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L.
오후 2시까지 서재에 틀어박혀 원고와 씨름했다. 겨울이 긴 왕국에서 식물은 희귀품목에 가까웠다. 내가 쓰는 원고의 타깃은 집에 온실조차 두지 못하는 극빈계층이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원고를 써야 했다.
펜으로 턱을 톡톡 두들기다가 일어섰다. 메사라에게 미리 말해 둔 대로 오늘 오후 42번가로 외출할 예정이었다. 소니아와 약속시간을 잡은 다음 집을 나섰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오후였다. 근 4주 만에 들른 헌책방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실내를 건조시킬 겸 난방을 최대한 올려 놓고 소니아를 기다렸다. 식물도감을 고르고 있는데 문이 활짝 열렸다. 보라색 인조모피 코트를 걸친 미모의 여인이 날렵하게 달려왔다. 소니아였다.
“자기이!”
소니아가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전화통화는 자주했지만 대면은 두 달 만이었다. 임신했다기에 배가 잔뜩 부른 모습을 기대했는데 예전과 똑같았다.
“아니, 배가 하나도 안 불렀네요?”
“푸하하하! 하여튼 남자들이란……. 임신한 지 고작 넉 달이에요. 첫 임신에는 배가 눈에 띄게 부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요. 이 기회에 상식으로 알아 둬요, 후후후.”
“아아, 그렇군요. 나는 지금쯤엔 꽤 배가 불렀겠거니 생각했거든요.”
나는 머리만 머쓱하게 긁었다. 소니아가 “선물이나 봅시다.” 하고 말했다.
“어머, 굉장히 예쁜 걸 골랐네요? 세상에나, 신발에서 삐약삐약 소리까지 나네. 자기에게 이런 센스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자기, 그래도 우리 아기 선물이라고 신경 많이 썼군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어느 부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똑같은 것으로 골랐다고는 차마 말하기 힘들었다. 소니아가 옷을 들어 훑어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자기야, 지금에야 고백하는데 말이죠. 내가 선물을 조르면서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자기라면 틀림없이 핑크색 리본이 달린 초록색 원피스에 파란색 신발을 고를 줄 알았다고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요.”
“하하. 내 감각이 그렇게나 후져 보였나 보군요.”
“그럼요! 나, 처음에는 자기가 색맹인 줄 알았다고요. 지금도 봐. 갈색 스웨터에 검정색 코르덴바지에 회색 워커. 오늘도 어김없이 저 괴상한 쥐색 코트잖아요.”
“옷이야 몸만 가리면 그만이지요.”
“기능주의에 충실한 발언이네요. 하기야 자기 같은 사람이 옷까지 멋지게 입고 다니면 얄밉겠죠, 후후.”
소니아가 즐겁게 떠들었다. 나는 머리만 계속 긁었다. 그렇게 내 옷차림이 이상했던가. 하긴, 메사라는 외출할 때 내가 고르는 옷만 보면 기겁했지.
“자, 그럼 이건 답례여요.”
소니아가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내가 “이건?” 하자 소니아가 생긋 웃었다.
“동양식 샐러드예요. 한국계 이웃에게 얻었어요. 영양소가 풍부하고 암 예방에도 효과가 탁월하다고 들었어요. 이웃 말로는 한국 고유의 샐러드랬어요. 만드는 데만도 며칠씩 걸릴 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요. 그 나라 사람들은 매일매일 이걸 먹는다나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소니아.”
하필 한국식 샐러드라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을 따온 ‘아리수’가 어느 나라에 있는 강인지 궁금해서 서적을 뒤진 적 있었다.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다. 사진으로 본 아리수는 샌프란시스코 항만처럼 드넓었다.
그나저나 무슨 샐러드를 며칠씩이나 걸려서 만들까. 역시 동양은 신기하군.
성과 이름을 빚졌건만 내가 한국과 일본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마라타 역시 아주 어릴 때 왕국으로 이민 온 탓에 아시아, 하면 대나무 숲을 날아다니는 검객을 떠올리는 대다수 유럽인과 다를 바 없었다. 령을 뜻하는 이름 ‘레이’도 실은 마라타의 일본이름 ‘레이코’에서 따온,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소니아가 옷과 장난감을 가방에 챙기다가 “아, 그러고 보니.” 했다.
“자기, 혹시 주술사였어요?”
“네?”
나는 하마터면 선물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소니아가 “어머. 맞나 보네.”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자기가 즐겨 입는 저 쥐색코트 때문에요. 아까 여기로 오는데, 42번가 전철역 1번 출구 앞에서 마법숍이 오픈했다면서 한창 행사 중이더라고요. 그런데요, 거기에 자기와 똑같은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 뭐예요?”
“아아. 그랬군요.”
“들어보니까 주술사들이 주로 입는 코트라고 하더라고요. 우연인가, 했는데…… 정말 자기, 주술사였어요?”
“뭐, 옛날에 잠깐 주술사를 하긴 했죠.”
“신기하네! 저 괴상한 코트는 세상에서 자기 거 한 벌뿐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말이죠. 주술사들의 유니폼일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어요. 42번가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쩌면 난 그걸 몰랐을까.”
“주술사들은 보통 집에서 온종일 고객을 기다리느라 잘 안 나가니까 소니아 눈에 안 띄었겠죠. 그리고 나는 옷만 물려 입었지 지금은 주술사가 아니에요.”
“하긴, 자기는 주술사보다는 헌책방 주인이 훨씬 어울려요. 주술사, 하면 늘어진 매부리코의 늙은 할멈부터 떠오르잖아요.”
소니아의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어떤 숍이기에 주술사 코트를 걸친 주술사들이 대거 모였을까. 이 코트는 주술사라고 해서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소니아, 우리 거기 한번 구경 갈래요?”
“어머, 좋죠. 나도 어차피 집으로 가려면 그쪽으로 가야 하는걸요. 게다가 무료로 점을 봐 준다나 봐요.”
소니아와 함께 헌책방을 나섰다. 20분 만에 지하철 1번 출구가 가까이서 보였다. 숍은 바로 눈에 띄었다. 마녀숍, 하면 떠오르는 음침한 이미지와는 판이한 세련되고 현대적인 외관이었다. 출입구 앞에 설치된 풍선이며 꽃들도 패션숍 오픈 행사에 가까웠다. 출입구 앞에 십여 명의 주술사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소니아가 내 옆구리를 잡아끌며 속삭였다.
“봐요, 웃겨서 미치겠어. 자기하고 정말 판박이라니까. 호호호.”
내가 봐도 우스꽝스럽긴 했다. 어쨌든 재미났다. 실력파 주술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손님을 끄느라 안간힘쓰는 광경이란 흔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손님 다 도망가겠네. 꽃과 풍선이 울겠어요. 마녀라고 해서 모두 저런 옷을 입진 않을 텐데 말이죠.”
“소니아의 말대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썩 좋아 보이지 않네요.”
주술사들에게 팸플릿을 받아 훑어보았다. 42번가는 뛰어난 주술사들이 모인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일반인이 여기를 거닐려면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걸 고심한 주술사들이 이 숍을 차렸다고 팸플릿은 설명하고 있었다. 42번가 전철역 1번 출구는 매음굴에서 꽤 떨어져 있어서 마법숍을 차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팸플릿을 끝까지 읽었다.
“자기야. 우리 공짜 점이나 봐요.”
소니아가 내 팔을 흔들며 재촉했다. 숍으로 들어갔다. 1층 전체가 오픈기념 행사로 북적거렸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과 숍 직원들, 주술사들로 인산인해였다. 소니아가 “수정구 점을 쳐 보고 싶어요.” 했다.
“그래요? 수정구 점을 치는 주술사들은 구석의 컴컴한 곳에 있을 거예요. 음…… 저쪽인 것 같군요.”
내가 가리킨 곳에서 주술사가 수정구로 사람들에게 점을 봐 주고 있었다.
“어머. 자기 말대로네. 어떻게 알았어요?”
“수정구는 보통 빛을 등진 채 어두컴컴한 배경을 앞에 두고 보거든요. 수정구를 보려면 스크라잉Scrying이라고, 초상(肖像)술이 필요해요. 고객이 원하는 정보나 미래를 수정구를 통해 상이 맺히도록 하지요. 그래서 사실 수정구는 제대로 쓸 줄 아는 능력자가 드문 편이에요. 하지만 여긴 이름난 주술사들이 차린 곳이니까 신뢰할 수 있겠죠.”
“어머나, 그랬군요. 신기해라…… 자기, 진짜 그럴싸한 주술사 같아요.”
어느새 수정구 주술사 앞이었다.
“이번 주 하트웰 복권 1등 당첨번호를 가르쳐 줘요.”
소니아가 냉큼 말했다. 우물쭈물하던 주술사가 “그런 건 봐 주지 않습니다.” 했다. 소니아가 “왜죠?” 하며 발끈 화냈다.
“아하하. 소니아, 1등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족족 주술사가 해답을 말하면, 그 번호로만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십만 명은 될 거예요. 십만 명이 나눠먹는 1등 금액은 카페 아르바이트 일당보다 못하겠죠. 그런 것보다는 다가올 액난의 시기라든가 직업 선택 등등을 묻는 편이 나아요.”
“어머. 그도 그러네. 음…… 그럼 제가 언제쯤 부자가 될지 가르쳐 줘요.”
소니아의 천진난만한 요구에 수정구 주술사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수정구 주술사가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하며 뜸을 들였다.
소니아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수정구를 쳐다보았다. 계속 기다리자니 지루했다.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 난방까지 후끈후끈해서 매우 더웠다. 주술사들마저 코트를 벗은 채 점을 봐 주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후드를 약간 젖혔다. 수정구 주술사가 얼른 점괘를 내주기를 바라며 손바람을 부쳤다.
“저기. 혹시?”
갑자기 뒤에서 어깨를 톡 밀렸다. 고개를 돌린 나는 깜짝 놀랐다.
“역시 맞군요. 하하핫. 여기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칼 바르디 공작이었다.
황당했다. 세 번이나 마주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나는 후드를 쓴 다음 고개를 돌렸다.
“이런, 그때 일은 제가 사과하죠, 하하핫. 솔직히 제 딴엔 괜찮은 제의랍시고 건넸거든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바르디 공작이 주절주절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귀족이 평민에게 사과하는 일은 드물었다.
귀족치고는 특이한 사람이네.
“어머, 오빠. 혹시 이 사람이야? 금발의 정령?”
대뜸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가 바르디 공작 옆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소렐 씨의 파티에서 바르디 공작과 동행한 여자였다. 바르디 공작이 “응.” 했다. 여자가 흐흥, 하며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저리 입으니까 가면무도회 때와는 느낌이 딴판이네. 당신, 그거 알아요? 후후, 당신 때문에 우리 오픈 파티에 42번가의 주술사 코트를 입은 주술사란 주술사는 다 불러 모았다고요.”
“예?”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지 않으면 파티비용을 내주지 않겠다고 오빠가 고집을 피워댔죠. 내 참, 신데렐라를 찾는 왕자님도 아니고. 당신이 혹시 올까 싶어서 며칠 전부터 여기를 온종일 서성거리기까지 했고요. 온 김에 나랑 차나 한잔하고 가요. 오빠가 관심을 주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거든요. 한데 당신, 정말 스물여덟 살 맞아요?”
뭐, 뭐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아가씨, 설마 지금 내게 자기 오빠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라고 권하는 건가.
무슨 심산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하나는 뚜렷했다.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했다.
때맞춰 수정구 주술사가 입을 열었다.
“조만간 큰 부자가 되시겠습니다.”
“조만간? 언제요?”
“빠른 시일에요.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아주 값진 선물을 하십니다. 반짝거리는 보석…… 화려한 목걸이가 보이는군요. 무뚝뚝한 성격과 달리 남편께서 부인에게 품은 마음이 깊은가 봅니다.”
“어머, 호호호.”
소니아가 웃었다. 나는 “가요, 소니아.” 하며 소니아를 잡아끌었다.
“자기는 점 안 봐요?”
“관심 없어요.”
소니아와 함께 자리를 황급히 떠났다. 바르디 공작이 졸졸 따라왔다.
“동행하신 분이 몹시 신비로운 동양 미녀네요. 중국계인가요? 일본계? 혹시 저 신비로운 미녀가 그쪽에게 목걸이와 옷을 빌려준 센스만점의 친구?”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쿡쿡 찔렀다. 나는 침묵하며 걸어갔다.
“벙어리 아닌 걸 뻔히 아는데 이것 참 민망하네요. 대답 좀 해 봐요.”
정말 끈질겼다. 나는 건성으로 “맞습니다. 그럼 이만.” 하고는 숍을 나왔다. 소니아가 “어머, 저 사람 유명인사 아닌가?”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자기, 저치를 어떻게 알아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2의 소크라테스?”
“비슷합니다.”
“저 섹시한 공작님이?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니까……. 어머, 저것 좀 봐. 출입구에 서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네요. 그런데 저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우리, 이 기회에 불륜이나 한번 저질러 볼래요? 호호호.”
소니아의 능청에 나는 박장대소했다. 그녀와 키스를 나눈 후 전철역에서 헤어졌다.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바르디 공작이 보디가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메사라가 가운만 걸친 채 식당으로 들어섰다. 나도 의자에 앉다가 멈칫했다.
“왜 그래요, 레이?”
“아. 오늘 친구에게 선물 받은 동양식 샐러드가 막 생각나서요. 신선할 때 얼른 먹어야지요.”
“동양식 샐러드요?”
나는 선물상자를 풀며 “네. 한국 고유의 샐러드라고 하더군요.” 했다.
“아, 한국.”
“거기가 아리수라는 강이 흐르는 나라예요. 내 성을 따온 강이요.”
“아아, 기억납니다. 아리사, 아리수……. 이거 샐러드도 기대되는데요. 하하하.”
“나도 그래요. 사실 한국에 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거든요.”
나는 선물상자를 열었다. 일순간 아연해졌다.
한국식 샐러드는 전부 이런 식인가. 색깔이 몹시 빨갰다. 빨간색 샐러드라니, 생야채나 과일의 맛을 그대로 즐기기 위해 간단한 소스만 버무리는 서양식 샐러드와는 딴판이었다.
빨간색과 노란색을 동양에서는 길하게 친다고 들었다. 그래서 샐러드도 빨간색으로 물들였을까. 향내는 듣던 대로 독특했다. 고춧가루가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일부러 듬뿍 첨가한 색소 때문에 이렇게 된 듯했다.
피망을 갈아서 넣었나. 설마 이게 전부 고춧가루 물은 아닐 테고.
접시에다가 샐러드를 부어 담고 식탁에 올렸다. 메사라도 눈을 크게 떴다.
“뭐가 이렇게 빨갛죠?”
“글쎄요. 일부러 물들인 것 같은데. 서양식 샐러드와는 딴판이네요. 쓰인 야채는 배추인데…….”
“흐흠. 배추라. 그러고 보니 일본음식도 일부러 색색의 물을 들이긴 하지요.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가.”
메사라가 샐러드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들어 올리자 붉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메사라가 “호오.” 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렸다. 나도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둘둘 말았다.
“피같이 붉은 샐러드라……. 역시 동양의 신비는 헤아릴 수 없나 봅니다.”
“동양의 신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양소가 풍부하고 암 예방에도 효과가 탁월하다고 하더군요. 마늘 냄새가 많이 나는데 그 때문에 그런가.”
나는 샐러드 냄새를 킁킁킁 맡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이거 우리도 매일매일 먹어야겠네요. 자, 우리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메사라가 웃으면서 건배하듯 포크를 들어올렸다. 나도 따라 웃으면서 포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찰나 입안에서 불이 확 붙었다. 독한 인도 카레에 후추를 잔뜩 섞은 듯했다. 어찌나 매운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메사라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입을 움켜쥐며 물 잔으로 손을 뻗었다.
다음날 소니아에게 샐러드를 맛본 감상을 말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전화를 했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 술집 생활을 청산한 뒤부터는 집에서 독학으로 의상 공부만 한다고 들었는데 의아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