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L.
오늘도 길거리에서 경찰들에게 주술사들이 끌려갔다. 헌책방 옆에서 호객하던 창녀가 “42번가만 유난히 주술사를 잡아들이네. 이러다간 아주 씨가 마르겠네.” 하며 껌을 딱딱 씹었다. 나는 화분에 물을 주며 웃었다.
맘껏 광대 짓해라, 울프삭.
암만 발악해도 이 머리카락 한 올 건질 수 없을 테니.
저들은 나를 절대 잡을 수 없다. 저들이 얻을 것은 허탕이요 잃을 것은 시간뿐이다. 주술사 탄압을 백년 해도 매한가지다. 제아무리 들쑤셔 보았자 령의 실마리는 조금도 쥐지 못할 테니까.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마넨 경은 이곳을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구태여 42번가까지 찾아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울프삭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내 상담은 전화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전의 ‘령’ 마라타는 직접접촉이 상담에 필요했지만, 나는 그녀를 뛰어넘은 령이었다. 성가시게 얼굴까지 대면해 가며 상담할 필요가 없었다.
아울러서 마넨 경과 통화하는 내 휴대전화는 왕국 변방의 농부 이름으로 개설한 것이었다. 마넨 경 역시 통화기록 따위나 추적당할 어설픈 위인이 아니었다. 울프삭이 암만 뒤져도 손아귀에 움켜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트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혹독한 겨울이 석 달 넘게 남았다. 42번가도 불황이었다. 거리를 시끄럽게 만드는 자들은 잡혀가는 주술사 무리뿐이었다. 마넨 경의 푸들인 내가 저들을 동정해 보았자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격이었다. 귀족들의 폭정에 고통 받는 사람은 굴러 차였고 내 감정도 메마른 지 오래였다.
그러나 울프삭과의 게임은 흥미로웠다. 의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사실 마넨 경의 정적들 중 내가 제일 얕잡아보았던 인물이 울프삭이었다. 그는 포악한 독불장군이었다. 개인사병 조직 가이거만 보아도 근본이 드러났다. 더군다나 몹시 멍청했다.
마라타에게 상담을 받던 무렵, 마넨 경은 울프삭과 왕족 엑달 공, 무신귀족 수오미넨, 문신귀족 에델마에 맞서 난파전을 치르고 있었다. 마라타는 마넨 경에게 울프삭과 손잡으라고 조언했다. 울프삭과의 야합이 마넨 경의 짐을 더는 데 도움이 되리라 계산했던 것이다. 마라타를 뒤이어 마넨 경의 상담을 맡은 나도 똑같이 판단했다.
당시 나는 이렇게 단언했다.
「무엇보다도 마넨 경께서 차후 울프삭을 좌지우지하거나 실각시키는 일이 수월할 테니까요. 그는 바보입니다.」
그만큼 울프삭을 얕잡아보았다. 그러나 7년 전부터 나는 울프삭에 대한 인상이 점차 바뀌었다. 정쟁을 20년 넘게 치르면서 그 양반도 잔뼈가 굵은 모양이었다. 근래 3년간은 더욱더 고단수가 되었다. 울프삭은 엑달과 수오미넨, 에델마를 차례대로 암살하거나 혹은 죄를 뒤집어씌워 실각시켰다. 그 수법의 잔혹함이며 교묘함에는 나도 놀랄 정도였다.
어쨌든 마넨 경은 울프삭이 날뛸 동안 그에 맞춰 손뼉이나 치고 언론이나 통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로터스까지 술술 올라갔다. 욕은 울프삭이 다 먹는 동안 마넨 경은 인품(?)도 지키며 실속까지 챙겼다.
문제는 3인방이 사라지고 신임 왕 옹립이 완료된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울프삭은 마넨 경에게 칼날을 돌렸다. 마넨 경도 더는 박수부대로서만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필케 암살도 그 일환이었다. 요 1년간 마넨 경이 획책한 암살만도 스무 건이 넘었다. 그 탓에 내 상담노트도 음모와 살인으로 얼룩덜룩했다. 귀족들이야 민생에는 추호도 관심 없이 황금전쟁에나 미쳐 날뛰는 흡혈귀들에 불과했지만, 이게 뭔 짓인가 하며 고소를 머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바닥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지.
쓰게 웃으며 노트를 덮어 버릴 찰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내게 연락을 취할 자는 마넨 경뿐이었다.
“예.”
“어제 코트비카의 장례식에서 울프삭과 악수했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정신을 기울였다. 이런 때 으레 그렇듯 몸에서 땀이 배며 손이 떨려왔다.
“굉장한 분노가 느껴지는군요……. 머리가 아파 죽으려고 하네요.”
“흥, 그럴 테지. 코트비카 따위 우리가 미리 던져 놓은 제물이라고 그놈이 어찌 생각했겠나. 코트비카가 왕비와 만나고자 우리 눈에서 벗어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이 땅에 놈들의 목이 굴러다녔을 터. 아까운 일이야. 가엾고 어리석은 코트비카.”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입니다. 좋습니다. 한 번 더 공격하도록 하지요. 울프삭이 이번 왕세자비 간택에서 필케 가문을 대신할 후보를 결정했군요. 그의 주위에 M과 A자가 흘러나오네요. ……여자가…… 보입니다……. 대략 십대 후반. 양 머리 옆에 중국 만두 같은 게 붙어 있는 실루엣이군요. 특이한데요.”
“누굴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겠구먼. 마가렛 아리키아넨. 머리를 땋아서 양 옆으로 둥글게 말고 다니는 소녀지. 연예인 지망생이라 가문의 골칫거리라네. 마가렛이라……. 하긴 아리키아넨 가문이 필케 못지않긴 하지.”
마넨 경이 열심히 떠들었다. 모처럼 울프삭에게 한 방 먹여서 퍽 즐거운 듯했다.
“그런데 울프삭이 근심이 많군요. 마가렛의 몸에 큰 흠집이 있는 모양입니다. 왕세자비로선 치명적인…… 잠깐 기다려 보세요. 한번 보지요. 그에게서 글자들이 쏟……아집니다. 이런 맙소사.”
내가 킥킥 웃자 마넨 경이 “왜 그러나?” 물었다.
“Gonorrhea.”
“임질! 허허! 이 사랑스런 말괄량이 같으니!”
마넨 경이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다.
“마가렛 말고 다른 후보는 없습니까?”
“없네. 대개 약혼을 했고, 아직 정혼자가 없는 영양은 지나치게 나이가 많거나 어리지. 이거 재미있군. 그럼 내가 어쩌면 좋겠나?”
“문인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이겠습니까. 내일 신문만 기다리겠습니다.”
“일 끝낸 후에 연락하겠네. 그 외에는 할 말이 없나?”
“괜찮습니다. 그들은 왕세자비 물색에만도 초주검인걸요. 다른 건 다 괜찮고 수요일 대학동창회는 나가지 마십시오. 또 사고를 준비하고 있군요.”
“흥. 실컷 준비하라지. 그럼 조만간 또 연락하겠네.”
전화를 끊고 상담노트에 마가렛 아리키아넨을 체크했다. 지금은 심드렁해졌지만, 한때 내 유일한 기쁨이 무신귀족들에게 엿을 먹이는 일이었다. 마넨 경 소유의 신문사는 왕국에서 구독률 1위를 달렸다. 내일 조간이 흥미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