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가람의 의식은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둥둥 떠다녔다. 성인이 된 이후로 사용한 적 없던 자신의 이름, 윤가람이 윤성을 짓눌렀다. 윤성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윤성이 되고 싶은지도 의문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고 자존심이나 수치심 따위를 버리면 쾌감에 취해 살 수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정호의 것이 되어 멍청한 암캐답게 살면 편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삶이라는 것이 유혹적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모든 걸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두려웠다. 그래도 윤성으로서 쌓아온 것들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윤성은 아주 멋진 남자였다. 누가 보면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고 하겠지만 가람에게, 성에게 윤성이라는 남자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잘 가꿔진 몸매와 모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난 얼굴, 여자와 동침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매력이 되어 달라붙는 여자도 많았다. 아랫것들은 자신을 신처럼 생각했고 윗사람들은 위협으로 느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포기하라고. 그런 걸 포기하고 암컷이 되어 다리를 벌리고, 남자의 좆을 뒷구멍으로 받은 채 앙앙거리고, 좋아하면서 살라고.
뒤로 성기를 받으면 완전히 미쳐서 매달리는 주제에 가람은 여전히 저가 멋진 수컷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다 죽여버리고 위로, 위로 올라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거의 악몽이 나타나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육체의 쾌락에 미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자가 가르친 것들, 제 몸에 새겨 넣은 쾌락들을 포기하지도 못하면서 가람은 자꾸만 다른 것을 바랐다.
자신이 정확히 뭘 바라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쾌감을 원하다가도 어느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다른 것들을 원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정호 따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텐데, 차라리 협박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휘둘러도 되는 거 아닐까?
요 며칠간 정호에게 시달리며 덤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배워놓고도 멍청한 남자는 또다시 저 좋을 대로 덤벼볼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정호가 안다면 헛웃음을 흘릴 만한 일이었다. 아무리 배운 게 없고 무식한 인간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저가 또 세상 무식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가람은 정호에게 덤빌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정호가 몸을 풀어줄 것이 뻔했다. 이대로 있으면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죽어버린다는 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다. 정호는 선생씩이나 했던 사람이니 그 정도는 알지도 모른다. 그때, 정호를 덮칠 생각이었다. 대충 무게로 찍어눌러도 승산은 있었다. 정호는 가람과 비슷하게 키가 컸지만 몸은 훨씬 가느다란 편이었다. 근육이 꽉 찬 가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길 수 있다.
정호를 이기고 나면 협박해서 전용 딜도로 써먹어야지. 당연하게 정호의 것을 제 뒤로 받을 생각을 하며 가람은 정호를 기다렸다. 꽉 묶인 채 흔들렸던 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라 괴로웠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조폭으로 살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육체의 고통을 참아내는 법이었다. 그것이 쾌락일 때는, 견딜 방법을 몰랐지만.
몇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진짜 못 버티겠다 싶을 때쯤 뚜벅뚜벅 발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혹시나 며칠 연락이 되지 않은 자신을 찾으러 온 부하가 아닐까 하는 약간의 희망이 있었지만 쑥 몸을 밀고 들어온 것이 익숙한 정호라는 걸 깨닫자마자 가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조직에서는 자신을 찾지 않는 것 같았다.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었어?”
정호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도 가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꼭 죽은 척하는 멍청한 초식동물처럼 고개를 푹 숙인 가람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학생 때도 그다지 똑똑한 건 아니던 가람이 어른이 되어서는 더 멍청해진 게 웃겨서 픽 웃으며 정호는 슬금슬금 가람에게 다가왔다.
“팔 아프지? 풀어주면 얌전히 있을 거야?”
죽은 척 조용히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가람은 이번에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다섯 살쯤 되는 어린애가 어른들을 속이겠다고 되지도 않는 수를 쓰는 꼴을 보는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지. 안 그래도 한 번쯤 덤벼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온몸으로 이제 덤비겠습니다, 하고 있으니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어디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보자 싶어 정호는 가람을 묶은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우선 발목에 있는 줄을 푸는 척 한쪽 발목에는 느슨하게 매인 올가미를 만들어 혹시나 덤비면 발목이 당겨지게끔 만들었고, 눈에 보이는 손목은 완전히 풀어주었다. 손목과 발목이 밧줄에 쓸려 피부가 쓸리고 벗겨져 있었다. 아프겠지. 하지만 너무 잘 어울렸다. 목줄에 매여 발톱이 모두 뜯겨버린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봐.”
정호의 말에 가람이 굳어있던 다리를 느리게 폈다. 고여있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했다. 조금 더 있었으면 정말로 팔다리를 잘라야 했을지도 몰랐다. 정호라면 그 정도는 할 수도 있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강정호라는 남자가 지금 자신을 풀어줬는지를 생각하고 눈치를 볼지도 몰랐지만 가람은 아니었다. 이유 같은 건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람은 팔다리의 저릿함이 가시자마자 슬쩍 정호를 쳐다보았다. 뭔가 하는지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괜찮아. 지금이라면.
“…으, 아아…!”
가람은 무작정 손을 휘둘렀다. 주먹질로 밥 먹고 사는 인간답지 않게, 멋대로 휘두른 손은 아슬하게 정호의 뺨을 스쳤다. 가람이 달아나려 발을 움직이는 사이 정호가 만들어둔 올가미에 발목이 잡혀, 가람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커흑…!”
뻣뻣하게 굳은 팔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 머리로 바닥을 받아버린 가람이 핑글핑글 도는 머리를 추스를 새도 없이 뒷머리가 잡혔다. 거친 손으로 머리를 잡아 뜯을 것처럼 들어 올린 정호의 입술 새로 피식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무지 정상적인 사람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하려나 했더니.”
피식거리고 웃던 웃음소리는 이내 조금씩 더 커져 미친 사람의 웃음소리처럼 변했다. 오금이 저린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그저 머리채가 잡혔을 뿐인데 하얗게 질린 가람이 덜덜 떨었다. 칼을 눈앞에 두고도 이렇게 무섭지 않았는데 한낱 웃음소리가 무서웠다. 강정호라는 인간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오, 오빠… 잘못했….”
“그치, 잘못했지. 잘한 줄 알았어?”
킥킥, 웃음소리가 귀신의 소리 같았다. 동시에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뭘 했다고 어릴 적부터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건데? 여태 괴롭힘당한 것이 결국은 쾌감이 되었던 터라 가람은 정호를 두려워하면서도 반항하려는 반항아의 기질을 숨기질 못했다.
정호는 호리호리한 그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건지 가람의 머리채를 잡고 그대로 가람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겨우 벗어난다 싶었던 의자에 또 앉혀져 버린 가람이 악을 쓰며 일어나려 했지만 정호는 요지부동이었다. 손목을 다시 의자에 묶고, 줄에 묶인 가람의 다리를 의자에 동여맸다. 그나마 앉은 자세로 묶였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이 미친 새끼야!”
“오빠라며. 보지 쑤셔주는 오빠한테 그따위로 굴면 되겠어?”
한참이나 반항하는 가람을 제압하는 것이 그래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던지 정호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씩 웃어 보였다. 뺨에 가늘게 손톱자국이 났지만 피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조폭의 행동대장이라는 놈이 주먹으로 치지는 못할망정, 새끼 고양이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처밖에 내지 못한 게 분했다.
“아무리 족보 없는 떠돌이 암캐라지만… 주인한테 반항을 하면 쓰나.”
정호는 살짝 부어올랐을 뿐인 상처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속삭였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목 끝에서 턱 막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람은 숨을 뱉을 때마다 움직이는 정호의 가슴팍을 노려보며 저 심장 위에 칼을 꽂고 싶다는 생각에 이를 갈았다.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소아성애자 새끼야! 역겨워!”
“소아성애자? 아아, 내가 널 어릴 때 따먹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미친놈처럼 실실 웃는 정호의 손이 가람의 뺨을 쓰다듬었다. 가람의 이마를 타고 흘렀던 식은땀 때문에 정호의 손은 차갑고 축축하게만 느껴졌다. 그건 뱀의 손이었다. 냉혈동물의 싸늘한 살가죽에 가람은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네가 어려서 따먹은 게 아니야. 네가 그때도 이미 쓰레기여서 그런 거지. 나는 쓰레기 갱생시키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말하자면 참된 교육자인 셈이지.”
제 입으로 스스로를 교육자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가증스러웠다. 가람이 아무리 쓰레기에 멍청하다고 해도 교육자라는 것이 누군가를 감금하고 강간하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쓰레기라서 교육했을 뿐이라니. 그때의 자신이 뭐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왜, 기억 안 나? 너 그때 왕따시켜서 애 하나 죽일 뻔하고 선생한테 폭력 휘두르는 양아치였잖아.”
“그게 뭐 어떻다고? 진짜 죽은 것도 아니잖아! 살았으면 됐지!”
가람은 악을 쓰며 버둥거렸다. 어릴 때 실수는 다들 하는 게 아닌가. 선생한테 폭력을 휘둘렀다고 해봤자 좀 걷어찬 것 정도였고, 애가 죽을 뻔했다는 게, 뭐 어때서. 걔가 그럴 줄 알았나.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계인데.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정호를 노려보는 가람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맞아. 안 죽었으면 됐지. 하지만 너도 교육은 제대로 받아야 하잖아. 보지나 대주는 년 주제에 오빠 얼굴에 상처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배워.”
정호는 가람의 뺨을 툭툭 치고는 웃으며 침대 아래에 두었던 가방에서 펜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펠리컨의 부리처럼 한쪽이 얇고 다른 한쪽은 둥글게 깊은 모양의 펜치를 왜 갑자기 꺼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가람을 보며 정호는 펜치를 가람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발톱이 날카로운 놈들은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어?”
“…뭐?”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가람의 손에 제 손을 깍지 껴 편 정호가 싱글싱글 웃으며 펜치의 부리를 가람의 손끝에 가져다 대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확실하지 않아도 두려운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뭐, 뭐 하려는 거야… 안 돼, 잠깐, 자, 잠깐…! 오…오빠…!”
“오빠라는 말이 마법의 단어는 아니야, 가람아.”
“아아악!”
우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펜치는 가람의 손톱을 잡아 그대로 꺾어 뽑아냈다. 가람의 검지 끝에서 피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살면서 고통을 느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총에 맞은 적도 있었고 칼에 베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식으로 이유도 없이 미친놈처럼 일방적인 폭행인 적은 없었다. 가람은 그것에 공포를 느꼈다. 원래도 두렵게 느껴졌던 사람이 완전히 눈이 돌아버린 인간이라는 걸 깨달아버린 공포였다.
“아악! 악! 잘못했, 잘못, 흐아악!”
“손톱이 참 예쁘네, 우리 가람이. 어디 장식해둬야 할 것 같은데.”
중지의 손톱까지 뽑아버린 정호가 피 묻은 손으로 웃으며 따로 떨어져선 안 될 손톱을 가람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살점이 함께 뜯어진 것이 펜치에 잡혀 있는 모습이 기괴했다. 사람을 고문해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자신이 고문당하는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괴로운 일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윤성이라는 남자는 가람과는 다르게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인간이었으므로.
“잘못… 허어엉… 잘못했어요, 오빠… 허엉… 제발….”
“왜 그래. 울지 마, 가람아. 아직 두 개밖에 안 뽑았잖아.”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기어코 남은 여덟 개의 손톱을 다 뽑아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가람이 울음소리를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울어댔다. 그래도 정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학생의 탈선을 바로잡는 건 교육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몇 번이나 우드득, 손톱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손끝이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일그러져 피를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탓에 아픔이 더욱 생생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다.????
“흐어엉… 오빠, 오, 빠아… 허엉… 아파… 아파요, 아파… 아악!”
“그러게 왜 잘못을 해. 오빠가 어릴 때 가르쳐줬잖아. 내 말 잘 들으라고.”
“잘못, 했… 흐윽… 허어엉….”
끝나지 않는 지독한 아픔에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가람은 엉엉 울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울고, 빌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철저한 무력감이 몸에 새겨지는 중이었다. 가람은 철저한 약자였다. 두려움이 익숙해져 정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완전히 미쳐버린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겨우 오른손 다섯 개의 손톱이 다 뽑히고서야 정호는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어주었다. 정호의 왼손이 피투성이였다. 피 묻은 손으로 손톱이 존재했던 곳을 꾹 누르자 의자에 단단하게 묶여있던 가람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펄쩍 뛰었다.
“아아악!”
“많이 아프니?”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당연한 일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묻는 정호의 얼굴에 화가 날 법도 한데 가람은 그마저도 두려웠다. 남의 고통 같은 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쓰레기처럼 살고 있는 가람조차 타인의 아픔을 보면 그 고통을 당연하게 이해했는데 정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제야 저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오빠가 물어봤잖아. 많이 아파?”
“아파, 허엉… 아파요. 아파….”
또다시 정호의 눈이 돌아가는 걸 본 가람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무 아팠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무식한 도구에 무식하게 생살이 뜯겨나갔는데 아프지 않다면 뇌가 잘못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왜 세웠어?”
낮은 웃음소리에 엉엉 울어대던 가람이 히끅거리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뭘 세웠다는 소리인가. 가람은 내려가는 정호의 눈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속옷조차 허락되지 않은 제 육체가 한때는 자랑스러운 적도 있었다. 우수한 수컷의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저 탐해지기 위한 살덩이였다. 그것도, 손톱이 뽑히면서 발기해버린 망가진 살덩이.
“아… 아니야….”
“왜 세웠어? 아픈 게 그렇게 좋았어?”
“아니야…!”
절망적인 외침이 울음처럼 터져 나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톱이 뽑히는 고통을 느끼면서 도대체 왜 발기가 된단 말인가.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이럴 리가 없다. 자신은 고통을 느끼며 발기하는 변태가 아니었다. 이건 분명히 정호가 무슨 짓인가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데 발기가 풀릴 생각도 않고 꼿꼿이 서 있는 제 성기를 보며 가람은 고개를 저어댔다.
“내… 내가 그런 게… 이건… 흐윽… 내가….”
“내가 뭔가 한 거 같아? 난 손톱을 뽑았을 뿐이야.”
손톱을 뽑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비어버린 손톱 부위를 펜치로 툭툭 치는 정호의 말에 가람은 망가져 버린 라디오처럼 계속해서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자신이 발기해버릴 리가. 이건 모두 저 남자의 수작질이어야만 했다.
“못 믿겠어? 그럼 우리 재밌는 걸 해 볼까, 가람아?”
여전히 선생이라도 되는지 타이르는듯한 투로 말한 정호가 가람의 머리를 잡아 끄덕거리게 만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미친놈. 돌아버린 놈. 가능하다면 죽여버리고 싶은데 저 얼굴만 봐도 다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옷에 일어난 보풀을 떼어버리듯 쉽게 손톱을 뿌리째 뽑는 인간이 두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정호가 말하는 재미가 실제로 즐거운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가 없는 가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살인범 같은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웃음을 만면에 띤 채 자리를 뜨는 정호의 뒷모습을 두려움에 떨며 보면서도 가람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방금 그랬다가 손톱을 다섯 개나 뽑혔는데 다시 도망갈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남은 다섯 개라도 무사하려면 바짝 기는 수밖에.
확실한 건 정호가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죽는 것이 더 나을 지경으로 몰고 갈 수는 있을 터였다. 가람도 차라리 죽여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몇 번이나 보아왔으니까. 자신은 그처럼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두려움이 너무 컸다. 게다가 발기까지 하지 않았나. 어떤 면에서는 그 나약한 사람들보다 더 지독했다.
“가람아.”
조금 전까지 괴롭혀놓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러면서도 손에 들고 나타난 것은 그다지 다정한 물건이 아니었다. 얼마 전 제 요도를 꿰뚫었던 그 무식한 크기의 요도 마개였다. 또다시 아픔과 쾌락을 번갈아 안길 생각인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나았다. 아픔의 끝에 쾌감이라도 있다면 아픔을 견딜 명분은 생긴 것이니까.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저도 모르게 혀로 핥은 가람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정호의 손에 들린 그 은색 막대가 확대되어 보이는 기분이었다. 저것이 안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뭘 넣어본 적이 없는 요도가 억지로 벌어져 두꺼운 것을 삼킬 때 느꼈던 아픔과 그 마지막에 느꼈던 무서울 정도의 쾌감. 어느 정도의 아픔은 이제 쾌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지금처럼 커다란 아픔마저 쾌감으로 느낀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좆을 이렇게 세울 정도면… 뒷보지가 어느 정도일지 보지 않아도 알겠는데.”
“흐윽…!”
손톱이 있던 곳을 지그시 눌러오는 것에 가람은 울음 같은 것을 토해냈다. 화끈거리고 열이 올라왔다. 생살이 뜯겨나간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익숙해질 만하면 정호는 다시 새로운 아픔을 새겨 넣었다. 마치 정호의 곁에서는 언제나 아픔밖에 느낄 수 없을 것처럼. 가람이 아파할 때마다 정호는 눈에 띄게 기뻐하는 듯했다. 괴물. 가람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도망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어때? 보지에 좋은 거 넣어줄까?”
“네, 네… 좋은… 거… 큭….”
아프지 않으려면 정호의 눈치를 봐야 했다. 정호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정호는 또 어떤 괴물로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픔에 이를 악무는 가람이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웃음을 지은 정호가 주머니에서 작은 에그와 또 다른 분홍색의 막대 같은 것을 꺼냈다. 딜도라기엔 너무 얇고, 마개라고 하기엔 너무 큰, 딱 손가락만 한 크기의 물건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제 뒤에 넣을 생각인 건 알았다.
“엉덩이 앞으로 빼.”
가람은 정호가 시키는 대로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미끄러뜨려 앞으로 내밀었다. 발목이 묶였을 뿐이라 무릎을 벌리면 엉덩이와 구멍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가람은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꼭 제 뒤를 쑤셔달라는 것처럼 구멍을 내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음탕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보지 벌름거리는 꼴 좀 보라지. 손톱 뽑아버리는데도 뒷보지가 그렇게 간지러웠어?”
“흐윽… 오빠… 아파요… 흑….”
“그러게 오빠 말을 잘 들었으면 아플 일이 있었겠어? 건방지게 암캐가 반항 따위를 하니까 그렇지. 학생이 선생한테 덤비기나 하고 말이야.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 우으… 잘못했어요….”
자신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조폭인지, 창녀인지, 암캐인지, 학생인지, 혹은 전부인지. 정호의 머릿속을 보고 싶었다. 여기서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정호가 자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뿐인 듯한데, 정호는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제 몸은 자꾸만 정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정말로 정호에게 반항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거란 말을 믿고 싶어졌다. 반항하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죽을까 봐 그런 것이 아니라,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로울까 봐. 결국 동물일 뿐인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본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핥아.”
정호가 에그에 연결된 선을 높이 들고는 가람의 입술에 에그를 문질렀다. 반항 한 번 할 생각도 없이 가람은 제 입술 주위를 맴도는 것을 다급하게 혀를 빼물고 핥아댔다. 혀가 닿을 때마다 밀려 나가는 싸구려 핫핑크 색의 플라스틱은 자꾸만 멀어졌다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입술에 툭툭 닿아올 때마다 마음이 급해졌다. 차라리 쾌감이라도 좀 있으면 손가락 끝의 욱신거림을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주어지는 작은 쾌감에 집중했다. 혀끝을 스치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겨우 입술로 잡아 물고 쪽쪽 빨며 입안에서 혀로 굴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정호의 눈에 희열이 보였다. 가람은 어떻게든 정호의 마음에 들고 싶어 정호를 바라보며 어설프게 혀를 움직였다.
예전 기억을 되짚어보면 정호는 자신이 고분고분하게 굴고 음탕하게 굴수록 더 좋아했던 것이 떠올랐다. 가느다랗고 예쁘장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어떻게 해도 잘생겼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지만 정호는 여전히 가람이 고분고분하고 음탕할수록 더 좋아했다. 그래서 가람은 눈치를 보며 기었다. 정호는 그때처럼 지금도 잔인하고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게 그렇게 좋아?”
“흐으, 응….”
가람은 어울리지도 않는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가 슬쩍 줄을 잡아당길 때가 되어서야 입을 벌리고 에그를 혀 위에 내밀어 보였다. 타액에 젖은 끈적한 에그가 정호의 손에 들려 구멍 위를 꾹 눌러왔다.
“오… 오빠… 으읏….”
“어쩔 수 없는 암캐라니까. 보지 위만 만져줘도 그렇게 좋아? 응?”
“흐응… 좋아요… 보지… 기분 좋아….”
분명 구멍 주위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정호가 말하는 정도로 음탕한 쾌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람은 그런 속내와 다르게 그저 좋다고 고개를 끄덕여댔다. 정호도 가람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순전히 가람의 눈에 가득한 공포심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으응….”
좁은 구멍을 꾹 누르며 머리를 들이민 에그가 가장 두꺼운 부분을 지나 안으로 쉽게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자 정호는 에그에 약하게 전원을 넣었다. 웅웅대는 소리를 내며 느리게 진동하는 에그가 내벽 전체를 울려댔다. 한때 구멍 안 어디를 자극해도 쾌감에 자지러지던 가람의 내벽은 약한 진동에도 몸을 긴장시키며 떨었다.
“아, 아으… 흐으….”
“네가 팔아먹던 창녀들도 너처럼 음탕하진 않을걸. 걔들은 알까? 네가 얼마나 걸레처럼 보지를 돌리고 다녔었는지.”
정호는 가람의 귓가에 속삭이며 낮게 웃었다. 조폭인 자신이 팔았던 여자들 그 누구보다 음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누구라도 알았다면 여자 대신 자신의 구멍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남자들 사이에서 욕을 들으며 다리를 벌리고 구멍이 쑤셔지는 상상이 이상할 정도로 야하게만 느껴졌다. 자신 정도나 되는 위치의 남자가 그런 천박한 싸구려 창녀 같은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흥분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 입보지도 심심하지 않게 해 줄게.”
“으응….”
가람은 정호가 입 가까이에 대주는 얇은 딜도 같은 것을 혀를 내밀어 받아 물었다. 입안에 꽉 차지도 못하는 얇은 막대는 살짝 굽어진 모양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빨기 좋았다. 어린애가 공갈 젖꼭지를 무는 것처럼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대며 뒷구멍으로는 에그를 조여 물었다.
“우응, 흐응….”
약하게 뒤를 울리는 에그의 움직임에 애가 탔다. 더 강하게 쑤셔줬으면 좋겠고 더 지독하게 쾌감을 느끼고 싶었는데 에그는 어떻게 해도 일정 수준 이상 강하게 진동하지 않았다. 손끝은 아프고 뒷구멍은 애달팠다. 그래서 가람은 입안에 든 것을 열심히 빨았다. 혀를 둥글게 돌려가며 열심히 짧고 얇은 막대를 핥아댔다.
정호는 가람이 한참이나 쪽쪽대고 핥아대던 것을 쭉 잡아 뽑았다. 어찌나 열심히 빨아대고 있었는지 막대를 뽑아냈을 때 뽁, 하는 귀여운 소리가 흘렀다. 얼굴이 붉어진 가람을 보며 비웃음을 지은 정호는 에그를 집어삼킨 가람의 구멍에 젖은 막대를 밀어 넣었다.
“흐으…! 응…!”
막대에 밀려 더 깊게 들어간 에그가 전립선 바로 아래에서 진동했다. 약한 진동이었지만 쾌감은 확실했다. 몸이 잔뜩 긴장해 잘 짜인 근육이 꿈틀거리고 조여대는 모습이 적나라했다.
“아으응…! 오빠, 앗, 아… 더어… 흑…!”
손가락의 아픔을 순간적으로 잊을 수 있었다. 쾌감에 매달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아도 좋았다.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다. 그래야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픔도 쾌락도 전부 정호의 손에 걸려있는 셈이었다.
“더 좋아지고 싶어?”
“으응…! 네, 네에…! 흑… 더 좋고, 아으응… 더어…!”
가람은 교태를 부리며 정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강한 자극이 제 안을 휘저어줬으면 했다. 구멍 안을 조이며 에그의 진동을 꾹꾹 쥐어짜던 가람은 순간 어딘가를 짜르르하게 울리는 쾌감에 숨을 헉 들이켜며 부르르 떨었다.
“아, 아아…! 오, 빠, 이거, 앗…! 아응…!”
에그의 진동과 함께 쏟아지는 쾌감에 눈앞이 번쩍였다. 막대를 쥐어짜는 내벽이 경련할 때마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커졌다. 자신이 빨아대던 그 막대가 전립선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진 아네로스라는 기구라는 걸 알 리가 없는 가람은 왜 갑자기 쾌감이 밀려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발기한 성기가 부들부들 떨며 선액을 왈칵 쏟아내었다.
“너같이 아픈 것도 쾌감으로 느끼는 변태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어.”
“흐아악!”
정호는 아량을 베푼다는 듯 웃으며 들고 있던 막대 끝으로 가람의 엉망이 된 손끝을 꾹 눌렀다. 막대가 생살을 짓누르는 아픔에 가람은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몸을 떨었지만, 곧 뒷구멍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아픔의 위를 덮어가며 찾아들었다.
엉망이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쾌감과 아픔이 뒤섞인 알 수 없는 느낌이 몸을 압도했다. 괴로움에 발버둥 쳐도 잠시 후면 쾌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쾌감에 헐떡이면 곧 아픔이 주어졌다. 더 이상은 무엇에 발정하고 흥분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발기했고 구멍 안을 오물대고 있는데 그 반응이 아픔에 대한 반응인지, 아니면 쾌감에 대한 반응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흐… 흐어… 허으으… 오빠, 오… 빠아….”
“뭐에 느끼고 있는 거야? 아픈 게 좋아?”
방긋 웃으며 묻는 정호의 말에 가람이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정말 자신은 아픈 것마저도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발기한 게 아닐까? 고통을 느끼고 나면 묘한 시원함과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극단적인 아픔일수록 더했다. 쇠막대가 손톱이 있던 뭉개진 살덩이를 짓이기면 지독한 아픔과 함께 근질거리는 이상한 해방감이 온몸을 타고 퍼져나갔다. 나는 원래 이런 이상한 인간인가? 원래부터 이런 변태였던 걸까?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몸이 긴장할수록 구멍 안이 조여들어 에그와 아네로스를 꽉꽉 쥐어짰다. 그럴 때마다 내벽은 쾌감에 경련하며 빠르게 전신에 쾌감을 전달했다. 고통과 쾌감이 번갈아 반복되는 것에 뇌가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흐아, 아…! 아윽! 흐으윽…! 아파, 앗, 아…! 오빠, 아응…!”
“아픈 거야, 좋은 거야? 둘 중 하나만 하는 게 어때?”
킬킬거리고 낮게 웃으며 정호는 막대로 가람의 성기를 길게 긁어내렸다. 뭉툭한 끝부분이 살을 스치는 것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안타까웠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무언가 부족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으응….”
“이 정도로는 부족해?”
속을 빤히 보고 있다는 듯한 정호의 물음에 가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가람이 애써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이미 붉어진 얼굴이 다른 말을 하고 있음은 자명했다. 숨길 줄도 모르는 적나라한 욕망을 보며 정호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무언가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막대가 천천히 내려가 탱탱하게 긴장한 가람의 고환을 꾹꾹 누르고, 기둥의 뿌리를 가볍게 툭툭 쳤다. 뒤에서 느껴지는 쾌감만으로는 부족한 기분이었다. 아픔에는 해방감이 있었고, 가람은 그 해방감을 원했다. 몸이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자신이 아픔으로 쾌감을 느끼는 변태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암시를 걸듯 중얼거려도 부족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뒷구멍으로 정호의 거대한 성기를 받으면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을 텐데 정호는 그래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정호의 다리 사이가 부풀어 오른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정호는 숨 한번 흐트러지질 않았다.
“오… 오빠….”
“응? 왜?”
장난을 치는지 쾌감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굳어버린 가람의 허벅지를 긁어내리며 정호는 가람의 눈 한번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서늘한 눈이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쪽을 보지 않는 눈이 어색했다. 언제 또 돌변해 파충류의 눈으로 자신을 볼지 몰랐다. 불안함이 심장 속에서 쿵쿵 뛰었다.
“오빠… 자지로… 해 주시면….”
“안 돼. 오늘은 네가 얼마나 아픈 걸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날이야.”
역시나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정호의 대답이 실망스러웠다. 더 강렬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 아픔이든, 쾌감이든. 저가 물고 있는 에그와 아네로스 정도로는 정호의 성기가 제 뒤를 들쑤실 때의 그 쾌감을 느낄 수 없었고, 막대가 성기를 얌전히 두드리는 정도로는 손톱을 짓뭉개던 그 강렬한 아픔과 그 뒤를 찾는 해방감을 느낄 수 없었다. 완전히 변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옛날부터 자신은 변태가 되도록 길들여지지 않았던가.
“그… 러면….”
가람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변태를 넘어서 미친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픈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 후에 찾아오는 간질거림과 해방감을 원했다. 그 해방감은 언뜻 절정을 닮아있었으니 육체적 쾌감을 몇 년이나 맛보지 못했던 가람이 아픔이라도 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야만 했다.
“…때려…주세요… 오빠…….”
생각해보면 가람은 싸울 때도 맷집이 좋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사실은 맷집이 좋은 게 아니었는데. 사실은 맞을 때마다 욱신대는 그 중독적인 감각을 즐길 뿐이었다. 괜히 미친개라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니었으니까.
때려달라는 가람의 말에 정호는 가만히 가람을 바라보았다. 정호의 눈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이것까지 거절하는 걸까? 애가 타서 미칠 것 같았다. 가고 싶은데 에그와 아네로스 따위로는 갈 수도 없었다. 감질나는 쾌감에 오히려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강렬한 쾌감과 아픔을 원했다. 정호가 주는 것을 원했다.
침 한번 꼴깍 삼키지도 못하고 갈망에 절절한 눈을 보며 정호는 웃었다. 올바른 대답을 한 모양인지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에 가람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제대로 미소가 지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픈 게 좋단 말이지?”
“…좋…아요….”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더는 아무런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걸 알아, 아픈 것이 좋다고 대답하면서도 가람은 그 대답에 어느 정도 사실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아픔에서 느껴지는 그 절정과 같은 해방감이라도 좋으니 강렬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으니까.
입술 끝에 경련이 나도록 어색하게 웃는 가람을 보며 정호는 들고 있던 막대로 가람의 귀두 끝을 살살 긁어내리다 빙긋 웃으며 그대로 강하게 성기를 내리쳤다.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와 그보다도 더 단단하고 강한 막대가 부딪히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생생한 아픔이 느껴졌다.
“하으윽!”
“이런 걸로 좋아한다니… 정말 질릴 정도로 음탕하다니까.”
정호는 몇 번이나 가람의 성기를 내리쳤다. 이미 발기해 붉게 물들어있던 것 위로 매 자국이 검붉게 남았다. 매로 후려칠 때마다 성기는 꺼떡거리며 선액을 울컥 쏟아냈다. 중요한 부위를 맞은 아픔에 입술을 악물고 비명을 지르는 몸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허으, 흑… 아윽…! 아파, 악…! 흐윽… 흐….”
“보지 쑤셔주는 것보다 맞는 걸 더 좋아하는 거 아냐?”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에 아픔이 느껴질 때마다 정호는 가람이 시원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주었다. 분명 아픔이 너무 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강렬한 아픔마저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시원한 감각뿐이었다. 잠깐의 아픔이 지나면 곧바로 시원하고 간질거리는 이상한 쾌감 같은 것이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절정처럼 빠른 것은 아니었으나 훨씬 더 진득하게 달라붙는 감각이었다. 오히려 더 중독적이었다.
“흐으, 흑…! 아으…!”
“이대로 질질 싸는 거 아닌지 몰라.”
“아우으…!”
종국에는 비명 소리마저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변했다. 자신이 도대체 뭘 느끼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쾌감인데 쾌감이 아닌 이상한 감각. 아픔에 몸을 떨면서도 동시에 쾌감과 비슷한 그 감각에 신음을 뱉어냈다. 배 속이 점점 더 조여들고 뒷구멍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몸에 새겨지는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흐아, 아…! 오빠, 앗…! 아응…!”
아플수록 쾌감은 더 강해졌다. 움찔 조여드는 내벽이 웅웅대는 에그와 전립선을 짓뭉개는 쾌감에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그런 가람의 몸을 정확히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정호가 에그의 진동을 최대로 높였다.
“아, 아아…! 아앙…! 오빠, 오, 빠아, 아…! 하으응…!”
아픔과 쾌감에 발버둥 치며 울어대는 가람을 내려다보며 정호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간헐적으로 성기를 내리치는 막대에 온몸을 벌벌 떨며 가람은 어쩔 줄을 모르고 비명 같은 신음을 질러댔다. 정호의 성기를 뒷구멍으로 받아 물었을 때처럼 교성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그런 음탕함이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익숙해 가람은 울음을 터뜨렸다.
“흐아앙, 아…! 안 돼, 앗, 그만, 아앙…! 오빠, 오빠…! 아…!”
“가버려도 돼. 오늘은 허락해줄게.”
가람이 기다리던 한마디였다. 정호는 이제 쉬지 않고 가람의 성기를 막대로 때리고 있었다. 앞에선 아픔과 이상한 간지러움이, 뒤에서는 쾌감이 계속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손톱이 빠진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강렬한 몸의 감각에 가람은 울고 헐떡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으응…! 가요, 앗, 개보지, 가, 가아…! 하으응…!”
어릴 적 새겨진 말까지 더듬어 말하며 가람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절정을 맞이했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고 빠르게 헐떡이는 숨결이 얕아 의식마저도 흐려졌다. 힘차게 쏘아진 정액이 정호의 발아래 흩어지는 동안 가람은 부들부들 몸을 떨다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 옛날 정호가 주는 쾌감에 지쳐 쓰러진 이후 첫 기절이었다.
여전히 웅웅대고 돌아가는 에그에 기절하고도 몸을 움찔대는 가람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호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같이 발기한 제 성기를 꺼내 감긴 가람의 눈앞에 대고 흔들기 시작했다. 저 뒷보지의 맛을 알고 있는 성기가 구멍 맛을 보고 싶어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지나치게 흥분해있던 성기를 몇 번 손으로 훑자 곧 하얀 정액을 가람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며 정호는 입맛을 다셨다. 우연히 만났던 어린 양아치가 제 입맛에 딱 맞는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 제법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