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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망향(望鄕)(12) (31/31)

30. 망향(望鄕)(12)

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우두머리가 사라진 장안성 내부의 저항이 너무나 거세어 반정군은 공격을 멈추고 그들과 협상 중에 있었다. 장안은 고도(古都)이다. 그것을 무너트리고 종묘를 불태우겠다, 조정의 모든 신하들을 죽이겠다, 반정군의 가족들을 골라 목을 베겠다는 협박은 반정군의 분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공세가 잦아들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장안성 내부의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장안성 내부의 어느 외진 사당에서 두 사람이 몸을 피해 숨어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간 동안 검설린은 크게 앓아야만 했다. 폭탄에 휩쓸린 충격에 그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 멀쩡히 깨어나서 말을 했던 검설린은 고열에 휩싸이고 정신을 한동안 잃었다. 혼절하고 정신을 차리기를 반복하는 그의 곁을 서문윤은 묵묵히 지켰다.

“내가 왜 이런지를 모르겠어.”

고열에 시달리는 사내는 헛소리를 흘리기도 했다.

“내가 왜 이런 일에 매달린 거지?”

식은땀을 흘리며 검설린은 서문윤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흐느낌을 흘리는 사내의 머리 위에 서문윤이 손을 얹었다.

“사실 내가 원한 건 널 데리고 떠나는 거였는데.”

흔들리는 눈이 사내를 향했다. 서문윤은 아이가 된 검설린에 당황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들을 살리려고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았어.”

검설린은 숨을 헐떡거리다가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들개들을 위해서 미래를 던져준 꼴이라니.”

서문윤은 그 순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검설린이 마음속에 묻어놓은 진심이었다.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무수히 많은 말을 고민하다가 그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원래 그들을 사랑했어요.”

검설린은 부정했다. 서문윤은 그의 머리를 쓸어주고 있었다. 흐느낌이 흘렀다.

“아니야.”

“아니, 당신의 행적이 그걸 말해줍니다.”

검설린은 그 말에 차게 웃었다.

“네가 나를 고우군과 다름없다 비난했지 않나?”

서문윤이 침묵 끝에 말을 내뱉었다.

“그랬었지요.”

검설린의 이마를 손으로 꾹 누르며 서문윤이 속삭였다.

“그러나 다른 점이 지금 눈앞에 있군요.”

검설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담한 말이 흘렀다.

“당신은 후회하고 책임을 지려 했어요.”

검설린은 그 말을 긍정하지 않았다. 차게 웃은 사내가 조용히 읊조렸다.

“너는 나를 좋은 쪽으로만 해석한다.”

식은땀을 흘리는 창백한 얼굴을 서문윤이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모르겠구나.”

* * *

서문윤이 중간중간 밖을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식량과 식수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때마다 검설린은 사당에 혼자 남았고 그것을 검설린은 끔찍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을 티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돌아오는 서문윤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런 그를 서문윤은 알고 있었다.

“이 근처에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요. 이 주변은 그래도 안전했는데.”

굳은 얼굴로 사당의 문을 연 서문윤이 입술 밖으로 얄팍한 신음을 흘렸다.

검설린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상태를 깨달은 서문윤은 입술 밖으로 신음을 흘리며 검설린을 향해 다가갔다.

“의형!”

경악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검설린이 흐릿한 눈을 떠 서문윤을 보았다. 서문윤의 손이 환부를 헤치고 있었다. 폭약을 얻어맞은 몸에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이건.”

서문윤의 얼굴이 새하얬다.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이건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울먹거리며 말을 내뱉는 서문윤에게 검설린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의형?”

눈을 감은 사내의 이상한 점을 깨달은 서문윤이 그 순간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야 말았다. 그는 한참을 검설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검설린은 끝끝내 입술을 열지 않았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귓가에 떨어지는 떨리는 목소리를 외면한 채로.

짙은 속눈썹이 열렸다.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내가 이어진 말에 몸을 멈칫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나직한 목소리에 검설린은 잠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건 답을 바라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단지 그의 침묵이 불안하여 서문윤은 아무런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내 인생.”

그러나 뜻밖에도 그 말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엉망진창이었어.”

그것은 서문윤의 몸을 멈칫하게 만든 말이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끝에 서문윤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아니, 사실 진짜 마찬가지인 건 제가 아닌가요?”

“네게 비교가 된다는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실패한 것이다….”

서문윤이 짓는 너무하다는 표정을 검설린은 한 치의 동정도 베풀지 않고 무시했다. 울적해하는 서문윤을 뒤로하고 검설린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신념에 따라 외골수처럼 산다 말을 했지.”

서문윤이 몸을 멈칫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피에 젖은 사내가 그를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쩐지 마음을 짓눌러 서문윤은 숨을 떨고야 말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도대체 내 신념이 어느 거고 무엇인지 구분이 채 가지 않아.”

그건 조소 어린 말이었다.

“나는 도대체 뭘 위해 살아온 건가.”

서문윤이 할 말을 골랐다. 마음속에 거두되는 많은 말들이 있었으나 결국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것은 싱거운 말이었다.

“그래서 후회하십니까?”

검설린은 침묵 끝에 답변했다.

“그래.”

그러곤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서문윤은 그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제가 본 당신은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품에 안고 있는 검집을 쓰다듬으며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가끔씩 이해가지 않는 결정을 내리지만 그래도 인간다웠습니다.”

검설린이 그 말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심코 말을 내뱉었던 서문윤은 의아한 마음에 그를 내려다보고 몸을 멈칫해야만 했다.

“인간답다고?”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고 서문윤이 당혹감을 삼키지 못했다.

“네.”

검설린이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의 혼란을 살피지 않은 채 검설린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인간.”

서문윤은 제가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인간답다고.”

한참 동안 말을 내뱉지 않고 검설린은 그 말 한마디를 반복했다. 서문윤은 결국 또다시 침묵을 지키며 흐릿한 사내의 얼굴을 말없이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검설린의 굳게 다물렸던 입술이 열렸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검설린의 얼굴은 무너져 내려 있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서문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어렴풋이 짐작하는 바는 있지만. 그 마음을, 그 한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검설린은 느릿한 한숨을 내뱉었다.

“이룬 게 없어.”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신음이 흘렀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나는….”

검설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고소가 흘렀다.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식은땀으로 뒤덮인 사내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입술이 열린 채 달싹거리다가 다물렸다. 차마 무슨 말을 하지 못한 서문윤은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한심하단 걸 알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검설린은 입술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 * *

검설린은 고열을 앓았다.

먼지가 가득한 폐사당에서,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하고 뉘인 까닭이었다. 검설린을 따라 의행을 다니던 서문윤은 그것이 환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알았으나 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그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의형.”

“……”

“의형.”

숨을 헐떡거리며 서문윤이 그의 손을 거세게 부여잡았다. 검설린의 손은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서문윤은 자꾸만 미끄러지는 그의 손을 억세게 부여잡을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으니 그저 그를 지탱하려 할 뿐이었다.

“……는.”

검설린의 귀 끝이 새빨갰다. 미끄러지는 손을 꽉 부여잡으며 서문윤이 검설린의 열에 들뜬 얼굴을 쓸어 올렸다. 짙은 속눈썹이 내리깔려 있었다.

“아프십니까?”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서문윤은 그런 생각을 품고 허탈하게 웃고야 말았다. 검설린이 저를 비웃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는 그럴 정신마저 없어 보였다.

“상처.”

문틈 사이를 파고드는 요란한 비명소리를 애써 흘리며 서문윤이 입술을 더듬거렸다.

“상처가….”

손을 놓으면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서문윤은 절박하게 검설린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서문윤이 신음을 흘렸다.

“의형.”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천하는….”

그 순간 몸을 멈칫한 서문윤이 이윽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열에 시달려 초점이 흐릿하던 눈에서 그 순간 어두운 불꽃이 몰아쳤다. 섬뜩한 눈이었다. 보는 이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 만큼. 불안에 사무친 듯 서문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으득, 소리가 나게 검설린의 손을 거세게 움켜쥐고야 말았다.

검설린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환각과 환청에 잠겨 현실을 알아볼 수 없는 듯했다.

음울한 웃음이 흐르고, 힘겨운 목소리가 흘렀다.

“그건… 쓸모가 없는 거다.”

숨을 헐떡거리며. 검설린은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서문윤은 그가 각혈을 할 때 경악을 금치 못해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의형!”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고 그가 축 늘어진 검설린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황급히 그의 뺨을 움켜쥐어 돌린 서문윤이 쿨럭거리는 잔기침 사이에 묻어 나오는 무언가 들끓는 소리를 깨닫고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의형.”

“그건.”

“의형, 지금 당신께서….”

“그건….”

조금 더 의형에게 의술에 대해서 배울걸.

짙은 후회를 삼키며 서문윤이 검설린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헛소리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의형!”

“그건… 그건….”

“정신 차리세요. 의….”

아니, 정말 헛소리인가?

“그건… 정말 하등 쓸모가 없었다.”

미친 듯이 서문윤이 문득 몸을 멈칫했다.

검설린의 활활 타오르는 눈과 눈을 마주한 것이었다. 순수한 증오로 가득 찬 눈을 마주한 순간 입술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문윤은 침묵했고 그런 그의 손을 꽉 부여잡은 채 검설린은 날카로운 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안녕이라!”

그는 과거를 헤매며 현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서문윤은 그 순간 귓가에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심장이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검설린의 손이 돌연 서문윤의 팔뚝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병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악력으로 검설린은 서문윤의 팔뚝을 비틀었다. 서문윤은 고통을 호소하지 못한 채 그와 눈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가쁜 숨을 흘리며 검설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절망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어. 내가 원하는 건….”

서문윤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잠겨 아무것도 내뱉지 않았다. 울음을 참고 있었다. 이유가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나는….”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사내를 마주하며, 그의 밑바닥과 마주하며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먹먹함을 느낄 뿐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 끝에 고소가 흐르고, 음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실패했어.”

피투성이가 된 사내의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서문윤이 고개를 숙여 그의 창백한 이마 위에 입술을 맞추었다. 비릿한 냄새가 흘렀다. 서문윤의 팔뚝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흘렀다. 살갗에 닿는 축축한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피인지 모르겠다.

검설린의 정돈되지 않은 호흡소리를 들으며 서문윤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실패한 게 아닙니다.”

“…….”

“저희는 폭약을 제거했습니다.”

서문윤은 사실 머리가 새하얘져 되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황제와 귀비와 강소성주는 죽었습니다. 세상을 어지럽힌 자들이 죄의 대가를 치렀어요.”

한숨과 함께 서문윤이 속삭였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았습니다.”

사실은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의형.”

“…….”

“우리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서문윤의 팔뚝을 거세게 움켜쥔 손에 힘이 빠졌다. 축 늘어진 손이 사당의 먼지가 쌓인 바닥 위에 늘어지고, 서문윤이 억눌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깊고 무거운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흘렀다.

“악천화와 장안사준이 그렸던 그림은 아니지만… 어쨌든 당신은 해냈습니다.”

서문윤은 제가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서문윤은 손에 닿는 검설린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적막을 깨고 말이 흘렀다.

“사람이 변할까.”

회의감이 짙게 물든 목소리였다.

서문윤은 답변하지 않았다. 느릿한 한숨과 함께 말은 이어졌다.

“세상이….”

그 후로 침묵이 이어졌다.

서문윤은 그저 그를 껴안을 뿐이었다.

검설린은 그의 품 안에서 잠을 청했다 .

* * *

서문윤은 검설린이 정말로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았단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서문윤의 생각보다 몸이 몹시 좋지 않은 상태였다. 고열에 들끓어 환각을 보다가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탕약을 거르신 겁니까?”

검설린이 이지가 완전할 때 서문윤은 결국 울화를 참지 못해 그에게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검설린은 침묵했고, 서문윤은 그에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서문윤은 한숨을 길게 내뱉어야만 했다. 당장에 그에게 말을 쏟아붓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서문윤은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또 다른 감정에 휘말려 입술을 달싹거릴 뿐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요.”

결국 서문윤은 화를 내는 대신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하고야 말았다. 검설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네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서문윤은 그 말을 듣고 문득 기분이 유쾌해져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달라진다던데.’라는 망령된 말을 내뱉을 뻔하다가 간신히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서문윤이 마른기침을 했다.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하려 했다.

민망함을 삼킨 서문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설린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고집이 센 사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서문윤의 얼굴에 측은한 빛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침묵이 흐르고, 그 끝에 말이 흘렀다.

“은위들이 저를 노립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짤막한 말이 돌아왔다.

“안다.”

서문윤은 침착히 말을 내뱉었다.

“문 대주는 저를 위험인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너 같으면 안 그러겠느냐?”

검설린의 말에 서문윤은 할 말을 잃은 채 잠시간 침묵했다. 문천상이 저를 죽이려 한 것이 처음엔 충격이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죄 많은 자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검설린은 그의 침묵에 고소를 흘리다가 중얼거렸다.

“너 때문이 아니다. 만약 네가 나와의 관계가 없었으면 그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

검설린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국엔 또 나 때문… 이 새끼.”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검설린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서문윤은 마지막 말에 이르러 찔끔하고야 말았다.

“왜, 왜요.”

갑자기 검설린의 입술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서문윤은 괜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고야 말았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서문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렀다.

“넌 어쩌면 장안에서도 사고를 치지?”

서문윤은 그 말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 파란만장했던 1년을 회상하며 서문윤이 어색하게 말을 내뱉었다.

“의형을 닮아서 그런 거 같아요.”

검설린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한숨과 함께 말이 흘렀다.

“우리 망했다.”

서문윤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설린의 이마를 쓸며 서문윤이 어색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런 것 같네요.”

짧은 식견으로도 그들의 처지가 위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문윤은 황궁에서 사고를 쳤고, 그가 저지른 일은 악천화와 얽히고야 말았다.

침묵이 흘렀다.

사과를 할까 변명을 할까 고민하던 서문윤이 결국 입을 다물기를 선택하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흘러 덤덤한 목소리가 흘렀다.

“이게 마지막이라면 하는 생각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검설린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 저에 대한 마음이 일말도 없으십니까?”

서문윤이 내색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답변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서문윤은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떨리는 숨결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 고목나무 껍질처럼 죽죽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그래.”

서문윤은 그 말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동요한 사람은 검설린이었다. 그는 서문윤이 느낄 만치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서문윤은 그가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검설린의 몸은 잘게 떨렸고, 마주 닿은 살갗에서 빨라지는 심장소리가 전해졌다.

침묵 끝에 말이 흘렀다.

“어지럽군.”

그 말을 끝으로 검설린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서문윤은 적막 속에서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시간이 흘러 검설린이 갈라진 목소리를 흘렸다.

“만약에 살아남는다면.”

서문윤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나를 버렸으면 한다.”

‘아, 헛소리.’

“각자 잘 살아남았으면….”

서문윤이 입술을 열었다.

“의형.”

그는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흐릿한 눈을 깜빡거리는 사내가 있었다. 서문윤은 몽혼한 눈과 마주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황하에서 제 목숨을 구원했던 사내. 처음에는 그가 태산처럼 강한 사내인 줄 알았다. 황하의 강한 물살에서 저를 살려냈다. 험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행을 나갔다. 신체적 능력은 물론이요, 정신적인 면에서도 강한 사내라 생각했다. 그런 그를 존경하고, 또 두려워하며, 경외했다.

“정말 그걸 원해요?”

그러나 깊게 알게 된 그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서문윤의 속삭임에 검설린은 기나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곤 그끝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서문윤은 말을 묻지 않았다.

* * *

그렇게 밤낮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벌어진 듯했으나 서문윤은 그 내막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폐사당에서 몸을 숨길 뿐이었다. 검설린의 고열은 다행히도 진정되었다. 그러나 서문윤은 상황을 낙관하지 못했다.

목숨이 경각이 달린 상황 속에서 뜻밖에도 서문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검설린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너는 제 정상이 아니니까.”

그에 대한 검설린의 촌평이었다. 퉁명스러운 말에 서문윤은 투덜거렸다.

“너무한 것 아닙니까?”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

“제 곁에 의형이 항상 있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그 말에 검설린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머쓱함에 서문윤이 아래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얼굴은 묘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서문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랬지.”

묘한 어감을 지닌 말을 끝으로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서문윤이 눈을 감으며 적막을 즐겼다.

완전한 적막은 아니었다.

밖에서 고함이 일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비명과 함성이었다.

처음에는 바깥의 상황을 궁금해하던 서문윤은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저 검설린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겼다.

문득 피로함이 몰아쳐 서문윤이 하품을 했다.

멍한 느낌을 받으며 서문윤은 폐사당의 벽에 몸을 기댄 채 늘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살 수 있는 건지, 어찌해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릎 위에 있는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과거를 생각했다.

황하에서 처음 만난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받았던 마음의 위로.

‘언제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하던 서문윤이 문득 이상한 점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몸을 일으킨 검설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달빛이 창문 밖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사내는 고요한 눈으로 서문윤을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면서 침묵했다.

서문윤은 그 모습이 문득 비정상적이게 느껴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검설린은 피투성이였으나 얼굴은 평온했다.

서문윤은 그의 몸 상태에 대해서 묻지 못했다. 왜 그렇게 일어나 앉아 있는지, 걱정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의형.”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괜찮아.”

“…….”

“이제 괜찮다.

검설린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꿈을 꿨다.”

담담한 얼굴에서 서문윤은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검설린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소리가, 난세의 소리가 폐사당의 문틈 새로 스며들었다.

그런 소리를 잠자코 듣던 서문윤이 문득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색색거리는 검설린의 숨소리가 들렸다. 기절한 건지 잠에 든 건지 모르게 사당의 벽에 등을 댄 채 고개를 떨군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서문윤은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러곤 나비처럼 날아갈 듯한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중얼거렸다.

“아, 정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으니 뺨이 흠뻑 젖어 있었다. 서문윤은 저조차 알지 못하는 이유로 눈물을 한참을 흘렸다.

* * *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검설린이 허탈한 웃음으로 답변했다.

“네 부모처럼 죄 없이 죽어 나가는 사람이 없게. 대의를 위해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이. 이 세상에 인(仁)이 바로 서도록.”

검설린이 내면의 소리에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그런 목표를 위해 달렸었지.’

이청융의 환영이 눈에 어른거렸다.

검설린은 고요한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허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변절했다. 사소취대라는 이름하에 연약한 여인을 희생하려 들고, 어둠을 외면했어. 너 또한 그런 나를 알 것이다. 나는 그날의 빛을 잃고 세상과 타협을 하고야 말았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사실은 네가 죽었을 때부터가 아니라 난 그때부터 헤매고 있었던 거야. 내가 뭘 원하는지 잊고 있었지.’

언젠가부터 뜻은 이청융을 황제로 만드는 것이 되어갔다. 검설린의 목표는 그게 전부였다. 그리하여 다른 것을 보지 않고 나아갔다. 태자의 도당으로서 정의로운 태자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죄의 대가를 치렀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나는 주역이 아니었다.’

폐사당에서, 서문윤의 무릎을 베고 누워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인생을 회고하며 검설린은 목구멍에서 솟아오르는 쓴맛을 삼켰다.

니취(泥取).

술에 취해 진흙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양새.

정체를 숨기기 위해 뿌렸던 소문은 사실 그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세상은커녕 살리고 싶은 한 사람을 지키지도 못한 채 그는 폐사당에서, 서문윤의 무릎 위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일은 꼬여 서문윤은 은위의 추격을 받게 되었다.

억눌린 한숨을 내뱉고 검설린이 눈을 감았다.

어린 날부터 이어졌던 기나긴 방랑을 회고하던 사내가 다시 눈을 떴다.

꿈에서 완전히 깨어난 순간이었다.

* * *

검설린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햇살이 눈꺼풀 위를 어지럽혔다.

그는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켰다. 느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일어났냐.”

고개를 돌린 검설린이 마른 인상의 사내와 눈을 마주하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짤막한 침묵 끝에 그가 중얼거렸다.

“운표선.”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흐릿한 눈썹을 깜빡거리며 검설린이 차분하게 기억을 되짚었다.

폐사당에 몸을 피신했지. 폭약에 입은 상처로 고열이 들끓어 환각을 보았다. 간신히 괜찮아졌다 싶었을 때 그만 울화병이 터지고야 말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서문윤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에, 스스로에게 분노한 까닭이었다.

“의형!”

그렇게 다시 각혈을 하고 쓰러지고야 말았는데.

‘살았군.’

깨어나 보니 병상이었다.

검설린이 차분히 운표선을 바라보았다.

강서진의 암습으로 중상을 입었다는 운표선이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잠시간 상황을 파악하려 머리를 굴리던 검설린이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너도, 나도 운이 좋군.”

운표선이 중얼거렸다.

“그래.”

고소와 함께 흐른 말이었다.

“강서진보단 낫지.”

검설린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한숨을 내뱉고 그가 침상 위에 손을 늘어트렸다.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렀다.

“죽 쒀서 개 준 꼴이군.”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결국 이청은이 천하를 가졌다.

그 사실에 후련함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검설린은 한참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던 검설린이 이내 스륵 눈을 뜨고 담담한 목소리를 흘렸다.

“서문윤은 투옥됐나?”

운표선이 답했다.

“아니.”

“그 애는 살려라. 내 목을….”

운표선은 짜증을 부렸다.

“아니라고!”

뭐라는 거야?

검설린은 어지러움에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를 부술 듯한 고통에 미간을 찡그리던 검설린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잠긴 목소리를 흘렸다.

“서문윤이 감옥에 없다고?”

운표선은 헛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넌 왜 인간이 이렇게 극단적이야.”

검설린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청은.”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공황에 빠져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청은을 만나야겠어.”

운표선은 그 말을 정정했다.

“이제는 이청은이 아니지.”

검설린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폐하.”

이제는 그렇다.

운표선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이제는 호칭에 주의하라.”

검설린은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운표선은 그 말에 답변이 아닌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장안사준 중에서 남은 건 너와 나밖에 없지.”

“뭐라고?”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운표선이 말을 이었다.

“네 생각보다 너의 명성이 적지 않았다.”

이어진 말에 검설린은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뿌린 씨앗 또한.”

* * *

반정군과 장안의 공성전은 결국 반정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서문윤과 검설린은 구출되었고, 그들의 처분이 논의되었다.

천자가 된 이청은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겼으나 그들이 장안성 내부에서 폭약을 터뜨렸다는 증언이 나와 막상 그들을 대놓고 보호할 수 없었다.

그때 구명을 위해 나선 것이 황재천이었다.

그는 장한성 내부의 일을 폭로하였다.

악천화와 북성신의의 정체를 천하에 알린 것이다.

천하를 뒤집어놓은 일이었다.

북란에 천하를 구했던 팔기린이 사실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성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너는 모르고 있었더냐. 사람들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 북성을 찾고 있었다. 너를 위한 사당을 짓고 고마움을 드러냈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크게 슬퍼하고 있었다.”

검설린은 공으로 과를 덮었다.

황재천은 소문을 조장하여 그의 사랑하는 의조카와 옛 상관을 살리고자 했고, 운표선은 그가 가지고 있던 세력을 바쳐 검설린과 서문윤을 구명하는 데 힘을 썼다.

“그들은 너를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있었어.”

검설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며, 이런 일에 제가 고마워할 것 같으냐 비소 어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롱의 말에 심기가 불편할 법도 했지만 운표선은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랜 벗을 아는 그는 그저 심드렁히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너를 찾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앞에서 검설린은 한참을 내뱉지 못했다.

“네 7년의 세월은 헛되지 않았어.”

그는 운표선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라고?’

운표선은 아마 저를 위로하려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 말을 하면서, 혹여 제가 또다시 삶의 의욕을 잃을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표선의 의도대로 마음은 흐르지 않았다.

검설린은 도리어 허망함을 느낄 뿐이었다.

‘이렇게 내가 또 살아남았다고.’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의 방향으로 모든 것이 흘렀다. 그러나 검설린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에 휩싸여 한참을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장한성에서의 전율을 상기해내고 그러다가 억눌린 한숨을 내뱉었다.

불타오르기에는 너무나도 늦어버렸지.

운표선은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듯했다. 슬쩍 일그러진 그의 눈가를 검설린은 애써 모른 체했다. 운표선이 그를 위해 상단을 바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검설린은 그러다가 한 청년의 얼굴을 생각하고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그 순간 강렬한 수치심에 휩싸여 검설린이 숨을 멈추었다.

그 때 들려온 목소리였다.

“이제 어찌할 거냐?”

검설린이 고개를 들었다.

‘어찌할 거냐고?’

검설린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이청은을 만나봐야겠다.”

운표선은 말없이 어깨를 뒤로 젖혔다.

검설린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운표선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회하지 마.”

그 말에 검설린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 * *

방화로 인해 불에 타올랐던 대명궁, 그 황폐화된 장소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요란한 말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검설린은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자신전(紫宸殿)으로 향했다.

운표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검설린은 그가 그곳에 있으리란 확신을 얻었다.

그곳은 이청융이 노리던 곳이었으니까.

천하의 주인의 자리.

그곳은 황제의 처소였다.

‘이제는 이청은의 것이 된.’

발걸음을 멈춘 검설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뒷짐을 진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람소리 사이로 잠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자.”

황포가 바람에 흩날렸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게 그리 불릴 날이 올 줄은 몰랐어.”

검설린은 그 말에 한참을 입술을 열지 못했다. 그 또한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사가 이러하다!

허탈한 웃음을 짓는 그를 향해 사내가 몸을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곤룡포를 입은 천자를 바라보며 검설린이 침묵을 지켰다. 군주는 민초의 무례를 탓하지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침묵 끝에 말이 흘렀다.

“모르겠….”

갈라진 음성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나를 살려줄 거냐.”

결국엔 그는 속에 있는 진심을 터놓고야 말았다. 이청은은 유리처럼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인 걸 알잖아.”

검설린은 그 어리석은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왜 모르겠는가?

그건 진실이 아닌 말이다.

이청은은 천자다. 지금은 몰라도 추후에 충분히 손을 쓸 수 있었다. 그럴 만한 힘이, 수완이 그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청은은 그러지 않겠다 단언했고, 검설린은 어쩐지 그의 말을 믿고야 말았다. 검설린이 조용히 읊조렸다.

“서문윤은.”

불안이 스며든 목소리에 이청은이 코웃음을 쳤다.

“그 애를 해칠 생각도 없어.”

그 말에 검설린은 미간을 좁혔다.

“왜지?”

이청은은 잠시간 그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올랐다.”

검설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어쩌다 보니 형님의 천하를 물려받게 되었지만 그걸 잊지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걸 안다.”

한숨과 함께 말이 흘렀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

담담한 얼굴로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고마움도.”

검설린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청은의 말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불신하는 것에 가까우리라.

“강서진이 나에 대한 증오를 꺾지 않을 때 그대는 대의를 위해 몸을 굽혔지.”

그러나 서서히 그의 얼굴에는 혼란이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양보했다. 아니, 정확히는 희생에 가까우려나.”

검설린은 그 대목에 이르러 참지 못해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뭘 하자는 거냐.”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이청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대는 불운한 편이지. 노력에 가까운 보답을 받지 못했어.”

잠시간 말을 고르던 이청은이 문득 입술을 다문 채 검설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말을 내뱉었다.

“바라는 게 있나?”

검설린은 그 말에 되물었다.

“뭐?”

이청은은 어물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한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검설린은 그 말에 한참을 입술을 열지 않았다.

천자의 약속!

천금과도 같은 기회다. 검설린은 이청은을 싫어했으나, 그와 별개로 그가 신용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약속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라.

정말로 지난 세월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말해봐라.”

그러나 검설린은 입술을 열지 못했다.

머리가 새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검설린을 황제는 느긋한 시선으로 마주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잠긴 목소리가 흘렀다.

“집.”

잠긴 목소리였다.

“집을 찾아줘.”

검설린은 유리처럼 투명한 눈으로 이청은을 응시했다. 절박함이 그곳에 있었다.

“정착을 하고 싶어.”

그 말을 내뱉고 검설린은 결국 무너져 내리고야 말았다.

억눌린 숨이 흘렀다.

‘내가 정말 원한 건….’

30년이 넘는 세월간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녔다.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삶은 고되다. 육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을 말하는 거다. 돌아갈 곳은 없었고, 뜻 또한 허상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세월이 길어 이제는 어떻게 그들과 함께하는지 알지 못했다.

운표선은 그의 인생이 헛된 것이 아니라 말을 했으나 검설린은 그 말에 동감하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지?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여, 검설린은 그리하여 진심을 내뱉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외면했던 마음이었다.

“뿌리를 내리고 싶….”

그러나 뜻밖에도 이청은은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이뤄줄 소원이 아니군.”

느긋한 목소리에 검설린이 몸을 멈칫했다.

“스스로 얻어야 할 게 아니냐, 그건.”

검설린은 그 말에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바보 같은 질문에 이청은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빙긋 웃으면서 천자다운 오만함이 드러나게 턱짓을 할 뿐이었다. 고개를 돌린 검설린이 그 순간 숨을 멈췄다.

“의형.”

그곳에는 서문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적이 있었다.

청년이 곧은 시선으로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그 순간 몸을 움찔거리고야 말았다. 시선은 창과 같았고 눈은 감옥과 같았다. 검설린의 몸에서 떨림이 번져나갔다.

‘뭐라 말을 해야 하지?’

검설린은 순간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문윤은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니, 그는 황하에서 만났을 때에 비해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게 묘한 감상을 남겨 검설린은 차마 입술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입술을 연 것은 서문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그 순간 검설린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휩싸이고야 말았다.

저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짧은 침묵 끝에 갈라진 음성이 흘렀다.

“떠나야지 .”

검설린은 힘겨워 보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몸은 가늘게 떨렸다. 서문윤은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의형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적막이 흐르고 잠긴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서문윤은 고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저는….”

검설린은 그의 말을 끊었다.

“나는.”

서문윤이 몸을 멈칫했다. 검설린은 창백한 얼굴로, 조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난 네게 줄 게 없다.”

서문윤의 얼굴이 오묘해진 순간이었다. 검설린은 그러나 그의 안색을 살필 겨를도 없이 말을 이어야만 했다.

“내 몸은 병신이야.”

목소리는 끝이 갈라지고 처참하게 떨렸다. 서문윤은 검설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널 실망시켰어.”

그러나 검설린은 결국 말을 끝맺지 않았다. 그의 새하얀 얼굴에는 절망이 있었다.

서문윤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의형.”

검설린의 몸을 움찔하게 만든 말이었다. 서문윤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저랑 여행 가실래요?”

검설린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그 때 서문윤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항상 서문윤은 검설린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을 했다.

그런데 이건 그중에서도 제일 파격적인 일인 것 같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검설린이 침묵 끝에 입술을 열었다.

“그게 무슨 미친 말이냐.”

이제는 서문윤이 저를 떠날지 말지 선택을 할 것만 남았다. 그리하여 지옥에 내려간 심정으로 서문윤의 앞에 서 있던 검설린은 그의 뜬금없는 말에 미간을 좁히며 그리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문윤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의 느물거리는 웃음을 바라보며 검설린은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돌려 이청은의 얼굴을 바라본 검설린은 그것이 이들 사이에 합의된 내용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도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검설린은 눈썹을 꺾었으나 결국의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뭔 뜬금없는 여행이야.’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방랑은 하기 싫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싫어서 그 싫어하던 이청은에게 처절한 말을 내뱉었는데, 그게 좋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일단은 강북으로 가지요!”

그러나 검설린은 서문윤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서문윤이 떠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서문윤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변하지 않는 검설린을 포기하고 싶다 하면서.

사건이 모두 끝난 후에 결심을 말해주겠다고 한 서문윤을 사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문윤에게 변하겠다 말을 하고서도 결국 그러지 못한 검설린은 서문윤의 결정을 비관하였으므로 차라리 결정을 유예하고자 했던 것이다.

서문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검설린은 이제 그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의형이라 꼬박꼬박 저를 부르며 따라다니던 청년의 강아지 같은 빤한 눈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꽉 막혔다.

“제가 의형이라 불러도 되나요?”

아니, 사실은 지독히 두려웠다.

“당신을 연모합니다.”

그건 고통스럽다, 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문윤이 살린 목숨은 그가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개념이었다.

그럼에도 검설린은 서문윤에게 제 곁에 남아달라는 애원마저 내뱉을 수 없었으니 그저 목구멍에 맴맴 도는 말을 삼킨 채 그를 묵묵히 따를 뿐이었다.

그동안 서문윤이 겪은 고통을 보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이기적인 마음을 드러내겠는가?

그러니 그저 유예를 꾀하며 서문윤의 말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검설린은 하야를 했다.

스스로의 권력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말리는 이들이 병부에 있었으나, 결국 검설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상장군의 자리는 황재천이 이어받았고, 이중환은 어림군을 통솔하게 되었다.

세력의 균형이 짜 맞춰지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으므로 새로 꾸려진 조정에는 하루가 다르게 풍파가 불었으나, 이청은은 뜻밖에도 검설린과 서문윤을 잡지는 않았다.

검설린이야 이청은이 견제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니 그렇다 쳐도, 서문윤은 이청은이 아끼고 아쉬워하는 이였다. 그런 연유로 검설린은 저와 그를 쉽게 놓아준 이청은의 속내를 의심했으나, 서문윤은 그저 의뭉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무슨 꿍꿍이냐.”

검설린의 으름장에 서문윤은 답할 뿐이었다.

“의형.”

그의 빤히 바라보는 눈 앞에서 검설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라고?

검설린은 그 말에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조정은 개판이 되었고, 검설린과 서문윤의 관계는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

신뢰는 없었고, 긴 세월은 허망한 것이었다.

검설린은 그런 제 자신이 형편없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서문윤은 그런 현실이 보이지 않는 듯, 검설린의 마음을 모르는 듯 태연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냥 저랑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속도 좋은 말이었다. 검설린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너 미쳤냐?”

참다 못해 내뱉은 말을 애써 무시하고 서문윤은 검설린을 이끌고 여행을 떠났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검설린은 그가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황하였다.

“의형.”

정확히 말하면 그 근처의 마을이었다.

“여기, 기억하세요?”

처음에 서문윤이 그들의 첫 만남을 회고하려는 줄 알았던 검설린은 그가 망설임 없이 황하 근처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것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을 깨닫고 헛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하성촌.”

검설린이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심기를 얼굴 위로 드러냈다. 서문윤의 얼굴을 쏘아보며 검설린이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너는 쓸모없는 일에 마음을 쏟는군.”

그곳은 서문윤이 검설린의 조수가 되고 처음으로 방문한 마을이었다. 하성촌에선 이질이 돌았었고, 그에 검설린은 서문윤을 하성촌 근처 마을에 묵게 하곤 홀로 왕진을 나갔다.

그리고 서문윤은 악착같이 검설린을 쫓아갔다.

검설린은 어이없어 했으나, 결국 서문윤을 물리지 않았다.

“그래, 네 인생이지.”

죽어도 내 알 바가 아니야.

단지 그가 더러운 꼴을 보고 환자들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일까 봐. 그게 염려되어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서문윤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는 헌신적으로, 스스로의 힘을 다해 검설린을 보좌했다. 서문린의 아들은 그를 몹시 닮아 올바르고 건실한 성품이었다.

그런 그와 함께 여정이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존을 다짐하게 되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

하성촌에 도착하기 직전 검설린은 냉소를 지었다.

“이건 운표선이 한 번 시도한 일이다.”

지금 제 상태가 또다시 엉망이 된 걸 알고 있다. 서문윤이 떠난다는 생각에, 또다시 혼자 버려진다는 생각에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던 검설린은 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그리하여 서문윤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 더욱 날카로운 반응을 내보였다.

“그 또한 나를 알량한 세 치 혀로 위로하려 했으나, 실패했지.”

차갑게 웃으며 검설린이 중얼거렸다.

“나는 변하지 않을 거다.”

이어진 목소리에는 조금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너는 예전처럼 실패할 거다.”

그러나 그 말에 서문윤이 당당히 말을 내뱉었다.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뭐?”

“저는 그냥 의형과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어보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 말에 검설린은 입술을 다문 채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서문윤의 어리석음을 비웃어야 할까. 검설린의 평소 성미라면 그러했겠지만, 검설린은 지금 이 순간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장난으로라도 서문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검설린은 서문윤의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럴 염치가 없어 입술을 다물고 있었지만.

“헉! 북성…!”

하성촌의 사람들은 그들을 반겼다.

내심 그들이 저를 잊었을 거라 생각했던 검설린은 저희의 등장에 호들갑을 떠는 이들을 발견하고 미간을 좁혔다. 하성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환희와 희열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북성! 북성께서 오셨다.”

“어디, 뭐라고?”

“은인께서 왔다!”

검설린은 한숨을 내뱉었다.

서문윤은 그의 옆에서 싱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서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군가가 말을 내뱉었다.

“영공.”

소란이 가시고 하성촌의 촌장이 그들의 앞에 섰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는 기쁨과 감동이 물들어 있었다. 검설린은 그것이 껄끄러워 더욱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우리를 두 번 구하셨습니다.”

하성촌의 촌장은 그리 말을 하며 검설린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검설린은 그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서문윤의 빤한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 * *

“은공! 부족한 게 있으면 말을 하십시오.”

하성촌은 정말로 검설린과 서문윤 일행을 잘 대접하려 들었다. 서문윤은 검설린을 대신하여 그들을 대하면서 재물은 한사코 거절했으나, 마을의 연회에는 참석을 했다. 불편한 얼굴을 한 검설린의 옷깃을 잡아당겨 애써 자리에 앉게 한 서문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자리를 즐겼다.

묵묵히 술을 마시던 검설린은 자리가 파하고 난 후 냉소를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세뇌된 자 같군.”

서문윤을 발끈하게 한 말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다들 미친 게다.”

검설린은 속으로 이 말이 서문윤을 노하게 할까 봐 두려워했으나, 풀린 혀가 움직이는 것을 결국 멈추지는 못했다.

“희망이 없는 자들에게는 구심점이 필요한 법이지. 대부분 그런 건 허상이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였다.

“개중에서도 나를 고르다니 정말 안목이 없구나. 또 언젠가 내게 실망….”

“또 그러시네요.”

낭랑한 목소리에 검설린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결국 치기 어린 아이같이 굴고야 말았다.

“그런 내가 싫으면 네가 날 떠나면 되지 않느냐!”

검설린은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문윤을 바라보았다. 서문윤은 흔들림 없는 호수와 같은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검설린은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를 악물고야 말았다. 말을 내뱉고도 후회하고야 말았다. 서문윤이 저를 떠나는 상상을 하며 검설린은 절벽 아래서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느릿한 숨을 내뱉었다.

서문윤은 강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운표선이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검설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리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그의 팔을 잡아 몸을 지탱해주었다. 사실 그건 썩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였으나, 검설린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살갗이 마주 닿는 순간 마음이 안온해졌다.

숨을 고른 검설린이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이냐.”

서문윤은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그것은 도저히 모를 말이었다.

“그저 의형과 함께한 시간을 되짚고 싶었습니다.”

계곡 물처럼 맑은 눈과 마주하고 검설린이 할 말을 잃은 채 침묵했다.

* * *

그렇게 천하를 돌아다녔다.

서문윤은 검설린과 함께했던 곳을 차례대로 방문하며 기억을 되짚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성촌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나, 검설린을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다른 의도를 품고 검설린에게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검설린이 아닌 소문의 악천화와 그의 조수에게 접근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실망할 거리도 남지 않은 검설린은 그에 서문윤을 비웃었다. 그러다 도리어 그의 빈축만 사고 입술을 꾹 다물어야만 했다.

“의형. 누누이 말하지만, 의형은 후회할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해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지금도 제게 저지른 잘못이 많잖습니까?”

그 말은 추호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그래도 염치는 남아 있는 검설린은 차마 그 말에 항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또다시 개같은 성질 터져 울컥한 마음을 터뜨리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서문윤의 지긋한 시선을 받고 검설린은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어금니를 꽉 깨물고야 말았던 것이다.

돌연 부끄러움이 밀려와 검설린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시선을 피하는 검설린을 서문윤은 한 점의 티끌 없는 맑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 여정의 끝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셨어요?”

그 말이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에 검설린은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메슥거린다. 절벽 끝에 선 듯한 아찔함에 휘말려 검설린은 침묵을 지켰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서문윤은 더 이상 그 화제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저녁에 탕약을 챙겨 드세요.”

대신 검설린이 지독히 싫어하는 다른 화제를 또다시 거론했다. 그것은 검설린이 귀가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인지라, 검설린은 그 순간 또다시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었다.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안 하잖아요.”

검설린은 더 말하길 포기했다.

서문윤은 그런 그의 옷깃을 부여잡고 쫑알쫑알, 이제는 몸을 정말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 북성이 아프면 그게 무슨 황당한 일이겠느냐 말을 걸었다.

“그만해!”

검설린은 중간중간 그리 말을 내뱉었으나, 서문윤은 정말로 입술을 다물지 않았다. 아니, 사실 검설린은 서문윤이 그리 종달새처럼 떠드는 것이 기꺼웠다.

저 목소리가 사라지면 정말 지옥 같겠군.

그리 생각을 하며 검설린이 쓴웃음을 짓고 있던 때였다.

“의형.”

서문윤은 딴생각을 하는 검설린을 바로 알아챘다.

“내 말을 듣고 있어요?”

그러고였다.

“날 걱정해?”

검설린이 마음속에 품은 말을 여과 없이 내뱉고야 만 것은.

‘이런, 개같은.’

말을 내뱉자마자 검설린은 바로 후회하고야 말았다. 뒷목이 뻣뻣하게 서는 느낌에 그가 입술을 깨물며 한숨을 삼켰다.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검설린은 뺨에 와 닿는 따끔한 시선을 애써 피한 채 침묵을 이어나갔다.

서문윤은 시간이 흘러 입술을 열었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난 이후부터.”

시선은 피하고 있었으나 검설린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자그마한 목소리의 끝이 떨렸다. 그것에서는 진심이 묻어 나왔다. 검설린은 순간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파편을 억누르려 어금니를 악물어야만 했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자 얼굴은 도리어 차가워졌다.

떨리는 숨결을 간신히 가다듬고 검설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후회하고야 말았다.

저를 바라보는 서문윤의 얼굴을, 그를 마주한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시선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검설린은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절박함이 마음에 물들고, 긴박함이 쏟아졌다.

‘나는….’

서문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가 내릴 결정을 두려워하면서도 매달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검설린은 결국 입술을 열고야 말았다.

“그럼….”

가지 마.

그 말이 혀끝에 맴돌았으나 끝끝내 검설린은 그것을 내뱉지 못했다.

비참한 심정에 휘말려 검설린이 이를 악물었다. 떨리는 숨결이 흘렀다. 서문윤의 얼굴은 평소대로 돌아와 그 위에 검설린을 향한 걱정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서문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의형.”

검설린이 고개를 돌렸다.

“가자.”

부러 말을 회피하려 검설린이 발걸음을 빠르게 하고, 그런 그의 등을 서문윤이 흘끗 바라보았다. 저를 돌아보지 않는 사내를 서문윤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의형, 같이 가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문윤은 그의 걸음속도에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강소성이었다.

서문윤의 고향.

* * *

강소성에 도착하기 전에 검설린은 우연히 뿔뿔이 흩어진 일족 중 한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청은은 보위에 오르고 동서대란 때 반역의 죄를 쓰고 멸족당한 이들을 복권했다. 그렇게 다시 성을 되찾은 이들 중 한 무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었다.

“의형.”

여행 내내 검설린이 감탄할 만큼 대수롭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던 서문윤이 처음으로 얼굴을 굳힌 때였다.

“어차피 먼 친척이다.”

검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제 옷깃을 잡아당기며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서문윤을 결국 떨구지 못했다.

그렇게 집성촌을 찾은 검설린은 그들의 수장과 만나 조용히 물었다.

“원망하나?”

그들은 검설린에게 환대도 박대도 아닌 술에 물을 탄 것 같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검설린 또한 예상한 일이었다. 검설린의 아버지가 동서대란 때 역적으로 몰려 일가가 애꿎은 고난을 겪었다. 검설린은 그 아비의 자식이었고 그의 적통을 물려받았으니, 그는 그들에게 원망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지 않는 그들에게 관대함을 느꼈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검설린을 비난하지 않았다.

검가의 수장, 촌수로 따지면 검설린의 7촌뻘이 되는 사내는 그리 답변할 뿐이었다. 검설린은 그 말에서 묻어 나오는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의 세월은 원망마저 묻어버릴 만큼 길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일족의 복권에 도움을 준 사내에 대해 고마움을 가지는 듯했다.

“돌아가실 곳이 있는지요?”

그리 말을 하는 7촌의 눈에는 걱정과 호기심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검설린은 제가 걱정했던 것이 모두 쓸모없는 것이었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저를 원망하는 이들은 없다.

검가의 사람들은 저를 다시 받아줄 것이다.

“이곳에 머무시겠습니까?”

그러나 검설린은 그의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할 뿐이었다.

“아니.”

무덤덤한 말을 내뱉고 검설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서문윤이 물었다.

“의형.”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돌아가실 곳이 생겼군요.”

그런 그의 말에 검설린은 목구멍에서 울컥 치솟는 말을 간신히 삼켜야만 했다.

‘그래서 날 떠나겠다고?’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며 검설린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서문윤은 그에게 무어라 말을 했으나, 검설린은 그것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묵묵히 걸음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소성에 도착했다.

* * *

“아버지!”

서문윤은 기뻐하며 서문린에게 달려들었다.

“윤아!”

대문을 넘어 성문 앞에서 자식을 기다리던 서문린은 기뻐하며 자식을 얼싸안았다. 서문린은 울음을 터뜨렸고 서문윤 또한 울먹거리며 제 얼굴을 쓰다듬는 아비의 손길을 받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오고 가는 사람들이 그 신기한 모습을 흘끗거리며 감상했으나, 부자는 수치심을 이기는 감격에 휩싸여 서로를 얼싸안을 뿐이었다.

검설린은 그들의 옆에서 떨어져 그 감동적인 광경을 관람할 뿐이었다. 그는 유리된 세계에 홀로 있는 듯했다. 서문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내를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영공.”

사람들의 시선을 눈치채고 다급히 서문윤을 놓은 서문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싸늘한 얼굴로 서 있는 옛 상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문린이 말을 머뭇거렸다. 그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먼저 입술을 연 것은 검설린이었다.

“미안하다.”

무뚝뚝한 사내의 입술에서 나온 말에 서문린이 몸을 멈칫했다. 검설린은 차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안.”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검설린은 더 이상 입술을 열지 않았고, 서문윤은 서문린의 등을 감싸 쥐고 조용히 속삭였다.

“집으로 가요, 아버지.”

그러곤 고개를 돌려 검설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의형.”

검설린은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들어가요.”

* * *

서문윤은 서문세가의 사랑받는 자식이었다.

서문세가의 모든 이들이 그를 반겼다. 검설린이 검성촌에서 받았던 대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환대가 이어졌다.

서문린의 귀환 이후 사흘 내내 연회가 열렸다.

서문린이 일찍 하야를 했어도 명문세가의 저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근방에서 꽤나 힘을 쓰는 서문세가의 장손의 귀환을 반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서문윤은 사람들의 틈에 있었다. 오로지 서문윤이었다. 처음에 서문윤과 서문린의 손에 이끌려 연회에 강제로 참석해야만 했던 검설린은 결국 염증에 시달려 별채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있으면 싫어할걸.”

서문윤에 항의에 대한 무덤덤한 답변이었다.

“누가 싫어합니까?”

서문윤은 그 말에 반박했다.

“천하를 구한 영웅을 누가 싫어하겠습니다.”

천하를 구한 영웅이라고?

검설린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려야만 했다.

“네 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

그러곤 무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서문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듯 예예, 말을 내뱉고 그가 기지개를 켜며 탁상 위에 엎드렸다.

“탕약은 꼭 챙겨 드세요.”

그리 중얼거리는 서문윤의 말을 검설린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 * *

평온한 나날들이 흘렀다.

서문윤은 가족들과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냈고, 검설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내면에서는 확신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가 없어야만 평안한 삶을 보낼 아이다.’

그리하여 검설린은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준비를 해가고 있었다. 서문윤에게는 집이 있었고, 고향이 있었으니. 이제 제가 퇴장을 해야 할 때임을 예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극히 두려웠다. 평온한 시간 속에서 검설린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한 감정에 휘말려 두통을 앓았다.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아니, 그는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차라리 네 몸이 낫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이 불쑥 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검설린은 스스로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형편없는 사내.’

그러나 그건 생각뿐이었다.

검설린은 그를 잡을 용기도 염치도 없었다.

* * *

“편안해 보이는군.”

어느 날 검설린이 무심한 목소리로 그리 말을 내뱉었다. 늦은 새벽이라 한들 별채로 꼬박꼬박 돌아와 잠을 청하는 서문윤이 게으른 고양이처럼 길게 하품을 하고 침대 위에 몸을 웅크렸다.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이니까요.”

검설린은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빈정이 상하고야 말았다.

“민담의 끝은 가정으로의 귀환이지.”

비꼬듯이 말을 내뱉고 검설린은 바로 후회했다.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꼭 다무는 검설린을 서문윤이 흘끗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곤 그는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검설린은 그가 제게 화를 내기를 바랐다. 답답함에 감정을 터트리길 바랐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고 난 이후부터 서문윤은 끝없는 인내심을 보였다. 그를 철없고 멋모르는 귀공자 취급을 했던 검설린은 어느 순간부터 그와 저의 나이가 정반대가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을 품었다.

침묵은 파국의 전조와 같다.

마치 감정을 정리하는 듯한 서문윤을 향한 두려움을 삼키며, 검설린이 적막을 깼다.

“평안하거라.”

서문윤이 물었다.

“민담의 끝이 그렇다면 당신의 이야기의 끝은 어딥니까?”

검설린은 답변하지 않았다.

“검성촌에 돌아갈 겁니까?”

말을 하기 면구스러워 그는 도리어 짜증을 낼 뿐이었다.

“그게 너랑 뭔 상관이지?”

속으로 스스로의 성격이 정말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검설린이 비소를 흘리고, 그 순간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잠시간 이루어졌다.

서문윤이 침상에서 일어났다.

순간 바뀐 공기를 깨닫고 검설린이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서로가 눈을 마주한 채 시간이 흘렀다. 서문윤은 숨을 들이켜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제가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검설린의 숨이 멈춘 때였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얼음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했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검설린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외면했던 문제를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불꽃을 담은 눈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억누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당신은 후회할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곤 그는 검설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검설린은 창가 앞에 앉은 채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참지 못한 듯 귀 끝을 발갛게 물들인 서문윤이 검설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형!”

서문윤의 손이 검설린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폐부에서 절절히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가 흘렀다.

“이제 제발 그만하세요!”

검설린은 그를 무시할 뿐이었다.

“스스로를 그만 학대하세요. 이제 그만 모든 걸 놓고….”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눈과 마주한 순간, 검설린은 도저히 참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는 모른다!”

“의형!”

등 뒤에 울려 퍼지는 말을 무시하며 그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에 치솟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서문세가를 빠져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 * *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

마음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화가 난 듯 넓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던 검설린은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달렸다. 들끓는 화염이 뱃속에 있었다. 치밀어 오른 말을 삼킨 채 검설린이 이를 까드득 악물었다.

서문윤이, 정확히 말하면 그를 위시한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저를 유람길에 오르게 한 건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검설린을 동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보라고. 네가 한 짓은 헛되지 않았다. 허망한 위로를 하며 살아가라 권유를 했다. 천하를 유람하면서 그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개같은 짓으로… 나를….’

그러나 검설린은 모든 게 환멸이 날 뿐이었다.

‘나를 또 속여….’

세상에 몇 번이고 속았지.

그리고 몇 번을 무너져 내렸다.

서문윤에 의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품었으나 결국 그를 실망시키고 상처만 입히고야 말았다.

“의형!”

이제는 이별만을 앞두고 있는 거지 같은 상황에서 그깟 알량한 술수에 휘말릴 성싶더냐?

그는 그저 절망하고, 또 절망할 뿐이었다.

‘너 없이 홀로 살아갈 준비를 하라고?’

서문세가에서 그와 함께 별채를 쓰면서도 그와 다른 공간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를 둘러싼 환경과 융화되지 못한 기분에, 아니 사실은 이 세상과 별리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내 인생이 그간 가치가 있었으니, 이제 세상을 용서하고 너 없이 살아가라고?’

개같은 소리다!

검설린은 저를 알았다.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30년이 넘는 세월을 헤맸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과 융화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서문윤.

그래, 서문윤 하나와는 그래도 잘 지냈긴 했지.

‘그마저도 결국 포기해버린 인생이군.’

검설린이 정신을 차린 것은 발 디딜 데가 없는 장소에 이르러서였다.

검설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검은 호수가 있었다.

* * *

서문윤이 가쁜 숨을 내뱉었다.

별채를 빠져나간 검설린에 망연함을 느끼고 있다가 그는 몸을 움직였다. 거리를 휘젓고 다녔으나 검설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녘쯤에 그를 찾은 것이다.

서문윤이 침음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의형….”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내는 호수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불안이 치밀어 올라 서문윤은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입술을 달싹거려야만 했다. 검설린이 그곳에 뛰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것마냥 검설린의 말이 흘렀다.

“안 한다.”

“예?”

어색한 목소리로 얼버무린 서문윤이 저를 향한 시선에 몸을 움찔하고야 말았다. 걱정되어 쫒아온 검설린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네 앞에서 그런 짓 안 해.”

그게 더 불안하여 서문윤은 잠시간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을 삼켜야만 했다.

“다행이네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끝에 말이 흘렀다.

“의형.”

검설린은 그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 앞에서 서문윤이 망설이다가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이게 쓸모없는 위로란 걸 안다.

검설린의 마음에 닿지 않을 말임을 안다.

“결과는 이러했고요.”

그러면서도 서문윤은 그리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 앞에서 그는 오늘 또한 정면으로 그에 부딪혔다.

“당신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올곧은 시선이 검설린에게 향했다.

서문윤이 헐떡거리는 숨결을 다잡으며 힘을 주어 말을 내뱉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이를 악물어 내뱉은 말에 검설린은 답변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그런 그에 아랑곳 않고 폐부에서 쏟아져 내리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당신을 향한 마음을 되짚으려 여행을 떠났는데,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제 마음은….”

심연을 담은 듯한 새까만 눈 앞에서 서문윤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놓을 수가 없습니다….”

검설린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곳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물결치고 있었다. 겁 많은 사내. 속으로 생각하며 서문윤이 감정을 토해내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구함받았고, 당신과 함께 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가장 험한 곳에서, 위태로운 시간 속에서 당신과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숨을 들이켜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저는 앞으로….”

그 때였다.

“닥쳐!”

분노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문윤이 달싹거리던 입술을 멈추었다. 날카로운 비소가 흐르다가 사라졌다. 서문윤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사내의 얼굴을 마주했다.

“닥쳐.”

이글거리는 눈이 어둠 속에서 보였다 .

“입 닥쳐라.”

그러나 서문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는 후회할 짓을 하지 말라 했습니다.”

숨을 들이켠 서문윤이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어둠 속에서 눈이 반짝거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숨소리가 거칠게 떨려 풀벌레 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제가 정말 당신을 외면하길 바라십니까?”

답변은 침묵 끝에 돌아왔다.

“그래.”

잠긴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검설린은 고개를 돌려 다시 담수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서문윤을 밀어내는 것처럼 더 이상 입술을 열지 않았고, 그런 그를 서문윤은 잠시간 바라보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의형.”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 같은 목소리였다.

“즐거웠어요.”

시간이 흘러 검설린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서문윤은 자리하지 않고 있었다. 숨결이 멎었다가 다시 흘렀다. 사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검설린이 서문세가로 돌아왔을 때 서문윤은 별채에 자리하지 않고 있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서문린은 중양절을 쇠다가 가라 검설린에게 말을 했다. 검설린은 그 말을 애써 거절하지 않고 서문세가에 남았다. 정확히 말하면 기력이 닳은 것에 가까웠다.

아니, 기력이 정말 없는 건가?

아니면 미련이 남은 건가.

검설린은 잔여한 감정에 미간을 좁히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 그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중양절까지는 보름이 남았고, 그 시간 동안 서문윤은 더 이상 검설린에게 애써 말을 걸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원래 쓰던 방으로 돌아가 검설린을 외면했다.

‘잘됐어.’

고역스럽게 말을 섞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건 검설린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문윤이 오기 전까지.

‘진즉 이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나날들은 검설린이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하지 않았다.

‘진즉 이렇게 떼어놓았어야….’

의형이라 부르며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검설린은 과거를 반복해서 꿈꿨다. 악몽에 시달리고, 일어나서 넋을 잃는 시간이 많아졌다.

탕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별채에 틀어박혀 사람과 격리된 채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중양절이 찾아왔다.

* * *

그날 밤에 폭죽이 터졌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거리에 쏟아져 나와 명절을 즐겼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1년에 둘도 없을 시간을 즐겼다.

그러나 생기가 자리하지 않는 곳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감돌아, 시비들조차 오고 가기를 껄끄러워했다.

서문린은 별채로 찾아와 검설린에게 함께 명절을 쇠자는 제안을 했으나, 그의 한결같은 거부에 꺾여 돌아가야만 했다.

‘이제 마지막이군.’

검설린은 서문세가를 떠날 준비를 했다. 중양절이 끝날 때까지 남겠다 했으니 이제 떠나도 문제가 없겠지.

‘지긋지긋해.’

서문윤이 관리했던 목함을 채우며 검설린이 피로에 찬 한숨을 내뱉었다. 중양절을 맞이한 기쁨으로 들뜬 세가를 몰래 떠날 생각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사라질 생각이었다. 온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떠나 대충 살다가 대충 죽을 요량으로 검설린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짐을 챙겼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하하하!”

무심코 들려온 웃음소리에 멈칫한 검설린이 고개를 들었다. 창문 밖을 바라본 사내가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에 퍼져 나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꽃처럼 피어나는 그것에서 검설린은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기척을 놓치고야 만 것이다.

“예쁘죠?”

검설린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굳어 한참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침묵 끝에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서문윤.”

너는 또 여기에 왜 온 거냐.

검설린은 거의 경탄에 가까운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창틀에 팔꿈치를 댄 채 싱글싱글 웃는 청년이 있었다. 술 냄새가 조금 난다. 미간을 찌푸린 검설린이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 할 그쯤에 서문윤이 입술을 열어 말을 가로챘다.

“보자 보자 하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뭐라고?”

사실 그 말의 뜻이 뭔지 알았으나 검설린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목함을 그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며 검설린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서문윤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검설린은 문득 서문윤의 얼굴이 빛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손에 힘이 빠졌다. 발아래가 꺼지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검설린이 손을 늘어트렸다.

그 때였다.

“못 참겠어서 왔습니다.”

서문윤이 가는 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검설린은 답변하지 않았다.

“탕약 안 챙겨 드셨지요.”

“…….”

“잠도 제대로 안 주무시군요.”

검설린은 네가 뭔 상관이냐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차가운 얼굴로 침묵하다가 그는 문득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내뱉었다.

“너도 참 끈질기구나.”

서문윤은 그 말에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싫으세요?”

싫어?

검설린은 말이 막혀 잠시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싫냐고?’

그렇게 생각했지.

어차피 함께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차라리 완전히 미련을 끊어버리는 게 낫지. 이렇게 계속 다가와서 문을 두드리면 어쩌자는 건가. 검설린은 마음속에서 울컥 치솟는 원망의 말을 삼켰다. 서문윤의 행동은 결국 검설린에게 고통으로 남았다.

“그래.”

그렇게 죽지 못하는 삶이 이어졌다.

“싫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검설린은 창문을 닫으려 했다.

“잠깐!”

닫히는 창을 막는 손길이 없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검설린은 결국 참지 못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고야 말았다.

“뭐 하자는 거냐!”

“아, 잠깐. 잠깐만.”

검설린은 울컥하여 창문을 닫으려 들고, 서문윤은 낑낑대며 문을 열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결국 창문이 부서지고, 검설린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의자에 몸을 늘어트리고야 말았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의 이마에 핏줄이 볼록 솟아 있었으나, 서문윤은 그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오세요!”

소매를 잡아당기며 내뱉은 말에 검설린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래도 명절은 즐겨야 할 것 아닙니까.”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하는 청년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검설린은 몸을 움직였다.

* * *

“뭐 하는 짓이냐.”

서문윤은 검설린을 질질 이끌며 거리를 나섰다. 붉은 등이 걸린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명절을 맞이하는 기쁨에 잠겨 있었다.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고역이라 검설린은 자연 가시가 돋힌 목소리로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 마지막 기억이 그렇게 서글픈 것일 필요는 없잖습니까?”

검설린은 그에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서문윤이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이라고?’

그 때 서문윤이 속삭였다.

“저희 즐거운 명절을 보내요.”

검설린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서문윤의 손길에 이끌려 거리를 돌아다녔다.

* * *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이 즐겁지는 않았다.

검설린은 번잡한 것을 싫어했고 축제는 요란했다.

그러나 소중했다.

“의형! 전갈 꼬치예요.”

도대체 어떻게 된 정신머리인지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서문윤이 신기하다.

“이거 먹어보셨어요?”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신이 나 말하는 서문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검설린이 머리를 흔들었다. 성의가 없는 답변에 실망할 법도 한데 서문윤은 대수롭지 않은 듯 그의 옷깃을 잡아 질질 이끌 뿐이었다.

서문윤은 이름 모르는 극단의 가무희를 관람하려 들었다. 지갑을 챙기지 않아 곤란함을 느끼는 그에 한숨을 내뱉고 검설린은 품에서 은전을 꺼내야만 했다.

“죄송해요.”

머쓱하니 웃는 서문윤에게 한마디 하려던 검설린은, 그러나 제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이끌려 입술을 다시 다물고야 말았다.

“의형, 식사를 하지 않았지요?”

서문윤은 오리구이를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다며 그를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였다. 검설린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했고, 그런 그가 기꺼운 듯 서문윤 또한 과음을 했다.

문제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에 있었다.

“의, 의형.”

“너 내가 작작 처마시라고!”

“달이 두 개로 보여요….”

결국 검설린은 술에 취한 서문윤을 데리고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해롱거리는 그를 부축하여 그가 향한 곳은 일전에 서문윤이 검설린을 발견했던 담수호였다.

* * *

“웩.”

나무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는 서문윤을 검설린이 기가 막힌 얼굴로 바라보았다.

“잘하는 짓이다.”

등을 두드리며 하는 말에 서문윤이 해롱거리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너, 너무해요.”

검설린은 그 말에 차게 웃을 뿐 더 이상 답변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그의 매정함을 투덜거렸으나 그는 “살 만한가 보군.” 말을 내뱉으며 등을 두드리는 손길마저 거둘 뿐이었다.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죽는 줄 알았다며 서문윤이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들려던 때였다.

“왜 그랬지?”

검설린에게서 흐른 말이었다.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던 서문윤이 얼이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예?”

고개를 들은 서문윤이 멈칫했다.

검설린은 담수호를 등진 채 그를 어둑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말을 넘기려던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검설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너….”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몸을 움찔하고 한참을 말을 내뱉지 못했다.

“단 한순간도 즐거워하지 않았잖아.”

서문윤은 그 말에 짧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말을 내뱉었다.

“예.”

씁쓸한 웃음과 함께 흐른 말이었다.

“어떻게 즐거워할 수가 있어요.”

서문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별이 아닙니까.”

검설린은 그를 어두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야.”

그에 서문윤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말했잖습니까.”

“뭐?”

“마지막 남은 기억이 그런 슬픈 게 아니길 바란다고.”

호수 위로 불빛이 반짝거렸다.

그보다 더 밝은 눈이 검설린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검설린은 잠시간 숨을 쉬지 않았다. 다른 의미로 검설린처럼 변하지 않았던 서문윤의 올곧은 눈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숨이 떨렸다.

나직한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

“그냥 그런 마음이에요.”

검설린은 한참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서문윤이 굽혔던 허리를 바로 세우며 그를 바라보는 그 순간,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

서문윤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떨떨한 목소리가 흘렀다.

“두 번 하나 봐요.”

맥 빠지게 만들기 충분한 말이다. 양껏 굳었던 공기가 부드럽게 풀리고, 검설린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또다시 적막이 흘렀다.

담수호 근처에 선 채 두 사람은 말없이 하늘에 터지는 폭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터져나가는 꽃과 같은 불꽃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술이 조금 깨는지 서문윤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온화해져 갔고, 반대급부로 검설린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불꽃이 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끝은 찾아왔다.

* * *

마지막 불꽃의 씨가 하늘에서 흘러내린 때였다.

“의형.”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리고 검설린이 목울대를 떨었다.

“왜.”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내뱉는 이를 서문윤은 잠시간 지그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가세요.”

검설린은 그 말에 헛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저 없이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문윤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가지 마.”

왁자지껄한 거리에서 흘러들어온 소음이 귓가에 가득 찼다.

발걸음이 멈칫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검설린이 멍하게 멈춰 선 청년의 등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떨리는 숨결이 흐르고, 그 끝에 결국 말이 터져 나왔다.

“가지 마.”

서문윤은 우두커니 선 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에 검설린이 언성을 높였다.

“가지 마!”

서문윤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가지….”

조급함에 휩싸여, 절박함에 휘말려 말을 내뱉고 있다. 머리는 뒤죽박죽이었고 숨결은 떨려왔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이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려갔다. 검설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 두려움에 일그러져 있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이 휘청거렸다.

그 때였다.

“가지 마!!”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렀다. 사내의 양 무릎이 지면에 닿았다. 검설린의 몸이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검설린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흐느낌과도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그것은 비명과 절규였다.

“살려줘…. 날 살려줘!! 제발, 제발!!”

검설린이 몸을 비틀거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그를 향해 다가가려 했으나, 결국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이러지 마! 이러지….”

진심으로 호소할 뿐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검설린은 그저 내면의 감정에 사로잡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입안에 번지는 쇠 비린내를 느끼며 검설린이 불공을 토해내듯 처절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천하 따위는 알지 못해! 애초에 천하의 안녕을 원한 게 아니었어.”

시야가 아득해져 눈앞이 암담하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한 건 단 하나였다…! 그날 그때부터 사실 원한 건 하나였어. 천하의 안녕이고 인이고 상관이 없었어. 이청융에게 거둬진 그때부터 사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서문윤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피를 토하는 음성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살고 싶었다!”

진심을 쏟아냈다!

검설린이 흐느낌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어! 그냥 살아간 것뿐이야. 살고 싶었어. 그냥 살고 싶었어. 다른 길이 없었어. 나는 그저, 그저….”

천하고 뭐고 그게 무슨 소용이지?

“나는, 나는….”

말이 헛돌았다. 땅이 젖어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흐느낌이 짙어져 갔다.

꺽꺽대는 울음 사이로 비로소 진심이 터져 나왔다.

“그냥 살고 싶었어. 그냥, 그냥 그것뿐이야.”

호숫가의 젖은 흙에 엎드린 채 사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삶을 원하지 않은 게 아니야. 죽음을 원한 게 아니야.”

서문윤이 고개를 돌려 느릿한 숨을 흘렸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가슴을 토성처럼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처절한 흐느낌이 이어졌다.

“나는 너랑 함께 영원히 살고 싶어. 너랑 함께하고 싶어.”

검설린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보였다. 서문윤이 숨을 들이켰다. 머리를 쥐어뜯는 사내의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고였다.

“제가 없으면.”

검설린이 목울대를 떨었다.

“제가 없으면 죽을 겁니까?”

서문윤이 다시 물었다.

“그때 호수에서 죽을 생각을 품으셨습니까?”

검설린은 비로소 진심을 말했다.

“그래.”

서문윤은 그를 영혼을 꿰뚫는 눈으로 잠시간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검설린은 그의 눈과 마주한 채, 홀린 듯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널 사랑하게 됐으니까.”

그 말이 끝이었다.

서문윤은 그 순간 눈물을 흘렸고, 그런 그를 검설린은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의형.”

저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서문윤을 검설린이 받아 들었다.

“아, 의형!”

제 몸을 끌어안는 서문윤을 넋을 잃고 방관하던 검설린이 문득 손을 움직였다. 제 어깨에 눈물이 번져나가는 눈을 비비는 그를 떨리는 손길로 끌어안으며 검설린이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 떨림이 잦아들고 평화가 마음에 내려앉고 있었다.

아니, 평화가 아니라 그것은 사실….

“기다렸어요.”

울음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기다렸어요.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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