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들거려도 꿈쩍이지 않는 손. 그것은 아까 잡혀있던 손들보다 더 큰 위압과 강제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나라도 놔 줘. 재만아. 제발 놔!”
“적당히 구경이나 하고 나중에 박쥐처럼 어두운데서 혼자 반성해. 그게 너 답잖아.”
“안돼! 싫어! 놔 줘!”
“놔 주면?”
강재만의 눈에 얼핏 포착되는 눈웃음, 그것은 굉장히 미묘하고 짧아서 착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그 가느다란 빛이 주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놔 주면이라니!? 뭘 바라는 거냐! 그런 거 없어!”
“무조건이냐?”
“그래! 무조건! 무조건 놔! 난 무조건 저 녀석 도와야 돼! 내버려두면 안 돼! 강재만 네가 날 박쥐라 부르건 배신자라 부르건 상관없어! 차라리 날 죽이건 패건 맘대로 해! 하지만, 난 저 녀석 내버려두면 안 돼! 내가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단 말야! 안 그럼 내가 죽을 것 같아!”
…필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저런 미친 소릴 지껄일 리가 없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기에 저런 절박하고 신파적인 호소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을 것이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술술.
“류미승밖엔 안 보이는 거냐?”
“알 게 뭐야! 나도 모르는데!”
이태수의 파이프가 휘익 휘익 허공을 이리저리 가르며 춤을 추고 그 앞에서 아무리 날렵한 미승이라도 이미 기운이 떨어져 폼 구겨지게 피해 다니고 있는데, 내가 강재만한테 부탁하는 입장이라고 예의 차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알 게 뭐냐구! 미승이 좀 내버려두란 말야, 개새끼들아!”
악다구니를 쓰면서 창피함도 잊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이, 정희승…….”
강재만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가 내려오더니 녀석의 입술이 귀 가까이에서 나직한 소리를 흘렸다.
“넌 정말 끝까지 제멋대로야. 이래서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좋아한 적 없어.”
“알았냐, 정희승?”이라는 동을 붙임과 동시에 강재만이 내 팔을 놓아주었다. 아무것도 곱씹을 틈 없이 미승이랑 이태수가 실랑이를 벌이는 커다란 나무쪽으로 달려갔다. 내가 뛰어오는 걸 본 순간 미승이 녀석이 하필 돌부리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바보 자식! 한눈팔지 마! 넘어지지 마! 넘어지면 안 된단 말야! 넘어지면 구르게 된다구!
구르게 되면 그 다음엔 연신 맞는 일 밖엔 안 남았다. 기세고 뭐고 죄다 패대기쳐지고 굼뱅이처럼 수그러들어 흙을 묻히고 처절하게 패자가 되어야만 한다. 이태수라는 몹쓸 승리자의 눈앞에서 농락당하는 꼴이 나야 했다. 그런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신 맞더라도 나의 류미승은 그래선 안 된다.
이태수의 파이프가 포플러나무의 굵은 가지를 부러뜨리고 나선 어깨 뒤로 넘어갔다. 날렵한 빛을 뿜는 파이프가 이태수의 비열한 환희와 동시에 내리치려는 순간 난 생애 가장 빠른―것은 아니지만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싶은―속도로 숨도 안 쉬고 한 달음에 미승 앞에 엎어졌다.
“너 뭐야!? 꺼져!”
이태수의 파이프가 등 위로 휘익 소리를 내며 빗나갔다. 저보다 굵은 파이프가 후려쳐도, 설령 진짜 칼날이 꽂히더라도 난 주저하지 않았을 거다. 그건 나도 잘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의 계산이었다.
척추 뼈가 으스러지거나 근육이 빠개진다 해도 괜찮아, 그래서 내일이 되면 병원 신세를 지며 아프다고 징징대고 후회할 지도 모르지. 미승이 자식 때문에 이 꼴을 당했다고 욕을 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말이지.
“비켜, 희승아!”
“싫어. 너나 빨리 일어서.”
그 순간엔 어떤 아픔보다 미연에 막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미승을 감싸 안은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거다.
“이 새꺄, 비켜! 안 비켜? 좋아, 너도 같이 당해봐.”
이태수의 발이 내 등을 팍 밟아 누르자, 아래에서 눌리는 미승이의 숨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하지 마, 이태수. 그만 해.”
왜 이런 싸움을 하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해 봐. 미승이가 잘못 한 거 알아. 그치만 너도 지금은 잘 하는 게 아냐. 넌 지금 아주 유치하고 치졸한 짓을 하는 거야. 이렇게 크게 벌일 일이 아니야. 여기 있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얼마나 멍청한 상황까지 왔는지 봐.
하지만, 어떤 말을 한 들 지금 그에게 먹힐까. 비웃음과 욕을 내뱉으며 파이프를 고쳐 잡는 이태수를 보는 순간 톡 하고만 밀어도 절벽 아래로 구르는 돌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느꼈다. 어설프게 끼어든 나로 인해 오히려 미승이 더욱 불리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한 것도 짧은 순간이었다. 내 뒤로 날아드는 또 한 번의 휘익 소리를 들었을 때, 초인같은 순발력으로 류미승이 나를 끌어안고 몸을 뒤집는 묘기를 선보였다. 미승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서느런 쇠파이프를 보는 찰나, 나는 이런 때에조차 미승에게서 보호받아버렸다는 실망을 맛봐야만 했다. 류미승의 행동력만큼은 내 혼신이 짜낸 결단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다.
“흐…읏!”
“악! 미승아!”
딱딱한 쇳소리가 매섭게 울린 직후 미승의 입에서 억제된 고통의 신음이 새나왔다. 분명히 우리는 움직였다. 언뜻 봐선 맞지 않을 각도에서 내리쳐진 파이프는 내 시야를 벗어난 어딘가를 적중한 모양이었다.
“괜찮으니까… 넌 가……. 빨리… 너 먼저 가 있어.”
괜찮은 척 웃어 보이려 하지만 녀석의 얼굴은 참기 힘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가긴 어딜 가 있으란 말이야. 그딴 얼굴로 놀이터에서 약속 잡듯이 말하지 말라고! 당장 이태수가 네 정수리를 노리면서 싱글대고 있는데, 나더러 어딜 가라고!
“도망 못 갈 텐데, 류미승. 발목뼈에 정통으로 맞았는데 제대로 걸을 수나 있겠어? 지금 네가 누굴 감싸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잖아? 어이, 내가 아킬레스건도 끊어놨나? 여기서 피 나네? 와아, 이 상태로 언제까지 기사도 흉내 내는지 구경해볼까?”
내 얼굴 위로 이태수의 그림자가 어리자 미승은 풀었던 팔로 다시 나를 꽉 감싸고 몸을 숙였다. 어떻게든 몸을 뒤집어보려고 젖 빨던 시절의 힘을 다해 기운을 썼지만 녀석의 의지는 내 것보다 강했다. 그것은 의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리석고 무모하고 절박하고 질긴 것이었다. 난 끝내 녀석을 보호해줄 수 있는 위치에 놓이지 않았다.
이런 녀석을… 어떻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태수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놈의 손에 들린 파이프는 무서웠다. 나랑 미승이 서로에게서 진땀을 빼며 뒤치다꺼리는 사이에도 번쩍임을 누르지 않는 저 무감각한 흉기는. 미승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난 재빠르게 미승을 옆으로 돌려놓았고 그 덕에 팔꿈치 위로 비끼듯 떨어진 쇠막대의 진동이 울렸다. 빗나간 충격만으로도 눈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정통으로 맞지 않았는데도 찌릿한 팔꿈치의 전기가 어깨까지 얼얼하게 올라올 만큼 아픈데, 저 무거운 쇠막대를 정통으로 맞았다면 미승의 발목은 무사할 리가 없었다. 녀석이 아까부터 일어서지 못하고 무작정 나를 덮어놓고 감싸고만 있는 게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하핫, 그 새끼 보호하려니까 꼼짝도 못하겠지? 류미승? 꼴통 새끼. 지 몸도 건사 못하는 주제에, 누굴 보호해? 이번엔 그 꼴통 같은 대가릴 쳐줄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류미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끼어드는 게 아니었을까? 그건 아니다. 다른 식으로 더 영리하게 대처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머리를 굴릴 여유는 없었다.
이태수가 이성을 상실한 눈에 광기를 뿜으며 다가올 때, 녀석의 무력한 주먹을 대용하는 쇠막대기가 각진 모서리를 빛내며 다시 치들려 올라갈 때, 나는 모든 걸 내려놓는 심정으로 미승이의 머리통을 감쌌다. 양 손 뼈가 으스러져도 괜찮다. 아파도 괜찮다. 내일, 아니 당장 1분 후에 후회해도 괜찮다. 킬킬거리는 이태수, 미승이가 언제든 회복해서 저 놈을 혼내줄 수만 있다면. 아니면 내가 또 다시 칼을 들게 되더라도……. 눈을 질끈 감았다.
“허……ㅅ!”
휘익, 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이태수의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덮쳤다. “뭐야!?”라는 고함과 동시에 챙강, 흙바닥을 울리는 니켈의 금속음이 어두운 운동장 안에 울렸다. 강재만이 이태수의 손목을 붙들고 쇠파이프를 빼앗아 바닥으로 내던지고는 이태수의 한 팔을 잡아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이태수 승!”
“뭐야! 씨발, 너도 내 손에 죽을래?”
“못 들었어? 네가 승이라고, 새꺄.”
“지금 장난해? 너까지 나한테서 등 돌리겠다 이거냐? 저 쥐방울 새끼 때문에 배신 때리는 거야? 나랑 붙고 싶으면 따로 날 잡아. 아니면, 지금 나랑 붙고 싶어?”
“그만해, 이태수, 너무 갈 때까지 갔어. 이만하면 그 지랄 맞은 성질도 꽤 풀렸을 텐데. 야, 늬들도 놀 만큼 놀았지? 이만 철수해. 이 자식들이랑 끝까지 같이 있다간 우리까지 바보 된다.”
강재만이 가볍게 말을 던지자 운동장 바닥에 앉아서 구경하던 재만이의 패들이 주저 없이 하나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래. 할 만큼 하지 않았냐, 이태수? 재밌어서 구경하긴 했는데, 좀 황당하다. 쇠파이프는 진짜 너무했어. 어떻게 맨손 앞에서 파이프를 휘두르냐? 쪽팔리지도 않나, 저 자식.”
“저 자식들은 또 뭐냐, 둘씩이나 되면서 싸우지는 않고 땅바닥에서 둘이 끌어안고 뒹굴고 서로 맞지 못해 안달을 하고 말이야. 쟤들도 병신 같애.”
“끝까지 같이 있다간 재만이 말대로 진짜 우리까지 바보 되겠어. 우린 더 이상 끼지 말고 가자.”
히죽거리고 가방을 걸치는 녀석들의 핀잔에 이태수는 물론이고 나랑 미승이까지 멍청한 연기를 펼친 꼴이 되었다.
그러면 어떤가. 재만이 덕분에 무모하게 달아오르던 열기가 식고 싸움판이 순식간에 시들해져가고 있었다.
이태수의 똘마니들―이 자식들한테 만큼은 끝까지 똘마니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은 앞서 움직이는 재만이 패들에게 공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태수의 눈치만 살피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늬들도 빠지고 싶냐, 이 새끼들아?”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흠칫 하고 제 자리에 얼어붙었다. 정녕 이태수는 고약한 짱이었다. 저희들 넷 중에서만.
“그만 고집부리고 끝내라, 이태수. 네 친구들도 지루해하잖아. 나랑 한판 붙고 싶으면 따로 날 잡자고.”
강재만이 이태수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토닥였다. 친근한 듯 하면서도 살짝 무시감이 내포된 말투는 강재만이 이태수 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씨발, 야, 늬들도 가! 가자고!”
판도가 저에게 불리하게 움직이는 걸 그제야 깨달은 이태수는 반복되는 씨발, 소리와 함께 침을 뱉고 돌아섰다. 몰지각한 광기를 누르고 걸어가는 이태수를 쳐다보던 강재만은 내게로 손을 뻗었다.
나를 일으켜주면서 동시에 가슴 앞으로 잡아 당겼다. 아까처럼 거칠지 않은 손이 등을 감싸고 귀에 속삭였다.
“정희승. 아까 내가 한 말 잊지 마. 그것만 기억하면 돼. 넌.”
강재만이 나에게 하고 간 마지막 말이었다.
미승과 나만이 남겨진 운동장은 방금까지의 소란들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텅 빈 채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나무 둥치에 기대 앉아 식은땀을 흘리는 미승이의 진통은 당면한 현실이었다. 눈을 감고 고된 몸을 달래는 미승이의 짧은 호흡 간격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피는 굳어가고 있었다. 교복 소매 끝을 쥐어 코에 묻은 피를 닦아내자 가늘게 뜨는 눈이 보인다.
“미승아, 괜찮아?”
“…괜찮아.”
“많이 다친 거 아냐? 얼마나 맞았어?”
천천히 깜빡거리던 눈은 내 발 아래로 내려가 풀린 운동화 끈을 보고 있었다. 낡다 못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달나달한 끈을.
“너, 아까… 뛰다가 넘어지더라. 꼴 사납게시리…….”
그 와중에도 내가 넘어지는 걸 보면서 꼴사나워 할 여유까지 있었단 얘기다.
“너, 덜 맞았구나.”
“훗… 미안하다. 네가 바라는 만큼은 안 맞았어.”
“…다행이다.”
피 묻은 손이 무거운 움직임으로 내 운동화에 닿았다. 낡고 너덜거리는 끈을 잡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끈을 넣는 첫 구멍부터 타이트하게 당기면서 차근차근 위로 올라오는 매듭. 여분을 줄이고 발에 꼭 맞는 부피가 되어가는 운동화. 길어진 끈으로 두 쌍의 리본을 만들어 묶고 남은 끈을 신발 안으로 넣고서야 긴 손가락은 낡은 운동화에서 멀어졌다.
무성한 나무 잎사귀 아래로 조용한 바람이 불었다.
어깨를 타고 올라온 손이 뒷목을 감싸고 앞으로 당겼다. 잠시 도리개질을 쳤지만 이내 피 흘리는 입술에 겹쳐져 뜨거운 입김과 함께 피 맛 나는 타액을 입 안에 오래도록 머금어야 했다. 결코 좋은 맛이 아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꿀꺽. 내 목젖이 움직이는 소릴 듣고서야 목을 잡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어둠속의 응시가 이토록 뚜렷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가자. 걸을 수 있겠어?”
“응… 잠깐, 앗, … 조금만. 부축해 줘… 그럼 걸을 수 있어.”
힘들어하는 녀석을 부축한 오른쪽 어깨가 무거웠다. 왼쪽 발목에 힘을 못 싣고 절뚝거리는 걸 보건데 상당히 다친 모양이었다. 운이 없으면 뼈가 부러진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태수가 겁주듯이 했던 말대로 아킬레스건까지 끊어진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심줄 찢어진 거 아닐까.”
“아닌 것 같지만… 모르겠어. 조금만 더 늦게 오지 그랬냐, 이 느림보야.”
“내가 올 거라고 믿었어?”
“응.”
저런 바보 같은 믿음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난 아무리 오랜 시간을 그와 지내왔어도 저 정체불명의 소굴만큼은 캐낼 수가 없었다.
“손잡아 줘.”
어깨를 걸치고 넘어온 미승의 손을 꼬옥 잡았다. 허리를 감은 다른 손은 그의 손에 더 단단히 잡혔다.
다행히 이런 부상자를 데리고 뾰족한 철창문을 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미승은 내가 아찔하게 타 넘어왔던 정문 말고 따로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창고 같은 건물 뒤로 좁은 담벼락과 건물 벽 사이에 좁은 길이 트여 있었고 바로 거기에 쪽문이 있었다. 말만 문이지 아이비 넝쿨로 가려진 벽장 몇 돌 빠진 벽 구멍이었다. 그래도 고생스럽게 타넘을 필요 없이 머리만 숙이고 구멍을 빠져나와 좁다란 길목으로 나왔을 때 멀리서 파란 색 작은 불이 반짝였다.
길목 한 켠에서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여유롭게 통화를 하고 있는 한지석을 보면서 튀어나올 것 같은 욕을 삼켰다.
놈의 핸드폰은 진즉에 사용되었어야 했다. 그것이 비록 그때서야 택시를 잡으러 갔다는, 별로 유용하지 못한 당형수를 불러내는 데만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두꺼운 석고로 감싸인 미승의 오른발은 우스꽝스러웠다. 옛날 만화에 나올 법한 망치로 때려 맞아 과장되게 퉁퉁 부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복숭아 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찢어졌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부지기수로 얻어터진 자리들의 타박상을 모아놓으면 그에 못지않은 진단을 끓을 수 있었을 거다.
한지석과 당형수의 대단치 않은 조력에 힘입어 병원에서 집으로 옮겨온 미승은 녀석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난 후에야 너덜너덜하게 쓰러졌다.
내 꼴도 그렇지만 미승의 교복은 지지리도 지저분했다. 나랑 같이 꼴사납게 굴러다닌 덕분에 단추가 떨어져나간 자리나 찢어진 자리가 몇 주 전 내가 이태수네한테 당했던 것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재킷도 베스트도 셔츠도 단추가 제대로 달려있지 않으니 옷을 벗기는 건 수월하게 금방이었다. 욕실에서 물수건을 미지근하게 빨아다 피 묻은 얼굴이랑 손을 닦아 냈다. 팔이랑 가슴이랑 어깨에 멍든 자리들도 살폈다.
“진짜 많이 맞았네……. 아프겠다…….”
“안 아플 리가 있냐.”
잠든 줄 알았던 녀석이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눈을 뜨고 심통한 소릴 냈다. 멍든 얼굴 꼴을 하고도 얄밉게 대답하는 걸 보니 불쌍한 마음이 약간 가시려고 했다. 그렇다고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미안해. 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맞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상당히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보다. 미승이가 억지로 웃게 하는 걸 보면.
“농담이야. 별로 안 아파.”
“거짓말. 넌 농담이 아주 형편없어. 알아?”
“알아… 계속 닦아줘.”
피랑 흙으로 지저분하게 물든 수건을 다시 따뜻한 물로 헹궈 와서 미승의 멍든 상체랑 손과 얼굴을 닦는 동안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등을 닦아주겠노라고 녀석의 상체를 옆으로 돌리려 했더니 꿈쩍을 않고 오히려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까 강재만이 뭐라고 했어?”
어느새 물수건 든 내 손을 낚아채고 캐묻는다. 제법 심각하다. 택시를 탈 때부터, 병원에서 치료하는 동안에도, 미승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건 부상의 치료보다 저 따위 뾰로통한 호기심이었다.
강재만이 자못 의미심장하게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이 녀석에게 신경 쓰이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나는 대답하지 싫었다.
“왜 아까부터 질문 피해? 그 자식이 너한테 뭐라고 했냐니까?”
“몰라도 돼.”
미승이 곧장 삐친 걸 알았지만 평생 말해줄 생각은 없다.
‘널 좋아하지 않아. 좋아한 적 없어. … 내가 한 말 잊지 마. 그것만 기억해라.’
강재만이 한 말을 이어보면 날 좋아한 적이 없다는… 그것만 기억하라는 요구를, 난 진심으로 받아들여줘야 했다. 나도 녀석을 위해 한가지쯤은 해줄 수 있어야 하니까.
재만이 한테 평생 모른 척 하기로 한 약속인데 너한테 말해줄까 보냐.
병원에서부터도 미승이가 치료받는 내내 지랄을 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나도 너한테 물어볼 거 있어.”
“넌 대답도 안하면서 나한테는 물어보는 거야?”
“됐어. 그럼 안 물어볼래.”
“뭐야, 물어 봐. 너 원래 이기적인 놈인 거 아니까, 내가 봐줄게.”
내 질문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당기는지 겨우 강재만에 대해 캐묻기를 포기한다.
“너, 한지석 어떻게 생각해?”
“뭐야. 뜬금없이 한지석은 왜? 지금 걔 얘길 해야겠냐? 안 그래도 그 자식이 늦게 와서 열 받는데.”
아항, 처음부터 그 자식한테는 네 출처를 알리고 출정했다 이거구나. 처음부터 내 약속은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겨? 그리고 한지석은 왜 나랑 눈 마주치고선 형수한테도 모른다고 했었지?
역시 그 자식은 나를 몹시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오해하진 마. 네 약속 어기고 한지석한테 몰래 지원시키려던 거 아니니까. 난 네가 와서 애꿎게 끼어들까봐, 거기 근처에서 한지석한테 지키고 있다가 널 발견하면 붙들어 두라고 했었지. 그런데 그 자식이 너무 늦게 왔어.”
아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그치만 속깊은 미승아, 한지석은 일부러 늦게 왔을 걸. 내가 끼어들어서 잔뜩 터지는 꼴을 보고 싶었을 테니까. 넌 걔 속을 모르는 모양인데, 그 자식 너무 믿지 마라. 아무튼―
“내 얘긴 그게 아니고… 걔가 널 좋아한다는데, 넌 어떠냐?”
“어떻긴 뭐가 어때, 생각할 필요도 없는 놈이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가볍게 뱉어내느라 나로선 고심한 질문인데 미승인 아주 태연했다. 내 질문이 너무 싱거웠나 싶을 정도로.
“난 한지석이 왠지 무서운데.”
“그날 일 때문에? 불쾌하겠지만 잊어버려. 그 자식이 지 딴엔 날 생각한답시고 한 짓이었겠지만, 그 방식이 아주 황당했지. 걔가 뭐라든 무슨 짓을 했든 너무 곰곰이 담아두지 마. 걔 그렇게 복잡한 놈 아니야. 너보단 내가 더 잘 알지 않겠냐?”
듣고 보니 일견 그럴 듯하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전에도 말했지, 그 자식 보기보다 허술하다고. 나사가 좀…(미승이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돌돌 돌려보였다) 풀렸다고나 할까. 알고 보면 또라이야.”
“또라이?”
“한지석이 당형수랑 친구 먹는 거 보면 모르겠냐?”
걔들은 너랑도 친구야, 미승아.
“뭐야……. 기운 빠져. 다른 얘기 할 건 없어? 한지석 말고도 얘기할 게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얘긴…….”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하며 천천히 일어나 앉는 미승을 보며 나는 한 뼘쯤 뒤로 물러앉았다. 기브스를 한 다리를 끌고 그만큼의 거리를 앞으로 좁히는 걸 보며 한 번 더. 한 번 더,
그렇게 두세 번 움직이는 내내 ‘네 진심을 듣고 싶어.’의 강렬한 원망願望을 담은 얼굴을 마주하며 어느새 등에 닿는 차가운 벽을 느꼈다.
“난 지금 듣고 싶은 말이 있어. 정희승한테서.”
미승의 손이 셔츠를 벌리고 들어와 쇄골과 가슴을 더듬었다. 손바닥이 왼쪽 가슴을 누르자 심장이 뜨거운 온도에 감싸였다. 내 혈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말 해, 정희승.”
한 번도 밖으로 꺼내진 적 없는 내 안의 이유들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할 때가 왔다. 세상에 다시없을 기다림. 숱한 끈기와 어리석음으로 감내해 온 다정함의 증명들. 그런 것은 우정이 아니었다. 친구가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 할 때마다 커 갈 수 밖에 없었던 진통의 이유를 나도 알고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너, 넌… 친구가 아니야.”
지금 그와 함께 남아 있는 이유… 다치는 그를 보는 내내 가슴이 저려도 눈 감지 않았던 이유… 짧았던 연극을 집어치우고 달렸던 이유… 서툰 연극을 해야 했던 이유… 긴 시간 혼자서 가슴을 부여잡고 울어야 했던 이유들.
“우린… 친구가 아니지?”
이 말을 뱉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주 단순한 한 마디인데도 밑바닥에서 끓고 올라오는 열기들은 복잡하고 아렸다.
“그래. 우린 친구가 아냐.”
미승의 화창한 미소를 보며 그가 듣고 싶어했던 말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친구를 상대로 그토록 긴 시간들을 괴롭히지도, 나 자신을 괴롭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치?
“널 너무 좋아하는데, 어떻게 친구라고 하냐? 만약 너를 친구로 만들어버리면 난 세상에 너밖엔 친구가 안 생길걸. 나 욕심 많은 놈인 거 알잖아. 차라리 친구를 여럿 가지고 너를 따로 가질 거다.”
빠른 결론에 다다르는 류미승의 지름길 공식.
“…나도…….”
미승에게 쫓기고 추월당하는 행로들 속에서 난 이미 여러 번 지쳤지만 그래도 더 뛸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400미터 경주 후에 다리에 쥐가 나고서도 200미터 허들을 뛰어넘었던 속도와 힘을 짜낸다면―.
하지만, 한 번도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았다. 달리고 싶은 의지 반, 뒷걸음질 치고 싶은 의지 반이 마음의 전부를 아울렀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결승점이 없는 향방으로의 달음질은 결국 과거로부터도 미래로부터도 달아나지 못하는 혼자만의 경주였다. 외롭고 고달팠다.
그러니 이젠… 혼자서만 달리는 건 그만해도 되겠지.
“…좋아해. 미승아. … 나도 친구들은 따로 가질 거야…….”
“그런 말을 울면서 하면 어떡해. 바보같이.”
“… 그럼 어떡…해.”
“웃으면서 고백해주면 더 좋잖아.”
“…그치만… 눈물이 자꾸 나는 걸…….”
억지로 막으려 해도 목안으로 잠기지 않는 울음이 끅끅 소리를 내며 되올라왔다. 목구멍이 아팠다.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은 마르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렇게 비비면 눈 빨개져.”
눈가를 세게 비비던 내 주먹이 잡혀 내려가고 대신 내 볼을 감싼 그의 손이 아래 속눈썹에 닿은 그의 엄지손톱으로 눈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괜찮아. 눈물이건 웃음이건 괜찮아. 네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지금은 다 아프지만… 다 괜찮아.”
다 괜찮아. 그것은 내게도 해당되는 희망이었다.
나를 위해 숨어있던 어두운 길목의 모퉁이가 작은 불빛을 밝히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제부터 조금씩 괜찮아 질 거라고. 서서히 나을 준비를 해왔던 거라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들도 가끔은 돌아보며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지금 우리가 마주보고 조금씩 웃기 시작한 것처럼.
“그때 상처들 아직 안 나았지?”
미승은 어느새 셔츠를 어깨 아래로 넘기고 어깨와 가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태수의 아이들이 샌드백질을 하고 간 흔적이 아직은 몇 군데 딱지로 남아 있었지만 아픔은 거의 가시고 있었다.
“작은 멍은 나았어. 몇 개는 아직 남았지만.”
희미하게 불긋 푸릇한 자리들을 찾아 손과 입술이 더듬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승의 다음 말에 눈물마저 쏙 마르게 슬픔은 식어버렸다.
“다음엔, 내가 다른 멍을 만들어 줄게.”
“지금 그거… 야한 농담이라고 한 거야?”
“알아듣는구나. 너도 좀 컸나보다.”
“너보다 내가 커.”
“그래. 네가 커.”
어… 어……? 진지한 대답이야? 아니면 새로운 놀림이야?
“네가 나보다 많이 컸을 거야. 분명히. …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그의 눈이 불현듯 흔들리는 불안을 띄고 있었다. 미처 캐내지 못한 비밀을 찾아야 할지 말지 갈등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의 깊은 다정함만큼이나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의심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비밀은 없다. 고백도 없다. 털어내야 할 것들은 모두 묻어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 암울의 빛을 깨워서는 안 되는 거니까.
손바닥을 가져가 미승의 눈꺼풀을 감겼다. 하얀 눈꺼풀 위에 한 차례씩 입을 맞추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사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내 입술은 선뜻 떨어지지 못하고 그 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속눈썹을 오래 감상할 여유도 없이 “나도.”라는 말소리와 함께 내 눈이 감겼다. 미승은 내가 한 짓을 똑같이 따라 했다. 작은 웃음소리가 미간을 간질였다.
“따라 하지 마, 바보야.”
“뭘 그렇게 쏘아 봐? 따라 하고 싶은 데 안 돼?”
“안 돼! 오늘은, 이건… 내가 너한테 사과하는 거야. 그동안의 일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
그래, 먼 앞으로의 일들까지. 오랫동안 날 놓지 않았던 바보에게 주는 대가. 그런 바보를 힘겹게 잡은 만큼 나 역시 쉽게 놓아주지 않을 각오에 대한 사과이자 고백.
나는 미승의 입술에 사과 했다. 한 때는 정말로 꼴 보기 싫었던 입술이었지만 그때의 미움조차 지금은 미안해진 입술에 처음으로 가붓한 애정을 담아 입을 맞췄다. 그리고 못지않은 상처로 얼룩졌을 그의 심장과, 내가 찌른 흉터가 남아 있는 배에도 입을 맞추고 긴 다리를 따라 내려와 오늘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그의 발과 나머지 발등에 나란히 입술을 찍었다. 여러 차례, 한참을.
어쩌면 평생 그에게서 절반쯤 풀어지지 않을 전족을 씌우고 가야 할, 나의 아픈 고백을.
“그런 얼굴 하면 어떡해, 바보야. 웃으면서 고백 받으면 좋잖아.”
머리 위로 떨어지는 축축한 숨소리를 듣고 비로소 고개를 들었을 때, 미승은 붉어져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여름을 다르게 건넜고, 그 후의 가을도, 겨울도, 봄도 서로 다른 시계바늘을 타고 왔다. 같아질 수 없었고 닮아가서도 안 되는 길이었다.
어릴 적 밝은 민들레 꽃 같던 미승이가 진한 자주빛의 맨드라미처럼 묘하게 뒤틀려서 변형된 것과 달리, 나는 시들지도 못하고 짓이겨진 채 남겨진 달리화였다. 혐오스러운 꽃물이 마르지 않는 여름 속에 남겨져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뭉개지는 염증들. 증오스런 박기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험처럼 다가오는 미승의 행동들이 끔찍했었다. 류미승에게도 나를 통해 시험받는 끔찍한 기억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도 나도 기억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진흙 밭에 뒹구는 심신은 너덜너덜 바래서 말라버린 흙빛으로 엉켜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른 흙을 털어버릴 때가 되었다.
미승이를 찔렀던 중학교 때의 여름날 밤과 오늘 밤의 피…….
미승이가 흘린 두 번의 피가 나를 키웠다. 아무리 부정한다 한들 우리들의 시간은 질경이풀처럼 끈질기게 이어져 있었다. 열네 살의 내가 흘리게 한 피와 열여덟의 나로 인해 흐르게 된 피가 어린 시절의 화를 녹이고 분노를 풀어헤치고 자책과 두려움에 휩싸여왔던 수년간의 고통을 분해시키고 내 마음의 성장점을 깨웠다.
독소를 품은 꽃처럼 이그러진 질시로 자라난 미승이가 짓뭉개진 순수에서 타락을 피워 올린 내 잎사귀를 뜯어먹고, 그 끝에 피의 양분을 뿌렸다. 검붉은 핏속으로 모든 정신의 퇴락들이 녹아들었다.
선연한 피와 교차되는 창백한 미승이의 표정을 보며 나의 생장점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래 멈춰 서 있을 순 없었다.
그러니… 더 자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