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M─
레드폭스가 열 받은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이쪽을 노려보다가 홱 돌아누웠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다니까.
저럴수록 나를 즐겁게 해 준다는 사실을 왜 모르실까.
아마빛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슬쩍 그의 상의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레드폭스가 움찔했다.
“뭐, 뭐하는…….”
뭐기는.
“이 정도는 허락해 줬으면 하는데요.”
내 느물거림에 레드폭스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간신히 참는 눈치였다.
레드폭스는 강단 있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레드폭스보다 천만 배는 더 강단 있는 녀석이었다. 아무도 나를 못 이겼다.
나는 알지. 여길 만져 주면 당신이 좋아한다는 걸.
유두를 조심스럽게 애무했다. 그가 긴장을 풀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얌전히 돌아갈 의향은 없었다.
대신 그쪽 사정을 봐서 오늘은 적당한 선에서 그치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아침부터 내리 기분이 엉망이었다. 에밀렌의 추문은 이슈로 급부상했으나 약발이 오래가지는 못할 터였다. 고작 이런 일로 뛸 듯이 기뻐하는 울프삭 경이 한심했다. 오늘도 42번가를 건성으로 정찰한 뒤 스노우 화이트로 향했다. 기분전환 겸 밤새 거하게 즐길 심산이었다.
가는 길목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다투는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웬 뚱뚱한 대머리가 레드폭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건 또 뭔 일이지. 나는 차를 아무데나 세워 놓고 급히 내렸다.
대머리가 레드폭스더러 자기 마누라라느니 빚쟁이라느니 외치는 소리가 거리를 시끄럽게 울렸다. 마침 기분이 극도로 저조하던 탓인지 내 뒤통수에서 뭔가가 핑 날아갔다.
곧장 다가가 레드폭스에게서 대머리를 확 떼어냈다. 놈의 복부에 대고 바로 펀치를 먹였다. 아홉 쌍둥이를 임신한 양 퉁퉁한 아랫배가 푹 들어갈 만치 강하게 꽂아 넣었다. 20킬로그램짜리 샌드백도 여러 차례 구멍을 내 놓았던 주먹으로 복부를 연속으로 강타했다. 서너 번 만에 대머리의 눈에서 흰자위만 남았다. 주먹을 박을 때마다 퉁퉁한 아랫배 안쪽에서 장기가 터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람 구실 못하도록 사정없이 모조리 터뜨려 놓았다. 중간에 레드폭스가 내 허리를 붙잡고 말렸다.
그게 더욱 기분을 나쁘게 했다.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는 그에게 저 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거짓말한 다음 대머리를 계속 뭉개버렸다. 특히 놈의 좆을 집중적으로, 철저히, 잔인하게 짓이겨 주었다. 워커 아래에서 불알이 터지고 찌부러지는 감각이 아주 짜릿했다. 그런 후 팔과 다리까지 부러뜨려 버렸다.
그러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코피로 범벅된 레드폭스의 낯을 보니 역시 내가 잘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레드폭스를 도와준 김에 섹스도 그의 몸에 해결보기로 간단히 결정했다. 그의 얼굴과 몸매가 지나치게 내 입맛이라는 것이, 하필 요즘에 착실히 살기로 결심한 레드폭스에게는 불행이었다.
나는 아마빛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으며 그의 가슴을 애무했다. 어느 결엔가 생각에 잠겼다.
령이라…….
정말로 그놈의 짓일까. 만약 정말로 령이 존재한다면, 마넨은 어느 경로로 령과 접촉하는 것일까. 그리고 령은 어떤 능력을 갖추었을까.
신비의 영역을 다룬다고만 알려진 령. 그조차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울프삭 경도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말 다한 것이다.
여하튼 울프삭 경은 이쪽으로 일감을 던졌고, 나는 어떻게든 실적을 올려야 했다. 수확이 전혀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애매한 주술사를 하나 족쳐서 시나리오를 외우게 한 다음, 울프삭 경에게 그를 령이라고 우기며 갖다 바치는 것이다. 한숨이 나오리만치 한심한 수단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마넨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제껏 마넨의 행동력은 내 예측에서 두어 발자국 앞선 정도로서, 크게 놀랄 만큼은 아니었다. 그 기민함이 요즘 부쩍 빨라진 듯했지만, 그것도 마넨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탓일 터였다. 긴장한 복서는 반응이 빠른 법이다.
설사 령이 존재한다고 쳐도 무엇이 문제인가. 일국의 최고 관리라는 작자가 주술사나 불러들여 흥탕망탕 주문을 외우며 손바닥이나 비벼 대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부터 나와야 제대로 된 반응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나 훌륭한 주술사라면 일찌감치 마넨을 1인자에 올려 주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령에 관한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아도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령은 울프삭 경의 신경쇠약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요컨대 헛것이었다.
울프삭 경은 마넨의 빼어난 지략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그 열등감을 엉뚱한 데 투사시킨 결과가 령이라는 가상의 주술사를 낳았다─. 이것이 내 견해였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무거운 아랫도리나 해결하기로 했다.
“흠…….”
공들인 애무에 레드폭스의 유두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것 보라니까.
“좋아요?”
레드폭스는 말이 없었다. 저 침묵이 곧 ‘좋아요’라는 답이었다. 싫다면 저 성격에 일찌감치 발끈 화냈을 터였다.
나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풍성하게 굽이치는 아마빛 머리카락을 더듬노라면 숲속을 외로이 헤매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의 몸도 한겨울의 숲처럼 차갑고 습했다.
“오늘은 정말 심하게 안 하겠습니다.”
나는 발기한 하복부를 그의 허벅지에 밀착시켰다. 한참 뒤 레드폭스가 말했다.
“거짓말.”
어떻게 알았지.
나는 소리 죽여 웃었다. 심하게 굴지 않으려 해도 도리가 없었다. 내가 즐기는 것은 그렇고 그런 섹스였고, 조심하려 드물게 마음먹어도 결국 그 솜씨가 나와 버렸다. 그건 내 천성이었다.
“내게 오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같이 즐겨 보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추호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쪽도 약속했으니 지켜요.”
말은 잘한다. 여기나 심 세우지 마시지 그래.
“이거 섭섭한데요. 당신도 지금 반응하고 있잖습니까. 그 짓 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다는 사람이 이러진 못할 것 같습니다만?”
일부러 빈정거리며 그의 상의를 확 젖혔다. 레드폭스가 비명 질렀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의 부드러운 가슴을 입에 머금었다. 유두를 애무하며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손끝에 닿는 혀의 감촉이 오싹했다. 그 감촉을 즐기며 머리를 아래로 내렸다.
레드폭스는 가는 숨을 토하며 꼼짝도 못했다. 나는 오럴로 그를 애무했다. 나중에 헛소리 못하도록 확실하게 끝장냈다. 몸을 떨던 그가 눈을 내리깔며 낮게 신음했다. 내가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정액을 삼켰다. 이쪽이 먼저 봉사해 줬으니 다음은 내 차례였다. 즐기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직 코트도 벗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레드폭스만큼은 서로 맨살을 부딪치며 섹스하고 싶었다. 저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고이 내버려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레드폭스가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지중해를 응축시킨 듯한 푸르디푸른 눈동자에서 빛이 부서졌다. 나는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옷을 모두 벗었다. 그러고 레드폭스의 옷까지 벗겨내다가 멈칫했다.
두들겨 맞은 그의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했다. 내가 총애하여 마지않는 몸에 피멍이 잔뜩 져 있었다. 긁힌 곳도 여러 군데였다. 잔뜩 고무된 기분이 단박에 사그라졌다.
이런 제기랄. 살의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탄창이 빌 때까지 총으로 그 새끼 대가릴 쏴 줄걸.
레드폭스가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했다. 내 낯에 잠깐 본바탕이 드러났던 듯했다. 나는 황급히 입가로 웃음을 띠었다.
“잠시 딴생각한 것뿐입니다. 하하. 엉뚱한 추측은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오늘 운이 정말 좋군.
이쪽은 정반대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가볍게 즐길 수밖에.
성질 죽이려 애쓰며 그를 다루었다. 치렁치렁한 아마빛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흐트러진 흰 몸을 건드렸다. 레드폭스가 좋아하는 부위를 애무하며 아래를 느리게 넓혔다. 레드폭스는 나도 깜짝 놀라리만치 충실하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난폭하게 다룰 때와는 판이했다. 하여튼 간에 대개가 이런 섹스를 좋아했다. 레드폭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럴 때마다 참 씁쓸하다니까…….
나는 쓰게 웃으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부드럽게 감기는 아래로 페니스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구불구불 굽이치는 아마빛 머리칼을 입술로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것도 성적 소수자의 비애라면 비애겠지.
나는 내 사디스트 성향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섹스 취미에 굳이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철들자마자 맛들인 놀이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제일 강한 놈을 패는 것이었다. 그 취미의 연장선상으로 각종 스포츠와 격투기, 사격 등도 연마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취미가 직업이 되어 있었다. 십대 후반에 나는 이미 한 구역에서 제법 촉망받는 보스였다.
가이거는 우연한 기회에 입단했지만, 구역에서 적수가 없었던 나에게 가이거는 본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말단 대원일 때는 거리를 한껏 질주하며 시위대를 때려잡는 즐거움을 누렸고, 고문부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귀족나리들과 그 사냥개들, 별의별 불순분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혼쭐냈다. 본부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거물들을 직접 해치웠다.
이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드러내는 사람들처럼, 나는 태어날 때부터 폭력을 좋아하고 음모에 소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수학영재처럼, 나는 살인과 음모에서 영재인 것이다.
언젠가 레드폭스가 말한 ‘겉으로만 친절함을 가장할 뿐이다’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노련한 악당이 되어 가며 체득한 요령 중의 하나가, 상대방이 나를 판단할 수 없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돈 코를레오네도 말하지 않았던가. “네 생각을 패밀리의 바깥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
대개가 속았다. 이웃들은 내가 점잖고 성실한 사업가인 줄로만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본시 나는 길거리 갱이 즐겨 쓰는 난폭한 말투나 쓸데없는 힘자랑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납치된 귀족나리들은 내가 가면을 벗으면 하나같이 “네가 진짜 가이거 본부장이니?”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러나 진급 동기 레오파드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이빨을 뽑고, 살가죽을 도려내는 놈”이 바로 나였다.
세 번째로 레드폭스의 체내에 사정하며 상념을 끝냈다.
“아…….”
레드폭스가 신음을 흘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그러나 이쪽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도리 없는 녀석이었다.
나는 코트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연기를 깊숙이 빨며 욕구불만을 삭히려 노력했다.
“……여긴 책방이에요.”
레드폭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 예. 잠깐 잊고 있었군요.”
나는 급히 담배를 비벼 껐다. 레드폭스는 옆으로 등을 돌린 채 있었다. 그는 섹스 후 언제나 저런 식이었다. 사람의 시선을 싫어하는 습관의 연장으로 보였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버르장머리였다. 저 수준의 용모라면 사람의 시선을 즐겨야 정상일 텐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아랫도리를 대충이나마 해결하고 나자 여유가 조금 돌아왔다.
어쨌든 다음 작품(가이거에서는 ‘정치깡패 짓’을 이렇게 불렀다)에 얼른 착수해야 했다. 울프삭 경은 나보고 헛것이나 쫓으라고 윽박질렀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봉급을 받아먹는 처지에 할 말은 아니지만, 울프삭 경은 너무 멍청했다. 4부장에게 이번 작품 진행을 맡겼다가는 외려 이쪽으로 역풍이 불고도 남았다. 4부장 리져드는 영리하지만 대담성과 추진력이 부족했다. 이 건은 내 손으로 반드시 해치워야 할 작품이었다.
신임 왕 옹립 후 지금까지, 나는 마넨을 실각시킬 기회만 노려왔다. 마넨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3인방을 능가하는 능구렁이였다. 그런 놈을 상대할 때는 신중함과 인내심, 무엇보다도 천운이 필요했다. 나는 그 천운이 목전까지 임박했다고 확신했다. 레오파드는 내가 할 일 없이 오입이나 하고 다니네, 생각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뒤에서 할 것 다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의원선출 대회를 기점으로 마넨을 비롯한 온갖 문신귀족들을 나락으로 몰아넣을 작정이었다.
초석부터 공고히 다져야 할 것이다.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이템이라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내 업무실에는 문신귀족들과 관련한 각종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대외적으로 가이거는 울프삭 경이 만든 정치깡패 집단으로만 알려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나와 함께 승진한 동기들은 가이거 역대 최고의 멤버들이었으며, 모두 야심만만했다. 우리는 울프삭 경을 보좌하는 동시에, 깡패집단에 불과했던 가이거의 일대 체질개선까지 이뤄냈다. 현재 가이거는 국내 최고의 정보조직이었다. 물론 울프삭 경은 이런 부분에 추호도 관심 없었다.
자, 그럼 무엇부터 건드려 볼까.
역시 제일 먼저 마넨의 언론사부터 조져야 할 것이다. 싸움꾼은 육체가 노쇠해질 때 무력해지듯, 글쟁이들은 펜대가 꺾이는 순간 끝장이었다. 시끄럽게 왈왈거릴 놈들부터 미리 잡아들인 다음, 화려하게 내란죄를 터뜨린다. 그때부터는 쌩쌩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마넨 소유의 언론사는 탈세와 돈세탁의 근거지다. 이것부터 테이프 끊어 볼까.
“계속 무슨 생각해요?”
레드폭스가 불쑥 말했다.
“아까……도 생각에 빠져 있던 것 같던데요.”
“아, 뭐. 하하하.”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는 와중에도 용케 알아차렸군요. 관찰력이 뛰어난가 봅니다.”
“그쪽은 썩 좋지 않았나 보죠. 끝나자마자 담배부터 피우고.”
흐흠……?
예전의 “넣어요.” 유의 직설화법인가.
나는 장난기를 느끼며 그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왜요? 신경 쓰입니까? 그럼 좀 도와줄래요?”
레드폭스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그 침묵에 담긴 의사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신경 쓰입니다. 좀 도와드리지요.’라는 뜻이었다.
딴에는 미안한가, 자기만 즐긴 것이? 후후후.
“뭐, 어쩔 도리가 없는 녀석이지요, 저는. 결국은 그렇고 그런 게 취미라서요. 나쁘다는 거 충분히 압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론 성적 소수자의 비애랄까요. 믿거나말거나 가끔은 슬프답니다.”
일부러 처량하게 말하며 그의 아랫도리로 슬그머니 손을 넣었다.
세 번의 삽입으로 풀린 구멍을 살짝 벌리자 체액이 새어나왔다. 레드폭스는 움찔했으나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에게 몸을 밀착하고서 체액을 손가락에 흐를 만치 적셨다.
참 도리 없는 녀석이라니까…….
나는 쓰게 웃으며 손가락을 그의 입술로 가져갔다. 반사적으로 레드폭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닐 텐데요. 거기에 들어갔다가 나온 내 좆은 잘도 빨아 줬잖아요. 똑같습니다. 입 벌려요.”
벌린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이 스며드는 레드폭스의 얼굴을 감상했다. 감겨드는 안이 점막처럼 끈끈했다. 다시 손가락으로 아래를 적시며 “맛있긴 합니까, 그런데?” 하고 물었다. 여전히 침묵이었다.
그러나 고분고분 이쪽 요구를 들어주는 태도에, 불만스레 남아 있던 욕구가 점차 사그라졌다. 내 체액으로 젖어드는 파리한 입술이 가학적 욕망을 조금씩 충족시켰다. 나는 아래에서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의 입술에 체액을 흘려 넣기로 작정했다. 세 번을 쌌으니 제법 양이 많을 것이다.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이러지 않고선 내 본능이 풀리지 않는걸.
손바닥에 고인 정액을 그의 입술에 흘려 넣으며 말했다.
“어쨌든 병원은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약을 처방받으면 자연치유보다는 빨리 나으니까요. 멍뿐 아니라 여러 군데 긁히기까지 했던데요. 24시간 하는 병원을 알아요. 태워 드리죠.”
“병원은 안 갑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나는 꼭 보내야겠어.
“흠. 어차피 한 번쯤은 꼭 가야 할걸요.”
아래를 좀 더 벌리며 말했다. 손가락을 넣어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그의 몸속을 음미했다. 세 개 들어갈 정도였지만 나는 일부러 네 개를 넣었다. 레드폭스로서는 숨이 좀 찰 것이다. 천천히 더듬으며 전립선을 애무했다. 내벽 깊은 곳에서 체액이 샘처럼 흘렀다.
나는 입술을 아래로 떨어뜨려 그의 유두를 핥았다. 낮게 신음하던 레드폭스가 말했다.
“한 번쯤은 꼭 가야 하다뇨? 왜요?”
“왜긴요. 성병검사 때문이죠.”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쪽도 검사 받으러 한 번쯤은 병원으로 가야죠. 저는 정기적으로 갑니다. 아무하고나 하룻밤을 지내는 부류에게는 필수죠.”
“예에에에―?”
바로 기겁성이 터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다. 나는 경악에 떠는 입술로 체액을 흘려 넣었다. 이번의 양은 퍽 많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최소한 저에게는 말입니다. 저는 일주일 전에 검사를 받아서 이상 없다는 결과를 받았고, 그 뒤에 관계를 맺은 사람은 당신뿐이거든요. 문제는 그쪽인 것 같습니다만.”
“내, 내가,”
레드폭스가 웅얼거렸다. 체액을 삼키지 못한 채 질린 저 낯빛이, 그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재미있었다.
“가만있지 말고 혀 움직여요. 이미 그쪽에 나도 쌌고 나도 그쪽 거 잔뜩 마셨는데 지금 와서 이래봤자 뭔 소용입니까. 만에 하나 그쪽이 문제면 할 수 없죠. 같이 사이좋게 망해 봅시다. 어쨌든 삼키기나 해요. 아래가 마를 때까지 할 겁니다.”
나는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치우는 성격이었다. 가이거 부장들도 엄지를 치켜세우길 마다않는 넉살과 거짓말, 공갈협박의 황제였다. 적수가 아무리 강해도 마지막에 웃는 것은 나였다. 언제나 그랬다. 레드폭스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두말 않고 레드폭스는 병원으로 갔다. 운전하며 흘끗 곁눈질하니 그는 초조하게 손톱을 씹고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레드폭스가 진료 받는 동안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건네받은 그의 차트를 훑어보았다. 레드폭스의 나이는 스물일곱, 많아 봤자 열아홉, 스물 남짓이려니 했던 내 짐작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본명.
레이 아리사.
간호사는 사흘 후 진료결과를 찾아가라고 했다. 레드폭스를 태우고 42번가로 되돌아갔다. 레드폭스, 아니 레이의 진 빠진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레이 아리사…….
담배를 피워 물며 생각에 잠겼다. 아리사라. 명망 있는 무신귀족 가문에도 똑같은 성이 있었다. 하필 그런 성이라니 웃겼다. 설마 아리사 경의 오입으로 태어난 자식은 아닐 테고.
레이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사이 레이는 가볍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입을 헤 벌린 꼴에 어이가 없었다.
하여간에 무신경하긴…….
나는 혀를 끌끌 찼다. 42번가 광장이 저만치서 보였다. 광장 한복판에서 처량하게 눈을 뒤집어쓴 페르세우스 청동상을 훌쩍 지나쳐 매음굴로 단번에 진입했다. 15분 만에 레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담배를 비벼 끈 후 레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다 왔어요. 일어나지요.”
“으음…….”
레이가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며 눈을 비볐다. 저 모습에 또 침이 고여 버렸다. 진정 못 말릴 녀석이었다. 히터를 틀어 놓아서 마침 레이는 코트를 벗고 있었다. 나는 슬쩍 그의 상의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레이가 화들짝 눈을 떴다.
“뭐, 뭐하는…….”
“뭐긴요.”
나는 웃으면서 레이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시간을 끌며 농밀하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을 진하게 탐하며 가슴을 느릿느릿 애무했다. 유두가 바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지그시 웃었다. 레이의 손을 끌어당겨 내 물건을 만지게 했다. 벌써 단단히 발기해 있었다. 레이에게 계속 키스하며 슬며시 옷을 벗겨냈다. 수차례 섹스를 나누면서 볼 것 다 보고 알 것 다 알아 버린 터였다. 이제는 레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대충 알았다.
아직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관찰한 결과 레이는 좆을 빠는 걸 좋아했다. 오럴 솜씨는 서툴렀다. 애널섹스는 부담스러워했다. 그래도 일단 넣어 주면 엉덩이를 제법 흔들었다. 체위는 후배위를 편하게 느꼈다. 정상위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싫어했다. 애무로 달아오르게 해 놓으면 삽입섹스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몸을 맡겨 왔다. 성감이 잘 발달한 몸뚱이였다. 이런 몸뚱이로 수도승 생활을 희망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밤 1시였다. 카섹스만 하고 오늘은 끝내기로 결정했다. 바지 지퍼를 내리며 레이의 머리를 아래로 눌렀다. 레이가 내 남근을 멀거니 응시했다. 망설임과 당혹감에 휩싸인 눈동자였다. 그러면서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저 표정이 아주 짜릿했다.
“빨리.”
나는 그의 팬티를 끌어내리며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