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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M─ (20/101)

20 .M─

코트 포켓에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5분 넘게 난리였다. 레이의 몸속으로 철퍽철퍽 부딪치던 나는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 성기를 넣은 채 레이의 허리를 안고 옆으로 굴렀다. 그의 몸속에서 페니스가 한 바퀴 빙 도는 감각이 지끈했다.

“으읍!”

레이가 몸을 떨었다. 내 가슴팍에 밀착된 그의 등에서 소름이 일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거듭 삽입했다. 손만 침대 아래로 뻗어 코트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냈다. 레오파드였다. 이런 제길, 하필 이럴 때.

레이의 엉덩이를 치켜세웠다. 잠깐 있다가 아주 빠르고 깊게 꽂아 넣었다. 푸욱 푹 찔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 스프링이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아아아아아!”

레이가 정신을 못 차리며 비명을 질렀다. 두 번의 체내 사정으로 그의 몸속에 정액이 가득했다. 성기가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바깥으로 정액이 줄줄 새어나왔다. 내 허벅지까지 흠뻑 젖어 미끈미끈했다.

“뭐야?”

레이가 이쪽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끔 난폭하게 삽입했다. 내벽을 질척질척 마찰하는 소리가 밖까지 생생하게 새어나왔다. 그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내벽을 조이도록 했다. 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휴대전화 너머의 레오파드에게까지 들릴 만큼 소리가 높았다.

“뭐긴. 내가 연락한다고 했잖아. 내일 이스트에덴 조간 확인하라고. 그런데 지금 뭔 거사 중이십니까요, 우리 헐떡헐떡 본부장님?”

“신경 꺼.”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자식 같으니. 내동댕이치듯 휴대전화를 던져 버리고 레이의 허리를 잡았다. 레이의 구멍으로 힘껏 박아 넣으며 그의 앞도 만졌다. 앞과 뒤를 동시에 공격했다. 레이가 흐느끼듯 신음했다. 쾌감으로 미칠 기분일 것이다. 페니스를 빼서 자세를 바꾸었다. 레이에게 좆을 빨게 해 주었다. 이런 걸 그는 좋아했다. 창피해하면서도 내 좆을 삼키는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다시 체위를 바꿔 레이를 엎드리게 했다. 엉덩이만 세운 자세가 음란했다. 그의 엉덩이를 바짝 치켜세웠다. 무릎을 잡아 하체를 공중에 띄우다시피 했다. 삽입한 다음 인정사정없이 처박았다. 좆이 출입하는 구멍을 빤히 쳐다보았다.

크고 굵은 남근이 작은 구멍 안쪽에서 쑥 나왔다가 뿌리까지 들어갔다. 귀두를 슬쩍 빼자 구멍이 움찔움찔 꿈틀거렸다. 구멍 깊숙이에서 귀두까지 실처럼 가느다랗게 연결된 정액이 자극적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까 레이의 등 돌린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뭘 원하는지는 뻔했다.

“어떻게 해 줄까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레이가 멈칫했다. 아래 입구를 귀두로 슬쩍 건드렸다.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입구가 흥분을 돋웠다.

“뭘 원하냐니까요? 직접 말해요. 저번처럼 말이죠. 듣고 싶습니다.”

몸을 떨던 레이가 결국 들릴락 말락 말했다.

“너…… 넣어 줘요.”

곧바로 끝까지 퍼억 삽입했다. 수치심을 숨기지 못하는 작은 음성이 짜릿했다. 꽉꽉 조여 오는 내벽이 뜨끈뜨끈했다. 레이의 구멍은 감도가 뛰어났다. 그의 양 유두를 애무하며 속도를 높였다. 언젠가 레이에게 짓궂게 물었던 바였지만, 저 조그마한 몸이 내 좆을 전부 삼키는 게 신기했다.

내게 떠밀리는 레이의 머리가 침대헤드에 계속 부딪쳤다. 아파 보였다. 나는 베개로 그의 머리를 막아 주었다.

“어땠습니까? 넣어 주니까 좋긴 하던가요?”

끝난 후 내가 물었다. 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 안 해도 나는 다 알았다. 오늘 나는 레이를 세 번이나 보내 주었다. 막판에 그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

나는 레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만졌다. 이제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한바탕 엎치락뒤치락한 뒤 레이와 나란히 누워 숨을 가다듬는 이 순간이 퍽 좋았다. 오랫동안 노크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던 레이에게 잔뜩 품었던 분노도 서서히 가셔갔다.

열 받아서 문을 박살내려는 찰나에 레이가 문을 열었다. 첫눈에도 병색이 짙었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내 키스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섹스는 레이에게 악몽이 되었을 것이다. 악당 스네이크 성질머리 정말 많이 죽었다.

이 몸뚱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지.

나는 픽 웃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는 편이 좋겠습니다.”

불쑥 말하자 레이가 움찔했다.

“별 간섭을 다 하네.”

설핏 화가 난 어조였다. 그 반응을 무시하고 말했다.

“성병은 염려되면서 다른 병은 걱정 안 되나 봅니다? 며칠씩 기한을 두고 그쪽을 만나고 있는데 그때마다 눈에 띄게 말라 있어요.”

“당연하죠. 그쪽이 며칠마다 사람을 못살게 구는데.”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 익히 예상했다.

“아, 저 때문이었군요. 그럼 제가 진료비를 내지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니 책임을 져야지 어쩌겠습니까.”

태연히 말하자 레이가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았다.

노려보면 어쩔 텐가. 갈수록 더해 가는 병색이 마음에 걸렸다. 열 받은 와중에조차 잠깐 멈칫하리만치 낯빛이 파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이를 병원에 보내 버릴 작정이었다.

방법이야 수두룩했다. 제일 쉬운 수단은 일부러 그의 아래를 상처 입힌 후, 제 발로 병원에 걸어가게끔 유도하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안 가는 쪽이 좋겠지. 항문 열상으로 의사에게 창피를 당하느니 곱게 내 말을 듣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랫도리는 해결했다. 남은 시간 동안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저녁 안 먹었을 테니 함께 나가죠. 제가 사겠습니다.”

“잘 거예요. 그쪽이나 얼른 나가요.”

또 고집.

나는 슬쩍 그의 아래로 손가락을 파묻었다. 레이가 멈칫했다. 몸속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유쾌한 정복감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이걸 넣은 채 그대로 자면 몸에 안 좋을 텐데요. 제가 씻어 드릴 테니 그쪽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발버둥치는 레이를 끌고 욕실로 직행했다. 나는 도리 없는 녀석이었다. 레이를 씻겨 주는 도중에 흥분하여 또 한 차례 저질러 버렸다.

“참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레이가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는 빙긋 웃었다.

레이가 옷장에서 옷을 꺼내 걸쳤다.

“머리 안 말립니까?”

“안 말려요.”

“그대로 나가면 감기 걸릴 텐데요.”

“모자 쓰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이걸 다 말리려면 시간 오래 걸려요.”

어이가 없었다. 하여튼 간에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나는 저 풍성하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만지기를 좋아했다.

“그럼 제가 머리를 말려 드리겠습니다. 가만히 힘 빼고 기다리십시오.”

펄펄 뛰는 레이를 강제로 앉히고 헤어드라이어기로 머리를 말려 주었다. 즐거웠다. 언젠가는 꼭 해 보고 싶었던 짓이었다. 나는 마음먹은 짓은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머리를 말린 레이가 또 후줄근한 코트를 걸쳤다. 나는 뭉크 그림을 옆구리에 끼고 길거리를 보행할 의향은 추호도 없었다. 옷장을 뒤져 제일 밝은 색깔의 코트를 입혔다. 모자도 뺏어 버렸다.

“실컷 머리를 말렸는데 웬 모자입니까. 이대로 나가지요.”

“……기가 막힌다. 참 기가 막혀.”

레이가 한숨을 깊이 쉬며 코트 단추를 잠갔다. 나는 지그시 미소 지었다.

그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검은 하늘을 점점이 수놓던 폭설이 그쳐 있었다. 그러나 눈의 흔적은 여전했다. 야윈 나뭇가지는 무겁게 매달린 눈으로 검은 윤곽만 가느다랗게 드러났다. 거리 주택들 모두 지붕과 담장에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고, 처마마다 흘러내린 촛농 같은 형상으로 투명한 고드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자동차들도 두툼한 눈을 머리에 이고 엉금엉금 기어갔다. 침묵과 눈으로 뒤덮인 42번가였다. 천국이 내려온 듯했다.

레이와 함께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적막에 휩싸인 이 분위기가 좋았다.

괜찮은 하루였다. 스파이를 취조한 결과 마넨의 목적은 일반적인 정찰로 드러났다. 파리한 레이 때문에 성질만큼 즐기지는 못했으나 적극적인 그의 반응으로 섹스도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끝냈다. 그리고 이틀 뒤면 울프삭 경 세상이었다.

하하하. 이거 정말 멋진데.

슬쩍 레이의 허리를 감아 안자 그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푸른 눈동자를 스쳤다. 나는 참지 못하고 레이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지금쯤 이스트에덴 신문사에서 밤을 지새울 레오파드가 이 꼴을 본다면 얼마나 날뛸까. 지금 와서 레오파드와 함께 레이를 즐긴다? 어림도 없었다. 레이와 단독으로 즐기는 밀회가 상당히 괜찮다고 요즘 느끼고 있었다. 이 나이에 정부 한 명쯤 두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 들여 상대를 고르는 짓거리도 슬슬 귀찮았다.

레이의 육체는 이제껏 거쳐 본 상대 중 최고였다. 레이는 아직 잘 모르고 있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는 애널섹스에도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훌륭한 잠자리 상대가 될 소질이 농후했다. 전반부를 잘해 주면 내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애써 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패션감각이 끔찍하고 궁상이 심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같이 있노라면 기분이 편했다. 나는 시끄럽고 시건방 떠는 새끼들이라면 신물 났다. 상관, 동료, 부하, 적들 모두가 하나같이 시끄럽고 시건방졌다. 정부까지 시끄럽고 시건방 떠는 놈을 고를 이유는 없었다. 또한 아마빛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추악한 음모에 몰두하고 있노라면 집중도 잘됐다. 이래서 고귀한 귀족나리들이 스캔들을 무릅쓰고도 정부를 두는 거였다.

마넨 건이 마무리되면 이야기를 꺼내 볼까.

나는 레이에게 다시 한번 입술을 맞추며 웃었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했다. 텔레비전을 틀어 놓은 서민 레스토랑이었다.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근처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갓 구운 샤쉴릭이 나왔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샤쉴릭을 돌리며 레이를 곁눈질했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나 나누어 볼 참이었다. 그동안 몸뚱이에만 정신이 팔려서 이렇다 할 대화는 나누지 못한 터였다.

레이는 느릿느릿 식사에만 열중했다. 많이 피곤해 보였다.

흐음…….

나는 보드카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무슨 말부터 꺼내 볼까 헤아렸다. 갑자기 텔레비전 볼륨이 높아졌다. 남자와 여자의 베드신이었다. 식사를 즐기며 볼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느끼한 대사에 신음이 쏟아지고 난리였다.

「당신 이름이 뭐지? 알고 싶소. 왜 도망쳤던 거요. 사랑하오.」

「왕이시여!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제발…… 아!」

「제발 이름을 알려주오. 허억…… 사랑하오오오오…….」

물을 마시던 레이가 사레가 걸려 기침했다. 낯이 벌게져서 연신 콜록거렸다. 그 꼴에 나는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하하하. 정말이지 고리타분하다니까.

“괜찮습니까?”

웃으면서 레이에게 냅킨을 건넸다. 레이가 “아, 예.” 하며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베드신이 길기도 하거니와 수위도 상당했다. 스트레이트들의 정사 장면에는 나도 구미가 안 당겼다. 종업원을 불러 채널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잠깐 뒤 채널이 바뀌었다. 딱 맞춰 릴리즈 멤버들과 악수하는 울프삭 경이 나왔다. 그저께 왕궁에서 열린 파티 장면이었다. 레이가 입술을 닦다가 텔레비전을 빤히 주시했다.

나는 보드카를 마시며 레이를 눈여겨보았다.

“울프삭 경에게 관심이 많은가 봐요.”

레이가 “예?” 하며 화들짝 놀랐다. 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그쪽이 의외로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많더군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알았습니다. 관심분야가 바로 드러나던데요.”

“예, 뭐. 그런 책은 길어서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이라.”

레이가 우물거리며 물을 마셨다.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궁금하군요. 울프삭 경에 대한 그쪽의 생각이.”

“뭐…….”

레이가 우물쭈물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쪽이라면 직장을 얼른 관둘걸요.”

“예?”

나는 샤쉴릭을 삼키며 말했다.

“왭니까? 봉급도 제법 괜찮고 뭐, 악명이야 떨치지만 지원자도 많은 인기직업입니다만. 그리고 그게 울프삭 경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혹시 도덕적인 문제 때문인가요? 하하하.”

“전망이 안 좋으니까요.”

“흐음. 그도 그렇긴 하군요. 주먹을 휘두르는 직업은 육체가 노쇠해지면 끝장나기 일쑤죠. 크게 다쳐도 보험 혜택도 별로 못 받고.”

“그런 뜻이 아니에요.”

“혹시, 울프삭 경이 오래 못 간다는 뜻을 우회한 표현이었습니까?”

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보드카를 마셨다.

“그 관측은 좀 어긋난 것 같군요. 울프삭 경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마넨 경의 몰락은 시간문제라고 대개 예측하던데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흐흠……?

나는 보드카 잔을 입에 가져가다가 내려놓았다. 비로소 흥미를 느꼈다. 울프삭 경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저 대화나 나누려는 심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이 툭툭 던지는 한 마디가 내 무심한 저의를 싹 사라지게 했다.

“설명이 부족하군요. 무슨 뜻입니까.”

레이가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까 화들짝 놀라던 반응에 비해 조금은 느슨해진 모습이었다. 그가 냅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천천히 말했다.

“보통은 그렇게 보겠지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길거리를 점령하고 사람을 두들겨 잡는 울프삭 경이니까. 하지만 세상을 지배한 폭군들을 반추해 보면 울프삭 경이 거둔 수확은 미미하기 짝이 없어요. 외척으로 세를 떨친 지 30년이 지났지만 계속 정적들과 비등해 왔죠. 엑달, 에델마, 수오미넨을 제거하는 데만도 28년이나 걸렸구요. 가이거 같은 집단을 거느리면서도 그토록 시간을 잡아먹다니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저는 울프삭 경이 가이거에 투입하는 1년 예산만도 대단하리라 봐요. 하지만 마넨 경은 크게 돈 들이지도 않고 실속이란 실속은 전부 챙겼죠. 야합을 핑계로 궂은일은 울프삭 경에게 다 시키고 마넨 경은 체면까지 손에 움켜쥐었어요. 하루에 열 시간 공부해서 일등하는 학생과 하루에 한 시간 들여 일등하는 학생 중 누가 더 영리하다고 치겠어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울프삭 경이 마넨 경을 쉽게 숙청할 수는 없을걸요. 게다가 울프삭 경의 나이가 벌써 육십 중순이에요. 그러니 전망 없는 직장이란 거지요.”

“그렇군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하하하. 저도 마넨 경이 과소평가 당했다는 그쪽 견해에는 동의합니다. 그래도 울프삭 경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하군요. 어쨌든 단단히 새길 만합니다. 저도 제 직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군요. 한잔하죠.”

후하게 웃으며 보드카 병을 들었다. 레이가 “술 못 마셔요.” 하고 거절했다. 나는 으쓱 어깻짓하며 보드카 병을 내려놓았다.

괜찮은 견해로군.

사실 나는 레이가 멍청하다고 단정해 왔다. 무신경한 성격도 그렇고, 백치미 떨어지는 용모 탓도 있었다. 그랬건만 저런 생각을 할 줄 아는 머리가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솔직히 그가 내놓은 견해보다, 그에게 머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내가 그의 가랑이에만 정신이 빠져 놓치고 있던 사실이었다. 정식 교육을 받았다면 어딘가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잘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 레이는 극빈자 신세일 따름이었다. 극빈자 중에서도 상극빈자였다. 내 좆을 받아 주는 데만도 체력이 모자랄 만치 나약했다.

동명이인의 구레나룻이 돌연 눈앞을 스쳤다. 레오파드의 비웃음이 앞에서 물을 마시는 레이에게 겹쳤다. 갑자기 열이 치솟았다. 걷잡을 수 없이 지글지글 끓었다.

레이가 샤쉴릭으로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 별것 아닙니다.”

나는 급히 웃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레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레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꽤 즐거웠다.

레이는 말이 별로 없었다. 조용히 웃거나 담담하게 의견을 늘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흐흐흐, 후후후, 음산하게 낄낄거리거나 허풍을 떨어 대는 새끼들하고만 줄곧 부대끼다가 저런 반응을 접하니 신선했다. 울프삭 경에 대한 견해에서도 드러났지만 보기와 달리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내 이름을 묻지 않을까 기대하며 슬그머니 수작도 걸었으나 레이는 끝까지 질문하지 않았다.

기분이 확 잡쳐 버렸다. 웃기지 않는가. 몸을 섞은 횟수가 몇 번인데 이름 하나 묻지 않다니. 굉장히 불쾌했다.

하여간에 무신경하기는…….

레이를 데려다준 뒤 집으로 차를 몰며 생각에 잠겼다. 레이가 한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나는 픽픽 웃었다.

제법 날카롭긴 했어.

하지만 이틀 뒤에는 견해를 수정해야 할걸…….

다음날 아침, 출근한 나에게 대원이 소포를 전했다. 붉은 리본이 달린 화려한 상자였다. 업무실로 들어오는 모든 우편물은 폭발물 탐색을 거쳤다. 뇌물이려니, 하며 소포를 뜯다가 멈칫했다. 온몸으로 한기가 내달렸다.

소포 상자에는 절단된 인두(人頭)와 노트북, 그리고 비디오 시디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첫눈에 알아보았다. 회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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