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망향(望鄕)(11) (30/31)

29. 망향(望鄕)(11)

근 3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가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역량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서문윤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이 보였다.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하며 서문윤이 검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이 일만 끝나면 정말로 낙향할 수 있겠어.’

문득 다리를 다치고 낙향하던 때를 떠올리며 그가 웃음을 흘렸다. 그때 낙향을 시도해서 벌써 몇 년째 헤매고 있는 거야?

결국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귀향길이 멀고멀군.’

비밀통로 밖으로 나선 서문윤이 황궁 성곽의 산길을 밟았다. 귀비는 험한 산길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올랐다.

작은 산길을 둘러 내려가 수도 내의 이가포목점에 들르려는 것이었다. 이가포목점은 대대로 비단을 파는 곳이었는데, 그 주인은 제가 태자와 관련된 걸 모르고 있었다. 점주의 아내 집안의 사람이 태자와 연이 닿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태자의 사람인 그는 일찍이 수도에서의 혼란을 염려하여 포목점에서 성문 밖으로 이어지는 땅굴을 팠었다.

그곳으로 서문윤은 향하려던 것이었다.

‘거리로는 가지 못한다.’

황실에 몸을 담은 적이 있어 황군이 경계를 어떻게 서는지 정도는 잘 알았다. 야간이라 하더라도 대로는 순찰의 눈을 피하기 힘들었다. 아니, 대로가 아니라 쪽길을 통해 가더라도 사람의 눈을 피하기 힘들다.

황궁의 뒷산은 인가와 절벽으로 마주 닿아 있어서 순찰이 적은 편이었다. 아무리 규율이 엄중한 금위군이라 한들 절벽을 통해 사람이 넘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말이었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는 없지 않는가?

‘대신 도구를 쓰지.’

절벽에 이르러 귀비의 몸이 멈칫했다. 멱리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듯해 서문윤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속인 게냐?’라는 말을 하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서문윤이 침착히 응대했다.

“속인 게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그래? 몰래 나를 고문하려는 건 아니고.”

서문윤은 더 말하지 않고 절벽의 한켠에 있는 바위를 움직여 그 아래 커다란 추가 달린 밧줄을 꺼냈다. 귀비의 흥미로운 시선 아래 벌어진 일이었다. 서문윤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쇠고리가 달린 말뚝을 찾고 그곳에 추가 달린 밧줄을 낀 것은.

“재밌는 일을 벌였군.”

“제가 그래도 태자 익위였습니다.”

절벽은 경사가 급하지만 그다지 높은 위치는 아니었다. 어둠을 틈타고 충분히 내려갈 수 있었다. 서문윤이 고 귀비를 옆구리에 낀 채 절벽에서 내려가고, 밧줄을 손에서 뗐다. 끝이 추가 달린 밧줄의 다른 쪽이 빠르게 하강했다. 서문윤은 밧줄을 절벽에서 완전히 제거하곤 발걸음을 뗐다.

“황제의 여자에게 손을 댔으니 즉참이구나.”

“황제를 죽이신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벌한 농담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던 무렵이었다.

바로 가장 위험한 부분을 들키지 않고 끝낸 서문윤이 내심 안도하고 있을 무렵의 일.

‘혹여 태자전하가 따로 말씀을 하지 않았겠지? 그들이 귀비를 빼돌리는 일을 거부한다던가.’

이가포목점에서 태자의 하수인들에게 할 변명을 생각하던 서문윤은 그 순간 불현듯 귓가에 울리는 소음을 듣고 발걸음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귀비를 끌어당긴 서문윤이 그녀의 입술을 막고 헛간 뒤에 숨었다.

그리고 바로 인기척이 골목으로 스쳐 지나갔다.

서문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 때였다.

‘무인이다.’

발걸음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운 이들이란 소리였다. 소음이 심하게 나지 않고 인기척이 작다. 두 명 내지 세 명 정도 될 법한 인간이 골목을 수색한다라?

그 순간 서문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들켰구나!’

그리고 그 때부터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서문윤은 귀비를 피해 골목 구석구석을 피해 다니며 이가포목점을 향해 가려 했다.

‘젠장!’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서문윤의 이마에 땀이 서렸다. 홀로 도망을 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건만 지금 그는 귀비를 보호하기까지 해야 했다.

점점 더 이가포목점과 멀어지는 것을 깨닫고 서문윤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누가 사람을 푼 거지?’

그리고 그의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기나긴 술래잡기 끝에 무사들이 초조해졌던 것이다.

“절벽 쪽에 인기척이….”

“하 대인께 당장 알려라! 쥐새끼 같은 놈. 어디까지 도망을 칠 수 있나 보자.”

‘하 대인?’

그 순간 귀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중서령이 배신을 했구나.”

서문윤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귀비는 냉소를 짓고 있었다. 서문윤의 얼굴에 순간 동요가 스쳤다.

‘중서령이라면.’

재상급의 인사다.

당황하는 그의 귓가로 그녀의 조롱 어린 말이 이어졌다.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유가의 큰 맥을 이었다곤 하지만 까마득히 어린것이 황제를 손에 움켜쥐고 권력을 독점하니. 하 대인이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으리라.”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잠시간 입술을 다물었다.

“원래부터 권력욕이 드글드글한 인간이었다. 강서진이 태보가 된 후 중서령의 관직과 공작의 작위로 회유를 했지만, 결국 대세를 타나 보구나.”

냉소적인 말에는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귀비를 묵묵히 바라보며 서문윤이 마음속 생각을 잠시간 정리했다.

‘생각보다 거물이 붙었구나.’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는 서문윤을 잠시간 바라보던 귀비가 이내 중얼거렸다.

“네가 곤란하겠구나.”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괜찮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 탓이었다.

“그리고 너도 괜찮겠지.”

서문윤이 눈을 흔들었다.

‘뭐라고?’

경직된 청년의 눈이 귀비에게 향했다. 멱리 사이의 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귀비는 그저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나를 살리려는 이유가 태자를 살리고 천하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었다면 이걸로 충분할 텐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자각하고 계십니까?”

“나는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애초에 그게 네 감정에도 맞는 것이 아니야?”

서문윤이 신음을 흘렸다.

귀비가 짤막히 말했다.

“지금 내가 해를 입어도 달라질 건 없을 텐데.”

귀비는 저를 내어주라 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위해서 원수인 자를 징벌하길 포기했다면. 지금이 기회라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문윤은 귀비의 수하들이 강서진에게 의탁을 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재상급의 인사가 도망치는 귀비를 사로잡으려 사람을 풀었다. 이 상황에서 귀비가 손을 쓸 수 있는 일은 드물었다.

‘허나….’

서문윤이 잠시간 귀비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저는 강 대인께 약속을 했습니다. 당신에게도요.”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의 이런 화법에는 익숙하다고.’

저를 시험하기 위해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운표선에게서, 강서진에게서 익숙해진 화법에 서문윤은 더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침착하게 답변을 하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마음을 읽기 위해 눈을 마주했다가 그는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에 죽음을 원한다면 굳이 당신을 살리는 걸 돕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것은 고 귀비를 멈칫하게 한 말이었다. 서문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웅성거림이 귓가에 스쳤다. 골목 사이에 숨어 있는 사람이었다. 인기척이 멀어졌다가 가까이 왔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탈출까지는 험난한 여정일 것이다.

서문윤이 담담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한 번 약속한 일이니 신의는 지킬 것이다. 원수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실 그녀에게 묵은 감정은 이미 푼 채였다. 만약 그녀가 끝까지 해약을 주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벼랑 끝에 몰려서 날을 세우던 여인은 결국 마음을 바꿨다. 분노의 감정이 더 들지는 않았다.

“살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살기 싫어한다면, 헛짓거리를 할 생각은 없다. 말마따나 이제 고 귀비의 생사는 천하의 안위와 상관이 없었다. 이제는 약속을 이행하냐 마냐의 신의 문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문윤은 마음을 정한 것이다.

‘고 귀비가 원한다면 약속을 이행한다. 그러나 그녀가 삶에의 의지를 세우지 않는다면, 나도 굳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귀비는… 솔직히 말하면 구할 마음이 썩 들지 않는 악인이 아니던가?

말했다시피, 서문윤은 의형을 사지에 몰고 간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문윤이 그녀를 차분히 응시했다.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서문윤은 귀비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망을 치던 와중에 거추장스러운 멱리를 벗어 던졌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결국 그녀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렀다.

“아버지를 보고 싶다.”

고 귀비는 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서문윤은 입술을 열었다.

“가지요.”

고 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서문윤은 복잡한 마음을 삼키고 걸음을 이어나갔다

* * *

고 귀비가 문득 입술을 열었다.

“내가 살아도 될까?”

서문윤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이가포목점으로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근처를 수색하던 무인들이 보이지 않는 서문윤에 지레 짐작하고 구역을 다른 쪽으로 옮긴 모양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포목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귀비의 말에 서문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아닌 사람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사실.”

멈칫하는 귀비의 귓가로 담담한 말이 내려앉는다.

“검설린. 당신이 악천화라 알고 있는 사람.”

서문윤이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 눈을 밝히며 중얼거렸다.

“의형은 완전히 지긋지긋하지요. 그는 저를 애틋하게 여기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 겁에 질려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문윤은 경계를 돋우는 데 완전히 신경을 쏟아붓고 있어 스스로가 마음속 진심을 토해내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제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걸.”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이어진 귀비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청융 같구나.”

청융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했지?’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뻣뻣이 굳힌 서문윤이 이윽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잊어주십시오.”

“싫다면?”

잠시간 침묵이 있었다. 서문윤이 확연히 굳어진 얼굴로 몸을 움직였다. 귀비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가 죽든 아니면 운남으로 떠나든 우리는 보지 못할 거다.”

“…….”

“그럴 거면 속내를 털어놓아.”

서문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가 답답하죠. 그리고 가여워요.”

포목점이 눈앞에 보였다.

‘사람은, 사람은…… 안에 있군.’

포목점 안의 사람이 과연 태자 측의 사람일까. 가늠을 하며 서문윤이 입술을 열었다.

“아름다운 기억과 끔찍한 기억이 교차해서 떠오릅니다.”

귀비는 묵묵히 말을 듣고 있었다.

“의형을 한 대 때리고 싶은 한편 꽉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서문윤이 포목점 안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느라 경계를 돋운 것이었다. 창살 사이의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서문윤의 안색이 밝아졌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고름을 한쪽으로 기울인 차림이었다.

태자 측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행이구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포목점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가져라.”

서문윤은 문득 귓가에 내려앉은 말에 놀라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그곳에 자그마한 미소를 지은 채 서문윤을 바라보는 귀비가 있었다.

‘뭐라고?’

서문윤이 드물게 얼이 나가 되물었다.

“예?”

“나는 네 마음이 뭔지 이해한다.”

그는 이어진 귀비의 말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청융은 사랑을 알았지만 몰랐지.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서문윤이 침묵 끝에 입술을 열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귀비는 그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항상 마음을 세우고 나면 늦지.”

서문윤은 그녀가 하는 말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 하는 거다. 서문윤. 나는 동궁사변 이전의 내 행동을 지극히 후회하고 있어.”

차게 웃는 여인의 얼굴에는 조롱의 미소가 떠올라 있다. 가시 돋친 웃음에서 서문윤은 그만 더 이상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을, 그를 가지는 것을 주저하던 나를 원망한다.”

귀비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뭔 상관이지? 너는 그를 원망하기만 할 건가?”

그건 유혹이었다.

“가져.”

서문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귀비가 속삭였다.

“부수는 것보다, 원망하는 것보다, 그리워하는 것보다. 그게 차라리 나아.”

서문윤이 갈라진 목소리를 흘렸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하물며 그는 너를 애틋하게 여긴다 하지 않았느냐?”

귀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럼 문제가 없지 않느냐.”

“…….”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있다.”

그 말에 이르러 서문윤은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새하얘진 채 서문윤이 귀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희게 웃고 있었다.

“양기를 돋우는 향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환희향 같은 것을.”

서문윤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서문윤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가 평생을 중압감에 시달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형은 항상 무언가의 굴레에 휩싸이신 분입니다.”

서문윤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습니다. 편안하게.”

귀비의 얼굴을 묘하게 바꾼 말이었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

“그 행복을 제가 안겨주고 싶었는데, 불가능하군요.”

서문윤이 지그시 귀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술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제게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이 다급한 상황에서 제게 아버지를 보고 싶다 말을 해놓고선 이리 시간을 끄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철컥, 소리가 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서문윤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귀비를 노려보는 눈에 희미한 경계심이 돋아 있었다. 내심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대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다.

‘귀비는…… 지금 나를 방해하고 있다!’

서문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묵묵히 말을 듣던 귀비의 입가에 돌연 희디흰 미소가 스쳤다.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네가 부럽군!”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어진 그녀의 행동에 서문윤은 그 순간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잠깐 이게 무…?!”

귀비가 그를 뿌리치고 골목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반사적으로 서문윤은 귀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귀비에게 닿지 않았다. 귀비는 빠르게 골목 밖으로 뛰쳐나갔다.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귀비의 옷자락을 서문윤은 결국 부여잡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은.

“잡아라!”

문득 귓가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야밤의 도시에 소란이 일었다. 횃불이 켜지고, 추격하는 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귀비! 귀비가 나타났다.

언제 기척을 죽였냐는 듯이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추격자들이 귀비가 도망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문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후미진 골목 구석에 숨어들었다. 소란이 일었던 골목에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문윤이 자리한 곳의 이야기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를 들으며 서문윤이 숨을 가늘게 내뱉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도대체 무슨…?!’

갑작스러운 귀비의 행동에 당황하여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그가 침착을 되찾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한 행동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타다닥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서문윤이 밤하늘을 빛내는 불길을 마주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궁궐이 불타고 있었다.

‘귀비가 도망을 친 이유.’

그리고 그 순간 서문윤은 울음을 터뜨렸던 귀비의 모습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렇게 흐느끼던 여인은 무얼 예감했던 것인지.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에 서문윤이 몸을 비틀거렸다.

‘아, 설마….’

귀비는 궁궐의 많은 비사를 알고 있었다.

‘설마, 당신은.’

조정의 일 또한 그녀의 손바닥에 있지!

‘…변란을 눈치를 챘던 거구나.’

서문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궁궐에, 궁궐에 더 큰 음모가…!’

서문윤은 빠르게 머리를 굴릴 수 있었다.

‘굳이 귀비를 찾으려 하는 이유. 그녀는 지금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을 걸 짐작…. 폭약! 폭약을 노리는 거야.’

귀비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패를 떠올리며 서문윤이 입술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전황을 뒤집으려는 거다! 귀비의 폭약으로. 중서령이 음모를 꾸미려는 거다.’

이제는 조정의 일에 어느 정도 눈이 트였다. 서문윤은 빠르게 사건의 형태를 추리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귀비의 폭약을 이용하려는 게 사실이라면 반드시 그 여인을 손에 쥐려고 하겠지! 제 안전은 보장받지 못할 테고. 그들은 귀비가 잡힐 때까지 추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귀비는 그를 알고 행동한 것이었다.

눈이 뜨인 순간 서문윤이 이를 악물었다.

‘아니야!’

귀비의 뜻이 무슨 것인지 알겠다. 그녀가 아버지를 보고 싶다 눈물을 흘릴 까닭이 무언지. 왜 도망을 치길 망설였는지 알겠다.

상황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

‘그래도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알아야겠다.

그리고 그 여인이 이리 허망히 떠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리하여 서문윤은 빠르게 생각을 마무리하고 소란이 일어난 곳을 향해 몸을 옮긴 것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문윤이 귀비를 찾는 데 걸린 시간은.

“이년!”

갑자기 들려온 험한 고함. 그리고 이어진 여인의 신음소리에 서문윤은 본능적으로 기척을 줄이고 몸을 움츠렸다. 비명이 이어졌다. 궁중의 여인은 오래 도주하지 못했다.

‘귀비!’

서문윤이 숨을 죽이고 골목 뒤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곤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여인과 그녀를 손에 움켜쥔 한 무리의 무사들을 응시했다.

‘바로 죽이진 않을 거야.’

서문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귀비를 구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망설이고 있었다.

‘고문을 하겠지.’

그는 잠시간 망설였다. 그들을 따라가 귀비를 구할 기회를 엿보아야 하나? 아니면 다시 돌아가 일단 폭약의 존재를 태자의 사람에게 알려야 할까?

‘실수를 했다.’

미리 언질을 하고 올걸. 당황한 나머지 포목점에 들를 생각을 하지 못하였으니. 서문윤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망설였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지금 그의 선택에는 구정(九鼎)과 같은 무게가 있다.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택을 서문윤은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 압박감에 시달려 서문윤이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때였다.

“나는!”

그리고 그 때 서문윤의 귓가에 찢어지는 목소리가 울렸다.

“살아가는 동안 내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짓지 못한 일이 많다.”

그의 숨을 멈추게 한 말이었다. 서문윤이 얼어붙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을 때, 사람들의 손에 틀어 잡힌 귀비는 비소를 흘리고 있었다.

“죽음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지.”

귀비를 부여잡은 사내의 입에서 서슬 퍼런 고함이 흘렀다.

“닥쳐! 이 요녀.”

서문윤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귀비의 말이 그의 몸을 부여잡고 있었다.

‘죽음만큼은 선택하고 싶다고.’

서문윤은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귀비는 나오지 말라 이야기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서문윤이 위험을 자처할까 봐 경계하여 미리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한평생 휘둘리고 살았던 여인의 각오를 듣고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창백해진 얼굴로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설 수가 없구나.’

서문윤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개같은 년!”

무인 하나의 칼이 높게 치켜 올렸다.

“살고 싶어도…….”

귀비의 입술에 호선이 그려진 때였다.

“……살 수 없는 자가 있다.”

서문윤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칼이 허공 위로 높게 쳐들어지고, 그것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땅 위를 굴렀다.

귀비는 죽기 직전까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서문윤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 들려온 말이었다.

“그놈, 그놈은 어디 있지?”

“됐어, 가장 중요한 걸 해결했으니. 떨거지 따위 상관없다!”

무인들 사이로 술렁거리며 말이 번져 나갔다. 공황에 빠져 있던 서문윤은 빠르게 정신을 되찾고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를 들으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장안을 빠져나가지 못해.”

이어진 말에 서문윤이 숨을 멈췄다.

“중요한 건 악천화다! 그자, 그자가 어디에 숨었는지….”

‘의형이….’

그 순간 서문윤의 얼굴에 핏기가 빠르게 가셨다.

‘의형이 위험하다.’

그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이가포목점을 향해서.

* * *

‘죽었어!’

추격자를 피해 골목을 달리며 서문윤은 이를 악물었다.

‘망설임 없이 죽였어….’

수급이 되어버린 여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고문을 할 줄 알았는데. 추격자는 귀비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잘라 죽여버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서문윤이 생각의 가지를 이어나갔다.

‘그들, 하수인이다. 절대로 자의적으로 행동하지 않아. 망설임도 없었지. 냉철하게 행동한 거다.’

동궁사변이나 사적인 일로 원한이 맺혀 행동한 게 아니다. 무인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계산을 하고 귀비를 죽였다는 의미였다.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렸다.

‘정보가 필요 없다는 건가? 폭약이 어디에 있는지 추궁하지….’

생각은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

‘…귀비의 수하들.’

서문윤이 신음을 흘렸다.

황실에 귀비가 몰래 부리던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을 강서진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궁을 빠져나왔다. 강서진이 충분히 여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판단하고. 그를 신뢰할 만하다 판단하고 벌인 일이었다.

허나 지금은 황궁이 불탄 상태다!

서문윤이 숨을 들이켰다.

‘강서진도 변란에 휩쓸렸으면…. 아.’

그들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폭약의 위치를 불었을 수도 있다.

서문윤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귀비의 죽음으로 감시는 느슨해졌다. 그네들은 궁궐로 돌아간다 했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궁궐에 커다란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리였으니까.

‘알려야 해!’

서문윤은 그리하여 미친 듯이 달렸던 것이다. 당황하여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하지 못했던 서문윤은 그녀의 죽음을 마주하고 확실히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문윤이 어깨로 이가포목점의 문을 부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그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이 내려앉다가 사라졌다. 우스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으리, 지금 무슨… 이 패는?”

“헉, 허억!”

서문윤은 굳이 설득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품에서 패를 꺼내주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패를 받아 든 사내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져갔다. 태자의 사람은 경박한 목소리를 거두고 낮고 건조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게 무슨 일이오.”

서문윤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지금 궁에!”

“궁에 변란이 일어난 건 알고 있어. 도대체 무얼 알고 있냔 말이다!”

그 또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서문윤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티를 내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나갔던 의문을 토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궁은 또 왜 불타는 거고!”

“제가, 제가….”

서문윤은 숨을 헐떡거리며 답변했다.

“지금 당신이 할 일은 저를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뭐라고?”

“태자전하가.”

서문윤이 심호흡을 했다. 그의 눈이 명료하게 빛났다. 이를 악물며, 서문윤이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니, 천하가 위험합니다.”

그러곤 서문윤은 제가 궁궐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사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폭약 이야기가 나올 때 사내의 얼굴은 더 이상 새하얗게 변할 구석이 없이 핏기가 가셔 있었다.

귀비의 목이 잘렸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사내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두 눈을 감고 신음을 흘렸다. 그것이 절대로 좋은 징조가 아니란 것을 바로 파악한 것이었다.

그 순간 사내가 이를 악물고 언성을 높였다.

“너, 그런 일을 왜 미리 말을 하지 않았나!”

콰앙! 발을 구르는 소리가 흐른다.

“귀비가 중요한 게 아니었잖아, 지금?”

사내는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며 분노를 토해냈다.

“제기랄.”

이게 제가 감당할 일이 아니란 사실을 빠르게 판단하고, 사내는 바로 태자와 연락할 방도를 취하려 했다. 장안을 빠져나가 서문윤이 했던 말을 이청은에게 보고하기 위해 통로를 이용하려고 했다.

서문윤을 부르려던 사내는 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흠칫 놀라 몸을 떨고야 말았다.

“너 어디 가?!”

“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서문윤이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이었다. 사내가 얼이 나가 그를 보다가 이내 눈을 밝혔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중서령이 변란을 일으켰습니다! 정명공이 위험합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저 마굴에 돌아간다는 건데?”

서문윤은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포목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완전히 미쳤군.’

골목 사이를 오가며 서문윤은 숨을 헐떡거렸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추적자가 이미 소란을 일으킨 상황에서 이미 은밀함을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최대한 빠르게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짜 미쳤어.’

그렇게 서문윤은 발각될 위험을 감수한 채 비밀통로의 입구를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너 뭐야!”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결국 들키고야 말았다.

‘망했다!’

서문윤이 이를 부득 악문 순간이었다.

“뭐야, 저놈은?”

“저놈! 저거 그 귀비를 빼돌리려 했던 그놈 아니야?”

“일단 잡아!”

서문윤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제기랄!”

골목 구석구석에 횃불이 다시 켜졌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서문윤은 미친 듯이 달렸고. 추격자들은 그런 그를 미친 듯이 추격했다. 서문윤은 어둠을 틈타 골목골목을 날쌔게 오갔으나 포위망은 지독했다. 서문윤은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다. 제압할 시간도 없이 서넛 명의 목을 꺾어 바닥에 널브러트린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렸다.

이를 악물며 그가 담벼락의 그림자 사이로 몸을 숨겼다.

‘길이 트이지가 않아.’

비밀통로가 자리한 곳으로 갈 수가 없어 난황을 겪던 그 순간의 일이었다.

“아악!”

문득 서문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귓가에 울린 높고 처절한 비명 때문이었다.

‘뭐지?’

서문윤은 자신을 추적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당황해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귓가에 혼란으로 가득 찬 고함이 울렸다. 그 순간 서문윤이 눈을 흔들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가?

그러나 서문윤은 비명의 이유를, 추적자들이 당황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추적자들은 썰물처럼 서문윤이 있는 방향에서 빠져나가, 어느 쪽을 향해 달려갔다. 서문윤은 그 틈을 타서 비밀통로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중간중간에 만난 추적자를 쓰러트리며 서문윤은 통로에 무사히 당도할 수 있었다. 그는 빠르게 통로의 문을 열고 궁궐로 다시 향했다.

혼란이 일어난 장소로.

깊은 잠에 취한 의형이 있을 마굴로.

서문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간절함이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묻어 나왔다.

‘천추의 한을….’

제발, 제발.

‘나 때문에 의형이 다친다면…… 견디지 못해.’

서문윤은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제발, 제발! 무사하십시오.’

* * *

비밀통로로 빠져나온 서문윤이 그들이 머물렀던 별궁으로 향했다.

동궁은 한산했으나 동궁을 벗어난 후부턴 지옥이었다. 서문윤은 불에 타오르는 외전을 마주하고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구나.’

궁궐을 불에 태우는 경우는 고금을 통틀어 극히 드물다. 하물며 이민족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었어도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서문윤이 숨을 멈췄다.

‘불이 생각보다 크다. 강서진이 그랬는지 중서령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상황이 급박하구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칼소리를 들으며 서문윤이 별궁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는 궁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문윤이 문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이건!’

서문윤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검을 고개를 뒤로 숙여 회피하고 빠르게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서걱, 소리가 흘렀다. 서문윤의 눈에 순간 안광이 폭발했다.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지는 암습자를 서문윤이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했다. 순간 그의 얼굴은 초조함에 물들고 있었다.

‘궁이 뚫렸어!’

암습자의 입에는 복면이 있었다. 수상하다 대놓고 말을 하는 듯한 옷차림의 사내가 의형이 있는 별궁에 자리하고 있다. 그 사실에 서문윤은 암담함을 느끼며, 거의 미친 사람마냥 비틀거리며 방을 찾았다. 손에 복면인의 입에서 벗긴 복면을 움켜쥔 채 그는 제가 떠났던 장소로 다시 귀환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식은땀이 이마에 흘렀다.

‘제발, 제발!’

그리고 문을 벌컥 연 순간 서문윤은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아, 아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없어!’

서문윤의 얼굴에 그 순간 절망이 물들었다.

‘의형이 없어!’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서문윤이 그 순간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침상에 있어야 할 자가 없었다. 서문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내가 의형을 잠재워서 위험에 처했다!’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서문윤은 한참을 괴로워했다. 그는 침상에 피가 묻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침구에 일말의 흐트러짐조차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는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는 그 스스로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서문윤을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복도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정확히 말하면 살의였다.

충혈된 눈으로 서문윤이 검을 부여잡았다.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서문윤이 빠르게 판단하여 복면을 쓴 것은.

검이 휘둘러진 그 순간에 서문윤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히!’

방 안으로 들어오던 침입자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악!”

서문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것은, 그가 위급상황에 있어서 과감하게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임기응변이 뛰어났다. 그건 일찍이 이청은이 눈여겨보았던 재능이었고, 그가 뜬금없이 서문윤에게 정계 진출 제의를 던진 이유였다.

“컥, 커헉.”

침입자는 환관복을 입은 사내였다. 서문윤은 순간 당황했으나 환관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살의를 느끼고 부러 윽박질렀다.

“강서진은 어디에 있어?!”

“강, 강서진이라….”

“닥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아?”

그러니까 서문윤은 본능적으로 도박수를 던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쉰 목소리로 말을 잇는 그의 모습은 연기라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몹시 능숙했다.

“이청은의 사람이 소식을 빼돌렸다. 폭약을….”

목이 졸려 제압을 당했던 침입자가 당황하여 언성을 높였다.

“그, 그걸 소리 내어 말을 하지 마시오!”

그러곤 그는 얼떨결에 사지를 휘저으며 버둥거리고야 말았다. 복면을 쓴 괴한에게서 벗어나려는 몸짓은 그러나 전직 태자 익위의 손에 무기력하게 와해되었다.

서문윤이 세상에 나와 강자들의 손에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으나, 그건 그가 겪은 일이 중앙조정의 일과 관련된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강자란 강자와는 모조리 부딪치고 다녔으니 오히려 서문윤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시절보다 무력이 크게 는 상황이었다.

일개 졸개 하나를 제압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서문윤이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잘 들어. 당장 강서진과 악천화를 찾아야 해. 나는 중서령께 개인적인 명을 하달 받은 몸이다.”

그리고 그런 서문윤의 여유는 침입자에게 이상한 감상을 안겼다.

“내가 할 일에 대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장 답하라!”

‘뭐야, 이거 정말 명령이 엇갈린 거?’

순간 그의 눈에 혼란이 스쳤다. 침입자는 환관이었고, 서문윤의 예상대로 중서령 측의 사람이었다. 중서령이 악천화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중서령 측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에 중서령이 궁중의 일에 밝은 환관을 보내어 일을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중서령께서는 어찌 내게 이런 말을 안 해주신 건가?’

서문윤이 낮게 깔린 목소리를 흘렸다.

“두 사람은 어디에 있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무인의 기세가 제법 살벌하다

사내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내뱉었다.

“당,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그건 사실 서문윤을 당황케 한 말이었다.

‘뭐라 해야 하지?’

서문윤은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아무 말을 했다.

“제기랄! 나는 귀비를 맡았다고!”

그런데 뜻밖에도 그 말이 환관의 얼굴에 희색을 돌게 했다.

“아! 정말 중서령의 사람이었군요.”

서문윤은 갑작스럽게 친근하게 말을 하는 그에게 혼란을 느꼈으나, 이내 전후사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귀비의 일은 기밀이었지….’

귀비가 황성을 빠져나가 운남으로 향하는 것도, 중서령이 사람을 보내어 귀비를 처단하려 한 것도 모두가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후자는 심지어 중서령만 아는 일이니 환관이 서문윤을 신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소가 뒷걸음질을 하다가 쥐를 잡은 격이었다. 서문윤이 몸을 멈칫하고, 환관이 서문윤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울부짖었다.

“함정에 빠졌습니다!”

서문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자세한 건 가면서….”

환관이 서문윤을 부여잡고 방 밖으로 이끌었다. 서문윤은 얼떨결에 그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환관이 내뱉은 말에 서문윤은 이윽고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서진 그 교활한 여우 놈이!”

강서진은 확실히 난놈이었다.

그는 반란이 일어난 그 짧은 시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손을 썼다. 궁궐에 불을 지르고 귀비의 손에 죽은 황제를 중서령에게 떠넘긴 것이다. 아무리 백성들의 원망을 받는 망나니 같은 자라 하나 천자라는 위치의 무게는 크다. 궁궐이라는 곳의 상징 또한 그러했고.

중서령은 난도질을 당한 천자의 시체와 불이 난 궁궐에 경악하여 강서진과 귀비를 다급히 찾았던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천자를 시해하고 궁궐에 불을 지른 죄를 오로지 그가 껴안게 되었으므로.

그러니까 강서진은 그네들에게 가장 부담이 될 문제를 그렇게 남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아, 이걸 이렇게.’

감탄하던 서문윤의 귓가로 연이어 말이 내려앉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강서진에게 투신했던 귀비의 수하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쳐 궁인들 사이에 퍼졌다 한다. 애초에 그들은 궁인 출신이었으므로 위장을 쉬이 했고, 중서령이 황제를 죽였다는 사실을 퍼뜨릴 수 있었다. 중서령은 황궁이 불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 궁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으므로. 손을 쓸 수 없이 장안성에는 말이 퍼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함락을 앞두고 은근히 분열되어 있던 장안성의 정세는 지금 혼란 속에 있었다.

강서진과 귀비가 명분을 되찾고, 중서령이 명분을 잃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내전.

“중서령께서는 이게 강서진의 함정일 것이라 예상하고 계십니다. 지금 극히 두려워하고 계셔서…. 악천화를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고 어이할 바를 몰라 하십니다.”

서문윤은 환관의 울먹거리는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는 나랑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중서령의 반란을 예상하지 않았어. 심지어 귀비의 동선이 노출이 되었는데 강서진이 설마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중서령을 없애려 했을까? 그냥 그는 교활하게 행동한 거다. 중서령이 황제를 죽였다 치면 그는 황실이라는 명분을 손에 넣은 장안성 세력의 수뇌가 결코 될 수 없지. 장안에 남은 건 명분뿐인데, 그것 또한 제대로 챙길 수가 없잖아. 항복도 할 수 없어. 어찌 되었건 황제다. 반정군은 황제가 귀비와 간신의 계교로 총기를 잃었다는 명분으로 봉기한 거야. 황제를 직접 공격한 게 아니라. 태자전하가 다음 대 황제로 내정된 이상은 황실의 권위를 훼손할 수 없지. 중서령이 외통수에 몰렸군. 그는 누명을 벗기 전까지는 절대로 항복을 할 수 없….’

곰곰이 생각하던 서문윤은 그러다가 문득 어느 생각에 이르러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근데 중서령은 항복을 하려 한 것이 아니잖아.’

서문윤의 두 눈이 그 순간 흔들거렸다.

‘중서령은, 중서령은 폭약을 찾았어! 애초에 항복이 아니라 싸움을 택한 거라고. 왜지? 왜야?’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왜냐니? 지금 항복을 하면 이도 저도 아니니까. 강서진에게 화합한 중서령은 당연히 목숨과 자리가 위험하겠지. 다른 위치도 아닌 재상급의 인사이니.’

급한 상황에 여유를 잃고 놓쳤던 것들을 깨닫고 있었다. 서문윤이 차곡차곡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전력 차이로 계속 싸우려 드는 것은 위험한데? 반정군의 수뇌부가 여러 개라 태자가 죽어도 전쟁을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강서진과 귀비가 태자를 죽이려 했던 건 목숨을 도외시한 보복의 일환이었어. 중서령 같은 고위 관료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폭약을…… 싸우다가 항복하려는 건가?’

서문윤의 눈이 그 순간 번뜩거렸다.

‘몸값을 높이려는 거다!’

그 순간 중서령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에 서문윤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런 제길…… 미쳤어!’

중서령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피를 흘리려는 것이었다!

농성을 계속하여 장안성의 여력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항복을 하더라도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말이다. 그건 사실 중서령이 생각한 방향과 얼추 맞아떨어졌다. 그는 싸움을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항복을 하고, 운이 좋게 승기를 잡으면 권신이 되어 그 옛날 고우군의 자리에 오르려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것은 황제의 죽음이었고.

‘아니면 장안성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지. 귀비가 장안성 곳곳에 화약을 매장했다 했으니… 이런!’

생각을 뻗어나가던 서문윤이 오싹함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아, 이건 위험하다.’

어찌 되었건 사람들이 많이 죽는 방향이다. 언뜻 들은 말과 짧게 경험한 바로는 중서령이 원하는 바는 오로지 권력이었고, 그것은 서문윤에게 경각을 알리게 했다.

‘그자의 손에 폭약이 들어가게 하면 안 돼!’

서문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쩌면 좋지?’

미친 듯이 생각을 하느라 그는 주변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고 있었다. 환관은 그의 소매를 잡아 이끌었고, 서문윤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혼란 속의 황궁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후궁에 이르러서였다.

“지금 어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문윤이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환관은 빠르게 말했다.

“지금 정세가 급박하니 중서령께 직접 명령을 하달받는 것이 낫습니다! 이곳에 계세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귀비의 일은 또 어찌 되었습니까? 아! 이걸 도대체 어찌 해야 하는지…!”

그 순간 서문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중서령한테 가고 있는 거였어?!’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에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의형을 찾아야 한다고… 어, 잠깐만 이거 잘하면…?’

당황하여 도망칠 생각을 하던 서문윤은 그러나 이윽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어느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혼란에 휘말렸던 서문윤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악천화와 강서진이 중요하다!”

“그건 저도 압니다.”

“아니,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해.”

의아해하는 환관을 향해 서문윤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네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잘되었군. 중서령에게 안내해.”

“아, 네… 안 그래도 지금.”

얼이 나간 환관이 고개를 들고 중서령을 바라보았다.

꼬장꼬장하게 생긴 늙은이를 마주한 순간 서문윤은 두 눈을 흔들다가, 이내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합하!”

비장한 목소리를 흘리며 서문윤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중서령의 얼굴에 스치는 혼란을 읽은 서문윤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처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그자가 배신…… 배신을! 강서진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중서령의 눈을 흔들게 한 말이었다.

“뭐라고?”

사실 아무렇게나 한 말이었다. 중서령을 움직이기 위한 말.

“누가? 누가 배신한 거야!”

중서령은 서문윤의 예상보다 더욱 쉽게 움직였다. 소속을 밝히지 않은 복면의 사내를 향해 그가 흥분하여 다가간 것이었다.

서문윤은 그 순간 빠르게 움직였다.

“저놈! 어어, 저거저거!”

비명이 흐르는 순간 서문윤이 중서령의 목에 팔을 걸어 그의 고개를 뒤로 꺾었다.

좌중에 경악이 퍼져 나간 순간이었다.

“합하!”

서문윤은 말했지만 임기응변 능력이 좋았다!

일을 수습할 깜냥이 되지 않지만 한 치 앞의 고난을 헤쳐 나갈 능력은 충분히 되었다.

“꼼짝 마라!”

그런 그가 지금 내린 판단은 중서령을 일단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을 내려놔!”

그리하여 서문윤은 중서령을 제압하고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허나 말했지만 그는 일을 수습할 깜냥은 없었다.

경악이 물결치는 사이에서 서문윤이 머리를 굴렸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고여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복면 안에 숨기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는 태자의 명령을 받았다!”

속으로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의형, 이거 어떻게 수습하면 좋아요?’

되는 대로 내뱉고 스스로도 말의 무게에 짓눌려 끙끙 앓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걸 알고 계신다! 더 그분을 화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전하께서 살생을 꺼리시는 걸 다행히 여겨라.”

서문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퍽 싸늘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불러오고 있었다.

“태, 태자?”

“그분께서 강서진과 영합하여 함정을 파놓았단 건가!”

서문윤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아, 그렇게 되는 거야?’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중서령이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강서진의 술수가 이렇게 무모하고 허술할 리가 없어!”

“닥쳐!”

“히익!”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던 중서령이 제 목을 베는 검에 놀라 힉 소리를 흘렸다. 그의 말을 합리적이라 생각하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합리적인 게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

“뭘, 뭘 원하는 거지?”

서문윤은 짧은 침묵 끝에 쉬어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폭약은 어디에 있나?”

잠시간 망설이던 중서령이 이내 제 목젖을 누르는 검날에 식겁하여 소리쳤다.

“좌, 좌우림군 장군에게!”

서문윤이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좌우림군 장군? 좌우림군 장군이 가담했다고? 미쳤군!’

우림군은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대를 뜻했다. 우우림군은 이민족이 섞인 부대였고, 좌우림군은 순수한 한족으로 이뤄진 부대. 달리 말하면 황제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자가 중서령에 가담한 것이었다.

‘개, 개판이잖아.’

생각보다 더욱 혼잡한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워, 서문윤은 쓰러질 뻔한 것을 참고 뒤이어 말을 이으려 입술을 벌렸다. 물론 그 사이로 흐르기로 예정된 건, 개소리였다.

‘좌우림군 장군을 설득하라 말을 해야 하나? 성문을 열고 항복해라 말을 해야 하나? 아니, 의형은 무사한 거야?’

사실은 서문윤은 마지막이 가장 조급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악천화는 어디 있느냐!’는 말은 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스스로가 약점을 노출시키면 오히려 검설린이 위험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리하여 서문윤은 망설였던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갈팡질팡하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중서령은 생명의 위기에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뭘 원하는 거야!”

머리가 새하얘진 서문윤이 몸을 움찔거릴 때의 일이었다.

‘어?’

하나둘씩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고, 소란이 가득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암담한 눈으로 둘러보던 서문윤이 문득 얼어붙었다. 그는 어느 한 지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강, 강서진?!’

그곳에 위기에 처했던 그의 방수(防守, 조력자)가 있었던 것이다.

환관으로 변장한 강서진이 경악한 서문윤을 강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서문윤이 눈을 크게 뜨던 그 순간의 일이었다.

‘죽여.’

강서진이 입술을 뻐끔댔다.

‘죽여라!’

실로 충격적인 말을 듣고, 서문윤은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느낌을 받고야 말았다.

‘죽여, 죽이라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교차했다.

‘여기서 중서령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데? 차라리 그를 인질로 잡아서 협박하는 게 낫지 않나? 아니, 여기 중서령의 사람들이 많다고. 중서령을 죽이면 내가 무사하지 못할 건 당연한 일이잖아.’

순간 이성이 그의 손을 막아 망설였으나, 그건 찰나의 일이었다.

서문윤은 저도 모르게 강서진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 검을 움직여 중서령의 목을 바로 벤 것이다.

“합하아아아!”

“저놈! 저놈이 감히!”

비명이 비산했다.

스스로가 일을 저지르고도 깜짝 놀란 서문윤이 뒷걸음질을 했다. 순간 암담함이 그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강서진은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

서문윤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체념을 했다.

‘강 대인께서 차도살인계를 쓴 건가.’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하며 저를 향해 흉흉한 기세로 다가오는 무인들을 바라볼 때였다.

그 때 문득 전각 밖에 경악 어린 고함이 울렸다.

“우우림군이다!”

파국의 절정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서문윤이 넋을 잃고 장안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우림군!

그들이 전각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서문윤을 당장에 찢어발길 듯했던 이들은 칼을 뒤로 돌려 그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중서령은 그다지 인망이 없는 모양이었다. 서문윤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이들은 없었고, 중서령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챙기는 데 바빴다.

‘이게, 이게 뭐지?’

너무나도 황급히 일어난 사안에 서문윤이 차마 생각을 더 이어나가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가 어쩔 줄을 몰라 할 때였다.

소란 속에서 강서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따라와!”

서문윤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에 스스로의 머리가 그닥 좋지 않은 편이란 걸 깨달았던 것이다.

* * *

강서진은 살아 있었다.

그것도 우우림군의 조력을 받으면서.

환관복으로 변복해 있던 강서진은 전각의 뒷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중서령이 있던 전각을 포위한 우우림군의 수장은 강서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까딱거려 예를 표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강서진을 호위하는 우우림군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며 서문윤이 말을 내뱉었다.

“이게 어떻게 된….”

“흐하하하!”

그리고 그 순간 강서진은 미친 듯이 포복절도했다.

“네가 진짜 미친놈이구나.”

서문윤이 얼이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서진이 끅끅 소리를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황당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미, 미치셨습니까….”

불손한 말이지만 서문윤은 그리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만 같았다. 곤궁에 처한 사내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웃으며 몸을 뒤틀고 있다. 넋을 잃은 서문윤이 그를 바라보다가 웃음기를 머금은 말을 듣고 몸을 흠칫했다.

“미친 건 너잖아!”

강서진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도대체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서문윤의 얼이 나간 얼굴이 점차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강서진이 왜 웃음을 흘렸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아, 아아! 나 태자의 하수인을 사칭했… 헉!’

핏기가 가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강서진이 잠시간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귀비는?”

서문윤이 입술을 다물었다. 그늘이 드리운 그의 얼굴에서 답을 찾은 듯 강서진은 한동안 입술을 열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강서진이 담담한 목소리를 흘렸다.

“어쩌면 이렇게 되는 게 맞는 일일 것이다.”

서문윤은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강서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그저 입술을 다물었다. 말은 담담하게 흘렀다.

“귀비와 함께 도망가 생존을 도모하라는 네 제안은, 천하에 흐를 피를 줄이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허나 그 기저엔 진심으로 우리를 동정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너는 우리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지?”

서문윤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예,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그를 강서진은 온유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 정리가 나를 움직였다.”

어째서일까?

서문윤은 강서진의 그 부드러운 눈에 압도되어 입술을 다물고야 말았다.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강서진의 침착함에서 무언의 의지가 묻어 나와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말을 듣고 과거를 떠올리고, 검설린과 이청은과의 옛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네 제안을 받아들여 귀비를 살리려 했지.”

강서진이 무슨 각오를 세웠구나. 서문윤은 내심 짐작하고 입술 밖으로 신음을 삼킬 뿐이었다.

“허나 그래선 안 되었다.”

강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정치는 정리로 하는 게 아니지. 너도 나도 잘못하고 있었구나. 너는 우리가 지은 죄가 얼마나 깊은 줄 모른다. 그건 씻을 수 없는 죄지.”

그들은 불에 타오르는 궁궐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이동하는 중이었다. 황제를 지키는 어림군. 개중에서도 특히나 정예인 우림군이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간간히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이 있었다. 서문윤은 검손잡이에 자연스레 손을 올리며 그들을 막으려 했으나 강서진이 그걸 막았다. 엉거주춤 저를 돌아보는 서문윤을 향해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걸 너 또한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그 말에 서문윤은 망설이다가 수긍했다.

“예, 압니다.”

강서진은 그런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곤 조용히 읊조렸다.

“그럼 책임을 져야 해.”

서문윤은 그의 말에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강서진은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이게 우리 죄의 결과다. 나는 살아 나갈 수 없어. 지나치게 많은 죄를 지었지. 내 목숨을 원하는 자들이 많다.”

서문윤이 숨을 삼켰다.

“이미 뜻을 정하신 겁니까?”

강서진은 답변을 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서문윤의 얼굴에 불안이 스친 때였다. 강서진은 서문윤의 말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청은의 말에 공감했다. 네가 새로운 세상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는 자이길 바랐어.”

동문서답에 서문윤이 미간을 찌푸린다. 강서진은 자그마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허나 안 돼. 넌 너무 감정적이야.”

갑자기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말인가?

서문윤이 의아함 반 초조함 반이 뒤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에 강서진은 자그마니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네가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곤 그는 순식간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정치가로 너무 오래 살았군.”

씁쓸한 목소리.

서문윤이 그의 얼굴을 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숨을 들이켜며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서진은 이번에 순순히 답했다.

“나는 대림원에 간다.”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허나 가는 길에 널 사령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사령전?

“황, 황궁을 벗어나란 말씀입니까?”

얼이 나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강서진은 유쾌하게 웃었다.

“네가 갈 곳이 있지 않느냐!”

그 실체가 없는 두루뭉술한 말의 의미를 서문윤은 거짓말처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문윤이 순간 숨을 멈췄다.

‘의형!’

비수같이 예리함이 서린 날카로운 눈매가 순간 머릿속에 스쳤다. 서문윤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열고야 말았다.

“의형은 어디에 있지요?”

떨리는 목소리가 흘렸다.

그건 사실 아까 전부터 그가 진정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분께서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러나 강서진의 기세에 휘말려 내뱉지 못했던 말.

서문윤이 잠긴 목소리를 흘렸다.

“무사합니까? 잘 대피하고 계신 겁니까?”

잠에 취한 의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서문윤이 헐떡거렸다. 마지막으로 본 검설린은 마치 깊은 잠에 취한 듯 평온해 보였다. 일전에 본 적이 없던 후련하고 가벼운 얼굴. 그를 보며 서문윤은 아주 짧게나마 그런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의형에게는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기나긴 휴식이?’

바로 떨쳐버린 생각이 지금 떠올랐다. 그리고 서문윤은 답변할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두고 보지 못하겠어!’

서문윤이 숨을 멈췄다.

그래, 사실은 검실린을 위해서 그에게 살아달라 말한 게 아니었다. 사실 검설린을 동정해서, 그에게 생존이라는 선택지를 안겨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괴로워서….’

서문윤은 상실을 생각하기 싫었다. 그가 죽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강서진을 앞에 두고 끈질기게 외면하려 했던 마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검설린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가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저 자신을 마주하며 서문윤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의형이…… 무사합니까?”

그리고 그 때 강서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내뱉었다.

“정치에 정리가 필요 없다 말을 하니 네가 가장 짙은 마음을 드러내는구나.”

“뭐, 뭐….”

서문윤은 말을 더듬어야만 했다.

강서진은 그런 그를 복잡한 시선으로 잠시간 바라보았다. 과거를 회상했고, 현재를 직시했으며, 미래를 예상해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련을 가져서 뭣 하겠는가.’

서문윤은 생기가 넘쳤고, 그런 그의 곁에서 강서진은 가끔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꿈꿨다. 정계에서 본 적이 없는 유형의 청년은 그에게 순수하던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켰으므로. 강서진은 그를 보며 생존의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이미 끝났어.’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설린이는 아니지.’

그러곤 강서진은 준엄한 목소리를 흘렸다.

“잘 들어라!”

서문윤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중서령은 좌우림군과 영합해서 내게 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폭약에 관련된 소식이 흘러들어갔고. 그들은 그걸로 승부수를 볼 생각이야. 우우림군은… 보다시피 내 영향력이 남아 있다.”

강서진의 눈이 냉정하게 빛났다.

“폭약은 장안성 곳곳에 숨겨져 있다. 좌우림군이 폭약을 캐내려 하고 있어. 황궁에 세 곳. 황궁 밖에 일곱 곳. 황궁 내부의 것은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외부의 것은 설린이가 책임지고 사수하기로 했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서문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화등잔만 하게 눈을 뜬 서문윤이 고개를 돌려 강서진을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의형이 깨어나 있으셨습니까?!”

그 말에는 묘한 어감이 있었다. 강서진은 그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서문윤이 지금 제 의형을 의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게 네 업보다.’

어느 정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는 강서진은 짤막한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검설린은 지나치게 방어적이었고, 또 그 대가를 받고 있었다.

담담한 말이 흘렀다.

“그에 대한 신뢰를 잃었구나.”

“제가 그를 신뢰할 수 있으리라….”

“그래.”

그리고 서문윤은 숨을 멈췄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일어났어.”

강서진은 확고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네가 가고 일어났다.”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신음이 흘렀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에 강서진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이 애가 설린이를 완전히 마음에서 제거한 것이 아니구나.

그를 깨닫고 마음이 놓여, 강서진은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를 입술 밖으로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강서진이 조용히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설린이는 일어나자마자 너를 찾았어.”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완전히 얼어붙고야 말았다.

“그 애. 의식이 있었다.”

강서진은 그를 깨우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이 벌어지고 검설린이 머무는 별궁으로 간 강서진은 피범벅이 된 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검설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 눈에는 생애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문, 서문윤은.”

회상에 잠긴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 아이를…아!”

검설린은 스스로의 힘으로 약에서 벗어났다.

“제발… 살려야….”

그 의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냐면….

그 순간 강서진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상념에서 깨어난 사내의 입술 밖으로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자, 가라!”

한적했던 동궁에 들어선 것이다. 강서진이 손에 움켜쥔 서문윤의 팔뚝을 풀어주었다. 그러곤 그는 청년의 등을 밀었다.

“네가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 검설린의 곁에 있어. 그는 지금 북문에 있다. 그곳의 폭약을 제거하고 있어.”

강서진이 윽박을 질렀다.

“그를 도와 네가 그렇게 원하던 태평성대를 두 눈으로 지켜보아라. 장안에 폭약이 터지는 것을 막아. 억울하게 목숨이 죽어나가는 걸 막아.”

서문윤은 그러나 동궁을 떠나지 않았다. 강서진의 등 뒤를 보고 얼어붙은 까닭이었다.

“강, 강 대….”

그곳에는,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우림군의 복장을 구분하긴 힘들었으나, 적대적인 기세로 보아서 죽은 중서령과 영합했던 좌우림군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서문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강 대인!”

강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문윤이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죽음을 각오하신 겁니까?”

강서진은 웃음을 흘렸다.

“말했지 않느냐. 나는 책임져야 한다고.”

서문윤은 강서진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의형께 남길 말을 말씀해주십시오.”

그 말에 강서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문윤의 말이 뜻밖인 듯했다. 그는 아주 찰나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문득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미안.”

그러곤 힘없이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고. 전해다오.”

서문윤은 고개를 까딱이곤 등을 돌렸다. 그러곤 미친 듯이 달음박질을 쳐 그 자리를 떠났다. 등 뒤에서 울리는 고함과 비명소리를 뒤로한 채.

* * *

강서진은 죽음을 각오하고 업을 치르기로 했다.

서문윤은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한 채 달음박질을 쳤다.

머릿속에서 귀비의 유언과 강서진의 말이 교차하고 있었다. 죽음에 임하며 이제야 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노라 기뻐했던 귀비. 죽기 직전에 후회를 하던 강서진.

복잡한 마음에 서문윤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은 달아나고 어느 순간부터 서문윤은 한 사람의 생각만을 하고야 말았다.

‘의형.’

검설린이 위기에 빠졌다. 폭약을 제거하려는 그는 지금 혼자였다. 좌우림군의 추격을 받고 있다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에 둔 그를 떠올리며 서문윤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을 받았다.

‘의형, 아, 의형!’

그가 무사하길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랐다.

“설린이는 일어나자마자 너를 찾았어.”

그 순간 서문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떤 마음으로 그러하셨습니까? 나를 어찌하여 찾았습니까?’

깊은 잠에 들고도 의식이 있었다는 강서진의 말을 듣고 복잡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 제길!’

서문윤은 그때 검설린이 저를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을 원망했었다.

‘의형.’

눈을 꾹 감고, 서문윤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았다. 이를 악물었다.

‘다른 건 다 좋으니, 그저 살아만 있어주십시오!’

사령전에 들어가 비밀통로를 지났다. 귀비와 있었을 때는 삼 각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길을 서문윤은 이 각이 채 되지 않게 주파했다.

그는 미친 듯이 북문을 향해 뛰었다.

매복을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새하얘진 머리로 검설린을 찾았다.

“뭐야, 저놈은?!”

“잡아라!”

그런 그를 발견하고 추격하는 이들 또한 중간에 생겨났다. 서문윤은 누가 보아도 수상했고, 그가 향하는 곳은 혼란이 가득 찬 북문이었으니까. 왁자지껄한 소란이 그곳에 일고 있었다. 서문윤은 직감적으로 그곳에 의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그리고 그 순간 들려온 말!

그에 서문윤의 어지러운 머리는 그 순간 평온해졌다.

“이미 늦었어! 폭약이 물에 젖었다고!”

발을 쾅쾅 구르며 붉은 얼굴로 소리 지르는 사내는 좌우림군이었다. 그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북문 주위는 병사들이 바글거렸고, 서문윤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의형은 어디?’

생각을 하지 않고 검설린을 찾으려 했다.

“너 이 쥐새끼가!”

그리고 그런 서문윤의 등 뒤를 추격하던 병사들이 그 순간 험악한 고함을 내뱉으며 언성을 높였다.

“야, 이놈! 이놈 잡아! 수상한 놈이다.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왔어. 뭘 알고 있다고.”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서문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의형…… 없잖아?’

흥분되었던 마음이 가라앉고 서문윤은 그제야 제가 지나치게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멍청한 짓을 저질러버린 것을.

‘여, 여기에 있다며!’

앉은 자리에서 백 수를 읽는다는 강서진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 순간 서문윤은 험악한 사내들의 시선을 받으며 깨닫고 있었다.

강서진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고, 그냥 사람이었다….

‘이거 조금 많이 위험하….’

우르르 저를 향해 달려오는 이들에 서문윤이 얼굴을 굳히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줄 그때였다.

“너 이 미친 새끼!”

그건 천지를 울릴 듯한 쩌렁한 목소리였다. 서문윤의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게 만든 말. 서문윤이 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저를 덮치는 누군가의 손길에 휘감겨 비틀거리고야 말았다.

‘어…?’

서문윤의 귓가에 벽력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이제 뇌가 없는 것이냐!”

그리고 서문윤은 목소리의 주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의형!”

희색 어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서문윤은 그러나 더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신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의 팔뚝을 잡아당긴 목소리의 주인이 서문윤을 허리에 휘감고 도주를 꾀한 것이다. 순간 일변하는 시야에 서문윤이 어지러움을 느끼고 어어 소리를 흘렸다.

울분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내게 할 말이 많을 테다!”

서문윤이 그 순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의형, 걱정했어요.”

목소리의 주인, 검설린이 귀기 어린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걱정할 만도 하지, 너 때문에 내가 황도천을 건널 뻔했으니.”

서문윤은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꼭 다물었다.

“악천화! 악천화다!!”

등 뒤에 비명이 비산하고 있었다.

“저놈들 잡아! 악천화가 직접 방해를 하고 있다. 폭약을 망가트리고 있어. 당장 막아야 해!”

이어진 말에 서문윤이 입술을 꼭 다물며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태자 이놈! 도대체 어디까지 수를 읽은 것이냐.”

‘어, 이거…? 설마 나 때문에?’

찔리는 게 많은 서문윤은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궁에서 벌인 개소리로 태자가 이 일의 배후요, 모든 것을 사주한 암중 제갈량이라는 오해가 불거졌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결국에는 태자전하가 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로 지목이 된 건가?’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던 서문윤은 그러나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닫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벌써 궁궐과 소통을 했다고?

제가 궁궐에서 태자 운운한 사실이 벌써 여기까지 퍼질 리 없잖아!

놓쳤던 사실을 깨달은 서문윤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릴 무렵이었다. 검설린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자?”

갑자기 여기서 태자가 어이 나오는가?

그가 당황해 있을 무렵이었다. 그들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외침이 이윽고 들려왔다.

“저놈 태자 익위 출신이다! 살생부의 적힌 놈이라 알아. 당장 저놈을….”

검설린의 입가에 냉소가 스친 때였다.

“뭐라 착각을 하는지 알 만하군.”

중얼거리는 말을 내뱉은 검설린이 문득 주먹을 들었다. 그의 눈빛에 날카로운 빛이 스친 때였다. 서문윤이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검설린의 주먹이 그의 머리에 꽁꽁 쏟아졌다.

“악!”

갑자기 왜!

비명을 내지르며 항의하려던 서문윤은 그러나 벌린 입술을 꽁 다물며 그의 눈치를 보고야 말았다. 뒤늦게 제가 검설린에게 저지른 일들을 깨달은 것이다.

검설린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내게 독을 타!”

서문윤이 식겁하여 답했다.

“독 아닌데요! 그리고 내려주십시오. 무겁… 앗.”

서문윤은 또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검설린이 그를 품에 안은 채 단숨에 담벼락을 넘은 것이다. 비명이 등 뒤에 비산하고 있었다.

“저, 저 미친!”

“저 새끼 쫒아!”

육 척 장신을 품에 안고 하늘을 훌쩍 날다니?

서문윤이 멍하니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에 보이는 건 날카로운 턱 선과 이목구비뿐이었다. 얼이 나간 채로 어버버거리던 그 순간 서문윤이 문득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 또 짐인가?’

서문윤이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검설린의 몸을 움찔하게 한 말이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는 힘없이 미소 짓고 있는 서문윤이 있었다. 검설린은 그를 차가운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렸다.

“또 짐이, 켁!”

다시 꽁!

이번에는 서문윤 또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뭐 하는 짓입니까?”

검설린은 코웃음을 쳤다. 얼얼한 머리를 감싸고 서문윤이 억울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더 답변하지 않았다.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추격자를 따돌리는 일에 바빠, 더 이상 서문윤의 어이없는 말에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잘 왔다, 서문윤.”

그러나 그 한마디 말은 남겼다.

“네가 필요했다.”

그건 검설린이 서문윤을 보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긴 잠에 취해서 비몽사몽했을 때, 서문윤이 그에게 했던 말에 답변을 하고 싶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래, 나도 네가 필요해.

“무서워요.”

그러면 왜 이 지랄을 떨었어?

“당신은 항상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제 곁에 없으십니다.”

검설린은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발밑이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문윤이 위험한 길을 걷는 것을 막지 못한 채 지켜보아야만 했다. 저를 필요로 하는 서문윤의 곁에 없었다.

검설린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러했다.

‘가지 마.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또다시 절망 속에 잠기고야 말겠지.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뻔뻔스럽게. 수치도 모르고 그에게 또다시 빌고야 만다.

‘제발 날 버리지 말아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었다.

검설린은 서문윤과 다시 재회했다.

울컥한 마음을 참지 못해 서문윤의 머리를 꽁꽁 때렸으나, 검설린은 차마 그를 완전히 비난하지 못했다.

‘저놈 반응이 왜 이래? 뭐 찔리는 게 있는 사람마냥.’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말이다. 서문윤이 무려 태자와 황궁 전복 사건을 엮어버린 초유의 사태를 모르는 시점까지는 말이다.

일단은 검설린은 달렸다. 안 그래도 지금은 할 일이 많았다. 황궁 밖의 일곱 곳. 강서진이 알려준 폭약이 설치된 위치를 차례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폭약에 물을 뿌리고 모래를 섞어 그것들을 제거하려 했다.

검설린은 폭약을 제조하는 데 들었을 군비를 생각하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으나, 그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미안, 아, 아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혹 덩어리가 옆에 있지!

검설린이 그를 품에 안은 채 빠르게 달렸다. 서문윤의 신체 능력이 타인보다 우월하다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서문윤은 지쳐 있었다. 그걸 검설린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문윤을 안고 달린 것이다.

‘다음은 서문.’

그런 검설린의 뜻을 어림잡아 짐작한 서문윤이 붉어진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의형.”

그는 속으로 또다시 제가 그의 짐이 된 사실을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설린은 매번 그가 사고 친 일을 수습하기 위해 죽어라 뛰어다녔다.

어찌 되었건 서문윤의 말을 결국 따랐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서문윤이 문득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웁!”

검설린은 그러나 서문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말이 많다.”

그가 할 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검설린은 그에 차게 웃을 뿐이었다.

서문윤이 천하를 뒤흔드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엔 검설린의 지분이 컸다. 서문윤을 믿지 못해 독선적으로 행동하고, 결국에는 그를 속였으니까.

두려움이 검설린을 잡아먹고, 서문윤에게까지 전염되었다.

‘내 존재가 독이 되었다.’

숨을 들이켜고, 검설린이 담담한 목소리를 흘렸다.

“짐이 된 건 나야.”

마치 마음을 읽는 듯한 그의 말에 서문윤이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검설린은 번뜩거리는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소가 섞인 말이 흘렀다.

“내가 네게 뭘 해줬지?”

서문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검설린이 날카롭게 웃었다.

“너를 위해서 뭘 해줬어? 서문윤 말해봐!”

나는 정말 네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다.

“나는 그깟 다리 하나 고쳐준 은혜로 지금껏 네게 폐만 끼치며 살았다…. 내 말을 끊지 마! 그따위 자기 비하가 아니니까.”

입이 근질근질하다. 서문윤이 불만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자 검설린이 이를 갈며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서문윤이 입술을 다물고, 검설린이 이내 잠긴 목소리를 흘렸다.

“하물며 함께 있어달라는 말조차 지키지 못했어. 극복을 하지 못했지…. 나는 네가 두려워할 때 곁에 있지 못했다.”

그러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결국 과거를 이겨내지 못했어!”

이어진 말들은 사실 서문윤에게 고하는 말이 아닌 한탄이었다. 고통을 토해내는 것에 가까웠다.

“뿌리 깊은 인간 불신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내 악질의 병이 네게 전염되었지. 네가 날 불신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지금 이 모양이다, 서문윤….”

검설린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내가 하는 말을 알겠느냐? 서문윤?!”

아니, 도저히 모르겠다.

서문윤이 얼이 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고소를 흘렸다.

“나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아.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본 건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바라보던 서문윤은 이어진 말에 그만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내가 내린 결론이 뭐냐면…….”

그건 너무 뻔뻔한 말이었다.

“……일단 네 곁에 철썩 달라붙기로 했어.”

서문윤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누구 마음대로요?”

검설린은 답변하지 않았다.

서문윤이 멍청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저 귀향하려 했는데요?”

“따라갈 거다.”

서문윤이 말을 더듬었다.

“누, 누구 마음대로…?”

검설린은 태연했다.

“서문린은 내 수하였지.”

서문윤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뻔뻔하게 제 집에 무단취식을 하겠다는 검설린을, 서문윤은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의형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만?”

분명히 서문윤은 갈등하고 있었다. 검설린의 마음의 문이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절망했다. 그를 포기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검설린도 그걸 알았고, 그리하여 장안에 들어오기 전에 서문윤에게 스스로를 쇄신하겠다 빌었던 것이다.

저를 떠나지 말라면서.

“하지 마.”

그리고 장안성 안에서 검설린은 서문윤에게 사랑하지 않는다 말을 했다.

“상관없어.”

그게 서문윤의 마음을 결정짓게 만든 계기였다.

“내가 네 곁을 따라다닐 거니까.”

서문윤은 검설린을 떠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내게…?’

순간 서문윤의 숨이 떨려왔다.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의 감정 문제! 강서진과 귀비에게 지적받았던 회피했던 문제를 마주하고 서문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화약에 관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서문윤의 마음을 흔드는 유일한 것은 바로 담담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검설린, 그의 복잡하고 상처 많은 의형이었다.

서문윤이 울컥하여 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서요!”

검설린은 묵묵히 달릴 뿐이었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건가?

“왜 저를 헷갈리게 합니까.”

완전히 감동에 압도되어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렸다. 꺽꺽 힘겹게 숨을 내쉬며 서문윤이 흐느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다, 당신이 내게 무얼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서문윤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돌봐주기를 원하는 겁니까? 제가 왜요? 절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왜…!”

서문윤의 눈에 불꽃이 튀기고 있었다.

“제게 그럴 의무는 없습니다, 의형.”

이를 악물며 검설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달빛이 매끄러운 얼굴을 누비고 있다. 새하얀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검설린은 정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답변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서문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검설린의 유려한 얼굴을 노려보며 무언의 재촉을 이어나갔다.

침묵 끝에 검설린이 입술을 열었다.

“나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을 더듬었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문득 아래로 향했다.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리며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검설린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에 교차하는 감정을 서문윤은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옷깃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그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숙여라!”

검설린의 눈에 안광이 문득 빛났다. 서문윤을 품에 안은 채 그가 흙바닥을 뒹굴며 몸을 숙였다.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신음이 흐른 순간이었다. 검설린은 서문윤의 뒤통수에 손을 대었으나, 충격파는 고스란히 서문윤의 몸을 쓸고 있었다.

검설린의 입술 밖으로 스산한 목소리가 흘렀다.

“이 개잡놈들이….”

화살이 벽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본 서문윤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까지…… 좌우림군이구나!’

당국의 신료들은 각자 사병을 기를 수가 있다. 검도, 창도, 방패도 민간에 유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개인이 다룰 수 없는 두 가지 품목이 있었으니, 하나가 폭약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화살이었다.

강서진이야 반역을 준비한 자였으니 궁병을 키운 것이었지. 특히 장안에서는 엄격하게 화살의 유통이 금지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서문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급박해졌다. 좌우림군이 개입한 것이다.

서문윤이 입술을 열었다.

“내려주십시오.”

침착한 목소리에 몸을 멈칫하곤 검설린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검설린은 그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서문윤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땅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러곤 물었다.

“몇 곳이 남았습니까?”

검설린은 몸을 멈칫하다가 말을 내뱉었다.

“일곱 곳.”

서문윤의 눈이 잠시간 흔들렸다가 바로 되돌아왔다. 그는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어느어느 곳입니까?”

검설린은 그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그의 입술 밖으로 거론되는 지명을 묵묵히 듣던 서문윤이 어느 순간 입술을 열었다.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알고 계시지요?”

검설린은 그 말의 뜻을 알았으나, 서문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그의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손은 잘게 떨렸고. 서문윤이 그의 어깨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이 검설린을 향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러고였다. 검설린의 이가 악물린 것은.

그렇다! 서문윤의 말이 맞았다. 손이 부족했다. 우우림군은 궁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좌우림군에게 패배한 것이겠지. 폭약을 묻어놓은 일곱 곳 중에 그저 한 곳을 제거했을 뿐인데, 우우림군이 몰아닥쳤으니까.

검설린이 심호흡을 했다.

서문윤은 그를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듯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검설린이 입술을 열었다.

“그래.”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추고, 검설린의 입술 밖으로 나직한 말이 흘렀다.

“날 도와라.”

그러곤 검설린은 자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서문윤은 얼이 나간 얼굴로 그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수긍할 줄은 몰랐는데…. 제 안위에 지극히 민감하던 검설린을 떠올리며 서문윤은 얼떨떨한 마음을 완전히 숨길 수 없어 얼굴 위로 그걸 드러냈던 것이다.

‘의형이 이상해?’

그리고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널 믿겠다.”

검설린이 제 어깨를 쥔 서문윤의 손을 움켜쥔 채 그를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때였다. 서문윤의 마음속 감정의 둑이 무너져 내린 것은. 저를 믿는다 말하는 사내를 마주하며 서문윤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가슴이 떨리고 설움이 북받쳤다. 뒤늦게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고,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가 이를 악물며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귀, 귀비가 죽었습니다.”

오늘 그는 실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강 대인의 목숨도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손에 움켜쥔 온기를 느끼며 서문윤이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전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안해. 사실 불안해 미치겠어.

“좌우림군과 우우림군은….”

“서문윤.”

그리고 검설린은 그 때 횡설수설하는 서문윤에 앞서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하나씩.”

검설린의 어깨에 올려진 서문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으스러지듯 서문윤의 손을 움켜쥐었다가 힘을 푼 검설린이 숨을 들이켰다.

“서문과 주작대로, 폐정(廢井)은 내가 맡으마. 나머지는 네가 책임지고 폭약을 망가트려라.”

시선이 허공에 마주하는 순간 마음은 교환된다.

서문윤은 검설린의 얼굴에 스친 불안을 읽고 멍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그러나 검설린은 그가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살아서 보자.”

서문윤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의형.”

남문, 동문,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

검설린이 가르쳐준 폭약이 묻힌 장소였다. 좌우림군의 추적을 피해 서문윤이 가야 할 곳. 뜀박질을 하며 그곳으로 나아가면서, 서문윤은 그 순간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지극한 기쁨에 휩싸여 있었다.

‘믿었어!’

지극히 원했던 목표를 이루고 희열에 휩싸여 있던 것이다!

‘의형이 나를 믿었어.’

검설린이 저를 보호하지 않았다.

저를 품에서 떠나보내고, 어깨에 인 짐을 나누어 주었다.

‘동등하다 인정을 했어.’

다른 사람 같다면 부담스러워할 일을 서문윤은 지극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설린이 홀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려 하지 않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바라왔다.

‘죽음과 생을 같이하는 걸 선택했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하자고!’

그것이 심지어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임에도 검설린은 서문윤과 함께 생사의 기로에 맞서길 택했던 것이다. 그 사실에 서문윤은 눈물이 났다. 그가 스스로를 쇄신하지 못해 부딪쳤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아….’

완전히 기쁘기보다는 눈물이 났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검설린이 무수히 많은 나날 동안 고통을 받았던 걸 알고 있다. 그는 제가 거의 평생을 가진 것들을, 사람들을 빼앗기며 살아왔다.

그러니 검설린은 지금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을까?

절망하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상실을 겪었고 더한 불행을 기피해온 자.

그런 그가 지금 품을 마음을, 서문윤은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그에 감동과 격정이 물결치며 서문윤은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팔려서. 기쁨과 슬픔과 감동과 당황을 함께 누리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던 와중 문득 그가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마음을 다잡은 것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거야!’

검설린이 변화를 꾀했다. 달라질 거란 다짐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변화하려 노력을 하고 있으니 저 또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뿐이다!

그리하여 서문윤은 다시금 명료하게 눈을 빛냈다. 총기를 되찾고 목표를 다시금 확인했다.

먼저 찾아갈 곳은 남문!

서문윤이 횃불을 피해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남문으로 향했다.

* * *

북문(北門).

검설린이 조소를 흘렸다. 팔의 완갑을 다시 조이며 그는 발아래 늘어진 시체를 살피고 있었다. 묵묵히 그것들을 바라보며 손에 들린 검을 떨어트렸다. 좌우림군의 시신에서 흘린 피가 폭약에 스며들고 있었다. 폭약은 터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검설린은 기뻐하지 못했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그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머릿속에 스치는 건 그 옛날의 기억들이었다.

너무나도 선량한 이청융을 위해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혔던 기억.

장안사준은 이청융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다.

그를 위해서, 이청융이 펼치는 세상을 도래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 희생된 자들은 결코 적지 않다. 비록 그가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악천화! 그대는 반드시 악행의 대가를 치를 겁니다.”

머리에 스치는 날카로운 여인의 말. 귀비의 한이 서린 목소리를 들으며 검설린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연이어 머리에 스친 건 저를 사악한 자라 말을 하는 서문윤이었다.

생각에 잠길 시간은 없다.

검설린이 발을 움직이며 주작대로로 향했다.

소란이 남문에 이는 것을 확인했으나 검설린은 손을 움찔거릴 뿐 그곳을 향해 몸을 돌리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검설린이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닦았다.

‘나는 네가 죽으면 죽을 거다.’

마음 한구석이 허했다.

제가 정말 맞는 길을 가는 건가?

쉴 틈 없이 의문하며 검설린은 늦췄던 발걸음을 뗐다.

* * *

남문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먼저 선수를 치고 좌우림군들이 폭약을 운반하고 있었다. 서문윤은 그를 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폭약을 빼앗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아무리 서문윤이 무과 급제자라 하더라도, 나름 제 무술실력에 자긍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 상황은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거의 백 명이 다 되는 금군에 어찌 맞서는가?

하물며 저들은 황제의 근위대, 정예 중 정예인 좌우림군이다!

‘어, 맞서 싸울 필요가 있나?’

그러나 서문윤은 빠르게 생각을 고쳤다.

‘폭약이잖아?’

부산스럽게 폭약을 옮기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는 서문윤의 눈알이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또다시 파격적이고 조금은 미친 생각을 한 것이다. 제게 정상이 아니라 평했던 검설린과 헛웃음을 흘리던 강서진을 잠시 떠올린 서문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분께서도 내게 무어라 말을 못 하실 거다.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항우가 와도 폭약을 빼돌리지 못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리하여 서문윤은 조정에서 뼈가 굵은 이들을 실로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창의적이고도 기발한 행동을 또다시 했다.

무얼 했냐면.

“어, 어억?!”

다시 거리로 돌아가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횃불 무리들을 급습하여 그들의 횃대를 뺏은 것이었다. 천하에서 이름을 댈 만큼 무공이 고강한 것은 아니나 서문윤 또한 무과 장원이었다. 서너 명쯤은 거뜬하게 상대할 수 있어, 서문윤은 그들의 옷을 뒤적거려 마침내 필요한 것을 찾아낸 것이다.

‘화살, 화살이….’

그들이 활을 쏘는 것을 보았었다!

‘아, 찾았다!’

첫 번째 무리에게는 화살이 없었고, 두 번째로 급습한 무리에게선 활과 화살이 있었다. 한 손에는 횃대를, 한 손에는 활을 든 서문윤이 횃대에서 지푸라기를 분리하여 화살촉에 감았다. 불화살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무얼 했냐면.

퍼어엉!

“으아아악!”

“불, 불화살! 불화살이다!”

남문에서 운반되는 폭약을 터뜨렸다.

비명이 비산했다.

남문이 아수라장이 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주작대로로 향하고 있던 검설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졌다. 음울하고 비틀린 생각을 하던, 또다시 생각의 나래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려 불안을 느끼던 검설린은 그 순간 완전히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비틀거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니, 사실은 짐작이 간다!

‘미, 미친놈!’

검설린은 완전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경악하여 입술을 벌렸다.

‘수도 안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몰라서…?!’

그 방법이 쉽지 않아서 검설린이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폭약이 일단 터지면 그것의 존재를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러면 귀비가 폭약을 모은 사건을 해명해야 했고, 장안성 전체가 터져나갈 뻔한 사건이 정계의 화두로 떠오른다. 이건 전혀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장안성은 종묘사직이 있는, 천하의 중심이다!

강서진이나 중서령같이 천하를 뒤엎으려 했던 역천자나 장안을 무너트릴 생각을 하지, 사실 보통 사람들은 그곳에 피를 흘리는 걸 경멸했다. 이청은이 후대의 천하를 쇄신할 개혁자로 협의가 다 된 상황에서 장안을 뒤덮은 폭약의 정체는…… 말 그대로 정계를 휩쓸 폭탄이 될 것이다.

“미, 미쳤군.”

검설린은 그에 핼쑥한 얼굴로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망연자실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의 얼굴이 어느 순간 일그러졌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검설린이 빠르게 발을 놀려 주작대로로 향했다.

‘내가 네놈을 믿은 게 잘못이지!’

서문윤이 더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저가 필요한 것 같다.

같은 시간 서문윤이 골목골목으로 좌우림군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헉, 허억!”

비틀거리며 낫 모양으로 꺾이는 골목을 돌던 서문윤이 좌우림군의 복장을 한 이들을 마주하고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그들은 모두 흉흉하게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서문윤은 뒤늦게 제가 좌우림군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모른 척 지나가려 꼼수를 쓰려 했다.

“하하. 여기엔 없….”

“저놈이다! 저놈, 저거 태자 익위…! 악!”

물론 다 들통난 일이었지만!

“내가 망신살을 조금 당했어도… 나름 무과 장원이었다고!”

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이의 팔목을 잡아 비튼 서문윤이 손에 든 검을 움직였다.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고 서문윤의 얼굴이 희미하게 굳어졌다. 그는 아직 살인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

‘아, 이러면…. 안 돼.’

순간 어지럼증을 느낀 서문윤이 머리를 황급히 휘둘러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알량한 죄책감이나 살인의 충격에 휘말릴 때가 아니다. 천하의 운명이 우습게도 그의 손아귀에 달린 것이다. 서문윤은 그리하여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미친 듯이 달리며 동문을 향해 나아갔다.

“저 쥐새끼가!”

골목의 샛길을 빠져나가는 서문윤을 추격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분노 어린 고함을 뒤로한 채 서문윤이 빠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한 가닥 하는 놈이다. 조심해!”

* * *

주작대로의 남부, 시장의 입구에 도착한 검설린이 그 순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러지 마라, 권청.”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좌우림군이 깔려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 서 있는 이는 검설린이 누구보다 잘 아는 자였다. 반듯한 인상의 마흔 후반의 중년인이 그를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정명공.”

목소리는 울림이 깊게 퍼지는 것이었다.

“저는 누구보다 황실과 가까운 자이기에 알고 있습니다.”

검설린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권청, 좌우림군 장군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 왕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청은을 정말 믿으십니까?”

검설린은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믿느냐?”

권청은 그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하려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검설린이 빈정거린 탓이었다.

“강서진은? 중서령은?”

그제야 그 말이 질문이 아닌 조롱인 것을 깨달은 권청이 얼굴을 딱딱히 굳힌다. 서슬 퍼런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알량한 말로 네가 흘릴 피를 정당화하지 마라! 너는 최악의 방법을 택했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해.”

경고성의 음성이 흘렀다.

“정명공.”

검설린은 음울히 웃었다.

“나 또한 그래야 하지.”

* * *

“세상의 권세가 모래성과 같구나.”

검에 배가 꿰뚫린 강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때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던 사내, 권청은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데 일조한 강서진을 증오했고 그의 배에 검을 꽂았다. 급소를 꿰뚫었으나, 확인 사살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라는 의도였다.

“그것으로나마 세상 사람들에게 사죄를 하시오!”

그의 의도대로 강서진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루 말을 할 수 없는 아픔에 시달렸다. 그러나 권청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강서진이 그의 말을 비웃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통 따위로 죄를 사죄를 할 수 있나?

이미 강서진은 진정한 고통을 맛보았다. 죽음이란 안식과 같았고.

멍하니 인생을 회고하고 있었다. 권청의 의도와 다르게 강서진은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번 것을 그에게 감사히 여겼다. 하나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던 그가 문득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너는 나를 비난할 거냐?”

흐릿한 눈에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무언가를 마주하는 듯 한 곳을 빤히 바라보던 강서진이 헛웃음과 함께 입술을 달싹거렸다.

“운도 지지리 없지.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너도 나도.”

그게 강서진 유언의 끝이었다.

* * *

서문윤이 미친 듯이 달렸다.

동문으로 향하는 길. 뜀박질을 하던 와중 그는 어느 순간부터 곤혹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포위가 너무 많아!’

연달은 실패로 인해 좌우림군이 남은 폭약을 목숨을 걸고 사수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이 동문으로 가는 골목길 구석구석에 쫙 깔렸고 그에 서문윤은 어느 순간부터 제가 구석에 몰린 것을 깨달았다.

마치 몰이사냥을 당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세력의 부재로 서문윤은 곤궁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그러던 와중의 일이었다.

서문윤이 골목의 끝을 돌던 와중 문득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움켜쥔 것은.

‘누, 누가?’

그 순간 경악한 서문윤이 눈을 크게 뜨며 반사적으로 손에 든 검을 움직이려 했다.

“조용히 해!”

만약 귓가에 울린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윤은 당일에 들은 사내의 목소리를 잊을 만큼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검으로 향하는 손을 우뚝 세우고 진정할 수 있었다.

“당신?”

“이런 제기랄!”

경악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눈으로 서문윤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가포목점에 있었던 태자의 사람이었다. 흥분한 사내가 이를 악물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너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사람들이 태자전하의 이름을 왜 떠들고 다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너 태자전하의 사람이 맞기나 한 거냐? 전 익위였다며! 보아하니 태자전하의 손을 떠난 사람 같은데 무슨 연유로 그 패를….”

“태, 태자전하께 가지 않았습니까?”

아니,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아!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서문윤은 그야말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폭약이 장안성 안에 쫙 깔려 있고, 좌우림군을 비롯한 조정의 일부 세력들이 이청은을 그것으로 제거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내에게 맞기고 서문윤은 안심하여 사지로 나아갔던 것이다!

“지, 지, 지금 당신은 장안을 빠져나가서 태자전하를 뵙고 있었어야 해요!”

그런데 저자가 이곳에 있다니?!

“닥쳐! 다 너 때문이잖아!”

그러나 그에게 항의하려던 서문윤은 이어진 사내의 말에 입술을 꼭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걸 모를 줄 아느냐! 네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왜….”

“폭약이 터져서 문이 막혔어! 도망갈 곳을 잃었다고. 제기랄!”

서문윤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암문이 남문에 있었구나….’

그럴 줄은 몰랐지. 머쓱해진 서문윤이 입술을 꾹 다물고 사내의 눈치를 보았다.

“어떤 자식인지 몰라도 난장판을 만들어… 너냐? 설마.”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던 사내는 그의 얼굴에 모든 것을 예감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굳어지는 서문윤의 얼굴이 말해주는 바가 있다. 그 순간 사내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완전히 미친 짓을 저지른 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 이 개새끼….’

사내는 잠시간 그에게 화를 낼까 고민을 했으나 역치를 넘어설 만큼 거세진 분노에 오히려 마음이 평화로워져 그만두기로 했다. 그 대신 사내는 서문윤에게 품에서 패를 꺼내어 던졌다.

분노를 억누르며 그가 말을 내뱉었다.

“좌우림군 패다!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왜 위장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날뛰는 거냐?”

“어, 얼굴이 노출이 되어.”

“써라!”

서문윤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제게 던져진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서문윤의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사람의 얼굴 모양의 가죽 가면이었던 것이었다.

인피면구(人皮面具)!

‘이, 이게 정말 있었다니?’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인간의 살가죽으로 만든 가면! 그를 손에 들고 서문윤은 부르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거부감에 그는 가면을 쓰길 망설였으나, 이어진 차가운 목소리에 결국 그것을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시체의 존엄을 생각하다가 수천만의 목숨을 잃을 생각이냐!”

서문윤은 복잡한 얼굴로 그것을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너 장안성 안에서 폭약을 터뜨린다는 의미가 뭔 줄 아느냐?”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굳이 알아야 할까요?”

서문윤은 조금의 억울함을 느꼈다.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라의 수도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일이 큰일인 걸 그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서문윤은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그 인원을 뚫고 어떻게 폭약을 망가트려. 그때는 그런 방법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그러나 서문윤의 마음을 모르는 사내는 그의 말에 길게 침묵한 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어쩐지 그가 지금 짓고 있을 표정이 예상이 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제가 꽤나 답이 없는 자로 구축이 되었으리라. 그런 생각에 서문윤은 머쓱한 마음으로 인피면구를 어루만지다가 손을 멈칫했다. 문득 복잡한 마음이 든 것이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 서문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난세긴 하군요. 정말 이런 물건까지 나오고.”

풍문, 혹은 전설상으로 돌아다니는 물건이 등장했다. 시체에서 얼굴 가죽을 벗겨내어 만드는 기물이 등장했으니.

“정신이나 차려!”

그러나 서문윤은 사내의 으름장을 듣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저버려야만 했다. 일각이 아까운 때였다. 사내의 말대로 죽은 자를 생각하다가 산 자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리하여 서문윤은 좌우림군으로 위장하는 일에 집중을 하려 했다. 검집을 쥔 채 군인처럼 각을 잡았다. 사내를 옆에 둔 채 발을 맞추어 걸었다. 이인일조로 다니면서 동료와 합을 맞추는 것. 그건 서문윤이 익위 때 배웠던 군인의 기본 가짐이었다. 서문윤은 그걸 어색하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색을 하는 좌우림군 사이에 스며든 채 그들은 동문으로 향했던 것이다.

허공을 바라보는 서문윤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서려 있었고, 사내는 그런 그의 동요를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서문윤을 잠시간 바라보던 그가 문득 입술을 열었다.

서문윤의 주의를 앗아간 말이었다.

“신경이 쓰이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서문윤이 몸을 우뚝 세웠다. 주어를 잠시간 고민하던 서문윤이 흐릿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예….”

동문이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안 좋은 티를 내었다 그가 불쾌히 생각하는 건가?

서문윤이 다시금 뻣뻣해지는 몸을 애써 가다듬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주변의 좌우림군에 섞여 들어가려 노력을 했다. 혹여 마음의 동요가 드러내지 않게. 그래서 일을 그르치지 않게.

검설린이 처음으로 준 믿음을 무참히 저버리지 않게 말이다.

그렇게 서문윤이 평정심을 되찾을 때였다.

“네가 그 서문윤이더구나.”

서문윤이 얼떨떨하게 아, 예, 대답을 했다.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굉장히 유명한 놈이야.”

사내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충신인지 난신인지에 대해서는 태자빈객과 익위들 사이에서 논의가 활발하지.”

담담히 말을 흘려 넘기던 서문윤은 그 말에 이르러서는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 어째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항의의 말을 내뱉으니, 사내에게서는 코웃음 치는 소리가 돌아왔다.

“네가 벌인 일을 잘 생각해보거라.”

그 말에 서문윤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으, 으음.”

하기사 지금까지 벌인 일이 조금 많지?

조금의 머쓱함과 조금의 미묘한 기분을 삼키곤 서문윤이 사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난신이라니? 도대체 왜….’

제 행동이 태자를 곤혹스럽게 한 것 때문인가. 그런 거라면 이해가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당혹스럽긴 했다. 그래도 같은 태자 익위였는데. 조금은 섭섭해하던 서문윤은 그러나 이어진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기사, 나는 진정한 의미의 태자의 사람은 아니었지.’

그야말로 물밑에서 태자의 일을 처리하는 이들이 진정한 태자의 사람이었다. 서문윤이 한때 될 뻔했던 이들. 태자는 서문윤의 지나친 올곧은 성품을 이유로 그를 완전한 제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낙향시켰다.

그때는 당황했었다. 왜 다리까지 바쳐 태자에게 충성한 저를 제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에 대해서 원망을 내심 품었었다.

아니, 사실 서문윤은 태자의 결정을 최근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 알겠군.’

그러나 지금 어느 정도 깨달았던 것이다.

‘인피면구…….’

그를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태자가 저가 용납을 못 할 일들을 물밑에서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세상을 일구겠다는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아니,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겠지. 강 대인과 의형의 반응만 봐도 그건…….’

태자를 지극히 경계했던 이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중앙 정계에서 버티려면 어느 정도 암투에 몸을 담아야 한다는 건 이해가 간다.

단지 문제는 그것의 수위였다.

갑자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서문윤이 잠시간 상념에 잠겼다. 그런 일들. 대의를 위해 도덕적인 흠결을 신경 쓰지 않는 일. 그런 세간의 방식을 서문윤은 반대해왔다. 그러니 서문윤은 검설린이 저질렀던 일을 깨닫고, 또 이청은의 이면의 모습을 어렴풋이 눈치채면서 내심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간 깊게 생각한 화두에 다시금 잠겨 그는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을 깨닫지 못했다.

장고한 끝에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무겁게 던질 수 있을 뿐이었다.

“저는 태자전하를 믿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일은 벌어진 후다. 나는 전하께 믿음을 주었지.’

서문윤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고.’

도덕적인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난세에 사람을 이끄는 빛이자 지침이었으므로. 그러나 지금 상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건 폭약일 뿐이야.’

그래, 그 일.

‘그 뒤의 일은 그분들이 알아서….’

서문윤은 그 순간 확고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내게 중요한 건 내 일이지!’

지금 이 순간 그는 선택을 거의 내린 후였다. 서문윤의 얼굴에 후련함이 자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계에 있을 깜냥이 안 돼….’

복잡한 사정을 생각하기에 머리가 좋지 않다. 이청은의 제안에 망설였으나, 서문윤은 결국 마음을 잡은 것이다.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 중요한 건 스스로의 일이다.

서문윤은 폭약의 일을 생각했고, 또 다른 중요한 일을 생각했다.

‘의형.’

서문윤의 눈이 별처럼 반짝 빛났다.

그 순간 사내가 중얼거렸다.

“믿음이라….”

동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문윤은 사내의 말 기저의 숨겨진 묘한 어감을 알면서도 못 들은 체했다.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충성이 아니라?”

서문윤은 그 또한 모르는 척했다.

충성은 그의 몫이 아니었으므로.

사내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않았고, 그렇게 그들은 동문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동문은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명령을 받고 동문의 폭약을 파헤치는 좌우림군은 지금 폭약을 옮겨야만 하는지, 궁궐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항복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이게 맞는 일이라고?”

“지금 궁궐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는데….”

“장군의 말을 어기자는 거냐 뭐냐?!”

서문윤이 그들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며 상황을 가늠했다.

‘수뇌부랑 연락이 안 되는 건가?’

현장에 임한 중간 간부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잠시간 좌우림군 장군의 거취를 가늠하던 서문윤이 이내 고개를 돌려 폭약을 찾았다.

문제의 폭약은 수레에 실어져 있었다. 서문윤은 무심코 화살에 다시 손을 뻗다가 흉흉한 사내의 눈빛에 질려 손을 거두고야 말았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아무리 그들이 혼란에 가득 찼다 하더라도 군인이다. 서문윤은 군인들 사이에 상명하복의 기풍이 얼마나 깊게 뿌리 박혀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항의하는 말에 사내는 그를 어둑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악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행해라.”

그 말에는 이상한 어감이 있었으므로. 서문윤은 움직이려던 몸을 멈칫하며 그의 안색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장안은 태자의 정치적 기반이 될 곳이다!”

사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서문윤을 노려보는 눈은 괘씸한 것을 보는 눈으로 가득했고.

“비켜.”

사내가 품을 뒤져 죽통을 꺼냈다. 죽통을 흔든 사내가 입술을 팔로 가린 채 그것의 뚜껑을 열었다. 서문윤은 얼이 나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제 입을 틀어막는 손길에 뒤늦게 그것이 독연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죽통에 서문윤이 입술을 틀어막고 엄폐물을 찾았다.

“어, 저게…….”

“비, 비켜!”

죽통이 떨어지는 순간, 동문에는 소란이 마치 해수면의 물결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으윽!”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 사내를 따라간 서문윤이 숨을 헐떡거리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죽통이 날아오는 순간 코와 입을 가린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숨을 들이켰고 죽통의 연기를 맡고 쓰러져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감탄을 삼키며 그가 중얼거렸다.

“태자전하께서는 많은 걸 준비해놓으셨군요.”

사내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혼란이 번져 나간 동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확실히 사내는 훈련을 받은 태자의 사람다웠다. 그는 서문윤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그리고 더 확실하게 일을 처리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까지 나무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내가 시간이 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수면독이군. 마비독도 섞었나?’

바닥을 꿈틀거리는 이들의 명줄은 무사한 듯했다. 대량학살이 눈앞에서 일어난 건지 내심 오싹함을 느끼던 서문윤은 그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안도는 곧 절망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폭약이 든 수레를 엎고 난 후 고개를 돌린 서문윤이 얼어붙고야 만 것이다.

“으악!”

“끄윽….”

그는 한참을 몸을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성을 되찾은 서문윤이 그 순간 얼굴을 무너트렸다.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리는 그의 앞에서는 바닥을 기는 좌우림군의 다리를 찌르는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서문윤은 폭약을 엎고, 사내는 연기가 흘러나올 때 입을 틀어막아 쓰러지지 않은 소수의 병사들을 상대했다. 그렇게 분업을 해서 상황을 알지 못했는데…… 사내는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을 모조리 무너트리고 다른 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아, 이런 미친…!’

그리고 그 작업은 서문윤이 진실로 동의하지 못할 잔인한 일이었다.

벌레처럼 기어가는 좌우림군의 다리를 찌르는….

서문윤은 그 순간 도저히 참지 못했다. 그를 향해 다가간 서문윤이 사내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내뱉었다.

“그, 그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사내는 흘끗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빛을 날카롭게 하곤 검을 비틀었다.

“끄윽!”

서문윤은 땅에 피가 스며드는 장면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아, 이건….’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다리의 힘줄을 끊으며 사내는 중얼거렸다.

“네가 죽여라.”

인피면구의 사람 좋은 중년인의 인상이 그의 차가운 눈빛을 가리지 못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통곡 어린 비명 한가운데서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전력을 축소시켜야 함을 모르느냐?”

서문윤은 가는 숨을 내뱉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힘을 준 말이 이어졌다.

“너도 보았지만 좌우림군의 수뇌와 장교들 사이에 연락이 뚜렷하지 않다! 장교들이 전략에서 이탈했을 가능성이 충분하지. 그들은 내심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사내는 마치 서문윤의 다리 또한 찌르고 싶어 하는 듯했다. 승냥이처럼 빛나는 눈빛과 마주하고 서문윤은 그제야 사내가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뒤늦게 아까 전 이루어졌던 대담의 의미심장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침음이 흐른 그 순간 사내의 입술 밖으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쓰러진 이들 중 동료가 있다면 더더욱 이 개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들 거다.”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따위 얼굴은 집어치우고 당장 따라와!”

사내의 눈에서는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빈정거리는 말이 이어졌다.

“중요한 게 뭔지 내가 또 말을 해야 하나.”

* * *

‘아, 이건….’

서문윤은 머릿속에 스치는 기억을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그래, 지금 눈앞에 놓인 일들만 생각해도 버겁다.

‘이건 너무….’

그러나 서문윤은 굳어져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이를 악물며, 가빠지는 숨결을 참으려 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서문윤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묵묵히 사내의 등 뒤를 따르는 서문윤은 알지 못했다.

앞서가는 사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눈빛이 차갑게 변모해 있다는 것을.

문묘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문윤이 폭약을 해치울 장소.

‘얼마 남지 않았다.’

서문윤이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쉽잖아?’

죽음을 각오했는데, 예상외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다행이었다. 이윽고 서문윤의 생각이 한 사내에게로 흘렀다. 이제 마지막. 그러면 의형은 무사하실까? 그 또한 저처럼 순조롭게 일을 해내고 있을까.

그리 생각하던 서문윤의 귓가에 때마침 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아아아! 악천화!!”

“이 개자식!”

멈칫한 서문윤이 고개를 돌리고, 그 순간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주작대로!

장안이 자랑하는 거대한 길의 끝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병사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병사들이 있었다.

좌우림군 사이에서는 혼란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잠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서문윤은 이내 그들의 상황을 살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경악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문윤이 희미한 기쁨을 띤 목소리로 소리쳤다.

“의형께서…… 성공하셨군요!”

그러나 마땅히 안도해야할 사내의 얼굴은 도리어 굳어져 딱딱하게 변모해 있었다. 서문윤이 그의 이상한 점을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개를 돌린 서문윤이 몸을 멈칫했다.

“폐정.”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폐정으로 가자.”

서문윤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문묘로 가던 길이 아닌가.

폭약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고.

“안 좋은 낌새가 난다.”

그러나 사내의 얼굴이 워낙 다급하여 서문윤은 차마 그에게 더 이상 항의를 이어나가지 못하곤 입술을 다물고야 말았다. 사내는 창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검설린이 이동할 다음 잠소가 폐묘라 하였느냐?”

서문윤이 그 말의 위화감을 깨달은 것은 폐정에 이르러서였다.

* * *

폐정으로 다급히 향했다. 상황이 다급하여 서문윤은 처음에는 그의 말 중에서 무엇이 잘못된 건지 파악을 할 수 없었다. 바삐 움직이던 서문윤이 정신을 차린 것은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후의 일이었다.

‘이, 이래도 되는 걸까?’

폐정에는 왜 간다는 건지.

그의 말투와 눈빛에서 흘러나온 기세에 주눅이 들어 엉겁결에 말을 따랐으나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 애초에 검설린과 약속했던 길과는 다르다. 폐정이 아닌 문묘로 가야 하는데.

서문윤의 마음에 슬슬 불안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는 저를 믿어주었는데, 이렇게 의형의 말을 어기고 함부로 해도 되는 걸까?

아니, 다 떠나서 정말로 이래도 되는 것일까?

서문윤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상념에 잠겼다.

‘그래도 태자의 사람이니 나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판단하지 않으려나? 아니, 그렇다고 그를 믿을 수 있어?’

생각을 버리고 머리를 가볍게 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애초에 폐정에 왜 간다는 거지? 의형이 성공을 했다는 걸 알아채고. 도대체 내 곁에 있는 그 짧은 시간에 무슨 단서를 얻은 거야?’

곰곰이 생각하던 서문윤의 귓가로 문득 사내가 했던 말이 울렸다.

“검설린이 이동할 다음 잠소가 폐정이라 하였느냐?”

그리고 그 순간 서문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뭐?’

그는 뒤늦게 그 짧은 말의 잘못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검설린?’

서문윤의 숨이 멈춘다. 그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입술이 파르스름해졌다. 두 눈을 크게 뜬 서문윤이 제 앞에 자리한 사내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설린이라고? 악천화가 아니라?’

그 이름은 장안사준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그 순간 서문윤이 공황에 빠졌다. 의심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서문윤은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뻣뻣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서문윤의 호흡이 빨라졌다.

‘아, 아니야. 태자의 사람이니 깊은 내막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정의 깊은 비사를 알 법도 하지.’

그리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려 했으나.

‘그런데 왜 검설린이라 불렀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대목에서 검설린이란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 이상하다.

본디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례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가 마땅히 칭해야 할 호칭은 정명공, 혹은 가짜 성씨를 딴 악공이었다.

이름을, 그것도 검설린의 옛날 이름을.

반역의 오명을 뒤집어쓴 이름을 부른다고?

그것도 태자의 사람이?

‘이렇게 큰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잖아!’

서문윤의 눈이 그 순간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호흡이 가다듬어지고 있었다. 얼굴빛은 차분해지고, 몸의 떨림은 멎었다.

그 순간 확신을 하고야 만 것이다.

서문윤은 본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이어질 행동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인데.”

의문이 서린 말이 흘렀다.

폐정으로 향하는 길. 사람이 바글거리는 구간을 앞에 둔 시점이었다.

“폐정은 왜 가시는 겁니까?”

서문윤이 말없이 손으로 검을 뽑았다. 사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짧은 침묵 끝에 말을 내뱉었다.

“네 의형이 위험하다.”

서문윤은 그 말에 조용히 되물었다.

“왜 구하러 가십니까?”

이번에 답변은 바로 돌아왔다.

“한 배를 탄 입장이니까.”

그는 그 대목에 이르러 언성을 높였다.

“너는 모르는 깊숙한 이야기다! 검설린은 죽여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근엄한 얼굴로, 엄숙하게 말을 한 사내가 그 순간 고개를 돌려 서문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수룩하지만 예리한 면이 없잖은 서문윤을 잘 타이를 생각이었다. 그를 설득해 폐정으로 가는 당위성을 납득시킬 생각이었다.

“너는 아무런 생각도 말… 너!”

그러나 그는 세 치 혀를 놀릴 수 없었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예리한 칼!

그에 식겁하여 허리를 뒤로 꺾곤 사내는 분기에 어린 목소리를 터뜨렸다.

“감히!”

골목이었다!

대로에 나서기 전, 사람들이 드문 장소. 그러나 곳곳에 횃불을 밝히는 좌우림군이 순찰을 나서는 곳.

방심을 해서는 안 되는 장소에서 서문윤은 같은 편에게 칼부림을 했다. 그는 사내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제 검을 피한 사내의 다리에 다리를 걸어 그를 넘어트리려 했다. 사내는 넘어지지 않았으나 몸을 비틀거렸고, 그 바람에 팔을 베는 검을 완전히 막지 못해 크흑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사내의 몸이 비틀거렸다 .

피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공격이 성공한 상황에서도 서문윤은 안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중원 곳곳을 떠돈 숙련된 무인이었다.

‘정치는 몰라도 이런 건!’

그는 이제 방심을 하지 않았다. 그 검설린도, 그 이중환도 방심을 하다가 쓰러지지 않았던가?

서문윤은 그에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른 것이다.

“헉!”

사내의 팔을 베었던 검이 그의 어깻죽지를 찔러 넣었다.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린 사내가 동시에 허리춤의 비수를 꺼내어 서문윤의 배를 찌르려 했다. 서문윤이 몸을 뒤로 빼내었을 때 사내 또한 몸을 빼내어 골목의 벽을 방패로 삼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흐르고, 서문윤이 침착한 목소리를 흘렸다.

“너무….”

손으로 배를 더듬은 채 내뱉은 말이었다. 상처는 스친 것이 전부다.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서문윤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너무 나를 우습게 보는군요.”

명료한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겁니까!”

서문윤은 꺾어진 골목, 모퉁이 너머에 있을 사내의 위치를 가늠하며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당혹감과 노기가 서린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끼리 내분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서문윤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처가 깊었나 보군.’

사내는 당황을 하는 성격이 아닌 듯 보였다. 애초에 무인에게 그것은 품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했고. 특히나 은밀한 일을 처리하는 은위들은 전투 중에 욱하는 버릇을 버리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걸 잘 아는 서문윤은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먼저 속내부터 말씀하십시오.”

사내의 계획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또는 상태가 많이 안 좋거나.

“검설린, 그 이름은 어찌 아셨습니까?”

그리하여 조금은 안도하여, 서문윤은 사내를 바로 죽이지 않고 추궁하려 들었다. 배에 있는 상처를 등한시하고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나는 식견이 없어서 판단할 수 없어. 잘 달래고 협박을 해서 말을 들으면….’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태자가 비밀리에 키우던 사람의 심계가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 깊었다는 것이었다.

“감히!”

그들은 태자가 고우군을 상대하기 위해 양성한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교활한 너구리를 상대하기 위해 술수를 배운 이들이었다.

“헉!”

그들에게는 목소리에 힘을 빼는 것도, 상처를 입은 연기를 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당했다!’

서문윤이 손으로 입술을 막고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모퉁이 밖으로 뛰쳐나온 사내의 죽통이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거리는 순간 서문윤이 이를 악물고 몸을 무너트렸다.

파바박, 소리를 흘리며 날카롭게 쏟아져 나간 것은 독연이 아닌 암기였다.

서문윤은 몸을 일찍이 넘어트려 암기를 피할 수는 있었으나,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망했…!’

“죽어!”

등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떨어져 내리는 검을 피하려 서문윤이 몸을 굴렀다.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움직이고 있었다. 제 하반신을 찌르는 검을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주워 휘둘러 간신히 튕겨낸 서문윤이 가쁜 숨을 흘리며 다시 검을 흘렸다. 충혈된 눈을 한 사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제길….’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러 열세에 몰리고야 말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문윤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 때였다.

“너, 뭔 짓을 저지르려 했어….”

그것은 서문윤의 몸을 멈칫하게 만든 말이었다.

“내가 뭔 짓을 저지르려 했냐고…?”

끄그극.

부딪친 검과 검에서 불꽃이 튀겼다.

‘뭐?’

사내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서문윤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카앙!

날카로운 격음이 흐르고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밀려져 뒹굴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억지로 힘겨루기를 해야 했던 서문윤이 격한 기침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던 와중에 벽 너머로 일렁거리는 횃불의 불빛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좌우림군!’

서문윤이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자, 잠깐!”

그들은 좌우림군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싸우는 수상한 모습이 들키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네놈들은 무슨 짓을 저지르려 한 거냐!”

“그만, 지금 우리는 화합을….”

“무슨 연유로 태자전하께 계속 다가오는 거냐! 그리고 전하께 이상한 혐의를 덮어씌우는 거야.”

그러나 사내는 완전히 흥분한 듯했다. 이성을 잃은 그의 눈과 마주하고 서문윤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

아니나 다를까였다.

“거기 누구냐!”

서문윤은 그 순간 이를 악물고야 말았다.

‘이런 제기랄!’

완전히 망했다!

“너는 분명히 역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검설린! 그 난신적자가 원한을 잊지 않고 술수를 부리는 게지. 민심을 얻고 군공을 채워….”

그 말을 들은 순간 서문윤은 온몸에 완전히 힘이 빠지는 탈력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사내의 이글거리는 눈을 본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이자….’

때마침 귓가에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뭐야, 너희 뭐 하는 거야…!”

사내는 완전히 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를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어.’

이글거리는 눈과 마주하고 서문윤이 심호흡을 했다. 수색을 하던 세 쌍의 좌우림군이 모퉁이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림군의 복장을 하고 서로 검을 들이대고 있는 이상한 상황.

“이, 이게 뭐 하는….”

그에 그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을 때 서문윤은 빠르게 대응했다.

“저자! 세작이요! 내게 폭약의 위치를 캐묻다가 날 공격했어!”

광인처럼 말을 쏘아붙이던 사내의 입술이 뚝 다물린 순간이었다.

습관처럼 아무런 말을 내뱉던 서문윤이 죽어라 저를 노려보는 사내를 머쓱하게 바라보았다. 좌우림군의 시선이 돌아가 사내를 응시하고, 그 순간 일은 벌어졌다.

“잡아라!”

사내는 변명을 하는 데 굳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 * *

그리하여 뜻밖의 추격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폭약을 처리하려면 한시가 바쁘건만! 뜻밖에도 서문윤은 좌우림군 사이에 섞여 사내를 쫒아야만 했다. 족제비처럼 잘 피하는 사내에 약이 오른 그들이 중간에 산개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다행히 몸을 빼낼 수 있었으나, 그 전까지 서문윤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문, 문묘! 빨리 문묘를 가야.’

그리하여 서문윤은 완전히 식겁한 채로 발걸음을 바삐 놀렸던 것이다. 등 너머의 소란을 무시한 채 그는 오로지 문묘의 폭약에 대해 생각했다. 검설린이 제게 맡긴 과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나를 한 번 믿었으니, 그 믿음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의형이 신뢰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

그건 서문윤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문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질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서문윤이 문묘로 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이 개자식!”

“헉!”

날아오는 검을 막으며 서문윤이 눈을 부릅떴다. 흉흉한 눈을 빛내는 사내가 그의 앞에 있었다.

‘아니, 이걸 놓쳤어?’

도망쳤던 태자의 사람이 그곳에 있던 것이다!

“자, 잠깐!”

“죽어!”

의형을 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문묘로 가는 길을 자꾸만 저지당하는 상황을 불행이라 해야만 하나.

둘 중 어느 것인지 서문윤은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는 저를 향해 쏟아지는 검을 막는 데 급급할 뿐이었으니까. 초조함이 서문윤의 얼굴에 물들고, 그는 결국 이를 악물며 소리치고야 말았다.

“이건 태자의 뜻입니까?”

챙캉! 검이 부딪치는 순간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당신 태자의 사람 아닙니까?”

이청은은 저를 죽이고자 하지 않았다.

서문윤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분의 말과 권위에 복종해야 할 자가 어째서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겁니까? 당신의 임의적인 판단으로 나를 죽이면….”

“상명하복!”

그 순간 서문윤의 두 눈이 흔들거렸다.

‘뭐라고?’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전하께서 나를 죽이려 했다고?’

상명하복이라는 말이 안겨주는 파장은 컸다. 설마 그가 나를 속인 것인가. 암중으로는 저를 역시나 배신자라 생각하고 제거하고 싶었던 건가. 그 순간 서문윤은 태자가 저를 버린 것이라 생각을 했고 그에 검을 쥔 손에 힘을 빼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챙캉!

그 대가는 컸다.

“커헉!”

날아간 검과 동시에 복부를 파고든 무릎!

서문윤이 비틀거리며 흙바닥에 굴렀다.

‘아, 제길…!’

사내는 서문윤처럼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바로 서문윤의 등을 올라타 그의 손목을 잡아 비튼 사내가 그의 몸을 결박했다. 잘게 몸을 떨던 서문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포박을 마친 사내가 그런 그를 향해 무뚝뚝한 말을 내뱉었다.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이어진 말에 서문윤은 제가 그의 말을 잘못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주께서도 네게 유감은 없었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이었다.

‘아, 태자가 아니라….’

서문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문 대주였구나!

상명하복이란 말의 내막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가 은위의 수장이었어!’

태자가 앞으로는 제 사람이 되어달라 청을 하고, 사실 뒤로는 제 암살을 지시하는 음흉한 사람이라는, 그런 사람이 후대의 천자라는 암울한 사실에서 벗어난 서문윤은, 그러나 온전히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아, 이런…!’

그 순간 등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때문이었다.

서문윤이 경악하여 몸을 꿈틀거렸으나, 결박당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비수인지 검인지 모를 날카로운 날붙이가 목을 노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사지를 버둥거리던 서문윤이 문득 몸을 뒤틀어 제 몸 위를 타고 앉은 사내의 사타구니를 허벅지로 세게 눌렀다.

“큭!”

비틀거리는 몸에 비수가 땅바닥에 꽂혔다. 그 순간 서문윤이 머리를 휘둘러 사내의 이마에 박치기를 했다.

“살려주시오!”

비명을 지르는 순간 사내의 눈이 흉험하게 빛났다.

“닥쳐!”

사내는 서문윤의 발악을 빠르게 제압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몸은 서문윤의 양손이 결박당한 이유로 빠르게 사내의 승기로 넘어갔다. 그러나 비수는 저 멀리 골목 바깥에 내던져져 있었고, 사내는 그리하여 서문윤을 처치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썼다.

“컥, 커헉!”

“죽어, 죽…!”

손으로 서문윤의 목을 조르던 사내는 그러나 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허억…?!”

그의 불행은 비수를 잃어버린 점이었다.

목을 조르는데 집중하던 사내는 제게 다가온 인기척을 알지 못했다.

목덜미가 누군가의 손에 잡힐 때까지, 스산한 목소리가 내려앉을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는 누구냐….”

목을 잡고 웅크린 채 캑캑대던 서문윤이 제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깨닫고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그의 입술 밖으로 멍한 목소리가 흘렀다.

“의형…?”

그곳에는 달빛을 등진 사내가 냉막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달빛 아래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빛의 물결을 흘렸다 .칼날처럼 서슬 퍼런 눈이 제 손에 쥔 사내를 향해 있었다. 서늘한 용모의 미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특유의 오연하고 압도적인 분위기가 골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과 마주하며 서문윤은 잠시간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그가 숨을 멈췄다.

‘피 냄새…?’

바로 코끝을 설치는 피비린내 때문이었다.

낮게 긁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는 누구냐.”

서문윤은 공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 묻지는 않아.”

그러나 검설린은 당황한 서문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손아귀에 진 은위를 감정이 거세된 얼굴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찬웃음이 잠시간 감돌다가 사라졌다. 우드득, 소리가 흐른 때였다.

“컥…!”

은위의 목덜미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날카로운 두 눈에 예기가 번뜩거렸다. 그 때였다.

‘안 돼!’

그 순간 서문윤은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검설린의 몸이 우뚝 굳은 순간이었다. 스스로의 목을 움켜쥐며 서문윤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태, 태자의 사람입니다.”

그러곤 힘겹게 내뱉은 말이었다.

목이 졸린 상황에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쉬어빠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서문윤은 목소리를 내려 애를 썼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죽, 죽이시면 안 됩니다.”

검설린은 손아귀에 사내의 목덜미를 쥔 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문윤은 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눈으로?’

검설린은 깊은 밤과 같은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울렁거리는 눈빛이다. 서문윤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검설린은 문득 입가에 냉소를 짓곤 말을 내뱉었다.

“은위(隱衛).”

그는 더 이상 손에 힘을 가하지 않았다. 제 손아귀 안에 축 늘어진 사내를 흘끗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골치 아픈 것들이 꼈군.”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서문윤이 힘없이 덧붙였다.

“제 잘못입니다….”

검설린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알고 있구나.”

“으, 으음.”

할 말이 없어진 서문윤이 입술을 꼭 다물며 눈을 굴렸다.

검설린은 그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손에 쥔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 푸른 기운이 서린 순간 서문윤은 또다시 황급히 언성을 높였다.

“의형!”

또다시 그가 이질적이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을 마주하곤 서문윤은 긴장에 사로잡혀 몸을 뻣뻣이 굳혔다.

“어, 그러니까….”

내가 왜 그런 거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검설린은 제법 이상해 보였고, 서문윤은 어쩐지 그에게 계속 말을 붙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주의를 끌었건만 막상 유리처럼 맑은 눈과 마주하고 서문윤은 머리가 새하얘져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횡설수설 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결국 속에 있는 말을 완전히 털어놓고야 말았다.

“괜찮으신 겁니까?”

목소리는 끝이 떨리고 있었다.

서문윤이 떨리는 숨결을 내뱉었다.

‘뭔가….’

그러니까 문제는 이것이었다.

‘뭔가 이상한….’

어쩐지 그가 별리된 세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품는다. 서문윤은 검설린이 또다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게 여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괜, 괜찮습니까?”

그건 육신의 상태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서문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그런 그를 향해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 입술을 벌리려다가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의형!”

그 순간 검설린의 소매 사이로 핏물이 떨어진 것이었다. 서문윤의 얼굴을 굳게 한 일이었다.

‘아, 이런!’

이제 문제는 위화감이 아니었다. 서문윤이 그의 팔뚝을 부여잡고 다급히 소리쳤다.

“의형! 피가….”

“그만.”

“그만은 무슨 그만입니까!”

그의 소매는 완전히 피로 적셔져 있었다. 경악한 서문윤이 검설린의 소매를 걷으려 했으나 검설린은 빠르게 팔을 물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급한 게 뭔지 알잖느냐.”

담담한 목소리였다.

서문윤의 머리를 순간 새하얗게 질리게 한 말이었다.

‘급한 게 뭐냐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말들을 삼키고 서문윤은 그 한마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출혈이 심합니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서문윤은 검설린의 피에 젖은 소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설린은 잠시간 서문윤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좌우림군의 추격은 이제 느슨할 거다.”

그러곤 조용히 덧붙였다.

“믿지 마라.”

서문윤의 몸을 멈칫하게 한 말이었다.

“아무도 믿지 마라.”

고개를 든 서문윤이 검설린의 얼굴을 마주했다.

“사람은 믿는 게 아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잇는 검설린에게선 고독함이 느껴졌다.

“언제고 변한다. 그네들은.”

그 감정이 너무 짙어 서문윤은 잠시간 아무런 말을 내뱉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서문윤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못 믿으십니까?”

“그 말이 왜 또 거기서 나와?”

“그런 말이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그래, 못 믿어!”

서문윤은 울컥하여 언성을 높이려다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지금이 옥신각신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은 것도 있었고, 다른 반격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서문윤이 투명한 눈으로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검설린의 몸이 멈칫한 순간 담담한 말이 흘렀다.

“저를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서문윤은 인피면구를 쓰고 변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검설린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는가?

“난 널 알아볼 수 있어……. 이런 제기랄.”

무심코 답변하던 검설린이 얼굴을 구겼다. 사람을 믿지 말라 말을 했으면서 그리 말을 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검설린의 일그러진 얼굴을 서문윤이 빤히 바라보았다.

검설린이 그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결국 포기하곤 이를 갈았다.

“말을 말지!”

그러곤 검설린은 서문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문윤이 속삭였다.

“보고 싶었습니다.”

멈칫한 검설린의 몸이 조금의 시간을 두고 움직였다.

“폐정으로 가자.”

그러곤 그는 손아귀 안에서 축 늘어진 은위를 마치 쓰레기를 던지듯 홱 바닥에 내던졌다. 머리가 흙바닥에 쿵 부딪치는 소리가 흘렀다. 서문윤은 식겁하여 은위의 상태를 살피려 했으나, 빠르게 나아가는 검설린에 결국 망설이며 그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폐정으로 향했다.

* * *

가장 긴 밤이 흐르고 있었다.

야밤의 변란이 장안의 사람들을 공포에 물들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으려 했다. 우림군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색을 자행하는 골목에서 몸을 피했다.

그런 두려움과 혼란이 내려앉은 거리를 두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려운 여정이 거의 마무리되고, 폐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제 폭약을 제거하기 위해선 폐정과 문묘밖에 남지 않았다. 순조롭게 일이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뭐지?’

그러나 어스름한 달빛 아래 서문윤의 얼굴은 기쁨 없이 창백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 이상하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쩐지 몹시 느낌이 좋지 않다.

‘도대체 의형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가.’

느릿한 숨을 내뱉으며 서문윤이 몸의 떨림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자꾸만 경직되는 얼굴의 근육을 관리하려 들었다. 그러나 서문윤은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굳히고야 말았다. 마른 숨을 내뱉는 그의 귓가로 그 때 담담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두려워하지 마라.”

서문윤의 몸이 멈칫한 때였다. 시선이 달빛 아래 사내를 향했다.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은 지극히 평온했다. 마치 무언가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그 얼굴에 서문윤은 더욱 큰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이제 네게 숨기는 게 없어.”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설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단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흙벽 같은 눈이 허공을 응시했다. 상념하던 사내의 입술 밖으로 이윽고 짤막한 말이 흘렀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목소리가 어째서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안기는지 모르겠다.

“변한 사람을 마주했다.”

서문윤이 그에 당황하던 순간 내려온 말이었다.

“군의 후배였다.”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 서문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죄우림군 장군이었지.”

‘좌우림군 장군?’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후배의 이야기에 멈칫하던 서문윤의 머리에 생각이 흘렀다.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검설린. 그는 어쩐지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퍼런 살기를 거두지 못하고 서문윤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단어는 사필귀정.

그 순간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신음이 흘렀다.

어렴풋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늠이 간 까닭이었다.

의형은 오늘 피를 흘렸구나.

그 순간 서문윤이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이 서문윤이 신경을 쓸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서문윤 또한 무인이었으므로. 그는 검설린이 흘린 핏값을 제가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는 입술을 다물 뿐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검설린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씁쓸한 일을 겪었지.”

그 순간 서문윤은 복잡한 마음에 휘말려야만 했다.

“그를 뭐라 할 자격이 없지. 모두가 제가 저지른 악행의 대가를 지고 있구나.”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었고, 얼굴의 균열은 깊어져 가고 있었다.

검설린은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나 또한 그래야겠지.”

서문윤은 울컥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지 못했다.

“그런 소리를….”

숨을 들이 삼키는 소리가 흘렀다. 튀어나가는 감정을 다스린 서문윤이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소리를 또 하십니까?”

검설린을 헛웃게 한 말이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가 서문윤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는 이를 악문 채 터져 나오는 감정을 삼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겠군.’

그러나 검설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의도한 바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 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검설린은 미래를, 잃어버릴 고향을 찾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품고 있었다.

검설린이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그게 과연 될까?’

궁궐이 불타오르고 오늘 오래된 인연들이 스스로가 벌인 악행의 대가를 받았다.

슬프지도, 허무하지도 않았다.

이건 그저 깨달음이었다.

외면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그때가 만약 오면 너는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방금 전 검설린은 예감처럼 깨닫고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가 벌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설린은 깨어난 기억들을 잠시간 회고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야 말았다. 불안한 시선이 등 너머로 느껴진 것이었다. 검설린은 억지로 상념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네가 원하는 길을 향해 나아가거라.”

운명은 피할 수가 없지.

마음속 하나 남은 미련을 버리고 검설린은 서문윤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가면에 가려진 얼굴을 보고 싶었다. 창백한 얼굴에 아쉬움이 문득 서렸다가 사라지고, 서문윤의 얼굴이 차차 굳어갔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깨닫고 검설린이 아차 하여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 마음은 제 것입니다!”

날카로운 말에 검설린은 빠르게 답변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일을 수습하려 들었으나, 슬프게도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충혈된 눈을 부릅뜬 서문윤이 검설린의 긴 머리를 부여잡아 당겼던 것이다.

“윽…!”

검설린이 몸을 비틀거리며 목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럽게 기도가 꺾여 숨을 쉬기 곤란함을 느낀 것이다. 순간 그의 눈에 불길이 치솟고야 만다.

“뭐 하는 짓이냐!”

검설린의 얼굴에 황당함이 물들었다.

‘이 새끼?’

요즘 들어 슬슬 서문윤이 저와 맞먹으려 하는 기색이 보인다. 검설린은 그에 눈에 불을 켜며 살벌한 눈으로 서문윤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기가 죽지 않았다.

“왜 자꾸 그러시는 건데요!”

오히려 그는 당당하다 못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검설린에 맞설 뿐이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렀다.

“사람을 자꾸만 불안하게 하십니….”

그 때였다.

“그만!”

말을 내뱉으려던 와중 터져 나온 목소리에 서문윤이 눈을 크게 떴다.

항의를 내뱉으려던 와중 서문윤이 몸을 멈칫했다. 검설린이 그 순간 무섭게 가라앉은 얼굴로 어느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서문윤이 검설린이 바라보는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 순간 눈이 흔들리고야 말았다.

‘이건…!’

깊게 가라앉은 눈을 빛내며 검설린이 쉰 목소리를 흘렸다.

“늦었군.”

폐정은 인기척이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서문윤이 숨을 멈췄다.

“이게 무슨?”

서문윤이 빠르게 우물로 향했다. 침음이 흐른 순간이었다.

우물 아래에는 아무것도 자리하지 않았다. 신음을 흘리던 서문윤이 사람들의 발자국과 도르래로 짐을 운반한 자국을 읽고 창백한 얼굴로 검설린을 돌아보았다.

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서문윤이 창백한 얼굴로 손에 쥔 검을 움켜쥐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문묘로!”

그 말을 내뱉곤 검설린은 몸을 빠르게 돌렸다.

옷자락이 휘날리는 순간 서문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그의 등을 따랐다.

그들은 더 이상 여유를 두지 않았다.

검설린은 서문윤이 따라잡기 힘들 만치 속도를 올리고 있었고, 서문윤은 그에 토를 달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달리며 서문윤은 뱃속에서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었다.

검설린은 더 이상 회고에 잠기지 않았다.

그는 정면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문윤 또한 더 이상 말을 내뱉지 않았다.

문묘 근처에서 멈추어 선 서문윤은 그리고 몸을 멈칫하고야 말았다.

“아…!”

아득함을 느끼고 그가 입술 밖으로 신음을 흘렸다.

검설린은 말없이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쥐었다. 조소 어린 말이 이어졌다.

“패잔병들이 여기 다 모였군.”

문묘에는 병사들이 깔려 있었다.

그곳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떨리는 목소리에 검설린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눈을 뜬 검설린이 한숨을 내뱉었다.

“너는 반드시 낙향을 해야겠다.”

검설린이 고개를 돌려 서문윤을 바라보았다. 서문윤은 백 년은 늙어 보이는 듯한 검설린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순간 그의 심경과 속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활 내놔라.”

서문윤의 얼굴을 일그러트린 말이었다.

“안 됩니다!”

서문윤이 활을 등 뒤에 숨겼다. 그는 대경하여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짓입니까!”

절규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것은. 서문윤의 눈은 홉떠지고 그의 몸은 마치 변고를 당한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검설린을 죽어라 노려보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검설린은 잠시간 그를 바라보다가 말을 내뱉었다.

“줘.”

서문윤이 이를 악물었다.

“절 바보로 알지 마십시오.”

떨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배어들어가 있었다. 서문윤이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마치 원수를 보는 듯한 표정에 검설린이 무심한 얼굴로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그 태연한 얼굴에 화가 난 서문윤이 낮게 쉰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문묘에 활을 날리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습니까?”

목소리는 으름장을 놓는 듯했다. 마치 협박을 하는 듯한 그를 바라보며 검설린은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애가 나를 친근하게 여기는군.’

“제가 혀를 놀린 상황에서 이러는 것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모를 줄 압니까?”

처음에 제가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를 안다. 경외를 하면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서문윤을 알았다. 그때 그는 검설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선량하고, 또 헌신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저를 그만 속…!”

“서문윤.”

그러나 지금 그는 진정 검설린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한 가지 말을 할 게 있다면.”

그러면서도 함께하자 했었지.

“나는 누워 있을 당시에 의식이 남아 있었지.”

담담한 목소리로 검설린이 말을 내뱉었다. 서문윤의 당황한 얼굴, 조금의 부끄러움이 섞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검설린이 읊조렸다.

“네가 날 지키면서 뭐라 말을 했지?”

서문윤은 답변하지 않았다. 검설린은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너는 내가 너와 함께하기를 갈망했다.”

검설린은 마치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마냥 부드럽고 온난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황하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생각하던 그가 이내 봄날의 훈풍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지금 내 마음을 말하겠어, 서문윤.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어.”

서문윤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검설린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럴 만한 사람이 되고 싶지. 네가 내 악한 면을 알고, 나약한 면을 안다. 그것이 수치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비관을 했었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지. 그리고 내린 결론은 지금이라도 내 과거의 일을 수습하는 게 맞다는 거야.”

뜸을 들여 내뱉은 말이었다.

“너와 함께하려면.”

문묘에서 수레가 움직이고 있었다. 긴장에 흔들거리는 눈을 마주하며 검설린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는 죄에서 도피했었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의무에서 도피했었다.”

온화한 목소리는 점차 준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는 힘을 주어 말했다.

“사필귀정!”

서문윤은 불현듯 마음을 엄습한 불안함에 목소리를 떨어야만 했다.

“의, 의형.”

검설린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강서진이 죽었지! 귀비도 죽었다.”

검설린의 얼굴이 깊은 수면 아래로 젖어들어갔다. 서문윤은 목울대를 떨고 있었다.

“황제도 죽었어.”

그 대목에 이르러 검설린은 짤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하고, 예민하고, 날카롭고, 또 자유로운 웃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는다.”

일말의 불안감을 품던 서문윤이 그 말에 안도할 무렵이었다.

“활을 다오.”

검설린은 다시금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고개를 돌려 서문윤을 진중한 눈으로 바라본 채 내뱉은 말이었다. 서문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얼이 나가 있다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네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 행동할 거다. 나는 과거의 나를 되찾고, 또 책임을 지고….”

말은 잠시간 방황했다. 검설린은 드물게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우물거리다가 이내 속삭였다.

“사람을 살리고 싶구나.”

그 말을 내뱉을 때 검설린의 얼굴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힘을 준 말이 흘렀다.

“온전한 나로 네게 다가가겠다! 선해지겠다.”

“의형.”

“방금 전 나는 과거의 연을 끊었어!”

‘연을 끊어?’

멈칫한 서문윤은 연이어 흐른 말에 검설린의 부상의 전말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좌우림군 장군, 권청. 황재천, 서문린과 함께 내 휘하였고 동궁사변 당시에 내 직속 부관이었다.”

서문윤의 몸이 경직된 순간이었다.

‘아, 의형!’

신음을 삼키는 청년을 들끓는 눈으로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내게 궐기를 바랐지. 그러나 나는 모든 일에서 도망쳤고 그는 홀로 황실에 남아 있었다. 그는 황궁이라는 마굴에서 모든 죄악을 마주했지. 그런 그의 마음이 온전치 못하더구나.”

“의, 의형.”

“그는 권력을 탐했다. 더 이상 부평초처럼 휘둘리지를 않기를 바랐다. 안전하길 원했다.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의 입장이 되길 바라고…. 야망을 꿈꿨다.”

검설린이 차분히 말했다.

“나는 방금 그를 죽였다.”

서문윤이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 의형….’

각오가 눈에 있다.

검은 밤처럼 깊은 눈과 마주하고 서문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내 마음을 짐작해보거라.”

검설린은 정말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나는 책임을 지려 하고 있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건 모든 걸 바로 잡겠다는 각오야.”

그러나 서문윤은 활을 주지 못했다.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서문윤은 울먹거렸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품에 활을 끌어안고 서문윤이 검설린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겁하게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문묘잖아. 다른 것도 아닌 문묘잖아!’

그의 진심을 알면서도 서문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문묘는 천하의 유학자들이 경배하는 성인의 사당이었으므로.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어. 어떻게 활을 줄 수 있어.’

만약 그곳이 폭약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면 천하의 의기 있는 선비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검설린은 비난을 받겠지. 정확히 말하면 악천화는 탄핵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서문윤은 태자와 이 사태를 얽은 상태였다. 만약 태자가 이 일에 얽혀 천하의 패권을 쥐지 못한다면, 정통성이 훼손된다면,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하겠는가?

안 그래도 혼란으로 세워진 정부가 유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끝이리라.

그 모든 사태를 검설린이 홀로 책임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서문윤의 얼굴에 혼란의 빛이 물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때였다.

“서문윤.”

검설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서문윤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은.

그는 서문윤의 손을 부여잡았다. 활을 든 손에서 무기를 조심스럽게 빼내려 했다.

“놓으십시오!”

그 순간 서문윤은 모든 생각을 끝마쳤다. 모든 계산을 끝마치고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그래.’

한때는 그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실망을 할 대로 하여 더 이상 희망을 품지 못했다.

‘의형을 믿어보자. 한 번 더.’

그러나 그가 쇄신을 하기로 했으니 그걸로 족하다.

서문윤이 느릿한 숨을 흘렸다.

‘의형이 정말로 바뀐다면, 함께할 거야.’

고난도 기쁨도 함께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서문윤은 활시위를 당긴 것이다.

담담한 목소리가 흘렀다.

“제가 할게요.”

검설린의 얼굴빛이 확 바뀐 순간이었다.

“아니, 너는 사거리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서문윤!”

서문윤은 활이 나가는 순간에 “응?” 소리를 흘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검설린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서문윤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뭐지?’

검설린의 눈에 불이 켜지고 있었다. 서문윤은 그 순간 불쑥 마음에 든 불안감을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야 말았다.

기세 좋게 날아간 화살이 중간에 그 기세를 잃고 아래로 무력하게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앗?’

그 때 벼락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 이 새끼!”

검설린의 눈에 불꽃이 서리고 있었다.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렸다. 서문윤의 얼굴에 어색함과 당혹감이 번져 나갔다.

‘왜, 왜 이게 이렇게 됐지?’

분명 무리가 없는 거리였는데!

그 순간 검설린이 서문윤의 허리를 부여잡아 그의 몸을 짓눌렀다.

“의, 의형?!”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서문윤이 그의 손에 경황없는 상태로 질질 이끌려 갔다. 수풀에 그를 잡아 던지며 검설린이 으아아 절규를 내질렀다.

흙먼지에 뒹굴고 눈을 말똥말똥 뜨던 서문윤의 머리를 누르며 검설린이 울부짖었다.

“죽고 싶냐?! 너 진짜 맞을래?”

때마침 저 너머로 폭약이 터지는 소리를 대신하여 험악한 남정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침입자다!

검설린은 서문윤의 궁금증을 확실하게 채워주었다. 눈에 불을 켠 사내가 길길이 날뛰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역풍이라고, 이 미친놈아!”

주먹이 서문윤의 머리를 꽁꽁 때렸다. 서문윤이 악 소리를 내며 머리를 막고,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네가 못 한다! 네가 못 한다고!”

끙끙거리며 머리를 맞던 서문윤이 깨달음에 눈을 크게 뜨고 아차 했다.

‘앗, 역풍!’

그 순간 서문윤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역풍이 불어 화살의 사정거리가 짧았던 것이다.

어두운 밤인 데다가 긴박한 상황이라 바람이 부는 방향을 확인을 할 수 없었는데…. 검설린은 그것을 알고 말을 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검설린이 분노 어린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절규했다.

“이제 어쩔 거야!”

동시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렸다.

“침입자! 침입자다!”

“당장 수레를 보호하라!”

서문윤의 얼굴이 어색해진 순간이었다.

어, 그러니까… 망했네?

저 너머로 들려오는 소란에 검설린의 얼굴이 더욱이 흉흉해지고, 서문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띤다.

“하하.”

사람 좋게 웃던 서문윤이 이내 쭈뼛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검설린은 당연히 그의 도발 아닌 도발에 분노할 뿐이었다.

“서문윤, 이 빌어먹을 놈아!”

“고, 고의는 아니… 악!”

“너는 그냥 맞아야 해! 그냥 때려서 말을 듣게 해야 됐어!”

“악, 의형! 지금 수레… 급한!”

“으아아! 무슨 대화는 대화야!”

한참을 아옹다옹하던 검설린이 분노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리 내!”

서문윤은 얼떨결에 그에게 활과 화살통을 빼앗기고야 말았다.

“의형!”

다급히 말을 내뱉으려는 서문윤에 앞서 검설린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서문윤은 그런 그를 말리려 들었으나, 검설린은 듣지 않았다.

서문윤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 순간이었다.

‘위, 위험해!’

지금 병사들이 문묘에 아우성을 치며 모여 있었다! 안 그래도 빗나간 화살 때문에 경계가 삼엄해진 때였다. 활을 쏘아 폭약을 맞출 기회가 날아갔다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설린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의형은 목숨을 각오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문윤은 당연히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비장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헉.”

그런 연유로 감동적인 대사를 내뱉으려던 서문윤은 몸을 일으킨 그 순간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화살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흘리며 날카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 * *

서문윤은 악천화가 북란 때 활약을 한 것을 알았다.

서문윤은 그때 만들어진 여러 가지 전설 같은 야사들을 알고 있었다. 북란 당시 세웠던 전공을 알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고 했다. 서문린은 서문윤에게 야사가 결코 과장을 한 게 아니라고 확언을 시켜주었다.

그때는 사령관이 선봉에 서고 장수가 사병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악천화는 북란 때 활약하여 장수로서 이름을 날린 이였다.

예상은 했다.

그의 무위가 뛰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품었었다. 그에게 몇 차례 제압을 당했었고, 몇 번 낭패를 보았었다.

그러나 서문윤은 그의 무력에 의지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검설린이 의외로 무력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는 싸우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들었고 그리하여 서문윤은 검설린이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서문윤은 예전에 그가 들었던 야사들에 대해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이 나간 청년의 입에서 감탄성이 흘렀다.

“우, 우와.”

서문윤이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수레를 향해 질주를 하는 사내가 있었다.

‘진짜….’

활시위가 부드럽게 매겨졌다. 이윽고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활에 맞은 이가 쓰러지기도 전에 화살은 다시 날아갔다.

반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마냥 화살을 연사하는 검설린의 얼굴이 차분했다. 서문윤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경악성을 터뜨렸다.

‘진짜 잘 싸우잖아?’

“저게 말이 돼?!”

무인인 그는 알고 있었다!

움직이면서 활을 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 사정거리를 계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동을 견디는 것이 끔찍하게 힘들다. 그런데 검설린은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화살을 다시 메기고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깔끔한 연사에 넋이 나가 있던 서문윤은 꽤나 시간이 흘러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서문윤이 검을 부여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검설린이 수레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화살통에 화살이 떨어지던 무렵, 그 순간 소란이 일었다. 서문윤이 검설린을 보조하기 위해 다가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어?’

서문윤이 문득 몸을 멈칫했다.

저를 향해 달려드는 이를 베어 넘기려던 서문윤이 이내 얼이 나간 얼굴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서문윤의 귓가에 우렁찬 고함이 흘렀다.

“비켜!”

서문윤이 얼이 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너 미쳤어? 가만히 서 있고! 죽고 싶어?!”

그를 향해 윽박지른 병사가 시뻘게진 얼굴로 서문윤을 지나쳐 빠르게 질주했다. 제 등 너머로 훨훨 날아가는 듯한 좌우림군을 서문윤이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왜…?

당황에 잠겨 있던 서문윤은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의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문윤은 뒤늦게 제가 변복을 하고 있고, 그들의 눈에 같은 편으로 보일 거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도를 한 그들이 서문윤의 앞에서 그들의 흉계의 전말을 노출한 것 또한.

서문윤의 눈이 홉떠졌다.

‘설마?’

좌우림군 병사들이 도망을 치고 있었다. 가장 밖에 있는 병사들부터, 그들은 하나둘씩 도망을 쳐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활의 사정거리 가까이에 수레가 들어오는 순간, 활시위가 메겨졌다.

그리고!

서문윤이 그 순간 경악에 차 소리를 질렀다.

“의형!”

활이 활시위를 떠나가는 순간 검설린이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하는 순간 서문윤이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수레가 아닙니다!”

폭발음이 터져나간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야가 붉어지고 머리는 새하얘졌다. 서문윤은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불길이 번져 나가는 곳을 향해 곧장 달려 나갔을 뿐이었다.

사내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폭발음이 귓가에 크게 울렸다.

“의형!!”

그를 향해 달려간 서문윤의 눈에 동공이 그 순간 확장되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절망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저를 향해 달려오는 서문윤을 사내는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 의형 안…!!”

검설린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것은 저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는 서문윤이었다.

* * *

꿈을 꾸었다.

불타오르는 둥지, 최초의 집이었던 저택이 피로 물드는 꿈을 꾸었다.

꿈은 화마에 휩싸이는 것에서 서서히 변했다. 어린아이가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모습이었다.

“그래? 그럼 너는 기린이군.”

또다시 꿈은 변했다.

누각 위에서 세 명의 벗과 함께 미래를 논하는 꿈이었다.

또 꿈은 변했다.

검설린은 피로 물든 자백서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동궁태자를, 그들의 주군이자 친우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또 꿈은 변했다.

반짝거리는 눈.

세상의 모든 선한 것들을 뭉친 듯한 올곧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순진한 어린것이 그에게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선합니다.”

또 꿈은 변했다.

멱살을 움켜쥔 채 그가 절망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검설린은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목구멍에 숨이 턱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할 말이 너무 많아 검설린은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길 택했다. 차가운 그의 얼굴에 절망한 듯 서문윤은 그의 멱살을 움켜쥔 채 울부짖었다.

“저를 속였어요!”

또 꿈은 변했다.

서문윤의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검설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혼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꿰뚫으며 그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입술을 열었다.

“의형…….”

검설린은 두려움을 삼켜야만 했다.

‘너는 내게 무슨 말을 할 거야?’

* * *

미약한 신음이 흘렀다.

허공 밖으로 유리처럼 깨끗하고 맑은 눈이 드러났다. 정신을 차린 검설린이 말없이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자리한 이를 응시했다.

‘있군.’

동시에 안도를 느꼈다. 검설린은 마음에 물결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비켜라.”

검설린의 위에서 엎드려 있던 서문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검설린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다가 몸을 무너트렸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비명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검설린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머리는 서문윤의 품에 있었다. 숨이 헐떡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이를 악문 사내의 격노한 음성이 연이어 흘렀다.

“왜 미련하게 구십니까! 신의라면서….”

“좌우림군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런 거였군.”

검설린이 부러 차가운 목소리를 흘려 서문윤의 말을 끊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았으나 들어주기는 싫었다.

서문윤이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검설린은 겁을 먹고 있었다.

그는 부러 말을 돌렸던 것이다.

“이청은은 결국 살았구나.”

서문윤은 짧은 침묵 끝에 중얼거렸다.

“네.”

그의 품 안에서 검설린이 눈을 감은 채 있었다. 느릿한 한숨을 내뱉으며 그가 타인에게 기댄 몸을 축 늘어트렸다.

잠시간 정적이 있었다.

그들이 문묘에 도착했을 때는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투라기엔 뭐한 칼부림은 좌우림군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검설린도 서문윤도 폭약을 제거하러 다니면서 좌우림군 수뇌와 일반 장교들 사이의 괴리감을 인지하고 있었다.

“풍전등화라는 사실을 저들만이 모르는군.”

검설린이 문득 차게 웃었다.

좌우림군의 수장인 권청이 죽었다. 그들과 손을 잡아 정치적인 뒷배를 해주었던 강서진도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머지 좌우림군들이 분열을 겪었던 것이다.

항복과 권력을 위한 투쟁.

그리고 후자를 준비하는 이들이 이청은을 암살하기 위해 함정을 준비하다가 어긋나버렸다.

이청은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된 폭약은 검설린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 폭발에 휩쓸린 사내는 화살에 맞아 쓰러진 이를 엄폐물로 사용했으나, 결국 몸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피투성이가 된 채 미지의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청은.’

잠시간 그 사내의 이름을 입안에서 중얼거리던 그가 이윽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서문윤은 깜짝 놀라 말을 했으나, 검설린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상황이냐.”

그들은 사당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같은 곳이 아니라 확실하게 그곳은 사당이었다. 검설린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하며 서문윤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저희, 성공했습니다.”

그러곤 그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일이 쉽게 풀리지가 않는군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 서문윤을 검설린은 검은 유리알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사항전을 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장안성 내부의 사람들을 인질로 사로잡고 장안성 밖 반정군과 대치를 한답니다.”

“미쳤군.”

깔끔한 말에 서문윤은 동의를 하면서도 머뭇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귀비의 폭약을 빼돌린 자들이 있다 합니다.”

“개판이구나. 호랑이가 없으니 여우가 설친다고?”

차가운 조소에 서문윤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안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곳은 이미 서로 다른 뜻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들의 난행에 어지러워진 후였다. 어떤 이들은 장안의 조정을 장악하겠다며 장안 정부의 고관들을 납치하거나 협박했고 어떤 이들은 두려워하며 항복을 종용했다. 어떤 이들은 이 상황에서 이들을 보겠다며 장안 밖 반정군과 협상을 하겠다 나섰다.

그런 이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날뛰는 게 지금 이 상황이었다.

문묘에 처음 왔을 때 서문윤과 검설린이 마주했던 전투와 비슷한 맥락의 칼부림이 장안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하다.

상황을 짐작한 검설린이 기침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서문윤은 검설린의 피에 젖은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바는 다하지 않았습니까.”

검설린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조용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저 믿을 뿐입니다.”

검설린은 침묵 끝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렇군.”

눈을 감은 사내는 한참 동안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사당에서 몸을 피했던 것이다.

폭력과 혼란으로 얼룩진 장안성의 한구석. 폐사당에서 몸을 피한 채 말이다. 서문윤은 폭약에 휘말린 검설린을 그곳에 옮겼고, 응급처치를 한 참이었다.

“움직이지 않는구나.”

손가락을 꿈틀거리던 검설린이 무심히 말을 내뱉었다. 그에 서문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괘, 괜찮을 겁니다.”

검설린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몸이 제 몸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넝마가 된 몸을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무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대가를 치르는 거다.”

서문윤의 몸이 멈칫했다. 검설린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한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세상에 악이 득세한다 믿었지. 인이 통하지 않고, 선한 행동이 빛을 발하는 일이 없다고. 그래서 인정을 두지 않고 이익을 좇았다. 대의라는 명목하에 불의를 저질렀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되돌려 받았구나.”

한숨이 흘렀다.

“그래, 그런 거다.”

“…….”

“나를 동정하지 말거라.”

서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적막이 흘렀다. 검설린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다만 두려움이 몸을 잠식하여 그는 더 어떠한 말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침묵 끝에 서문윤의 입술이 열렸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선명한 목소리였다.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해요.”

검설린이 그를 바라보았다. 서문윤의 눈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명료하게 빛나고 있었다. 검설린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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