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7)

순전히 내 착각 이었지만. 

“너, 기수랑 한 거 말야…….”

엎드린 채로 내 옆에 가까이 다가온 녀석은 이상한 이름을 꺼냈다. 그리고 내 귀랑 볼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기수’가 누구인지 기억을 떠올리자 얼굴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녀석이 또 그 인간의 얘기를 꺼내올 줄은 몰랐다. 그동안 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히 굴고, 고집도 안 부리고 잘 했잖느냔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그거 나랑도 하자.”

머릿속에서 화약이 터졌다. ‘뭐!?’ 소리도 안 나올 만큼 놀란 입만 벙긋 벌려둔 채 머릿속을 때리고 간 녀석의 말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얘가 뭐라는 거야?’ 하고.

“나랑도 하자고.” 

녀석의 재촉에 정신이 번쩍 뜨이고 입도 트였다. 

“너 미쳤냐!?”

“싫어?”

“싫어.”

“안 그럼 너네 엄마 아빠랑, 너네 할머니한테도 다 이르고 동네 소문 낼 거다. 너랑 기수랑 무슨 짓 했는지.”

“……!”

“작년에 현미 봤지? 걔네 집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해서 나중에 이사 갔잖아.”

녀석은 야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린애 주제에 저런 얼굴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보다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소문나는 거 싫지? 들통 나면 큰일 나겠지?”

“…….”

“그러니까 나랑도 해. 그럼 나도 너랑 같은 비밀이 생기는 거니까, 네 소문 안 낼 거 아냐.”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다. 그 즘에 와선 하얀 집에서의 행위들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이 겨우 파문을 접었는데. 배신감을 알게 되고 무거운 죄의식 속에 뿌리를 내려 깊이 자란 기억을 겨우 겨우 덮어 두었는데… 그런데, 그 흉한 기억을 들쑤시고 들어와 같은 짓을 하자고 말하는 녀석이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안돼…….”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데, 미승의 눈꼬리가 심술궂게 치켜올라가며 그 뒤에 반복될 말을 뻔히 예감시켰다.

“너랑 기수 비밀, 들통 나도 괜찮아?”

입을 벌린 채 웃는 입이 “하악… 하악…” 흉측한 흉내를 내던 어느 날의 어두운 저녁을 연상시켰다. 그날도 이날도, 미승이의 입이 빨간 악마 새끼처럼 보였다.

“싫어… 싫다구……!”

미미한 반발로 매가리 없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선택의 패는 내가 아닌 미승이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 울지 않으려고 꾹 참아봤지만 눈 안에 가득 고이다 못해 넘친 눈물이 윗입술로 툭 떨어졌다. 미승이가 내 얼굴을 잡고 입술을 맞춰왔다. 붉은 입속에서 빨갛게 젖은 혀가 나와서 내 입술을 핥는 동안, 예전에 낚시터에서 붉은색 사과와 딸기맛의 하드를 먹고 있던 입술과 혀를 떠올렸다. 석류처럼 붉어있던 그 입술과 혀가 내 입속으로 번갈아 담겨 들어왔다. 

소문나는 거, 들통나는 거 두려웠지만, 그 보다도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가장 절절한 후회가 들끓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그리 멍청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그리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조금만 더 조심성과 정조관념이 있는 아이였다면, 조금만 덜 탐욕스러웠더라면, 조금만 덜 속물이었다면… 하고 말이다. 대강 그런 식의 후회들을 그 한순간에 몰아서 했던 것 같다.

혀가 혀를 돌려대는 모양이 기수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그러나 아무래도 매우 서툴게 흉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흉내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도 남음이 있는 녀석이었다. 

미승이는 어디서 그런 걸 다 배웠을까? 나랑 기수가 했던 짓을 엿보고서?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거랑, 기수가 또 뭘 했냐?”

“방금 그것도 했으면서…….”

‘다 봤잖아! 다 봤다며! 뭘 가르쳐 달라는 거냐?’ 할 수만 있다면 기를 쓰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어두워서 잘은 못 봤어.”

그럼 녀석은 뭘 봤을까? 어두운 커튼 틈으로 무얼 보고 얼마나 알고서 날 협박한 건지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곱씹어 볼 틈도 없이 미승이가 다음과 같은 소릴 했다.

“현구 삼촌이 이상한 비디오를 자주 봐. 그거 보고 배웠어.”

즉, 미승이는 그 끈적한 입맞춤을 기수와 나에게서 본 것이 아니라, 현구가 곧잘 숨겨놓고 애용하던 에로비디오에서 본 거였다. 연애도 못하는 시골 노총각 현구에겐 방구석에서 시들시들해져가는 혈기를 혼자라도 달랠 거리가 필요했겠지. 그러기엔 때때로 읍내 비디오점에서 빌려다보는 요란한 제목의 비디오만큼 안성맞춤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하필……

조카가 잠든 밤에 몰래 몰래 혼자 놀던 외로운 삼촌이 낮에 산에 가서 새잡고 나물 캐는 동안 조카란 놈은 영악하게 삼촌의 위안 도구를 찾아내서 훔쳐보고 학습을 했다는 것이다. 현구도 그렇지, 어쩜 어린 조카에게 금새 탐색당할 정도로 성인물 관리를 허술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원망스럽다. 기수가 나에게 했던 행위나 미승이가 봤다는 성인 비디오 속의 행위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았다.

히죽히죽 입을 가려가며 현구의 성인 비디오 이야기를 하던 미승이는 막판에 느닷없이 날 한 번 흘겨보고는 다짜고짜 옷을 벗기려 들었다. 녀석이 들어 올리려는 티셔츠의 앞가슴 춤을 쥐어 잡고 놓질 않자, 녀석이 내 손을 할퀴듯이 잡아떼고 기어이 내 허리 아래서 목으로 옷을 훌렁 벗겨갔다. 금방 벗겨진 건 아니고, 몸부림을 치다가 턱과 얼굴 사이에 걸려 들어간 옷이 안 빠져서 한참동안 옷 속에서 머리통을 바둥거려야 했다. 미승이가 그걸 억지로 잡아당겨 뽑아냈을 땐 셔츠의 목선이 구불구불 늘어나 있었고 내 얼굴도 화끈하게 열이 올라 있었다. 

그 기세로 밀어부쳐져 발광을 하는 틈틈이 바지마저 강제로 벗겨졌다. 누가 봤더라면 그토록 꼴사나운 풍경은 없었을 것이다.

팬티랑 런닝셔츠만 남겨놓고 훌렁 벗겨진 날 두고도 미승이는 저도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손으로 머리랑 옷자락만 이리 저리 만지고 또 만지다가 “아, 그렇지.” 하고 뭔가 떠올린 듯 하더니 날 방바닥으로 홱 밀쳐 눕혔다. 그리고 런닝을 겨드랑이까지 걷어 올리고는 젖꼭지를 입으로 물고 핥기 시작했다. 배꼽이랑… 가슴이랑… 목이랑… 입술이랑… 번갈아 돌아다니며 깨물고 핥기를 계속했다. 

보기엔 기집애처럼 여리고 말갛게 생긴 놈이 속은 시뻘겋기 그지없었다. 어린놈이 성인비디오를 보고서 아주 제대로도 배웠다. 만약 그맘때의 나라면 어른의 육체가 범벅이 돼서 뒤섞이는 화면을 보면서 뭐가 뭔지 보고 익힐 정신머리도 없었을 텐데, 아니, 그 살덩어리들을 부위별로 구분이나 할 수 있었으려나 모르겠다. 그런데 미승이 놈은 현구의 비디오를 한두 편 보고 익힌 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체 어느 수위까지 익혔느냐 하면……

갑자기 내 팬티를 훌렁 내리더니 고추를 덥썩 입에 무는 것이었다. 기수도 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은데, 초록색 소파 위에서 흐드러지게 우느라 정신이 없던 내게 실감나는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미승이의 입은 너무도 선명하게 내 번데기만한 고추를 입으로 물고 있었다. 게다가 이빨로 쓸어대고 있었다. 여린 가죽이 송곳니에 쓸리는 아픔 때문에 “아…악…….” 소리를 내자, 그걸 기분 좋아서 내는 소리로 이해했는지 “좋지?” 하고 뿌듯하게 물어오는 것이었다.

“…….”

“안 좋아?”

“…안 좋아……. 아파…….”

“아파?” 

“…으…ㅇ…….”

그러자 조심조심 핥기 시작했다. 미끈거리는 침이랑 뜨거운 입김이 거기에만 묻혀지는 기분이 끔찍하게 더러웠다. 지저분하기야 녀석의 입보다 내 고추가 지저분한 것이지만, 더러운 줄도 모르는지 소변보는 고추를 혀로 할짝거리는 녀석으로 인해 나만 지저분해지는 짓을 당하는 것 같았다.

미승이는 재미가 없어졌는지 하던 짓을 금새 멈췄다. 그리고 이번엔 제 바지를 벗고 내 얼굴 위로 하얀 고추를 디밀며 “내가 해줬으니까 너도 해.”라고 당차게 주문해왔다. 하도 기가 막혀서 막힌 둥 만 둥 돼버렸다.

기수 놈이나 미승이 놈이나 똑같은 짐승들이었다. 둘 다 진짜 싫은 인간들. 억지로 날 복종시키는 인간들. 날 비참하게 만드는 인간들. 그리고… 내 어리석은 과오의 결과물들이었다. 쓰디쓰게 치러지는 죄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에 내가 조금이라도 미승에게 잘 해줬더라면, 녀석의 호의와 접근들을 그리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라는 후회도 소용없었다.

눈물을 뿌리며 미승이의 고추를 입에 물었다. 아마도 기수에게도 그러했던 것처럼,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억지로 담고만 있었다. 미승이의 고추가 물렁뼈보다 부드러울 정도로 약간 몽오리가 지며 도톰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거기까지 만이었다.

녀석은 호기심이 충족되었는지 1분도 안되어 내 얼굴 위에서 몸을 치우고 방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저 혼자 맘대로 해놓고는 뭐가 흡족한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어.”라고 칭찬까지 해줬다.

“이제 옷 입어도 돼.”

힘겹게 일어나 앉아 푸들푸들 떨리는 손으로 바지랑 셔츠를 찾아서 챙겨 입는데 걸린 시간이 여느 때라면 입고 벗기를 두세 번 하고도 남을 만큼 길었다. 진짜 굴욕스러웠다. 너무 힘이 빠져서 화도 못 내고 당하기만 하는 내가 병신 같았다. 

방바닥에 앉아서 훌쩍훌쩍 남은 눈물을 닦아내는 동안 미승이가 앞에 요랑 이불을 한 짐 들고 서있었다. 어느새 하늘색 별 무늬가 들어간 흰 잠옷으로 갈아입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요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개털만큼도 어린애답지 못한 놈이, 너무나 어린애다운 잠옷을 입고 있는 게 어이없고 기가차서 또 눈물이 났다.

“어차피 잘 건데, 뭐하러 옷은 입었냐?”

저가 옷 입으라 해 놓은 소리도 까먹은 모양이었다.

“이제 못살게 굴지 않을 테니까, 그만 자자.”

옷 입은 채로 나를 요 위에 눕게 하고는 이불 하나를 넓게 펼치며 저도 안에 들어와 누웠다.

‘지가 날 못살게 군건 아나보다’ 했었지만 웬걸, ‘이제 못살게 굴지 않겠다’는 말은 다 뻥이었다. 내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면서 나더러도 제 몸을 만지라고 명령을 하는 걸 보면 끝까지 구제불능인 놈이었다. 그리고 제 딴엔 키스에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내 입속에 혀를 넣고 열심히 휘저어오며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또 고추를 만져댔다. 선중이는 이런 놈에 비하면 변태새끼의 새끼의 새끼도 못되는 녀석이었다. 나만 가엾어졌다.

이제 와서 웃어버리자니 슬프고, 울어버리자니 웃긴, 그런 얘기다.

“양말 구멍 났네.”

“알아.”

아침에 까만 양말을 신을 때부터 새끼발가락이 닿는 끝 쪽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 걸 알았다. 실땀이 풀어져서 구멍이 커질 것 같았지만 갈아 신기도 귀찮고 크지도 않은 구멍이라 그대로 신고 학교엘 갔다. 걷을 때마다 자꾸만 발끝에 신경이 몰린다 싶더니 학교 복도에 도착해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려고 운동화를 벗었을 땐 새끼발가락이 완전히 빠져나와 있었던 것이다. 하루의 첫마디를 양말 구멍으로 시작하는 미승이한테 눈도 안 돌리고 실내화 속으로 발가락들을 밀어 넣었다. 지나가던 녀석들 몇몇도 양말에 난 구멍을 보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리고 지나갔다. 

구멍을 뚫고 삐져나온 작고 둥그스름한 새끼발가락이 처량한 내 신세처럼 안타깝기도 하고, 따돌림장이처럼 미워 보이기도 했다. 양말구멍 밖으로 나 버린 놈 어쩔 수 없다고, 속으로 새끼발가락만 타박했다.

“희승이 니 양말에 구멍 났다.”

구멍 난 양말은 학교에서 돌아와 운동화를 벗자마자 할머니한테도 발견당해 버렸다.

“흐이… 저 알젓 좀 봐라. 희승아, 이리 온나. 할매가 양말 꼬매 줄게.”

“싫어, 됐어!”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는 내 다리를 잡아당겨 강제로 양말을 벗겼다.

“그리 다니믄, 새끼발꼬락만 때 탄다. 발꼬락들 다 똑같이 감싸 줘야제. 안 그나?”

할머니는 헤어진 자리에서 삐져나온 내 새끼발가락을 손가락으로 조물락거리다가 서랍장으로 가서 바느질함을 꺼내왔다. 실과 바늘을 꺼내들고는 연신 바늘구멍에 실 끼우기를 실패하면서도 연신 실 끝에 침을 발라가며 침침한 눈 가까이 실과 바늘을 대고서 손을 움직였다. 

“이리 줘봐. 내가 해볼게.”

보다 못해 답답해져서 집어 들긴 했지만, 주의력 없는 어린이였던 내가 좁은 바늘구멍에 실 끼우기를 잘 해낼 리도 없었다. 게다가 실에 비해 바늘이 너무 작았다는 건, 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실과 바늘을 바꿔서 양말을 꿰매 줄 때에서야 알았다.

“미승엄마 어서 와.”

엄마가 바느질을 끝마친 양말을 내 손에 들려주며 미승이네 엄마를 마루로 불러들였다. 아줌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혹시라도 미승이나 내 일이 들통 나서 아줌마가 찾아온 건 아닐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양말을 움켜쥐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은 뒤에 문간 벽에 등을 기대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조마조마하며 귀를 기울였다.

“어제 미승이 삼촌 상견례는 잘 했어? 그래, 사돈될 사람들은 어때?”“어떻긴, 그냥 그렇지.”

마루에 앉아서 얘기 좀 해보라며 나무 바닥을 탁탁 치는 엄마의 손바닥 소리와 ‘에구’ 하며 마루에 걸터앉는 아줌마의 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을 보니, 미승 엄마는 맘에 들지 않았나보네?”

“대단찮은 집안에, 봐줄 것도 없는 딸네미 하나 시집보내면서 은근히 위세를 세우더라고. 시골 노총각한테 시집보내 주는 게 어디냐, 뭐 좀 더 내놔 바라,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니까.”

“어머나,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두 사람이 결혼만 하면 우리가 시내에 아파트 장만 해주고 가게 하나 차릴 준비금까지는 해주겠다고 선보기 전부터 말 해 놨잖어. 그 정도면 해줄 만큼 해주는 건데. 근데도 장인 될 사람은 자기 차가 낡았네 어쩌네 하면서 이거야 원, 사달라고 디미는 눈치더라니까.”

“어머, 웃기는 사람이네. 너무했다. 그 딸이 그렇게 어려? 나이가 얼마나 되는데?”

“그쪽은 스물아홉이야. 아무래도 서른 넘어서 값 떨어지기 전에 부랴부랴 해치우려는 속셈 같아.”

“딱 그런 것 같네. 미승이 삼촌이랑 일곱 살 차이 난다고 쳐도, 어차피 나이 들면 그 나이가 그 나인데. 별로 내세울 것도 아니구만. 여자가 인물은 좋아?”

“딱히 봐줄 것도 없어. 나라면 차라리, 그 여자보다 이 집 희승이를 며느리감으로 얼씨구나 들이고 싶을 정도더라니까.”

“아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남의 집 아들네미 갖고.”

“말이 그렇단 얘기지. 이쁘진 않아도 사람이 인상이 순하거나 참하면 좋겠는데, 여자가 만만찮게 생겼더라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우리 도련님이 좀 무능해서 그렇지 인물은 빠지지 않잖어.”

“그 집 남자들 인물 멀끔한 거야 두 말하면 입 아프지.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젊을 적에 여자들 깨나 울렸다면서.”

중간에 아줌마의 생뚱맞은 소리 한 마디를 빼고는 날 놀래킬 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빠져나올까 기다리는 콩닥거리는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범자의 비밀은 쉽게 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 아줌마와 엄마의 대화는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 이야기로 돌아갔다. 미승이를 임신하고 심한 임신 부작용에 시달려 임신 전보다도 몸무게가 쭉 빠질 만큼 골골했던 아줌마를 미승이네 할아버지가 시골로 불러들여, 그 구두쇠 같은 양반이 돈 한 푼도 아끼지 않고 산부에게 좋다는 약재는 다 구해다가 아줌마에게 지어먹였다고 했다. 얼마나 제대로 먹었으면 몸이 건강해지다 못해 산달에 가까워선 본래의 몸무게보다 20kg도 넘게 늘어서 전혀 딴 사람처럼 두둥실 부풀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날이 차서 뱃속에서 빠져나온 애기는 덜렁 3kg도 안 되는 자그마한 핏덩어리였으니… 

‘저 놈 저거, 사람 꼴이 되려나.’

씁쓸한 한숨과 더불어 ‘기껏 잘 멕여 놨더니, 애는 안 크고 산부만 컸다’고 할아버지가 볼멘소리를 냈다고 했다. 그토록 기대마지 않던 첫 친손주가 미숙아의 모양새로 세상과 할아버지 앞에 나타난 순간, 당신의 실망이 어떠했을지 어림하면서도, 지친 산모에게 들려온 곱지 않은 투정에 아줌마도 마음이 몹시 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한시도 손주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꼴에 고추 달고 태어난 놈이라고 마냥 신통방통해 하며 이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어떤 서운한 소리도 마음에서 지워지더라는 것이다. 모두의 우려를 무시하듯 잦은 병치레도 없이 쑥쑥 모유도 잘 빨고 제 때 제 때 잘 자는 애기를 보며 ‘역시 내 손주여.’라고 흔쾌해하던 할아버지는 뜨거운 방구들에 누워있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연신 ‘아가, 수고했다’를 연발하고, 산후 몸조리와 모유 수유를 위해 잘 먹고 잘 쉬어야 된다는 할아버지의 호들갑스런 성화 때문에 아줌마는 찬바람 한 번 쐬러 나다니지도 못하고 뜨거운 방구들에서 지겹도록 몸을 지지고 지냈다고 했다.

그동안 집안일이며 산모 조리에―본의 아니게―힘쓴 사람이 바로 현구였다고 한다. 형수가 내려와서 ‘모처럼 나도 집안일에서 벗어나서 편한 밥 얻어먹고 살겠구나’ 철딱서니 없는 기대를 품고 있다가, 오히려 기대에 배신당하는 결과를 맞이했던 비운의 사나이 류현구. 할 일 없는 소일거리로 빈둥대던 백수라는 이유로 ‘네 형수 와 있는 동안, 몸보신 잘 시키고, 소홀치 않게 챙겨!’라는 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제 아버지뿐만 아니라, 형수의 밥 수발까지 들고 애기 똥 기저귀도 빨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시 현구의 투덜투덜이 얼마나 집안 곳곳에서 튀어 다녔을지는 안 봐도 눈에 선했다.

그래도 형수가 매 끼니마다 입에 들어가는 미역국에 물릴세라, 쇠고기랑 조개랑 닭고기랑 고등어랑 등등 내용물을 바꿔가며 미역국을 끓이고, 새콤한 동치미랑 열무랑 돌나무 국 김치를 로테이션 해가며 곁들여주는 센스쟁이 현구였다고 하니―.

“젊은 총각이 애 기저귀 빨고, 산모 수발 들어주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일 아니잖어. 그때 일 생각하면 우리 도련님 참 기특하기도 하고… 그러니 도련님 장가가는데 잘 해드려야지.” 

미승이를 낳던 무렵의 수다를 한참을 떨고 난 끝에 아줌마가 한 말이었다. 

급속으로 진행되어가던 현구의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미승이는 “삼촌같은 인간이 장가드는 게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지만, 아줌마의 얘기를 듣고 보니 현구도 그리 가망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내가 들은 이야기만 헤아려 보아도 장가드는 축복 정도는 받을 만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현구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오래 묵을수록 마을 물이 흐려질 거라는 우려도 빼 놓을 순 없었다. 그렇다. 현구의 비디오에서 미승이 자식이 뭘 보고 배웠는지를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아줌마, 현구 삼촌 장가들면 비디오 다 버리라고 그래요!”

방문이 밀쳐지고 느닷없이 끼어든 소리에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던 아줌마 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일을 갖고 쓰잘 데 없는 소릴 한 내가 바보였다.

“엄마, 우리도 이사 가자.”

“뭔 소리래?”

엄마는 주걱으로 밥을 푸는 손동작을 놓지 않고 건성으로 반응했다.

“우리도 현미네처럼 딴 동네로 이사 가면 좋겠다.”

“현미네야 이 동네에 남아 살기 힘드니까 간 거지. 남들 보기 창피해서 떠난 건데 넌 그게 부럽냐?”

“그러게 말야, 걔야 그런 험한 꼴 당하고 사람들이 워낙 뒷말이 많았잖냐.”

형이랑 엄마 하는 소리가 차례로 꽂혀들었다. 나도 이 동네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나도 험한 꼴 당하고 있다고, 자칫 재수 없으면 우리도 나중에 남 보기 창피하게 뒷말 들으며 떠날 사태가 생긴다고… 차마 말 할 순 없었지만. 

“헛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밥알이 순순히 넘어가 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시키는 대로 안하면 미승이는 기수와 나의 일을 떠벌리겠다고 했고, 그러면 현미가 당했던 일보다도 수치스러운 소문거리가 될 거라고 했다. 미승이의 협박은 괜한 공갈이 아니었다. 현미가 오빠들을 좋아해서 살랑거리며 따라다니다 그 꼴을 당했다는 식의 말들처럼, 희승이는 단걸 좋아해서 멍청한 식탐 때문에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다 넘사스런 꼴을 당했다는 소릴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미승이는 현미의 경우는 그나마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기수와 난 ‘더 나쁘고 더러운 호모질’이라는 알아듣기 힘든 말도 했다. 그런 복잡한 말은 못 알아들어도, 어려운 말로 잘난체하는 미승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감각만은 뚜렷하게 솟고 있었다.

아빠가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어, 저거 잠깐 봐요. 재밌겠다.”

형의 말에 멈춰진 화면은 TV에서 AIDS와 동성애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하필, 온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상을 앞에 두고 그딴 게 나오다니…….

“세상에나. 어디 붙어먹을 게 없어서 남자들끼리 붙어먹는데요.”

“다 미친놈들이지, 뭐.”

“에구야… 시상에… 사내들끼리…망조가 들었구먼.”

그러니 TV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의 말이 차례로 쏟아져 나왔을 때, 그것들은 가슴을 쿡쿡 찌르는 화살들이 되어 날아와 꽂혔다. 기수와 내가 했던 행위들이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폄하되고 비난받는 것인 줄 몰랐다. 그들은 설마 이 집의 막둥이가 그 망조가 든 짓을 경험해보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태평하게 남 얘기인양 떠들었을 테니…….

세상이 날 괴롭히려고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성적 일탈(逸脫)이니, 도착(倒錯)이니, 배타적인 성적 관심이니, 소수 인권이니, 사회적 관용이니 하는 등의 말들은 하나도 몰라도, ‘동성애’라는 단어는 뚜렷하게 박혀들었다. ‘남자랑 남자가 좋아하고 뽀뽀하는 건 희귀한 일’이라는 것도, 그 일이 나랑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괴롭도록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술 꽂혀든 건 형의 웃음소리였다.

“크하하, 우리 반에도 남자애들끼리 입술에다 뽀뽀하는 정신 나간 놈들 있어. 지들 말로는 동성애자는 아니래. 그게 지들이 미국식으로 인사하는 거래. 웃겨. 미국 놈들도 그런 인사는 안 하는데 말야. 디게 변태 같은 놈들이야.”

형의 동급생이 정신 나간 놈이라면 난 아예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놈이었다. 무엇보다 형의 입에서 나온 ‘인사’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파는 쇠숟가락 같았다. 미국식 인사라는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가서 같은 남자의 혀와 침까지 받아들인 자신의 동생을 안다면 형은 뭐라고 할까? 복날 개 패듯이 날 팰까? 내 비밀을 안다면 어떤 얼굴로 경악할지, 어떤 외침을 칠지, 어떤 몽둥이로 날 때릴지 알 수 없는 가족들.

게다가 난 비밀의 행위로 인해 미승에게까지 끌려 다니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들킬지도 모른다. 들키게 되면 미승은 기수의 일도 불어버릴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더 큰일이다.

많은 고민들에 휩싸여 밤잠을 한 숨도 이루지 못한 날이었다. 

“미승이 너 자꾸 이러지 마.”

“또 뭐가?”

이번에도 숙제를 같이 하잔 핑계로 날 저희 집으로 데려가서 자꾸만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미승이에게 당당히 해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끼리 만지는 건 미친놈이라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너네 아빠한테 얘기했냐?”

“아니. TV에서 그런 게 나왔어.”

난 미승에게 전날 TV에서 본 동성애 보도의 내용과 그에 대한 가족들 각각의 반응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AIDS라는―그 뜻도, 어떻게 발병되는지도 모르면서―고칠 약도 없는 무서운 병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똑똑한 놈이니, 이만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가 나에게 하는 짓이 얼마나 사회의 소수… 병리… 뭐시기 하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암튼, 그래서 정상이 아닌 거래.”

“그래서?”

얘기를 한참 열심히 듣는 것 같던 미승의 반응은 고작 그거였다. 기대했던 거랑은 달리 똑똑하게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이러면… 우리 둘 다 미친놈 되는 거라고.”

“넌 벌써 미친놈이네? 기수랑도 했으니까.”

“아냐! 그 놈이 억지로 그런 거야.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야. 병 걸려서 죽을지도 모른다니까.”

“근데 넌 어떻게 여태 안 죽었냐? 나중에 죽는 거야? 언제? 할아버지 돼서? 할 말 없지? 거봐, 너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떠든 거잖아.”

"……."

죽을지 모른다는데도 겁이 안 나는지, 내 얘기들을 거짓말 취급하며 놀리는 녀석은 용감한 게 아니라 뻔뻔해 보였다.

"있잖아, 너랑 기수가 한 짓은 더 나빠. 왠 줄 알아? 너네는 어른이랑 애랑 그랬기 때문에, 그건 진짜 범죄야. 엄청 큰 범죄.” 

“거짓말 마!”

“거짓말 아냐. 확인 해볼래? 내가 일러버릴까? 너랑 나랑은 들통 나도 어른들한테 혼나기만 하지 아무도 붙잡혀가지 않아. 그치만 너랑 기수 일은 들통 나면 아주 전국에 난리가 날걸. 기수는 감옥 가고 넌 TV에 나올 거야. TV에 네 얼굴이 커다랗게 나오면서 어른 남자랑 벌거벗고 논 애라고 아나운서가 떠들 거야.”

미승은 저의 의지관철을 위해 아주 그럴듯한 가상 시나리오를 전개시켰고, 난 그 말에 속이 홀까닥 뒤집힐 것 같았다. 진짜로 그렇게 됐다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큰일이었다. 기수가 감옥 가는 거야 내 알바 아니었지만, 내 얼굴이 TV 화면에 크게 떠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날 알아보게 되고 못된 얘기들을 숭숭댈 것들을 상상하자 아찔하게 어지러워졌다. 

기어이 방바닥에 주저앉아 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쁜놈! 너 나쁜 새끼야, 흑 나쁜 놈…….”

“걱정 마. 내가 비밀 지켜주면 괜찮아. 그리고 너랑 나랑은 그렇게 나쁜 짓이 아니야. 넌 이것보다 훨씬 나쁜 짓도 벌써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건 덜 나쁜 짓이야.”

그렇게 협박에다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큰 죄를 저질러버린 내 몸에 하는 제 행위는 이미 죄도 아니라고… 넌 이미 새까맣게 물든 놈이니, 거기에 먹물 몇 방울 풀어봐야 티도 안 난다고. 마치 배 지나간 자리 흔적 없다는 식의… 실로 엄청난 논리였던 것이다. 미승이는 내 몸을 우습게 무시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앞으로 계속 비밀 지키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 들으면 괜찮아. 알았지?”

미승은 울고 있는 날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먹구름 같은 마음에 우울한 안심을 던졌다. 비밀을 나눈 억지 동료에게 이번에도 내키지 않는 의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결혼 하면, 이 방은 나 혼자 쓸 거야. 그치만, 작은 창고 방도 같이 써야지.”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입을 맞춰왔다.

미승이의 말처럼 사람들의 입과 소문이 내게 덤벼들어 날 잡아뜯어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날 밤에는 정말 그런 꿈까지 꿨다. 온통 새빨간 커다란 입이 된 세상이 나를 덮쳐서 씹어 먹는 꿈. 그런데 아무리 씹히고 씹혀도 내가 쪼개지지 않는 꿈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이 두려워 졌다.

불그죽죽한 석양이 저녁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태양이 토해놓은 찌개국물처럼 넘치고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했던 석양은 언젠가부터 내게 시큼하고 쓴맛이 되어 울컥하는 비밀의 고통을 삼키게 했다. 비밀이 더 이상 나만의 비밀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어나간 비밀이 또 다른 비밀을 새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혼자서도 울지 못했다. 자라나는 고통은 내 안의 눈물을 양분으로 삼았던지, 난 메마른 눈으로 석양빛만 꿀꺽 삼켰다. 

두려움이 하나일 때보다 둘이 되었을 때 차라리 덜 슬펐다. 분노는 슬픔을 가라앉혔다. 변해버린 미승이를 향해서도 더는 안타깝거나 미안하지 않았다. 

“어이, 희승아.”

주막거리 가게 앞 평상에서 마을 청년 회자인 방재랑 막걸리를 마시고 앉아있던 현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리 와 봐라.”

책가방을 추슬러 매고 가게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희승이 너, 어디 아프냐?”

방재가 내 얼굴을 보며 묻길래 고개를 가로젓자, 현구가 또 말을 걸었다.

“근데 쬐그만 놈이 얼굴에 웬 수심은 걸고 다니냐? 너 같은 밤톨도 고민이 있냐?”

남의 속도 모르고 빈정대는 현구에,

“꼬맹이도 꼬맹이 나름대로 고민이야 있겄지.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냐? 아니믄, 요새 늬 엄마가 젖 안주냐?”

역시나 남의 사정 모르면서 거드는 방재까지… 두 놈 다 제 맘대로들 떠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하나도 우습지 않은 농으로 얼굴이 불콰해지도록 취해서 실소나 쪼개 나누는 놈팽이들을 보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야, 아가. 미간 펴라. 속 타면 니도 탁배기나 한 잔 해.”

현구가 검지로 내 머리를 떠밀듯 눈썹 사이를 쭉 밀어 펴고는 널찍한 대접에 막걸리를 콸콸 부었다. 현구가 건네준 반 대접 가까이 되는 막걸리를 받아들고 쳐다보기만 했다.

“어이, 어이, 애한테 술 먹이려고?”

“뭐 어때? 난 이놈보다 어릴 때 깡소주로 배웠구만.”

이러면서 현구는 저가 어릴 때 목이 말라 물인 줄 알고 마신 소주 한 대접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남의 집 개를 패다가 혼이 났다는 둥, 제 아버지한테 쌍욕을 썼다가 빗자루로 맞았다는 둥, 별 잡스런 소릴 다 했다. 그동안 나는 양손으로 대접을 기울여 누런 막걸리를 입안으로 주욱 흘려 넣었다.

“아이쿠! 저 놈, 저거……! 진짜로 마시는 거 봐!”

“올커니. 그래 쭈욱―! 시원하게도 들이키네. 맛있지, 희승아?”

못된 현구는 신이 나서 내 등까지 찰싹 소리 나게 투닥이며 칭찬을 했다. 맛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다 마신 후 5초도 안되어 속에서 크르륵 물거품 소리를 내며 트림이 올라왔다. 트림에서 달고 구수한 냄새가 났다. 시큼하고 퀴퀴하기도 했다. 현구가 안주 하라고 총각김치 한쪽을 입에 물려줬다. 빈 그릇을 내려놓고 집으로 발길을 이었다. 

“잘 가라, 희승아! 술 한 잔 더 생각나면 가다가 도로 와라.” 

“저놈, 비틀대는데 괜찮을까?”

현구의 작별인사와 방재의 말소리가 등 뒤에서 흐물흐물 들려왔다. 

총각무 꼬리를 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논길이 흔들려보였다. 도로의 중앙선이 가물가물 눈앞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오르락내리락 했다. 땅이 눈앞으로 자꾸만 달려와서 뒤로 몸을 빼다가 풀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어나서 다시 열심히 걸었다. 여느 때보다 무척 오래 걸려서야 우리 집이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가방도 못 벗고 그대로 방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눈앞이 흔들흔들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엄마가 쿵쿵대는 엄마의 큰 발걸음이 마루를 울리고 있었다.

“학교 갔다 왔으면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해야지, 애가… 아니, 얘가 얼굴이 빨갛네? 희승이 너, 열 나니?”

방문을 열자마자 잔소리를 하다 말고 곁으로 쿵쿵거리고 뛰어와서 이마를 짚었다. 

‘끄윽’

또 한 번 트림이 나왔다. 엄마가 코를 킁킁대더니 큰소리를 쳤다.

“이게 뭔 냄새야!? 너 술 먹었냐? 이게 어디서 술은 처먹고 들어온 거야, 쥐방울만한 새끼가!”

이러면서 나를 일으켜 앉히고 가방을 벗기면서 등을 마구 때렸다. 아까 현구가 술 잘 마신다고 격려하던 손이나, 술 왜 먹었냐고 혼내는 엄마 손이나 맵기는 매 한가지였다. 

다시 겨울이 오고, 한 자리의 눈이 한 줌 이상 쌓이고 있었다.

“할미가 어릴 적에, 눈이 오던 날 우리 어무이 심부름을 하느라 이웃마을 아제네 갔던 적이 있어-.”

할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반복되던 말 머리를 열고 있었다. 수십 년 전 경상도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는 어느 지방의 것도 아니게 이것저것 사투리를 섞어 쓰는 분이었고 내게 당신이 어린 시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면서 겪었던 옛날이야기를 다양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해주곤 했다. 특히 할머니에게서 귀신 얘기를 듣는 재미가 좋았었다.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는 언제나 이웃마을 아제네 심부름을 다녀야 했고, 그때마다 이런저런 귀신을 만났다고 했다. 작고 하얗게 통통거리며 달아나는 달걀을 쫒아가다 논두렁에 빠지고 보니 달걀귀신에 홀렸었고, 동네 어귀 장승나무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여자가 “이리 와” 하고 손짓을 해서 가보니 모가지만 달랑달랑 걸려있었고, 가문비 긴 나뭇가지 아래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린 아기귀신의 대가리가 “캬아아. 나도 데려가” 하며 할머니 머리카락을 끄잡고 울어 대기도 하고…….

무당도 아닌 할머니가 무슨 재주로 그리 다양한 귀신을 보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실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도 귀신 얘기라면 환장을 하는 어린 손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서 주워들은 얘깃거리까지 본인의 이야기인 양 실감나게 꾸며내던 할머니의 거짓 경험담들은 어린 내게 두근거리고 겁난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귀신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고 눈만 빼꼼히 내민 채 열심히 귀 기울여 듣다가, 막상 다 듣고 나선 “할머니. 나, 무서워.” 하고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괜찮다, 희승아. 할매가 귀신 다 봤으니께, 니는 앞으로 귀신 볼 일 없다. 할매가 그 귀신들 다 만나서, ‘우리 희승이 앞에 나타나지 마라’ 하고 얘기 해 두었응께.”

“할머니, 그 귀신들 또 만났어? 전부 다!?”

“하모.”

남들은 일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귀신들을 종류별로 골고루, 두 번씩이나 만났다는 할머니의 말에 겁을 삭히면서 할머니 품으로 파고들던 나였다.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는 소복한 눈 내리는 밤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였다. 눈발이 휘날리는 저녁에 아제네 심부름을 갔다 오는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집이 보이질 않더라는 것이다. 점점 눈발이 휘몰아치고 집이 보이지 않아서 혹여, 딴 마을로 든 건 아닌가 겁을 집어먹고 발도 꽁꽁 얼어가며 세 시간이나 눈길 위를 헤매는데 ‘은령아’ 하고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작은 불빛이 다가왔다고 했다. 할머니의 엄마―내겐 증조할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찾으러 등불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엄마와 불빛이 가까워진 순간, 어느새 그 자리는 이미 할머니의 집 대문앞이었다고 했다. 등불을 내려 비춰보니 집 주변에 수백 번을 돌아다닌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 그것도 두 사람 분의 발자국씩 나란히 찍혀 있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아마도 눈 귀신에 홀렸던 모양이제. 그려도 우리 엄니가 나를 찾을라고 나오지 않았더면, 내 아마 빙빙 집 담벼락만 돌다가 얼어 죽었거나, 거 이상한 발자국이 나를 데려갔을지도 몰르제. 우리 엄니가 등불 들고 나오지 않았으면…….”

그날 할머니의 얘기는 다른 날의 이야기보다 과장이 없고 덤덤했다. 무수한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그날만이 거짓이 아닌, 당신의 진짜 경험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얘기가 무섭지 않았던 건, 내가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고 느끼게 되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해 날 아침, 아빠가 펼쳐둔 전날의 석간신문에는 한 해를 마감하는 내용의 기사가 주로 올라와 있었다. 신문을 읽을 리가 없던 내가 사설에 눈길이 간 것은 전날 뉴스에서 나온 것과 같은 내용의, 나와 무관하지 않는 ‘아동’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1991년의 아동 사건을 돌아보다」

기사의 제목처럼 그 해엔 유난히 아동 사고가 많은 한 해였다. 3월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나간 다섯 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행방불명되어 소식이 감감했고, 두 명의 아이가 유괴되었다가 살해당했고, 서커스 소녀가 감금되어 동물처럼 사육되던 것이 발견되기도 했고, 12살짜리 여자아이가 술집 접대부로 팔려나간 일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관련 사건이 잊혀질 틈도 없이 바쁘게 TV랑 신문을 채워주던 해였다.

그리고 비록 신문기사나 TV 방송은 타지 않았지만, 우리 작은 마을에서도 분명 두 건의 아동 사건이 있었다. 강간을 당한 후 수치심을 못 견디고 마을을 떠나간 현미의 사건이 있었고, 어른들은 아무도 모르는 채 감춰진 나의 비밀도 알려졌다가는 사건이었다.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유감스럽다고 해야 할지, 1991년은 아동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에 관한 비준이 이루어져 9월에 국제법으로 공표되었던 해였고 우리나라도 같은 해 12월 20일자로 발효일이 책정되었다. 그런 내용이 말미에 쓰여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엔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리 없었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법이 어떻든 간에 벌어질 일들은 벌어진다는 것.

끔찍한 사건들의 나열을 읽으며 처음엔 검은 먹물펜을 가져다가 사설에 까만 낙서를 막 그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글자도 빡빡하고 잘 읽히지도 않는 기사를 들여다보며 사건 속의 아이들 이름과 나이만 찾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가위를 가져다가 제법 기다란 사설을 오려서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었다. 

‘나보다 불쌍한 애들…….’

말하자면 위안의 부적으로 삼기로 했던 것이다. 나보다도 큰 불행을 당한 아이들, 무서운 일을 겪었을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내 불행과 슬픔을 덮고 위안을 삼으려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동’이 아니었다. 보호받지 못하고, 아동답지 못한 짓거리들을 치러낸 나는 스스로를 어린 테두리 안에서 빼내야만 했다. 그리고 위안의 부적은, 나와 그 아이들을 다른 존재로 구분 짓고자 하는 강제적인 경계선이었다. 비록 부적에 기대는 마음과, 다짐이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접은 신문지 조각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일어섰을 때,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우리 집에 세배하러 안 오냐?”

대문 밖에서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서 있는 자식은 미승이였다. 

“내가 왜?”

“나도 세배하러 왔으니까, 너도 세배하러 가.”

녀석은 성큼성큼 걸어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우리 할머니랑 엄마 아빠를 찾아서 한데 모으고 있었다. 아무리 새해 첫날이지만,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세배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줌마, 저 세배하러 왔어요.”

미승이 자식의 목소리에 이어, 

“그래, 어서와.”

“아유, 미승인 인사성도 바르고 착하네.”

“아가, 숫기도 참 좋네.”

어른들의 칭찬이 들려왔다. 녀석이 “아줌마,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도 장수하세요.” 간질거리는 목소리로 얌전히 세배를 하고 세뱃돈도 챙겨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볼 때마다 기가 막힌 녀석이었다. 감히 우리 집에 와서 착한 아이 흉내나 내고 가증을 떨다니…….

안방에서 나온 녀석의 손엔 오천원짜리 두 장이 들려 있었다. 내가 세배했을 때랑 똑같이 할머니가 오천원, 엄마 아빠가 오천원을 준 모양이었다.

“이번엔 우리 집에 가자.”

“난 싫어.”

싫다는데도 녀석은 내 손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다.

“뭐가 싫어? 미승이도 와서 세배했는데, 너도 가서 해야지!”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지.”

“그랴, 희승아. 니도 후딱가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절 하고 와야제.”

“야, 너도 가면 세뱃돈 받을 수 있잖아. 나 같으면 당장 가겠다.”

어느새 문간 밖으로 얼굴을 내민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에 이어, 형까지 곤란한 참견을 해왔다. 짜증나게 죽을상을 짓고 미승이의 손에 잡혀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아줌마… 아저씨… 새해 복 많이 받으셔…….”

아줌마와 아저씨를 나란히 앉혀두고 쭈뼛거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넙죽 절을 하는데, 

“야, 이놈아. 복 많이 받으셔가 뭐냐?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글고, 나한텐 절 안 해? 내가 복 받는 꼴은 못 보겠냐?”

옆에서 현구가 킬킬거리며 딴죽을 쳤다. 우리 집 형아처럼, 이집에선 현구가 참견쟁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마지못해 무릎팍만 움직여서 현구 앞에서도 넙죽 엎어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희승이도 복 많이 받아라.”

“올해도 건강하고, 미승이랑 친하게 지내고.”

“옛다, 세뱃돈 받아라.”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데, 현구는 새해 덕담을 내게도 돌려줄 생각은 안하고 큰 인심 쓰듯이 만 원짜리를 한 장 던졌다.

“현구야, 세뱃돈을 던져서 주는 법이 어딨냐? 아무리 애라도 공손하게 건네줘야지.”

아저씨의 나무람에 현구는 바닥에서 다시 돈을 집어 내손에 꼬옥 쥐어주며 “이걸로 장난감 사지 말고 우유나 사먹어라, 희승아. 올해는 너도 키 좀 커야지.”하고 놀려댔다. 하여간에 뭘 하든 마음에 차지 않는 인간이었다. 조금이나마 기쁜 일이 있었다면, 아저씨랑 아줌마도 만원씩 내게 주어서 어설픈 절 두 번에 세뱃돈을 삼만원이나 걷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쁜 일도 있었다.

“엄마, 나 4학년 땐 희승이랑 같은 반 됐으면 좋겠는데. 안될까?”

미승이의 말에 앉은 자리에서 풀썩 뛰어오를 뻔 했다. 그리고 

“반 배정이야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시는 건데…….”

“당신이 애 학교에 담임 한 번 찾아가 봐. 말씀 드리면 고려 해주시겠지. 어차피 반도 두 개밖에 안 되는데.”

조심스러워하는 아줌마를 부추기는 아저씨의 말에 실망했다. 미승이 녀석이 작정하고 건넨 저 말이 무슨 의도인지도 모르면서, 설마 아저씨가 미승이의 지원병이 되어줄 줄은 몰랐다. 그 해 겨울 방학이 끝나자마자 아줌마가 학교로 꽃바구니를 들고 학교를 찾아 온 후, 나랑 미승이가 같은 반이 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자기 부모의 능력까지도 활용할 만큼, 미승이 놈이 권력에 눈뜨고 약아지는 꼴을 눈앞에서 보았던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내 심사가 얼마나 뒤틀리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밤새 깊은 눈이 내렸다. 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혼자서 비닐 자루 포대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혼자서 무덤가의 둔덕에서 눈썰매를 미끄러트리고 놀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아침 산 속에서 들려오는 건 뽀드득 거리는 내 눈 발자국 소리랑 까치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현구 삼촌이 이쯤에 덫을 놓아두곤 했는데.’

언젠가 참새를 잡아 날려주었던 올무 자리가 생각나 나무 숲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 자리인지는 분명치 않아도 그때 미승이가 삼촌의 손을 깨물어 잡은 새를 놓게 하고, 내가 다리 저는 새를 담고 달려가 놓아주었던 기억이 났다. 

어디선가 내 발자국이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숲을 찾아 깊이 들어가 보니 잿빛 토끼 한 마리가 용수철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덫의 에 물린 토끼는 빠져나가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몸부림을 칠수록 털이 꼬이고 살이 짖이겨지고 있었다. 예전에 올무에 걸렸던 참새의 뒷다리도 그랬었다.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죄어들던 매듭 안에서 참새의 뒷다리가 얽매이던 것처럼, 토끼의 뒷다리도 빠져나오긴 커녕, 집게틀 틈에서 발목이 점점 찢어지고 있었다. 그 앞에 주저앉아 흰 눈 위로 빨간 피가 스며드는 걸 내려다보았다. 토끼는 더 겁을 먹고 몸부림을 쳐댔다. 

“또 너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장가들고 시내 아파트로 나가 살면서도 시내 생활과 장사에 취미를 못 붙여서 한 시간 거리의 고향땅을 지겹도록 자주 찾는 현구였다. 

“이번에도 풀어줄라 하면, 삼촌한테 맞는다.”

풀어줄 마음도 없었다. 토끼가 불쌍하다는 마음도 버리기로 했다.

“방해 할 거면 얼른 내려가고, 방해 안 할 거면, 얌전히 있어.”

쇠집게를 올림과 동시에 토끼 귀를 잡고 번쩍 치켜들며 현구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들고 있었다. “이 놈으로 요기나 채워야겠다.”면서. 

현구가 토끼를 잡아들고 목을 따는 순간 양 손으로 눈을 가렸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놀래냐? 아, 이거 참 되게 질기네.”

손가락을 슬며시 벌려 그 틈으로 앞을 보았을 때 날카롭지 못한 칼날이 바둥거리는 토끼의 목을 질근 질근 썰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도로 손가락을 다물었다. 

현구는 토끼의 가죽털을 칼로 잘라 손으로 잡고는 쫘악 털과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냈다. 그리고 뱃가죽을 칼로 갈라 안에 있는 내장들을 끄집어냈다. 피범벅이 된 손으로 눈을 푹 퍼서 토끼의 빈속에 집어넣고 물대신 속의 이물질과 피들을 한참동안 씻어냈다.

거침없이 터프한 야생의 손놀림을 경악하는 내 앞에서 과시하듯 보여주고 있었다. 은근히 멋지고 잔인했다. 마치, 방학 독후감 숙제로 얼마 전에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가 저런 인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어느새 현구는 눈을 쓸어낸 흙 자리에 굵은 나뭇가지 여러 가닥을 깔아두고 내가 가져온 잔가지들을 그 위에 부어다. 그리고 제법 길고 단단한 가지 세 개를 골라 두 개를 땅에 꽂아 세운 후 나머지 하나로 살덩어리만 남은 토끼의 몸통을 길게 꿰었다. 똥꼬에서 눈으로. 털가죽을 벗겨냈기에 망정이지, 토끼의 형제가 제대로 보이는 상태였다면 아마 난 팔을 잡고 오돌오돌 떨었을 것이다. 세워둔 두 개의 가지 마디에 토끼를 관통한 가지를 걸고 나자, 현구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내면서 라이터로 불을 붙여 나뭇가지 위에 올렸다. 

“넌 종이 가진 거 없냐?”

젖은 가지라 금세 불길이 옮아가지 않자 불씨가 더 필요하다며, 종이 같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는데…….”

고개를 젓자마자 나는 바지 주머니에 담고 다니던 부적을 생각해 냈다. 지난해의 아동사건 기사를 모아 써놓은 신문지조각. 하등 소용없었던,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볼 때마다 아픔만 기억하게 되는 부적을 토끼를 익히는 불길 속에 함께 태워버리기로 했다.

“이거요.”

“신문지네?”

“네. 그걸로 태워봐요.”

얇은 신문지가 처음엔 눅눅해서 불이 간신히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나중엔 화르륵 불기운이 옮아가 순식간에 재가 되고, 불씨가 조금씩 커져갔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느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삼촌, 난 프라이데이 할래요.”

“그게 뭔 소리냐?”

현구는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단어를 쉽게 바꿔서 “프라이데이는 조수예요. 내가 조수 할게요.”라고 했다. 프라이데이가 사실은 로빈슨 크루소의 조수가 아니라 ‘하인’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오. 영어로 ‘프라이데이’가 ‘조수’냐? 희승이 영어 잘하네. 니가 우리 미승이보다 더 똑똑한것 같다, 야.”

천만에. 미승이는 나보다 똑똑하고 영어를 더 잘했다. 그래도 멋모르는 현구 덕분에 순간이나마 살짝 내가 똑똑해진 기분도 들었고, 정말로 영어로 ‘하인’이 ‘프라이데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식인종의 노예가 된 흑인을 구해준 날이 ‘금요일’이라서 ‘프라이데이’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동화책 속 문장 같은 건 대충 읽고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무튼, 난 야생 사나이 류현구의 프라이데이가 되어 역할 놀이를 하기로 했다. 현구가 나더러 잔가지를 모아오라고 시키고서 계속 빨간 토끼의 고깃덩이를 닦아내는 동안 숲 주변을 돌며 눈이 덜 쌓인 곳에 떨어진 잔 나뭇가지들을 열심히 모아서 한 아름 안아서 현구 앞으로 나르고 또 날랐다. 그리고 불씨 앞에 앉아 현구가 때때로 부위를 굴려가며 오랫동안 불김에 익히는 토끼를 지켜보았다. 붉었던 살덩어리가 회색으로 익어갔다.

“너도 조금 거들었으니 한 점 맛 봐라.”

고기가 다 익고 나자 현구가 아미나이프로 토끼의 뒷다리 살 한쪽을 잘라주었다. 

“이대로 먹어요? 소금 없어요?”

“새끼, 이건 서바이벌이야. 이런데서 양념 타령은―.”

그러면서 뒷주머니에서 약봉지처럼 삼각꼴로 접힌 종잇조각을 꺼냈다. 그 것을 펼치자 구운 소금이 한 스푼 분량 들어있었다. 저도 기껏 준비를 해 왔으면서 나더러만 양념타령 한다는 건지, 앞뒤가 안 맞는 인간이었다.

회색 소금을 고기 끝에 찍어서 입에 베어 물자 기분 나쁜 맛이 났다. 나무연기 냄새가 배이긴 했지만, 역한 냄새까지 지워지진 않았다. 비릿한 지방분과 덜 씻겨나간 피 냄새, 들큰한 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눈앞에서 토끼 잡는 걸 봤기 때문에 그런 냄새가 나는 착각이 든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먹다말고 도로 현구에게 줘버렸다.

“못 먹겠어요.”

“기껏 해줬더니 쳐 먹지도 않네.” 

현구는 작은 한 절음만 떨어져나간 뒷다리를 잡고 저가 마저 뜯어먹었다. 제 손으로 가죽 벗기고 창자 긁어내고 피를 뽑아낸 고기를 우적우적 잘도 먹었다.

난 아무래도 로빈슨 크루소의 조수는 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사는 세계가 달랐다.

며칠 후에 다시 마을에 놀러온 현구랑 만났을 때, “이눔아, 어째서 프라이데이가 조수냐! 프라이데이는 금요일인데. 너 알려면 똑바로 좀 알아라. 공부 좀 더 해. 알간?” 이러면서 내 머리를 쥐어박고 가는 것이었다. 아마, 미승이 앞에서 아는 척을 했다가 면박을 당한 모양이었다. 지 멋대로 프라이데이를 조수라고 해석해 놓고는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는 현구한테 짜증이 났다. 참으로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태워버린 소용없던 부적을 떠올리며, 다시 ‘아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대로 어린애가 되자……. 성장하지도 말고, 아픔도 안고 가자…….

잊는 노력이 힘들어서, 차라리 잊지 않고 내버려둔 채 고통을 참는 편이 낫겠다고… 눅눅하게 타들어가던 그날의 신문지조각을 보며 결심했다.

봄날의 볕 치고는 무더웠다. 

지난 늦겨울도 봄이 오길 참지 못하고 피어나는 미친 개나리가 있더니, 태양빛도 같이 미쳐가나 보다. 아니면, 지구의 공전 궤도가 지그재그 흐트러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쨍쨍 소리가 날 것 같은 여름 같은 더위가 5월의 아스팔트를 익히고 있었다.

발등 하나 가려줄 낮은 그늘도 없었다. 나무들도 풀들도 베어지고 예전에 흙길이던 곳에 반반한 콘크리트길이 깔린 지 오래다. 수시로 뿌려대는 제초제로 인해 길가의 풀들은 봄부터 노랗게 죽어갔다.

이마에 땀이 솟았다. 낡은 운동화의 때 탄 자리도 억척스럽게 내리쬐는 빛에 삼켜져 하얘보인다. 발길과 함께 바닥을 지치는 운동화 끈만 잿빛 때가 엉긴 채로 줄줄 발밑에 밟혔다 놓였다 하며 쫓아온다.

운동화 끈을 잘 맬 줄 모른다. 어떻게 매듭을 묶어도 곧잘 풀어졌다. 싸구려 운동화라 끈의 재질이 불량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단단하게 잘 묶고 다녀본 적도 없다. 두 번을 꼭꼭 조여 매면 신고 벗을 때마다 귀찮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발등 위로 한번을 조여 묶고 두 줄의 끈을 한데로 모아서 고리로 묶어버리곤 한다. 결국엔 이틀이 멀다 하고 이렇게 풀려나와 바닥을 질질 끌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밑창만큼 땅을 쓸고 다니는 날이 많은 운동화 끈은 재색이 되어 넝마처럼 나달거렸다. 

꼭 나처럼.

무더워진 도로처럼 대문도 볕에 더워져 있었다. 잠금 쇠가 고장 난 대문은 몇 번을 다시 고쳐도 헐거워져 항상 조금씩 입구를 벌리고 있다. 손끝으로만 살짝 밀어도 안으로 끼익― 거리며 수월하게 열렸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왔니?”

엄마는 알록달록 촌스러운 외출복을 입고 초록색 플라스틱 필름을 두른 썬 캡을 쓴 채 방을 나서고 있었다. 

“밖에 안 나갈 거지? 나 정규네 엄마랑 장에 갔다 올 테니까, 넌 나가지 말고 집 지키고 있어.”

“알았어.”

벗어놓은 낡은 운동화를 보며 엄마가 발 옆으로 툭툭 건드린다.

“으이구, 운동화 꼴 좀 봐. 무슨 애가 칠칠맞게 끈을 질질 끌고 다녀. 희승아, 엄마가 장에 가는 김에 운동화 싼 거 하나 사다 줘?”

“됐어. 그냥 신을래.”

“그럼 엄마 나갔다 올게. 집 잘 지켜, 

누가 지키건 안 지키건 가져갈 것도 없을 텐데. 가을 수확 철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이런 시기에 시골에 도둑질하러 오는 머리 나쁜 도둑이 있을까?

김장철을 앞두고는 한밤중에 트럭을 끌고 와서 밭에 뽑아놓은 무랑 배추들을 몽땅 실어 나르는 도둑들이 있어서 1년 내 농사지은 농꾼들의 땀을 피눈물로 얼룩지게 하는 인간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금붙이니 현금이니 묵직하게 쌓아놓지 않는 시골의 가정집에선 훔쳐갈 만한 게 없단 말이다.

『제 형은 예전에 옷이니 운동화니 새 걸로 사겠다고 툭하면 돈 달라고 졸라대더니, 쟨 그지꼴 같은 운동화 잘도 신고 다니네.』

엄마가 낡은 운동화를 또 내려다보는지 방문 밖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화 값 안 나가서 다행이라는 건지, 새 걸 못 사줘서 아쉽다는 건지 애매하게 툴툴거렸다.

내 기억에도 형은 엄마에게 쿠사리를 먹으면서도 툭하면 용돈을 달라고 졸라댔었다. 형은 고등학교 때도 여전히 공부는 안하면서 여자 친구는 부지런히 사귀고 다녔다. 제 몸 가꾸기도 부지런히 했다. 욕 얻어먹은 만큼 받아간 용돈으로 옷 사고, 뿔테 안경이랑 스프레이도 사고, 앞코가 뾰족한 말코 구두도 사 신고 다니면서 촌스런 멋 내기에 힘썼다.

벌써 5,6년 전 얘기다. 당시에도 형의 감각은 유행의 첨단에서 멀어진 후발 주자의 몸부림이었고 지나간 유행을 재차 복구시켜보려는 엉성한 양아치들의 용기였다.

지금의 나더러 그렇게 하고 다니라면 차라리 밖으로 나다니길 포기할 거다. 난 허벅지통 드러나게 교복 바지폭을 줄여 입는 것조차 싫어한다. 최대한 헐렁하게 가려지는 게 좋았다. 덕분에 방금 벗어 걸어놓은 내 교복은 상의건 하의건 품이 커서, 학교에서도 덩치 큰 선배의 교복을 물려받았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새소리를 내는 알람이 좁은 방에 울린다.

알람 단추를 내렸다.

열네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나는 작은 방을 쓰고 있었다. 할머니랑 내가 쓰던 안방을 엄마랑 아빠가 쓰기로 하면서 엄마 아빠가 쓰던 중간 방을 나더러 쓰라고 했는데, 형이 자기 방이 좁다고 우겨서 중간 방을 형이 차지했다. 그 후로 형 혼자 쓰던 방을 내가 갖게 되었다. 불만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방, 고민 없이 훌훌 자라 떠나간 형의 방이 그나마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버들 골 채석장에서 일을 하던 형은 스물한 살이 되던 지난해에 다른 지방에 일자리를 잡아 떠나게 되었다. 집에 살적만 해도 나를 어리광쟁이 막내, 제 몫의 애정을 몽땅 뺏어가는 철부지로 보면서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형이었지만, 마을을 떠나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된 후부터는 형 노릇도 하기 시작했다.

가끔 집에 올 때마다 엄마의 화장품이나 아빠의 안주거릴 사오고 내게는 옷 같은 걸 선물로 사다 줬는데, 형의 옷 고르는 안목은 여전히 촌스럽고 두드러졌다. 내가 그 옷들을 잘 안 입는 걸 알고는 나중엔 ‘네 맘에 드는 걸로 사 입어라.’며 약간의 현찰을 주곤 했다.

그래도 딱히 자주 보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은 오후가 더디게 간다. 특히 이렇게 집에 일찍 돌아와 방에 처박혀 있는 날은.

수건이랑 수영팬티 한 장만 챙겨서 방을 나섰다. 아빠가 몇 번을 고쳐도 고쳐지지 않는 고장 난 잠금 쇠 대신 전선줄 고리로 문을 다물어두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호수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이년간 발길을 끊은 호수에 가서 아직 여름에도 닿지 않은 이른 철에 처음으로 몸을 담그고 싶었다. 지금쯤 가면 삼십분 정도 물에서 헤엄을 치다 올 수 있을 거다. 

정류장을 지날 때 세시 반 버스가 마침 정차하고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점심 먹고 배회하다 오는 아이들의 토요일 귀가 차량 시간이다.

배기통에서 기분 나쁜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차 문이 열리고 선중이가 내렸다. 이어 병식이랑 무영이도 내렸다.

무영이는 주말이라서 모처럼 집에 온 모양이었다. 선중이는 혼자서 뜨악하게 걸었고, 병식이랑 무영이는 선중이를 본체만체하며 앞서 걸었다. 다들 나랑 눈이 마주쳤지만 잠깐씩만 머물고 제 갈 길을 갔다.

병식이만 “어이” 하고 이죽대며 손을 흔들어 보인 게 전부였다.

셋은 각각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내 것과 같은 교복을 고르라면, 무영이가 입고 있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