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L. (43/101)

10 ─L.

“왜 그러는가?”

마넨 경이 재촉했다. 내가 계속 침묵을 지키니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다.

이건 또…….

나는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편안한 한 달이 되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뭔가 이상해서 말입니다. 울프삭에게서 마넨 경과 그리폰 사 관련 내용이 자꾸 쏟아져 나오는군요.”

“로비 말인가?”

“예.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울프삭은 마넨 경의 카타콤 발전소 비리를 스캔들로 발전시킬까 말까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문제는 울프삭이 아니었다. 스네이크였다.

“스네이크는 그리폰 사가 심각한 불량업체라는 이유로 로비를 거절했습니다. 그 대신 마넨 경과 그리폰 사의 금전 거래를 빌미로 엮어 보자고 울프삭에게 제안했고요. 그러나 울프삭은 생각이 다르군요. 스네이크가 쓸데없이 나서는 바람에 자기가 한몫 챙길 기회를 놓쳤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허허.”

“경께서 이미 드신 ‘쿠키’가…….”

“이천오백만 탈란텐. 그리폰 측에 다시 돌려주어야 할까.”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마넨 경은 ‘쿠키’ 외에도 업체 측에 10프로의 커미션을 요구했다. 사용 자재에 비해 훨씬 높게 계산한 비용을 제출했으니, 거기에 또 탈세를 저질러 함께 나누어먹자고 제시했다. 이게 스캔들로 비화된다면 언론사 비리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마넨 경이 위험해질 터였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우선 경께 쿠키를 건넨 로비스트와 접촉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제게 연락하십시오. 벌써 행동에 나서기에는 이르다고 봅니다. 울프삭은 스네이크의 제안을 탐탁찮게 여기는 눈치니까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밤 열한 시 이후에 연락 주십시오.”

“알겠네.”

통화를 끝내고 욕실 바닥에 비실비실 주저앉았다. 밖에 있는 소니아 때문에 소리를 낮춰 통화해야 했다. 통화하는 내내 오금이 저린 터였다.

욕실을 나섰다. 비좁은 원룸에서 소니아는 빠르게 러닝머신을 뛰며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다.

“자기, 누구랑 통화하느라 욕실에 숨어서 속닥속닥했어요? 흐흠…… 하여간 은근히 할 건 다 하는 양반이라니까.”

깔깔 웃던 소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자기 손에 그 자작나무 가지는 뭐예요? 통화하면서 등이나 머리 긁으려고 가져갔어요?”

“아니, 뭐.”

나는 우물쭈물하며 자작나무 가지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한참 뒤 소니아가 숨을 몰아쉬며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올 테니까 채널 돌리지 말아요. 조금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시작하니까.”

욕실에서 물소리가 잇따랐다. 잠시 후 소니아가 흥얼흥얼하며 룸으로 들어섰다. 간단한 가운만 걸친 채 얼굴에는 오이 팩을 붙이고 있었다. 아무리 게이라지만 저런 모습은 보기 민망했다.

그녀가 “자기도?” 하며 내게 오이를 건넸다. 나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소니아가 깔깔 웃었다.

“하긴, 자기는 팩 안 해도 상관없겠죠. 사실 피부는 남자들이 훨씬 좋다니깐요. 오윈 씨만 해도 저 같은 기미는 없더라구요.”

“기미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요? 이렇게 큰 기미가 안 보인단 말예요?”

소니아가 손가락으로 뺨을 가리켰다. 한참을 들여다본 끝에야 개미눈물만 한 얼룩을 찾았다. 나는 “예…….” 하고 얼빠진 음성을 흘렸다.

“어머, 시작이네. 오늘이 하이라이트예요.”

“혼자 보고 있어요. 저는 눈 좀 붙일게요.”

드라마의 오프닝 음악을 들으며 시트를 뒤집어썼다. 「눈의 여왕」이었다. 오늘 방영분은 「눈의 여왕」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다.

“……미안하지만 소리 조금만 낮춰 줘요, 소니아.”

나는 저 이야기가 싫었다.

증오스러웠다.

구역질났다.

참을 수 없으리만치 혐오스러웠다.

어느 옛날이었다…… 초록 숲이 곳곳에 넘실거리고, 들판에는 미나리아재비와 아네모네, 라벤더와 수선화, 돌능금꽃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꽃을 피우던, 어느 오랜 옛날.

벌새와 종달새, 파랑새가 날갯짓하며 창가에 내려앉던, 아주 오랜 옛날. 이제는 몇 백 년 전의 그림에만 박제처럼 남은 그 풍경이 실제로 이 왕국에 존재했던 그때.

그 아주 오랜 옛날에 어느 잔혹한 왕이 있었다.

밖으로는 외국의 침입이 잦으며 안으로는 귀족들의 다툼이 극심한 시기였다. 왕은 유력 문신귀족의 어린 딸과 정략결혼하여 세력을 공고히 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장인은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그 딸은 탑에 유폐되었다. 왕을 만나기는커녕 공식행사조차 초대받지 못하는 이름뿐인 왕비로 비참한 나날을 영위했다.

왕은 결혼식 후 한 번도 왕비를 찾지 않았고, 일말의 관심도 품지 않았다. 왕에게는 결혼하기 전부터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레비탄.

왕은 장인이 사망하자마자 왕비와 이혼을 고려하리만치 레비탄을 사랑했다. 그러나 레비탄은 왕과 결혼할 수 없는 평민이었다. 그런 이유로 왕은 이혼 대신, 이름뿐인 왕비와의 결혼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왕비를 폐위시키면 세력 있는 귀족의 딸과 결혼해야 했고, 그럴 경우 레비탄과의 관계를 온전히 보전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소니아가 시트를 툭툭 건드렸다.

“이 장면 정말 안 봐요, 자기야? 얼마나 드라마틱한데.”

“안 봐요.”

어느 날 왕과 레비탄은 평민으로 변장하고 거리의 축제에 잠입한다. 혼잡한 인파 속에서 서로를 놓쳐 버리고, 길거리를 헤매던 왕은 길디긴 검은 머리의 여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여자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혹한 왕은 그녀에게 춤을 청한다. 밤이 깊어지자 여자는 인파 속으로 흔적을 감춰 버린다. 왕은 레비탄을 다시 만나 궁으로 돌아간다.

“그나저나 이번 시리즈의 왕은 정말 잘생기지 않았어요? 자기가 좋아할 타입 같은데. 한번 보라니깐요?”

소니아가 즐겁게 떠들었다.

나는 “저런 타입은 관심 없어요.” 대답했다.

왕은 왕실 가면무도회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와 다시 마주친다. 여자는 시녀로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왕은 몰래 여자의 뒤를 밟고, 왕의 미행을 눈치 챈 여자는 황급히 도망간다. 왕은 집요하게 여자를 뒤쫓아 간다. 긴 추적 끝에 왕비가 유폐된 탑 근처에서 왕은 여자를 붙잡는다. 한사코 몸을 빼려는 여자에게 왕은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달빛이 내려오는 자작나무숲에서 관계를 맺는다.

왕이 정신을 차렸을 때 옆에는 여자 대신 자작나무 가지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말 우유부단하다니까. 레비탄이 있는데도 왜 스노우 퀸을 쫒아갔을까요. 남자들은 다 저러나? 흥, 웃겨.”

왕은 이후 시녀들을 눈여겨보지만 여자는 찾아내지 못한다. 그 무렵 레비탄이 임신한다. 왕은 왕비와의 이혼을 다시 한번 고려한다.

그러던 중 왕실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왕비가 마법을 써서 레비탄을 저주한 것이다. 왕비는 혐의를 극구 부인한다. 왕의 모후는 대노하여 왕비를 지하에 가두어 잔인하게 고문하라고 명령한다. 왕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모후를 달래지만, 그즈음 왕국의 변경에서 이웃국가와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에 뛰어든 왕은 왕비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두 달 뒤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왕은, 왕비가 며칠 전 고문을 못 이겨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왕은 별다른 감흥 없이 왕비의 시체를 황무지에 매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레비탄을 왕비로 맞아들인다.

몇 달 뒤, 레비탄이 아들을 순산하고 왕실에서는 파티가 열린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고 축하한다.

그리고…….

“자기야! 이 장면은 중요하니까 꼭 봐요! 자꾸 잠만 자니까 자기가 이상해지는 거라구요!”

소니아가 시트를 확 젖히며 재촉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궁정화가가 왕실 사람들을 그린 연작을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왕이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다가 내려놓았다. 옆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새 왕비 레비탄이 아이를 안고서 웃고 있었다.

왕이 그림들 중 한 작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 여자는?」

「현 왕비님을 저주하여 벌을 받아 암흑 속으로 사라진 마녀입니다, 폐하.」

「언제 그렸느냐.」

「잊으셨습니까? 일 년 전,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의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마녀의 탑을 찾아가 스케치한 것을 토대로 완성했습니다.」

「저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자작나무 가지입니다. 내 이름이 자작나무(Whitebirch)니까, 하며 자작나무 가지를 들고 있겠노라고 하더군요. 머리가 굉장히 길지요? 태어나서 거의 자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니아가 눈을 부릅떴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지금껏 기다려 왔노라, 외치는 듯했다.

「자작나무…….」

왕이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충격과 황당함, 어이없음으로 범벅이 된 낯이었다. 레비탄이 “왜 그러십니까, 폐하.” 하며 왕을 부축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일그러진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굿! 구웃!”

소니아가 열광적으로 박수를 퍼부었다.

“왕의 표정 봤어요? 죽이죠? 게다가 바로 엔딩이라니! 이게 진정한 여운이라니깐요. 저번 버전은 왕이 눈물을 질질 짜대고 난리치는 장면을 어찌나 길게 넣었는지 짜증나서 죽을 뻔했다구요.”

나는 “그러네요.” 하며 물을 급히 들이켰다.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소니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을 시작했다. 화려한 옷을 걸치고는 룸을 빙글빙글 돌며 “자기, 나 이뻐요?” 했다. 오윈 씨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다고 했다. 소니아는 곧 술집 생활을 청산하고 오윈 씨와 가정을 꾸릴 예정이었다.

“갔다 와요. 저는 이만 자야겠네요.”

소니아를 보내고 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달리 표현할 수 없으리만치 울적했다. 시트를 투과한 황폐한 형광등 빛이 온몸을 감쌌다.

드라마 장면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내려놓던 왕. 정말로 그랬을까. 조금이라도 놀라고 당황해 주었을까. 나야 알 수 없었다.

그때 이미 너는 죽었으니까.

귓가에서 피리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를 울렸다. 그리고 너울거리는 베일과 펄렁펄렁 원을 그리는 치맛자락들.

안 돼…… 제발 가 버려.

가라니까, 이 바보야!

가늘게 트인 시야 속으로 축포가 터졌다. 흐르는 시간 사이사이에서 어느덧 눈앞의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와아……」

망토자락이 펄럭거렸다. 맑디맑은 만월의 밤이었다. 피리소리와 북 치는 소리가 밤하늘에서 흩날렸다.

너는 뛰어갔다. 나비가면을 쓴 채, 허름한 드레스에 망토를 걸친 채 인파 속을 질주했다. 바람이 낡은 치맛자락을 화라락 띄우며 희롱했다. 망토 후드에서 일순간 머리카락이 확 튀어나와 갈가리 흩어졌다.

가면을 쓴 아이들이 「와, 저렇게 머리 긴 사람은 처음 봐.」 하며 너를 신기하게 응시했다. 아이들이 너의 앞을 달려갔다. 공기에 섞인 나무 타는 냄새가 매우 짙었다. 숨이 막혔다.

「축제란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구나…….」

너는 중얼거렸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꽃도 하나 사들고 느릿느릿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뿐이었다.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너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며 「레비탄.」 하고 말했다. 불쾌한 이름이었다.

고개를 확 돌리자 한 남자가 있었다.

「아, 이런. 사람을 잘못 봤군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노여움을 참으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가 흥미로운 눈초리로 너를 훑어보았다. 무례한 태도였다. 너는 남자의 손을 떨쳐내며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남자가 너의 앞으로 다가섰다.

「아까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춤추지 않겠습니까.」

정중한 몸가짐이었다. 바로 옆에서 수많은 남녀가 즐겁게 춤추고 있었다. 너는 한 번도 춤을 춰 본 적이 없었다. 평민들의 거리에 이왕 잠입했는데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좋아요.」

너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저는 춤이 처음이거든요. 그쪽이 리드를 잘해야 할 거예요.」

검은 머리카락이 웃음과 뒤엉켜 바람에 세차게 나부꼈다…….

“그만해!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거야!”

나는 비명 질렀다. 시트를 젖히고 벌떡 일어났다.

소니아가 두고 간 담배를 뽑아 물고 불을 붙였다. 소니아는 “어머, 자기. 처음치고는 담배를 잘 피우네요?” 하고 말했었다. 그 말대로 담배를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거부감은 썩 없었다. 쓰디쓴 맛이 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상관없는 이야기야.

상관있는 이야기야.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한구석으로 눈길을 보냈다. 소니아는 커다란 전신거울을 룸 가운데에 놓아두었다. 얼마 전 오윈 씨가 선물한 장미 꽃다발로 거울을 장식해 놓은 터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거울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서서히 드러났다. 붉은 장미꽃 아래에서 네가 드러났다. 피에 젖은 네 얼굴이 드러났다. 젖은 해초 같은 길디긴 검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얼굴에는 흡사 가면을 덧씌운 양 검은 구름이 일렁거렸다.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것도 얼굴의 반은 피부가 문드러져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얼굴 아래로는 평범한 남자였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입술에 물고 깊이 빨았다. 거울 속 얼굴의 허물어진 입술에서 뿌연 연기가 새어나왔다.

이런 꼴을 보면서 내가 어찌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그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잘 버텨 온 셈이다. 마라타는 “너는 타고난 본성이 약한 애는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오르키투니카를 지니지도 못했지. 오르키투니카는 강한 정신만이 소유할 수 있단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잘난 정신이 내 오르키투니카의 원천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정신에 저주를 퍼부으리라.

내가 지닌 오르키투니카는 투시였다. 타인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물건까지 스치는 족족 잠재된 기억과 형상, 촉감을 탐지해 냈다. 칭찬에 인색한 마라타까지도 “막강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막강한 능력은 내 몸에 내제된 영혼의 기억까지 샅샅이 뚫어 버렸다.

그래서 마넨 경과의 전속계약이 필요했다. 내 투시능력을 그에게만 발휘하도록 묶어 둠으로써, 십 년 동안은 그나마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거울로 눈길을 던졌다. 거울 속 얼굴은 구역질이 날 만큼 추했다. 내 눈에만 저렇게 보일 뿐, 진짜 용모는 그럭저럭 멀쩡하다는 사실은 다른 이들이 가끔 던지는 말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나 방에 처박혀 시간을 보냈다. 바깥에 나갈 때는 몸을 가리다시피 했다.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게이바로 달려가 이름 모를 사내들과 엉켰다. 그것도 스노우 화이트라는 바에서.

하필 그런 이름의 바에서.

섬뜩했다. 스노우 화이트라니, 이게 우연일까. 왕국의 긴 겨울은 이상기후 현상이었지만,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눈의 여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참하게 죽어 버린 자작나무WhiteBirch의 원한이라며. 자작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사랑하는 수목이었다.

소니아가 가면무도회 일자리를 전해 왔을 때 나는 거절했다. 가면무도회라는 것만으로도 거절의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너…… 자작나무는 그토록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 정신을 앗아가면서까지 가면무도회에 뛰어갈 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왕과의 재회를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니아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혼자서 웃음을 흘렸을까. 무서웠다. 자작나무의 집요한 광기가.

“그만하라구! 너는 바보야!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허공을 향해 발악하듯 소리쳤다. 머리가 아팠다. 침대에 서서히 몸을 기울여 누웠다. 무덤으로 푹 꺼지는 듯한 어지러움이 전신을 덮쳤다. 어느 오페라 가사가 귓전을 스쳤다.

「영원토록 버림받고, 영원토록 빈궁하고, 영원토록 파괴될 것이다…….」

비참하고 치졸하고 추한 과거다. 그것이 나와 네가 겪은 일이라는 것이 역겹기 짝이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단지 오물로만 얼룩진 기억을.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도.

자작나무는 황폐한 시간을 온몸으로 버티다가 두 달에 걸친 잔인한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부터 떠오르던 악몽은 갈수록 기세를 높여 나를 감옥처럼 둘러쌌다. 열두 살부터 열일곱 살 때까지 가장 심했다. 누가 자작나무고 누가 레이 아리사인지 구분이 안 가리만치 괴로웠다. 너는 나를 좀먹는 세균이요, 병마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의 비극을 지켜보며 낄낄 웃는다.

침대 옆 가방에서 화집을 꺼냈다. 자작나무의 초상화는 비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여러 화집에 수록되는 인기 작품이었다. 초상화에서 자작나무는 희디흰 벨벳 드레스를 입고 시선을 느슨히 기울이고 있었다. 선이 섬세하고 눈매가 초승달같이 서늘한 동양적인 미인이었다. 태어나서 거의 자르지 않았다는 머리카락은 발치까지 닿아 있었다. 지금의 내 머리카락과 길이가 흡사했다.

자작나무는 지금도 궁금해 했다. 왕은 정말로 나를 사랑했을까…… 단 두 번의 만남이었는데, 하고 혼자 속삭였다. 그러나 왕이 충격을 받아 술잔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윤색이었다. 기록에는 「자작나무의 초상화를 그날 처음 보았고, ‘자작나무.’ 하고 말했다.」라고만 남아 있었다.

왕의 진심은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레이 아리사는 조금도 관심을 품고 싶지 않았지만, 자작나무는 달랐다. 왕을 집요하게 생각하며 끝없이 고민했다. 한 몸에 두 개의 인격이 달라붙어 싸우는 셈이었다. 마치 사이가 나쁜 샴쌍둥이처럼. 레이 아리사는 자작나무가 한심하기만 했다.

미친.

어쨌든 그럴싸했다. 어설픈 저주를 부리다가 파멸의 늪으로 추락한 자작나무는 천재적인 주술사, 레이 아리사로 환생했으므로. 이 지긋지긋한 되풀이가 다음 생까지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신은 자비롭게도 레이 아리사에게 무신경한 성격과 더불어 냉정한 면모도 부여하셨다. 숨을 고르며 이성을 찾으려 애썼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레이 아리사.

커피를 끓여 잔에 따랐다. 혀가 화끈할 정도로 뜨거운 커피를 삼키며 눈을 감았다.

기억은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재생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자작나무가 겪은 고문과 죽음을 극복하면 해방될지도 몰랐다. 그 뒤부터는 자작나무의 기억이 끊길 테니까.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배에 회충이 들었냐고 소니아가 놀랄 만큼 요즘 나는 미친 듯이 먹어 댔다. 체력이라도 키워 놓으면 혹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몸부림이었다. 음식을 우적우적 씹으며 뇌까렸다. 나는 너처럼 살지 않아. 너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 줄 거다. 실패하고 죽더라도, 자존심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썩어갈 거다.

“그리폰 측 로비스트와 오늘 만났네. 저녁에는 파티에서 울프삭과 악수를 나누었고.”

“그럼 한번 보겠습니다.”

새벽 두 시에 마넨 경과 통화를 시작했다. 소니아는 아침 여섯 시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로비스트가 가이거와…… 접선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가이거 대원이라고 밝혔군요. 마넨 경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며 엄청난 금품을 제공했습니다.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해 준다면서요.”

“이것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래, 울프삭은 어떤가.”

“울프삭은 생각을 바꾼 것 같습니다. 그리폰 측에게 ‘너희가 이러면 내가 섭하지. 누구한텐 푸짐하게 안겨 주고 누구한텐 입을 닦아?’ 하고 협박할까 고민 중이군요.”

“허허.”

“그런데 이상합니다. 울프삭과 가이거가 따로 놀고 있어요. 울프삭이 그리폰 사에 금전을 요구하면 마넨 경을 건드릴 수 없잖습니까. 그런데 가이거가 그리폰 사의 로비스트와 접촉해서 경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뇨.”

“깡패 두목이 이번에도 독단으로 움직이나 보지.”

“그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긴 합니다. 그럼, 울프삭을 통해서 스네이크를 뚫어 보겠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이번에는 제대로 돼야 할 텐데.”

두 시간에 걸쳐 울프삭을 채집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집요히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울프삭은 불만이 많았다. ‘그게 얼마나 큰 건수인데 왜 포기하라고 난리야’, 등의 글자가 우수수 쏟아졌다. 몇 개의 이름이 정신없이 얽혔다.

울프삭의 주변에 어김없이 검은 기운이 보였다. 스네이크일 것이다. 이번에도 검은 기운에서 풍기는 느낌이 이상했다. 아리사가 죽으면서 릴리즈와 가이거의 규합이 물거품으로 변해 버린 탓일까.

나는 검은 기운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디데이가 2주일 뒤…… 같습니다. 숫자가 보입니다. 이게 한계예요.”

“역시 그렇군. 그럼 어쩌면 좋을까. 쿠키를 되돌려줘야 하겠는가.”

“경의 뜻대로 하십시오.”

나는 잘라 말했다. 원자력 발전소같이 위험한 시설을 불량업체 따위에게 맡기려는 일이었다. 관여하기 싫었다. 말려 봤자 소용도 없었다. 마넨 경은 돈에 관해서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마넨 경을 잘 알았다.

시한부 인생을 털어놓기 전까지만 해도 마넨 경은 내게 공짜로 상담 받은 것을 내내 기뻐해 왔다. 마라타에게 지불한 상담료도 아까워서 미치려고 했다. 내가 떠나는 지금에야 조금은 후회하고 있으니 뭐,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다고나 할까.

“어찌 그때처럼 좀 수습할 방법이 없을까.”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일관했다.

욕심 많은 늙은이 같으니…….

더 한심한 것은 아직도 내 머리를 쥐어짜내려는 저 나태함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었다.

“내일 울프삭이 브로커와 점심을 약속했습니다. 브로커를 시켜 본격적으로 그리폰 사와 접촉할 심산인가 봅니다. 그 브로커 이름이 호프먼,”

“트레이시 호프먼이로군. 유대계로서 유능한 브로커로 인정받고 있다네.”

“예, 아시는군요. 일단은 그리폰 사에 쿠키를 돌려주십시오. 가이거가 또 단독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당분간은 한 발짝 물러서야겠습니다. 울프삭이 그리폰 사에 쿠키를 받아낸다면 가이거도 작업을 중단하리라 봅니다만 그래도 신중을 기하는 편이 좋겠지요.”

“알겠네.”

마넨 경이 기뻐하며 통화를 끝냈다. 나는 휴대전화를 던져 버리고 잠을 청했다. 예감이 나빴다. 불길한 느낌이 자꾸만 등골을 훑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마넨 경의 행보는 신속했다. 나흘 뒤 새벽에 전화가 왔다.

“쿠키를 돌려주었네. 울프삭과 호프먼과도 악수했고.”

“알겠습니다. 한번 보지요.”

짐작이 들어맞았다. 울프삭은 호프먼에게 그리폰 사와 접촉하라 지시했다. 제아무리 문신귀족들이 의석을 많이 차지한다지만 왕에게 총애 받는 것은 울프삭임을 내세우라고 엄포 놓으라 했다. 마넨에게 이천오백만 탈란텐을 챙겨 줬으니, 자신에게는 삼천만 탈란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라 했다. 호프먼은 이번 주에 그리폰 사의 로비스트들과 면담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넨 경이 새로운 정보를 밝혔다. 이번에도 검찰과 가이거의 연계 움직임이 보인다는 거였다. 저번과 달리 보안이 다소 허술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냈다고 했다. 역시 마넨 경이 그리폰 사에 얻은 쿠키에 관한 건이었다.

그러나 이쪽이 쿠키를 돌려준 이상 무위로 돌아간 셈이었다. 마넨 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가이거가 물러설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한데 죄송합니다만, 마넨 경. 이번 건은 돈을 포기하셨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울프삭을 역으로 치시지요. 울프삭과 그리폰 사의 금전거래를 스캔들로 터뜨리십시오.”

“글쎄…….”

마넨 경은 어물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주 수요일, 마넨 경이 연락을 취해 왔다. 울프삭과 악수했는데 한번 봐 달라고 했다.

울프삭은 부장들에게 카타콤 발전소 건에서 손을 떼라고 으름장 놓았다. 이따위로 마넨을 엮으려는 너희가 한심하다며, 다른 계획을 꾸며 보라며 날뛰었다. 그러나 스네이크는 울프삭 몰래 언론사 건을 밀어붙인 전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딴마음을 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검은 기운을 뚫어 보려 노력했다.

“디데이 날짜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보이는군요.”

“그런가?”

“그래도 모르지요. 검찰 측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면서 이번 주가 끝날 때까지는 신중히 처신하십시오.”

“알겠네. 뭐, 며칠 남지도 않았으니.”

마넨 경이 기분 좋게 입맛을 다셨다.

넌더리가 났다. 지금이라도 분명히 의사를 밝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지저분한 일에 조언을 건네는 자신이 역겨웠다. 마라타의 기일도 열흘 뒤였다. 내가 자작나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마라타의 무덤을 찾아가는 일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 마라타를 봐서라도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이번 건만 정리되면 제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넨 경은 침묵했다. 그 역시 마라타의 기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또한 내가 경의 치부를 질색한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십 년간 한 몸처럼 움직이며 서로의 웬만한 생각은 꿰고 있던 터였다.

“어쩔 수 없지. 그럼 검찰 측 움직임만 완전히 정리되면 연락하겠네. 뭐 필요한 건 없는가.”

“언제나처럼 마라타의 무덤에 장미꽃을 바치기만 하시면 됩니다.”

“알고 있었는가.”

“물론이죠. 언제나 저보다 한 발 앞서시더군요, 경께서.”

마넨 경은 마라타의 기일 아침마다 사람을 시켜 그녀의 무덤에 장미꽃을 바쳤다. 장미꽃은 마라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마넨 경은 이제 포기하고 있었다. 일흔을 한참 넘은 늙은이였다. 내가 상담 중단을 선언하면서 경도 은퇴를 고려하는 중이었다. 이번의 카타콤 발전소 건은 이른바 마지막 한 탕인 셈이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다. 자작나무가 계속 흐느꼈다. 왜, 왕에게 그날 밤 내가 당신의 아내예요, 밝히지 않았을까 하며 울었다. 숲에서 자작나무를 안으며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야.” 하고 속삭이던 왕을 끝없이 떠올렸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야, 좋아하네.

나는 한껏 코웃음 쳤다.

개자식 같으니라고.

그럼 레비탄은 뭐란 말인가? 결혼식 후 한 번도 자작나무를 찾지 않으리만치 사랑한 여자 아닌가?

왕의 밀어는 콧대 높은 시녀의 옷을 벗기고자 건넨 독 발린 사과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눈의 여왕」 마니아들은 주장했다. 왕이 레비탄을 가까이 한 것은 문신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고. 자작나무의 부친은 문신귀족의 거두였다. 왕은 레비탄을 가까이 두고 자작나무를 멀리함으로써 귀족들에게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했으며, 신분은 미천하나 거부였던 레비탄의 집안과 손을 잡고 실리를 쌓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역사란 해석하기 나름이지.

나는 싸늘히 웃으며 물을 마셨다. 텔레비전을 켜고 멀거니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화면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눈앞이 흐릿했다. 자작나무숲 생각만 하면 열이 치솟았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 개자식을 개구리나 두꺼비로 만들어서 실컷 밟아 줬을 것이다. 자작나무의 뺨도 후려갈기며 정신 차리라고 고함쳤을 것이다.

자작나무는 시녀로 변장하고 가면무도회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언젠가 함께 춤을 춘 남자를 발견했다. 자작나무는 놀라 숨을 삼켰다. 그는 왕이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자와 다정히 춤추고 있었다.

왕이 여자와 춤을 끝낸 후 천천히 연회장을 돌기 시작했다. 무심한 시선을 옮기다가 자작나무에게서 멎었다.

「당신은…….」

왕이 자작나무에게 다가왔다. 자작나무는 몸을 돌려 연회장을 뛰쳐나갔다. 왕이 쫓아왔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북쪽의 탑 부근까지 갔다. 거의 질주하다시피 그들은 서로 뒤쫓았다. 마지막까지 왕은 자작나무를 집요하게 쫓아와, 기어코 그녀의 허리를 붙들어 잡았다.

「시녀 아닌가. 어째서 도망치는 거지.」

왕이 말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 자신의 얼굴을 잊은 남편이었다.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였다. 자존심이 강한 자작나무는 그런 남자에게 자신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작나무 가지 하나만 왕의 옆에 놓아두고 떠나 버렸다.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아주길 바란 것이다.

그러나 왕은 오래전에 자작나무의 이름마저 망각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작나무를 사로잡은 감정은 그 모든 것을 내팽개칠 만큼 강렬했다.

“그만둬. 제발 그만두란 말이야. 바보 같잖아.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쉬다시피 한 목소리로 고함쳤다. 머리가 아팠다. 내가 아무리 소리 질러도 몇 백 년 전의 자작나무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허무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저 멀리, 아주 오랜 옛날에 흘러간 일이란 말인가. 생생하게 솟아나는 이 뾰족한 기억들이 어째서 산산이 스러진 옛일일 수 있단 말인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자작나무는 어떻게 저토록 왕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복수를 해! 미워하라구! 한없이 미워해야 옳단 말이야!”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왕이 “처음 느끼는 감정이야.” 이 한마디만 안 했다면 자작나무는 깨끗이 마음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눈물이 나왔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자작나무가 가엾고 불쌍했다. 독하게 마음먹어도 불가항력이었다. 그것은 침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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