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M─ (4/101)

4 .M─

오후의 거리로 황혼이 깔렸다. 본부에서 업무를 끝낸 후, 오늘도 어김없이 42번가 정찰에 나섰다. 정찰이라 해 봤자 자동차로 한 바퀴 빙 도는 게 고작이었다.

매몰찬 폭설이 거리를 희게 지우고 있었다. 오늘따라 42번가 거리에 인적이 뜸했다. 이런 맹추위에는 오입도 내키지 않을 만했다. 바야흐로 ‘눈의 여왕’이 춤추는 시기였다. 은실로 양탄자를 짜듯이 차갑고 희디흰 결정체가 무려 반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왕국을 뒤덮었다. 끔찍한 겨울이 앞으로도 넉 달이나 더 간다니 넌더리가 났다.

눈의 여왕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기나긴 겨울 탓에 왕국 사람들은 뱀파이어처럼 피부가 창백했고 대다수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왕국은 풍부한 우라늄 광산과 산유를 보유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원국가였다. 그 탓에 귀족들이 소위 ‘황금전쟁’이라고 불리는 이권다툼을 이백 년 넘게 벌이고 있었지만, 자원이라도 풍부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길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차도가 빙판길이었다.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치켜세우며 바삐 걸어갔다. 레오파드는 울프삭 경의 호위업무 때문에 오늘은 정찰에서 빠졌다.

나는 성의 없이 핸들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정찰이 바야흐로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오늘 울프삭 경은 우리를 불러들여 “어째서 아직도 소식이 없어? 이래서야 무슨 봉급을 타겠다고!” 하며 한 시간이나 다그쳤다. 기분이 엉망이었다.

차라리 유령을 잡아오라지 그래.

령이라……. 단서라곤 그들이 신비의 영역을 다스린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뿐이다. 신비의 영역이라고 해 봤자 주술이나 마법 따위겠지.

전통적으로 주술이 발달한 왕국에서 마녀나 주술사는 흔한 직업이었다. 울프삭 경이 미신 타파를 핑계로 대대적인 주술사 탄압에 들어간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당당하게 활개치고 있었다. 아울러서 주술은 여자들에게 특히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42번가에는 여성 매춘부가 많았다. 42번가에서 영업하는 주술사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성 매춘부 고객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저 모든 것을 염두에 둔다면, 42번가에 령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참새는 방앗간 근처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서 골치 아픈 난점이 암초처럼 도사렸다.

령은 보통 주술사가 아니다, 그들은 주술사를 초월한 존재다―.

울프삭 경의 말이었다.

주술사를 초월한 주술사라니, 그게 대체 무엇인가. 나는 퉤, 하고 담배를 뱉었다.

“그러니까 령은 없다 이거야. 결론은 그거라구.”

울프삭 경이 던진 단서는 너무도 막연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령이라고 혹시 아세요?” 물을 수도 없고…….

뭐, 덕분에 오입을 맘껏 즐기고 있으니 이쪽도 나쁘진 않지.

나는 투덜거리며 담배를 뽑아 물다가 멈칫했다. 저만치 떨어진 인도에서 익숙한 코트가 눈에 띄었다. 흔들흔들 걸어가는 그는 레드폭스였다.

흥미가 솟았다. 마침 기분이 안 좋던 참에 잘 걸렸다 싶었다. 차 속도를 늦춰 레드폭스를 뒤따라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저러다가 쓰러지겠는걸.

예의 그 커다란 후드가 달린 퀴퀴한 코트 차림이었다. 레드폭스가 쓰러질 듯 걸음을 옮겼다. 휘청거리는 움직임이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득 나는 픽 웃어 버렸다.

분위기 하나 일품일세…….

눈으로 뒤덮인 거리는 짙은 황혼에 젖어 있었다. 적포도주처럼 붉은 빛깔을 띤 거리에서 음산한 털코트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모습이 한 폭의 명화가 따로 없었다. 저것과 아주 비슷한 그림이 바로 눈앞을 스쳤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게다가 저건 또 뭔가.

레드폭스의 손에 작은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장바구니 밖으로 조그맣게 주둥이를 내민 두 마리 고등어가 보였다. 저런 걸 들고서 음산한 차림새로 휘청휘청 걷는 모습이 몹시도 희극적이었다. 그러나 저 코트를 벗기면 드러날 것은 달콤한 몸이었다. 폭포수같이 흐를 황금빛 머리카락이었다.

금방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나는 갈증을 느끼며 레드폭스를 살펴보았다.

어차피 오늘도 허탕 칠 것은 뻔한 일.

이 근처에 사나? 하긴 스노우 화이트가 여기서 멀지 않군.

나는 결정을 내리고 차 속력을 높였다. 일단 차에 태워 볼까. 이 시각에 호텔로 가기엔 얼굴이 팔릴 테니 카섹스가 더…… 하고 생각할 찰나였다.

레드폭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레드폭스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잠깐 뒤, 돌연 그가 한없이 느린 동작으로 쓰러졌다. 흡사 슬로모션으로 돌아가는 비디오를 보는 듯했다.

“이봐요!”

나는 황급히 자동차를 뛰쳐나가 그를 안아들었다. 후드 밖으로 드러난 안색이 주검처럼 창백했다. 맥을 짚어 보았다. 정상으로 뛰고 있었지만 열이 심했다.

“괜찮습니까? 나 알죠? 정신 차려 봐요.”

거칠게 흔들자 비로소 레드폭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병원으로 가죠. 내 어깨 잡아요. 땅 좀 짚고…….”

말하는 내게, 그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또렷한 목소리로 “병원은 안 가요.” 하고 대꾸했다.

“제 힘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진짜로 벌떡 일어났다. 그만 나만 머쓱해졌다. 발을 헛디딘 거였나.

레드폭스가 걸어갔다. 또 휘청휘청.

나는 그의 뒷모습으로 아쉬운 시선을 던졌다. 섹스를 할 기운이 없는 상태가 분명한데도, 그를 안아든 순간 확 뜨거워져 버린 아랫도리가 한심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지그시 웃었다.

내가 괜히 만인의 증오를 받는 집단, 가이거 본부장이겠는가. 하필 지금 내 눈에 띄다니 레드폭스는 운이 나빴다. 나는 지금 기분이 엉망이었고, 그가 아프든 말든 이쪽은 바닥을 치는 감정의 전환이 급선무였다.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섰다.

“저,”

말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레드폭스가 또 우뚝 멈춰 섰다.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재차 긴장하고 레드폭스를 응시했다. 이번에도 레드폭스는 미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까처럼 또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거 잘못하면 카섹스는커녕 길거리에서 송장 치우는 불상사가 생기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 즈음, 그에게서 힘없는 음성이 샜다.

“고등어 좋아해요?”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그렇게 말했다.

레드폭스를 부축해 그의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교외로 드라이브하지 않겠느냐고 슬쩍 수작을 걸었다. 레드폭스는 싫습니다, 딱 한 마디로 잘라 거절했다. 그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재주가 있었다. 싫다, 좋다, 안 된다, 된다, 등의 짤막한 말로도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먹이는 타입이었다.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인 것이다.

“여깁니까? 집이 참…… 깔끔하군요.”

레드폭스의 원룸에 들어서며 말했다. 빈말로라도 ‘아늑하군요’ 따위는 못할 남루한 집이었다. 옷장과 침대, 책장, 텔레비전. 그리고 냉장고와 식탁을 비롯한 약간의 주방도구. 살림살이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휑했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은 도서가 가득한 책장 정도였다. 어이가 없었다. 퀴퀴한 코트에서 익히 알아보았지만 이렇게까지 극빈계층이었을 줄이야.

레드폭스가 코트차림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드러난 얼굴에 땀이 송송했다. 열꽃이 피는 눈동자로 허공을 더듬던 그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면에 서린 병색이 지독했다. 아픈 사람에게 그 짓을 하자고 말하려니 망설임이 들었다. 물론 이 성질머리가 목적을 잊어먹을 일은 절대 없을 테지만. 단지 운을 떼기가 난감할 뿐이었다. 이거 어쩐다…… 고민하는 순간, 그가 코트 자락을 올리더니 아래를 벗었다. 팬티까지 끌어내려 무성의한 동작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다리를 벌렸다.

“넣어요.”

“…….”

섹스가 목적이긴 했다. 그러나 이 직접적인 표현, 아니 표현보다는 저 건조한 어투에는 온갖 짓을 일삼은 나조차 잠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간에 특이한 친구란 말이야…….

“흠.”

나는 짤막하게 헛기침했다.

뭐, 먼저 운을 떼 줬으니 잘된 일이지.

피차 저쪽도 고등어나 먹이겠다고 나를 부르진 않았을 테고.

“옷은 벗고 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무신경한 대꾸가 돌아왔다.

“추워요.”

아닌 게 아니라 추웠다. 막 들어온 탓인지 방은 동사만 간신히 면할 만큼 추웠다.

그래.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일지도.

간단히 마음을 정하고 그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목부터 허벅지까지 코트로 감싼 몸에 하얀 다리만 드러나 있었다. 자극적이었다. 코트 그림자가 드리운 다리 사이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상상하니 당장 아래가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지갑에서 콘돔을 꺼냈다.

체내사정 후 받는 쪽에서 세척은 필수였다. 그러나 이 추운 집에서 샤워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픈 사람 몸속에 정액을 싸는 짓도 썩 내키지 않았다. 이 정도 양보는 해 줘야지 않겠는가.

지퍼만 내려서 콘돔을 착용하고 그의 허벅지를 잡아 벌려 세운 다음 밀착해서 앉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오일 없습니까?”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

“없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이 상황이 한심해졌다. 차라리 웃겼다. 타액으로 적시고 할 수도 있으나 오일보다는 힘들다. 물론 내 차에는 오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콘돔까지 낀 상태였다. 이런 꼬락서니로 오일을 가지러 다시 밖으로 나간다? 기가 찼다.

이대로 해도 되겠냐는 질문도 해 보나마나였다. 이쪽이 무슨 말을 던지든 레드폭스는 “추워요.”, “넣어요.” 등으로 무신경하게 일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정상이었다. 길거리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이상했다. 두려움에 찬 눈동자로 허공을 쳐다보다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이, 아무래도 고열 때문에 살짝 돌아 버린 듯했다.

나는 허름한 방을 잠깐 둘러본 후 고소를 머금었다.

살다 보니 참 재미난 일도 겪는구나.

“할 수 없군요. 그럼 되도록 힘 빼고 있어요.”

도리 없이 그의 아랫도리를 타액으로 적셨다. 최대한 적신 후 손가락을 넣어 벌렸다. 노력을 들여 간신히 늘여놓았다. 입구에 귀두를 끼워 맞춘 다음 조금 삽입해 보았다. 레드폭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이 콱 조여 오며 출입을 거부했다. 그의 다리를 활짝 벌려 엉덩이까지 들어 올렸다. 조임이 엄청났다. 꽉 물리는 귀두의 감촉만으로도 싸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기분 풀릴 때까지 제대로 해야 옳았다. 어차피 저쪽이 넣으라고 한 것이 시작 아니었던가.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힘 빼라고 했습니다. 그쪽을 위한 겁니다.”

약간 삽입했던 페니스를 잡아 빼어 입구에 비스듬히 걸쳤다. 반사적으로 그의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쑤시듯 박아 넣었다. 단박에 뿌리까지 삽입했다. 이런 방식이 저쪽이나 이쪽이나 편할 터였다.

“으흡!”

레드폭스가 신음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페니스를 빡빡하게 물어 대는 내벽의 질감이 굉장했다. 콘돔을 착용했는데도 쾌감이 엄청났다. 코트 안쪽으로 손을 넣어 그의 골반을 잡아 균형을 맞추었다. 벌려 놓았던 다리를 조여 안고서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레드폭스가 고개를 흔들며 낮게 말했다.

“우, 움직이지 말…… 읍.”

“괜찮아요. 이 정도로는 상처 안 납니다. 힘 빼고 있어요.”

안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안에 목석같이 좆만 넣어 두고 있다가 싸고 끝내다니 터무니없었다. 더욱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몸속이 뜨끈뜨끈했다. 뒤통수가 당기리만치 페니스를 바짝 조였다. 오일로 적시고 할 때와 달리 내벽 감촉이 메말랐다. 페니스가 내벽을 마찰하는 소리도 건조했다.

코트 안쪽으로 팔을 깊숙이 넣어 레드폭스의 몸에 바짝 밀착했다. 상의를 걷어 올려 가슴을 만졌다. 작고 부드러운 유두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레드폭스가 민감히 반응하는 성감대였다.

“좀 낫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쪽과 달리, 레드폭스의 눈동자는 허공에만 머물렀다. 한때 고문깨나 하고 다니던 시절 내가 숱하게 마주쳤던 증상이었다.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끝까지 즐긴 후 사정했다.

두 번째 콘돔을 착용하며 레드폭스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마빛 머리카락을 흩뜨린 채로 가늘게 숨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 미치도록 자극적이었다.

병자만 아니었다면 화끈하게 즐겼을 텐데.

나는 아쉽게 웃었다.

한 번의 삽입 덕에 느슨해진 입구로 수월히 들어갔다. 처음보다 훨씬 오래 그를 탐한 다음 절정을 맞았다. 레드폭스가 몸을 회복하면 콘돔 없이 이런 방식으로 종종 즐겨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세 번째로 하려는데 콘돔이 바닥났다. 콘돔을 착용하는 섹스는 장갑 끼고 하는 기분이라 되레 잘된 일이었다.

“입에다가 하겠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삼키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를 마치자마자 레드폭스는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어쨌든 기분이 후련했다. 그에게 시트를 덮어 주고 일어섰다. 간단히 세수나 할 요량으로 욕실 문을 연 순간 멈칫했다. 거울이 있어야 할 곳에 검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

실수로 깨뜨렸나.

의문을 금방 없애 버리고 세수를 마친 후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냥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가지 않고서 계속 룸을 서성거렸다. 시간이 꽤 지났음을 알려주듯 방이 조금 따뜻했다. 창문 아래 라디에이터가 장식품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는 자신에게 일순간 어이가 없었다. 웬 쓸데없는 걱정이야?

책장을 훑어보았다. 리스트에서 레드폭스의 관심사가 뚜렷이 드러났다. 저 친구가 의외로 정치와 역사에 관심 있었군……. 자작나무 관련 서적은 뭐가 이렇게 많아?

손가락으로 책들을 툭툭 치며 방을 재차 둘러보았다. 다시 봐도 가난이 쫄쫄 흘렀다. 독신자임을 감안하더라도 심하리만치 휑했다. 저런 미인에게 이 어인 일인가 싶었다. 식탁의 작은 화병에 꽂힌 나뭇가지가 눈에 띄었다. 취미 한번 특이하네, 하며 나뭇가지를 들어 살펴보았다.

당장 바스러질 듯한 오래 묵은 자작나무 가지였다. 보통은 꽃, 하다못해 조화를 꽂아 두기 마련인데 웬 자작나무 가지란 말인가. 그것도 한 개만 덜렁. 자작나무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런가.

나는 으쓱 어깻짓하며 나뭇가지를 화병에 넣었다.

“음…….”

침대에서 레드폭스가 뒤척거리며 신음했다. 그의 이마를 짚어 보자 열이 여전했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집을 나섰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룸으로 되돌아왔다. 온수에 약을 녹여 그에게 먹였다. 시간이 지나자 열이 가라앉으며 호흡도 규칙적으로 변했다.

메모를 남겨 놓을까 하다가 그냥 집을 나왔다. 어둠이 뒤덮인 거리에서 눈의 여왕이 잔혹한 춤을 추고 있었다. 불현듯 드는 엉뚱한 생각에 나는 픽픽 웃어 버렸다.

고등어는 못 먹었네.

무심코 시계를 보다가 조금 놀랐다. 어느새 열한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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