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장안사준(長安四俊)(1) (8/31)

7. 장안사준(長安四俊)(1)

한때의 영광이 빛나고 있었다. 노곤함에 몸을 무너트릴 것만 같았음에도, 사내는 몸을 고꾸라트리기보단 손을 들어 성벽을 붙잡았다. 물씬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 사내는 쇠 냄새를 맡으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성벽을 붙잡은 채, 그는 저 너머 평원 끝을 바라보았다. 기마병으로 된 산이 있었다. 불그스름한 햇빛이 잘박한 피 웅덩이를 가르고, 도저히 못 볼 것이라 생각했던 아침을 알렸다. 사내의 얼굴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던 때였다. 격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영공(令公)!”

말과 함께 터져 나온 진심으로 기뻐하는, 영혼을 울리는 희열이 담긴 웃음.

영공은 공식적인 석함은 아니었다. 존칭으로, 사람들이 그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군사.”

거칠게 쉰 목소리가 허공에 퍼져 나갔다. 사내는 멍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녹슨 갑옷에 핏덩어리를 덕지덕지 묻히며, 머리는 봉두난발로, 부러진 검과 창으로 땅을 짚은 채로, 그들은 낭패한 모습으로 사내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살아남았습니다. 저희가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

사내는 그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군사라 불린 사내가 소리를 높였다.

“승리했습니다! 영공, 저희가, 저희가 죽지 않았다고요.”

먹물이 물에 퍼져 나가듯 사내의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이 서서히 물든 순간.

“모두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더듬거리며 내뱉는 말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영공의 덕입니다. 영공. 영공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저기 있는 시체 산에 누워 있었을 겁니다.”

경애로 가득 찬 눈이 사내의 형상을 담았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민(民)은 청야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보를 터뜨리고 밭을 불태우는 일에 결사반대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절도사였기에 민심은 하나가 되어 당신을 따르고,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내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친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 이상이 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활짝 웃으며 군사가 말을 이었다.

“승리에 흘린 피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인덕(仁德)이요, 군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영공, 하나를 생각해주세요. 전투의 승리로 저희가 지킨 것은 민(民)이었습니다. 저희는 미래를 지켰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성벽 아래를 보았다. 군사 또한 고개를 돌려 사내의 시선이 향한 곳을 응시했다.

보갑을 입은 병들, 그리고 갑옷을 입지 않은 자들. 민초든 병사든 하나같이 얼굴이 초췌하고 앙상하게 말라 빈궁함을 면치 못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우며, 제 손으로 엉망으로 만든 고향의 황폐한 땅 위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굴렀다. 고난에 찬 세월이 그 얼굴에 가득 서려 있다. 민병(民兵)은 한데 엉켜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아!”

땅을 우두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내가 눈을 감았다. 벅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영공의 공입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사내는 희미한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떨리는 숨결에 고조된 마음이 있었다. 사내는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 이제야 알겠다!”

무너지는 몸과 함께 무너지는 정신. 차라리 죽음에 이르길 바라며 사내가 폐부에 들끓는 말들을 쏟아냈다.

영웅이었던 사내의 몰락.

피눈물을 삼키며 광소를 내뱉던 사내가 이어 소리쳤다.

“사람은 곤궁할 때와 일신이 편할 때의 마음이 달라, 곤궁할 때는 하나로 뭉쳐 투쟁을 서슴지 아니하지만, 일신이 편할 때는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는 것에 족하다! 보국안민(保國安民)을 위한 투쟁은 발 디딜 곳 없는 이들이 디딤돌을 찾기 위함이다. 수성에서의 그들의 헌신은 스스로의 이익을 얻기 위함이었구나! 위급할 때 나누었던 정은 편안한 잠자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하찮다. 세상사가 다 이런 것이다! 맹자의 말이 틀렸다.(*1) 인(仁)과 의(義)를 말하는 이는 더벅머리 어린아이뿐이니. 세상에 오직 이(利)만이 있을 뿐이다.(*2) 왕도(王道)의 꿈은 획린(獲麟)(*3) 이후로 허상에 불과한데, 나는 그를 진정 몰랐구나…….”

* * *

함박눈이 내리는 때다. 서문윤은 문 앞에 서서 잠시간 머뭇거렸다. 어두운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몸을 빼내어, 나는 도망을 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참을 머뭇거리던 청년은 어느 순간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서문윤이 이를 악물고 문에 손을 댔다.

끼익.

‘어?’

서문윤은 당황한 얼굴을 해야만 했다. 방 안에 있어야 할 사내가 있긴 했으나, 그가 제 생각과 전혀 다른 상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동요를 자아내게 만든 사내는 정말 우습게도 침상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서문윤은 한참을 그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야 말았다. 제 고뇌가 바보 같아 보일 만치, 사내의 얼굴은 평온했으므로. 그는 사내의 얼굴에서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감옥 안에서 편히 잠을 자지 않았다.

잊었던 사실을 깨달은 서문윤이 미간을 좁혔다.

‘호위로 자리했던 내가 오히려 잠을 더 많이 잤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물론 그때 서문윤은 공황에 가득 차서 호위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사실은, 지금도 애매한 상황이다.

서문윤이 그의 안색을 살피며 침상으로 다가갔다.

검설린은 서문윤이 근처에 다가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편안히 들렸다. 서문윤은 그를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젖은 머리를 어깨에 늘어트린 상태로 울상을 지었다.

이를 뭐 어찌해야 하나.

‘그냥 도망갈까?’

강렬한 욕망이 들었으나 서문윤은 빠르게 그 생각을 포기했다. 별로 끌리지 않는 선택지일뿐더러, 그는 이미 의형과 맹세를 하였다. 망설임 끝에 서문윤이 검설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 형?”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검설린이 스륵 눈을 떴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짙은 속눈썹이 열리고 붉은 기 하나 없이 칠흑 같은 흑안이 드러났다. 서문윤은 그를 마주하고 침을 꿀꺽 삼키고야 말았다.

자정의 밤하늘 같은 깊고 고요한 눈.

선잠에서 깬 검설린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서문윤을 마주했다. 그는 복면을 벗은 채였다.

‘이, 이건.’

복잡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냈던 서문윤은 그 무심한 눈과 마주한 순간, 홍당무처럼 얼굴을 화악 붉히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이게 무슨 한심한 일이야.’

나를 취한 사내 아닌가. 나를 협박하고 내 믿음을 버린 사내. 그를 미워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그리 다짐을 하였음에도 서문윤은 지금 심장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가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로, 어쩐지 마음이 가는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마주하였으므로.

검설린의 시선과 마주하며 서문윤이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주무, 그냥 주무실 겁니까?”

그 말을 내뱉고 서문윤은 두려움에 가득 찬 새까만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치를 보는 새끼 짐승처럼. 청년은 희미하게 몸을 떨며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잠시간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검설린이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그 말을 내뱉고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서문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입술과 입술이 겹쳐진 순간 짧고 달큼한 신음이 그들 사이로 흘렀다. 서문윤은 입술에 닿는 말캉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달콤한 입술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고 얼어붙었다. 체중을 실어 검설린은 서문윤의 몸 위로 몸을 겹쳤다.

동시에 입술 사이를 파고드는 부드럽고 두터운 살덩어리. 서문윤은 얕은 신음을 흘리며, 그의 등을 얼떨결에 팔로 감쌌다.

살갗에 닿는 강인한 몸이 익숙하다. 청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 * *

이 결정이 옳은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정녕 보은을 위한 결정인지, 아니면 어리석고도 미련한 감정이 개입된 결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면서도, 돌아가면 똑같은 선택을 하리라.

“어찌하시겠습니까?”

감옥에서 풀려나던 날, 편지를 본 순간 터져 나간 광소가 서서히 잦아들 무렵에 서문윤은 그를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이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검설린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영혼을 꿰뚫는 두 눈.

과거와 맞닿은, 그 허무함이 자리한 눈과 마주하며 서문윤은 작게 떨리는 숨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절 보내주시겠습니까?”

검설린은 한참을 그를 공허한 눈으로 보았다. 침묵 끝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예상했던 답이었으나, 서문윤은 막상 그것을 듣는 순간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는 바람 빠진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바닥을 바라보는 까닭은, 그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씁쓸함이 자리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서문윤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그냥 의형을 떠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검설린의 몸이 멈칫한 순간이었다.

“의형의 말을 무시하고 떠난다면, 어찌할 생각입니까?”

물음이나 사실은 책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속박하거나 위해를 끼칠 생각입니까? 그리 나를 함부로 대할 겁니까?’

사실 묻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돌아다니는 말을 모르는 듯, 검설린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보기보다 배은망덕하군. 너는 은혜를 모르는 자는 아닌 줄 알았는데.”

서문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설린은 비웃음을 흘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목숨을 살리고, 다리를 고친 값이 고작 밤시중이라면 차고도 남는 것 아니냐. 값이 부족한가?”

그 덤덤한 말. 서문윤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그리 화대를 치르듯이 대하십니까.”

서문윤은 그를 어찌해야 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경애하는 나의 형님, 구민의 길을 걷는 의로운 사람, 고난을 겪고 사람을 불신하는 자, 그리고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자를 몰래 취한 약탈자, 매끄러운 혀로 사람을 속인 사기꾼.

거친 언행에 다정함을 담아 걱정하면서도, 이렇듯 독하게 말을 한다.

서문윤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가슴이 온갖 감정에 휘말려 아파왔다. 가장 쓰라린 것은, 그럼에도 마음이 그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검설린은 나지막한 말을 내뱉었다.

“험한 방도를 쓰기 싫다. 내 곁에 남아라.”

미칠 것만 같다. 서문윤은 기가 막힌 듯한 웃음을 지으며 한동안 침묵했다. 저리 뻔뻔스레 말을 할 수 있을까.

검설린은 감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그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 모습이 껍데기만 남은 인형 같았다. 사내는 복면 위로 길게 옆으로 뻗은 눈을 깜빡거릴 뿐, 말이 없었다. 침묵을 지키며 사내는 그저 감정을 알 수 없는 그 깊은 눈을 서문윤과 마주하였을 뿐이다.

침묵의 시간.

서문윤의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청년은 몹시도 고난스러운 생각에 빠져, 몸으로 퍼져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마음은 곧 하나의 결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서문윤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참을 망설였다.

검설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떨렸다.

정적을 깨고 서문윤이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검설린이 고개를 슬쩍 숙였다. 의형의 태연한 얼굴을 바라보며 서문윤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항상 대가 없이 진료를 했습니다.”

“그랬지.”

“하지만 당신은 진료의 대가로 저의 몸을 원한다 하셨습니다.”

“…그래.”

이어지는 말을 내뱉기가 괴로웠다. 숨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던 서문윤이, 마음을 다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느릿하게 이어 말을 내뱉었다. 그를 향해 불타는 듯 들끓는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왜 저만 예외인 겁니까? 치료의 대가를 왜 저만 치러야 합니까.”

검설린의 얼굴은 어두운 숲과 같았다. 울창한 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워 서문윤은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게 답답하고 괴로웠다. 서문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당신은 저와 같은 마음입니까? 제 몸을 취하려는 이유는, 그게.”

용기를 품고 내뱉은 말은, 그러나 그 끝이 온전히 맺어지지 못했다. 서문윤은 혀에 힘이 풀려 차마 온전히 말을 마치지 못한 채 힘없이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그 철벽같은 얼굴을 살폈다. 잘게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서문윤이 한 가닥 희망을 품은 채 검설린의 입술에 주목했다.

그 때 검설린이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헛소리.”

묵직하게 내려앉은 단호한 말이었다.

무겁고, 그리고 단순명쾌한 말.

기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순간이었다. 긴장으로 물들어 있던 서문윤의 얼굴이 굳었다. 서문윤은 창백하게 변모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정적이 흘렀다.

마치 장례를 치르기 전 시체의 낯빛과 같았던 서문윤의 얼굴에 서서히 허탈함이 물들었다. 시간은 그의 얼굴을 체념한 사람의 것처럼 바꾸어놓았다. 서문윤은 쓰라린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자조했다.

‘무얼 바랐나.’

이 상황이 되어서도 그리 추잡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은, 내가 어리석은 까닭이겠지. 서문윤은 마지막 남은 한 조각 희망마저 버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습니까.”

서문윤이 눈을 꾹 감았다. 그를 훑은 시선이 있었으나 서문윤은 외면한 채 침묵을 지켰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는 감았던 눈을 열었다.

동요가 사라진 새까만 눈으로 경애했던 사내를 바라보며, 서문윤은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대가를 원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서문윤이 검설린에게 다가갔다.

“당신을 따르면서, 나는 당신의 침대를 덥히고 함께 밤을 보내겠습니다.”

목소리에는 말에 담긴 의미와 달리 평온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2년간 당신이 나를 고치려 노력했으니, 나 또한 2년을 당신의 욕망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검설린은 제 복면을 벗겨 내리는 손길을 막지 않았다. 무심한 시선이 그를 훑었다. 서문윤은 곧 드러난 귀족적이고도 우아한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더 이상 의형으로 믿고 따르지 않을 겁니다.”

검설린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 모습이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인형처럼 보였다. 서문윤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정말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 모르겠어.

‘2년의 시간 동안 함께하였음에도. 나는 그를 모르겠구나.’

서문윤이 발꿈치를 들었다.

검설린이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짧은 입맞춤이었다.

‘부드럽다.’

스치듯 입술에 퍼져 나가는 온기가 몸에 간질거리는 소양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것 또한 나의 어리석음이다. 씁쓸한 만족을 삼키며 서문윤이 입술을 뗐다.

그에 검설린의 냉랭하던 얼굴에 스치는 희미한 파문. 서문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제 마음을 진정으로 모르십니다. 당신이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덤덤하게 말하는 진솔 된 말. 검설린의 얼굴에 균열이 자리했다. 진심을 담아, 진실 된 마음을 담아 서문윤이 그에게 속삭였다.

“이 삿되고 어설픈 마음을 삼키고, 없애려 노력하며. 당신의 매정한 말을 따르겠나이다.”

희미한 떨림이 드러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내가 존경하던 당신은 진정으로 없었습니까?”

침묵 끝에 검설린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감이구나.”

서문윤은 슬프게 웃을 뿐이었다.

동고동락했던 2년의 애틋한 시간이, 그저 계약으로 주고받는 대가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 * *

그리고 계약의 대가.

‘입술을…….’

검설린은 서문윤을 눕힌 채 집요하게 혀를 빨고, 깨물고, 희롱했다. 서문윤은 홧홧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 서문윤은 검설린에게 다리를 치료해준 대가로 몸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날의 계약 이후 첫날밤이었다.

‘이, 이건.’

입술 안을 구석구석 희롱하는 혀에 서문윤은 응,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몸을 수그리며 농밀한 입맞춤에 조금이라도 몸을 피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부림은, 그를 혼내듯 혀를 슬쩍 깨무는 검설린에 의해 저지당하고야 말았다.

“읏!”

작은 신음을 흘리며 서문윤이 사내의 두꺼운 팔뚝을 더듬었다. 두꺼운 밧줄을 꼬아놓은 듯한 도드라진 근육 위를 손가락이 헤맸다. 도장을 찍듯 그의 입술이 세게 서문윤의 입술을 눌렀다.

부드러운 입술이 비벼지고, 혀가 질척한 샘이 고인 혓바닥의 움푹한 부분을 애무했다. 혓바닥은 볼 안의 여린 살마저 희롱하며 구석구석을 누볐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흘러내리고, 결국 서문윤은 “힉!” 짧고도 높은 신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입안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자극에 그는 다리를 풀어야만 했다.

쓰러지는 몸은 두꺼운 팔에 안겼다.

“의, 형, 하악!”

의형제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노라 그리 당당히 얘기하였는데, 그러나 그는 지금 이성을 차리지 못해 눈을 풀며 없어진 의형을 찾고 있었다.

혀를 섞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서문윤은 검설린의 품에 늘어져 정신없이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검설린의 검미가 산처럼 꺾인 순간이었다. 품 안에서 잘게 몸을 떠는 서문윤의 모습은 사뭇 불쌍해 보였으나, 검설린은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서문윤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 이상해…….’

서문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부리 벌리는 아기 새처럼 입술을 벌리며, 혀를 받았다. 숨이 가빠 색색 소리를 흘렸으나, 서문윤은 분명 민감하고도 여린 살에서 퍼져 나가는 쾌락을 느꼈다. 검설린은 한참을 서문윤의 혀를 희롱하고 나서야 입술을 물렸다. 숨이 가쁘지도 않는지, 검설린은 젖은 입술을 빼고는 별로 흐트러지지 않는 모양새로 서문윤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그와 반대로 서문윤의 안색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입을 벌리고 그 사이로 맑은 타액을 슬쩍 흘리고 있었으니. 검설린은 그의 초점 없는 눈을 힐끗 보고 무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경험이 없었나?”

서문윤은 대답을 않고, 얼굴을 화악 붉혔다.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닌 듯 검설린은 고개를 숙여 또다시 서문윤의 입술을 탐하려 들었다.

“그, 그만하십시오.”

참다못한 서문윤이 입술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검설린은 그의 손등 위에 꾹 입을 맞추곤, 끝이 올라간 날카로운 모양새의 눈을 치켜떠 서문윤을 보았다.

얼마 전에 그에게 실망하였고 지금 몸을 섞고 있긴 하다마는, 그래도 그는 제 윗사람이었으며 엄한 말로 저를 두렵게 만드는 이였다. 아직까진 그가 무서웠다. 서문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내리깔았다.

입술이 닿은 손등이 불타는 듯했다.

“안겠다고, 안겠다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심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래.”

“전희가, 어찌 이렇게 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어이없다는 듯한 말이었다. 서문윤이 얼굴을 붉혔다. 사실 그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라, 그는 창피함을 삼키고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왜 굳이 혀로 내 안을 농탕치느냐. 몸의 쾌락이 마음으로 번져 나가니 나를 놔두어라. 말을 꾸역꾸역 삼키고 서문윤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만하고, 안아주세요.”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검설린은 서문윤의 손등에 입술을 댄 채 그와 몸을 겹친 상태였다. 서로 몸을 맞닿은 채 그들은 한참을 정적 속에 자리했다. 배와 가슴이 마주 닿아, 서문윤은 제 몸을 누르는 육중한 무게에 억눌려 가쁜 숨을 내뱉고야 말았다.

검설린은 소정의 시간이 흘러서야 자세를 바꾸었다.

육중한 몸을 일으키곤 사내가 탁상에 놓인 향유병을 집어 들었다. 이어질 일을 짐작한 서문윤이 침을 삼키며,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그에게 안긴다.’

마음속으로 연모하던 상대였다. 깊게 마음을 품고, 애를 태우던 상대.

‘이렇게, 그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

마음을 열어 간격을 좁히길 바랐을 뿐이다. 그는 이토록 계산적인 관계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추락한 마음이 씁쓸했다. 서문윤은 그럼에도 아직도 그를 바라보면 욱신거리는 가슴이 서러웠다.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뱅뱅 돌았다.

‘나는 그의 말을 거절 못 한다.’

‘그는 나를 살리고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그를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명가의 자제가 은혜를 몰라선 안 되지. 비록 그가 속여서 내 몸을 취했으나, 다리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무가의 자제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준 사람이다.’

‘아무도 고칠 수 없던, 모두가 포기했던 나의 다리를 고친 값이 단지 몸을 내어주는 것뿐이라면 싸다.’

‘사내가 무슨 정조를 지킨단 말인가.’

‘그에게 안기는 일이, 그리 힘든가?’

말이 하나둘씩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것은 그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참을 고민하던 때, 그의 머릿속을 채웠던 말들이었다. 그러나 서문윤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강요와도 같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정녕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막상 싫지 않았잖아.’

마음에 남은 부질없고 하찮은 감정 때문일까. 그날의 씁쓸한 쾌락이 아직도 몸에 잔여한 듯하다. 서문윤은 몸을 잘게 떨고야 말았다. 그는 검설린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잘되었지.’

서문윤이 죄악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검설린의 긴 손가락에 질척한 향유가 뚝뚝 흘러내렸다. 부드러운 둔부 사이에 파고드는 거칠고 커다란 손.

‘닿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그를 품길 간절히 바랐는데, 그냥 수치를 삼키고 모른 척 그에게 안기면 안 되는 건가?’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정말로 안 돼?’

토악질이 날 것만 같다. 서문윤이 숨을 멈추었다. 손가락에 굴린 향유가 둔덕 사이에 스며들었다. 검설린은 몸을 기울이며 손을 부드러운 살밑으로 밀어 넣었다. 서문윤이 긴장에 몸을 굳힌 순간이었다. 청년은 얼어붙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이 없는 때만 그와 수많은 밤을 보냈을 뿐, 서문윤은 온정신일 때 그를 가진 적이 없었다. 비밀로 이루어졌던 정사 중에 깨어나 그에게 안긴 적은 있었지만, 황망한 마음이 이지를 가려 그때 서문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맨 정신으로는 처음 이뤄지는 교합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상아빛 뺨을 가렸다. 긴장된 얼굴로 서문윤이 마른침을 삼킬 때, 그가 입은 침의의 옷고름에 긴 손가락이 걸렸다. 검설린의 손이었다. 그는 고리에 낀 손가락을 당기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침의는 너무나도 쉽게 벗겨졌다.

살갗에 서늘한 공기가 맞닿자 서문윤은 숨을 멈췄다.

서문윤은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고야 말았다.

얇은 침의가 벗겨지자 백옥처럼 새하얀 살갗이 비밀스럽게 드러났다.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은 매끄럽고 단단하여 모양새가 아름다웠다. 허리의 곡선이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으며, 매끄러운 배는 그 거죽이 아래위로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긴장을 드러냈다.

잠시간 이뤄진 짧은 침묵.

서문윤은 눈을 감았으나 제 몸을 훑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다.’

점차 새빨갛게 물드는 귀 끝이 그의 마음을 증명했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서문윤이 부끄러움에 빠진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청년이 차라리 그가 제 몸을 거칠게 취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을 때, 손가락이 맞물린 허벅지 사이를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서문윤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향유가 묻은 손이 허벅지를 질척하게 적시자 닿았던 살갗 사이에 미끈한 길이 생겼다. 손은 길을 따라 서문윤의 부드러운 살갗을 타고 올랐다. 손가락이 구부러져 사타구니의 살을 긁을 때, 서문윤은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몸을 침상에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왜, 흑.”

긴장이 고조된 공기가 견디기 힘들다. 서문윤이 이불보에 새빨개진 얼굴을 묻으며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애를 태우듯 살갗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서문윤이 시선을 피한 상태 그대로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았다. 차라리, 빨리, 빠르게. 이불보에 웅얼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서문윤은 지독한 수치에 몸을 떨면서 눈을 꾹 감았다.

침묵을 깨며 검설린이 입술을 열었다.

“원하는 게 많구나.”

서문윤의 몸이 움찔거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내뱉으면서도, 검설린은 손을 움직였다.

불쑥 사타구니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 손에 서문윤이 “흑!” 짧은 신음을 흘렸다. 손은 서문윤의 허벅지를 가르고 골짜기에 닿았다.

경직된 몸에 아랑곳 않고 길고 두터운 손가락이 골짜기의 오목한 골을 쓸었다. 점도 높은 액체가 뚝, 뚝, 뚝, 떨어져 내리고, 그것은 골짜기에 샘을 만들며, 은밀한 부위까지 흘러들었다.

손가락은 골짜기를 긁고 쓰다듬으며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굳게 다물린 오밀조밀한 입구에 이르자 향유를 적신 손가락이 그 주위를 지분거렸다.

겁에 질린 숨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어느새 서문윤은 검설린의 팔뚝을 그러쥐고 가쁘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잔떨림이 잔재한 준미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때, 손톱이 오므라든 구멍 위를 스칠 때, 서문윤은 참다못해 감았던 눈을 열었다. 얼굴을 붉히며 청년이 두꺼운 팔뚝을 거머쥔 손에 힘을 주었다.

“왜, 왜, 안 벗으십니까?”

꽤나 합리적인 말이었다. 입구에 향유를 적시던 손이 멈춘 순간이었다.

서문윤이 더운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검설린의 눈을 빤하게 바라보았다. 불쌍하게도 겁에 질린 얼굴.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새하얀 낯을 한 채 서문윤은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목적이 명확한 말이었다, 그것은.

손을 멈추기 위해 내뱉은 말.

검설린이 손을 물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문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만, 벗는 건 이상합니다.”

이 이상은 곤란하다. 이 이상의 행위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 만큼 아찔했다. 서문윤이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울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당신께서도…….”

흐릿한 뒷말은 아마 당신도 옷을 벗어달라는 요청의 말이리라.

검설린은 그 말에 답변하지 않은 채 짧게 침묵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시간을 번 청년이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벗겨라.”

놀라울 만치 평온한 말이었다.

“예?”

“나만 네 옷을 벗겨주는 것은 이상하지.”

서문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 순간이었다.

“그, 그건…!”

제가 내뱉은 말이 변형되어 돌아왔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에 서문윤은 입술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검설린은 그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긋한 시선에 서문윤은 머리가 새하얘져 잠시 머뭇거렸으나, 울상을 지으면서도 결국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내뱉은 말이 있으니 거절하지도 못하겠다.

서문윤이 시선을 아래로 숙인 채 사내의 허리띠에 손을 댔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속담이 어째서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매듭을 손가락에 걸며 서문윤이 얼굴을 화악 붉혔다.

‘……민망하다.’

어쩐지 자꾸 잔기침이 나왔다. 그를 보기가 면구하여 서문윤은 슬쩍 고개를 숙여 달궈진 귀 끝만을 보인 채 그의 침의를 풀어 내렸다. 한 겹의 침의는 몹시나 쉽게, 사내의 몸에 흘러내렸다.

가볍게 흘러내린 천이 떨어지고 서문윤은 손을 멈추고야 말았다.

청년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어야만 했다. 고개를 아래로 숙인 탓에 서문윤은 그의 배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그리고 침의가 벗겨진 순간 시야에 들어온, 한 치의 틈도 없이 근육이 꽉꽉 틀어박힌 강인한 몸.

복부와, 그리고 그 아래 무성한 수풀과, 그리고.

서문윤의 얼굴이 새하얘진 순간이었다.

‘저건…….’

그리고 서문윤은 갑자기 제 어깨를 누르는 손에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무슨…?!”

음탕한 상상을 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이뤄진 접촉이었다. 제 발 저린 마음에 몸을 버둥거리던 서문윤은, 그러나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반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신음을 흘리며 서문윤이 미간을 좁혔다. 또다시 몸에 실린 체중이 버거웠다.

‘무, 무거워.’

덩치가 큰 사내의 몸을 맨몸으로 받고 있었다. 육중한 무게감에 가쁜 숨을 헐떡이던 서문윤은 문득 묘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그러나 몸을 구속하며 짓누르는 무게감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빠르게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아주 짧게 스친 태평하고 어리석은 마음. 서문윤이 또다시 자괴감에 물들 때였다.

좁혀진 이마는,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살덩어리에 풀리고야 말았다.

이미 접문이 주는 달콤하고 노곤한 기분을 알고 있는 서문윤은, 갑작스럽게 입에 닿는 감촉에 눈을 슬쩍 내리깔았다. 짙은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잠시간 머뭇거리던 서문윤이 부드럽고 깊은 샘이 담긴 입술을 슬쩍 벌렸다.

검설린의 입술 끝이 비틀린 순간이었다. 동시에 커다란 손이 청년의 동그란 엉덩이를 틀어쥐었다.

“으흣!”

크게 뜨여진 새까만 눈이 강아지 것 같았다.

“잠, 잠깐.”

엉덩이를 그러쥔 손이 억셌다. 놀란 서문윤은 그의 가슴에 깔린 채 몸을 버둥거렸으나 곧 입술 안을 파고들며 희롱하는 혀에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반항할 겨를도 없어 우응, 하고 불편한 심기의 파편이 담긴 소리만을 흘렸다. 눈썹을 꺾으며 청년이 손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혀를 섞으면 몸에 힘이 풀렸다. 아득해져 가는 시야 속, 서문윤은 제 몸에 파고드는 손가락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곤 입가에 타액을 흘렸다.

민감한 입안이 농락당하여 풀린 몸. 꽉 다물려 있던 구멍에도 어느새 희미하게 틈이 생겨난 후였다. 그를 놓치지 않고 검설린은 밀문 사이로 중지를 밀어 넣었다,

서문윤은 찌걱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비좁은 곳을 질척이며 능숙하게 휘젓는 손가락의 정체를 몰랐다.

청년은 그저 눈앞이 아득해져 단단한 어깨를 손으로 간절히 붙든 채 신음을 사내의 입술 사이에 밀어 넣을 뿐이었다. 더운 숨과 함께 질척하게 섞인 쾌락의 잔재를 검설린은 혀로 휘말아 받아먹었다.

입술은 입술을 눌러, 몸마저 침상에 짓눌리게 만들었다. 서문윤은 한참을 그의 몸을 붙잡고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밀문에 깊숙하게 파고든 손가락이 선사하는 쾌락.

서문윤이 그를 인지를 못하고 있을 때 그 구부려진 손가락이 말캉하고 축축한 살덩어리를 긁었다.

“하악!”

입술이 떼어지는 순간 서문윤은 좁아졌던 숨통을 열며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았다.

“의, 힉, 의형.”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날 왜 그렇게 부르지?”

“손, 흑, 손!”

아래에 질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는 쩌릿한 감각.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문윤이 사타구니 사이에 자리한 그의 손목을 황급히 붙잡았다. 한참을 내벽을 휘젓던 손가락은 부드러운 속살을 손톱으로 살살 긁으며 그를 희롱했다.

“이제 의형이 아니라면서.”

덤덤한 목소리에 서문윤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인가. 서문윤은 몸을 이상하게 만드는 애무를 그만두게 하려 그의 손목을 빼내려 애를 썼으나, 둔덕에 박힌 손가락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 안에서 꾸물거렸다.

“의, 형, 제발, 흐, 제발.”

굵은 핏줄이 드러난 손목을 더듬거리며, 서문윤이 울먹거렸다. 그러나 지금껏 그의 말을 들어주었던 검설린은, 그의 필사적인 사투에도 손을 물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서문윤의 투정을 흘리는 입술에 새부리로 쪼는 듯한 입맞춤을 선사할 뿐이었다. 그만해주세요. 서문윤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몇 번 중얼거렸으나 질꺽한 소리는 그의 반항에도 계속 퍼져 나갔다.

어느새 향유가 덕지덕지 발라진 둔덕에 샘이 흐르는 길이 생기고, 마른 땅이 비옥해지듯 기름이 묻은 살갗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살갗이 비벼질 때마다 진득한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중지와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벌려진 주름은 느슨해졌다가 조여졌다가를 반복했으며 불그스름한 속살이 안에서 꾸물거렸다.

길고 마디가 두드러진 손가락에 휘감긴, 젖고 여린 장밋빛 살이 흘리는 소리.

힉, 힉. 가쁜 숨소리와 함께 젖은 소리가 얽히고 얽혀 난잡함을 더했다.

천산의 옥을 깎은 듯 수려한 용모를 한 사내는 서문윤의 뺨과 광대에 지그시 입술도장을 찍으며 우아한 눈을 내리깔았다.

반항은 단단한 가슴에, 묵직한 거구에 짓눌려 그저 바르작대는 하찮은 몸짓으로 승화될 뿐이다. 의형, 의형. 어느 순간부터 서문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부르지 않아야 할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턱을 싸악 핥는 혀에 투명한 물방울을 주룩주룩 흘리곤, 서문윤은 그를 애원하는 눈으로 바라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찌르르한 전격이 굽혀진 손가락과 함께 서문윤의 몸을 강타했다.

작살에 찔린 물고기처럼 펄떡 뛰는 몸뚱이.

“하, 하악!”

내벽의 안 볼록하게 튀어나온 단단한 살을 긁는 손톱. 서문윤은 몸을 펄떡펄떡 뛰며 충격을 드러냈다. 갓 잡은 생선마냥 몸을 비틀고, 서문윤이 눈물을 흩뿌렸다. 버둥거리는 다리가 검설린의 두꺼운 몸을 쳤다.

“손, 손, 흐, 악!”

쾌락이 섞인 비명이 간절하게 울렸다.

희뿌예진 눈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서문윤은 애원했으나, 검설린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의 눈가를 말캉한 혀로 싸악 훑으며, 그는 둔덕에 꽂은 손을 놀렸다. 서문윤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아, 흐, 악!”

비명과 같은 신음이 한참을 방 안에 울렸다.

“그만, 힉, 아, 흑!”

손가락이 적당히 살 오른 봉긋한 엉덩이를 파고들고, 길쭉한 이물질이 밀문을 휘저을 때마다 끈적한 액이 섞인 물이 아래에 줄줄 흘렀다. 달큰한 향유의 냄새도 그 사이로 흘렀다. 길이가 긴 손가락은 서문윤을 동요케 한 그 동그란 부위를 굴리고, 긁고, 매만져 그를 쉴 새 없이 울부짖게 만들었다.

결국 서문윤이 피 흐르는 검설린의 어깨를 꾹 끌어안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싫어…… 좋, 아, 싫…… 그만.”

말캉한 혀가 눈물길을 따라 맑은 이슬을 싸악 핥았다. 히끅, 딸꾹질하는 소리가 서러울 뿐이었다. 좋아, 싫어. 끊임없이 말을 반복하는 서문윤은 한눈에 보아도 이성을 상실한 사람 같았다. 어느 순간 검설린은 손을 우뚝 멈추고야 말았다.

핏줄이 도드라진 팔뚝을 서문윤의 손이 어설프게 더듬었다.

“그만…….”

속살을 농탕치던 손에 힘을 풀고 검설린이 끈적한 액체로 더러워진 서문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만하세요, 그만…….”

몸을 내주기로 하였으면서, 익숙지 못한 쾌락에 지쳐 서문윤은 가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명현(瞑眩)에 시달려 넋을 잃어 서문윤은 꼬인 혀로 웅얼거리는 중이었다. 이상해요, 이상합니다.

검설린의 눈이 가라앉았다.

끝이 났나, 안도에 찼던 서문윤의 눈이 발목을 와락 붙잡는 손에 크게 뜨였다.

“아, 아?”

그는 새하얘진 얼굴로 검설린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망연한 시선으로 서문윤이 제 발목을 가볍게 붙잡아 벌리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래로 향하는 시선이 발견한, 무성한 수풀 아래 묵직하게 자리한, 꼿꼿하게 선 사내의 음경.

사람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물건을 보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서문윤이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슬쩍 저었다. 두려움에 청년이 새파란 입술을 벌렸다.

“아, 안 돼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서문윤이 겁에 질려 검설린을 울먹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 안 됩, 그, 그건.”

더듬거려 내뱉은 말이었다. 간절함이 담긴 말.

저 커다란 게 내 안을 찢으면 당장에 죽을 거다. 정신이 없던 새 몇 번이고 배를 맞추었던 걸 안다. 정신을 잃은 채로 그와 교합을 한 것을 이젠 알고 있었다. 비몽사몽 이루어진 정사를 통해 온몸을 전율하는 쾌락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서문윤은 이성을 잃고야 말았다. 장기가 짓눌려 죽는 상상을 하며 서문윤은 젖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눈물을 후드득 흘리며 서문윤이 다시 입술을 우물거릴 때였다.

검설린의 미간이 좁혀졌다.

“싫, 흑, 싫.”

겁을 몹시 먹어 덜덜 떠는 서문윤에 검설린이 기울이던 몸을 멈추었다. 찡그려진 얼굴로 사내가 그를 잠시 응시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는 지긋한 시선.

그 끝에 검설린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무겁게 닫혔던 입술을 열었다.

“아프지 않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서문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거짓말하지 않아. 너는 고통에 울지 않았어.”

달래는 말에 서문윤은 답변하지 않았다. 희게 질린 얼굴을 보며 검설린이 또다시 침묵했다. 그를 보는 시선이 집요했으나 서문윤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그저 시선을 내리깐 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망가질, 겁니다.”

그것은 애원에 가까운 말이었다. 검설린이 헛웃었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구나.”

맞는 말이었다. 그는 그리 말하고 서문윤의 입술을 훔쳤다. 서문윤은 그가 몸을 기울이길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목에 팔을 두르며, 눈을 감았다.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그는 검설린의 몸에 자연스럽게 엉겨 붙고 있었다.

입술을 핥고 빠는 혀가 좋다. 그 순간 서문윤이 생각한 것이었다. 여전히 입 밖으로 두려움을 호소하는 말을 내뱉었으나, 서문윤은 그윽한 목소리를 듣고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었다.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청년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긴장에 몸은 떨리고 있었으며, 헐떡이면서 가쁘게 내쉬는 숨은 이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둔부를 타고 흐르는 매끄럽고 축축한 액체의 이질감. 서문윤이 아랫배와 그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때 그의 귓가에 낮게 긁는 목소리가 들렸다.

“힘을 빼.”

물을 흘리는 두툼한 것이 닿은 순간이었다. 서문윤은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마치 무릎을 올려대고 있는 것만 같다. 느릿하게 뒷문을 비비는 물건의 존재감에 청년은 몸을 덜덜 떨 뿐이었다.

닫힌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들어갈지 않을 것만 같아, 저것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사실 지금 그는 사로에 나아가는 병사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려움에 떨던 때, 두툼한 귀두가 밀문을 파고들었다. 입술을 깨물며 청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흐으…!”

미끌미끌한 삿갓이 뒷문을 누르고 있었다.

삽입의 전초만으로도 이렇게 버거운데.

서문윤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뿐이었다.

‘거짓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다.’

아프지 않는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그리 생각하며 서문윤은 서서히 미끄러지듯 제 안을 파고드는 물건에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가련하게 떨었다. 두려움에 그가 서럽게 울 때였다.

뺨에 와 닿는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

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프지 않아.”

살갗에 스치는 말이었다. 서문윤이 병을 앓는 사람과 같은 신음을 흘리며 이불보를 거머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창백한 이마에 식은땀이 흠뻑 흐를 때다. 뒷문을 여는 압박감에 몸서리를 치던 순간, 익숙지 않은 일에 겁을 먹어 그가 몸을 떨던 순간이었다.

“아프지 않다.”

낮게 긁는 목소리에 서문윤은 몸을 굳히고야 말았다.

“…윤아.”

그 목소리에는 다정한 울림이 있었다. 몸의 근육을 녹게 만들고, 뇌수를 들끓게 만드는 거짓말같이 달콤한 말. 그 순간 청년은 모든 고통을 삼키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턱을 뒤로 꺾으며 신음을 삼켰다. 도드라진 목울대가 슬쩍 움직였다.

‘나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나는, 정말.’

자괴감을 삼키며 서문윤은 일그러진 웃음을 짓고야 만다. 저 목소리에 나는 거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은 그저 목구멍에 밀어 넣어질 뿐이었다. 서문윤은 충동을 참고 그의 팔뚝을 세게 부여잡았다.

그가 보는 나의 얼굴은 몹시 더럽고 흉하겠지. 서문윤이 눈을 감았다. 마음이 얽혀 혼탕한 색으로 변해버린 채였다. 성이 난 음경이 둔덕을 느릿하게 갈랐다. 서문윤은 욱욱 소리를 흘리면서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를 거부하지 않으며, 그의 팔을 감은 손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얼굴을 더럽힘에도, 그는 그저 설린을 껴안았을 뿐이었다.

느릿하게, 느릿하게, 내벽을 파고드는 육중한 물건.

‘거짓말쟁이…….’

서문윤이 중얼거렸다.

“아파, 아파요.”

훌쩍거리는 서문윤을 내려다보며 검설린이 갈라진 낮은 신음을 흘렸다.

삽입은 길게 이루어졌다. 서문윤은 고통에 휘말려 끙끙대면서,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다리를 벌린 채 그를 받아들이려 애썼다. 검설린은 그의 턱 선을, 뺨을 핥으며 그를 다정히 어르고 달랬다.

마침내 서문윤은 들어가기 요원할 것만 같던 흉흉한 물건을 배에 품을 수 있었다. 뱃가죽이 불룩하게 튀어 나운 순간.

“힉, 힉.”

까끌까슬한 숲이 둔부에 맞닿고, 서문윤은 혼탁한 눈으로 허공을 멍하게 바라본 채 배를 손으로 더듬었다. 축축한 혀가 입술을 핥고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서문윤이 배를 쓰다듬었다. 명치 아래 불룩한 뱃가죽을 만지고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서문윤은 원망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거짓, 힉, 거짓말, 쟁이.”

신음이 그 위로 흘렀다. 미간을 좁힌 채로 검설린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조금만 참거라.”

조용한 목소리에 서문윤은 꾹 눈을 감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 밀문이 벌어질 대로 벌어져 그의 성기를 조였다. 긴 전희가 수치스러웠으나 지금 서문윤은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기를 터뜨릴 것만 같은 압박감에 윽윽거리는 서문윤에게 사내는 몸을 기울였다. 그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검설린이 입술을 열었다.

“힘을 풀어.”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힘을 풀면 아프지 않을까. 서문윤은 끅끅 소리를 흘리며 힘을 풀려 노력했으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벌려진 다리가 허공 위에서 덜덜 떨렸다. 옴짝달싹 못 한 채 가련히 신음만을 흘리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검설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숨이 사내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숨결의 끝에 작은 욕지거리가 이어졌다. 냉랭한 얼굴을 일그러트리곤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겹치는 순간.

“힉!”

내장을 짓누르는 육중하고 둔탁한 살덩어리에 서문윤이 또다시 몸을 펄떡거렸다.

서문윤은 흐윽 소리를 내며 눈물이 매달린 눈을 깜빡거렸다. 검설린은 짙은 속눈썹을 잘게 떨며, 그의 입술에 숨을 불어 넣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그의 입술을 슬쩍 핥았다. 이후 서문윤의 비명을 목구멍에 삼키며 눈물을 혀로 받았다.

서문윤의 살이 도톰하게 오른 허벅지를 잡아 벌리며 검설린은 그 사이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흐, 하악!”

신음과 함께 서문윤은 널찍한 등을 주욱 손톱으로 긁었다. 청년의 휘어진 몸을 누르며 검설린은 느리게 추삽질을 이어나갔다.

서문윤은 흉기와도 같은 양물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낀 채 울음을 터뜨렸다. 배 안에 자리한 묵직한 것이 제 안을 빠져나갈 때 서문윤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탈력감을 느끼고, 동시에 목에 피가 몰리는 듯한 저릿저릿한 감각에 휘말렸다. 삿갓이 문턱에 걸릴 때 아쉬워 손을 내저으면 검설린은 그를 달래듯 입술을 내어주었다. 빠져나간 성기가, 내장의 벽이 눌릴 때까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오면, 서문윤은 텅 비었던 곳이 채워지는 기분, 뇌수가 녹는 쾌감을 느끼며 발가락 열 마디를 꼼지락거려야만 했다.

어느 순간 서문윤은 고통 어린 신음 사이로 야릇한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피 흐르는 등을 더듬거리며 서문윤은 문득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고통은 곧 쾌락이 되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서문윤은 앞이 아득하여 오직 팔에 감긴 사내의 목에 간절히 매달릴 뿐이었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쿨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윤은 어느새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끅끅 막힌 숨을 내뱉는 모습이 가빠 보였다. 그러나 울면서도 서문윤은 몽롱한 눈으로 검설린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입가에 띤 희미한, 아주 희미한 미소.

검설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순간이었다. 사내의 벌려진 입술 사이로 마치 짐승의 것처럼 그릉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렀다.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어, 서문윤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하아, 지금.”

커다란 북을 울리는 것만 같은 근사한 저음.

온몸이 동탕되는 기분에, 양물에 아래가 완전히 짓눌리는 감각에 “으, 응.” 소리를 내면서도 서문윤은 그의 입술을 검지로 더듬었다.

“형…… 의형.”

무언가를 조르는 듯한 간절한 목소리.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애절한 얼굴. 그를 마주한 순간 검설린은 결국 와락 얼굴을 구기고야 말았다. 그는 몸을 웅크려, 서문윤을 완전히 제 몸으로 덮었다.

서문윤은 얼굴이 깨물려, 더운 숨결에 숨이 막혀, 시야를 가로막는 흉흉한 눈길에 억눌려 온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간절히 사내를 부를 뿐이었다.

“형님, 흑, 형, 하악…!”

떨리는 손이 여린 부분 하나 없이 흉흉하고 단단한 부분뿐인 몸을 더듬었다. 팔뚝을 붙잡는 손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서문윤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그의 근육이 도드라진 등을 붙잡았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몸. 엄연한 성인 사내의 몸이 거구에 깔려 몹시 연약하게 보였다.

거죽이 불룩해졌다가, 평탄해졌다를 반복하는 배가 철같이 단단하고 갈라진 배와 마주 닿고, 서문윤은 꿈속에서 살갗에 닿았던 미끌거리는 액체의 정체가 쾌락의 부산물임을 깨닫고야 말았다. 성기에 맑은 물을 흘린 채 서문윤이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서문윤은 검설린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나는 고통으로만 울지 않았다.

황홀경 속 쾌락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성기는 꼿꼿하게 서 맑은 선액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으며, 배에는 치덕치덕한 샘이 고인 채였다.

얼굴이 깨물리고 핥아지는 와중, 서문윤은 몽혼한 정신 속에서 손을 내저었다.

허공에 올라간 손은 검설린의 뺨을 쓰다듬고 그의 입술을 더듬었다. 검설린의 눈이 크게 떠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서문윤은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스륵 감기는 숱 많은 속눈썹.

검설린은 서문윤의 입술을 깨물고 그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다.

서서히 무언가의 감정으로 물들어가는 검설린의 얼굴.

서문윤은 그 얼굴이 제법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제 위에 움직이는 그의 얼굴에 스치는 어두운 그림자. 항상 무심했던 사내가 저를 찢어발길 듯이 바라보고 있다. 동요한 그의 모습이 좋다. 평소에 엄하고 날카롭던 눈이 흉흉하게 빛나는 것이 좋았다. 찌푸려진 미간도, 그의 굵은 턱 선을 따라 흐르는 땀도 좋았다.

그가 좋다. 이 행위가 좋다. 의형, 의형. 서문윤은 쾌락의 정점에서 하염없이 중얼거리며 그에게 매달렸다.

“좋, 흑, 아, 이거, 이상!”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피범벅이 된 등을 할퀴며 생각한 말이었다. 코끝에 스치는 비릿한 향기를 맡으며 서문윤은 숨을 헐떡거렸다.

…역시 그는 헛말을 하지 않는다.

덜컥, 덜커덩!

침상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 뒤를 암고양이 우는 것만 같은 길고도 처연한 울음소리가 따랐다. 사내의 낮게 갈라지는 신음도, 가끔씩 흐르는 한탄에 가까운 욕지거리도.

밤을 꼴딱 새운 날의 일이었다.

* * *

“하아.”

배 속을 가득 채우는 뭉글거리는 정액의 압박감. 서문윤이 배를 더듬거리며 허윽 소리를 내곤 눈물을 흘렸다. 검설린의 얼굴은 휘장과 같은 긴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떨리는 턱 선과, 그에 맺힌 땀방울이었다.

이물감이 배에서 팽창했다. 그의 일부로 채워지고 있다. 서문윤은 쾌락에 떨며 아아, 신음을 흘렸다. 파정이 끝나고 청년은 눈을 감고는 잠시간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청년은 손을 들었다. 뱃가죽에 흔적이 남지 않았나. 기진맥진한 몸은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서문윤이 힘없이 간신히 손을 들어 올려 아랫배를 더듬었다. 엉뚱한 고민을 하였던 게 무색하게 평평하고 매끄러운 배에 서문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검설린이 몸을 무너트린 것은.

“윽!”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서문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숨을 쉬기 버거워져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무겁, 습니다.”

폐가 찌그러지는 것만 같다.

서문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으나, 검설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서문윤의 몸에 엎어졌을 뿐이었다. 정사의 잔여로 추정되는 몸의 떨림이 마주 닿은 서문윤의 몸에 전해졌다. 서문윤은 그의 차가웠던 몸이 뜨겁게 달구어졌단 것을 깨달았고, 살갗이 끈적한 액체로 젖었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것이 전혀 더럽지 않았다.

서문윤은 더 이상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만족감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꺾어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턱 선에 도드라진 목젖이 살짝 떨렸다. 몽글거리는 미소를 띤 얼굴은 기진맥진했으나,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얼굴이었다.

‘……기분이.’

폐가 찌그러지는 느낌에 미간을 좁히던 서문윤은, 그러나 정사의 나른함의 취해 그를 방관했다.

‘이상하다.’

사실 그의 몸에 몸이 눌리는 감각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으므로.

잠시간 잔여한 색열에 노곤한 몸을 녹이던 서문윤이 어느 순간 피식 웃었다.

‘한심하게도.’

몽롱하던 얼굴에 그늘이 자리한 순간이었다. 검설린은 여전히 그에게 육중한 몸을 올린 채 느릿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휘장처럼 그의 뺨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드러난 사내의 고요한 눈.

허공을 노려보며 문득 섬광을 빛내는 두 눈.

서문윤은 그저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몸을 섞은 사내를 배 위에 얹은 채로.

‘아.’

꽤나 시간이 지나고 서문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장내에 싸지른 말캉한 정은, 그 양이 어찌나 방대한지 아직도 성기를 우물대고 있는 밀문을 빠져나왔다. 틈이 보이지 않는 이음새에 어느새 뚝뚝 질척한 액체가 흘렀다.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서문윤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검설린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말을 내뱉은 서문윤은 침상에 힘없이 누워 옴짝달싹을 못 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검설린이 침상 밖으로 떨어진 침의를 주워 몸에 걸치며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는 침상에 누워 있는 서문윤을 탓하지 않았다.

서문윤은 그저 피곤함에 눈을 감을 뿐이었다.

‘힘들어.’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으며, 실제로 살갗에 멍울이 드문드문하게 보였다. 뼈가 다 갈려나간 기분에 서문윤은 그저 축 늘어져 검설린의 시중을 받았다. 검설린은 수건으로 그의 몸을, 질척한 밀문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안의 것을 빼낸 뒤 그 아래를 닦아주었다. 내벽에서 손가락이 꾸물거릴 때 서문윤은 볼을 살짝 붉혔으나, 그의 손길은 성애의 뜻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그저 정사의 흔적을 정리할 뿐이었다.

서문윤은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검설린이 그의 침의에 매듭을 짓고 모든 일을 마무리했으니까.

모든 일이 끝났음에도, 그러나 서문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제 모두 끝났다고?’

청년은 복잡한 얼굴로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그 새하얀, 티끌 하나 없는 꼿꼿한 백의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를 응시하는 시선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서문윤이 한숨을 삼켰다.

자진해서 그에게 안긴 시간.

‘차라리 그냥 아프기만 했다면 좋았으련만.’

서문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한참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오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뼛조각이 부서진 듯한 충격에 휘말려, 뜨거운 피가 몸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열감에 휩싸여 서문윤은 가쁜 숨을 내뱉었다.

의형은 일전에 제게 거짓을 말했으나, 그 외에 그는 헛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그는 헛말을 하지 않았다.

몸에 남은 쾌락이 진하다. 서문윤은 결국 몸을 모로 뉘고야 말았다. 천장을 보려 했더니만 자꾸 검설린을 힐끗거리게 되어, 서문윤은 그를 등에 진 채 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

짧은 시간 그는 벽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또한 많은 생각을 품었다. 그동안 서문윤은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에 오른 것만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무릇 사내라면 당연히 느끼는 정사 후 부끄러움이 들었다. 검설린이 한 짓을 잊고 쓸개 빠진 사람마냥 그에게 매달리며 좋아하던 제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서문윤은 몸에 잔여한 나른하고 녹진한 감각에 자괴감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동시에 의형을 쫒는 제 시선을 깨닫고는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그는 울상을 짓고야 말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건만, 기세 좋게 그를 의형으로 모시지 않겠다 말을 했건만 어째서 왜 이런 상황이야.

계약으로 몸을 준 거다. 이건 대가다. 그리 다짐을 했건만, 상황이 몹시 이상했다. 검설린은 그날과 다르게 몹시 다정했으며, 성교는 급박하지 않게 서문윤의 몸을 쾌락으로 점했다.

뜻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서문윤이 착잡함을 삼킬 때였다. 몸을 웅크린 서문윤 뒤로 나른한 저음이 울렸다.

“자거라.”

밤을 꼴딱 새어, 창문 밖에 태양빛이 쨍했다. 서문윤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동이 텄습니다.”

“늦게 출발하자.”

“당신은, 안 주무십니까?”

서문윤은 그 말을 내뱉고 몸을 돌렸다.

검설린은 창가 옆에 서 있었다.

어슴푸레한 동녘의 빛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빙옥 같은 살결 위에 그 따스한 빛이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서문윤은 그 순간 신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사내는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은 후였으나 숱 많은 머리카락만은 관을 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광(日光)은 폭포수 같은 매끄러운 머리카락 위에 놀았고, 사내는 숱 많은 눈썹을 느리게 깜빡이며, 서문윤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검설린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웠으나 말 그대로 조각상마냥 어쩐지 생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미안(美顔)은 사뭇 달라 보였다. 우아하나 어딘가 냉막하던 얼굴이 따스한 빛을 받아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으며, 서문윤은 그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옥으로 만들 골격, 천상의 사람 같은 모습(玉骨仙風)

흑요석을 세공한 듯한 새까만 눈에 몽롱한 얼굴의 청년이 담겼다. 서문윤은 한참을 입술을 뗄 수 없었다. 검설린 또한 침묵을 지키며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적갈색 따사한 빛이 방을 가로지르던 때였다.

검설린이 입술을 열었다.

“자거라. 네 옆에 있으마.”

조금 생각할 것이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서문윤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석>

*1. 맹자는 인(仁)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며, 인도를 걷는 행위는 인간이기에 마땅히 행하야 할 일이지, 천하의 이익과는 상관없다 말함 反. 순자

*2. 《맹자》 <양혜왕> 편 中 어찌 이를 말하십니까? 이 세상에는 인과 의만 있을 뿐입니다. 맹자는 민본을 바탕으로 한 왕도론을 주창함.

*3. 획린의 고사. 기린은 성인이 있을 때만 출현하는 신물인데, 촌부에게 사냥당한 적이 있었다. 공자는 세상의 도리가 무너졌음을 깨닫고 한탄하며 집필을 마무리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