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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나립 박사(6) (7/31)

6. 파나립 박사(6)

박사란 학문의 대종사(大宗師)에게 내리는 직책이다. 진시황이 제자백가의 여러 갈래 중 실용성 있는 학파의 종사에게 박사의 직위를 내렸으나, 한무제가 유교를 받아들인 이후 대부분 박사는 유가의 큰 스승을 의미했다.

“아니 되옵니다!”

“어찌하여 기괴망측한 사술을 행하는 짐승과도 같은 무리에게 그런 명예를 주시나이까!”

신하들의 울음에 주렴 아래로 옥처럼 맑은 웃음이 흘렀다. 울부짖는 이들의 얼굴 주름 위로 눈물이 뚝뚝 흘러 떨어졌다. 구슬 장막 아래 존엄한 하늘의 아들(天子)은 그들의 울음에 아랑곳 않고 소매를 휘저으며 소리쳤다.

“반언은 가납하지 않는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처절한 비명이 흐르는 와중, 묵묵히 편전에 엎드린 사내 하나의 눈이 희번덕 빛났다. 왜소한 체구에 고집이 세 보이는 인상. 약간 야윈 체구의 사내는 눈을 빛내며 주렴 뒤에 자리한 지고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

사내는 입술을 핥으며 눈알을 굴렸다.

‘호부에 꼭 호자가 나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서가 증명한 일이다, 그것은. 그리고 사내는 주렴에 흐릿한 그림자를 보고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우렁찬 말을 들으며 훗날 동파재상으로 불리는 상서령 고우군(高佑君)이 이를 악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시각, 불타는 냄새가 가득한 학당의 너른 마당에, 30대 사내와 20대의 청년이 나란히 서 있었다. 20대의 청년은 생김새가 눈에 띄게 빼어났으나,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30대의 사내는 콧대가 높고 눈이 움푹 들어간, 몹시 이국적인 용모의 소유자였다.

“스승님, 일이 잘되겠습니까.”

조금 더 어린 청년이 불안에 가득 차 내뱉은 말이었다. 덤덤한 얼굴로 불타는 서책을 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요.”

“저는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말려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의 말에 사내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희미한 웃음은 불그림자에 묻혔다. 군다사파의 진주라 불리는 사내, 파나립이 말없이 불에 타는 경교(經敎)의 독전을 바라보았다.

그가 박사가 된 날이었다.

그리고.

뺨이 붉은 아이가 오랜만에 돌아온 아비의 목덜미에 팔을 감고 맑게 웃었다.

“아버지!”

새하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 두건을 쓴 사내였다. 사내의 얼굴은 영준했으며 두 눈은 맑은 빛으로 반짝였다.

“이렇게 컸구나! 네가!”

또한 그는 군다사파의 의학당에서 파나립과 함께 경교의 서적을 태운 이였다. 아이의 아비가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그를 들어 올렸다. 허공에 맑은 웃음이 흐르고, 아이와 몹시 비슷한 생김새의 사내가 시원한 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아린(兒鱗)!”

다섯 살의 고민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검설린이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젊은 시절, 당금 황제의 치세에 비단길로 교류가 한창 활발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 서양의 문물에 심취했던 젊은 황제는, 그러나 스스로 박사 위를 내렸던 파나립의 목을 베고 그 일당을 모조리 대역죄로 지정함으로써 그들을 숙청하였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을 꾀하고 사교를 전파했다는 죄목.

군다사파 의학당 장안 지부에 가득하던 사람들도, 열띤 토론이 오가던 자리도 한때의 꿈이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해였다.

죽어가는 이도 살린다는 북성신의의 소문이 황궁의 높은 담을 넘었다.

사내의 출입이 금지된 금남(禁男)의 공간, 미오궁(郿塢宮)에서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절세가인이 손에서 나비 비녀를 굴렸다. 새까만 수정 같은 눈으로, 여인은 손에 쥔 비녀를 굴리며 아리따운 얼굴을 슬쩍 갸웃거렸다.

“마마?”

궁인의 물음에 미녀, 황제의 사랑을 받는 귀비가 느릿하게 붉은 입술을 열었다.

“고 재상은 말이야.”

“……?”

“죄책감도 없을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궁인의 얼굴이 아리송했다. 귀비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고혹적인 미소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아직은 어린 궁인을 보며 입술을 혀로 축였다.

‘26년 전 동서대란(東西大亂), 그리고 8년 전 동궁사변(東宮事變).’

당금 천자의 시대에 일어난 두 사변이었다. 삿된 서학의 씨를 말살코자 당시 황제는 수많은 서학의 무리를 탄압하고 죽였다. 한때 파나립을 박사로 봉하고 총애했던 천자는, 참소에 격분하여 그들을 내치고 고 재상을 중용했다.

동궁사변은, 바로 황태자가 귀비를 범하려 한 사건이었다.

당시 서학을 중용하려던 황태자가 색욕에 물들어 귀비를 범하려다 축출되고, 이 땅에 사이한 학문은 완전히 사라졌다. 북란에서 나라를 구했던 구국의 영웅은 단지 태자의 일당이라는 이유로 심문을 받았다,

귀비가 입술 끝을 비틀었다. 나비 비녀 끝에 꽂힌 보석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나비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그것은 투명한 빛을 흘리며 귀비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교활한 재상이 항상 있었다. 그를 떠올리며 귀비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사람이라면, 손에 묻은 피가 신경 쓰이는 법 아닌가.”

귀비는 제 손으로 목숨을 거둔 영준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쓸쓸히 웃었다. 그 사내의 얼굴을 생각하면 마음이 공허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뻔뻔한 일임을 알면서도.

‘태자.’

얄궂게도, 사람 마음이 그러했다.

‘그대는 나를 증오하겠지.’

나비 비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비가 말문을 열었다.

“고 재상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신념을 가진 채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형장으로 보냈지. 암계(暗計)를 쓰면서도 제가 옳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악귀(惡鬼)가 아니냐.”

그리 말하며 웃는 귀비의 미소가 싸늘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궁인은 목구멍에 제 눈에는 마마가 제일 무섭습니다, 두려움에 서린 말을 삼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황제의 총애를 독점하는 귀비의 눈이, 나비 비녀에 달린 보석처럼 번뜩거렸다.

‘그리 서파를 증오하는 고우군이 누가 봐도 수상쩍은 의원을 처치하지 않는 까닭은, 그 또한 짐작하는 바가 있어서겠지.’

입가에 스치는 서느런 미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의는 바로 그 사내다!’

* * *

서문윤이 눈을 뜨자 마주한 것은 꿉꿉한 천장이었다. 한참을 몽롱한 눈을 깜빡거리던 서문윤은 정신이 돌아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긴?’

정신을 잃기 전에 분명 저는 목함을 찾으러 불길로 무너지는 전각을 헤맸다. 서문윤의 눈이 흔들렸다.

그 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서문윤은 그 순간 얼어붙고야 말았다.

“아.”

작은 신음을 흘리며 서문윤이 새파란 입술을 떨었다. 붉은 뺨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옆에 자리한 사내를 응시했다.

말없이 벽에 기대어 앉은 사내의 정체는, 바로 그의 의형이었다. 평소에 흐트러짐 없던 차림새는 온데간데없이 길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린 검설린이 무심한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무성한 짚 위에 주저앉아 손을 무릎 위에 늘어트린 채 그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그 참담한 일을 저지른 사내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수려한 얼굴은 다시 복면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그는 덤덤하게 서문윤의 시선을 마주했다.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검설린의 의복이 흐트러졌단 점이었다. 그는 어제 입었던 침의도, 새하얀 의원복도 아닌 미백색의 소매가 좁은 옷을 입은 상태였다.

서문윤은 낡은 벽과 그들을 가둔 나무 창살에 자신이 감옥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감옥은 보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했으며, 간수 둘이 낡은 창을 들고 밖을 지키는 중이었다. 청년이 얕은 신음을 흘리며 미간을 좁혔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서문윤은 의형이 입은 옷을 자신 또한 입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애필(艾鞸; 죄수복)이란 것도.

복면을 쓴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문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서문윤이었다.

“형님.”

바짝 갈라진 목소리. 검설린이 묵묵히 그를 보았다.

한참 말을 머뭇거리던 서문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도저히 말을 내뱉지 못하겠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냉랭한 얼굴이 되어버린 의형이 원망스럽고도, 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 욱신거리는 허벅지 사이, 은밀한 부위의 통증만이 어젯밤의 일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서문윤은 결국 입술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말을 삼키며 그는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긴장된 공기는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그 끝에 서문윤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 구석으로 향했다.

‘같이 있기 싫어.’

벽에 등을 붙이고, 몸을 웅크리며 한 생각이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서문윤이 목구멍에 꾸역꾸역 치솟아 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눈을 감으면 어른거리는 그날의 기억. 허벅다리를 한계까지 벌리며 들어가지도 않는 성기를 꾸역꾸역 쑤셔 넣던 의형. 버둥거리는 몸을 가슴으로 짓누르고 목을 핥던 그. 미소를 지으며 제 입술에 부드러운 입술을 겹쳤던 수아한 외모의 검설린.

기억을 떠올리던 서문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또다시 마음 한편이 욱신거렸다. 골조만 남은 듯한 마음에는 휑한 바람이 오가는 듯했다.

서러움에 서문윤이 둥글게 말린 어깨를 잘게 떨 때였다.

“나를 원망하나?”

적막을 깨고 들려온 목소리에 서문윤의 몸이 멈칫했다. 잠시간 몸을 굳힌 채 달달 떨던 서문윤이 고개를 들었다.

검설린은 서문윤이 아닌 반대편의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묵을 지켰다.

서문윤은 그의 심중을 읽으려 그를 샅샅이 살폈으나, 새하얀 천에 얼굴이 대부분 가려져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서문윤은 결국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 때 검설린이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원망하거라.”

그 말이 어째서 서글픈지. 그 말에 어찌나 화가 나는지. 서문윤이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설운 목소리가 답답하게 들려왔다.

“……계속 저를 범하셨습니까?”

“…….”

“어제가, 처음이 아니지요.”

검설린이 짧게 답했다.

“그래.”

서문윤은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문을 잃은 채 한참을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던 서문윤은, 그 끝에 짤막한 말을 더듬더듬 내뱉었다.

“앞, 앞으로, 저를 그렇게…….”

그 말을 할 수 없어 차마 뒷말을 내뱉지 못하는 서문윤을 대신해 검설린이 그대로 말을 받았다.

“안을 거다.”

서문윤은 그 말에 또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얼굴을 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서문윤은 몸을 무너트리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르시는 겁니까.”

원망 어린 말이 울음과 함께 섞여 검설린의 귓가로 들어왔다. 그러나 서러운 모습에도 그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말했지 않나? 너를 안고 싶었다고.”

절망에 가득 찬 청년의 위로 쏟아진 냉정한 말이었다.

“다리를 내가 고쳤으니, 너도 대가를 줘야지.”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터무니없는 소리에 서문윤이 이를 악물며 충혈된 눈을 부라렸다.

“의, 의형은 대가 없이 진료하잖습니까.”

항변에 검설린은 조소로 답했다.

“너는 예외다.”

그 말을 내뱉고 사내는 고개를 돌려 서문윤을 바라보았다. 그 안이 텅 빈 공허한 눈이 허망해하는 청년을 비추었다. 서문윤이 무언의 압박감에 저절로 몸을 움츠리고야 말았다.

검설린은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연정을 품고 있었다 했나? 잘됐군. 서문윤. 네가 나를 꺼리는 마음이 없다니 다행이구나. 이제 우리는 계속 몸을 섞을 거다.”

선포와도 같은 말이었다. 서문윤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왜, 어, 어째서, 왜…….”

절망에 가득 찬 망연한 목소리가 감옥을 맴돌았다.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는 의제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에 음울한 그림자가 가득했다.

서문윤은 한참을 울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검설린은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은 채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연모하는 사내에게 겁간당한 심정이 어떠하랴?

“연정을 품고 있었다 했나? 잘됐군. 서문윤. 네가 나를 꺼리는 마음이 없다니 다행이구나.”

하물며 그런 말을 듣고 제정신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으리라. 네가 나를 좋아하니 계속 내게 안겨라. 그 말을 듣고서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을 수 없었다. 격렬한 감정에 허우적거리던 서문윤은 시간이 흘러 차츰 진정했으나 그래도 온전히 행동할 수 없었다.

서무윤은 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마냥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말을 하지 않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로 그는 구석에 박힌 채 음울한 얼굴로 자리할 뿐이었다.

“너 굶어 죽을 거냐?”

보다 못한 간수가 윽박질렀다. 그 으름장에 서문윤은 역시 답하지 않았다. 경칠승이 구빈을 했다지만, 오곡현은 청사조차 수습이 제대로 안 된 재난지였다.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며 간수가 서문윤을 향해 이죽거렸다.

“신의를 사칭한 사기꾼이 불까지 냈으니, 어차피 죽을 터인데 그나마 남은 시간도 헛쓰는 거냐.”

“불을 냈다고?”

놀란 서문윤이 그제야 반항했다. 간수는 버럭 윽박질러 답했다.

“그래! 이 개잡놈들아! 경 대인께서 운 좋게 물수레를 공수하지 않았다면 마을이 다 타버렸을 거다. 이 못난 놈들아! 방화범은 즉참이니 너희 목숨은 이제 끝났다.”

실로 금시초문이 아닌가, 그것은?

그러나 간수는 그 말이 사실이라 단단히 믿는 듯, 침을 퉤 바닥에 내뱉고 매정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감옥 안에서 서문윤이 넋을 잃은 채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방화? 방화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서문윤은 이것이 경칠승이 놓은 덫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황파악을 한 서문윤은 그 순간 고개를 돌려 검설린을 쏘아보았다.

“결국 이렇게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의형.”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검설린이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태연한 모습이 몹시 보기 싫었다. 서문윤이 미움을 삼키며 이죽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냥 제 눈치 보지 말고 저를 범하면 되겠습니다.”

동탕된 마음에 원망을 드러내며 서문윤이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평소라면 저지르지 않을 경솔한 짓이었다. 애초에 경칠승이 무모하게 그들을 죽일 리도 없다. 그러나 그는 충동에 말을 내뱉고 경애하던 의형을 노려보았다.

검설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서문윤은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말은 기세등등했으나 시선에서는 희미한 두려움이 묻어 나왔다. 또한 그는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검설린의 눈치를 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로, 청년은 말과 다르게 검설린을 살피며 몸을 움츠렸다. 발악하며 허세로 내뱉은 말임을 알리는 기색이 완연한 모습이었다.

돌아온 것은 냉소였다.

“내가 왜 네 눈치를 보지?”

그리 말을 하면 서문윤도 할 말이 없었다. 부리 닫듯 입술을 다문 서문윤의 귓가로 덤덤한 말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그리할 생각이다. 네가 그 죽을 비우지 않으면.”

“무, 무슨!”

새하얘진 서문윤의 얼굴을 바라보며 검설린이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서문윤이 이를 악물며 치를 떨었다.

저를 강제로 범하고 겁박한 것은 그다. 분명 감옥에 갇힌 이 상황의 원인 또한 그다.

‘헌데 어찌 저리 뻔뻔해?’

서문윤은 얼굴을 붉혔으나, 그를 억울한 눈으로 노려보면서도 입술을 열지 못했다. 그는 항변의 말을 삼키며 이를 악물 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리란 것은 충분히 경험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감옥 바닥에 자리한 죽그릇을 한참을 노려보았다.

서문윤이 죽그릇을 쥐는 것을 보고선, 검설린은 눈을 감았다.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검설린과 서문윤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서문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평정심을 되찾았다. 몸에서 흔적이 사라질수록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으나, 그래도 어두워진 얼굴을 펴지는 못했다.

검설린은 벽에 등을 댄 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밤이 되면 경계를 하며 그를 훑던 서문윤의 행동이 무색하게, 그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 깊은 어둠이 자리한 시간 동안. 잠에 들지 못하면서.

검설린도, 서문윤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시간이었다.

서문윤은 얕은 숨소리로 그가 취침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취해 매번 그런 짓을 당했는데 또 어찌 그 앞에서 태평하게 잠에 들까?

그리하여 감옥 안에는 긴박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사흘이 지나는 날의 밤. 서문윤은 2년 동안의 추억을 생각하며 우울한 얼굴로 창살 밖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왜 그를 이렇게 좋아하게 됐을까?’

존경할 만한 대상이었으니까. 사람을 살리고도 칭송을 거부하고, 모두가 꺼려하는 곳에 망설임 없이 찾아갔으니까. 서문윤이 한숨을 내뱉었다. 존경하지 않는 것이 웃긴 일이지. 그러나 왜 하필 이런 방식으로 그를 품게 되었느냔 말이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서문윤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부터인가 검설린이 차츰 유해졌고, 누구도 보지 못할 그의 나약한 모습을 보았다. 그의 마음을 언뜻 엿보았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서문윤이 쓸쓸함에 사로잡힐 때였다. 그는 옆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 마치 어린 짐승의 새끼가 내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서문윤은,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은 검설린을 발견하고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말없이 턱을 들어 올린 채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감옥의 바닥을 끄득 소리가 나게 긁는 손과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가 그의 불안한 몸상태를 증명했다.

서문윤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며칠째 챙겨 먹던 약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발작이, 설마?’

약초의 수급이 끊겨 크게 앓던 검설린을 본 적이 있었다. 서문윤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검설린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저 침묵을 지킬 따름이지만, 어찌 모를까? 그의 감긴 속눈썹이 잘게 떨리는 것을. 그가 가끔씩 몸을 비틀 때마다 신음을 흘리는 것을. 거친 감옥 바닥을 긁는 손가락 마디의 끝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서문윤이 숨을 멈추었다.

괜찮으십니까? 의형!

그리 소리 치고 달려 나갔을 것이다. 평소라면.

그러나 서문윤은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엉거주춤 멈추어 섰다. 경악에 충동적으로 자리를 박차려던 청년은 동상처럼 멈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에 갑자기 물벼락이 몰아친 것이었다.

‘내가 왜 그를 걱정하지.’

자신을 배신한 검설린의 뻔뻔스러운 말을 떠올리고, 서문윤은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는 망연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나.

“안고 싶어서.”

검설린을 바라보았다. 그 때의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듯했다.

서문윤이 입술 끝을 비틀어 조소를 흘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검설린을 외면했다.

짧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입 밖으로 흘렀으나 검설린은 그 이상으로 고통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을 꾹 감은 채 괜찮은 척할 뿐이었다. 그렇게 사내는 시선을 못 본 채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검설린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셔 창백해졌으며, 그의 손끝은 피투성이였다. 애써 그를 보지 않으려던 서문윤은, 어느 순간부터 그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나 서문윤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그러고였다.

“헉?”

서문윤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뜬 검설린에 놀란 얼굴로 주춤거렸다. 그의 얼굴을 응시하던 중이었다. 찔린 마음에 몸을 움츠리던 서문윤은, 이어진 검설린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의, 의형!”

검설린이 맥없이 몸을 고꾸라트리고 있었다. 대경한 서문윤이 그를 향해 뛰쳐나갔다.

“의형!”

심중의 복잡한 마음도, 열 가지 생각도 싹 잊은 채였다. 머릿속에 품고 있던 교차되는 말들도 깡그리 잊은 채였다.

그를 도와라.

아니, 그는 배신자다.

그래도 그는 중요한 사람이니 돌봐야 하지 않나.

바보같이 굴지 마, 서문윤!

다리를 살린 은인인데, 어찌 그리 매정하게 구나.

수많은 말들이 뇌리에서 사라지고 서문윤은 검설린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괜, 괜찮으…….”

긴 시간 홀로 고통에 버텼던 검설린은, 서문윤의 손이 닿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해 몸을 무너트리고야 말았다. 서문윤은 익숙하게 그의 구부려진 등을 쓸어내렸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일전의 다짐과는 다른. 방금 전까지의 그의 마음과는 다른 손길.

그를 깨닫고 몸을 뻣뻣하게 굳히던 서문윤은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혈향을 깨닫고 마지막 망설임마저 내던지고야 말았다. 결국 서문윤은 완전히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웃었다. 슬픔도, 괴로움도 아닌 허망함에 의한 괴로운 웃음.

‘나는 의형을, 완전히 놓지 못하겠구나.’

그는 진실로 잔인한 사람이다. 서문윤은 마침내 서러움을 삼키며 웃었다.

품 안에서 검설린이 거친 기침을 토했다. 서문윤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몸을 고꾸라트린 검설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타액이 입가에 줄줄 흐르고 동공은 흐릿하게 변해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 그리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검설린은 한참을 몸을 웅크리고 기침을 해댔다.

시간이 흘렀다. 서문윤은 어느 순간 그의 걸리적거리는 복면을 슬쩍 내려주었다. 시원한 턱 선이 먼저 드러났으며, 높은 콧대가 뒤이어 보였다. 서문윤은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야 말았다. 사흘 만에 다시 본 얼굴은 여전히 수려하고 고아했다. 그러나 평생을 잊지 못할 그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핏물이 섞인 끈적한 타액이 입술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서문윤은 그 순간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아찔한 기분이다.

미움도, 배신감도 잊은 채 서문윤은 말없이 자괴감에 몸을 떨며 품 안에서 숨을 거칠게 헐떡거리는 검설린을 꾹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를 붙잡아 당겨 제 가슴에 얼굴을 묻게 했다. 혼탁한 눈을 한 사내는 비틀거리며 서문윤의 품으로 쓰러졌다.

“넌…….”

검설린이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날, 왜, 껴안아, 지금.”

마디마디가 끊긴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답지 않은 목소리. 서문윤은 대답을 하지 않고 울었다. 그는 그저 검설린을 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검설린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차마 할 말을 잃어버린 듯 그는 빈정거리는 말이나, 냉정하고 싸늘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서문윤의 품에 늘어져 그는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싸늘한 달빛이 한 줄기 흐르는 감옥 안에 자리하여서.

서문윤은 그를 놓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여 어느새 소리 없이 울고야 말았다.

침묵 끝에 검설린이 탄식이 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이 상황에서도…… 또 남 걱정이냐.”

서문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문을 열었다.

“남이 아닙니다.”

검설린은 그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검설린은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서문윤은 묵묵히 검설린을 껴안은 채 그의 몸을 다독이고, 기침하는 그의 등을 쓸었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냐?”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는 말이었다. 서문윤이 쓰게 웃었다.

“의원의 눈으로 보기에 쓸모없는 행동입니까.”

“…….”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혼자 고통을 견디는 것은 힘들 테니.

그 말에 검설린은 짧은 시간 침묵했다. 서문윤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침묵의 끝에 검설린은 쓰라린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문윤은 지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로서도 어찌 마음을 정하지 못해, 청년의 눈가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었으며 뺨은 초췌해져 있었다. 흔들리는 눈을 바라보며 검설린이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는 어쩐지 화를 억누른 듯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다시 이루어진 적막.

그 끝에 검설린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허탈한 웃음을 짧게 흘렸다. 한숨에 가까운 쓰라린 탄식이었다.

* * *

서문윤과 검설린은 이틀을 더 불편한 동거를 유지했다. 다만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문윤이 검설린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여전하나, 더 이상 배신감에 눈물을 흘리거나 공허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그는 그늘진 얼굴로 상념에 잠겼으나, 대부분의 시간 겉으로는 덤덤한 모습을 유지했다.

합해서 닷새를 감옥에 있는 셈이었다. 비록 지진에 다른 수인이 없어 감옥을 둘이 쓰고 건물도 최근에 보수한지라 상태가 쾌적하였으나, 그래도 옥고는 옥고였다. 멀건 죽으로는 배를 충족하기에 버겁고, 한정된 식수는 서문윤을 불안케 만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하지?’

검설린에게 쏘아붙여 말하긴 했으나, 서문윤은 경칠승이 그를 포기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만한 노인이 쉽사리 생을 포기할 리가?

노인의 생애에 대한 집착은 몹시 끈질겼다.

‘이만하면 경칠승이 협상에 나와야 될 때다.’

불안에 서문윤이 안절부절못할 때였다.

“어찌 방화를 저지르셨소?”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서문윤이 눈을 번쩍 떴다. 기다리고 있었던 목소리다. 그는 어둠 속에서 맑은 눈을 빛내며 숨을 멈추었다.

감옥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승리를 짐작하는 고조된 웃음.

“끌끌끌…….”

불안함을 불러일으키는 사특한 웃음이었다.

경칠승의 등장에도 둘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정좌로 앉아 검설린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고, 서문윤은 벽을 보고 누운 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 급하게 행동하면 약점을 잡힐 뿐이다.

기세싸움이 중요한 때였다. 서문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끌끌, 내 이럴 줄 알았지. 순진한 노인들을 속이니 좋소?”

“…….”

“그대의 의술도 이번에는 별로 쓸모없었구려. 지진은 내 수습한 지 오래야. 도시에서 불러온 의원들이 급한 환자를 치료하였지. 자네는 너무 늦었어.”

“…….”

“신의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네. 이미 내가, 내 돈이 구했으니까.”

서문윤이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노인은 대답 않는 둘의 모습에 답답한 듯 언성을 높여 말을 이었다.

“이 상황에서 신의가 구할 수 있는 환자는 오직 나뿐이야!”

경칠승의 목소리가 격정에 들끓었다.

“그대의 죄는 방화다! 신의로 사기를 쳐 난장이 된 자리에 찾아가는 이인조 사기꾼. 빈민을 등쳐먹어 돈을 벌려다가 오곡현에 오게 되었고, 생각보다 수습이 잘된 촌에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방화를 저질러 사건을 벌이려다 잡힌 걸세! 누가 보아도 명백한 죄목이야. 내가 그대를 죽이지 못할 것 같은가?”

말에서 독심을 느낀 서문윤이 얼굴을 굳혔다. 노인은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증오를 내보였다.

“내가 정말 수가 없을 줄 아나!”

이어진 목소리에 서문윤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목함은 내가 훔쳤다! 그대는 내가 거상이란 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소! 감히 파나립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지만 나는 중원에 비견할 수 없이 뛰어난 대식국의 의원을 알지! 그들이 파나립의 의기구를 받고 나를 고칠 수 없을까? 그대의 고집을 꺾는 것이, 요원하다면, 나는, 나는…….”

경칠승은 말을 흐렸으나 서문윤은 그가 삼킨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이런.’

얼굴을 굳힌 서문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돌린 그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손에 든 채 허망하게 웃는 경칠승을 바라보고 눈매를 치켜떴다.

“나를 악귀로 만들지 마라!”

서문윤이 그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노호를 터뜨렸다.

“입 닥쳐라! 무고한 사람을 음해하고서도 혀를 나불거려?”

경칠승의 눈시울이 붉어진 순간이었다.

“닥쳐!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지? 내가 얼마나 기를 쓰고 이 자리에 올랐는데? 이 자리에 오르고도 명예를 얻으려 얼마나 노력했는데?”

“한낱 상인 주제에!”

“그래! 상인!”

서문윤의 말이 기폭제가 된 듯, 경칠승이 옥사에 달려들어 나무 창살을 손으로 쥐었다. 격분한 목소리로 노인이 소리쳤다.

“사농공상이라고? 나는 서역에서 존경받았으나 중원에서는 천하다 욕을 먹었다! 아무리 내가 이웃과 재물을 나누어도, 사람들은 나를 돈을 밝히는 상인이라 욕을 하지. 이런 내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아는가! 태어나자마자 영예를 얻은 이들은 모른다. 나를 네가 어찌 평가해? 나를 비난하는 너는 누구냐!”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한 말이었다. 우렁찬 목소리가 감옥을 쩌렁하게 울렸다.

“그리 내게 말을 하는 너는 무슨 노력을 했길래 당당하나!”

실로 기가 막힌 말이 아닌가?

뻔뻔스럽게 노호를 터뜨리는 노인에게, 울컥한 서문윤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러나 그는 이어서 말을 내뱉지 못했다.

“…….”

울분을 토해내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과 마주하고, 서문윤은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나는.’

노력을 하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혹독하게 기마술을 배우고, 온몸에 멍이 들어가며 검술 훈련을 했다. 밤낮으로 글월을 외고, 또 검술을 단련하여 무과에 급제하였지.

허나.

서문윤이 새파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것이 정녕 나 혼자만의 공인가?’

황하에 절망하여 서성거리던 청년을 떠올리며 서문윤은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2년의 시간 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빈민을 생각하며 그는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나는 노력하였다, 나의 영예는 모두 나의 노력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리 말하지 못했다, 서문윤은.

“대답해보아라! 왜 말이 없어?”

경칠승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에 서문윤은 그저 새하얀 얼굴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청년은 멍한 얼굴로 발악하는 경칠승을 바라보았다.

넋 잃은 서문윤을 구원한 것은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그는 추악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지.”

나무 창살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던 경칠승이 얼어붙은 순간이었다.

서문윤은 숨을 들이켜고 창백한 얼굴을 돌렸다.

“너와 다르게.”

사내는 노인을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얼굴에서 조소를 지우고 정색했다. 그리고 준엄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와 너를 비교하지 마라. 저 어린 청년은 단 한 번도 삿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진흙탕에 발을 담그지 않으며, 대로를 걷는 이다. 네 입에 함부로 담지 마라.”

서문윤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제 평가가, 들은 귀를 의심할 만큼 찬사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그 무슨?’

그런 말이 의형의 입에서 나올 줄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서문윤이 멍하게 검설린을 보았다.

그는 그저 경칠승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으음.”

경칠승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발악하지 않았다. 창살에 달려들듯 격하게 분노를 토하던 노인은, 그를 멸시하듯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고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침묵이 있었다.

경칠승은 굳은 얼굴로 제 목숨을 살릴 의원을 바라보았다. 서문윤은 말없이 그들을 관조하며 긴장을 했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입장.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그의 말에 응하는 것밖에 살길이 없는 사내는 그저 싸늘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목숨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살길을 포기한 사람처럼.

서문윤이 침을 삼켰다.

“…나를 원망하고 있소?”

정적을 깬 거친 목소리였다. 쉬고 갈라진 목소리. 환자라고 믿기 힘들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노인은, 그 나이와 몸 상태에 맞는, 영혼이 빠져나간 힘없는 목소리를 흘리며 얼굴을 슬프게 일그러트렸다.

검설린은 그럼에도 입술을 열지 않았다.

“살려주시오, 제발.”

결국 노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절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몇 번이고 냉기 가득한 바닥에 이마를 찧어가며, 노인은 구슬픈 목소리로 어흑흑 눈물을 흘렸다. 서문윤을 비난하던 상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서문윤이 탄식을 삼켰다. 그 처절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 어찌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경칠승은 악인이나, 서문윤은 이 상황에서 그를 더 이상 비난할 수 없었다. 그 생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그 죽음에 맞닿은 자의 공포가, 그의 인정에 호소하는 듯하였으므로.

망령 된 자의 공포는 삶을 향한 짙은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문윤은 더 이상 독하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는 그저 무거운 얼굴로 의형의 반응을 살필 따름이었다.

그러나 보는 이의 마음을 무너지게 만드는 처절한 탄원에도, 검설린의 냉랭한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살려주시오, 제발…….”

노인의 울먹거리는 말에,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병을 고치려 살을 갈라도 노화된 몸이 견디지 못한다.”

검설린의 얼굴은 덤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경칠승이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런.”

“장안에 의학당이 있었더라면 또 몰랐겠지.”

노인의 얼굴이 얼어붙은 순간이었다. 검설린은 조소를 흘리며 짧은 말을 내뱉었다.

“수많은 의원들이 오랜 기간 네 몸을 돌볼 수 있을 터이니. 나는 약속을 지키러 떠날 것이며 너는 죽을 것이다.”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문윤은 그의 얼굴에서 망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너는 죽을 것이다.”

쐐기를 박는 말을 하는 검설린의 얼굴은 칼처럼 단호했다.

이윽고 처절한 울음이 감옥을 울렸다.

서문윤은 말없이 바닥에 엎드려 우는 노인을 보았다. 착잡함이 입안에 감돌고, 청년은 쓴웃음을 흘렸다. 이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통곡은 짐승의 것과도 같았다. 희망이 끊긴 노인의 비명에서 불길함이 전해졌다. 서문윤이 긴장에 침을 삼킬 때, 마침내 노인이 몸을 번쩍 일으켜 잉걸불처럼 빛나는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너 또한 죽을 것이다!”

저주와도 같은 말을 끝으로 경칠승은 성큼 감옥 밖을 나섰다.

* * *

서문윤이 숨을 멈추었다. 그의 뺨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한겨울이었으며, 감옥은 한 번 무너졌다가 급하게 보수되어 바람이 드나드는 구멍이 많았다. 일이 이리되었구나. 암담함에 사로잡혀 서문윤이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서문윤이 허망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팔로 머리를 감싸며 서문윤은 한참을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는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원망하지는 않는다.’

청년은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렸다. 어차피 무관으로 임관하기 전, 다짐했지 않나? 나는 나의 목숨을 귀중히 여기기보단, 신념을 위해 살리라.

그러나 마음이 혼탕한 까닭은, 이 죽음의 그림자가 저에게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문윤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망치십시오.”

숨을 멈추고, 청년이 이를 악물었다. 감옥은 보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닷새간, 서문윤은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 감옥을 꼼꼼히 살폈다. 새로 끼운 나무 창살은 강인하였으나 이음새가 덜그럭거렸다.

서문윤은 아버지에게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법을 배웠다.

‘문 아래 땅을 파서 틈을 만들고 걸쇠를 붙잡아 흔들면, 나무가 새것이라 단단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이자가 아직도 미우나, 의형이 원망스럽긴 하나….

서문윤이 욱신거리는 가슴을 무시하고 입술을 열었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의형.”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서문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형 집행은 강남동도 안찰사, 강소성주가 인가를 해야 진행이 됩니다. 오곡현에서 치소(관청)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지만, 현령이 장계를 올리기까지 적어도 일주일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검설린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도망가지 않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발끈한 서문윤이 언성을 높였다.

“고집 그만 부리십시오! 드높은 자존심도 세울 자리에서 세워야지, 왜 이리 생각 없이 구십니까?”

답답함에 내뱉는 한탄이었으며, 이기적인 의형을 꾸짖는 말이었다. 참으로 어리석다. 서문윤이 검설린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정좌한 사내의 앞에 선 채 서문윤이 그를 노려보았다.

“한 사람의 의원이 수만을 살릴 수 있습니까?”

검설린의 눈에 이채가 서린 순간이었다. 꼿꼿이 허리를 세운 그의 모습이 애필을 입고서도 사뭇 고아했으나, 서문윤의 눈에 그것은 가식으로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서문윤은 탄식과도 같은 말을 내뱉고 검설린의 뺨을 부여잡았다. 무심한 얼굴을 손으로 붙잡아, 서문윤은 그의 눈과 눈을 마주했다.

검은 유리를 깎은 듯한 두 눈은, 말 그대로 투명한 물체(物體)와도 같아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며, 서문윤은 그 공허한 눈과 마주하며 마음속에 울렁거리는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아직도 나는.’

쓸쓸함을 삼키며 서문윤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나의 삿된 마음이 결국 나를 망치는구나.

그를 잠식하는 감정을 외면하며 서문윤이 떨리는 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한 사람의 습관을 바꾸어 수많은 사람을 살린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타인이 외면하는, 많은 의원이 외면하는 자리에 당신은 나아갔다. 그에게 실망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서문윤 단 하나의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2년의 시간, 적어도 검설린은 민초를 위해 헌신했다.

서문윤이 억눌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

“나의 미움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한탄은 뼈저린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원망을 함에도 나는 그를 베지 못한다. 배신감으로 뼈가 저렸으나 나는 그를 살려야만 한다.

비단 마음속에 자리한 더러운 마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칼날 같은 성정의 의형을 달래러, 서문윤이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릴 때였다.

“의형, 당신은-.”

“그럴 필요 없다.”

애원이 닿지 않는 것일까? 간절한 마음이 닿지 않는 것일까?

말을 끊는 덤덤한 목소리에 서문윤의 얼굴이 굳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리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서문윤이 작게 소리쳤다.

“의형!”

검설린이 그 때 작은 조소를 흘렸다. 그는 손을 슬쩍 뻗어 서문윤의 손을 밀었다.

“정말 이럴 겁니까?”

서문윤은 그를 노려보면서도, 순순히 그의 뺨에서 손을 물렸다. 서문윤을 올려다보는 검설린의 얼굴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토록 생각이 없는 자였나? 나의 의형은.

서문윤이 크게 당황할 때였다.

이어진 그의 말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려던 서문윤의 입을 막았다.

“서역에 군다사파라는 지방이 있다. 무역의 중심지라, 학문 교류도 활발한 곳이고 각국의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차분한 목소리였다.

서문윤이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여상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짙은 속눈썹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덤덤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대식국에서 의술이 발달하고 군다사파에 세워진 의학교가 그 정점을 찍었다. 대진(로마)의 외과의술과 파사(페르시아)의 내과의술이 합쳐서 군다사파의 의학교는 찬란한 업적을 이루었지. 파나립은 군다사파의 의학교의 수제자였고.”

그는 과거의 비사를 말하고 있었다. 그를 깨달은 서문윤이 숨을 멈췄다.

‘이리, 이리 들을 줄이야.’

의형의 과거를 듣는 것은 그의 비원이었다. 서문윤은 항변을 멈추고 그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의학교를 세운 상인이 독실한 경교(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설마.”

서문윤의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짧은 탄식. 어쩐지 무언가 알 것만 같아, 서문윤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검설린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단길을 따라 속특의 상인이 오고 간 것은 알 것이다. 속특인은 대부분 경교 신자였고, 그들이 대당(大唐)에 경교를 전래했지. 파나립 박사는 그와 함께, 중국에 도착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대국이라는 당나라는, 사실상 가장 의학의 수준이 떨어졌으니까. 죽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사명감을 느낀, 당대 천하제일 의원은, 상인과 함께 이 나라에 도착했다.”

“…….”

“처음에는 좋았다. 당금 천자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를 세우고 포교를 환영했으니. 전대 제실(帝室)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지만, 사실은 현 왕조의 뿌리는 그다지 폐쇄적이지 않아. 그렇게 한동안은, 수도 장안에 경교와 의학당이 성행하였다.”

검설린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파나립 박사는 현명하여 의학과 종교가 반드시 분리되어야만 이 땅에 뿌리를 깊게 파고들 수 있음을 알아챘다. 유불도가 자리한 땅에 경교와 의학은 함께 갈 수 없었으므로. 파나립은 경교의 경전을 태우고 오로지 장안에 자리한 군다사파 의학당 분교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진료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것은 그가 들은 바와 다른 말이었다. 서문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열었다.

“헌데 어찌?”

귀족의 입장에서 그저 의학을 가르치는 의학당의 존폐는 하찮은 일이다. 그러나 서문윤이 들은 것은, 장안에 세워졌던 경교인의 의학당이 뿌리 뽑혔단 것이었다. 검설린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재상인 고우군이 나서서 경교의 전파를 막았다. 음서로 혜택을 보던 귀족들이 북방 이민족의 침입으로 몰락하고, 과거로 등용된 신진세력들이 세를 얻은 시점. 고우군은 유가 무리의 구심점이었다, 그 당시에. 새로 등용된 유가의 무리가 수백 년간 이 땅의 권력을 독차지한 귀족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유교의 교조화였고.”

서문윤의 얼굴에 불안이 스쳤다.

“설마.”

그 말에 그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우군을 비롯한 신진세력은 경교의 경전을 들먹여 그들을 사도로 몰았지.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사를 인정하지 않은 난적이라며, 법난을 일으켜 경교를 금지시켰다.”

목소리는 느릿하게 귀에 박혔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서문윤이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파나립 박사는 경교를 버렸다고 하셨잖습니까?”

어찌하여 종교를 버린 자가 법난에 휩싸였나.

두려움이 스치는 서문윤의 얼굴을 바라보며 검설린은 음울하게 웃었다.

“너는 순진하구나. 당연히 참소(讒疏)지!”

명료한 답이었다.

서문윤의 얼굴에 경악이 자리했다. 검설린은 거칠게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뒷돈을 처받았든, 협박을 받았든, 돈 냄새를 맡아 상인의 신념대로 행했든! 속특을 오고 가던 상인들이 참소에 한몫을 했다. 그들은 거짓 증언한 것이다, 서문윤. 파나립 박사가 서역의 경교 사원과 사통했다고.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고,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듣고 포교에 앞장섰다고. 그 증거로 중원에서 보기 힘든 경전과, 그리고 경교의 구절이 담긴 의술 서적을 내밀면서 파나립을 참소한 것이다. 이 순진한 사내야.”

“…….”

“그들이 구해 온 것이다. 오직 그들만이 구할 수 있는 것.”

“…아.”

“동서를 오고 가는 상인만이 구할 수 있는, 참소의 증거. 파나립 박사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검설린이 비웃었다.

“경칠승이 동서무역으로 커다란 부를 얻었다고?”

빈정거리는 어조였다. 무언가를 짐작한 서문윤의 안색이 돌변했다.

“설마… 그가 고변을 했습니까?”

싸악 핏기가 가신 얼굴로 서문윤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검설린은 영혼에 서린 한을 털어내듯 비소를 지으며, 이어 말을 내뱉었다.

“그 당시 동서무역에 종사하던 상인 중에서는, 참언을 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

“서문윤.”

“…….”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단 한 명도 없었어. 단 한 명도.”

서문윤은 할 말을 잃고 검설린의 얼굴을 보았다. 복면으로 가려진 얼굴, 그러나 그의 공허한 눈 안에는 깨진 마음의 파편이 휘몰아쳤다. 서문윤은 가끔씩 아슬아슬했던 검설린의 모습을 떠올리며 신음하고야 말았다.

그는 마치 사람에게 정을 잃은 것만 같았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가끔씩 그가 내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과거와 연루되어 있었나.

‘단 한 명도 참언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서문윤은 그제야, 경칠승을 치료하지 않겠다던 검설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검설린의 스승, 혹은 그와 연루되었을 파나립 박사를 모해한 이였으므로. 설령 부자가 아니라 빈민이라 한들 치료받기 힘들었으리라.

‘의형의 가족은, 그럼.’

어느 생각에 이른 서문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반역자의 가문은 멸족을 하는 법이다.

동서대란 때 얽힌 사람들은 모조리 반역죄로 처벌받았다.

‘그는 불구대천의 원수였겠구나.’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믿기 힘든 사실을 듣고 충격에 몸을 떨던 서문윤이 적막을 깨고 입술을 열었다.

“그래서, 진료를 하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검설린은 빙하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아니다. 그가 순번을 기다렸다면 진료했으리라. 그러나 너도 알지만, 나는 권세가의 집에 묶이지 않는다.”

경칠승의 집에서 묶일 수 없다는 것을 서문윤 또한 잘 알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권세가가 아닌 집이 허물어가는 빈민들에게, 그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약자들에게 진료를 하였다.

검설린은 방랑을 하여, 불치병자라 하더라도 처방전을 써주고 그들의 주치의를 가르치는 식으로 병을 해결했다. 그런데 하물며 노인을 죽음까지 돌보는 일을 하겠는가?

“그들이 참소로 부순 장안의 의학당이 있었다면 생존했겠지.”

서문윤은 입술 밖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경칠승은 자업자득이군요.”

검설린은 굳이 답변하지 않았다. 과거의 비사를 설명한 사내는 무덤덤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서문윤은 무거워진 분위기가 힘들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경칠승은 형님이 파나립 박사의 제자라 했지만, 나이대가 맞지 않습니다.”

검설린은 짤막하게 답했다.

“내 아비가 그의 제자였다. 그리고 내 집안은 멸문했다.”

깔끔한 답이었다. 그러나 그 명료한 말에 서문윤은 말문이 막혀 잠시간 넋을 잃어야만 했다. 무심한 얼굴로 한 말이기에 오히려 더 마음에 잘 와 닿았다.

또다시 침묵이 있었다.

의형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서문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어찌 살아남으셨습니까.”

“……누군가가 구해주었지.”

머뭇거리며 서문윤이 말을 내뱉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검설린의 몸이 멈칫했다. 그는 얼굴을 굳힌 채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를 바라보며 서문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힘들었지 않습니까.”

“…….”

검설린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서문윤은 그저 그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없으리라. 서문윤은 안락했던 일생을 떠올리며 힘없이 웃었다. 나의 힘든 일이라고는 알량한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뿐이었다.

그로 인해 절름발이가 되어 황하로 향했다.

서문윤이 멀고도 가까운 과거를 떠올리며 헛웃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

그러나 그 다리는 이제 멀쩡했으며, 눈앞에는 다친 다리로 인해 연을 이어간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문윤은 복잡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때 낙마사고는 전화위복인 일이었을까?’

그를 만난 것을 일생의 대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배신당한 지금, 서문윤은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조금 더 본인 생각에 열중하면 안 되나?”

희미한 짜증이 묻어 나오는 말에 사문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예?”

검설린의 얼굴은 무어라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오묘했다. 어찌 보면 성이 난 듯한, 어찌 보면 답답해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서문윤이 말없는 사내의 심기를 읽으려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으나, 검설린의 얼굴은 성벽처럼 견고하여 생각을 읽기 힘들었다.

사내는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넌 좀 이기적일 필요가 있어.”

그리 말을 내뱉고, 검설린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네 주제에 누구 걱정이냐.”

“그게 무슨?”

“…본인 앞가림도 못 하는 게.”

서문윤은 그 비하하는 말에 화를 내지 못했다. 그는 그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얼굴로 의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의형의 말에 담긴 어조가 심상치 않다. 그는 지금껏 놓쳤던 이상한 기색을 읽고 입술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돌볼 때 저를 꾸짖었다.

‘마치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으나,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서문윤이 입술 밖으로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나?’

그러나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나에게 그런 짓을 하여놓고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빈정거리며, 나를 취하리라 선포를 하고. 또 나를 걱정하여 앓는 얼굴을 하는 이유가 뭐지. 서문윤은 그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의형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서문윤은 그저 부리를 다문 새처럼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침묵이 또다시 있었다. 이번 침묵은 조금은 길게 이어졌다.

서문윤은 상념에 잠겼으며 격렬하고도 복잡한 감정에 휘말려 괴로워했다. 그것은 한 사내를 경애하는 마음과, 그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마음, 신념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욕망에 잠식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서문윤은 그 끝에 눈을 질끈 감았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서문윤은 마음속 들끓는 충동을 삼켰다.

수치도 모르느냐. 자조하며 흐트러진 미움을 바로잡으려던 때였다.

“죽지 않을 것이다.”

감옥을 울리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윤은 고개를 들어 올려 그 말을 내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검설린은 차게 웃고 있었다. 마치 그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감옥이 아닌 것처럼.

서문윤은 더 이상 설득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어쩐지 비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의형의 모습에, 저가 범접할 수 없는 듯하여.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어쩐지 그의 말이 사실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아. 그래서 서문윤은 항변을 포기하고 굳게 입을 다물 뿐이었다.

* * *

열흘의 시간이 지나고 검설린의 말대로 사건은 해결되었다.

오곡현의 현령이 급히 보낸 서찰에 소주에 자리한 강남동도 치소에서 온 답변은 간결했다.

<오곡현의 현령은 비리로 고발이 들어왔으니 당장 업무를 중지하고 소환에 응하라.>

재판을 받으라는 말에 현령은 기겁하여 사자에게 따졌으나, 그의 답변은 간결했다.

“모두 안찰사의 명령이오! 해명을 하려면 성주님 앞에서 하시지요.”

경칠승이 나라에서 엄중히 금한 소금 거래 혐의로 목이 잘린 날의 일이었다.

비틀거리며 서문윤이 땅을 밟았다. 창살을 가로지른 희미한 빛이 아닌 찬란하고 뜨거운 태양빛을 맞으며, 청년이 미간을 좁혔다.

흐지부지된 방화의 일. 강소성주는 그들의 방화 건이 무죄이며, 현령이 비리로 일을 저질렀다 판단했다. 서문윤은 다시 적갈색 면옷을 입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의 의형은, 검설린은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다시 새하얀 의복을 입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이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넋을 잃고 있던 서문윤은 정신이 들자 흡 숨을 들이켰다.

그 상태로 멈추어 한참을 침묵했다.

고막이 멍했다. 억지로 만든 진공상태에 유리된 듯한 감각에 휘말려 서문윤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그 끝에 서문윤은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오직 나온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검설린 또한 단 한마디 말로 답했다.

“강소성이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의미심장한 말에 서문윤은 그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했다. 청년의 뺨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도대체 저 사내의 정체는 무엇일까?

‘북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정체.’

반역자의 집안의 후손? 동서대란에 멸종된 서파의 의지를 잇는 자?

그럼에도 아리송했다. 많은 것을 캐었다 싶을 때쯤, 또다시 닥쳐오는 의문점.

서문윤은 그저 할 말을 잃은 채 검설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안찰사를 움직이는 건, 설령 일국의 재상이라 할지라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어지는 시선에 검설린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침묵이 이어진 시간이었다.

“북성!”

문득 들려온 소리에 검설린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소주에서 달려온 사자가 그들을 불렀다. 부리나케 달려온 듯 헝클어진 관조차 정리하지 못한 사내가 성큼 다가왔다.

“그대에게 전하라 하셨소.”

품에서 편지를 꺼내며 하는 말이었다. 서문윤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강소성주의 편지. 어쩐지 몹시나 중한 일에 얽힌 것만 같다. 의형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 결국 압박감에 신음을 흘리는 서문윤을 뒤로하고, 검설린이 편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다.

“의형?”

구겨진 편지의 끝을 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천천히 상황을 살피던 서문윤이 갑작스럽게 분노에 잠식된 의형의 안색에 대경하여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검설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할 때였다. 북성은 커다란 웃음을 흘리며 편지를 와그작 꾸겼다.

“하하하… 하하하… 으하하하하!”

“의형? 의형? 이, 무슨?”

아스라이 바람에 흐트러지는 말.

검설린은 핏줄이 불거진 손에 힘을 풀어, 편지를 놓았다. 바람이 그 때 편지를 품에 안았다.

살랑거리며 멀리,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편지.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서문윤은 그저 넋을 잃고 망연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귀신처럼 일그러진 얼굴에, 고막을 울리는 광소에 압도된 채로.

상쾌한 하늘 아래 팔랑거리는 편지가 구름에 걸렸다.

<10년의 끝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팔기린(八麒麟)에게.>

< 2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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