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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 (68/101)

11 .M─

레이가 이쪽을 자꾸만 흘끔거렸다. 처음에는 나도 별생각 없었는데 갈수록 영 수상쩍었다. 동공을 흐릿하게 빛내며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

레이가 왜 저러지.

혹시, 그걸 하고 싶어서 저러나.

그걸 하고 싶어 하는 게 맞는 듯했다. 섹스할 때 내가 레이를 짓궂게 놀리면 으레 보이던 반응과 흡사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레이에게서 거의 보지 못한 행동이었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기분 좋기도 했다. 레이는 나와 달리 성적으로 담백했다. 할 때는 적극적으로 반응하되 레이 쪽에서 먼저 요구한 횟수는 손에 꼽았다. 내 기억으로는 딱 한 번이었다. 일명 ‘고등어로 나를 유혹한 날’이 그것이었다.

하하. 뭐, 들어주지 않을 이유야 없지.

나는 지그시 웃었다. 골목 어귀에 차를 세웠다. 레이가 무릎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평소의 레이라면 “왜 갑자기 차를 세워요?” 할 텐데 그저 조용했다.

역시…….

나는 레이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슬슬 쓰다듬었다. 레이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점잖게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레이가 해 달라고 조를 때 즐거웠다. 그래서 일부러 섹스 도중 레이 스스로 넣어 달라는 말을 하게끔 종종 요구하거나 유도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럴 작정이었다.

나는 목덜미를 애무하며 뜸을 들였다. 레이는 침묵만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저 노력과 달리 금세 달아오르는 체온이 손끝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오래 안 끌고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 참고 버틸지 한번 봐 주지…….

레이가 창피한 기색으로 이쪽을 곁눈질했다. 이상하네, 저 짐승 같은 남자가 왜 안 덤벼들까, 나는 하고 싶은데…… 하고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나는 집요하게 귓불과 목덜미만 애무했다. 예상대로 오래 못 갔다.

레이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스웨터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희디흰 가슴이 노출됐다. 잠깐 후 머뭇거리며 말했다.

“해…… 해 줘요.”

그럼 그렇지.

나는 씨익 웃었다. 망설임 없이 가슴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나도 레이의 유두를 좋아했다. 작고 예민하며 달콤했다. 대개의 남자는 클립으로 유두를 단련해도 느낄까 말까 한데, 레이는 드물게 가슴 쪽 성감대가 발달한 편이었다. 여기만 제대로 빨아 줘도 레이는 자지러졌다.

레이가 충분히 만족하도록 긴 시간 가슴을 빨고 씹고 핥았다. 흥건히 흐를 만치 타액으로 적셔 주었다. 그러며 옷을 모두 벗겨내 알몸으로 만들었다. 예외 없이 비누향내가 은은히 풍겨 나왔다.

나도 이제 바짝 흥분한 상태였다. 레이의 가랑이를 최대한 벌려 놓고 맘껏 탐했다. 황금빛 음모를 혀끝으로 적시며 그가 갈 때까지 한껏 빨아 주었다. 두 번이나 보내 버렸다. 레이가 허벅지를 떨며 신음했다. 동공이 설핏 풀린 얼굴이 아주 짜릿했다.

즐거우면서도 아쉬웠다. 평소라면 벌써 구멍에다가 좆을 처박고 질질 싸 줬을 텐데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아서 불가능했다. 나는 바지 지퍼를 내리며 레이의 머리를 눌렀다. 아쉽지만 이걸로 달랠 수밖에…….

“어서.”

아마빛 머리카락을 훑으며 재촉했다. 두말 않고 레이가 내 물 건을 삼켰다. 흡입강도가 처음부터 퍽 거셌다. 깨나 내 물건이 빨고 싶어 애가 탔던 모양이었다. 나는 좆을 빠는 레이를 즐겁게 응시했다.

제법 볼만했다.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외설적인 모습이었다. 내 시선을 의식한 레이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저래 봤자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내 물건을 더 세게 빠는 것만 봐도 속내가 환히 보였다. 내 정액을 삼키고 싶어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내가 그의 목구멍으로 진한 정액을 질질 싸 주길 원하고 있었다.

저런 대담한 반응이 유쾌했다. 레이의 머리를 꾹 누르며 물건을 깊숙이 삽입했다. 허리를 빠르게 치올렸다. 불알이 레이의 턱을 쳤다. 입천장이 허물어지는 기분일 것이다. 그래도 난폭하게 처넣었다. 레이는 이런 거친 삽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알았다.

레이의 펠라치오는 아직 서툴렀다. 나는 레이의 유두를 애무하며 “불알도 핥아요.”, “혀를 좀 더 세워서.” 하고 부지런히 지도했다. 절정을 예고하는 짜릿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레이의 목구멍으로 최대한 물건을 박아 넣고 정액을 쌌다. 싸면서 레이의 목을 가볍게 졸랐다. 단박에 부드러운 점막이 꿈틀거리며 귀두 끝을 욱죄어 물었다.

짜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레이의 손가락이 덜덜 경련하며 내 어깨를 잡았다. 오르가즘이 전신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정액을 다 싼 후에야 목에서 손을 떼어 냈다. 나는 레이의 턱을 들어 올렸다. 레이가 괴롭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반들거리는 입술에서 한 줄기 흰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불현듯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몰려들었다. 레이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저 엉망으로 구겨진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다니. 진정 못 말리는 사디스트였다.

나라는 녀석이란…….

쓰게 웃으며 그의 알몸을 끌어안았다. 버석거리는 셔츠 위로 닿는 나체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열기가 감도는 등을 길게 쓰다듬었다. 레이도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나른히 기댔다. 잠깐 그렇게 서로 몸을 포갠 채 숨을 골랐다.

여운이 가신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좋았어요?”

레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도 바지 지퍼를 채웠다. 가볍게 즐긴 것치고는 만족스러운 섹스였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웬일입니까. 아까 달려올 때도 그렇고. 간만에 먼저 해 달라고 조르고.”

“간만에라뇨?”

레이가 스웨터를 걸치다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간만이죠. 고등어로 나를 유혹한 날 이후 처음 아닙니까.”

“유혹?”

레이가 양미간을 중앙으로 모았다.

“그게 유혹인가요.”

“그럼요. 유혹이지요. 고등어 좋아하냐며 나를 유혹해서는 당신 집으로…… 하하하. 그땐 정말 당신이 대담했지요. 그런데 왜 지금 새삼스레 놀라는지 괜히 내가 머쓱하네요.”

내 유쾌한 대답에 레이의 낯이 벌게졌다. 나는 핸들을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 정작 고등어는 못 먹었지요. 그런데 정말 유혹 아니었습니까? 내가 착각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넣어 달라고 당신이 조르기까지 했잖아요.”

“……그러긴 했지요.”

레이가 민망하게 웃으며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사거리에서 방향을 꺾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유혹이 아니었단 말인가. 진짜 고등어만 먹이려고 나를 불렀단 말인가.

이내 깨끗이 의구심을 치웠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게 유혹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세상천지 어느 남자가 그걸 고등어만 먹고 가라는 뜻으로 해석한단 말인가.

뻔한 것 아닌가. 그런 말도 못 알아들으면 바보천치멍청이였다. 그건 십대소녀가 남자친구에게 “오늘 부모님이 여행 가셔서 집이 비는데 놀러 올래?” 하는 거나, 독신녀가 직장 남자동료에게 “오늘 밤 내 집에서 술 한잔할래요?”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레이가 먼저 팬티를 벗고 다리까지 벌렸다. “넣어요.” 하고 졸랐다. 열이 끓고 있는 상태에서도 내게 야릇한 눈길을 던지며 남자의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달구었다. 아주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지나가던 애꿎은 남자 꼬셔서 집으로 끌고 간 쪽이 누군데 지금 와서 시치미를 뚝 떼다니. 억울했다. 어째 나만 이상한 놈으로 몰린 기분이었다.

나는 어깨만 으쓱 올리고 말았다. 레이도 참 개성만점이라니까.

25번가로 향했다. 얼음 축제를 즐기려 몰려드는 인파 탓에 주차에만 30분을 소요했다. 예약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이와 함께 식사를 즐기며 대화도 나누었다.

“수채화 전시회는 어땠습니까. 볼만했어요?”

“좋았어요. 소박한 분위기가 기분을 편하게 해 주더군요.”

“그랬군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술을 마셨다.

제법 괜찮은 하루였다. 푸셔가 왕비에게 요즘 부지런히 선물을 바친다는 정보가 오늘자 보고서로 올라왔다. 칼 포섭을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칼은 얀케리가 사망한 이틀 뒤 푸셔의 조카딸을 차 버렸다. 그러고는 지금껏 파티장 활보도 안 하고 가끔 미술전시회나 돌아다녔다. 일명, ‘마약방지캠페인’이 거둔 재미가 자못 쏠쏠했다.

그간 내 근심을 산 레이도 드디어 회복한 듯싶었다. 열흘간 우울하게 지내며 식사도 잘 안 했는데 오늘은 활기를 되찾은 기색이었다. 먼저 그걸 하자고 조른 것부터가 좋은 징조였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레이를 응시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레이가 당황해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아, 미안합니다.” 하며 젓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레이에게서 특유의 체향이 여기까지 풍겨왔다. 레이가 즐겨 쓰는 밀크비누 향내였다.

오늘도 레이는 나체로 지냈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내가 변태 같았다. 정말이지 도리 없는 녀석이었다.

레이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집안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경비업체의 권유로 설치한 것으로서, 내 전용 노트북으로 실시간 화상전송이 되게끔 한 최신 기기였다. 집밖에만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 됐지, 집 안에까지 꼭 설치해야 하느냐고 내가 묻자 경비업체 영업사원 왈,

「베이비시터가 아기를 학대하는지 살펴보려는 목적으로 워킹맘들이 이 서비스를 즐겨 이용하십니다. 대낮에 강도가 침입할 경우에도 유용합니다. 어쨌든 간에 꼭 설치하면 아주 좋습니다.」

라고, 우겼다. 하도 통사정하기에 나는 그러라고 수락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감시화상을 훑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레이와 나 사이에는 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왕국의 혹한은 강도들마저 겨울잠을 자는 곰으로 탈바꿈시킬 만큼 강력했다. 눈의 여왕 초상화가 박살난 뒤 레이가 의욕상실 상태로 접어들지만 않았다면, 실내 감시카메라는 전기만 잡아먹는 애물단지 노릇이나 했을 것이다.

오늘도 레이가 우울해하나, 이왕 설치했으니 본전도 뽑을 겸 한번 체크해 보자…… 하고 일주일 전에야 별생각 없이 화상을 켰다. 그 첫 순간, 내가 얼마나 경악했는지 레이는 추호도 모를 것이다. 내 정신 상태도 잠깐 의심해 보고, 송출코드가 잘못되었나 추측해 보기도 했다.

아니었다. 모니터는 분명,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채 부산히 저녁준비를 하는 레이를 생생한 고화질 라이브로 보여 주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찌 상상하겠는가. 비록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시큰둥하되, 저 레이가 게이잡지 특집화보에나 나올 코스튬을 대담하게 연출하리라고 어떻게 꿈이나 꾸겠는가!

그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만 레이가 누드로 지냈나 싶어(이유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이튿날에도 화상을 체크해 보았다. 충격적이게도 레이는 알몸에 빨간 고무장갑만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우연하게도 내가 화상을 체크할 때만 레이가 누드로 지냈나 싶어, 다른 시간대에 또 화상을 열어 보았다. 결과는 같았다. 알몸에 검은 방수장화만 신고 온실을 가꾸는 레이를 목격했다. 계속 보다가는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성을 감지하고 급히 화상을 껐다.

그때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인형눈알을 함께 달았던 그 날, 레이는 알몸에 가운만 걸친 채 나를 맞이했다. 비로소 모든 정황을 이해했다. 저건 습관이었다. 레이는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자연스레 나체로 지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일명, ‘레이의 은밀한 비밀’.

덕분에 그날부터 나는 퇴근할 때마다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혹여 레이가 알몸에 앞치마만 두른 도발적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지 않을까, 소박한 희망을 좀 품었다. 결과는 번번이 실망스러웠다. 레이는 칼같이 옷만 잘 챙겨 입고 나를 맞이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어제는 침실에서 최고급 앞치마를 선물하며 의미심장한 눈짓을 던져보았다. 레이는 말없이 파자마 위에 앞치마를 둘둘 두르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치즈머핀 두 조각을 구워 가져왔다. “야밤에 간식을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하며, 얼어붙은 내 앞에서 조용히 웃었다.

서운했다. 의아하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그토록 대담하면서 정작 내 앞에서는 고리타분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을 섞은 지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같은 사이에서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술을 마셨다.

하여간에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니까…….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향했다. 시민들이 직접 얼음조각을 만들며 참여하는 축제였다. 재미난 형상의 각종 조각들을 구경한 후 레이와 나도 눈사람을 만들었다. 즐거웠다. 긴 시간 놀다가 숨도 고를 겸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이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일순 머리끝까지 한기가 치달았다.

쿠퍼헤드와 레오파드였다.

한동안 나는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건 건너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좌우에 늘어선 얼음조각과 일심동체가 되어 침묵만 지켰다.

저 녀석들을 하필 여기서 마주치다니. 그것도 레이와 노는 꼴을 딱 걸려 버리다니.

레오파드와 쿠퍼헤드에게도 일행이 딸려 있었다. 쿠퍼헤드는 요사이 꼬시느라 혈안이 된 섹시한 미혼모와 함께였다. 꼴에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수작인지 유모차까지 직접 밀고 있었다. 레오파드는 옆구리에 반반하게 생긴 바텀 한 명을 끼고 있었다.

“왜 그래요, 자기?”

레오파드의 파트너가 교태를 부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제야 레오파드가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움찔했다. 쿠퍼헤드도 입매를 찔끔찔끔 움직였다. 두 녀석의 면상이 꼭 무덤을 맨손으로 파헤치고 나온 좀비와 마주친 듯했다.

“음.”

나는 수인사를 던지고 그들을 재빠르게 지나쳤다. 어쩔 수 없었다. 레오파드뿐이면 모르되, 딱따구리까지 목격했다. 30분 안에 우리의 재결합 소식이 전 부장들의 귀로 들어갈 것은 불 보듯 빤했다. 나는 투지를 단단히 다졌다.

다음날 아침, 예상대로 자료부에 도착하자마자 눈총이 빗발쳤다. 레오파드 혼자만 신문을 읽으며 딴청을 피웠다.

부장들은 오전 내내 광분하다가 점심 무렵부터 태도를 바꿔 설득에 나섰다. 령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지 않느냐부터, 네가 지금 이러는 것도 령이 마법을 건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음모설을 포함, 막판에는 다른 금발미인을 소개시켜 주마 하는 치졸한 소리까지 나왔다.

나는 철판안면으로 일관했다. 오후 3시, 첫 번째 항복자가 등장했다. 재규어였다. “어째 요즘 면상에서 반짝반짝 윤이 난다 싶더니.” 하며 이를 갈았다. 재규어를 필두로 부장들이 차례차례 백기를 들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령에 대한 보고서를 반드시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군말 없이 수락했다. 우리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점에서 동류였다. 그날 저녁 나는 웃으며 퇴근했다. 제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마지막에 웃는 자는 나였다. 언제나 그랬다. 하물며 부장들이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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