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M─
“오늘 저기압인가 봐?”
구레나룻이 불쑥 말했다.
오늘 부장회의 내내 나는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잡스러웠다. 분명 어제 일이 원인이었다.
실컷 레이와 잘 논 후, 일식집에서 기분이 잡쳐 버렸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았다. 식사 도중 갑자기 열이 쳐 올랐다는 것만 확실했다. 그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었다. 홧김에 호텔로 가서 레이와 한바탕 엎치락뒤치락 했는데도 기분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예, 저기압입니다. 그러니 하실 말씀 없으면 나가 주시지요. 결재도 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밉니다.”
나는 시큰둥이 말했다. 그러자 구레나룻의 낯에 ‘정식군인도 아닌 주제에 웬?’ 하는 속내가 역력히 서렸다.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자식 같으니. 애꿎은 파리나 핑계대고, 손에 든 채찍으로 책상을 냅다 후려쳐 버릴까 고려했다.
구레나룻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할 말이 있다면 나가지 않아도 된다, 이 뜻이겠지? 잠깐 시간 좀 내주게. 여기 앉아 봐.”
그러고는 업무실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앉았다. 나는 레오파드를 호출할까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녀석을 시켜 구레나룻에게 오피스 섹스의 스릴을 체험시켜 줄까 하다가 때려치웠다. 구레나룻에게 하해 같은 은혜를 베푸는 격이었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음.”
구레나룻이 이쪽을 찬찬히 훑어보며 웃었다. 역시 은근히 만만찮은 작자였다. 경험만 더 쌓는다면 사방팔방에 흙탕물을 뿌리고 다닐 너구리 소질이 농후하게 엿보였다.
“오늘저녁에 모임이 있어. 어떤가. 올 의향이 있는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매주 금요일 밤, 릴리즈는 엘리자베트 호텔의 멤버십 룸에서 트럼프 모임을 가졌다. 앞뒤 설명 생략하고 다짜고짜 이쪽에게 ‘올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이미 가이거가 단순깡패조직이 아님을 간파했다는 뜻이었다. 작자가 이 사달 낼 줄 진즉 예상했다. 좆같았다. 빌어먹을이었다.
“없습니다.”
“부담 가지지 말게. 사복차림으로 잠깐 들르면 그만이야. 영 어색하면 다른 부장들도 함께 데려와도 좋아.”
아예 한술을 더 떴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너구리였다.
“지나치게 앞서 가시는 것 아닙니까? 울프삭 경께서 귀하의 행동을 썩 좋아하지 않으시리라 봅니다만.”
“전혀. 내가 가이거 부장을 맡고 싶다고 청했을 때부터 이미 앞서간 셈이나 진배없지 않은가. 경의 세도에 든든한 밑받침이 된 주요 요인인 가이거와, 현재 떠오르는 젊은 세력 릴리즈의 마리아주는 필수라고 나는 판단하네. 재포니카께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터. 경께서 나를 가이거 부장에 앉힌 속뜻에는 과감하게 도전해 보라는 의미가 있다고 나는 받아들였네.”
“저희는 울프삭 경께서 직접 내린 지시 외에는 듣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계제가 아닐 텐데. 평민치고는 영리한 친구가 뭘 빼고 그래. 나는 지금 자네에게 기회를 베푸는 거라고. 오늘밤에 찾아오게. 섭섭하지 않을 제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가면 속에 숨은 그 얼굴이 참 궁금하군.”
구레나룻이 벌떡 일어섰다. 이만 대화를 마무리 짓겠다는 태도였다. 오만하고 일방적이었다.
분노가 아래에서 지글지글 들끓었다. 흡사 용암 같았다. 작자가 똥을 질질 쌀 때까지 채찍으로 목을 졸라 버리고 싶었다. 울프삭 경의 똥구멍을 핥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새파랗게 젊은 도련님들의 시중까지 들어라?
그러나 나는 인내심이 넘치는 남자였다. 나쁜 짓에 한해서는 지나칠 만큼 인내심이 넘쳤다. 문으로 향하는 구레나룻을 지켜보며 짧은 시간 머리를 굴렸다.
“아리사 님.”
구레나룻이 움찔했다. 예상대로의 반응에 나는 소리 없이 비웃었다.
내 저음은 제법 유혹적이라고 바텀들이 평했다. 위스키처럼 차갑고 독하다며, 목소리만으로도 갈 것 같다고 징징 짜댄 놈들이 숱했다.
“뭔가.”
구레나룻이 초연히 대답했다. 그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텀의 지린내가 여기까지 진동했다. 이쪽도 도리 없었지만 저쪽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일부러 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평민이라서 말입니다. 상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따르는 셰퍼드일 뿐이라서요. 더군다나 이제껏 저희 부장들은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한 번도 바깥에서 안면노출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레나룻이 시선을 옮겨대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너구리 소질은 제법 있었으나 아직은 한참 애송이였다.
“아리사 님께서 모처럼 좋은 제의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썩 내키지 않는군요. 사복차림으로 릴리즈 앞에 저희가 나서는 것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오성급 호텔 멤버십 룸에 가면을 쓰고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쳐들어갔다간 주변에서 의혹이 빗발치겠지요. 멤버십 룸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따로 룸을 얻어서 기다려 주십시오. 사복차림으로, 저 혼자서, 찾아가겠습니다.”
“그럴까…….”
구레나룻이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말했다.
“그리고 문을 열 때는 반드시 눈을 가려 주십시오.”
“왜지?”
구레나룻이 화가 난 눈초리로 이쪽을 응시했다. 나는 그의 넥타이를 잡아 고쳐 주었다. 작자가 몸을 떨었다.
“자극적이지 않겠습니까? 엘리자베트 호텔 로열 스위트룸이 좋겠군요. 전망도 좋고, 자쿠지까지 있어 친목도모에는 그만이리라 봅니다. 그럼 오늘밤 아홉 시에 뵙겠습니다.”
구레나룻은 군말 없이 돌아갔다.
나는 보드카를 한 잔 비운 후, 레오파드를 불렀다.
“오늘 저녁식사는 금테 두른 똥구멍이야. 시간 비워 놔.”
그날 밤, 엘리자베트 호텔 로열 스위트룸을 방문했다. 구레나룻이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문을 열었다. 곧장 레오파드가 작자를 바닥에 깔아 버리고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 꼴을 지그시 구경했다. 제법 볼만했다. 처음부터 저 털이 숭숭한 똥구멍에 물건을 처박을 의향은 추호도 없었다. 레오파드는 대단한 근육질에 물건도 컸다. 구레나룻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이다.
나는 의자에 편안히 기대며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부었다. 독한 맛이 일품이었다. 위스키 잔을 돌리며 눈앞을 감상했다.
괜찮았다. 구레나룻의 말대로 어떤 식으로든 릴리즈와 친목을 다지는 편도 나쁘지는 않았다. 울프삭 경이 작자를 가이거 부장에 앉힌 속내도 릴리즈 포섭의 일환임을 처음부터 짐작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지금 레오파드 밑에서 신음하는 털투성이는 야심가에 머리도 좋았다. 저리 친목, 친목, 노래를 불러 대는데 소원 못 들어 줄 이유는 없었다. 내게 귀족도련님이 질질 매달리게 하는 것도 퍽 재미있을 듯했다.
구레나룻이 울부짖었다. 좋아서 난리에 껌뻑 죽었다. 자기를 암캐 취급해 달라며 징징거렸다. 레오파드가 박다가 말고 이쪽으로 눈짓했다.
“이년아, 그렇게 좋아?”
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상대를 착각하는 작자의 꼴이 미치도록 폭소감이었다. 저 큰 덩치에 털까지 수북하면서 아앙아앙 통성해 댔다. 놈의 반쪽도 안 되는 레이조차 저따위로 신음하지는 않았다.
나는 레오파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보험으로 이 정도는 해 놔야 했다. 레오파드가 바삭거리는 투명비닐장갑을 꼈다. 즉각 피스트 퍽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두 시간 넘게 구레나룻을 혼쭐내 준 다음, 호텔을 나섰다. 《오늘밤 즐거웠는지? 기절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갑니다. 친목은 업무실에서 다져 보기로……》 하고 메모를 남겼다. 실신한 구레나룻의 면상이 행복에 잠겨 있었다. 이 이야기를 부장들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삼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사진까지 좍 뿌려 주면 십중팔구 배꼽을 째대며 기뻐할 것이다. 하하하.
토요일이었다. 본부에서 일을 끝내고 거리로 나섰다. 오늘 오후에 레이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눈발이 심했다. 본부에서 병원까지는 한 시간 넘는 거리였다. 북적거릴 점심시간을 피해 출발하기로 했다. 바람이나 쐴 겸 길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레이의 퇴원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를 정부로 들어앉힐 심산이긴 하나 설득 작업이 문제였다.
저랑 교제해 주십시오? 이건 뭔가 아니고.
그 깐깐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을 어떻게 꼬드겨야 할지 난감했다. 심지어 레이는 이쪽을 고작 ‘매너 좋은 변태’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그 표현만 되살리면 피가 들끓었다.
거칠게 도리질하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그도 좋을 자연스러운 수단을 찾을 수 있을까. 애매했다. 부장들도 엄지를 추켜세우길 마다않는 넉살과 거짓말, 공갈협박의 황제건만 이 건에 대해서는 난감할 뿐이었다.
나는 느릿느릿 길을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매너 좋은 변태라…….
물론 내 이미지가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직업은 깡패조직 가이거 대원.
레이는 가이거가 무서울 뿐만 아니라 아주 싫다고 했다. 사실 그때 조금 의아했다. 레이는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주 싫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서 병원에서 그를 슬그머니 떠보았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가이거가 싫다기보다는…….」
레이가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뜸을 들였다.
「……무신귀족들 자체가 싫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웃었다. 나는 마시던 커피 잔을 잠깐 내려놓았다. 야릇한 미소였다. 자조적이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분노가 설핏 서려 있기도 한, 복잡다단한 느낌이었다. 나는 커피를 다시 마시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그렇군요.」
더는 캐물을 분위기가 아니어서 관둬 버렸지만, 떠올릴 때마다 궁금증이 들었다. 왜일까. 나중에 천천히 알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어쨌든 하나는 확실했다. 설득작업이 쉽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한곳이 눈에 띄었다. 붉은 목조 벽과 파랗게 칠한 창틀, 흰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옷가게였다. 정문 유리 가운데에 「Esther Style」이라고 작게 적혀 있었다.
쇼 윈도우를 훑어본 뒤 가게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짙은 커피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어서 오세요.”
맞이하는 여자가 동양계였다. 찢어진 눈과 도드라진 광대뼈 그리고 물기 흐르는 입술에서 색향이 흘렀다. 착 감기는 붉은 차이니즈 드레스를 걸친 몸은 작지만 육감적이었다.
흐흠…….
나는 여자를 잠깐 감상했다. 여자에게는 손톱만큼도 성적 흥미가 없었지만, 이 동양계 여자는 눈길을 줄 가치가 충분했다. 여자도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듯했다.
여자가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었다.
“찾는 옷이라도 있는지요.”
“마음에 드는 옷이 내가 찾는 옷이죠.”
“손님에게 맞는 사이즈는 여기에 없는데요, 후후.”
“제가 입을 옷이 아닙니다.”
여자가 오,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며 옷들을 훑어보았다. 원색에서 아슬아슬하게 톤 다운된 색감부터 소재까지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디자인이 멋지군요.”
내 말에 여자가 후후, 하고 웃었다.
“손님은 안목이 좋으시군요. 대개는 이런 디자인을 피하던데요.”
“그냥 볼 때는 그렇지만, 일단 걸쳐 보면 다르겠는데요. 직접 디자인했습니까?”
“물론.”
레이의 체구를 가늠하며 옷을 골랐다. 옷을 선물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뒤 이야기를 꺼내면 될 것 같았다.
여자가 팔짱을 낀 채로 웃음을 흘렸다.
“저희 집 옷은 비싸요, 손님. 특히나 손님이 지금 고르는 옷은 제일 고가의 물건이에요.”
“쓸데없는 걱정인데요. 오늘 저에게 잘 보여야 할 겁니다. 한 달 매상을 하루 만에 채워 줄 수 있는 고객이니까.”
“고르는 색깔을 보니 금발? 손님의 연인이 부럽네요.”
“연인이랄지…….”
내 말에 여자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다가섰다.
“그럼 뭐죠?”
“글쎄? 『마이 페어 레이디』랄까? 그리고 상대는 남잡니다.”
여자가 눈썹을 내리깔며 웃었다.
“아, 이런. 왜 잘생긴 남자는 전부 게이인가 몰라. 그럼 시작 단곈가 봐요?”
“그렇죠. 그리고 오늘은 저도 내 성적취향이 아쉽군요.”
나는 그녀의 전신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말했다. 여자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동양풍 부채를 흔들었다.
“꽃을 파는 사람이 손님에게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손님이라면 『마이 페어 레이디』에 비유하진 않겠어요.”
“왜죠?”
“후후…….”
여자가 부채를 탁, 접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원작인 『피그말리온』은 언해피였거든요. 제 모국에서는 언령이라 하여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어요. 이왕 비유하려면 갈라테이아가 더 나을 거예요.”
나는 침묵했다. 갑자기 빌어먹을 마녀가 떠올라 버렸다.
계산을 끝내고 가게를 나섰다.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늦은 오후인데도 길이 끔찍하게 막혔다. 나는 담배를 한 개비 뽑아들어 불을 붙였다.
그쪽이 아가씨를 참 좋아하는구려…… 쯔쯔쯔.
마녀의 말이 귓가에서 되살아났다.
이런 제기랄. 나는 혀를 찼다.
내가 레이를 참 좋아한다? 부정할 수 없었다. 몸뚱이 하나만큼은 참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갑자기 옛일이 떠올랐다. 13세의 어느 날, 나는 남자와 처음으로 섹스했다. 그때 이미 내 육체는 굵을 대로 굵어 있었다. 사내놈의 엉덩이에 침을 삼키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지 않고 동정을 깨끗이 떼버렸다. 내 취향은 반반하고 몸집이 작은 타입이었다. 이후 온갖 상대를 섭렵했지만 하룻밤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정부로 삼고자 할 만큼 마음에 든 상대는 레이가 처음이었다. 열세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 16년 동안.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한 개비 더 빼물어 불을 붙였다. 기분이 엉망이었다. 섹스 외에는 내게 무신경하게 일관하는 레이의 태도가 자꾸만 걸렸다. 내 나름의 연애사업은 꽝이라고, 아니 그보다 더 안 좋다고 마녀가 예언했던가…….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레이에게는 눈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찾으리만치 간절히 기다리는 상대가 있다. 나는 레이의 의사를 신경 안 쓰고 열심히 덤벼들어 좆을 해결했다. 수차례 만나서 자주 섞었다. 그동안 레이는 내게 이름 한 번 묻지 않았다. 입원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레이는 간호사에게 물었다며, 내 이름을 떠듬떠듬 언급했다. 이게 뭘 가리키는지는 빤하지 않은가.
역시 그 잘나신 양반 때문에?
“제기랄!”
주먹으로 핸들을 쳤다. 뱀처럼 거듭 머리를 쳐드는 질투가 이제는 아예 불덩이였다. 엿 같았다. 뇌수를 찬물에 씻어 버리고 싶었다. 레이에게 독점욕을 느끼는 자신이 구역질났다. 황당무계하기도 했다. 가슴 한구석이 쓰디썼다.
나는 창문을 열어 담배를 던져 버렸다. 차가운 바람이 안쪽으로 몰려왔다.
뭐…… 나름대로 재미있군.
순간의 감정이겠지.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고.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나는 핸들을 잡으며 기분을 진정시켰다. 이 감정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삼류 마녀의 예언 따위 헛소리로 치부해 버렸다. 잘나신 양반이야 좆을 뭉개 버리면 그만이었다. 가이거는 최고의 정보조직이었다. 잘나신 양반을 추적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기분이 한층 가벼워졌다. 오늘도 눈썰매장에 레이를 끌고 가기로 했다.
“잘 있었습니…….”
병실로 들어간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레이가 창문 밖으로 다리를 걸치고 앉아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