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43/51)

08. 

욕조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윤신의 두 볼이 발그레했다. 계속 여기서 뭉개고 있던 바람에 목구멍이 텁텁했다. 주변의 습도 때문에 아가미가 돋을 것 같았다.

이젠 나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다. 한데 왠지 침실의 문지방을 밟는 순간부터 온갖 창피를 당하게 될 것 같아서 선뜻 몸이 안 움직였다. 젖은 손가락 위를 감싸듯이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래서 더 용기가 안 났다.

오늘은 그들은 싸우고, 화해한 뒤, 반지를 나눠 낀 거 외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꼭 기분이 첫날밤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새삼 그와 했던 첫 섹스를 떠올리자 기분이 야릇했다. 분명 그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짐작했다. 하나 당시에만 해도 이렇게까지 깊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상상 못 했다. 상대가 다름 아닌 강세헌이었으니까.

풍덩.

부끄러워하던 윤신은 제 얼굴을 투명한 물속에 담근 채 물 안에서 눈을 깜빡였다.

그때, 머리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번쩍 얼굴을 들어 젖은 채로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보자,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문간에 선 가운 차림의 세헌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팔짱을 척 낀 채로 삐딱하게 서서 욕조 안의 윤신에게 은근한 추파를 던졌다.

“불어 터지면 네가 더 맛있어질까 봐 그래?”

“저 음식 아니거든요.”

“아니면 배곯아 있었을 때 먹으면 더 맛있어할까 봐.”

“그만 놀려요. 이제 나가려고 했어요.”

물기라도 닦고 나갈 테니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의미였는데, 지나치게 말을 생략했던 모양이었다. 세헌은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제 쪽만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담긴 색욕은 꽤 익숙한 파동으로 노출됐다. 민망해진 윤신의 귀와 목이 함께 달아올랐다. 쑥스러운 기분을 누르며 보다 직관적으로 제 의사를 전하게 됐다.

“나가서 기다리면 안 돼요?”

“안 돼. 너 그대로 일어나 봐.”

그들 사이에서 알몸을 보이는 게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소의 특수성과, 상황의 개별성이라는 게 존재했다.

지금 윤신은 전신이 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는 나체 상태였다. 반면 관찰자인 세헌은 자신과 달리 실크로 된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울러 욕실의 조명에 주광 빛이 돌아 사방이 조금 어스름했고, 결정적으로 오늘 윤신은 유난히 이 모든 게 창피했다.

시키는 대로 일어서는 대신 툭, 손바닥으로 물 위를 가볍게 내려친 뒤 동그랗게 손가락을 세워 회오리치듯 돌렸다. 물이 조금 요동치다가, 자신이 움직임을 멈추자 잦아들었다.

그사이 세헌이 다가와 욕조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젖어 있는 윤신의 머리카락을 한 손에 가득 쥐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그의 손이 귀를 만지작대다가, 이내 뺨으로 옮겨 갔다. 마침내 다다른 입술 위에서 엄지를 세운 그는 안으로 들어갈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제 쪽에서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니 그제야 엄지를 넣어 안쪽의 민감한 살결들을 꾹 짓눌러 자극했다.

“흐으, 흐…….”

집요하게 입 속을 괴롭히는 세헌의 엄지를, 윤신의 혀가 종종거리며 쫓았다. 그는 기꺼이 술래잡기를 시도하며, 말을 붙였다.

“지능이 높을수록, 쾌감에는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데. 들어 본 적 있어?”

“과, 과학적 근거 있는 거예요? 후, 으.”

“글쎄. 내 경우 그런 것 같긴 해. 난 내가 섹스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거든.”

“읏, 으음.”

“밖에서 딸기 케이크가 너 기다리고 있어. 일어나.”

여린 내벽을 유린하다 쑥,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세헌이 돌연 젖은 겨드랑이 밑으로 양손을 밀어 넣었다. 뒤이어 팔의 힘으로 빨래처럼 흐물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자, 놀란 윤신이 바르작거렸다. 그는 약간의 저항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욕조에 윤신을 세운 채, 물이 배 축축해진 전라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수치를 느낀 윤신이 두 팔로 세헌의 어깨를 붙들었다. 상체를 조금 숙여서 그의 머리 위로 기울이니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고급스러운 가운 위를 적셨다.

“그만 쳐다봐요.”

“나를 보자마자 발기하고 그럴 순 없나? 좆이 너무 얌전해서 기분 나빠.”

“중학생도 안 그래요.”

“난 되는데. 이건 어른이라 그런가?”

헛웃음을 터트린 윤신이 세헌의 가운 위를 힐끗 봤다. 그의 말마따나 하체 부분이 조금 곤두서 있는 게 보였다. 흥분한 건 그인데, 애꿎은 제 뺨이 화끈거렸다.

“그건 제가 홀딱 벗고 있으니까 그렇죠. 선밴 고학력 고지능 사디스트고.”

한데 세헌은 제 대꾸에 애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떤 답을 하든 행보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일 터다.

그가 손을 예고 없이 윤신의 하반신으로 뻗어 왔다. 뒷일이 예상돼 말려 봤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기어코 물에 젖어 늘어진 음모에 손가락 등을 댔다. 흠칫한 윤신의 반응은 무시하고 멋대로 쭈욱 밑으로 내리듯이 이동해 금세 성기 뿌리를 건드렸다.

“선배, 흐읏, 그만.”

세헌은 꿈틀거리는 기둥을 훑는 것처럼 좀 더 손을 끌어 내려서 제 체온을 선단까지 옮겨 갔다. 달뜬 교성을 터트리게 될까 봐 입을 꽉 다물고 그를 겨우 붙잡는 윤신의 손등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나도 좀 벗어 주면 어때. 그럼 서?”

솔직해지자면, 세헌의 육감적인 몸을 보고 흥분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윤신은 그걸 털어놓을 타이밍조차 없었다. 자꾸 세헌이 아슬아슬하게 성기를 건드릴 때마다 표피가 요란하게 움찔거리고 있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만, 그만해요. 으응. 응.”

계속 욕조 안에서 다리 사이를 좁히고 있었던 데다, 세헌이 강한 자극 대신 찔끔찔끔 감각을 주지하는 바람에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두 다리가 금방 후들거렸다. 그걸 눈치챈 건지 그도 장난을 멈추고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윤신이 욕조 안에 있는데도 밖의 세헌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잡으라는 듯 두 손을 내민 그가 윤신에게 나란히 뻗었다.

“이리 나와, 닦아 줄게.”

망설이던 윤신은 그걸 잡고 발을 내디뎠다. 뚝, 뚝, 중력의 영향을 받고 추락하는 물방울들이 욕조 바닥을 조금씩 적셨다.

이윽고 세헌은 커다란 타월로 윤신의 몸 위를 흥건하게 적신 따뜻한 물기들을 닦아 냈다. 축축해진 머리를 다정하게 털어 주고, 목부터 상반신, 그리고 하반신으로 하강하듯 젖은 부분들을 부드럽게 훔쳤다. 그러다 늘씬한 한쪽 다리를 위로 들어 올려 발잔등에 입 맞추었다. 얌전히 서서 그의 상냥한 손길을 받아 내던 윤신은, 그걸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결국 제 발목을 마저 닦아 주고 있는 세헌의 뺨을 만지기 위해 왼손을 뻗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가 한 손으로 직접 성기를 덥석 쥐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툭. 도톰한 타월이 바닥에 떨어졌다. 윤신은 가쁘게 신음했다.

“흐, 아흑!”

아무래도 그는 도구를 활용하는 대신 손수 남은 물기들을 떨어내 줄 셈인 듯했다. 보드라운 손바닥으로 성기를 감싸고 음낭을 손가락에 끼우듯이 쥔 세헌이 살갗에 묻어난 투명한 물들을 긁듯 닦았다. 몸을 바들거리던 윤신은 세헌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자 어설프게 몸을 수그리고 있던 그도 일어나서 그 포옹에 화답했다.

윤신의 귓전에 소름 끼칠 정도로 낮아진 목소리가 콱 틀어박혔다.

“여긴 손으로 닦아 주려는 거였는데, 불편해?”

“일부러 이러는 거죠.”

“이제 눈치챘어?”

“그만 괴롭혀. 나갈 테니까…….”

“잘 생각했어.”

쪽, 벌게진 귓바퀴에 입 맞춘 세헌이 윤신의 알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제 얼굴을 그의 뺨 쪽으로 감춘 윤신은 볼 가운데 살결을 잘근잘근 씹는 것으로 섹스의 수락 의지를 전달했다. 통증을 기꺼이 느끼며 더 힘주어 안아 준 그가 조금 전까지 물기들을 닦아 주었던 타월을 짓밟고 그대로 파우더 룸을 거쳐 침실로 직행했다.

풀썩, 윤신을 침대 위에 쏟듯이 내려 둔 세헌이 협탁 위의 케이크를 베갯잇으로 끌어왔다.

아까 전 레스토랑에 가까스로 들러 받아 온 기념 케이크였다.

오늘 몇 가지 변수로 인해 예상 밖의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퇴근 시간을 맞춘다고 했는데도 늦고 말았다. 그 때문에 윤신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마지막 주문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미리 부탁한 케이크만 들고, 와인은 보관해 둔 뒤 돌아왔다.

“입 열어야지.”

오늘 밤 그는 도구를 활용할 생각이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다.

포크 대신 손가락으로 분홍색 딸기 크림을 듬뿍 뜬 세헌은 윤신의 입가에 그것을 댔다. 뒤이어 보란 듯이 꾸덕한 크림을 입술 위에 비비듯 문질렀다. 윤신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입을 벌려 잘 받아 냈다. 이윽고 미끄덩한 크림을 맛본 뒤 삼키려는데 느닷없이 세헌이 상반신을 기울이면서 키스했다.

“읏……. 흐읏.”

물리적 압력 때문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사이, 그가 입 속으로 본격적인 침투를 감행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혀끝이 만나면서 크림이 입 안에서 뭉개졌다.

세헌이 이 케이크 박스를 차 뒷좌석에 넣을 때부터, 이러지 않을까 싶긴 했다. 짐작하면서도 만류하지 않은 이유는 말하자면 입 아팠다.

싫지 않다.

탄성을 터트린 윤신은 세헌의 가운 라펠 부분을 움켜쥐었다. 그가 입을 열어 화답했다.

“맛있어?”

“달아요, 흐읍, 으…….”

농염한 키스는 때론 섹스만큼 짜릿했다. 간헐적으로 목구멍에 넘어가는 크림을 느낀 윤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꼼꼼하게 입 속에 남은 크림들을 전부 없앤 세헌이 이번엔 살덩이의 맛을 느껴 보라고 제안하듯이 혀를 깊이 쑤셔 넣었다.

서로의 표피가 부딪치며 돌기들이 야릇하게 마찰했다. 필연적으로 입 안이 갑갑해지면서 단맛과 쫀쫀한 촉감으로 양껏 찼다. 타액이 뒤엉켜 질척거리는 외설스러운 소리들이 연달아 일었다.

선정적인 그림만큼, 세헌의 움직임도 에로틱했다. 그는 침대의 가장 가운데 쪽으로 윤신을 능숙하게 안아 옮기면서 케이크판도 함께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뽀송뽀송해진 나신 위를 손바닥으로 지분거렸다.

이윽고 떨어져 나간 서로의 입술에 투명한 실선이 이어지다 뚝 끊겼다.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달떠 세헌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윤신은 사실 꽤 안달이 나 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윤신의 턱에 달래듯 입을 맞추면서 서서히, 밑으로 동선을 옮겼다.

푹. 돔형으로 된 케이크에 손가락을 다시 찔러 넣은 세헌이 손끝에 풍성하게 묻어난 크림을 윤신의 젖꼭지에 문질렀다.

“아! 아, 읏. 미끌거려, 기분 나빠요.”

“다른 쪽도 해 달라고? 내 귀엔 그렇게 들리는데.”

“싫, 아…….”

한쪽 유실을 동그랗게 말아 올리는 것처럼 지분대던 세헌이, 곧 반대편 유두에도 같은 행위를 했다. 꼿꼿해진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문지르자, 윤신이 허리를 떨어 댔다.

세헌이 어지럽힌 유륜 주변이 분홍색 크림으로 범벅됐다. 그는 이제 막 그림을 완성한 화가처럼 그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녹은 눈처럼 질퍽댔다. 이내 길게 호흡한 그가 한쪽 유두를 입에 머금었다.

입 속에 젖꼭지를 담듯이 문 세헌이 고른 치아를 세웠다. 반대편의 유두를 손으로 꼬집듯이 어루만지며, 한껏 민감해진 표피를 살살 긁듯이 자극하니 역시나 쉽게 부어올랐다.

“흐읏! 선배, 흐응.”

상반신만 건드리고 있는데도, 온몸이 성감대인 것처럼 민감해진 윤신은 금방 성기를 세웠다. 다리 사이가 몹시 예민해져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결국 윤신이 세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새된 교성을 터트렸다. 세헌은 그 소리 하나하나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가슴팍 애무를 하는 정성도 함께 기울였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유두가 벌겋게 부어 번들거렸다. 그 밑에 희미하게 남은 분홍빛 크림과 세헌의 타액이 질척였다. 고개를 들어 올린 세헌이 손등으로 제 턱을 슬쩍 쓸었다. 크림이 그의 날렵한 턱에도 묻어났다.

헐떡이며 그 에로틱한 모양새를 올려다본 윤신이 한쪽 다리를 뻗었다. 그러고는 밑 부분이 살짝 흐트러진 가운 사이로 집어넣었다. 아까 전 세헌이 입 맞췄던 발등으로 그의 사타구니쯤을 건드리자, 욕실에선 반쯤 곤두서 있던 그의 것이 이미 터질 듯 팽팽하게 발기해 있었다.

“읏, 젠장.”

성기에 직접 자극이 닿자 그가 바로 반응했다. 그는 두 팔을 침대로 전신의 하중을 받치듯이 뻗어 윤신의 매끈한 발등에 제 것의 기둥을 몇 번 문질렀다.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어두운색 가운 밑부분이 볼록 튀어나와 들썩였다.

억눌린 신음을 토해 내던 그는, 곧 다시 케이크를 한 손에 잔뜩 움켜쥐어 윤신의 몸 위로 뿌리듯이 내던졌다. 푹. 긴장해서 단단해진 복부와 곤두선 성기 위에 크림이 쌓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타구니 아래로 퍼지듯이 번졌다. 흐릿한 분홍빛이 윤신의 다리 사이를 흠뻑 적셨다.

주도권을 되찾아 간 강세헌이 할 일은 뻔했다. 예정된 수순대로 꼿꼿하게 선 성기와 반쯤 벌어져 있는 다리 사이를 주시하던 그가 양쪽 발목을 덥석 쥐었다. 자연히 윤신의 발목 위에도 세헌의 손바닥에 남아 있던 크림이 묻어났다.

그것들은 윤신이 바르작거릴 때마다 세헌의 가운 위에도 튀었다. 이젠 어디에 바르고, 바르지 않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침대 위와 서로의 몸이 엉망진창이었다.

단단히 쥔 발목을 양쪽으로 벌린 세헌은 윤신의 다리 사이에 분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둔부를 들어 올리게 해 보다 제 시야를 넓게 확장했다. 이윽고 드러난 수줍은 회음 위에 복부 이곳저곳에 안착해 있는 크림들을 바르기 시작했다.

“읏, 흐으. 느낌이 이상해요. 꿀렁거려.”

단순히 이상한 게 아니라, 묘하게 불경한 느낌이 들어 곤란했다.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하나 이런 윤신의 말에도 개의치 않은 세헌은 보다 손바닥을 넓게 펼쳐 꼼꼼하게 크림을 문질렀다. 그 덕분에 곤두서 있던 윤신의 성기 요도구가 움찔거리더니, 기둥 전체가 사출을 기다리듯 꺼떡거렸다. 복부는 파들거리고, 팔다리도 미약하게 경련했다.

사정을 위해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던 윤신이 두 손을 아래로 뻗었다. 제 것을 쥐고 흔들기 위해 성기를 잡는 순간, 세헌이 ‘탁.’ 소리가 나도록 확실하게 쳐 냈다.

“아직이야.”

“나 자위하고 싶어.”

“아직 쌀 때가 아니라니까.”

“선배가 만져 줘.”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다, 결국 세헌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그는 마치 마사지를 하는 것처럼 윤신의 성기와 회음을 함께 정복해 나갔다.

집요한 손길이 이어졌다. 짓무른 분홍빛 크림들이 윤신의 밀부 주변을, 비 온 뒤 젖은 땅처럼 촉촉하게 물들였다.

이윽고 양 발목을 꽉 쥐어 하체를 통제하고 있던 세헌이 두 다리를 제 어깨 위에 올려 주었다. 몸을 좀 더 낮춘 그는 곧이어 혀를 뾰족하게 세워서 윤신의 다리 사이를 정신없이 핥아 댔다. 질고 차진 반죽을 치대는 것처럼 음란한 마찰음이 일었다. 야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서로의 성감을 더욱 북돋웠다.

눈앞이 아득해진 윤신은 힘겹게 손을 내밀어 세헌의 어깨를 헤집어 댔다. 그러다 실크 가운이 조금 쓸려 그의 옷자락이 벌어졌다. 가시거리에 드러난 그의 딱딱한 어깨를 아찔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젖은 머리를 움켜쥐곤 제 성기 위에 짓눌렀다.

“아! 아…… 이제 넣어 주면 안 돼요?”

하반신 근육이 떨리는 느낌이 들어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헌은 무관용 원칙을 지키기로 결심한 듯 느긋하게 나왔다.

가운을 꿰뚫을 것처럼 치솟은 성기의 양감이 분명히 도드라져 있는데도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여유를 유지하는 저 선택적 인내심과 면밀함이 무서울 정도였다.

“보채지 마. 이건 다 먹고 시작해야지.”

“흐읏, 읏! 아!”

회음 위로 혀를 내밀어 핥아 대던 세헌이 길쭉한 손끝을 세웠다. 그러고는 크림을 한데 모으듯이 밀부의 입구 주변을 지분거렸다. 명백한 의도를 갖고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다. 어떤 말이라도 꺼냈다가 세헌의 삽입이라는 후속 행동을 늦출까 불안했다.

하는 수 없이 윤신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세헌의 귀와 머리카락을 미친 듯이 문질렀다. 그는 그 행위들을 모두 두고 봐 주면서 손가락 끄트머리를 세웠다. 그러다 아이스링크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는 것처럼 회음을 유연하게 문지르더니 별안간 크림이 가득 고인 손가락을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오일이나 러브젤과는 조금 다른 질퍽거리는 느낌 때문에 윤신은 단전이 답답해졌다.

“아! 거기 들어 갔, 빼요. 빼 주세요.”

애원에도 그는 여봐란듯이 곧은 손가락을 더 욱여 대 안을 함락해 나갔다. 깊숙하게 파고든 그의 손가락이 내부를 들쑤셔 놓았다. 윤신이 씻으면서 미리 풀어 둔 은밀한 내벽이 그의 진입만을 기다렸다는 듯 살갗에 쫀쫀하게 달라붙었다. 손가락 표피에 닿는 촉감을 인식한 세헌이 미간을 구겼다.

“아랫입이랑 윗입이 하는 말이 다른데 의견 통일부터 하는 게 어때.”

얼굴을 붉힌 윤신이 뭔가 반박하려는 찰나였다. 세헌의 손이 움직이는 게 한 박자 더 빨랐다. 이윽고 그가 수월하게 전립선을 찾아 그대로 꾸욱, 눌렀다.

허억, 윤신의 목울대가 아주 크게 꿀렁거렸다. 파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붙잡았다. 손바닥에 닿는 피부의 딴딴한 느낌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윤신의 입이 새처럼 뻐끔거렸다. 이런 제 반응을 즐기던 세헌이 짓궂게 전립선의 주변부에 무게를 가했다.

쿡. 쿡. 찌르면서 힘을 주니 윤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금 전 그 자리를 더 세게 짓이겨 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여서였다.

꺼떡거리는 성기는 더 이상 부풀 수 없을 정도로 빠듯하게 발기한 뒤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사정을 기다리는 제 것의 선단을 힐끗, 내려다본 윤신은 결국 세헌의 팔꿈치를 쥐고 좀 더 안쪽으로 밀었다.

“거기 말고요. 알잖아…….”

“아아, 빼 줘?”

“그 말이 아니라, 안 돼, 나가지 마. 아!”

“생크림까지 넣은 건 내 실수야. 놀랐구나.”

“읏, 실수 안 한다면서요.”

손가락을 쑥 빼낸 세헌을 밉게 노려보자 그가 키스하는 것처럼 눈을 맞춰 주곤, 다시 회음을 문질렀다. 일부러 애태우는 걸 알면서도 윤신은 속절없이 차곡차곡 안달을 쌓아 갔다. 벌름거리는 입구가 그만을 기다리며 움찔댔으나 세헌은 터질 듯 발기한 성기를 두고도 여전히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했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금 손가락으로 회음 위를 비비던 그가, 이번엔 더욱 노골적으로 사타구니 사이에 퍼진 크림을 손에 찔러 밀부에 좀 더 많이 욱여넣었다.

“어흑, 흣!”

기분 나쁜 촉감이 안으로 진입해 입구 주변을 적셨다. 촉촉하고 쫀득거리는 내부가 움츠러들면서 세헌의 손가락을 단단히 감쌌다. 그는 귀엽다는 양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주더니 이번에도 쏙, 손가락을 빼내 버렸다.

윤신은 그의 음험하고도 음란한 행위에 기가 질렸다.

“진짜 이럴 거예요?”

“자그마치 2주나 나를 방치했으면 이 정도 벌은 각오했어야지. 허리 들어. 내가 이 케이크 어떻게 먹는지 똑똑히 봐.”

아직 화가 전부 풀린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했다는 양, 세헌의 눈매가 어둡고 사나워졌다.

그는 윤신의 두 다리를 더 추켜올리게 만들더니, 양쪽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곤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음부 속에 밀어 넣었던 크림을 수거해 가겠다는 듯 입구에 혀를 욱여넣었다.

아찔해진 윤신이 입술을 꽉 감쳐물고 온갖 욕지거리를 겨우 삼켰다. 입구 주변에서 헤엄치듯 돌아다니는 세헌의 혀끝이 저장하듯 넣어 두었던 크림들을 빠는 게 느껴졌다. 몹시 밀부가 민감해진 상태라 그 촉감이 고스란히 전이돼 돌 것 같았다.

수치와 짜릿함이 동반되는 이 양가적인 느낌을 누가 알까.

싫고, 좋았다.

몸을 비틀면서 싫어하는 티를 내자, 세헌의 몸짓은 더욱 집요하고 농밀해졌다. 쫍, 쫍. 크림을 빨아들이는 음탕한 효과음들이 윤신의 다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다.

제 다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정작 자신이 아닌 정면에 있는 세헌에게 더 잘 들여다보인다는 게 치 떨리면서 부끄러웠다.

“아, 좋아, 아, 싫, 하지 마!”

사실 그가 침대 위에서 이런 식으로 지난 2주를 복수할 줄 알았다. 서럽고, 창피하고, 열받는 와중 느끼고 있는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세헌이 제 안에 뭔가를 담았다 수거해 가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런 행위를 할 때마다 늘 그랬다. 죽을 것처럼 부끄럽고 끔찍했다. 동시에 우습게도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됐다.

자신이 이상한 성벽을 지닌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두렵고, 그런 한편 하면 안 되는 은밀한 짓을 강세헌과 몰래 저지르는 것 같아 짜릿했던 것이다.

지금도 똑같았다. 선단에서 쿠퍼액이 쏟아지기 시작해 혀라도 콱 깨물고 싶어졌다. 팔과 다리만 바르작거리다가, 결국 섭섭함이 급격하게 차올라 울음을 터트렸다.

“강세헌, 이 개새끼야…….”

윤신이 우는데도 세헌은 봐주지 않았다. 자신이 울면 그 어떤 것보다도 못 견뎌 하면서 침대 위에선 예외였다. 흥분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감정이 윤신을 울며 헐떡이게 만들었다. 그는 숨을 힘겹게 삼키며 세헌의 혀끝이 입구 안쪽을 들쑤시는 걸 모두 느꼈다.

돌기가 곤두선 까칠한 살덩이로 내벽의 크림들을 핥아 대던 세헌이 천천히 혀를 빼냈다.

골반을 쥐어 좀 더 제 쪽으로 끌어당긴 후, 핏줄까지 다닥다닥 선 성기에 윤신의 둔부를 갖다 댔다. 흔들거리던 허리를 좀 더 안정적으로 고정하고, 입구를 뻣뻣해진 귀두로 뭉개듯 눌렀다. 흐느끼던 윤신이 제 골반을 쥔 세헌의 손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고는 부디 들어와 달라는 듯 깍지를 꼈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세요.”

허리를 숙인 세헌이 눈물로 젖은 뺨을 핥았다. 그러고는 혀끝으로 입술을 갈라 얽자, 입을 적극적으로 벌린 윤신이 그와 체온을 품었다. 몇 번이고 겹쳐진 살결이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타액이 늘어지면서 선을 만들어 냈다. 세헌이 혀를 내밀어 그걸 훔쳐 갔다.

“박아 줬으면 좋겠어?”

“흐으…….”

“그럼 너도 하나를 해야지.”

진짜 경제 논리로 이 행위를 이행하자는 게 아니다. 강세헌은 지금 자신을 명백히 희롱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게 저항할 여력도, 마음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윤신은 뭐든 하겠다는 것처럼 겨우 눈물을 거두고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세헌이 갑자기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곧이어 무릎만 접히고 꿇어앉게 만들더니, 뒤에 바짝 버티듯 자세를 잡았다.

처음엔 뭘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모양은 다 망가졌지만 내용물은 아직 반 정도 남은 케이크를 보자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케이크 판을 두 사람의 앞으로 당겼다. 귓가에 박자를 쪼개는 것처럼 쪽쪽, 뽀뽀하던 그는 아프리만치 콱, 귓불을 깨물었다.

“윽……!”

“오늘 윤신이 쓸 콘돔이 없네. 이 위에 싸야겠다.”

놀란 윤신의 두 팔이 뒤로 향했다. 제 몸을 뒤에서 감싼 세헌의 양쪽 치골쯤을 잡고 무너지기 싫다는 듯 버텼다. 이에 그가 직접 앞으로 손을 뻗어 대신 자위해 주었다. 이미 프리컴을 쏟아 질척해진 귀두부터, 꺼떡거리는 기둥 전체를 한 손으로 앞뒤로 쓸어 댔다. 사출 직전이었던 성기가 적극적인 손길에 희뿌연 정액을 토하려고 몸통을 바들댔다.

이윽고 세헌이 윤신의 몸을 좀 더 앞으로 낮췄다. 자연히 곤두선 성기가 자유 낙하해 케이크 크림에 푹 처박혔다.

“흡! 아! 선배, 아!”

콰악. 세헌이 제 내부에 박고 사정하듯, 윤신의 요도구에서 팟, 하며 정액이 튀었다. 불투명하고 점성 있는 체액들이 케이크 시트 사이에 고여 들었다. 세헌은 전부 다 쥐어짜 낼 기세로 기둥을 좀 더 크림 속에서 문지르고, 음낭까지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 사정하는 윤신의 몸이 여운으로 늘어져 점점 더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데 그 모양새가 꼭 제게서 벗어나려는 것 같았던 모양이다.

세헌이 별안간 윤신의 복부를 붙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도망치지 마.”

“제가 어딜, 간다고, 읏!”

“가지 마, 윤신아.”

지친 한숨을 뱉은 윤신은 그의 반지 끼워진 손가락을 앞으로 잠시 끌어당겨 입 맞췄다. 제 몸이 그의 장난질로 엉망이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눈에는 세헌이 먼저 보였다.

“하아…… 전 선배 거예요.”

“그럼 보여 줘. 내가 불안해하지 않게.”

젖 먹던 기력까지 쥐어짜 내 겨우 몸을 다시 일으킨 윤신이 실크 가운의 부드러운 천을 사이에 두고 세헌과 몸을 마찰했다. 뾰족하게 튀어 나온 그의 성기를 제 엉덩이 골에 끼우듯이 접촉했다.

위아래로 몇 번 쓸면서, 좌·우로도 번갈아 가며 움직이자, 세헌의 입술을 가르고 뜨거운 숨들이 연신 터져 나왔다. 마침내 그가 이 저속한 행위에 화답하듯 딱딱해진 기둥을 갈라진 틈새에 몹시 천박하게 비비면서 속삭였다.

“기분 좋아?”

윤신은 고개를 옆으로 힘겹게 돌려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데 그거로는 만족이 안 되었던 것 같았다. 세헌이 울대뼈가 두드러진 목울대를 손바닥으로 콱, 받치고는 난폭하게 키스했다. 이미 크림으로 범벅이 된 윤신의 몸을 다른 한 손으로 애무하자, 조금 전 사정했던 윤신의 것도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신음한 윤신이 눈을 감고 그의 혀끝을 받아들였다. 서로의 것이 입 안에서 겹쳐졌다. 둔부에 찌를 듯이 기둥을 지분거리던 세헌의 허리 짓도 함께 거칠어졌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졌다.

바로 그때였다.

세헌이 바짝 끌어안은 윤신의 몸을 힘껏 앞으로 밀며 동시에 무너졌다.

“윽……!”

윤신의 얼굴이 케이크 위에 푹 박혔다. 안면에 분홍색 크림이 흠뻑 묻어났다.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시도로만 그쳤다. 어느 틈에 세헌이 제 가운을 완전히 벗어 던져 버리고는 알몸으로 다시 전신을 겹쳐 왔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근육들이 피부에 닿아, 기분 좋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윤신의 얼굴에 묻은 슬라이스 된 딸기와 시트를 입에 물었다.

윤신이 허탈하게 입을 뗐다.

“이걸 안 먹으면 강세헌이 아니지.”

“나쁘지 않은데. 정액이 들어간 허니문 케이크.”

24시간 중 반 이상은 튕기면서 왜 침대 위에만 올라오면 돌아 버리는 건지, 연구 대상이다.

이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가끔 진짜 변태 같은 거 아세요?”

“네가 귀여워서 그래.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다 네 책임이야.”

귀밑에 묻어난 크림을 혀로 핥은 세헌이 귓가에 덧붙여 작게 속삭였다.

“맛있어, 윤신아.”

“그래도 안 돼. 오늘은 부드럽게 해야 돼요……. 중요한 날이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먹어 치울 거야.”

“듣고 있어요?”

“사랑해, 윤신아.”

“…….”

“사랑해.”

인생의 3분의 1쯤이 편법이었을 그는 또, 편법이다.

처음엔 아프게 하려고 미리 놀려 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복해서 그의 서툰 고백들을 듣다 보니 안 어울리게도 여느 때에 비해 마음이 격해진 상태라는 게 본능적으로 전달됐다. 그리고 윤신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의 그 몇 마디에 하염없이 무너졌다.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사치임을 알지만 실은 아파도, 울려도 좋으니 더 자주 말해 줬으면 좋겠다.

꼭 매일이 기념일 같았으면.

불편하게 손을 내밀어 세헌의 젖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자 그가 깊은숨을 토했다.

그 가빠진 숨소리를 듣는 순간 추잡한 생각이 치밀었다. 그에게 비밀을 만들 순 없어, 털어놓았다. 이렇게 감추고 싶은 게 생길 땐 솔직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제 성정이 싫어진다.

“수석님이 앞으로도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

“내가 다 갖고 싶어요. 죄송해요…….”

자신이 잘못해서 싸워도, 마음에 없는 어떤 못된 말을 해도, 몇 번이고 그를 내쳐도, 결국 그의 삶엔 자신밖에 없어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 이기적이고 못된 심정을 세세히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세헌은 모두 읽은 게 분명했다.

대꾸 대신 크림으로 꾸덕꾸덕해진 관자놀이에 키스해 준 세헌이 성기를 윤신의 입구에 조준하듯 맞췄다. 커다란 기대감, 그리고 세헌과의 섹스에서 늘 수반되는 약간의 두려움으로 긴장한 윤신이 숨을 몰아쉬었다. 짐승처럼 엎드리듯 무릎을 꿇고, 세헌의 하중을 받아들였다. 그가 좀 더 노골적으로 선단을 입구에 꽂았다.

“넣는다.”

마침내 한 손으로 어깻죽지와 견갑골을 겹쳐 쥔 세헌이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성기의 기둥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급발진하듯 퍽, 제 것을 밀부에 쑤셔 박았다.

“아……!”

이미 한번 풀어 둔 데다, 상큼한 향의 크림과 세헌의 타액으로 적셔진 내부는 부푼 성기를 꽤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그 두꺼운 기둥이 단박에 반 정도 꽂혀 들었다.

그러나 평소에 비해 매끄럽게 들어온다고 해서 통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반신이 갑갑해진 윤신이 새된 소리를 질렀다. 양 뺨이 벌게져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두덩을 떨어 댔다.

이에 세헌은 좀 더 삽입이 쉬운 자세로 허리의 위치를 고치더니, 윤신이 괴로워하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 것을 뿌리까지 힘껏 욱여넣었다.

퍼억! 선단이 깊숙한 자리에 박히면서 윤신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걸 세헌이 민첩하게 막아 내곤 두 개의 몸을 빈틈없이 맞물렸다.

이윽고 그는 윤신의 골반을 양손으로 쥐었다. 곧이어 난폭하게 추삽질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윤신은 내벽의 미끄덩한 느낌 때문에 더 푹푹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한데 그게 착각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다.

“아! 아! 아!”

자꾸만 전진하듯 앞으로 기울여지는 고개 때문에 윤신의 이마가 침대 헤드에 박혔다. 쿵, 쿵, 찧듯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세헌이 한쪽 손을 뻗었다. 이마가 닿는 헤드 부근을 단단히 쥐자, 그 위에 머리를 부딪치게 돼 한결 나았다.

그는 귀두로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를 훑듯 문지르다가, 깊게 푹 욱여넣었다. 또 언제 깊숙하게 박았냐는 듯 짧게 넣었다 빼며 쳐올렸다.

그때마다 전립선이 함께 눌리는 바람에 까무러칠 것 같았다. 이성을 붙잡고 있을 여력이 없는 윤신으로선 그의 불규칙한 호흡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벅찼다. 그저 성기가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제 내벽이 딸려 나가는 걸 느끼며 수치스러워하는 게 고작이었다.

퍽! 퍽! 허리 짓 하는 세헌의 행동이 점점 더 사나워지고 광폭해졌다. 아득한 삽입감과 찌릿한 밀착감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끝내 윤신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꿰뚫려서 흔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 너무 좋아서 돌연 무서워졌다. 호흡이 달려 갔다. 목까지 빈틈없이 빨개졌다.

“흣! 아! 아아! 선배, 거기! 읏!”

“내장까지 내 좆으로 다 뭉개 버리고 싶어.”

익숙하게 서로가 좋아하는 자세를 찾아 피스톤 운동하는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폭주했다. 세헌이 길고 두꺼운 성기로 비밀스러운 내부에 침입해 무법지대인 양 휘저어 댔다. 그러는 동안, 윤신은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뒤에서 콱콱 쑤셔 댈 때마다 윤신의 눈앞에 보이는 세헌의 반지가 헐거워 달랑거렸다. 헤드를 붙든 손등에 핏줄이 빠듯하게 선 모양새가 몹시 선정적이었다.

그걸 보자 시각적인 자극까지 더해져 기분이 하늘을 걷듯 둥둥 떠올라 죽을 맛이었다. 괴로워진 윤신은 밀부를 조이면서 그의 것을 압박했다. 그러자 꼭 하체를 내부에 전부 밀어 넣기라도 할 셈인지 그가 매우 거칠게 삽입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상하 운동을 해 대는 세헌의 둔부에 오목하게 보조개가 팰 정도로 움직임이 격렬했다.

“씨발! 윽!”

음험한 목소리가 윤신의 귓바퀴를 맴돌았다. 그러다가 뱀이 빈틈을 지나가듯 쑥,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뒤에서 있는 대로 힘껏 피스톤 운동하던 세헌이 윤신을 좀 더 밑으로 내렸다. 그러고는 서로의 왼손을 겹친 채 완벽하리만치 오차 없이 전신을 짓눌렀다.

깍지를 낀 세헌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기 위해 허리 운동에 열중했다. 섹스에 몰두한 그의 이마에서 투명한 땀이 뚝, 떨어져 윤신의 어깨를 스쳤다.

동시에 한번 사출한 윤신의 것은 제때 옆으로 치워 두지 못한 케이크 위에 다시 처박혀 비벼졌다. 복부와 음낭까지 한데 뭉겨져 괴로웠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꿰뚫린 배 속이 사방이 꽉 막힌 막다른 골목처럼 답답해졌다.

점점 사나워지는 그의 허리 짓 덕분에, 윤신은 세헌의 토정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음낭이 둔부에 막혀 살갗에 콱콱 박혀 드는 느낌과, 까칠한 음모가 마찰하는 감각이 미칠 듯이 짜릿했다. 가장 깊숙한 곳을 찾아 귀두를 찔러 넣는 그의 삽입이 정교함을 서서히 잃어 갔다.

윤신은 제 손에 겹친 세헌의 손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반지를 핥아 가며 헐떡이니 퍽퍽 미친 듯이 쑤셔 넣던 성기를 뒤로 쑥 빼낸 세헌이 돌연 엎드린 윤신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제 허벅지 위에 앉게 해, 서로의 달뜬 얼굴을 마주했다.

“이대로 있어.”

그는 위로 솟구친 성기를 음부에 다시 쑥 밀어 넣고는 그대로 윤신의 허리를 끌어당겨 제 위에 콱 짓눌렀다.

“윽, 선배, 흐읏.”

세헌은 대꾸 대신 크림 범벅인 윤신의 온 얼굴에 요란하게 키스했다. 그러자 그의 허벅지 위에서 흔들거리던 윤신이 땀에 젖은 세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눈가가 새빨개진 그는 좀 더 제 것을 깊숙이 퍽, 하고 박아 넣으면서 눈 맞춤으로 대답했다.

눈동자 속에 서로밖에 없는 짤막한 시간이 흘렀다.

곧이어 가볍게 쳐올린 귀두가 전립선을 건드렸다. 윤신의 것이 끝을 고대하며 꿈틀댔다.

“하, 할 거 같…….”

그 또한 한계 지점에 다다른 건지, 고집스럽게 혀를 얽고 입 맞췄다. 윤신도 세헌의 혀를 열심히 빨면서 야릇한 성감을 부추겼다.

쿨쩍, 쿨쩍, 그가 상하 운동 할 때마다 내부에서 크림이 눌리는 선정적인 소리들이 일었다. 그러나 윤신은 민망한 감각도 차치하고 쾌락으로 헐떡댔다.

며칠 굶은 사자처럼 게걸스럽게 제 허리를 쳐올리는 세헌이 위로는 서로의 살덩이를 쫀쫀하게 엮어 가며 아래로는 두 사람의 절정을 도모했다.

콰악!

음낭이 윤신의 둔부에 부딪치며 그가 뿌리까지 성기를 욱여 댔다. 내벽을 짓누르듯 삽입해선 선단을 문질렀다.

발밑부터 덩어리진 쾌감이 차오르는 것 같더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일순 몸이 가벼워져 전신이 허공에 붕 뜬 기분을 느끼며 윤신이 먼저 절정에 다다랐다. 세헌의 탄력적인 복부와 시트 위에 정액을 흩뿌렸다.

“아! 아! 좋아……. 아! 학.”

곧바로 세헌도 사정했다.

“제기랄, 하아.”

마침내 끈적이는 액체가 내부에 쏟아졌다. 은밀한 내부에 느릿하게 토정액이 퍼져 나갔다.

기가 다 빠진 윤신은 힐끗 제 몸을 내려다봤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계속 서로 비비고, 문지르고, 마찰해 대느라 세헌의 온몸도 분홍색 크림으로 엉망진창이었다. 한숨을 몰아쉰 뒤, 완전히 자신을 의지하듯 그에게 하중을 기대자 세헌이 기꺼이 받아 주었다.

그들은 겹쳐 앉은 채로 서로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아직 그의 것은 윤신의 안에 있었다.

숨을 고르는 동안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정적인 시간이 째깍째깍 흘렀다. 여운을 즐기던 세헌이 먼저 움직여 왼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헐렁거리는 반지를 보여 주자, 머쓱해진 윤신이 뺨을 붉혔다.

그걸 본 그는 사정 후에도 건재하게 곤두서 있는 제 것으로 내벽을 쿡, 찔렀다.

“아랜 쫀쫀한데.”

“읏, 잠깐만…….”

“위는 헐겁군.”

윤신은 이상하게 이 순간이 너무나도 창피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할 마음도 안 생겼다.

“주말에 반지 사이즈 조절 맡기고 올게요.”

온순한 대답과 함께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꼭 그러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러자 세헌이 동그란 뒤통수를 붙잡고 제게서 떼어 내더니, 벌어진 입술 사이에 헐렁한 반지가 끼워진 약지를 밀어 넣었다.

“그럼 둘레부터 제대로 재야지.”

작심한 듯 그의 손목을 양손으로 잡은 윤신이 혀로 입 속의 손가락을 정신없이 핥기 시작했다.

세헌이 그런 윤신의 머리 위에 몇 번이고 입 맞췄다.

* * *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탁 비서가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세헌의 차량을 발견하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그가 승강기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태블릿 PC에 띄운 브리핑 화면을 키워 그에게 내민 탁 비서는 서류 가방을 넘겨받으며 미리 잡아 두었던 기계를 향해 손짓했다. 세헌이 먼저 올라타고, 탁 비서가 연달아 탑승했다.

화면을 키워 가며 내용을 살피던 세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기색을 살피던 탁 비서의 입이 열렸다.

“아무래도 딜에서 법률적 문제점을 전부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시간적, 장소적 제약 때문에 그쪽에서 보내 준 자료들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고 그러네요.”

“실사 업체들은 일 못한다는 소리를 본인들 입으로 지껄이면서 수치심도 뭣도 없군. 대상 회사에서 자료는 제대로 왔어?”

“네. 현재 회사법 팀 어쏘 변호사님들이 같이 붙어서 점검 중이십니다.”

“결국 남은 시간상 매도하는 쪽에 보증 요청을 해서 정보 공개를 유도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긴데.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계속 좆같이 삐걱거리네. 사람 인내심 테스트하나.”

“이건 제 사견인데, 우리 펌 연계 업체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동의해. 일단 알겠어. 그것도 같이 검토하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땡.’ 하는 소리를 내며 양문형 문이 열렸다. 먼저 앞서 나간 세헌이 태블릿 PC를 탁 비서에게 돌려주었다. 한데, 무심코 받아 들려던 탁 비서가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딱 맞게 끼워진 백금색 반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그것을 놓쳤다. 그 바람에 손바닥만 한 기계가 땅으로 추락했다.

잠시 멈춰선 세헌이 툭, 떨어진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탁 비서를 마주 봤다.

“미련하게 뭐 하는 짓이야. 시간 없어. 주워.”

“예? 아…… 예. 죄송합니다. 저기…….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라 태블릿 PC를 주운 탁 비서는 긴 복도를 따라 세헌을 뒤쫓았다.

“그리고 저, 저기. 제가 무슨 말씀 드리려고 했었죠?”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던 세헌이 의외라는 기색으로 다시 멈춰 섰다. 웬만해선 탁 비서가 이러는 일이 없기에, 매우 미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일하기 싫어? 아니면 연봉을 더 올려 줘? 원하는 걸 확실하게 얘기해. 질척거리지 말고.”

“아뇨. 저…… 그게 아니라. 제가 놀라 가지고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죄송해요, 진짜로. 수석님 손에 반지가…… 제 눈에도 충격적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그제야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 원인을 알아챈 세헌이 눈살을 구겼다.

“호들갑 떨지 말고 봤으면 소문이나 내.”

“소문요? 이거 설마 저 해고하려고 판 까시는 거예요?”

그는 기가 막힌다는 양 아랫입술을 꽉 깨물곤 덧붙였다.

“어차피 날 거라면 네가 내는 게 제일 나아. 적당히 살 좀 붙여. 돈이 아주 흘러넘치게 많은 연상이라고. 아니면 갓 20살 넘은 애 꼬여 낸 쓰레기라 그러든지.”

상대방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도록 혼선을 줘 본인에게 화살을 모두 쏠리게 하라는 명령인 듯했다. 그 뒤에 숨겨 보호하고 싶은 게 있는 것이다. 뭐든 해도 되는 나쁜 이미지가 진실을 가리고 싶을 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탁 비서가 넌지시 대꾸했다.

“빠릿빠릿한 비서 두신 보람을 느끼게 해 드리겠습니다.”

“사적으로 말고 공적으로도 좀 느끼자. 정신 돌아왔으면 마저 보고해.”

뒤늦게 제 용무가 다시 떠오른 탁 비서가 앞쪽을 향해 손짓하며 다시 걸었다.

“아, 예. 그 공동 대표 취임 건요. 아직 펌 내에선 엠바고고요. 송 변호사께서 파트너 변호사님들 의사 수렴해서 딜 시작하실 것 같고요. 저희 비서실 쪽에선 행정 절차 준비랑, 기사 보도, 그리고 취임사. 그 정도 계획 일단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취임하면서 새로운 서비스 실행안 바로 가동할 거야. 당분간 네 일이 좀 많아질 거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정식 취임은 언제쯤으로 예상하시는지…….”

“내년 상반기 목표로. 물론 중간에 내 프로젝트 일정 따라 변수 생길 수 있을 테니까 그거까지 고려해.”

“알겠습니다.”

마침내 사무실 근방에 다다른 두 사람의 눈에 비서실 직원들과 웬 서류에 서명하고 있는 윤신의 모습이 잡혔다. 모두가 정중하게 아침 인사 했으나, 늘 그렇듯 세헌은 무시했다. 집무실로 바로 들어가 버릴 기세기에, 윤신이 말로 그를 붙들었다.

“강 수석님, 잠시만요. 여기 서명해 주실 거 있다는데요. 비서실 추가 예산 편성 건입니다.”

눈으로 감사 인사한 사무장이 벌떡 일어나 세헌을 향해 서류철을 내밀며 부연 설명했다.

“도 변호사님이 진행비 쓰시는 게 별로 없어서 저희 비서실이 늘 덕을 보거든요. 그런데 그걸 당겨 쓸 거면 수석님 전결이 필요해서요. 서명 부탁드립니다.”

그가 다가와서 대충 눈대중으로 내용을 훑더니 왼손으로 상단부를 잡고 오른손으로 서명했다. 그의 손 움직임이 정갈했다. 사각사각, 자연히 펜대를 움직이며 펜촉이 긁히는 소리마저 깔끔했다.

한데 평화롭던 와중, 부드럽게 움직이는 세헌의 손을 보던 사무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윤신이 세헌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 전혀 아랑곳없이 사인한 그가 사무장에게 도로 서류철을 넘기면서 윤신을 마주 봤다.

“너도 용건 있어? 있으면 빨리하지. 지금 말곤 3시 전까지 너한테 낼 시간 없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윤신의 눈가에 당장이라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 스몄다. 표정만 봐도 그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세헌은 무뚝뚝하게 이어 말했다.

“말로 해. 싸가지 없이 고개 젓지 말고.”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그대로여서 도리어 윤신은 흠칫했다. 저렇게 시큰둥한 기색으로 빈정거리는 건 솔직히 아직도 열받았다. 그의 방식대로 제게 돌려주었던 모든 사랑 고백들을 떠올리자 더욱 그랬다.

윤신은 눈으로 광선 쏘듯 힐난들을 담아 보내곤,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쓱. 야멸치게 돌아선 세헌이 탁 비가 문고리를 잡고 있는 제 집무실로 향했다. 탁 비서가 마저 보고할 사항이 있는 건지 문을 닫고 따라 들어갔다.

세헌의 기다란 뒷모습이 사라지자, 윤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매우 얄미워하는 표정으로 닫힌 문을 지켜보다가, 끝내 픽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볼 때 상냥하게 굴면 사달 나는 줄 아는 저런 칼 같은 면까지도 좋아 미치겠으니 진짜로 답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윤신이’ 사건 이후 펌이 한번 소소하게 뒤집어진 전적이 있던 터라 세헌의 판단이 멀리 보면 맞긴 했다.

그는 다시 자신이 서명해야 하는 서류 위로 주의를 기울였다. 이윽고 사인을 모두 마쳐 펜을 내려놓곤 사무장에게 함께 돌려주려는데, 그때까지도 어설프게 일어선 채로 굳어 있던 그녀가 많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뗐다.

“봤어요, 도 변호사님?”

“뭘요?”

“강 변호사님 손에 반지 있었잖아요!”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거짓말이나 남을 속이는 일에는 영 서툰 윤신이 괜히 세헌의 방을 힐끗 보곤, 어색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제가 확실히 봤어요. 자기들은, 자기들도 못 봤어?”

늘 차분한 사무장이 웬일로 흥분해선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직원들은 다들 제 일을 하느라 목격하지 못한 건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나둘씩 대꾸했다.

“사무장님이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그런 거 끼고 다닐 분 같지 않은데.”

“연애하는 기미가 있으셨으면 저희가 알죠. 수석님이 데이트할 시간이나 있어요?”

“왜요? 솔직히 저 스펙에 솔로인 게 말이 돼요? 애인 생기셨을 수도 있죠. 시간은 쥐어짜 내면 되는 거고요. 이 펌 변호사분들 바쁘지만 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시잖아요.”

“에이, 같은 펌에서 일한다고 그게 동일 노동이야? 강 수석님은 좀 특수 케이스지. 저분은 일중독인 데다가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아. 중압감이 다르다고.”

사실 시간을 쥐어짜 내면 된다는 신입 패러리걸의 말이 제일 정답에 가까웠다. 놀랍게도 잘 만들면 어느 정도는 생겼다. 아울러 서로의 취미가 서로라는 점도, 같은 건물에 있는 시간이 하루의 반이 넘어 행동반경이 거의 같다는 것도 낭비할 시간 단축에 꽤 도움이 됐다.

“아니, 내가 봤다니까? 제가 봤어요! 진짜 못 봤어들? 도 변호사님도요?”

난처해진 윤신이 대충 눈짓으로 얼버무리곤 제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마침 세헌의 방에서 나온 탁 비서가 유일하게 사무장의 말에 긍정했다.

“제가 봤어요, 사무장님.”

다만 곧바로 이쪽으로 눈길을 던져 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돌아서던 윤신은 흠칫했다.

여태 단 한 번도 서로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하나, 윤신의 직감에 송 대표와 탁 비서 두 사람만큼은 세헌과 자신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그런 게 거의 확실했다. 지금 제게 보내는 저 미심쩍은 시선이 그걸 증명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사적인 범주의 세헌과 윤신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두 사람은 조금 달랐다. 아울러 탁 비서는 눈썰미도 원체 좋아서, 제 반지 디자인이 달라졌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도 있으리란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워진 윤신이 마른침을 삼키고 손을 뒤로 감추려는데, 탁 비서가 그러면 더 수상쩍어 보인다는 듯 능청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냥 목걸이로 한다 그럴걸.

세헌에 대한 탁 비서의 충성도는 기이할 정도로 높았다.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할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서 불안했다. 윤신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탁 비서가 엄정한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단호하게 뱉어 냈다. 윤신과 사무장을 비롯한 내부의 직원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브리핑합니다. 강 수석님 왼손 약지에 반지 있고요. 백금색이고, 모양은 라운드인데, 끝만 뾰족해요. 따로 데이트할 시간은 없으신 걸 우리가 아니까…… 서로를 적당히 방치해도 되는 꽤 오래된 여자 친구 아닐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가 집요한 소유권 행세를 거두고 자신을 적당히 방치하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윤신은 속으로 으득, 이를 깨물었다.

그러는 동안 곰곰이 듣던 사무장이 반론을 펼쳤다. 반지가 끼워진 첫인상에 놀라긴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던 듯했다.

“그것보단, 추근거리는 사람 많아서 귀찮은 일 자꾸 생기니까 아무거나 끼고 오신 건 아닐까요? 강 수석님 같은 분이 낄 커플링치곤 심심한 디자인인 것도 그렇고요. 또 주말 빼면 매일 뵙는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니까요.”

그녀의 말에 탁 비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수긍했다.

“저도 그게 제일 먼저 의심되긴 했어요. 시간이 알려 주겠죠. 어차피 저분 결혼하셔도 우린 초대 못 받아요. 이 펌에서 송 대표님 정도나 청첩장 받으려나. 자, 메신저로 소문낼 시간 5분 드릴게요. 얼른 털고 일들 합시다.”

파티션 너머에 서 있는 윤신의 뒤를 지나면서, 탁 비서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꼭 그 안에 ‘본인은 참석하실 분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문제없죠?’라고 말하는 듯했다.

흠칫한 윤신이 가볍게 묵례하곤 제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들어와 창문 너머를 힐끗 살피자, 직원들이 모두 신이 나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렇게 반지 하나에 재밌어할 일인가, 싶다가도 대상이 강세헌이라 납득됐다.

웃음을 터트린 윤신이 책상 앞에 앉았다.

곧이어 제 왼손에 끼워진 반지 위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춘 뒤, 또 하나의 평범한 하루를 시작했다.

* * *

두 사람 다 여유롭게 쉴 수 있는 틈새 시간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 기다란 소파 위에 평상복 차림의 세헌이 가로로 앉았다. 그 위에 제 등을 기댄 윤신이 하중을 편안하게 기울였다.

그들은 나란히 전신을 겹쳐서 로트렉의 그림들을 모아 둔 얇은 책을 감상했다.

사락, 빳빳한 질감의 종이를 한 장 넘길 때마다 세헌이 결 좋은 머리카락 위에 입 맞췄다. 수차례 그 행위가 반복되는 동안 윤신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 자리한 세헌의 얼굴이 보고 싶으면서도 제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외부에선 잔뜩 날이 선 그일지라도 제 옆에서만큼은 모든 경계가 다 사라진 얼굴을 하고 있을 걸 알아서였다. 굳이 쳐다보면 자신이 너무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간만인 강세헌의 여유가 마모되어 닳아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상상만 거듭하다 보니 감질나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뒤통수를 그의 어깻죽지에 기댄 채 키스를 받기만 하던 윤신이 느닷없이 얼굴을 돌려 서로의 민감한 살갗이 부딪치도록 유도했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헌이 입술 위에 천연덕스럽게 뽀뽀를 하더니, 곧 윤신의 턱을 잡고 앞을 보도록 돌렸다.

“가뜩이나 네가 느려서 책장 넘기는 게 더뎌. 앞에 봐.”

“그림 감상하는 것도 속도전으로 하시는 선배가 비정상이에요.”

“넌 활자도 느리게 읽잖아.”

“저 진짜 속독으로 어디 가서 져 본 적이 없어요. 그것도 선배가 비정상이고요.”

“속독 잘한다고 호기롭게 말하던 도윤신이 그립다.”

그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윤신이 맨 처음 로펌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몸을 달싹이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입을 뗐다.

그러고 보니 왜 이런 화제로 대화한 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선밴 나 언제부터 좋았어?”

흐음. 생각에 잠긴 듯 낮은 감탄사를 뱉어 낸 세헌이 이내 덤덤하게 답했다.

“기억 안 나.”

“거짓말. 본인 메타인지 좋다고 자랑할 땐 언제고.”

“진짜 기억 안 나.”

분명히 기억나는 거 같은데.

머리를 젖히듯 들어서 세헌의 턱을 이마로 찧은 윤신이 다시 편안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말해 주기 싫은 모양이다. 이런 반응으로 미루어 정확한 시기는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 수도 있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 관계를 건졌다.

강세헌이 먼저 좋아했다.

제 쪽이 먼저였다면 조금 전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이 적어도 ‘기억 안 나.’는 아니었을 테니까.

즐겁게 웃은 윤신은 세헌의 몸에 자신을 좀 더 의지하듯이 기댔다. 그러고는 그의 길쭉한 손가락이 닿는 자리들을 따라 그림을 눈에 담았다.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 마분지에 그린 유채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주 짧은 머리를 한 두 명의 여자가 한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꿈자리가 매우 편안해 보였고, 서로를 향한 신뢰로 가득한 듯했다. 아마 좋은 꿈을 꾸고 있으리라.

제 옆에 누운 강세헌의 얼굴이 이랬으면 좋겠다. 자신을 끌어안고 잠들기 직전, 봐 온 중 가장 부드러운 얼굴을 하긴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완전히 평온한 상태로 잠드는 건 멀어 보였다. 다행인 것은 이제 그들에게 그 소박하지만 위대한 변화를 꾀할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세헌의 품에서 제 몸을 달싹이던 윤신이 별안간 이런 제안을 꺼냈다.

“우리 신혼여행 가요. 오르세에 이 그림 걸려 있으려나? 저 프랑스는 안 가 봤거든요.”

가볍게 제 뒷머리를 세헌에게 문지르며 그러자, 그는 잠시 별말이 없었다.

안 튕기면 이 손이 강세헌의 손일 리가.

제 몸의 왼쪽으로 뻗은 세헌의 손을 힐끗 본 윤신이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덧붙였다. 그가 거부하는 척하면, 윤신은 더욱 승부욕이 일었다.

“가까운 해외도 가능해요.”

“…….”

“국내까지도 수용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대신 바다 보이는 곳이어야 돼요. 풀빌라가 옵션.”

교섭안을 제안하면서 책 한 장을 뒤로 더 넘기려는데, 그가 그 손짓을 막아 냈다. 왠지 이렇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던 윤신이 한 번 더 분명하게 덧붙였다.

“신혼여행이란 말이 싫으면 여행의 목적을 자유 여행 정도로 바꿔 보고요. 이제 넘어오죠?”

열심히 두드리니, 결국 세헌의 말문도 열렸다.

“그래. 조만간 시간을 내 보자.”

생각보다 쉽게 수긍한 세헌 때문에 윤신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진짜요?”

“네가 가고 싶은 데로.”

“진짜?”

“여행의 목적도 네가 원하는 걸로.”

약속의 증표를 새기듯 눈두덩 위에 닿는 세헌의 입술의 온기가 애틋했다. 윤신은 그의 살갗이 닿는 동안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윽고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불현듯 윤신의 뇌리에 어디선가 읽은 푸른 장미 이야기가 스쳤다.

가끔 자신과 사랑에 빠진 강세헌을 보면 그 꽃이 떠올랐다.

처음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고 한다. 장미에는 푸른색 색소를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는지라, 흰 장미를 염색한 형태로밖에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누군가가 오랜 유전 공학 연구 끝에 푸른 장미를 끝내 만들어 냈고, 결국 그 꽃의 꽃말이 ‘기적’으로 바뀌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비좁던 세헌의 세계는 확실히 확장됐다. 그 안엔 자신이 있었다. 또한 제 넓었던 세계는 축소되었다. 다만 그 안에 강세헌이 존재했다. 그들이 피운 푸른 장미가 각자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그의 핏줄 도드라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얽은 윤신은 다시 자세를 고쳐 처음처럼 세헌에게 안정적으로 의지했다. 그의 것과 맞댄 손등에는 언제나 솔직하게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윤신조차도 차마 형언할 수 없었던 수만 가지의 애정이 가득했다.

그 온도를 느끼며 침묵하던 세헌이 별안간 푹 잠긴 음성으로, 왠지 내놓기 싫은 비밀을 마지못해 꺼내듯 입을 뗐다.

“난 첫눈에 반했던 것 같아. 다시 만나기 전까진 몰랐지만.”

헉.

고개를 돌린 윤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헌을 직시했다.

습관처럼 머리카락 위에 키스해 준 그가 손가락을 세워 윤신의 머리를 앞쪽으로 다시 돌리곤, 책의 한 장을 또 뒤로 넘기며 미소 지었다.

〈Not Anymore〉 마침168476151475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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