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현관까지 마중 나온 이경이 윤신을 반겼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윤신의 허리만큼 오는 조카가 쏙 나타나더니 제 삼촌을 끌어안았다. 양손에 가득 쥐고 있던 쇼핑백들을 땅에 내려놓고 폭 안긴 아이를 번쩍 추켜든 윤신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늘 아쉽고 안타깝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이따금 재회했을 때 기대보다 더 큰 행복을 주곤 하니까.
그 사실을 입증하듯 말간 얼굴에 오랜만에 조카를 보게 돼 설레고 반가운 기운이 완연했다.
“볼 때마다 커 있네. 삼촌 안 보고 싶었어?”
순한 아이가 고개를 저으면서 윤신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다. 언젠가 윤신의 길어진 앞머리를 보고 커다란 인형의 머리핀을 떼어 내 선물해 주었던 그 막내 조카였다. 보다 안정적으로 아이를 안은 그가, 쇼핑백을 들고 거실로 이동하는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
걷는 동안 이경은 동생이 무엇을 사 왔는지 꽤 까다로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윤신은 고개를 그녀에게 기울여 넌지시 물었다.
“알맹이 왜 하나밖에 없어.”
“연재? 학원 갔지. 우리 연진이, 삼촌한테 뽀뽀해 주고 방에 가서 놀아.”
그에게 매달려 있던 둘째가 상체를 떼어 냈다. 그러고는 가끔 그렇게 했듯이 윤신의 입술에 뽀뽀하려고 입을 내밀었다. 귀엽다는 양 눈에 사랑을 가득 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신은 이내 제 왼쪽 뺨을 내밀어 여기에 하라는 듯 부추겼다.
“오늘은 여기.”
쪽. 뽀뽀한 연진을 내려 주자, 아이가 누나의 손에 매달렸다. 제 삼촌이 저 주려고 사 온 선물들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듯했다. 이경의 판단에도 아이들에게 줄 만한 것들이라고 여겨졌던 것 같았다. 그녀는 쇼핑백에 든 상자를 몇 개 꺼내 들려 주곤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를 향해 손짓했다.
“선물 같이 정리 좀 해 주고, 윤신이는 차 좀 주시고요. 뭐 마실래?”
그녀의 물음에 윤신이 도우미 쪽으로 대답했다.
“레몬차 주세요. 누나가 직접 청 담근 거. 얼마 전에 사진 보내서 자랑하더라고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우미가 연진을 데리고 방 쪽으로 사라졌다.
이경이 다이닝룸 오른편으로 윤신을 안내했다. 통유리로 훤히 뚫린 한강을 내다볼 수 있는 다용도 거실이었다. 그녀의 표정과 태도가 오랜만에 피붙이를 만나 매우 즐거워 보였다.
“내가 먼저 전화 안 하면 연락하는 법이 없지? 얼굴 까먹겠다.”
“바쁜 거 알면서. 좀 어때? 누나도 그렇고, 애들도.”
확 트인 시야에 노을 진 한강이 가득 찼다. 물 위에서 보석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찬란했다. 거기에 잠깐 시선을 빼앗긴 윤신이 창을 마주한 소파에 앉자, 그녀가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며 응답했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애들이 슬슬 아빠 찾아. 특히 연재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왜 넌 아빠랑 따로 사는 거냐고 놀리고 그러나 봐. 그 사람이 가끔 뉴스에 나오니까. 그럴 땐 뭐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강 수석 충고대로 외국으로 갔어야 했나.”
첫째는 인근의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중이었다. 둘째도 내년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그녀의 재정으로 시킬 수 있는 훨씬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도, 가능하면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선택을 이제 와 조금은 후회하는 모양이다.
세상을 가득 채웠던 사랑이 모두 흩어지고 깨진 유리 같은 현실에 홀로 남겨졌을 때에도, 누나는 모든 역경을 이겨 낼 수 있으리란 듯 아주 강했다. 그런 사람도 작은 아이들에겐 죄인처럼 구는 게 마음 아팠다.
“애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부모들이 하는 소리일 거야.”
“내 생각도 그래. 어른들 하는 말 듣고 그러는 거겠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해 봐야 하나.”
“누나가 나타나면 뒷말은 더 나올걸.”
“역시 그렇겠지?”
“내가 다른 학교 알아볼까? 학군 좀 더 나은 데로. 아니면 우리 졸업한 초등학굔 어때?”
“아직 그럴 정돈 아냐. 진짜로 네 도움 필요하면 얘기할게. 그건 그렇고…….”
화두를 바꾸는 누나의 안면에 화색이 돌았다.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그녀로부터 좀처럼 이끌어 내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상황을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건지 궁금해하는 윤신을 향해 몸을 기울인 이경이 넌지시 물어 왔다.
“왜 입에 뽀뽀하는 건 안 돼?”
그 물음을 듣자마자 한 번쯤 입에 올릴 줄 알았다는 듯, 윤신이 덤덤히 대꾸했다.
“안 되긴. 돼. 뺨에 받고 싶어서 그런 거야.”
“거짓말. 너 걔랑 키스하고 왔지.”
어깨가 굳은 윤신의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정곡이었기 때문이다.
사택에서 누나의 집까지 차로 20분가량은 소요됐다. 그러니 세헌과 입술이 닿았던 후로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은 흐른 거였다. 그런데도 그가 닿았던 자리에 다른 게 부대껴지는 게 싫었다. 그게 누나에 대한 마음에 비견할 만큼 아주 사랑하는 조카라고 해도 여지없었다.
강세헌 닮아 가나.
“그런 거 물어보면서 안 창피해? 누나 그렇게 안 봤는데.”
“그거 강세헌 수석이 잘 쓰는 방법이지? 내용에 오류가 없으면 그걸 주장한 스피커를 대신 공격하는 거. 나 몇 년 동안 수한 언론 플레이랑 싸운 몸이야. 나한텐 안 통해.”
상황 판단이 너무 정확해서 더 뭐라 더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입을 한일자로 다문 윤신을 보며 부드럽게 웃던 그녀가 덧붙여 물었다.
“네 여자 친구도 참 귀엽다. 조카한테도 질투야?”
조카뿐만 아니라 누나인 그녀에게도, 자신과 닿은 클라이언트들에게도, 지나가다 인사를 한 펌 동료에게도, 심지어 제 손길이 닿은 그 어느 것에도 질투했다. 세헌은 자꾸 그렇게 구속하면 숨 막히지 않겠느냐고 말했었지만, 사실 윤신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난 그게 너무 좋아.”
“그렇다고 너까지 너무 신나 하면 안 되지. 너 연애하느라 우리한테 좀 소홀해. 알지?”
그와의 연애는 치명적인 단점이 결부됐다. 어디에도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토로할 수가 없어 답답했던 것이다. 누나가 옆구리를 찌른 순간 둑이 터지듯 말들이 흘러나왔다.
“아는데,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천연덕스럽게 온갖 시치미는 다 떼면서 꼭 질투는 안 숨겨. 진짜 싫은가 봐.”
“…….”
“누굴 기다리게 만드는 게 훨씬 익숙한 사람이 나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다른 데 여유를 못 쓰겠고, 빨리 보러 가고 싶고…….”
거기까지 들은 이경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단 듯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어이없어하더니, 결국 웃으며 대꾸했다.
“너 결혼할 때 됐나 보다.”
“결혼하면 무뎌져?”
“글쎄다. 말 나온 김에 걔 좀 내가 보면 안 돼? 너희 무슨 국정원이야? 몇 년을 둘이서만 숨어서 연애하게. 그렇게 몰래 하니까 둘이서만 더 애틋하지.”
신중하게 연애하고 있다고만 전했을 뿐 계속 구체적인 것들을 숨겨 왔던 터라 누나로부터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제 연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몇 살인지, 어디에 살고, 어떻게 생겼는지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입 뻥끗한 적이 없었다. 덜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뭉뚱그리며 선택적 정보 전달에 심혈을 기울였다.
누나가 제 결정을 전폭적으로 믿고 캐묻지 않긴 하지만, 가족으로서 내심 매우 궁금해한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더욱 철저하게 감췄다. 거짓말에 서툰 자신은 어떤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게 될 테고 그러면 영민한 그녀는 상대가 세헌이라는 걸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금 전까지는 신나서 털어놓다가 또 금세 입을 다무는 동생이 의아했던지, 이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러운 눈치로 덧붙였다.
“걔 혹시 뭐 어두운 일 하는 애야? 안 놀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네가 그 애 아니면 안 되겠다 그러면, 내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도 있어.”
“그런 거 아냐. 업계 동료야. 좋은 사람이고.”
‘나한테만.’이라는 말을 굳이 추가하지 않은 건 앞으로도 그 대상이 강세헌임을 밝힐 생각은 없어서였다. 그는 십중팔구 이 정보 공개를 동의하지 않을 테고, 세헌이 정 안 내켜 한다면 윤신도 괜한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았다.
몹시 바쁜 윤신이 만날 수 있는 직업군 중 하나이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던 건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더라. 몇 살인데? 네가 너무 방어적으로 굴어서 이걸 이제야 물어본다.”
“누나가 기함할 나이 차는 아냐.”
“여자애가 더 많구나? 결혼 안 보채?”
〈글쎄, 난 너랑 진짜로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얼마 전 세헌이 했던 말을 곰곰이 곱씹는 윤신의 얼굴이 퍽 진지해졌다.
“내가 한번 보채 볼까 싶은데.”
“정말? 세상에, 잘됐다. 나 시누이 노릇 절대 안 할게. 1년에 딱 두 번만 같이 얼굴 봐. 아버지 기일. 엄마 기일. 제사도, 명절도 필요 없어. 너희 해외여행 가. 비용은 내가 싹 다 대 줄 테니까. 그럼 나도 몇 년 후면 조카 보는 거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단둘뿐이었다. 친척들이 몇 있긴 하지만 연락은 거의 다 끊겼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공직에 계실 땐 혹여 그걸 주춧돌 삼아 친지들이 괜한 일들을 벌일까 멀리했고, 누나가 결혼한 뒤로는 사돈댁에 누가 될까 꺼렸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은 이혼하고, 동생인 윤신은 미혼이니 부모님 영전에 갈 때 퍽 쓸쓸했던 모양이었다.
반지를 나눠 끼는 걸 염두에 두고 가볍게 한 얘긴데 누나가 현실 속에 자신을 편입시키는 바람에 윤신의 말문이 닫혔다.
가족이 이런 걸 기대하는 상황에서 제 연인이 세헌이라는 건 더더욱 알리면 안 될 듯했다.
어디에서나 빛날 그를 자신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당장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그쪽 얘기도 들어 봐야지.”
“너희가 많이 바쁘면 내가 대신 준비해 줄 수도 있어.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전부. 네 와이프 최고로 예쁜 신부로 만들어 줄게.”
한 번 실패했는데도, 그녀는 이 제도에 대해 그다지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 이경의 마음속에 결혼은 실패했어도, 사랑까지 실패한 건 아니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터다.
윤신도 같았다. 세헌을 붙잡고 싶다고 느꼈다. 처음 송 대표의 부추김으로 얼떨결에 약속한 7년 같은 게 아니라 보다 오래, 보다 길게 함께할 수 있기를 원했다. 수많은 실패들을 매일 눈으로 보면서도 모순적으로 그런 게 하고 싶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놀라웠다.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 윤신이 이 얘기를 더 이어 가면 안 될 듯해 말을 돌렸다.
“나도 도움 필요하면 얘기할게. 그런데, 오늘 왜 보자고 그런 거야?”
이번엔 윤신이 그녀를 현실 세계로 편입시킨 게 분명했다. 즐거운 생각들로 달떠 있던 이경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마냥 재미있는 용건으로 부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아, 그렇지. 실은 누구 좀 소개해 주고 싶어서. 내 오지랖인 거 같긴 한데, 나랑 처지가 비슷해서 그냥 두고 못 보겠다.”
“소송 때문이야?”
“응. 왜, 예전에 내가 말한 적 있지? 우리 갤러리 직원 중 하나가 결혼하면서 퇴직했다고.”
“그 엄청 유명한 소설가랑 결혼한 분. 이혼하고 싶대? 기사 보니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잖아. 남편이 어디 나다니는 것도 못 봐서 작은 공방 하나 열어 주고 거기에만 틀어박혀 있게 한대. 의처증이 엄청 심한가 봐. 이거 보여?”
그녀는 귀에 걸린 동그란 모양의 귀걸이를 가리켰다.
“직접 만들어 준 거야. 이런 소일하면서 시간 보내고 그런다네. 남편이 대중적으로 너무 알려진 사람이라 제 선에서 뭘 해 보기가 무서운 거지. 얼마 전에 연락 와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우는데……. 혹시 맡아 줄 수 있어? 너희 펌 정책 때문에 안 되려나?”
협탁에서 명함을 꺼낸 그녀가 윤신의 앞에 도톰한 종이를 놓아 주었다. 그 순간, 다이닝 룸 방향에서 차를 준비해 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경이 그걸 받아 찻잔에 따라 주는 사이, 윤신이 명함을 꼼꼼하게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뒷면에 흐릿하게 적힌 경력들 중 몇 가지 사항이 눈에 갈고리처럼 걸렸다.
〈미국 주얼리 평가사 및 국가 보석 감정사〉
〈주얼리 디자이너〉
“아냐, 연락 잘했어. 오히려 팀장님이 딱 좋아할 케이스거든. 우선 내가 만나 볼게.”
대꾸와 함께 윤신의 우아한 손이 향긋한 레몬 향이 풍기는 찻잔을 들었다.
* * *
승강기에 올라탄 그의 하얀 얼굴에 복잡한 기미가 서렸다. 벽면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누나에게 받아 온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그럼 공방에서 금속 제품을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건가.
직접 만든 커플링을 선물하고 싶단 생각은 예전부터 했던 거였다. 강세헌이 제 거라고 명확하게 도장을 찍어 둘 수 있는 쉽고 빠른 방법이니까. 그가 거절해서 좌절됐을 뿐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세헌과의 관계에는 분명한 문턱이 존재했다. 그건 현실적인 한계였다.
이 관계를 앞으로 계속 지속한다 한들 지인들을 초대해 식 같은 걸 올릴 수도 없었고, 혼인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지내는 현재의 생활이 최선이었다. 가끔 생각도, 성향도 너무 달라 투덕거리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해하고,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 때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상대방이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그런 삶 말이다.
앞으로도 제 인생에서 뭐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터다.
그리고 그건 바꿔 말하면, 갑자기 그들이 헤어지게 된대도 제 삶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기진 않으리란 의미다.
그 누구도 ‘헤어지셨어요?’라고 둘 중 아무에게 묻지 않으리라.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 흔적이 없는 건 싫었다.
“문제는 반지를 어떻게 끼고 다니게 만드느냐인데.”
열심히 고민하던 와중 승강기의 문이 ‘지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도톰한 명함을 쏙 재킷 주머니에 집어넣은 윤신은 분연히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세헌의 집으로 들어오니, 내부가 고요했다. 볼 의견서들이 쌓여 있다고 했던 얘기가 기억나 서재로 다가가자, 역시나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똑똑. 노크한 윤신은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살짝 열었다. 종이를 뒤로 넘기던 세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하곤 제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도윤신, 여유 있다. 내가 꼬박 5주 만에 쉬는 주말인데 누나 만나러 다녀올 시간도 있고.”
픽 웃은 윤신이 세헌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선 채로 꽉 끌어안았다. 바람 냄새와 함께 달려온 제 연인의 허리를 그가 포근히 감싸 안았다.
정신없이 그의 머리카락에 코끝을 묻고 쪽쪽, 뽀뽀해 대던 윤신이 돌연 세헌의 뺨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그러고는 무릎을 세워 그의 허벅지 위에 꿇듯이 앉은 뒤 허겁지겁 온 얼굴에 입 맞췄다. 익숙하게 받아 주던 세헌이 윤신의 재킷을 벗겼다.
툭. 땅으로 떨어진 그의 외투 주머니에서 아이보리색 명함이 살짝 비집고 나왔다. 깨알같이 쓰여 있는 글자 위에 세헌이 잠시 눈길을 두었다. 그것도 못 참겠다는 양 윤신이 다시 제 앞으로 유려한 얼굴을 끌어갔다.
“어딜 봐요. 한눈팔지 마요.”
“읽던 거 있어. 흐름 끊겨. 씻고 오든지, 나가서 기다리든지.”
“여유는 강세헌 네가 있네. 난 없어. 입 열어.”
젖은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슬쩍 핥은 세헌이, 이 하극상과 도발이 무척 재미있다는 양 눈을 살짝 구겼다. 그러고는 턱을 비스듬히 젖혀 입을 열어 주었다.
조급해진 윤신은 혀를 뾰족하게 세워 그 안에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쑥, 들어간 살덩이가 세헌의 것과 엉켜들었다. 얼굴을 옆으로 미세하게 틀어서 뿌리까지 박아 넣을 기세로 깊숙하게 욱여넣자 그가 살결을 적극적으로 얽었다. 윤신은 신음했다.
“흐응, 흐…….”
질척한 촉감이 서로의 성감을 부추겼다. 금세 달아오른 윤신의 무릎이 부들거렸다. 불거진 무릎 뼈에, 모로 놓인 세헌의 굵은 성기가 닿았다. 그걸 느끼고 볼이 움푹 패도록 혀를 좀 더 들여보내자, 세헌이 두 손을 뻗어 윤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윤신의 셔츠 안으로 침투해 왔다. 밑단을 더듬으며 척추 뼈를 따라 올라오는 촉감이 부드러웠다. 흥분한 윤신은 세헌의 입 속에 새된 탄성을 토해 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라고 말하듯 세헌이 제게서 손을 떼어 내도록 뿌리쳤다.
사위가 얼듯 두 사람을 감싼 공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세헌이 입술을 떼어 냈다. 윤신이 어설프게 쏟아 내던 타액이 그의 입가에 번졌다. 그는 혀끝으로 그걸 죄다 핥아 삼키면서, 음험한 눈동자를 하곤 정면을 주시했다. 그 날카로운 양쪽 눈두덩에 공평하게 입 맞춰 준 윤신이 세헌의 다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소원 지금 여기에서 쓸래요.”
그 말을 듣자마자 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이 장소, 이 순간이어야 하는 상황 중 대충 예상 가는 영역이 있었던 듯했다. 윤신은 벌써 즐거워서 빙글거리며 확, 세헌의 바지 버클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날렵한 턱에 쪼듯이 키스하며 속삭였다.
“자위하는 거 보여 주세요.”
“…….”
“당연히 제 얼굴에 사정까지 해야 돼요.”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기미가 스며 있었다면 모를까.
“솔직히 제가 이거 해 달라고 할 거란 거 알고 있었죠.”
“넌 뻔해.”
“그러게 진작 보여 주지 그랬어요. 그럼 소원 다른 데 썼을 텐데. 수치스럽게 만들어 줄게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양쪽으로 가르듯이 치워 낸 윤신이 세헌을 억지로 일으켰다. 마지못해 일어난 그가 책상에 둔부를 가볍게 걸치고 듀얼 모니터를 등진 채 비스듬히 섰다. 그러는 사이 윤신이 이동식 의자에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세헌은 매우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그러다 회유로 방법론을 정했던지 말을 돌렸다.
“너희 누나 만나고 온 얘기나 하자.”
“누나 아는 분이 이혼하고 싶대서요. 조만간 펌으로 올 거예요. 끝. 지퍼 내려요.”
“도윤신 변호사.”
제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설핏 엄정함이 깃들었다. 그러나 윤신은 여기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으로 뼈에 사무치게 배웠다.
“여기 펌 아니에요. 무슨 말 해도 절대 안 넘어가요. 이거 못 보고 죽는다고 생각하면 관에서도 벌떡 일어날 거 같단 말이에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보여 줘.
몇 년이나 같은 집에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으니 어쩌다 들킬 만도 했는데, 어찌나 철저했는지 여태까지 비공개 상태였다. 그는 제 앞에서도 웬만해선 무너지는 모습이 없었다. 게다가 섹스할 때조차 완전히 흐트러지는 자신에 비해선 여유로웠다. 한 번쯤은 제 쪽에서 일방적으로 그가 힘겹게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상했다. 윤신은 정말로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걸 못 견뎠다.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지 못한다면 줄곧 마음을 썼다.
그런데 세헌만큼은 예외였다. 그를 오직 자신만을 이유로 좀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못된 충동이 때때로 일었다.
책상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세헌의 두 다리는 앞으로 늘씬하게 뻗은 채였다. 윤신은 손바닥으로 그의 무릎 뒤편을 문지르며, 검은 바지에 감싸인 살결을 훑듯이 지분거렸다. 그가 신경질적인 한숨을 삼키곤 다리를 느릿하게 들썩였다.
그 외설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희멀건 뺨도 서서히 상기됐다. 젖은 눈가에 가득한 기대감을 인식한 세헌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책상 구석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손끝에도 약간의 심란함이 엿보였다.
아마 강세헌은 이번에도 져 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는 짜증 날 때마다 담배를 피우니까.
후우, 필터를 입에 물었다 뗀 세헌이 호흡하며 손을 뿌리쳤다. 침실로 가려는 것 같았다. 윤신은 그가 이 원 안을 벗어나기 직전, 급히 다리를 다시 붙잡았다.
“선배 어디 가는데?”
“침실로 와.”
“여기서 해요.”
가만히 내려다보던 세헌은 이내 졌다는 양 다시 책상에 기대어 비스듬히 섰다. 반색한 윤신이 적극적으로 그의 허벅지를 짚으며 이어 말했다.
“저로 적당히 세워요. 만지게 해 드릴게요.”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일단 이 위에 키스해.”
자유로운 한쪽 손끝을 거꾸로 한 그는 가볍게, 윤신의 정수리를 찍어 눌렀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밑으로 향하게 된 윤신이 세헌의 앞섶에 입 맞췄다. 그러고는 눈동자만 들어 올려 그를 응시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그가 손가락에 장초를 끼우면서 계속 명령했다.
“잘했어. 허벅지에 뺨 비벼 봐.”
꿀꺽 침을 삼킨 윤신은 좀 더 안으로 얼굴을 밀어 넣어 사타구니 사이에 뺨을 문질렀다. 왠지 제 요구 조건을 이행하는 중인데도 역으로 당하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중요한 고지가 눈앞이어서 이의를 제기할 타이밍을 놓쳤다.
성기의 부피 때문에 꽤 두툼한 양감이 느껴지는 앞섶에도 얼굴을 비비니 세헌이 미간을 구기면서 잔뜩 억눌린 신음을 토해 냈다.
“하…….”
필연적으로 윤신의 흥분 지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하필이면 세헌이 제 뒤통수를 붙들 듯이 쥐고 좀 더 거칠게 성기 위에 문지르는 바람에 슬슬 몸에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몇 번 귀두부터 뿌리까지 윤신의 뺨을 문지르던 그가, 움켜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곧이어 길고 곧게 뻗은 청결한 손으로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연달아 지퍼를 지익, 내리자 벌어진 틈 사이로 그의 검은색 드로어즈가 드러났다.
언제나 제 안을 들락날락했던 그 묵직한 성기의 모양새가 속옷에 밀착돼 두드러졌다. 잔뜩 가빠진 숨을 겨우 삼킨 윤신이 다시 세헌을 올려다봤다. 턱을 가볍게 든 채로 한숨을 몰아쉰 세헌이 눈길을 교차하듯 시선을 마주쳐 주었다. 그 서늘한 눈매에 당장 자신을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다는 듯한 음습한 욕망이 가득했다.
“끌어 내려.”
오만하게 턱짓하는 그의 지시에 따라 윤신이 손끝을 세웠다. 그러자 세헌이 곧바로 턱을 밀어 올리며 행위를 막았다.
“이게 어딜 날로 먹으려고. 입으로.”
명령을 이행하는 건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세헌의 두 다리를 짚고 치아를 세워서 드로어즈를 끌어 내렸다. 까칠한 음모들이 제일 먼저 보였다. 뒤이어 툭, 하고 반쯤 발기한 그의 것이 튀어나와 윤신의 뺨을 쳤다.
점점 더 얇은 천을 밑으로 내리자, 마침내 음낭까지 모두 드러났다.
윤신이 심호흡한 순간 세헌이 마저 일렀다.
“핥아야지.”
거기까지 듣고는 소박하게나마 반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자위가 아니죠.”
“내가 좆 쥐고 흔드는 게 보고 싶은 거 아니야?”
“그건 맞는데.”
“그럼 핥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윤신은 하는 수 없이 요도구부터 혀끝으로 핥았다. 뒤이어 핏줄을 따라 뿌리 방향으로 길게 이어 가며 훑듯이 쓸었다. 실시간으로 세헌의 성기가 꿈틀거리며 팽팽하리만치 꼿꼿하게 발기했다.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그의 성기를 일방에서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다. 조금 지켜볼 만하면, 그가 머리끝까지 흥분해서 자신을 내버려 두질 않았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부풀어 오르는 그의 기둥, 강직되어 가는 모양새, 민감한 피부 위에 돋아난 핏줄들, 그리고 제 둔부에 닿을 때마다 아찔한 기분을 자아냈던 음모와 음낭까지 꼼꼼하게 관찰하다 보니 윤신도 점점 회가 동했다. 그러나 아직 고비가 남아 있었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짐짓 태연한 체하며 좀 더 의자를 당겨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렇게 뿌리와 음낭까지 본격적으로 핥아 내려 하니 그의 긴 다리가 툭, 제 종아리를 건드렸다. 그러고는 거기까지 하면 된다는 양 왼손으로 윤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잘 봐. 나중에 감상문 쓰게 할 거니까.”
마침내 핏줄이 손등에 도드라진 큼지막한 오른손이 발기한 성기를 가볍게 잡았다. 뒤이어 기다란 손가락으로 기둥을 감싸고, 키스할 때 서로의 혀를 얽듯이 단단히 움켜쥐었다.
뺄 땐 언제고. 의외로 세헌은 한번 시작한 뒤로는 거침없었다.
그는 앞뒤로 성기를 거칠게 문지르면서, 속도를 서서히 높였다. 제게 삽입할 때와 비슷했다. 부드럽게 쥔 뒤, 얼마 후 정반대로 압박을 가하는 식으로 짓궂게 손장난했다. 기둥 전체를 잡았다가, 귀두를 쓸었다가, 다시 뿌리까지 한 번에 붙들어 피스톤 운동 하듯 손으로 자극하는 모양새가 그 어떤 포르노보다도 외설스러웠다.
힘겹게 붙들고 있는 그의 탄탄한 허벅지가 움찔거렸다. 윤신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그 손바닥의 촉감과 눈앞의 시각 자극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가, 별안간 흠칫했다.
“읏…….”
자유롭던 세헌의 왼쪽 손이 귓구멍으로 파고들었다. 뾰족하게 세운 손끝으로, 좁아서 잘 들어가지 않는 귓속에 진입하려는 게 꼭 대충 푼 제 밀부에 억지로 박아 넣을 때 같았다.
윤신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그의 두 다리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이 압박이 감각을 더 북돋은 모양인지 잘 관찰하라는 양 퍽 느릿하게 움직이던 세헌의 오른손이 급격하게 빨리 운동했다.
“하, 씨발, 입 벌려.”
입술을 달싹거리던 세헌이 반쯤 연 윤신의 입 안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 안의 빨간 혀가 제 것을 감싸고 있다고 상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집요하리만치 눈을 떼질 않았다. 붉은 속살을 보며 자위하던 그의 성기가 점점 더 빠듯하게 단단해져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그 덕분에 윤신의 손바닥에도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는 것만으로는 충족이 안 됐던지, 그가 윤신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선배, 웁…….”
혀 밑과 위를 번갈아 들락날락하는 그의 손가락에서 알싸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 윤신의 허리가 함께 들썩거렸다. 여유롭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서 종용한 거였는데, 정작 자신도 잔뜩 흥분해서 사정할 것만 같아 곤란했다.
자위하는 강세헌은 심장에 해로울 정도로 야했다.
그를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은 가학적인 충동이 치밀었다.
망할. 미칠 것 같다.
가쁘게 신음하는 윤신의 입술을 가르고 자꾸만 낯 뜨거운 한숨들이 함께 샜다. 세헌은 그걸 기다렸다는 양 더 고집스럽게 입 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내벽들을 문질렀다. 혀뿌리까지 야릇하게 만지다가 목구멍으로 찔러 넣을 것처럼 밀어붙이자 이물감이 든 윤신이 눈을 내리감으며 기침했다.
“컥, 흡, 흣.”
“눈 떠.”
“흐으, 읏.”
“여기부터가 클라이맥스인데 잘 봐야지. 얼굴에 싸 달라고 했잖아.”
후우. 단전부터 치미는 사정 욕구를 짓누르듯 세헌이 크게 심호흡했다. 다리를 쥔 윤신에게까지 딴딴해진 복부의 근육들의 긴장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세헌은 미간을 흠씬 찌푸린 채로 쿠퍼액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귀두부터 뻣뻣한 기둥까지를 미친 듯이 쓸어 댔다. 젖기 시작한 선단에서 묻어난 액체들이 뿌리까지 번졌다.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철벅거리는 음란한 효과음들이 그들의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마침내 성기 끄트머리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윤신은 자신도 모르게 그걸 입에 담으려고 입을 좀 더 벌렸다. 그러나 세헌이 확, 머리채를 쥐고 허공으로 치켜올리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아윽!”
“고개 똑바로 해.”
“내가 할래.”
“그럼 자위가 아니라면서.”
“내 거잖아.”
“빨고 싶어? 도윤신.”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는 윤신의 얼굴이 잘 익은 석류처럼 벌겠다. 인상을 쓰고 그 모습을 직시하던 세헌이 고압적으로 명령했다.
“빌어.”
“빨고 싶어요.”
“더.”
“이거 빨고 싶어요……. 제가 물게 해 주세요.”
제 머리채를 쥔 세헌의 손을 힘껏 뿌리친 윤신은 의자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허벅지를 단단히 쥐고는 성기 기둥에 젖은 입술을 문지르며 애원했다. 그제야 세헌이 선단을 윤신의 입 안에 툭, 물려 주었다.
처음에는 최저 속도로 운전하듯 매끄럽게 박는가 싶더니, 중간쯤 밀어붙였을 때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욱여넣었다.
“웁……!”
사정감이 차올랐을 때의 세헌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강압적이다. 난폭하게 삽입한 성기를 목구멍까지 찔러 넣는 그의 얼굴에 죄책감은 없었다. 윤신은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파들거리는 턱을 겨우 다물고 볼이 터져라 성기를 입에 담았다. 이 갑갑하고 구역한 느낌만큼, 제게 박은 채로 황홀경에 빠진 강세헌의 얼굴이 짜릿해서 돌 지경이었다.
축축하고 단단한 그의 성기가 윤신의 입 속에서 꿈틀거렸다. 내부에 가득 찬 그의 양감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실핏줄이 터져서 벌게진 눈가로 그를 올려다보며, 앞뒤로 머리를 움직여 피스톤 운동을 대신했다.
위에서 그런 윤신을 내려다보는 세헌도 머릿속이 아득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성공만을 거듭해온 그는 윤신의 앞에서만큼은 번번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박자를 맞춰 완전히 짓이기듯이 윤신의 입 속에 추삽질했다.
퍽, 퍽!
음낭이 턱에 닿을 지경으로 처넣던 그의 성기가 마침내 절정에 다다랐다. 가장 좁고 아득한 자리에 욱여 댔던 성기를 훅 빼내는 순간. 팟, 하고 윤신의 얼굴에 점도 높은 불투명한 정액이 튀었다.
“컥…… 커흑! 헉. 허억…….”
“후우, 입 열어.”
앞뒤로 기둥을 상하 운동 하듯 쓸면서, 벌린 입 안에 남은 정액들을 쏟아 내니 윤신이 착하게 그걸 받아 삼켰다.
삽입만큼 격했던 이 행위만으로도 몸이 노곤해졌다. 꿀꺽, 침을 삼킨 윤신이 낭창해져 비틀거렸다. 그렇게 땅에 무너지려고 하는 찰나, 세헌이 가랑이 사이에 다리를 밀어 넣어 맨발등으로 회음 위를 문질렀다. 아주 느릿하고 집요하게 쓸자 이미 모르는 사이 한 차례 사정한 윤신의 젖은 바지 앞섶이 서로에게 느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세헌이었다.
“빨아 줄 기회도 안 주고, 다 젖었군.”
수치스러워하며 그의 하체를 품에 감싸듯 끌어안은 윤신은 끝내 주저앉았다. 바지를 대충 추스른 세헌이 자연스럽게 그 위로 함께 무너지며 윤신을 끌어안은 채로 서재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모로 누워 마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사정의 여운이 흥건했다. 세헌은 창백한 얼굴을 앞으로 숙여서 윤신의 입술에 쪼듯이 입 맞췄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그가 선물하는 다정한 촉감을 음미하던 윤신이 홀린 듯이 대꾸했다.
“저 이거 또 보고 싶어요. 또 해요, 우리.”
“소원에서 까.”
“1년 무료 애프터서비스.”
“난 ‘무’로 시작하는 말 대체로 싫어해. 무상, 무지, 무료.”
“우수한 유전자 이대로 멸종시킬 생각 하니까 지구에 죄짓는 기분이에요.”
나름대로 진중하게 듣고 있던 세헌의 눈썹 사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바로 구겨졌다.
“정액 마시고 취했어?”
“감상문 쓰라면서요.”
그는 진심으로 기막혀하며 짜증 냈다.
“헛소리 그만하고 이리 와, 씻으러 가게.”
“힘없어. 나 안아 줘.”
세헌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지친 양 팔을 내미는 윤신을 내버려 두진 못했다. 그는 품에 흐느적거리듯 늘어진 윤신을 꼭 안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 위에 입 맞추며 서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