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7)

『…….』

난 인터폰 카메라를 통해서 형수 녀석이 다소곳이 어깨를 조아리고 입을 오므리는 멋진 꼬락서니를 지켜봤다.

문이 열리자 후다닥 튀어 들어온 녀석의 등엔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짐 보따리가 한 가득이었다. 내가 이 집에 올 때 옷 담아온 가방보다 훨씬 크게, 훨씬 많이.

“미승아, 며칠 신세 좀 지자.”

“뭐!?”

“나 집 나왔거든. 아빠랑 싸우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친구가 가출을 했는데, 생계를 책임져 줘야지. 능력있는 미승아.”

“너, 지석이네 가.”

미승이가 형수의 등을 막 밀어내는데, 형수는 안간힘으로 벽을 붙들고 버티면서 앓는 소릴 냈다.

“지석이한테 전화했는데, 걔가 너한테 가라고 했단 말이야! 아구 아구, 희승아! 미승이 쫌!”

그러자 미승이는 형수를 내쫓기를 포기하고 한지석이 쓰던 작은 방으로 형수를 떼밀었다.

“넌 오늘 환영받지 못하는 두 번째 방해꾼이야.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 알겠냐? 그러니까 숨죽이고 얌전히 지내.”

“무슨 방해?”

“몰라도 돼.”

그런다고 기죽을 당형수가 아니었다. 

녀석은 미승이가 샤워하러 간 사이에 큰 배낭이랑 긴 배낭을 들고 방에서 나와 거실에다가 곰실곰실 살림을 폈다.

“이 집은 거실이 제일 시원한데. 나 여기서 지낼 건데. 방해 안 되지, 희승아?”

이거야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격이다.

“그렇게 해. 나랑 미승이도 요새 거실에서 잔다.”

그래도 난 형수가 와서 좋았다. 미승이 녀석에겐 자제가 필요하니까. 

형수가 가방을 푸는 걸 보았을 땐, 약간의 어이없음과 흥분이 교차되었지만 말이다. 

녀석이 지고 들고 온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은 비닐봉지, 코펠과 버너, 부탄가스, 침낭, 쌀 담은 비닐봉지와 간식거리가 잔뜩 이었다. 모로 봐도 가출이 아니라, 캠핑 가는 녀석의 짐 꾸러미였다. 

녀석이 아빠랑 싸우고 가출했다는 건 순전히 뻥이었다. 

사실은 오늘 아침 친구들과 놀러갈 계획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기차역에 가다 말고 ‘차라리 미승이네서 피서를 하자!’고 야무진 생각으로 쳐들어왔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말도 없이 제멋대로―.

그리고 류미승이 욕실에서 시원하게 젖은 얼굴을 하고 나왔을 때 나랑 형수는 거실에 2인용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자명종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미승이의 표정이 단박에 불쾌지수를 뽐 낸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형수가 아파트 거실에 캠핑장을 차린 건 고작 1박 2일뿐이었다. 미승이가 제 엄마가 왔을 때처럼 쫓아내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다거나 한 건 아니다. 형수랑 내가 캠핑놀이를 위해 굳이 야외용 버너랑 코펠을 꺼내놓고 거실에다 쌀알이랑 양파 쪼가리를 흘리고 다니건, 야밤에 라면을 끓여먹건, 마루에다 쌀알을 흘리고 다니건,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형수랑 내가 비좁아터진 텐트 안에 들어가서 플래쉬를 켜고 뒹굴다 잠들 때까지 텐트밖에 에어컨 바람도 쌩쌩 틀어주면서 묵묵히 내버려두었다. 대단히 참는다 싶을 정도로. 덕분에 나는 잘 놀았지만 말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 형수 스스로 “지석이네로 가야겠다.” 하고는 번잡한 짐꾸러미를 챙겨갖고 나간 후엔 너저분한 캠프장의 흔적만 휑한 거실 안에 남고, 난 선뜩 외로워졌다. 

“하룻밤 개길 거면서 왜 산만하게 짐은 다 풀어놨던 거야.”

기꺼이 내보내고 싶었던 불청객일 텐데, 저렇게 중얼거리는 미승이도 녀석이 떠난 걸 약간은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너도 형수가 가니까 서운해?”

“내가? 천만에! 그 자식이 사라져서 속이 후련해.”

“그래도 잘 참더라. 난 네가 걔 막 구박할 줄 알았는데.”

“네가 걔랑 잘 놀길래.”

“그래서였냐?”

“형수랑 있으면 너 편해 보여. 우리 삼촌이랑 있을 때처럼. 넌 어째서 그렇게 헐렁한 인간들만 좋아하냐.”

정말로 요새 내게 편한 인간들은 류현구랑 당형수 밖에 없었다. 미승의 표현대로 헐렁한 인간들. 하지만, 녀석 앞에서 맞다고 응수하기가 뻘쭘하다. 게다가 지금 분위기상 꺼내기가 미안스러운 말.

“이따 나도 갈 거야.”

“벌써?”

“벌써 여기서 일주일이나 보냈잖아. 모레부터 보충도 시작하는데. …교복도 안 챙겨왔는데,”

“…….”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쳐다보는 데, 변명 하나라도 더 해둬야지. 

“개학도 얼마 안 남았잖아.”

“계속… 여기서 같이 지내자고 해도, 싫다고 할 거지?”

“응.”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지 알고 물었으면서, 왜 저리 풀죽은 표정인지.

“있잖아… 미승아. 난 방학 중에 여기, 친구네 놀러왔던 거야.”

속으로 열 번도 넘게 다듬고 곰곰궁리 했던 말을 나는 힘들게 소리 낼 수 있었고, 미승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아듣는 듯 보였다. ‘그러니까 너도 그리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미처 전하지 못한 나의 양해를. 이번에도, 앞으로도 ‘친구네 집에 놀러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아 내가 그와 함께 지낼 수 없는 이유를. 내 안에서 영원히 흩어지지 않을 응어리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은 그도 알고 있으니까.

오던 날 넣어왔던 불룩한 과자봉지들이 덜어진 가방은 그동안 갈아입었던 두어 벌의 옷만이 담겨서 이번에 쌀 때는 홀쭉해졌다. 욕실에서 칫솔을 가지고 나왔을 때 미승이도 간편한 외출차림에 야구모자 챙을 꺾어 쓰고 있었다.

“버스 타는 데 바래다주게?”

“아니. 너네 집까지. 오랜만에 나도 놀러가야지. 난 방학 때 한 번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지 못했으니까. 아줌마도 나 보면 반가워하시겠지?”

장난스럽게 내 손을 잡고 열쇠를 꺼내는 미승이의 미소에선 딱히 어떤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매하지만 자연스러웠다. 무거운 응어리의 절반의 절반쯤을 흩트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서서히 포기시키고 있는 걸까…….

“그래. 같이 가자.”

그랬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군용기의 굉음이 더운 기류를 울린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의 구름은 긴 담배연기처럼 가늘게 흐트러져 있었다. 돌길 위에 놓인 녹슨 철로는 이글이글 뜨거운 아지랑이를 올리고 있었다. 한 칸, 한 칸, 발길 앞에 놓인 철근 위를 밟고 걸어가는 동안 조금씩 멀어졌던 거리에서 더운 공기 속을 달려오는 소리는 가까워졌다. 

“…승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지랑이 너머의 산처럼 멀었다. 두 줄의 철로선이 네 줄로 갈라지는 교차점에서 빨간 원 안의 금지 표지판 옆에 멈췄다. 돌아서서 발걸음을 쉬는 동안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은 많았다.

“정희승, 너 왜 그렇게 엉뚱하냐? 왜 거기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한 거야?”

“이쪽으로 가도 마을 가는 길 나와. 아주 멀진 않아.”

시호리로 들어서기 일곱 정거장 전에 버스에서 뛰어내려 기찻길로 이어지는 이쪽 산 중턱으로 뛰어온 건 돌연한 행동이었다.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돌발적인 충동. 

나는 달리고 싶었던 걸까. 

…어디를 향해서?

“기차가 오지 않을까?”

“이쪽은 기차 안 다녀. 화물열차밖엔.”

멀고 먼 향방으로 이어지는 낡은 철길를 밟으며 뿌연 먼지와 아지랑이가 날리는 공기 속으로 걸어갔다. 과거로 달려가던 복잡하고 무거운 쇠고리가 닳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순환선을 탈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미 이탈된 노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우리의 발걸음이 수없이 돌아다녔던 눈에 익은 마을의 풍경이 가까워지자 등 너머의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희승아, 거기 가자.”

“어디?”

녀석이 가고 싶다는 장소를 버들골로 향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호수를 향하고 있었다. 미승이의 발길이 앞서가는 대로.

“생각보다 멀다.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어릴 적엔 하나도 멀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럼 뛰어갈까?”

“그러자.”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자 조금 앞서 뛸 수 있었다. 미승이보다 다리가 짧아도 이래뵈도 육상선수도 했었던 속력이다. 미승이도 만만찮게 뛰어서 나보다 두어 보폭 뒤에서 뛰고 있었다. 내가 속도를 늦추자 이번엔 내가 뒤처지게 되었다. 

우리는 뜀박질을 해도 속도가 같지 않구나―, 생각하는데, 미승이가 내 손을 잡아챘다. 자연히 우리의 뛰는 속도가 줄었다.

“늦추지 말고 네 속도대로 뛰어.”

“손잡고 뛰면서 그게 되겠냐?”

“걱정 마. 네 속도 따라갈 수 있으니까.”

그 순간부터, 정말로 우리는 나란히 뛰었다. 미승이가 육상 선수다운 내 속력에 맞춰 따라오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저절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손에 잡혀진 미승이의 체온이 굳은 신뢰처럼 따라붙는 걸 느끼며 등을 떠미는 가속에 저항했다. 과거로부터 도망치듯 기겁하고 달렸던 선수시절의 연습들을 잊었다. 지나치게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가장 편한 속도로 뛰고 있었다. 내가 변덕스런 달음질만 치지 않으면, 오그라들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속도로 앞으로 뛰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더운 바람도 상쾌하게 우리를 가르고 갔다. 

여름은 지나가고 있다. 가을은 다정하다. 시들어 죽지 않는 이상 결실로 자랄 수 있는 식물이었다. 우리는. 

나도 어쩌면…….

“드디어 다 왔다.”

적당한 속도로 뛰어온 우리는 금세 호흡을 가다듬고 열 걸음 앞에 보이는 호수로 걸어갔다. 호숫물은 여전히 지저분했다. 그래도 지난봄에 둥둥 떠 있던 흉했던 오물들은 언제 거두어졌는지 푸른 물색이 살아나 있었다. 썩은 수풀의 잔재까지 걷혀지진 않아 지저분하긴 했어도 눈 돌리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위가 가신 수면에선 비린내도 전처럼 진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버드나무도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비밀기지는 여전할까?”

미승이는 호수 쪽으로 팔을 뻗어 버드나무 몸통의 구멍을 찾았다. 아홉 살 때의 우린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울이고 최대한 팔을 쫙 뻗어야 겨우 구멍에 손을 담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미승이의 긴 팔은 안전한 위치에서 여유롭게 나무 몸통을 돌아 구멍 언저리에 닿았다. 

“여전히 있네.”

“새들이 막아놓지만 않았으면 당연히 있겠지.”

“그치만 아무것도 없어.”

나도 버드나무의 몸통을 안듯이 감싸고 팔을 뻗어 구멍 속에 손을 넣어봤다. 어릴 적엔 내 손 하나는 넉넉히 들어가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손가락 서너개 넣어서 더듬을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하긴, 그랬으니 몇 개 안되는 유리구슬들을 보물이랍시고 담을 수 있었지.

그리고 내가 구멍 속을 비워둔 후로 여전히 비워져 있다는 건, 아무도 그 안에 비밀을 담은 이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자라고 새로운 아이들이 동네를 뛰어다녀도 이곳은 여전히 나만의 비밀기지였던 거다.

“이제 여기에 담을 건 없니?” 

“없어. 그런 거.”

“왜?”

왜냐니―. 

“이젠 보물 같은 것도 없는 걸. 어릴 땐 유리구슬 따위도 보물이라고 애지중지 했지만…….”

“비워두긴 아까운데.”

미승이의 손가락이 더듬고 들어온 구멍은 비좁아졌다. 내가 나무 몸통을 둘러 안고 있듯 미승이가 뒤에서 겹쳐 둘러 안고 있었다. 내 손을 빼내서 손바닥에 묻은 검부러기를 털어주었다. 그대로 내 어깨를 안고 버드나무 몸통에 기대앉고 나는 미승이의 몸통에 등을 기댔다. 

“나른하다. 한 숨 자고 가자.”

배 앞으로 둘러진 느슨한 팔을 내려다보다 뒤에서 잠든 숨소리를 들었다. 나조차 편치 않은 이곳에 와서 미승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의 기억은 어둡고 시리지 않았을까. 늘어진 버드나무 줄기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어느덧 나도 잠이 들었다.

“집에 안 들렸다 갈 거야?”

“그냥 갈래. 네 말대로 개학도 멀지 않았는데 집에 가서 할 것도 많고.”

내가 그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미승이는 공부도 하나도 안 했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딱히 놀러가지도 못했다, 오로지 나의 게으른 본새에 맞춰주며 집안에서만 노닥거리느라 아까운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그러니 돌아가겠다는 녀석을 붙들고 놀다 가라고 할 순 없었다. 정류장의 벽돌 그늘 아래에서 시내행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질수록 내가 미승이를 배웅할 시간은 짧아져갔다. 

“나중에 다시 호수에 갈 거지?”

“가서 뭐하게. 재미도 없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너, 예전에 거기 넣었던 구슬들 전부 버렸더라. 네 건 네 맘대로 했다 치고, 왜 내 것까지 버렸냐?”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냐? 구슬 세 개 갖고 쪼잔하게.”

“나 쪼잔한 거 처음 알았냐? 벌이야, 너 다음 주까지 거기다 보물 채워놔.”

“무슨 보물?”

“그런 것까지 일일이 물어보면 어떡해? 아무거나 내가 좋아할 만한 걸로 넣어 놔.”

억지도 이런 억지가…….

빠르게 달려오던 버스 바퀴가 고무타는 냄새를 풍기며 멈춰섰다.

“내가 나중에 가서 확인해 볼 테니까!”

회수권도 안내고 나한테 윽박지르기 바쁜 녀석에게 얼른 가버리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미승이가 했던 말을, 나는 다음날부터 내리 잊었다. 버드나무의 구멍 속에서 작은 유리구슬 여섯 개를 발견하게 된 건 그로부터 십 년이나 지난 후였다. 구슬 하나하나마다 그려져 있던 작은 흔적들이 모두 지워졌을 즈음에.

방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일요일 오후에 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마루 건넌방에서 들려왔다. 누군가 받겠지 하고 무시하는 동안 끊어졌던 전화가 다시 울리자 부엌에서 “얘! 전화 안 받고 뭐해!”엄마의 고함이 울렸다. 굼뜨게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 수화기를 들자 이번엔 선중이의 목청 큰 소리가 귀를 울렸다.

『뭐 하느라 전화를 늦게 받냐?』

“내 방에 있어서 잘 안 들렸어. 무슨 일이야?”

『너 지금 무영이네로 오지 않을래?』

“무영이네?”

『무영이가 너한테 전화해 보라고 해서. 나 지금 무영이랑 같이 있거든.』

『김선중! 네가 희승이한테 할 얘기 있다며! 네가 전화해놓고 왜 내가 시켰다고 하냐?』

『귀 따갑다! 짜식이 소심해갖곤. 인마, 너 그러면 왜 나한테 자꾸 희승이 얘기 묻는 거냐?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네 멋대로 떠들어라! 난 그런 적 없어!』

나랑 통화하다 말고 지들끼리 투닥대는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다. 거기다 선중이가 전화를 바꿔주겠네, 무영이가 됐네, 하는 티격태격까지 거르지 않고 들려왔다. 

곁에서 들려오는 무영이의 외침을 물리치고 선중이는 쉬는 방학동안 집에 와 있었다던 무영이랑 줄창 어울려 놀았다면서, 오늘 무영이가 시내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데 자기도 따라가서 하룻밤 자고 놀기로 했다고 목청 높여 떠들었다. 

선중이의 들뜬 기분이 과장되게 전해져도 우습지 않았다. 선중이 옆에서 뾰루퉁해서 툴툴거리고 있을 무영이의 모습은 웃음이 나왔지만. 

두 녀석은 어느새 꽤나 편해진 모양이었다. 

방학동안 친구랑 줄곧 어울리고 친구네서 자고 노는 게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들에겐 이런 것들조차 자못 의미가 생기는 일이었다. 

“잘됐네. 잘 놀다 와라.”

나는 비록 웃으면서 김빠지게 싱거운 대답만 흘렸지만.

『야, 그게 아니지. 우리 이따 막차로 나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무영이가 너도 꼭 데려 가잔다.』

『내가 언제 그랬냐!?』

반박에 이어 수화기를 건너 받은 건 무영이의 목소리였다.

『선중이가 한 소린 다 걷어내. 저 자식 너무 맘대로 떠들어. 너도 우리 집 와 봐서 알지? 되게 좁아. 그리고 무진장 더워. 그래도 올 테면 와.』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우리 집에서 자면 학교 가기 편하잖아. 너도 내일부터 보충 들을 거 아냐.』

같이 가잔 소리네. 태도가 솔직하지 못하다, 이무영. 속을 비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녀석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나 모르는 데서 어느새 녀석들이 예전처럼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서운하거나 아쉽기 보다는 후련히 잘됐다는 기분이 컸다. 

내가 미승이와 보낸 한 주만큼 녀석들이 함께 보낸 한 주에도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미움들을 희석시켜가는 발디딤.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겨 무영이네로 갔을 때 무영이는 방에서 짐을 챙기는 중이었고 선중이만 먼저 마당에 나와 있었다. 통화를 끊기 전에 무영이에게서 수화기를 빼앗아 『해 줄 얘기도 있으니까 얼른 와.』라더니, 정말로 나를 보자마자 대문 밖으로 끌고 나왔다.

“무슨 얘긴데 그래? 무영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야?”

“그런 건 아닌데, 별로 크게 떠벌릴 얘긴 아니라서.”

통화할 때의 들떴던 기운과 달리, 지금 무겁게 낮춰진 어조는 녀석이 무슨 얘기를 할 지 궁금증을 북돋웠다. 

“너 기억나지? 지난 학기 때 우리 학교랑 싸웠던 녀석들 셋 있잖아. 그 중에서 제일 덩치 컸던 녀석, 걔 이름이 뭐지?”

“이태수?”

“응. 그 놈이랑, 또 한 녀석 있지 않냐? 너네 학교에서 이태수랑 라이벌이라는 녀석.”

“강재만? 근데 걔들은 왜?”

“이건 뭐… 나도 건너들은 얘기라서 확실친 않은데……,”

자못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선중이는 말을 늦추고 있었다.

“빨리 말해 봐. 답답해.”

“그 두 명이 요새 작당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류미승 잡으려고.”

“뭐? 미승일? 어째서? 학교에서 미승이랑 걔네들이 붙은 적도 없는……!”

말하다 보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방학 직전에 미승이가 재만이를 교실에서 된통 팬 적이 있으니까. 재만이의 똘만이들이 손 쓸 틈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그날의 일 만으로도 재만이가 쪽팔려서 류미승을 향해 이를 가는 심정은 납득이 됐다. 

하지만, 이태수는 도대체 왜!?

“얼마 전에 류미승이 이태수를 쳤대. 밤에 이태수가 자주 다니는 술집으로 찾아가서 엄청 작살을 냈다던데. 이태수랑 붙어 다니는 녀석들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지만 미승이 자식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다들 어이없이 당했나봐. 그래서 소문이 커진 거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태수가 단단히 벼르고 있대.”

“그게 언젠데?”

“정확히는 몰라. 방학 중에 그랬단 거만 알아.”

방학동안 이태수랑 강재만은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다. 

미승이는 하루도 학교를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보충수업을 나왔고 학교를 쉬는 일주일간은 나랑 붙어 지냈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시간 속에서도 미승에게선 폭력의 낌새가 묻어난 적이 없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자식들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만 했었는……! 

…그 자식이 진짜로 사고를 쳤나 보군.

“듣기론, 강재… 뭐라던 그 녀석도 학교에서 미승이한테 얻어터진 적이 있다며? 교실에서 애들이 다 구경했다던데, 넌 모르냐? 그 녀석은 그 일 때문에 미승이한테 억하심정이 있을 테니까, 이태수가 이번에 그 녀석한테 먼저 손잡자고 했다는 소문이야. 둘이서 류미승 치자고.” 

선중이는 딴 학교 다니는 놈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고만 고만한 아이들 무리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살기에 가능한 거겠지만.

“걱정 되냐?”

“별루. …내가 왜.”

내 입은 속마음이랑 전혀 다른 소릴 내뱉었고, 선중이는 알아서 흘려들었다. 

“일단은 소문이니까, 그런 애들이 하는 얘기엔 원래 허풍이 많잖냐. 멋대로 부풀려진 얘기일거야.” 

내 걱정을 덜어주려는 배려인지, 선중이는 이미 꺼내 놓은 얘기를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강조하려 했지만, 이미 착찹해진 마음은 걷혀지지 않았다. 들리는 얘기일 뿐이라고는 했지만 저 소문들이 거짓이라는 확증도 없었다. 

“나 준비 다했어! 가자!”

무영이가 뛰다시피 방에서 나왔다. 녀석이 뒤축이 꺾인 운동화를 바로 잡아 신는 동안 선중이랑 나는 먼저 골목으로 나왔다. 

“내가 괜히 얘기했나? 너무 신경 쓰진 마라.”

“…으응.”

미승이한테 미리 뭔가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지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뜬소문일 수도 있는 일을 공연히 호들갑스럽게 떠벌려 기가 약한 녀석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도 싫고, 미승이 녀석을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자세로 달궈놓아도 안 된다. 

그래도 만약 진짜라면……?

“빨리 와! 버스 올 시간이야!”

“저 새낀, 저 때문에 늦어놓고는 우리한테 채근이네.”

어느새 우리를 앞서 달려가는 무영이를 따라 우리도 버스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우리는 승객 없는 시내 행 막차 버스에 올라타 뒷자리를 차지했다.

“야, 우리 이렇게 나란히 뒤에 앉은 거 오랜만이다. 그치?”

무영이의 말처럼,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선중이, 무영이, 나― 이렇게 셋이 나란히 뒷자리에 앉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 뒷자리 모자랄 땐 늘 선중이랑 병식이가 뒤에 앉고 우린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그랬나? 난 어릴 때도 자주 너희랑 이렇게 앉았던 것 같은데.”

“선중이 네가 무뎌서 그래.”

“맞아. 이 자식은 지가 어땠는지 기억도 못할 거야. 지금도 섬세한 구석이 없어.”

“내가 무딘 건 맞는데,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냐.”

차창이 지나쳐보내는 마을을 바라보면서, 예전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은 풍경에 우리는 조심히 안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선중이는 어릴 때처럼 떠벌리고 잘난 척 했지만 그때와 같은 막무가내는 아니었고, 무영이는 어릴 때처럼 표정이 적었지만 그때와 같은 꺼벙함은 없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느 샌가 우리의 거리는 비슷비슷한 키 재기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면서 새로이 관계 지어지는 현재로.

“으아 갑갑해! 셋이 둘러앉으니까 방이 꽉 찬다. 너네는 덩치도 안 큰 것들이 공간 꽤나 차지하네. 밖에서 보면 조그만 것들이 여기서 보니까 사내 놈 셋이 모인 게 맞긴 맞구나 싶다.”

“김선중, 너도 옆으로만 컸지 위로는 안 컸잖냐. 내 방 좁다고 투덜거릴 거면 나가. 너 가면 우리가 편하게 자니까.”

“새끼, 자기 방이라고 뻐기네. 야, 근데 모처럼 이렇게 모여서 노는데 너무 심심한 거 아냐? 맹숭맹숭 과자만 까먹고 있을 거야? 술이라도 마시자.”

말을 꺼낸 당사자인 선중이는 행동 빠르게 일어나 지갑을 챙겨 들고 방을 나갔다. 나가면서 뒷주머니를 뒤적이는 걸 보니 담배도 피울 겸 밖에 나갔다 오려는 모양이었다. 무영이가 하숙집 아줌마한테 잔소리 듣기 싫다고 방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했기 때문에 아까부터 더욱 갑갑해하던 녀석이었으니까.

“너네 집에 갔을 때 병식이가 나오는 거 봤는데.” 

“자주는 안 와. 내가 집에 가 있는 동안에도 아까 처음 온 거야. 내가 온다니까 얼굴 한 번 보라고 큰 엄마가 잔소리 하니까 온 건가봐.”

“사촌이니까.”

“응. 사촌이니까.”

무영이가 반복하는 대답은 녀석도 병식이랑은 친척이라서 이어지는 것 이상의 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무영이네 집 대문에서 나오던 병식이랑 마주쳤어도 녀석은 아는 척도 안 하고 제 집으로 가버렸었다. 

지금 병식이에게는 우리가 아닌 새로운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다. 

병식이를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마도 그 녀석 또한 유년의 기억에서 별로 멀어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일주일간 집에 가 있으면서 너도 한 번도 못 봤는데.”

“다른 데 가 있었어.”

“알아. 너네 집에 선중이랑 놀러 갔다가 아줌마한테 들었어. …미승이랑 지냈다고. 재밌었어?”

“집에만 처박혀 있었지만, 재미없진 않았어.”

“으응… 그랬구나……. 응…….”

시선을 방바닥에 두고 장판을 긁는 무영이의 손가락은 짧고 힘이 없어 보였다. 

“넌 어때?”라고 묻는 질문 소리는 하도 작아, 내가 “뭐라고?” 묻고서야 녀석의 작은 입 속에서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재차 빠져나왔다.

“류미승이 너한테 여전히 잘 하지?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은데… 넌 어때? …미승이 좋아? … 아니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했나 모르겠네.”

정리되지 않은 질문을 완전히 내놓지도 거두지도 못하는 무영이. 

미처 내지 못한 의미는 벙하게 벌어진 도톰한 입술 새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생각 많고 주저 많은 여자아이 같아 보였다. 

나와 미승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또 선중이에게 내 얘기를 물을 때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작은 선풍기가 회전하는 방안의 더위는 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서늘한 침묵이 작은 방의 열기를 누르고 있었다. 

내리깐 무영이의 시선만 마주보고 있기를 한참 만에, 선중이가 양손에 닭튀김과 맥주병이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맥주는 대부분 선중이가 비웠지만 무영이도 한 병을 마셨다. 나는 마지막에 무영이가 마시던 것을 한 모금 마셨다. 

한 모금의 알코올이면 일찍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며 바깥에 있는 욕실로 씻으러 들락거리는 와중에 걸상에 수건을 걸어놓으려다, 챙기다 만 무영이의 책가방을 보는 순간 생겨난 얄팍한 짓궂음. 

열려진 책가방 입구에서 꺼내달라고 은밀히 속삭이는 수첩 안에 무영이 녀석의 공부 격언과 인생 격언이 새로이 늘었을까 몰래 훔쳐보고 싶었던 마음이 찾아낸 것은…

“……!”

은밀한 폭로였다.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몰라서 다행일 것도 아닌…….

학교엔 가지 않았다. 하숙집 앞에서 선중이랑 헤어지고 무영이랑 학교 문 앞까지 가서 학교로 들어갈지 말지 잠깐 망설이긴 했었다. 그러나 무영이를 먼저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구점에 들르는 척 하며 교문에서 멀어진 나는 결국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모두가 밖으로 나갔어도 완전히 잠그지 못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내 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옷가지 여러 장을 가방에 챙겨 넣고 비상금을 모아둔 저금통을 털어서 나왔다. 

그리고 서울 행 기차를 탔다. 

빈 좌석이 수두룩한 기차 안에 앉아 생각을 지우고 잠들어 버리려고 캔 맥주 하나를 사서 급하게 목구멍 안으로 비워버렸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속은 거북한데 정신은 갈수록 말똥말똥해졌다. 

「희승이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안다는 것을 희승이는 모른다. 

하지만, 희승이가 내가 아는 것을 모른다는 걸 나는 안다.

4년 전 여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 날의 강나루가 지금도 때론 밤마다 시끄럽게 운다. 

희승이를 보면 더욱 시끄럽게 운다.

어떡해야 할까……. 

무엇부터, 어디까지 나는 고백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 모른 척 해도 되는 걸까.」 

무영이의 수첩 가운데 장에 고백처럼 끄적여진 글을 읽었을 때, 녀석이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두려움이 한 발 먼저 뛰어들었다. 무영이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 보다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찾아들었고, 심장은 무섭도록 밤새 쿵쾅거렸다. 

내겐, 어떤 것이건, 누군가 알아선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녀석이 무엇을 알건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4년 전 여름의, 강나루라면 오로지 한가지 일 뿐이다.

이무영…….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검은 강의 밑바닥으로 가라앉힌 내 비밀을 보고 있던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밑바닥으로 내려앉는데, 그것이 무영이였다니…….

「열 네 살의 난 괴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희승이는 어떨까?」

지갑 안의 돈을 세어보니 4만 7천 800원이 전부였다. 몇 번을 세어 봐도 십 원짜리 동전 하나도 늘진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 돈이면 마을로부터 얼마든지 멀리 멀리 가는 편도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나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는 계획할 미래가 없었다.

오로지 도망칠 은닉처만이 필요했다. 

과거로부터, 

나를 아는 인간들로부터, 

내가 아는 나로부터. 

여름은 끝나지 않았어도 여름방학의 끝은 앞서 찾아왔다.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고 난 일주일 후 우리 학교가 가장 늦은 개학을 했다. 한산했던 여름 거리가 붐비고, 시내의 곳곳엔 교복 입은 아이들의 활개가 소란스럽게 울렸다. 

오늘 아침도 나의 등교 버스는 보통의 고등학생들이 등교를 마친 호적한 시간에 중앙로에 나를 내려주고 종점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나는 휑한 아침 중앙로를 배회하지 않고, 어두운 양키 시장 골목으로 찾아들지도 않았다. 아마도… 미승이 때문이었다. 녀석이 나한테 부딪혀오기 시작했던 무렵부터였다, 음침한 기억의 골목을 맴도는 습관을 버렸다. 오늘도 나도 모르게 발길이 뻗치는 그 골목 앞에서 되돌아섰다. 내 안에선 아직 역한 오물의 냄새가 뇌수의 구정물로 흐르지만, 평생 머금고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각오했다. 

“잘 다녀왔어?”

아무 일 없이 웃는 미승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각오는 출렁거렸다. 류미승이라는 갈등은 다른 갈등으로 기울던 내 마음을 움직였다. 오랫동안 나는 버겁고 아슬아슬한 평형을 잡아가고 있었다. 미승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어떻건 간에, 그런 이름의 금 앞에 ‘멈춤’ 표시를 두고 미승이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세워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길 잘 했다고, 나는 여러 번 끄덕이고 다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출렁거렸다. 어깨를 토닥이는 가벼운 손을 잡고 그 손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눈물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또 도망치고 싶어지면, 나랑 같이 가자. 그땐 더 멀리 갈 수 있어. 더 오래 도망쳐도 돼.”

“…….”

“꼭.”

아무래도―. 미승이랑 도망치면 녀석의 지갑이 따라 올 테니 더 오래, 더 멀리 도망갈 수 있겠다고 웃기지도 않게 진지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녀석의 약속은 실없이 날아가는 깃털들이 아니라, 언제나 결실을 보여주었다. 그것만큼은 믿어도 되는 것이었다. 내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는 미승이의 새끼손가락이 내 새끼손가락을 걸지 않았더라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무영이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평생 녀석이 가슴에 담아두고 내 앞에선 그 얘길 꺼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내 앞에서, 아무것도 아는 척 하지 않도록. 

고작 두 주간의 방랑이었다. 영원히 떠날 것처럼 잔돈푼을 챙겨 집을 나와 하루 하고도 반나절 만에 집에 전화를 걸어 서울 고모네 왔다고 안부를 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서 철딱서니 없는 아들내미가 정신머리가 들떠서 가출한 줄 알았다고 화를 내면서도 안도하는 깊은 숨소리를 들었을 땐 전화를 걸어주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도망갈 여비를 아끼려는 이유로 그리고 아무데도 찾아갈 데를 모른다는 이유로 고모네서 묵기는 했지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바쁘기도 하고, 너무 오랜만이라 서먹하기만 한 사촌들은 나를 상대해주지 못했다. 고모 내외는 버거운 살림을 위한 맞벌이로 나를 챙겨주지도 내버려두지도 못해 곤란해 하는 눈치였다. 그런 집에서 오래 묵는 보릿자루가 될 순 없었다. 

이틀 만에 고모네를 나와 지리도 모르는 서울 바닥을 배회하고 돌아다녔다. 가능한 도피를 하루라도 길게 늘이기 위해 노력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길도 열리지 않았고 용기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곤 고작 수중에 얼마 없는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 한 끼 컵라면으로 때우고 밤엔 한 데서 자는 거였다. 그러나 사흘째 어둑한 만화방을 찾아내서 밤을 보냈을 땐 집에서 가져온 돈이 거의 거덜나고 있었다. 

나흘째 우연히 찾아낸 공원은 나처럼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처럼 밤마다 퀴퀴하고 어수선해지는 곳이었다. 땅바닥에 골판지 깔고 신문지를 덮어쓰고 노숙을 하는 아저씨들의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간 첫날부터, 자기 자리를 뺐었다고 시비를 거는 아저씨에, 자꾸만 다가와서 쓸데없는 말을 거는 냄새나는 아저씨들 때문에 처음엔 무서웠다. 지저분해서 무서웠던 아저씨들이었지만, 다음날 무료급식소를 알려준 건 고마웠다.

나도 그들처럼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따라다녔다. 특히 공원 안에서도 가장 근래에 삶의 터를 잡았다는 장씨 아저씨라는 사람이 개중 멀쩡해보여서 장씨 아저씨를 제일 열심히 따랐다. 

‘저 아는 어린 게 어쩌다 벌써부터 이 바닥에 들어왔누. 쯧쯧,’

‘보아허니 저 놈도 가출청소년이구먼. 배부른 새끼. 멀쩡한 부모랑 따뜻한 집 놔두고 여기 와서 우리 자리에 개기면 어쩌란 말이야. 저딴 놈들이 무료 급식 타 먹는 건 국세 낭비여, 낭비.’

저런 식으로, 공원 안에서는 제일 깨끗하고 어렸던 나를 향해 듣기 싫은 수군거림들이 큰 소리로 들려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장씨 아저씨는 ‘국세가 뭔지나 알고 국세래? 교회 밥 얻어 먿음서. 글고, 인생이 내리막길 구르는 데 나이가 먼 상관이유. 얘도 지 나름대로 깊은 사정이 있으니 이러고 굴러들어왔을 게지. 안 그러냐?’ 하면서 수북한 수염 사이로 너털웃음을 보여주곤 했다. 그것이 장씨 아저씨의 좋은 점이었다. 나를 흔한 치기로 집 나온 가출청소년 취급하지 않아 준다는 것. 내 인생과 사정을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주는 것 같았다는 것. 

하지만, 그런 장씨 아저씨에게도 따르기 힘든 점은 있었다. 노숙 인생에 접어든 어린 초짜라는 이유로 나를 가엾이 여기는 할머니나 아저씨들이 어쩌다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음식물을 나눠 주는 걸 내가 거절할 때마다 혼을 내는 거였다. 아저씨의 말로는 내가 이 바닥에서 신입이니까 모두랑 잘 어울리고 음식도 가리지 말고 고분고분 잘 받아먹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버려둔 음식물을 가져다 먹고 땅바닥에 누가 피우다 버린 건지도 모를 담배꽁초도 주워서 피우는데, 그런 노력은 죽어도 따라 하기 싫었다.

‘아저씨, 쓰레기 먹고, 꽁초 줏어 피우면 병 걸려요.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랑은 말도 섞지 마요. 난 아저씨가 여기선 제일 멀쩡해서 따라다니는 건데, 아저씨도 저 아저씨들처럼 되고 싶어요?’ 

‘이놈아, 여기까지 들어온 인생이 이놈처럼, 저놈처럼 되기 싫다 따질 인생이냐? 네 말이 뭔 뜻인진 안다. 그치만, 어쩌겠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목숨이 붙은 한은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삶이면 살아야지. 네 놈도 죽을 용기는 없으니까, 이런 공원까지 굴러들어온 거 아니냐.’

장씨 아저씨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깊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해도 살기 위해서 서울로 굴러간 거였다. 어차피 막장 인생, 막가자는 작정을 하고서. 그런 주제에 노숙의 인생으로 접어든 척 하면서 비겁하게 비상금도 가지고 있었다. 고모네 집에서 나올 때 고모의 지갑에서 훔쳐가지고 나온 삼만 원을 쓰지 않고 줄곧 팬티 속에 감추고 있었다. 그 돈이 있는 한, 한 데서 잠들지언정, 주린 허기에 주워 먹는 짓은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런데 일주일간 고이고이 감추고 아껴두었던 비상금은 하루아침에 쏙 사라져버렸다. 날마다 내 옆자리에 눕던 장씨 아저씨가 공원에서 사라졌던 날.

‘아가, 돈 잃어버렸냐? 어째 간밤에 장씨가 더듬더듬 니 엉덩이를 훑는다 싶더만, 난 또 장씨가 딴 맘 품고 니 건드리는 줄 알았지. 히히.’

‘그러게. 나도 그런 줄 알았지. 모처럼 미친놈이 신기한 짓거리 하나싶어서 숨죽이고 눈 말똥말똥 뜨고 있었더만, 장씨가 그냥 얌전히 잠들길래 시시해버렸지. 안 그런가?’

‘후장 안 뚫린 걸 다행으로 알아라. 근데 너 얼마나 갖고 있었냐?’

‘…삼만 원요.’

‘허구야. 그 돈이면 뜨신 여인숙에서 잘 수 있었겠네. 후장 뜷린 게 문제가 아니네. 나 같음, 몸 버리더라도 돈 지키겠구먼.’ 

장씨 아저씨에 대한 배신감보다, 남은 삶에 대한 걱정이 치밀려왔다. 수중에 땡전 한 푼 없어졌으니, 돌아갈 길도 없었다. 이제부터 진짜로 본격적인 노숙 인생으로 접어드는 것인가…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인생 막간다고는 해도, 이정도로 막 될 줄은 몰랐다. 나의 가출은 진지한 계획이 없었으니까.

‘아가, 그만 집에 돌아가라. 저기 파출소 가믄, 순경 아저씨들이 니 집에 가는 거 도와줄 텐데.’ 

쓰레기통에서 누군가 먹다 버린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던 할머니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해결 방도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경찰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가기엔 내 고민이 너무 시시해져버릴 것 같았다. 적어도, 집을 나설 때 나의 각오는 서울 파출소까지 불려온 엄마 아빠에게 혼나면서 귀 붙잡혀 집으로 끌려들어가거나, 삐뽀삐뽀 울리는 경찰차를 타고 귀향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의 고민을 그렇게 우습게 희석시킬 순 없었다.

노숙 생활 일주일 만에 본격적으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잘 연결도 되지 않는 아저씨들이랑 시시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실없이 웃게 되었고, 상한 냄새만 안 나면 음식물도 가리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바닥에서 주워 피우는 꽁초도 서슴없이 한 모금씩 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처음부터 이상하진 않았을 거라는 걸 알았다. 왜냐면 내가 이상해져가는 과정도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 

만약 이런 얘길 해준다면 선중이는 귀한 삶의 체험을 했노라고 칭찬해 주겠지, 놀리겠지. 그러나 정작은 체험이 아니라 막다른 궁지로 몰려간 최악의 회피일 뿐이었다는 걸, 나는 깨우치고 있었다. 

‘아가, 니 집에 전화 해 봐라.’ 

음료수 주워다 준 할머니가 땅바닥에서 주은 거라며 큰맘을 먹고 내게 오백 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었을 때는 가출 열셋째 되던 날이었다. 무심결에 받아들고 인사도 안 한 채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뛰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낸 전화박스 안에 들어가선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망설였다. 애당초 집으로 전화 걸 생각은 없었다. 처음 떠오른 건 미승이의 얼굴이었다. 내가 누른 것은 선중이네 집 번호였다. 

‘희승아, 너 지금 어디야!? 너네 고모네서 말도 없이 나갔다며!? 지금 너네 집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미승이도 난리야! 그 자식이 너 어디 있냐고 나한테까지 찾아와서 뒤집어 놨다구! 나랑 무영이한테까지 말이야! 네가 안 돌아오면 자기 때문이라고 실성한 놈처럼 중얼 중얼 거리는데 보는 내가 미치겠더라. 지금 너 하나 때문에 얼마나 난리 북새통인 줄 알어? 무영이도…’

일분도 안 돼서 오백 원이 떨어지는 동안,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실성한 놈처럼 중얼거렸을 미승이의 모습이 떠오르자마자 가슴 뻐근한 연민을 처음으로 느꼈다. 

너 때문이 아니야. 너도 잘못한 거 많지만, 그거 때문은 아니야. 류미승. 그거 아니니까…….

그래, 적어도 그건 아니었다. 미승이에 대한 미움이 전부 용해된 건 아니지만, 녀석이 괴로워하고 자책하길 바라진 않았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근방의 파출소를 찾아서 뛰었다. 그리고 파출소 안으로 들이닥치자마자 경찰 아저씨들한테 집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했더니, 내 꾀죄죄한 몰골에 미심쩍은 눈을 보내던 아저씨들은 내게 이것저것 캐묻기를 한참만에 우리 집에 전화를 해서 신원을 확인하고 나를 경찰차에 태워 고모네 집까지 태워다 줬다.

정말 원치 않는 경험이었지만 삐용삐용 싸이렌을 시끄럽게 울리던 경찰 아저씨의 심술 때문에 더욱 쪽팔리는 상황 속에 고모네 도착해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고모는 내 몰골을 보고 기겁한 비명을 내질렀고, 그 귀에 지갑에서 훔쳐간 삼만 원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나의 사과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사촌들은 수군거리고 킬킬거리고. 고모부는 별 말 없이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 주었다.

다음날 엄마 아빠에게 귀를 붙잡혀 고향으로 끌려 내려온 건 어쩔 수 없는 결말이었다. 신나게 혼나고 두들겨 맞았다. 도망조차 실패한 탕아를 맞이하는 고향처럼, 엄마는 나를 때리고 품에 안으며 화를 내고 울었다. 아빠는 저녁상에서 술에 얼큰히 취해 내 머리를 한 대 더 때렸다.

오줄없이 짧았던 탈출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나는 결심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기. 미승이를 좋아하기. 하지만, 평생 고백하지 말기. 

“뛰지 마,”

“안 뛰었는데.”

“넌 걸을 때도 뛰듯이 걸어. 그러지 마.”

난 내 걸음이 늦다고 생각한다. 늦어서 자꾸만 조급해진다.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순간들이 무겁고 불안해서 발끝으로 걷는다. 그래도 결국엔 조급함에 밀리는 속도에 비해 언제나 무딘 걸음.

“천천히 걸을게. 너도 빨리 걷지 마.”

우리는 각자 서둘러 걸어왔다. 하지만, 서로 나란히 견준 적이 없었다. 남들보다 앞지른 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천천히 가는 거다.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다시는 혼자서 도망가지 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힘들더라도 천천히 가자. …네가 너무 빨리 뛰어버리면 따라잡기가 힘들어. 이번엔 정말이지… 도저히 널 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주 전. 우연한 발견 하나 때문에 충동적으로 멀리 뛰었다. 멀어봐야 고작 서울이었지만 마음은 천리길을 순식간에 달음질쳤고 남겨진 것들은 모두 어찌되어도 상관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왔다. 튕겨나갔던 충동처럼, 나를 충동적으로 되돌아오게 한 것이 누구였는지 녀석은 모를테지. 낮에 날 쥐어짜듯 끌어안고 떨면서도 그것만은 몰랐을 테지. 이번엔 나를 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떨고 있던 안타까운 녀석의 품에 감겨들면서도 두드리지 못하고 빗겨난 내 독백을. 

이제부터 평생… 혼자만의 고백이 되더라도 좋다. 마음에 솔직하자.

난 미승이를 좋아한다. 어쩌면 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굳어버린 염증처럼 노랗게 남은 증오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덤덤해졌고, 이 애가 날 좋아해주는 게 싫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도 좋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과거를 생각하면, 내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절대로 해명되지 않는 이 감정을 누르고 몰라야했다. 박기수의 일에 대해 모르는 미승은 나보다 자유롭게 과거를 뚫고 나한테 달려올 수 있었겠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용서받고 이해받을 순 없는 거다. 그래서도 안 된다. 난 한 때 분명히 친구로서 미승이를 좋아했었고, 또 한때는 그에게 작은 죄인이었고, 또한 그의 초라한 노예였으며, 동시에 보복자가 되었다. 난 그로부터 우정과 애정, 집착과, 미움과 보복심 모두 주고받았다. 다른 감정을 얹기엔 버거울 정도로, 우리들의 애증은 간단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걸으니까 좋다.”

그랬는데…. 미승은 많은 사연의 갈고리들을 쉽게 풀어헤치고 내던졌다. 가슴 하나만을 움켜쥐고 저가 최선이라고 믿는 이정표만 보며 뛰어왔다. 지독하게 한결같이―.

“미승이 넌, 내가 안 밉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난 네가 미운데.”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녀석이 내려다보는 시선이 내 정수리 끝에 가슬거리게 닿아 있었다.

“나도 널 미워하길 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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