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M─ (8/101)

8 .M─

수차례 섹스하면서 익히 감지했지만, 레드폭스는 사람을 잘 쳐다보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 레드폭스가 지금은 이쪽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빤히 쳐다보는 파란 눈동자가 기분을 북돋아 주었다. 콧대가 높지 않았던 미인이 오늘은 웬일인지 강경했다. 그것이 미안하게도 자극적이었다. 짓궂게 그를 놀리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간만에 보는 레드폭스는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병색은 여전했으나 예전같이 엉망진창으로 나사 풀린 눈초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빛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고 흰 피부는 장밋빛을 희미하게 띠고 있었다. 이런 그를 고이 내버려두다니 어림도 없었다. 모조리 벗겨 저 희디흰 피부를 실컷 탐해야 옳았다. 작은 몸속에 내 페니스를 꽂아 넣고 허벅지 사이가 넘치도록 질질 싸 줘야 했다. 오럴 섹스는 즐거웠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이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레드폭스가 말했다.

“농담이 아니군요.”

“이런.”

나는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정색하는 레드폭스의 반응이 유쾌했다. 사실 농담 반 진담 반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레드폭스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레오파드도 인정하는 수작의 황제였다. 내 수작에 넘어오지 않은 바텀은 이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본격적인 판’을 벌인 뒤에는 울면서 도망가기 일쑤였지만.

“이거 머쓱한데요. 아뇨, 농담입니다. 저는 그런 놈이 아니에요. 그냥 해 본 소립니다.”

내 말에 레드폭스가 낯빛을 굳혔다.

“농담 그만둬요. 전혀 안 어울립니다.”

저 눈빛이 예전의 바보 파트너가 우리를 흡사 루마니아 흡혈박쥐같이 쳐다보던 때와 비슷했다. 나는 처음으로 불쾌해졌다.

“이거 유감스럽군요. 안 어울린다니요. 이래봬도 친절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인데. 뭐, 섹스 취미가 그렇고 그런 건 인정합니다만.”

“겉으로야 그렇게 보이겠지요.”

레드폭스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나는 문득 흥미를 느꼈다.

“겉으로야 그렇게 보일 것이다? 어딘지 어폐가 있는 말이로군요?”

“음…….”

레드폭스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섹스 취미 때문입니까?”

내가 묻자 레드폭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뭡니까?”

나는 슬쩍 그의 코트 단추를 풀었다. 레드폭스는 거부하지 않았다. 만사 포기해 버린 눈치였다.

이것 보라니까.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의 스웨터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유두를 만졌다. 레드폭스가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감대였다. 나도 여기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당장 아래가 묵직하게 발기했다. 예전에 계획했던 대로 오일 없이 그를 즐겨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괜찮아…… 피는 안 흘리는 선에서 그쳐 줄 테니까…….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레드폭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섹스 취미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전반적으로요.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죠. 아마 그쪽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대개 그렇게 볼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예의 바르구요. 그렇지만…….”

내가 그의 유두를 깨물자 레드폭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계속 말해요.”

짓궂게 말하자 레드폭스의 낯이 빨개졌다. 나는 그의 스웨터를 끌어올려 벗겨냈다. 잿빛 그늘 속에서 반라가 하얗게 빛났다. 그의 유두 하나하나 번갈아 입을 맞추었다. 가슴을 머금어 혀끝으로 유두를 건드렸다. 이로 슬쩍 긁듯이 깨물자 유두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어섰다. 역시…… 하고 뇌까리며 나는 웃었다.

레드폭스가 희미하게 신음을 흘리며 띄엄띄엄 말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만 위장한 거죠. 겉으로만. 사실은 전혀 친절하지 않아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 이를테면 그날 내 집에서…….”

“내 집에서?”

나는 그의 팬티를 발목으로 끌어내리며 물었다.

“그때, 그쪽이 말로는 내가 내키지 않는다면 정액을 삼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죠. 하지만 그쪽은 일부러 목구멍 깊숙이 사정해서 정액을 내뱉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았어요. 그러곤 괴로워하는 나를 뚫어져라 지켜보았죠. 아니에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움직임 없이 있다가 잠깐 뒤 웃었다.

“이거 놀라운데요. 그 와중에도 저를 살필 정신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불쾌했다면 사과하지요.”

“말로만 저러지.”

레드폭스가 코웃음 쳤다. 노골적으로 나를 비웃는 표정이었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그는 겉보기와 달리 강단 있는 성격이었다. 슬며시 화가 났다.

“그럼 상관없겠군요. 어쨌든 이렇게 벗겨 놓을 때까지 가만히 있었으니 저와 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상관없겠지요? 내 좆을 그쪽 안에다가 넣고 싸는 거 말입니다. 뭐, 어차피 그쪽 말대로 나는 나쁜 남자니까.”

일부러 심술궂게 말했다. 레드폭스는 한참 후 한숨을 쉬었다.

“나쁜 남자라고는 안 했어요……. 아무튼 내가 거부해도 당신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나도 하는 쪽으로 정했어요. 그러니 하려면 얼른 해요. 하지만 오늘만이에요. 저는 남자들과 뒹구는 생활을 이제 끝낼 생각이거든요.”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나는 싸늘하게 웃었다.

주저 없이 행동에 들어갔다. 분노가 내달렸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건방진 저 태도 때문일 것이다.

작정했던 대로 오일 없이 해 버렸다. 나는 자제력이 충분한 남자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도 상처를 입히는 선까지는 가지 않았다. 대신 일부러 힘든 체위로 사정도 늦춰 가며 오랫동안, 정액이 묽어질 때까지 싸 주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의 몸속 깊숙이 싸 놓고 성기를 뽑았다. 벌게져 꿈틀거리는 아래에서 체액이 질질 흘러나왔다. 아래에 깔아 놓은 그의 트위드 코트 안감이 온통 젖어 있었다. 레드폭스는 몸도 일으키지 못한 채 괴롭게 신음했다.

“미안하군요. 많이 힘들었습니까? 아, 이러면 또 말로만 그런다고 하려나요.”

짜증이 났다. 거하게 싸 줬건만 기분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옷을 입으며 레드폭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낯빛이 창백했다. 온몸을 뒤덮은 머리카락은 막 건져낸 물풀 같았다. 그것은 어딘지 묘한 느낌이었다.

곧바로 나가 버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일어나 봐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다리 사이에서 체액이 뚝뚝 떨어졌다. 아래가 완전히 풀려 있었다. 이 상태로는 레드폭스가 집까지 제 발로 걸어가기에는 무리였다. 그의 맨몸에 코트만 걸쳐 준 뒤 들어올렸다.

레드폭스를 안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갈 수도 있었으나 그냥 걸어서 갔다. 매음굴도 고요해진 깊은 밤이었다. 인적이 끊긴 어둠속에서 차디찬 바람이 홀로 떠돌고 있었다.

거리는 검고 남루했다. 빈틈없이 어깨를 맞댄 허름한 주택 지붕들은 모두 두터운 눈으로 뒤덮여, 하얗게 머리가 샌 노파처럼 보였다. 이곳 주택들 1층은 대개 상가였고, 2층부터는 창녀와 마약중독자, 삼류 예술가, 퇴물 깡패, 극빈자 노인들이 세 들어 살았다. 레드폭스의 원룸도 낡아빠진 연립주택에 있었다. 붉은 외벽 가득히 담쟁이덩굴을 담요처럼 뒤집어쓴 낡고 오래된 주택 5층이었다.

침대에 레드폭스를 눕히고 욕실로 가서 수건을 물에 적셨다. 레드폭스의 다리를 벌리던 도중 세척을 하는 쪽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보단 목욕이 더 낫겠는데요.”

내 말에 레드폭스가 푸른 입술을 깨물었다.

“나가 주시죠.”

화를 억누른 어투였다. 그러면서 내가 벌려 놓은 다리를 가운데로 모았다.

“흐흠.”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태도에 외려 짓궂은 감정이 생겨났다. 웬 부끄러운 척인가. 하하하. 내 정액이 가득 찬 아래를 보여 주기가 싫은 건가.

나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와줘야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의 무릎을 잡아 확 벌렸다. 레드폭스가 낮게 비명 질렀다. 여전히 풀려 있는 아래에서 실금처럼 체액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으로 아래를 벌렸다.

“괜히 힘주지 말아요. 설마 이런 걸 넣은 채로 잠들 생각은 아니겠지요?”

수건으로 감싼 손가락을 최대한 깊이 넣어 안을 닦아냈다. 참 많이도 쌌다……. 무심결에도 혀를 끌끌 찼다. 나는 강간 따위에는 취미가 없었다. 강제로 해서 못할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따위는 시시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진정으로 즐거운 것은 상대가 이쪽의 요구를 벅차하면서도 받아주려 애쓸 때였다. 그럴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눈앞의 이것은 그 흔적이었다.

입은 건방졌지만 레드폭스는 행위 도중 반항은 하지 않았다. 내게 맞춰주려 그 나름대로는 노력한 것이다. 나를 위해 레드폭스도 애쓴 셈이었다. 기분 좋은 정복감이 몸을 감쌌다. 여유를 되찾은 나는 그의 전립선을 천천히 더듬었다.

이쪽을 만지면 어쩔 수 없이 사내는 반응하게 되어 있었다. 레드폭스가 몸을 떨며 신음했다. “하지 말아요…….” 하는 그에게 나는 웃음을 돌려주었다. “나도 즐겼으니까 그쪽도 즐겨야지요.” 하며 계속 자극했다.

그러고는 그를 입으로 품었다. 천천히 오럴을 해 주며 레드폭스가 사정할 때까지 자극했다. 입안에 고인 정액을 삼킨 후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입술을 떼어낸 다음 시선을 맞추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레드폭스의 턱을 잡아 내게로 고정시켰다. 레드폭스가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 내 눈길을 피했다.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버릇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싫었던 습관이었다.

침묵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까 심하게 굴었으니 레드폭스를 위한 섹스를 해 줘 볼까…….

레드폭스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며 그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아깐 미안했습니다. 있지요, 제가…….”

나는 말을 멈췄다. 그새 레드폭스의 눈이 감겨 있었다.

벌써 자……?

어이가 없었다. 물론 피곤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이쪽이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잠들어 버리는가.

일명 《고등어로 나를 유혹한 날》 때도 알아보았지만, 역시나 무신경한 성격이었다. 내가 레드폭스라면 경계심으로 신경을 곤두세울 터였다. 레드폭스는 이미 곯아떨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레드폭스에게 시트를 덮어 주었다. 하긴, 한 번 더 하기엔 그가 녹초니까. 아쉽게 웃을 즈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레오파드였다.

“금일봉 소식치곤 너무 늦은 거 아냐?”

내 유쾌한 질문에 레오파드가 짧게 대답했다.

“당장 본부로 와. 필케 후작이 방금 독살당했다.”

나는 침묵했다.

필케 후작은 울프삭 경의 친인척이었다. 아울러서 그는 일곱 달 뒤에 있을 왕세자비 간택에 딸을 후보로 내놓을 예정이었고, 그의 지위로 보아 간택은 거의 확실시되던 터였다. 크루거의 직계와 확실한 혈연지척을 아직 맺지 못한 무신귀족들에게 왕세자비 간택은 큰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왕국의 관습상 귀족들은 미혼 자식이 부모의 상을 맞을 경우 3년간 결혼이 금지였다. 이런 제기랄.

한 방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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