. 목에다가 떡하니 걸고 다니면 우스꽝스럽지만, 이처럼 은근하게 달면 재미나죠.”

“메사라는 보석에 관심이 많나 봐요. 지하실의 커다란 보석궤짝도 그렇고.”

이런 제기랄. 들켰구나.

나는 평온한 미소로 표정을 관리했다.

“하하하. 그건 또 언제 찾았습니까.”

“꽤 됐어요.”

레이가 찻잔을 이쪽으로 밀며 말했다.

“음…… 열흘 전쯤? 지하실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죠. 놀랐어요. 안목 없는 내가 봐도 메사라가 선물해 준 머리핀이 보통 물건은 아니다 싶었거든요. 보석궤짝의 패물도 훌륭하더군요. 이미테이션이라도 그 정도면 값이 상당할 것 같았는데. 개수도 서른 개를 넘고.”

“한 8년 정도 보석에 취미를 들였습니다. 8년간 모은 보석이 그 정도면 많은 것도 아니죠. 졸지에 내가 허영심 많은 남자로 찍힌 것 같아 머쓱하네요.”

나는 처량하게 말했다. 둘러댄 소리였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 나만 한 재력가가 이 정도 씀씀이면 솔직히 검소한 거였다. 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한데 그렇게 화려한 보석은 어디 차고 나가기 힘들 텐데요. 귀족들이 즐겨 입는 로브면 또 몰라도, 메사라는 매일 제복만 입고 다니잖아요.”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보석은 감상만으로도 충분하죠.”

나는 얼버무리며 차를 마셨다.

사실은 그것이었다. ‘귀족들이 즐겨 입는 로브.’

내 보석 취미는 거기서 비롯되었다. 나와 부장들처럼 맨주먹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야심만만한 남자들은 거개 작위를 갈망했다. 울프삭 경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전까지, 내가 7년간 불태운 야망도 작위를 받아 본격적으로 귀족사회에 데뷔하는 것이었다. 자신 있었다. 동료들을 이끌고 정쟁판을 싹쓸이해 버릴 작정이었다.

그 무렵부터 보석에 관심을 품었다. 로브를 걸치고 파티장을 활보하는 나를 상상하며 어느 보석이 어울릴까, 가늠하는 게 취미가 돼 버린 것이다. 마넨의 마수(?)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신흥귀족 포우 메사라가 연일 잡지커버를 장식하고 있었을 터였다.

지금은 말짱 헛것이 되어 버렸지…….

괜찮았다. 평생 빌어먹을 가면놀이 따위나 할 의향은 추호도 없었다. 향후 5년 안에 맨 얼굴로 귀족사회에 당당히 커밍아웃할 작정이었다. 최연소 ‘오르키스’가 되는 것이다. 빗발치는 박수 속에서 왕궁의 오르키스관에 입성해 대관식을 치를 작정이었다. 상상만 해도 전신이 찌릿찌릿했다.

나는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레이.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집을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왜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비상이 걸렸지 뭡니까. 대장급부터는 모두 대기하라고 하더군요. 사무직이지만 나도 명색이 대장급에 속하니 어쩔 수 없죠.”

“무슨 일인데 그러죠?”

“나 같은 말단이야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수당이 나오니까 할 만해요. 덕분에 여행경비도 벌고 나쁘진 않지요.”

나는 편안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다. 기분이 좋았다. 토요일 밤에 동영상을 공수받아 일요일에 정성껏 편집한 뒤, 검찰에 넘겨 칼을 즉각 체포할 작정이었다. 월요일 조간이 벌써 기대됐다. 그런 후 홀가분하게 신혼여행. 하하하.

이거 정말 근사한데.

레이를 확 끌어안았다. 길고 달콤하게 키스를 나누었다. 레이는 키스를 좋아했다. 기분 좋게 끙끙거리며 내 허리로 다리를 감는 대담한 행동도 무의식중에 종종 취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나는 레이를 안고 벌떡 일어났다. 침대에서 거하게 한판 한 뒤 수면을 푹 취할 작정이었다. 침실로 향하는 내 뒤에서 또 디아나가 가재미눈을 뜨고 종종종 따라왔다. 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짐짓 엄한 어조로 “못 써.” 하고는 디아나의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문 긁는 기척이 요란하게 터졌다. 앙앙앙 소리도 잇따랐다.

“레이의 신음 때문에 이 침실도 디아나에게 증오를 산 모양입니다. 하하하.”

“웃을 일이 아니에요. 문이 발톱자국으로 난리예요.”

레이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옷을 벗고 레이도 알몸으로 만들었다.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앉은 자세로 이쪽을 응시하게끔 했다. 창피해하는 꼴이 제법 볼만했다. 저러면서 다리를 오므리진 않는 모습이 더 웃겼다.

나는 이미 바짝 선 내 물건을 레이의 가랑이에 슬슬 문질렀다. 레이가 숨을 삼켰다. 나는 일부러 페팅을 하지 않고 거듭 애만 태워 주었다. 레이의 유두가 꼿꼿이 섰다. 전신에서 소름까지 돋아나는 게 확연히 보였다. 당장 덤벼들어 핥고 빨아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예민하게 선 레이의 아래에 내 물건을 계속 문질렀다. 레이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까지 멀거니 빛냈다.

오래 못 간다는 신호였다. 엉덩이까지 움찔거리는 게, 벌써 구멍이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그간 내가 정성껏 조련한 결과, 레이는 이제 확실하게 애널섹스에 적응했다. 아래를 느슨하게 풀어 줄 때면 으레 괴로워하던 것도 사라졌다. 되레 어쩔 줄 몰라 하며 몸부림쳤다. 속칭 흥분하면 거기부터 뜨거워지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덕분에 나도 부담 없이 맘껏 박을 수 있어서 좋았다.

레이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메, 메사라…….”

“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두로 레이의 앞을 더욱 문질러 주었다. 벌써 애액이 흥건했다. 레이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찌 나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였다.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아래로 끌어당겼다. 나는 지그시 웃었다.

이것 보라니까.

레이를 눕힌 뒤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예상대로였다. 구멍이 벌름거리고 난리였다. 이 꼴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시간을 들여 오일로 아래를 늘렸다. 애태워 주며 시간을 끌었다. 레이가 몸 달아서 쩔쩔 매는 꼴이 즐거웠다.

실컷 약 올려 준 뒤 삽입했다. 일부러 느릿느릿 박아 주었다. 레이가 “아, 아…….” 하며 신음했다. 몸 달아서 죽으려고 했다. 나는 짐짓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런. 아픕니까? 천천히 넣고 있는데요. 더 느리게 넣어 줄까요. 아니면 관둘까요.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얼른 말하십시오.”

내 넉살에 레이의 낯이 볼만하게 구겨졌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시금 꾹 다물었다. 고집이 대단했다. 물론 저 고집도 더는 못 피우게끔 레이의 몸뚱이를 더욱 철저히 조련할 작정이었다. 성감이 잘 발달한 몸뚱이라 조련은 수월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다가 단숨에 처박았다. 퍼억 소리가 났다. 음모가 구멍 입구까지 밀착됐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음색은 처절한데 구멍은 찰지게 물건을 조아 대며 꿈틀거렸다. 허벅지까지 내 허리를 감아 당겼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기는…….

하여간에 이랬다. 기가 막혔다. 1년 전, 내가 레이에게 슬슬 수작을 걸 무렵에도 젖꼭지만 대충 빨아 주면 입으로는 ‘이러지 말아요’ 하면서 가랑이는 잘만 좍좍 벌려대던 사람이었다. 나는 레이의 엉덩이를 높이 치켜세웠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허리를 밀착했다.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가 원하는 대로 난폭하게 후벼 박았다. 입구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레이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동공이 커져 가는 것이, 벌써부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레이의 가랑이를 한계까지 벌려 놓은 뒤 빠르고 깊이 삽입했다. 구멍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레이의 엉덩이를 때려서 안을 조이게끔 했다.

“세게 조여 봐요…… 아직 많이 남았는데 벌써 이러면 안 됩니다.”

“메, 메사라가 다리를 너무 벌려 놓아서.”

레이가 머리를 흔들며 신음했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힘든 것 같았다. 나는 물건을 레이의 몸에서 뺐다. 자세를 바꿔 레이를 엎드리게 했다. 후배위는 삽입이 더 깊을뿐더러 레이의 허리도 마음껏 죌 수 있었다. 초반부는 강한 조임을 즐기고 싶었다. 레이도 이 자세를 편하게 느꼈다.

물건을 넣고 레이의 허리를 졸랐다. 즉각 어마어마한 조임이 아래를 달렸다. 눈앞이 지끈거렸다. 구멍이 잔뜩 늘어날 때까지 쑤셔 박고 휘저었다. 철퍽철퍽 소리가 났다. 레이가 자지러졌다. 가냘픈 팔이 내 압력에 못 이겨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처, 천천히!”

“좋습니까? 좋아요? 읏, 허리 숙이지 말아요. 힘들겠지만 그 자세 그대로 있어요. 팔 꺾지 말고. 그래요…… 그렇게.”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레이가 흐느꼈다. 신경 안 쓰고 더 사납게 박았다. 퍽퍽퍽 넣고 쑤셨다. 허리를 잡고 졸라 조임을 강하게 했다. 뒤를 박아 주며 레이의 앞도 만졌다. 두 곳을 자극시키며 레이를 몰아갔다. 느릿느릿 약을 올리다가 빠르게 했다가 하며 시간을 끌었다. 심심찮게 자세를 바꿔 가며 내 좆도 빨게 해 주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레이가 미치려 했다. 엉덩이를 정신없이 흔들며 신음했다. 작은 구멍이 크고 굵은 성기를 질근질근 물었다. 물건을 쑥 빼면 몸 달아하며 구멍을 움찔거렸다. 늦장을 부리면 엉덩이를 바짝 들이밀며 넣어 달라고 졸랐다. 음탕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이런 꼴을 매일 밤 목도하니 내 의처증이 조금도 호전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감도가 좋은 몸뚱이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감대였다. 구멍까지 타고난 사람이었다. 끝내주게 잘 느낄뿐더러 조임도 뛰어났다. 어떻게 이런 몸뚱이로 42번가에서 용케 조용히 살았는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레이의 용모 망상증과 무신경한 성격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나도 한계였다. 레이의 허리를 부러질 듯이 졸랐다. 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물건을 최대한 박아 넣고 쌌다. 좁디좁은 내벽 안에서 물건이 요동치며 정액을 사출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전류같이 찌르르한 오르가즘이 뒤통수를 파고들었다. 깊숙한 곳에서 방출된 정액이 내벽을 타고 밖으로 흘러내리는 감각이 생생했다. 엉덩이를 벌려 그 꼴을 감상했다.

하얀 정액이 구멍 입구로 차오르더니 아래로 조금씩 뚝뚝 떨어졌다. 물건을 확 뽑아냈다. 느슨하게 열린 구멍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예 질질 떨어져 커버에 흥건히 고였다. 그 꼴이 아주 짜릿했다.

레이의 팔이 꺾였다. 아마빛 머리카락이 펄럭펄럭 하강했다. 엎드린 레이를 당겨 나를 보게 했다. 온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레이의 입술에 길게 키스한 뒤 좆을 빨게 해 주었다. 레이는 정액을 삼키길 좋아했다. 물건에 잔뜩 묻은 정액을 남김없이 빨게 한 뒤 한 번 더 키스했다.

레이가 내 어깨에 팔을 감았다.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나는 레이가 잠깐 쉴 수 있게끔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어떤 느낌이죠?”

나는 불쑥 물었다. 레이가 눈을 감으며 “어떤 느낌이라뇨?” 하고 물었다. 나는 레이의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정액을 받으며 대답했다.

“뭐긴요. 이렇게 아래로 내 정액이 흐를 때의 느낌이죠. 궁금해서요. 하하하. 아직도 쏟아지네요. 그렇게 많이 싼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레이의 낯이 벌게졌다. 나는 짓궂게 “어떠냐고 묻잖아요?” 하며 레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레이는 “디아나가 아직도 문을 긁네요.” 하며 딴청만 부렸다.

하여간에 이렇다니까…….

나는 웃음을 참았다. 아래에서 흐르는 정액을 받아 레이의 입술에 흘려 넣었다. 이것도 관장과 비슷한 쾌감을 선사했다. 수치심을 불러일으킬뿐더러 나를 위한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였다.

레이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서 두 번째 판으로 돌입했다. 레이가 좋아하는 오럴섹스를 했다. 식스나인 자세를 취하고 긴 시간 서로 빨아 주었다. 다음에는 가벼운 도구 플레이를 즐겼다. 입과 아래의 앞뒤 세 군데를 동시에 공격했다. 레이가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아마빛 머리카락에 휩싸여 실컷 뒹굴었다. 그런 다음 개운하게 거품목욕을 즐긴 뒤 잠자리에 들었다. 괜찮게 마무리된 하룻밤이었다.

깊은 물 밑같이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는 초저녁이었다. 황무지는 얼어붙은 겨울 오솔길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불현듯 무엇인가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앙상하게 마른 자작나무였다. 갈바람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자작나무 가지 아래에서 검은 그림자가 위태로이 흔들렸다. 송장이었다. 자작나무 가지에 줄을 늘어뜨린 채 목을 매고, 심술궂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왜일까. 왜 하필 자작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을까.

익숙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그것은 가방도, 돈도, 목적지도 잊은 채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의 고독감과도 비슷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라……. 틀리진 않지.

나는 웃었다. 시체를 매단 채 어둠에 파묻히는 자작나무를 재차 쳐다보았다.

저 시체를 매단 것이 버드나무였다면, 은전 서른 닢에 어떤 이를 팔아치운 죄책감 탓일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저건 자작나무 아닌가. 헛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아내를 참혹하게 살해하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뇌까렸다. 대답은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황량한 침묵뿐이었다. 알고 있다. 아무리 부르고 또 불러도, 목이 쉬어 잠길 때까지 외쳐도, 이 이름에 대답할 사람은 이제는 없었다. 그 사람은 사라졌으니까. 오래전에 죽었으니까.

이미 31년 전에 우리는 끝났다. 매혹적인 첫사랑은 썩어 버려, 악취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31년 전 축제의 밤, 축복하듯 환하게 빛나던 달은 어느새 파리하게 질린 낯빛으로 나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왕관과 푸른빛 망토만을 우두커니 걸친 앙상한 해골로 변해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죽는 날까지 그 사람을 회고할 기나긴 시간과 낡은 초상화 한 점뿐이었다.

문득 로쉬가 내 옆으로 다가섰다. 나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보고 드립니다. 신문에서 왕실 시종장이 그분께 배만 겨우 채울 양식만 보내고 모두 횡령했다고 실토했답니다. 탑에도 전혀 찾아가지 않았다고 했다더군요.」

나는 침묵했다.

머리만 멍했다. 사실이라니. 단 한 번도 탑으로 찾아가지 않았다니.

소렐의 회고록을 보자마자 왕실 시종장을 수사하라고 명령내리면서도, 그 끔찍한 폭로가 제발 거짓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건만 사실이라니.

두 번의 만남에서 내게 보여 준 그 허름한 차림이 변장이 아니었단 말인가. 15년의 감금만으로도 손끝이 시리건만, 배만 간신히 채우며 살았단 말인가. 31년간, 왕실 시종장이 내게 늘어놓은 추억담이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어째서 당신의 삶은 허물을 벗길수록 이토록 끔찍할 뿐인가. 왜, 어째서, 그토록 고통스럽게 살면서도 내게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째서 15년이나 침묵했단 말인가.

그토록 무섭고 나쁜 놈으로 보여서, 그때 이름조차 안 밝히고 떠나 버렸던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곡하는 바람이 황무지를 아스라이 휩쓸었다. 붉디붉은 잔인한 땅에는 잡초마저 돋아 있지 않았다. 단지 몇 그루의 앙상한 자작나무뿐이었다.

눈앞이 물기로 흐려졌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곳이 좋겠군.」

“……흐엇.”

나는 눈을 떴다. 여명이 희미하게 비쳐드는 아침이었다.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끔찍하게 궁상맞은 꿈을 꾼 것만은 분명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몸을 일으키다가 흠칫했다. 시트 밖으로 왼손이 하얗게 빠져나와 있었다.

레이였다. 저 모습이 흡사 시체 같았다. 병원에서 실수한 내게, 그때도 레이는 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무덤 같은 침묵을 지켰다.

나는 충동적으로 시트를 확 끌어내렸다. 레이가 “으음…….” 하며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안개가 희미하게 깔린 창밖에서 우유 배달차가 지나갔다. 갈증이 솟았다.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던 디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디아나를 강아지 침대에 옮겨 주고 집 밖으로 나섰다.

차디찬 아침 공기가 온몸으로 밀려왔다. 기분이 여전히 안 좋았다. 숫제 전신 한구석이 찌르르했다.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막 배달된 차가운 우유병을 들어 뺨을 문지르며 꿈을 되짚었다. 어렴풋했지만 줄기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좆같았다. 당장 욕이 튀어나왔다. 맙소사, 오마이갓, 지져스, 갓뎀, 아버지, 어머니, 소리까지 뒤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꿈에서 내가 고자새끼로 출연하다니!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하면 천지가 뒤집힐 궁상이었다. 레이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세계가 내 머릿속에까지 침투한 모양이었다. 그 좆같은 세계에서 나까지 주연배우로 활약하다니, 끔찍하게 엿같았다. 그것도 하필 그런 배역이라니. 뻘건 황무지에서 마누라를 회고하며 음산하게 히죽거리는 고자 왕이라니.

사절이었다. 할리우드 1급 개런티를 준다 해도 절대 사절이었다. 어떤 악질새끼가 각본을 썼기에 내레이션은 또 그 꼴이란 말인가. 마누라가 탑에서 그럭저럭 잘 지낸 줄 알았다? 마누라가 죽고 31년 뒤에야 자기가 왕실 시종장에게 홀랑 속은 사실을 깨달았다?

돌이킬수록 소름끼쳤다. 담배를 정원의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눈이 조금씩 떨어지는 아침이었다. 그러나 여명을 거두는 공기는 예전에 비하면 따스했다.

4월인가…….

한 통의 전화가 습격처럼 걸려온 뒤로 벌써 석 달이 지난 것이다. 바야흐로 봄이 성큼 다가온 시기였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허리를 펴고 벌떡 일어섰다. 요상한 꿈에 정신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바로 그 칼을 포획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가운을 벗으며 운동실로 들어갔다. 불을 켜고 오디오의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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