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 니취라 불리는 사내 (1/31)

0. 니취라 불리는 사내

북성은 천하를 떠도는 의원의 이름이었다.

사람의 죽음을 관장하는 별이 북두칠성이니, 사람들은 경의를 담아 그를 북성신의(北星神醫)라 불렀던 것이다.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전염병을 치료하는 의술은 마치 화타가 살아 온 것만 같았다. 사내의 이름은 곧 천하에 울렸다.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를 속하에 두려는 고관대작이 많아졌으나, 북성은 명예로운 이름을 얻고도 연고 없이 천하를 떠돌아다녔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음에도 그저 빈민들을 돌보니, 그 모습에 사람들은 북성을 의롭다 여기며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 말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성격이 사나워 사람들을 살리고서 독설을 내뱉어 원망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어도 심기가 뒤틀린 날에는 절세의 의술을 사용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기인(伎人)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절한 의술과 기이한 행동.

고금에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사내.

그렇다면 이런 사내를 땅이 내었는가? 하늘이 내었는가?

그의 연원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 것은 당연지사인 일이었다.

천지간 사람들이 모래알만큼 많다만, 그러나 북성의 정체는커녕 그 맨얼굴마저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북성은 항상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며 정체를 숨겼기에 사람들은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는 성격이 사나워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저 무성한 소문만이 퍼져 나갈 뿐이었다.

발 달린 말처럼 뻗어 나간 소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얼굴이 몹시 흉하다는 말이었다. 바로 보타암의 비구니와 관련된 일사(一事)였다. 폐병에 걸려 고생하던 여승이 강물에 몸을 던졌던 일.

여승은 제 목숨을 구명한 북성을 흠모하여 강물에 몸을 던졌고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북성이 그녀를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으므로. 그 소란에 북성의 복면 뒤의 얼굴이 드러났던 것이다. 여승의 자살소동은 사실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여승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꺄아아악!”

그러나 그렇게 보기 원하던 얼굴을 본 순간 비구니는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고야 말았다.

“천하의 추물이 거기 있었다. 그 어느 추물도 비견되지 못할 흉악하게 생긴 것이 거기에 있었노라.”

그것은 깨어난 비구니가 흐느끼며 내뱉은 말이었다. 또한 사내에 대해 가장 주목받은 소문이었다.

“마치 흐물거리는 진흙(尼醉)과 같았습니다.”

추한 외모에 사람들을 질투한다, 몽니를 부린다, 사나운 성격이다, 라는 말이 더욱 널리 퍼졌다.

당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니취의 소문의 시작이었다.

* * *

“아가!”

탄식은 아비의 것이었다. 연두색 비단옷을 입고 족제비의 털로 만든 조끼를 입은 중년 사내가 깨어난 병석의 딸에게 달려들었다.

“네가 정녕 살아났구나! 정녕 네가 살아났어!”

“아, 아버지.”

꽃다운 나이의 딸이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니, 아비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후였다. 누워 있던 딸이 일어나는 것을 본 중년인은 예법을 잊고 하염없이 울었다. 이팔청춘의 소녀가 제 몸을 끌어안고 우는 아비의 몸을 어색하게 쓸었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효정아, 이제 가슴이 답답하지 않느냐? 배가 아프지 않느냐? 고통스러운 곳은? 정녕 불편한 곳이 없어? 숨 쉬는 것은?”

“불편하지 않아요. 아버지, 아아.”

한참의 통곡성이 흐른 후에야 중년인은 진정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의께서는 진실로 내 은인이십니다.”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신의가 없었다면 제 딸이 어찌 살아날 수 있었겠습니까?”

시선의 끝에, 장침과 소단도를 철함에 넣는 사내가 있었다.

“모두가 신의의 덕입니다!”

무심한 얼굴로 말을 흘리는 사내의 정체는, 바로 북성신의였다.

중년인은 팽성의 유지인 호가장주였으며, 여인은 바로 반위로 투병하던 그의 딸이었다. 딸을 고치려 호가장주가 북성신의를 초빙했던 것이다.

북성은 빈민이 아닌 유지의 청을 잘 가납하지 않았으나, 지극한 아비의 정성은 그를 움직일 수 있었다. 호가장주는 세 시진(여섯 시간)을 맨바닥에 앉아 딸의 구명을 빌었으며, 아비의 처절한 간원은 괴팍하다던 북성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한 가지 조건을 걸며 진료를 승낙했다.

“내가 그 병을 치료하려면 배를 갈라야 한다.”

“예?”

“그 여인은 깨어나지 못할 터이고, 상처는 희미한 흔적이 남지만 크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겠느냐? 나는 처녀의 몸의 살갗을 보아야 한다.”

호가장주는 고민 끝에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생명이 중요한 것이지 예교가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세상 사람의 비난을 받아도 딸을 살리겠습니다. 공자가 꿈에서 제 목을 칼로 친다 한들 저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의 허락하에 북성은 딸의 배 아래를 갈랐으며, 호가장주의 딸은 서서히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었다.

“아아, 실로, 실로 기적이구나.”

기적적으로 깨어난 딸 앞에 아비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할 뿐이었다.

몹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희열에 가득 찬 호가장주.

기쁨에 웃음을 짓는 호가장주의 딸.

부스럭 제 짐을 챙기는 북성.

그리고 이 방에는 한 명이 더 자리하고 있었다.

‘으음.’

바로 서문윤이었다.

문가에 자리한 서문윤이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는 적갈색 면옷을 입고 완갑으로 치렁한 소매를 조인 허름한 차림새의 청년이었다. 서문윤은 북성의 은혜를 받아 다친 다리를 치료 중인 환자였으며, 또 그의 일을 돌보는 조수였다.

‘감동적인 장면인데.’

말하자면 그는 북성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온 이였다.

‘정말 감동이라곤 하나도 받지 않으시는군.’

상황을 주시하던 청년이 어느 순간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북성이 부녀의 정이 흐르는 감격적인 장면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니, 그를 보며 새삼 감탄의 마음을 느낀 것이다.

겸연쩍은 얼굴로 서문윤이 제 볼을 긁적였다.

“딸자식이 드디어 웃게 되었습니다! 이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재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만, 본가의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은인께 사례하고 싶습니다.”

“재물은 필요 없다.”

“예?”

이어진 말에 호가장주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야 말았다.

“백년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호가장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북성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힐끗 보며 북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모르는군.”

무지를 깨달은 북성의 얼굴이 돌연 싸늘해졌다. 볼 장을 다 보았다는 듯 그는 더 이상 호가장주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중년인에게 주었던 일말의 관심마저 거둔 채 사내, 검설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니.”

호가장주는 그저 당황에 찬 얼굴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네가 알아서 정리하고 와라.”

서문윤은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검설린은 그 말을 끝으로 서문윤을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타악!

문 닫는 소리의 뒤를 이어 정적이 자리했다. 넋을 놓은 호가장주와 그의 딸은 황당한 상황에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공황이 가득한 자리. 어느 순간 서문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심한 말이지만 언질이라도 한 것이 용하구나.’

상황을 수습하란 말조차 언질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서문윤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나름 제 체면을 챙겨주시는 게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슨 개소리냐 칭할 만큼 건조하겠지만, 분명 그는 제게 유하게 대했으니까.

그 순간 서문윤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것은 짧은 시간 그의 얼굴에 스친 동요였다.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거겠지.’

짧은 침묵 끝에 서문윤이 팔짱을 풀고 기댄 몸을 바로 세웠다.

의형이 수습을 맡기었으니 맡은 일을 하는 것이 아우의 도리 아닌가?

서문윤의 시선이 닿은 자리. 병석에서 갓 깨어난 규중처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살짝 일그러진 꽃다운 얼굴이 효빈(效嚬)의 고사를*(주석. 얼굴을 찡그린 미녀) 떠올리게 할 만치 아름다웠다. 호가장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문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시선.

불편한 얼굴의 부녀에게 서문윤이 다정히 말을 걸었다.

“당황하셨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의형께서는 의로운 분이시라 병자를 살리는 일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십니다. 그런 일에 칭찬을 받는 것이 민망하셔서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마세요.”

“어찌 내가 사소한 일에 은인께 원을 가지겠소? 그저 당황할 뿐이었으니 안심하시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나 정말로 내일 떠나시는 겁니까? 큰 은혜를 입고도 접대조차 하지 못한다면 저는 구천의 조상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제 마음이 어찌 편하겠습니까? 하루라도 더 묵고 가십시오.”

곤란한 표정의 호가장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문윤이 달래듯 말했다.

“의형께서는 보은을 바라고 의술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을 욕되게 하실 생각입니까.”

공손한 목소리였으나 그가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호가장주가 “아니, 그래도.” 말을 얼버무리다가 입술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그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잠시 서문윤을 가만히 바라보던 호가장주가 무겁게 입술을 열었다.

“그렇다면 행로를 가실 때 드실 먹을거리나 싸 드리겠습니다.”

서문윤이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말을 끝으로 서문윤은 절뚝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타악!

문을 닫는 소리가 울리고, 서문윤이 떠난 자리에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부녀는 서로 다른 이유로 침묵을 지켰다. 문을 말없이 바라보는 장주의 얼굴에 언뜻 묘한 기색이 서렸다. 실망에 가득 찬 얼굴로 입술을 우물거리던 딸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문을 열었다.

“아, 정말로 차가운 분이시군요.”

그 말에 희미한 원망의 기색이 있었다. 호가장주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친 순간이었다. 장주가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효정이, 너?”

“네?”

“혹시 그가 마음에 드는 것이냐?”

당황한 여인이 변명하려 입을 열 때였다. 내뱉는 말을 가로채며 호가장주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냥 천것도 아니고, 300년간 이 팽성 땅의 유지였던 호가장의 딸이 어찌 외간 남자에게 속살을 보일 수 있겠느냐. 기녀나 그리 하는 법이지. 그런 수치를 살 바엔 네가 다시 죽는 게 낫다. 외간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조상이 우리를 욕한다.”

냉정한 아비의 말에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병석에서 힘들게 일어난 딸에게 어찌 그리 냉정하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북성에게 진료를 허락한 것은 호가장주다.

“아, 아버지.”

그리고 그 때 딸을 꾸짖던 호가장주의 엄한 얼굴에 돌연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다.

“효정아.”

딸을 바라보는 호가장주의 눈빛이 그윽했다. 장주는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았다. 네가 외간 남자에게 은밀한 살을 보였으나, 네 살을 본 사람이 네 서방이 되면 무에 문제겠느냐?”

몹시도 뜻밖의 말이었다. 아비의 말에 여인은 입술만을 벙긋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호가장주의 눈에 탐욕이 어려 있었다.

호가장주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입을 열었다.

“내가 대를 이을 사내아이 없이 너를 낳았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네 미색과 재주가 뛰어나단 것을 알고 있었지. 내 사위복이 있으리라 장담하고 있었다. 내 북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다지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다.”

“아, 아버지.”

“그가 추한 외모를 가졌다고 하나, 의로운 사람이며 고관대작 중에는 그의 은혜를 받은 이가 많다. 그를 사위를 들여 호가장의 대를 잇게 하면 나는 조상께 죄스러운 마음을 덜 수 있겠구나. 어떠냐? 너는 그가 네 장부로서 마음에 들지 않느냐?”

어느새 꽃다운 처녀의 얼굴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속살을 내보인 사내가 안 그래도 신경 쓰였던 명가의 여인이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호가장주는 기대에 찬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제 딸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딸이 수줍게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본 호가장주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내뱉었다.

“내가 두 가지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는데, 하나가 네 건강이고 다른 하나가 대를 잇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일이 다 해결이 되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 아버지, 어찌 죽음을 말하시나요.”

“허허, 그래, 그래. 대를 이을 손주가 무럭무럭 클 때까지 장수해야지.”

말을 내뱉는 호가장주의 얼굴이 달처럼 환했다.

“아이, 몰라.”

말을 내뱉으며 효정이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붙잡고 몸을 돌렸다.

* * *

여인의 이름은 호효정(扈孝定).

그녀는 올해 이팔청춘으로 한창 꽃다울 나이에 약도 없다는 극악한 병, 반위에 걸려 1년을 시름시름 앓았다.

어린 나이에도 얼굴은 백옥처럼 화사하고, 병석에 마른 몸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호리호리하며, 발은 작고 동근 귀여운 모양새였다.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타마계의 모양으로 올린 모습이 몹시 아슬아슬해 보였다. 몸매가 마르면서도 우아하고 얼굴은 귀족적이기 그지없는 미인이었다.

병마에 앓는 통에 소문은 작은 마을 안을 감돌 뿐이나, 호효정은 분명 나라는 몰라도 한 주를 울릴 미녀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 호효정은 술상을 손에 든 채 복도를 저벅 걷는 중이었다.

“술상을 내왔다 말을 하며 북성의 방에 몰래 들어가거라.”

호가장주의 말을 떠올리며 호효정은 잠시 수줍은 얼굴을 했다.

‘그분이 내 서방이 된다니.’

회상하는 여인의 얼굴이 꿈결에 잠긴 듯했다.

“숨을 길게 내뱉어라.”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그는 호효정의 호흡을 살폈다.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몸을 쓸자 호효정은 몸을 살짝 떨며 숨을 멈추었다.

댓잎을 맑은 물에 우려 향을 맡으면 그리 그윽한 내음이 날까?

몸을 기울인 사내의 몸에선 그같이 정갈한 냄새가 흘렀다.

효호정은 아랫배의 고통을 잊고 제 몸을 살피는 북성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귓가에 쿵쿵거리는 심장 고동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는 설레는 마음…….

‘누구도 살리라 예상치 못했던 몸이다.’

외간 남자의 방에 기어들어가는 행동이 정숙하지 못하단 것은 규중처녀인 호효정이 더 잘 아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은 외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를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구나.’

죽음에서 구원당하고 호효정은 그윽한 사내의 눈을 바라보며 은근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제 몸을 본 사내와 혼례를 해야만 한다는 구가의 가르침이 그녀를 충동질했고.

‘추한 외모라도 괜찮아. 장부에게 외모가 무에 중요하려나. 내가 의지할 사람이면 족하다.’

마침내 호효정은 북성의 문 앞에 당도해 멈추어 섰다.

그러고였다. 문을 열려던 호효정의 손이 멈춘 것은.

“으읏.”

호효정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지?’

의아한 얼굴로 술상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여인이 문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문틈 새로 흘러나온 것은 잠꼬대라고 하기엔 몹시 괴상한 소리였다. 궁금함에 사로잡힌 여인이 문틈에 귀를 들이밀며 소리를 살폈다.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호효정의 귀에 스며들었다.

“으, 응.”

‘저것이 바람소리더냐? 새 우는 소리냐?’

윽윽대는 것이 마치 숨죽여 우는 사람 같기도 하여라. 궁금증이 깊어져만 갔다. 잠시 고민하던 호효정이 문고리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헉!”

소리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호효정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녀를 놀라게 만든 장면. 두 사내가 침상 위에 얽혀 있던 것이었다. 근육이 도드라진 흉기와 같은 몸이 다른 몸을 가렸으나, 사내의 허리 부근 허공에 덜렁거리는 맨다리가 다른 이의 존재를 증명했다.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바람소리도, 경첩소리도 아니요, 바로 남녀가 접붙을 때나 나는 음란한 소리였으니.

그러나 그 소리를 흘리는 두 사람의 정체는…….

호효정이 비명을 삼켰다.

‘사, 사내끼리 접을 붙어?’

“흐윽, 흑.”

신음과 함께 울리는 울음소리는 분명 사내의 것이다. 호효정은 눈물을 흘리는 청년의 얼굴을 보고 경악성을 삼켰다. 그는 바로 북성의 조수라고 했던 사내였다. 그는 애처롭게 등을 긁으며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사내 둘이 얽혀 신음을 흘리는 광경. 호효정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생각을 더했다.

‘어째서 그의 조수는 울음을 터트리며 저 망측한 일을 당하고 있지?’

‘어째서 저 사내를 받고 있는 청년은 침상에 손이 묶여 있나?’

‘왜 사내의 손은 바동거리는 청년의 입을 매정하게 틀어막고 있지?’

여인은 생각 끝에 충격적인 결론을 내리고 몸을 떨고야 말았다.

‘설, 설마?’

그 순간 언뜻 도리질을 친 청년의 얼굴이 호효정의 시선에 닿았다. 찡그린 눈에는 눈물이 아롱아롱 맺혀 있다. 눈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 그리고 사내는 고개를 기울여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숨결을 불어넣었다. 장막처럼 매끄러운 긴 머리카락이 뺨을 가리고.

그리고 그 사이 드러나는 섬광이 스치는 서늘한 눈.

그 무심한 눈은 여인을 노려보았다. 청년의 부드러운 뺨 위. 눈물이 흐르는 눈가에 느릿하게 입술 도장을 찍는 와중의 일이었다.

그 순간 호효정은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치맛자락을 걷어붙인 호효정이 문을 박차며 자리를 뛰쳐나갔다.

타다다닥!

연심을 품고 사뿐히 발걸음을 내디뎠던 여인이 산발 귀신이 되어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규중처녀의 얼굴이 충격에 사로잡힌 순간. 숨 얽히는 난잡한 소리는 희미하게나마 끊기지 않고 호효정의 발꿈치를 따라갔다. 괴로운 듯 눈가를 찌푸리는 청년의 환영과 함께…….

‘하아, 하아.’

뜨거운 숨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히는 듯해 가련한 여인은 방에 돌아온 순간 결국 기절하고야 말았다.

* * *

깍깍깍.

까마귀 우는 화창한 날이다. 단정한 검은 면복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서문윤과 소매가 좁은 새하얀 의복을 입은 채 목함을 등에 진 북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성격이 함함하지 못하다는 세간의 소문답게 북성은 이별의 시간에도 묵묵히 제가 갈 길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물로 그들을 잡으리라 예상했던 호가장주는 생각 외로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가문에 번창할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호가장주는 창백하게 질린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호가장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언제든지 오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서문윤은 묘한 얼굴로 호가장주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내심 그가 매달리면 매정한 말을 할 준비를 했는데, 의외로 그가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호가장의 일을 마무리하니 다행은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 석연찮은 기분은 뭐지?’

무언가를 놓친 기분에 서문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좋게 끝난 일인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가자.”

그 말에 서문윤이 멈칫하며 답했다.

“예, 형님.”

앞서가는 북성에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서문윤은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구나.’

새하얀 의원복. 의형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잠시간 상념에 잠겼던 서문윤이 절뚝이면서 걸었다. 맑은 공기가 폐를 채우고, 먹구름도 갠 화창한 날씨. 호가장의 일도 의형이 그 공포의 혓바닥을 놀리지 않고 잘 마무리했는데 어째서 기분이 이리 찝찝하지?

상념에 깊게 빠져 걷는 중이었다. 하체에 자르르 울리는 고통에 서문윤은 “윽!” 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앞서 나가던 북성의 발걸음이 멈춘 순간이었다.

“아, 아윽.”

“왜 그러느냐?”

“아, 아닙니다.”

“…….”

냉랭해지는 의형의 얼굴에 서문윤이 오른쪽 허벅지를 주무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호가장이 수백 년간 호족이라더니 침상이 낡았나 봅니다. 온몸이 배기고…….”

“다리가 아직도 쑤시냐?”

다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한 말이다. 밥 먹었느냐, 잠은 잘 잤느냐. 그리 여상하게 한 말이 서문윤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 순간 서문윤의 눈앞에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네가 자랑스럽노라 등을 쓰다듬던 아버님.

말에서 떨어지던 순간 경악하여 눈을 부릅뜬 옛 주군의 얼굴.

실망 어린 시선을 못 견디고 도망 나오던 때의 마음.

이 병신이 된 몸. 서문윤이 입안에 감도는 씁쓸한 맛을 느끼고 헛웃었다. 그리하여 모든 내 영예와 꿈이 다리와 함께 망가졌다. 어둑해진 서문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북성이 코웃음을 쳤다.

“그깟 다리 따위.”

이죽이며 하는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으나, 서문윤은 가볍게 웃고야 말았다. 저런 말에는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북성의 핀잔은 우울함에 사로잡힌 저를 깨우치게 만들었다.

‘의도하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신을 차린 서문윤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북성은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 등은 너르고 또한 단단했다. 잠시간 서문윤은 말없이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말없이. 그리 바라보던 서문윤이 어느 순간 힘없이 미소를 짓고 발걸음을 뗐다.

서문윤은 그저 의형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