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누가 더 상대편을 아쉬워하게 만드는가.’라고.
“올 때가 됐는데.”
아버지의 충고를 떠올리던 윤신은 사무실에 앉아 한쪽 손으로 턱을 괴었다. 이쯤이면 간부 회의를 끝낸 세헌이 돌아올 타이밍 같아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졌다.
강세헌이다.
시니어 변호사 두 사람과 함께 집무실 복도 쪽으로 다가오는 세헌은 오늘도 여전히 스리피스 차림의 흐트러짐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의 수려한 얼굴이 꽤 냉담했다.
그가 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세헌이 입은 저 하얀 드레스 셔츠도, 희미하게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간 회갈색의 실크 넥타이도 어젯밤 자신이 골라 둔 착장을 그가 그대로 입고 출근한 거였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들떴다.
시니어들에게 잠시 보고를 멈추라고 손짓한 세헌이 비서실 직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예 두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받쳐 든 윤신은 그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나 세헌은 제 사무실 방향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안달이 났다.
‘저 넥타이 누가 고심 끝에 골랐는지 확 소문내 버릴까 보다.’
명령을 하면서 벌어지는 그의 유려한 입술 사이에 제 입술과 혀를 끼우는 상상을 하자, 단전이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한 마지막 삽입 섹스 후 정확히 오늘로 한 달째였다. 물론 그사이 달콤한 키스 정도는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더 나갔다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윤신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와의 모든 농밀한 스킨십을 자진 반납했다. 세헌을 배려한답시고 저지른 일이었는데, 딱 1주일째 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루한 후회의 연속이었다.
사실 제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헌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유난히 바빴다. 업무 강도가 지난 몇 년간 윤신이 보아 온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새벽에 들어왔다 새벽에 다시 나갔다. 회사법 팀이 살얼음판을 걷는 비상 상태였기 때문이다.
도국이 다른 몇 개의 로펌과 함께 모 해외 기업의 합병 거래 자문을 맡게 되면서 강세헌은 전체 프로젝트의 총괄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해당 국가의 정부가 이 딜에 개입 아닌 개입을 하면서 일이 꼬였다. 수 개의 법무 법인을 대표하는 M&A 전문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모두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언제 어디에서나 최고여야만 하는 강박 관념이 있는 그는 해외를 왔다 갔다 하며 정말이지 미친 듯이 일했다. 그래서 자신이 방해되는 일 없도록 초강수를 둔 거였다.
업무에 매진하는 강세헌은 매우 근사했다. 윤신은 그런 그가 좋았다.
다만.
‘선배랑 섹스하고 싶어…….’
그의 것을 먹어 치우며, 흥분한 세헌이 제 귀에 쏟아 내는 거친 숨소리를 듣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채거나 조르지 않고 프로젝트의 막바지인 오늘만 착하게 기다렸다. 그게 기특했던지 지난 한 달간 자신을 독수공방시킨 죗값이란 명목으로 세헌이 조건을 걸어 주었다. 소원 세 가지를 아무 군소리 하지 않고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현지와 시차가 있어, 제일 긴박한 상황은 이른 아침에 이미 종료된 것으로 알았다. 자잘한 실무는 아랫사람들의 몫이고, 세헌이 할 건 입장 정리만 남은 듯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됐다.
오늘로 격리 해제. 그걸 기점으로 강세헌은 다시 일도, 로펌도 아닌 제 거였다. 윤신은 그때 이 소원을 아주 신중하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일단 눈부터 마주치고 싶어서 지치지 않고 빤히 바깥만 직시하고 있는데, 보라는 세헌 대신 그에게 지시 사항을 듣고 돌아선 탁 비서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흠칫한 윤신이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서류에 눈을 박았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하나도 안 괜찮아요. 들어오지 마세요.”
그러나 야속하게도 문은 조심스럽게 열렸다. 탁 비서가 고개를 안으로 쏙 밀어 넣었다. 윤신이 어색하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탁 비서님, 저 안 괜찮다고 했는데…….”
“에이, 우리 사이에. 프로젝트 결과 기다리셨던 거 알아요. 이제 해외발 기사만 뜨면 돼요. 다들 그거 보려고 대기하고 있어요. 곧 실시간 뉴스 뜰 테니까 확인해 보세요.”
“왜 그걸 저한테…….”
티가 많이 났나?
“진짜 말씀드리지 마요? 며칠 전부터 계속 프로젝트 언제 마무리되는 거냐고 사무장님한테 물어보셨잖아요.”
“제가 회사법 팀 일에 관심 갖는 거 강 수석님도 아세요?”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탁 비서의 표정이 능청스러워졌다.
“그분이 모르는 게 어디 있어요. 다시 회사법으로 오고 싶으신 거 아니에요? 마침 밖에 강 변호사님 계신데 완전히 대승해서 기분 나쁘지 않으실 때 어필 좀 하세요.”
도와주려는 마음은 진심으로 고마우나, 사실 지금 윤신이 강세헌에게 보채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좀 더 은밀하고, 사적이며, 섹슈얼한 어떤 행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탁 비서가 오지랖을 부려 주어서, 시니어 변호사들을 물리고 제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세헌의 시선도 드디어 이쪽을 향했다.
건조해진 아랫입술을 살짝 혀로 축인 윤신이 마지못해 수락하는 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세헌이 파티션에 한 팔을 걸치고 나오라는 양 손가락을 까딱, 했다.
이윽고 문밖으로 나서자, 그가 뭐 할 말 있느냐는 듯이 고갯짓했다.
“얘기해.”
“그게…… 축하드립니다. 또 이기셨네요.”
조용히 듣고 있던 세헌이 양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대체 네 뇌는 언제쯤 활성화가 되는 거지?”
울컥한 윤신이 눈으로 광선 쏘듯 그를 째렸다. 그러자 그가 ‘어디서 건방지게.’라는 말을 행동으로 함축하듯 한쪽 눈썹을 꿈틀했다. 그걸 본 윤신은 나지막이 심호흡하고, 응수했다.
“결과가 확실해지기 전까진 아무것도 자축하지 말라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기억하는 걸 보면 어딘가에 달려 있긴 한데.”
대꾸하며 희멀건 얼굴을 훑는 세헌의 눈길이 오늘따라 끈적했다. 펌 내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특히 더 윤신에게 까다롭고 야멸치게 구는 평소의 세헌과는 조금 달랐다. 여러 가지 문제로 지금 한껏 예민해진 상태기 때문이다.
그 이유엔 현재 맡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합병도 있었지만, 그 일에 몰두하는 동안 내버려 두었던 자신에 대한 갈증도 분명히 존재했다. 새벽녘 퇴근한 그는 종종 잠든 자신을 품에 가둔 채, 안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윤신도 그때마다 선잠에서 깼던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깼다고 알릴 수 없었던 건 그가 두 시간, 혹은 한 시간을 겨우 자고 다시 나가 봐야 한다는 걸 알아서였다.
이제 윤신은 자신 또한 움찔거리는 그의 근육 하나하나를 다 만져 대고 싶을 만큼 안달 났다는 걸, 세헌에게 제대로 알려 주고 싶었다.
“아직 많이 바쁘세요?”
“급한 건 정리됐고, 그렇다고 한가하진 않고. 얘기 길어질 거 같으면 사무실로 들어와.”
애써 냉정하게 돌아서려던 그를 향해, 윤신이 급히 응답했다.
“아뇨. 그냥 여기서요. 수석님, 저 첫 번째 소원 지금 쓸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안 듣는 체하며 모두 귀담아듣고 있던 비서 팀 직원들이 흠칫했다. ‘소원’이라는 단어가 윤신이라면 몰라도 세헌에게는 퍽 이질적으로 들려서였을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뒤에서 수군거릴 걸 알지만 지금 당장이었으면 했다. 마음이 급했다. 세헌도 이 조바심을 영 모르지는 않는지, 제 쪽을 지그시 보며 명확히 확인받듯 되물었다.
“지금?”
“네.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에요.”
“얘기해 봐.”
탁 비서를 비롯한 직원들의 흥미진진해하는 눈빛을 슬쩍 본 윤신이 세헌에게 다가섰다. 그러고는 퍽 중요한 사안이라는 듯이 낮게 대꾸했다.
“일단 사무실 말고, 다른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좀 옮기시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런 윤신을 내려다보던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았던지 사무실 반대 방향으로 앞서 걸었다. 그를 쫓으려던 윤신이 탁 비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딱 한 시간만요. 자리 비울 테니까 수석님 찾는 분 계시면…….”
“그건 걱정 마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소원은 또 뭐고.”
“이 프로젝트 때문에 저한테 크게 빚지신 게 있어서요. 돌려받으려고요.”
“알겠어요. 아무튼 다녀오세요.”
꾸벅 인사한 윤신이 세헌의 뒤로 빠르게 다가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복도 모퉁이에 다다른 순간, 승강기 방향으로 가려는 그의 손목을 덥석 쥐었다. 힐끗 돌아본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비상계단으로 끌고 가자, 세헌도 순순히 딸려 왔다.
서로 간에 말은 없었다.
그를 이끌고 위층으로 올라간 윤신이 수면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텅 빈 공간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문을 그대로 닫고 안에서 단단히 잠근 뒤 세헌의 등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그가 대충은 예상했다는 듯 무릎을 세워서 제 앞에 선 윤신의 다리 사이에 끼웠다. 그러고는 허벅지를 가볍게 들어 올려 사타구니 사이에 문질렀다.
“원하는 게 뭔데. 얘길 해야 알지.”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여기 비어요. 읏, 그 뒤에 청소하러 오시거든요. 으응.”
세헌의 딱딱한 어깨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있던 윤신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는 그의 움직임에 화답하며 얼굴을 푹 숙이고 신음했다. 그에게 제 몸을 바짝 맞닿도록 기울인 채 머리를 울대뼈 위에 적극적으로 비비자, 세헌이 큼지막한 손으로 등을 감싸 안으며 머리 전체에 골고루 비를 내리듯 입 맞췄다.
“우리, 한 시간으로 돼?”
쪽, 쪽. 입술이 향긋한 향이 풍기는 머리카락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져 나갈 때마다 그의 탄탄한 허벅지도 함께 움직였다. 틈새를 자극하던 세헌이 이내 회음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렸다. 결국 윤신이 그에게 완전히 무너졌다.
“선배, 아…… 나 더는 못 참겠어.”
세헌은 기다렸다는 양 서로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문질렀다.
그의 성기가 옷 위로 느껴졌다. 윤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신음했다. 그러다 곧 손바닥으로 세헌의 탄탄한 온몸 전체를 마사지하듯이 훑어 나갔다. 깔끔한 옷 아래 감춰진 그의 나신을 상상하니 도저히 못 견디겠는 기분이었다.
헐떡이는 윤신을 돌려세운 그가 순식간에 두 사람의 위치를 전복했다. 하얀 벽을 보게 된 윤신이 두 손으로 차가운 벽면을 짚었다. 그 순간, 세헌이 이미 발기하기 시작한 성기를 옷 위로 박아 넣듯이 엉덩이 위에 꾹 짓눌렀다.
“흣, 으…….”
“이게 네 소원인가? 통일도 아니고, 부귀영화도 아니고, 내 좆?”
“선배 더, 더러운 데서 하는 거 싫어하잖아요. 다른 사람 누웠던…… 흐으.”
“차라리 좀 더 건설적인 데 쓰는 게 어때.”
‘정말 재고 안 해?’ 하듯이 귀두로 짓궂게 쿡쿡 찌르는 바람에 윤신의 입에서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하복부를 뚫고 올라올 듯한 성욕으로 괴로웠다. 이보다 더 건설적인 사용처가 존재할 것 같지 않았다. 등 뒤로 손을 뻗어 서로의 몸이 좀 더 밀착되도록 허리를 붙들고 당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반응도 없었다.
“선배 거 섰어.”
“계속 잠을 못 자서 그래.”
“피곤하면 시들어야지 왜 발기해요. 이제 안 속아요.”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윤신을 침대 쪽으로 막힘없이 이끌었다.
풀썩. 세헌이 뒤로 먼저 무너졌다. 뒤이어 윤신의 몸을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거의 동시에 윤신이 그의 베스트부터 벗겨 나갔다. 슬그머니 드러난 회갈색 타이 밑부분에 키스하며 허리를 들썩이자, 윤신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던 세헌이 누운 채로 그 모습을 올려다보곤 미간을 흠씬 구겼다.
아무렇지 않은 체하고 있지만 사실 윤신은 자신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세헌이 안달 나 있다는 걸 맞닿은 끝에서, 저를 향한 표정에서, 음험해진 눈빛에서 모두 느꼈다.
윤신은 젖 먹던 시절의 인내심까지 쥐어짜 냈다. 일부러 보란 듯이 느릿한 손길로 그의 드레스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세 개째 풀었을 때 단단한 가슴팍을 두 손으로 짚고 제 자세를 고친 뒤, 상체를 앞으로 훅 숙였다. 뒤이어 하체가 닿아 있는 채로 세헌의 매끈한 뺨과 날렵한 턱선을 핥았다. 그의 붉은 입술을 가르고 억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 젠장.”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이 반응을 즐기며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귓바퀴를 훑고, 귓구멍 주변을 야릇하게 핥았다. 그러자 이번엔 탄력적인 복부가 꿈틀거리는 게 고스란히 감지됐다. 이미 반쯤 발기해 있던 그의 성기가 좀 더 단단하게 강직되는 그 감각은 그가 제 안에 사정할 때에 견줄 만큼 짜릿했다.
후우, 그의 귓가에 숨을 쏟듯이 뱉어 낸 윤신이 속닥거렸다.
“이게 다예요? 한 달 만인데, 더 딱딱하게 세워 보세요.”
“부추기지 마. 그러다 꼭 후회하지 않나?”
“끝날 때까지 안 보채겠다고 한 말 이미 대차게 후회했어요. 아……. 저 너무 흥분돼요.”
“빌어먹을.”
어설픈 도발에 자극받은 그가 바로 몸을 일으켜 위치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걸 간파한 윤신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동작 금지라는 듯이 상체를 일으켜 눈을 마주치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손 움직이지 마요. 나 만지지 마.”
동시에 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느닷없는 하극상에 헛웃음을 터트리는 건 덤이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못 들었어요? 그럼 다시 알려 줄게요. 나 만지지 말라고.”
“여기 아직 펌 안이야. 난 너의 상사고. 후회 안 해?”
“그래 봤자 우리 팀장님도 아니면서.”
자신의 일은 파트너 변호사인 세헌의 영향권 내에 있지만, 그의 일은 이제 갓 시니어 견장을 어깨에 단 제 사정거리에 없었다. 그걸 실감할 때마다 느꼈던 섭섭함을 이참에 넌지시 토로하자, 세헌도 어울리지 않게 울컥한 듯했다.
“우리?”
두 손으로 눈앞의 골반을 단단히 쥔 그가 성기 위로 윤신을 끌어 내렸다.
퍽!
“아흑!”
농염한 탄성을 터트린 윤신이 그의 위에서 허덕거렸다. 그러나 감정적 허기로 포악해진 세헌을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변호사가 인칭 대명사를 똑바로 써야지. 이딴 것도 가르쳐야 돼?”
“흐읏, 흣! 선배! 잠깐, 잠…….”
“우리?”
아찔해진 윤신이 신음하든 말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는 듯했다. 세헌은 더욱 집요하고 거칠게 윤신을 재차 제 위에 처박듯이 억눌렀다.
퍼억!
“아……!”
“씨발, 우리?”
딱딱해진 그의 것이 회음 위에 강하게 꽂혀 드는 느낌을 받은 윤신이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것보다 더 직접적인 감촉을 기대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너무 오랜만에 그와 접촉하는 터라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흥분했기 때문이 컸다. 금세 속옷이 프리컴으로 젖어 가는 느낌을 받은 윤신은 꼬리를 내리고 그의 단추 풀린 셔츠 깃을 힘겹게 쥐었다.
“자, 잘못했어요…….”
곧이어 부들거리는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 쥐고는 상체를 살짝 일으켰다. 다시 마주친 세헌의 깊은 눈동자에 지금이라도 당장 제 안에 성기를 깊숙하게 처박고 싶어 미치겠다는 간절한 성욕이 득시글거렸다.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면서 그 눈에 키스하듯 시선을 교환하던 윤신이 퍽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건드리지는 마요.”
이 말을 세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좋아, 하자고. 수면실 이 더러운 침대 위에서. 남이 쓰던 시트, 베개. 다 참아 준다니까?”
“모르시나 본데 제 뇌 잘 활성화되어 있어요. 이게 얼마짜리 소원인데 그렇게 단순하게 써요. 선배 나한테 박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뭘 해? 아니, 뭘 하지 마?”
“건설적인 데 쓰라면서요.”
일순 몹시 기막혀하는 기색이 그의 미끈한 얼굴에 스쳤다. 하나를 하라고 판을 깔아 줬더니 둘을 한다는 듯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그는 강세헌이었다. 황당해하는 한편 그 여유 시간을 활용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곧이어 금세 상대방의 의도가 잡혔다는 양, 제 목을 핥으려는 윤신의 목울대를 손등으로 밀어내며 다시금 눈을 마주쳤다.
“나는 너를 안 건드리는 게 규칙이다. 그러니 내가 널 건드리면 원점이다?”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규칙을 깬 게 강세헌이라면, 자신은 세 개의 소원을 고스란히 다시 쓸 수가 있었다. 만에 하나 그가 규칙을 안 깨더라도 상관없었다. 청결도가 유지되기 어려운 장소를 웬만해선 기피하는 세헌이 이 더러운 데서 못 참고 결국 제게 박는 꼴을 봤으니 심신 양쪽이 만족할 터다.
얕은수를 바로 간파당해 정곡이 찔린 윤신은 솔직하게 응답했다.
“수락하실 거죠?”
“내가 못 참고 계속 달려들면 넌 그 소원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거잖아.”
사실 양심에 찔려서 그렇게 간사한 방법까진 고려 안 했다.
“……그렇게까진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교활하니까 전방위로 욕먹는구나.”
“사리에 밝은 거지. 그러니까 성공하는 거고.”
“그래서 수락할 거예요, 말 거예요.”
늘 전략적으로 상대방을 착실히 쓰러뜨리는 강세헌이라도 가끔은 다 알면서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존재했다. 도윤신이라는 독립 변수가 그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가 자신을 원하는 한 이 기조는 반복될 터였다.
그걸 잘 아는 윤신이 엉덩이를 움직여 빳빳하게 서 있는 그의 성기 위에 회음을 문질렀다. 그러자 바로 세헌이 누구의 뒤통수가 닿았을지 알 수 없는 베개에 머리를 젖히면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깔끔한 성격인 그가 이 공간을 참아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진 거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누가 더 상대편이 아쉬워하게 만드는가.’래요. 저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아쉬웠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외롭게 해요.”
분명히 자신은 그에게 매일 졌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강세헌도 제게 매일 진다는 점이다.
뒷주머니에서 낱개 콘돔 두 개를 꺼낸 윤신이 세헌에게 내보였다.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달랑 두 개야.”
“선배 하나, 나 하나. 여사님들 곧 오실 텐데 시트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계속 전신의 인내심을 쥐어짜 내던 그가 결국 이를 으득 짓이기며 콘돔을 싹 빼앗아 갔다.
“아니지. 내가 여기서 이걸 쓴다면 너만 두 개야. 난 네 안에 싸고. 네가 여기 싸고.”
곧이어 그것들을 모두 시트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수락하지. 더 가까이 와.”
그를 보고 있던 윤신은 시키는 대로 착하게 얼굴을 기울였다. 젖은 입술을 아프도록 확, 깨물었다. 세헌이 인상을 쓰는 게 기척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만지고 싶어서 손을 움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즐거워진 윤신은 행동에 탄력받아 더 거침없이 뒷일을 이어 나갔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으로 목울대부터 벌어진 셔츠의 끝까지 느릿하게 핥았다. 그러다 다시 역행하듯 고스란히 올라가서 세헌의 울대뼈 위를 입 안에 가득 담았다. 그걸 삼킨 채로 치아를 이용해 잘근잘근 씹으면서 질척하게 핥아 댔다.
이윽고 두 손을 이용해 마저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낸 윤신은 빈틈없는 직물처럼 짜인 세헌의 살결에 얼굴을 비볐다.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세헌, 하아…….”
살갗에 닿는 호흡 때문인지 아니면 제 음성 때문인지, 둘 다인지는 몰랐다. 순간 움찔한 세헌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가 다시 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서서히 그가 이 붉은색 공기를 감당하기 벅차하는 게 온몸으로 전이됐다.
윤신은 당장 그의 것이 제 안 아득한 자리까지 꿰뚫어 주었으면 싶다가도, 이렇게 안달 난 그를 정복해 나가는 짜릿함을 언제 또 느껴 볼 수 있을까 싶어 인내하게 됐다. 어차피 자신이 날뛰지 않아도, 임계점에 다다른 그가 움직이리라.
마침내 윤신이 그의 바지 버클을 만지작거렸다. 지익. 지퍼를 내리자마자 이미 팽팽하게 발기해 있던 성기가 드로어즈를 뚫고 나올 듯이 툭, 튀어 나왔다. 그 위에 뺨을 꾹 누르듯이 뭉갠 후에, 조금 전 세헌이 버클을 풀어낸 제 바지를 허벅지께까지 끌어 내렸다.
위는 갖춰 입고 아래만 아슬아슬하게 걸친 차림으로 그의 다리에 올라타서, 세헌의 기둥에 제 회음 부위를 달싹거리니 안타까워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흐응…… 수석님. 아…….”
가능한 한 느긋하게 움직이려던 윤신의 몸은 점점 더 자력 통제가 어려워져 갔다. 제 회음에 드로어즈로 어설프게 감싸인 그의 것을 열이 일 정도로 문지르는 동안, 하얗던 얼굴이 벌겋게 달떴다. 이미 많이 닿아 있는데도 더 부대끼고 싶은 마음에 몸을 앞으로 숙여서 세헌에게 짙게 키스했다. 그가 낮은 목 울림 소리를 내며 입을 열어 주었다.
그의 보드라운 입술을 위아래로 번갈아 깨물던 윤신은, 혀를 세워서 동굴 깊은 곳으로 살덩이를 쑥 밀어 넣었다.
고른 치열과 뜨끈한 체온을 차례로 만나, 축축한 혀를 얽었다. 입 안 점막을 헐게 만들겠다는 기세로 혀끝을 이용해 내벽을 들쑤셔 댔다.
다만 상·하체의 성감을 동시에 자극하는 윤신의 움직임은 어딘지 조금 어설펐다. 이에 감질내던 세헌이 능숙하게 허리를 들썩였다.
그가 반칙을 쓰려 하는 걸 느낀 윤신이 그대로 팔을 끌어 내려 그의 골반께를 잡고 더 진하게 키스했다. 일부러 얼굴을 더 비스듬하게 기울여 혀로 세헌의 입천장까지 간헐적으로 건드렸다.
그때까지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윤신의 말캉거리는 젖은 혀를 난폭하게 빨아 대더니, 이내 콱 깨물었다.
“웁, 흐읏!”
놀란 나머지 비좁은 입 안에서 물린 혀를 뒷걸음질 치듯 빼냈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윤신의 입 안으로 제 체온을 넘겼다. 세헌은 윤신의 혀를 적시고 있는 타액들을 죄다 빨아들일 기세로 혀를 쪽쪽 빨면서, 노골적으로 하체를 움직여 성기를 찔러 댔다.
결국 윤신은 수세에 몰려 제 얼굴을 그로부터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의 허벅지 쪽으로 몸을 조금 이동했다. 뒤이어 드로어즈 밖으로 비집고 나온 성기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이 씹, 읏.”
갈라진 음성으로 신음하는 세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 쪽이 먼저 사정하게 될 것 같아 애써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빠듯하게 서서 핏줄들이 모조리 곤두서 있는 성기를 양 손바닥으로 겹치듯 문질렀다. 자연히 세헌의 단단한 치골이 파르르 떨렸다.
“선배 기분 좋아요?”
“입 다물어. 처박고 싶어져.”
“빨리 항복해요. 저 버티기 힘들어요.”
그를 부추기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침내 윤신은 세헌의 것을 단단하게 쥔 채로 선단부터 입에 물었다. 거의 동시에 세헌이 결 좋은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윽, 하며 그의 기둥을 깨물 뻔했다.
심호흡하며 통증을 다스리곤 가까스로 혀를 내어 표피 위를 꼼꼼하게 핥아 갔다. 그러면서 이걸 놓든지, 이제 양보하든지 택일하라는 의미로 제 머리카락을 움켜쥔 세헌의 손을 뿌리쳤다.
성기를 빠는 윤신을, 이마 좁힌 채로 지켜보던 그의 눈가에 갈등이 스몄다. 그러는 사이에도 윤신은 핏줄이 불거진 성기를 정성스럽게 애무했다. 세헌의 것이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갔다. 윤신의 입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꼿꼿하게 선 그의 성기가 점점 더 번들거렸다.
턱이 빠질 것 같다.
그의 것을 입 속에 모두 담으려니 너무 컸다. 그래서 차마 전부 다 물진 못하고 기둥 뿌리를 위아래로 쓸면서, 입으로는 선단부터 중심부까지를 입에 넣고 버겁게 핥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양 몹시 열중한 윤신의 모습이 꽤나 에로틱했다.
바로 그때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세헌이 갑작스럽게 윤신의 골반을 거칠게 잡아챘다. 뒤이어 그대로 팔 힘만으로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제 얼굴 위에 둔부를 앉히듯이 내리고 눈앞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속옷 위를 혀로 게걸스럽게 핥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침대의 낮은 헤드를 쥔 윤신이 그의 위에서 허덕거렸다.
“선배 이거 싫, 잠깐. 확실, 읏!”
허겁지겁 윤신의 하체를 탐닉하는 그의 눈빛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나웠다. 혀끝이 어설펐던 윤신의 애무와 달리 그의 것은 매우 농밀했다. 이 능란하고도 농염한 행위가 그의 얼굴 양옆을 지탱하듯 버티고 있는 두 다리를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후들거리는 양팔로 겨우 헤드 위에 손톱을 세운 윤신의 입에서 힘겨워하는 음성이 연신 터졌다.
“안, 안 돼……. 규칙 깬 거예요. 빨리 그렇다고 말…… 웁!”
그 순간.
확, 윤신의 멱살을 쥐고 아래로 내린 세헌이 한 손을 올려 비좁은 입 안에 욱여넣었다.
“알아들었으니까 빨아.”
겨우 극적 타결을 지은 윤신은 그의 기다랗고 곧게 뻗은 손가락을 열심히 빨았다. 흥건하게 만들 작정으로 혀를 이용해 문질렀다. 아울러 제 입 안의 여린 곳 여기저기를 쑤셔 가며 적셨다.
그사이 세헌은 윤신의 하체를 아슬아슬하게 감싸고 있던 드로어즈를 쑥 끌어 내렸다. 곧이어 윤신의 입에서 빼낸 젖은 손가락을 거침없이 회음 위로 밀어 넣었다.
평상시와 같은 전희의 여유는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세헌은 달아오른 피부를 지분거리거나, 탐색전을 거치며 달래 주는 과정도 생략했다. 윤신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가 제 유두를 애무해 주는 것도, 두드러진 뼈 위를 핥아 주는 것도 잠시 미루고 당장 제 안을 꿰뚫어 주기만을 바랐다.
그는 윤신의 음낭을 질척하게 빨면서 푹, 밀부에 찔러 넣은 손으로 구멍의 입구를 거침없이 휘저었다. 그렇게 주변부를 착실히 점령해 가던 그가 돌연, 좀 더 깊은 샘 속으로 중지를 콱 쑤셨다.
“흣…….”
한 달이나 관계가 없었는데, 그런 것치곤 매우 손쉽게 안으로 박혀 들었다. 게다가 아주 가까운 어느 시점에 무언가로 내부를 넓혔다는 걸 증명하듯 내벽이 미세하게 부어 있었다. 세헌은 이 감각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입 속에서 굴리던 음낭을 빼내고 성기의 뿌리를 혀로 핥으며 은근히 말문을 뗐다.
“도윤신 너…….”
세헌이 무슨 얘길 할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더욱 당황한 윤신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만 말해요.”
그러나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안 한다면, 이 남자 이름이 강세헌일 리가 없는 일이다.
“내가 시키지 않으면 이쪽으로 자위는 안 했었잖아.”
“준비해 둔 거예요. 그럼 안 돼요?”
“준비? 아, 넌 출근하기 전부터 내가 이 펌 안에서 좆질 해 주기만을 기대한 거군.”
매우 수치스러워진 윤신이 그의 머리맡 베개를 끌어다 이마 위로 덮어 버렸다. 앞이 안 보이게 만들자, 그는 더욱 보란 듯이 손가락 개수를 한 번에 세 개로 늘려 음부에 찔렀다.
쿡, 박혀 든 그의 매끈한 손끝이 평상시보다 훨씬 수월하게 밀부를 유영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립선의 위치를 순식간에 찾아 그 부어오른 위를 힘껏 눌렀다. 버티는 윤신의 몸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도 그걸 느꼈는지 한쪽 팔로 제 얼굴을 감춘 베개를 갈기듯이 날려 떨어뜨렸다.
“이 구멍으로 내 좆 물고 싶어서. 응?”
“……흐으, 읏!”
세헌은 짓궂게도 윤신이 자지러지는 자리만을 능숙하게 짓이겼다.
“아침부터 혼자 여길 손가락으로 쑤시고, 이렇게 부은 채로 내 일이 끝나기만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 했지?”
“으응! 흣. 수석님, 거기 좋, 좋아요.”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둘도, 셋도 잘했다. 세헌은 불규칙적으로 윤신의 안을 휘저으며 혀로도 회음을 건드려 아찔한 감각을 끌어 올렸다.
아직 앞은 제대로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윤신의 것은 이미 사출까지 고대하며 꺼떡거렸다. 어서 절정에 다다르고 싶다는 양 둔부를 세헌의 얼굴 위에서 몇 번이고 흔들거리면서 바르작거렸다.
결국 세헌이 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앞으로 몸을 기울여서 제 얼굴 쪽에 올라타 있던 윤신의 몸을 반대 방향으로 누여 버렸다. 그거로도 모자라 그대로 윤신을 끌어다가 침대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걸치게 하고는 자신이 밑으로 내려가 땅을 디뎠다.
발치에 늘어져 있는 베개를 걷어찬 그가 무릎 위치에서 흔들리는 바지와 속옷을 벗겨 던져 버렸다. 바들대는 늘씬한 두 다리를 허공으로 끌어 올려 제 옆구리에 단단히 걸듯 채우는 행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쭉, 찢듯이 가로로 한껏 벌린 가랑이 사이에 세헌의 집요한 시선이 틀어박혔다. 그는 제 뻣뻣한 성기를 윤신의 엉덩이 골 사이에 느긋하게 문지르면서 찔끔찔끔 쿠퍼액이 흐르고 있는 윤신의 것과, 경련하는 입구에 공평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몰두하고 있는 그는 꼭 영화 속 악당처럼 눈매가 서늘하게 빛났다.
제 하반신에 온 신경을 집중한 세헌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 윤신의 허리가 조금씩 떨렸다. 그러자 세헌이 손가락 끝에 요도구에서 흐르는 쿠퍼액을 바르듯이 훔쳐 쪽, 빨며 그를 희롱했다.
“줄줄 흘리는 거 보여?”
“그…… 렇게 쳐다보지 마요.”
“지금 네 거에 손도 제대로 안 댔는데 이렇게 젖은 거야. 알아?”
“그런 말도 하지…….”
“여기 경련하는 거 봐. 넌 이제 내 좆이 아니면 사정도 제대로 못 한단 뜻이야, 윤신아. 나 때문에 인생 좆 된 널 보니까 쌀 거 같아.”
그는 벌름거리는 사타구니 틈새의 좁은 구멍에 시선을 고정했다. 거길 지그시 보다가 얼굴을 숙이곤, 윤신을 부러 더 욕보이듯 성기엔 손도 대지 않고 회음과 입구 주변만을 아주 신중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어느새 착실하게 사정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윤신의 것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세헌은 혀끝을 세워서 구멍 속에 쑥 밀어 넣었다, 뺐다 반복하며 집요하게 괴롭혔다.
“하으, 흐, 이제 그, 그만.”
한계에 다다른 요도구가 움찔거렸다. 밀부에서 혀를 빼낸 세헌은 침대 위에 굴러다니는 콘돔의 포장지를 까서 윤신의 성기 위에 감싸듯이 돌돌 말아 씌웠다. 그런 뒤 능청스럽게 다시 구멍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전립선 위를 노련하게 쿡 눌렀다.
“아아, 선배, 아……!”
순간 절정에 다다라 목을 뒤로 젖힌 윤신이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꺼떡이던 윤신의 선단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너무 쉽게 팟, 하고 정액을 토해 냈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늘어진 윤신의 것에서 천천히 콘돔을 벗긴 세헌이 제 셔츠 자락으로 축축해진 기둥을 닦았다. 그러고는 콘돔 안에 고인 정액을 손바닥에 떨어내 제 성기 표피에 발랐다.
이윽고 윤신의 것에 새 콘돔을 씌워 준 그는 다시 고스란히 흥분하게 만들 셈인지 젖은 귀두를 입구에 깔짝거리며 고압적으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쿡, 쿡. 선단으로 움찔거리는 회음 위를 눌러 대는 그 때문에 윤신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굵은 성기에서 맥박이 뛰는 느낌이 전달돼 미칠 지경이었다. 아울러 귓전에 아득하게 퍼지는 세헌의 낮고 거친 숨소리 때문에 정말이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피가 성기에 쏠려 도로 서서히 발기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서 겨우 두 개 챙겨 온 거야?”
툭, 세헌의 손끝이 다시 곤두선 성기를 능욕하듯 건드렸다.
창피해진 윤신이 베개로 제 것 위를 가리려고 주변을 더듬었다. 한데 손에 잡히는 게 없어 곤란했다. 그 모습을 위에서 고스란히 내려다보던 그가 바르작거리는 두 팔을 단단히 붙잡으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전신을 짓눌렀다.
그 바람에 입구 주변을 누르던 그의 것이 슬쩍 안으로 들어왔다.
“허억, 흡.”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던 내벽이 침입자인 그의 기둥 선단을 힘껏 조였다.
세헌이 반사적으로 눈을 슬쩍 찡그렸다. 그러면서 반쯤 더 안으로 성기를 푹 밀어 넣은 뒤, 야릇하게 속닥거렸다.
“어떻게 박아 주면 돼? 네가 네 손으로 여길 쑤셔 대면서 상상한 그림이 있을 거 아냐.”
“읏, 부드럽게…… 천천히 더 들어와요.”
“난 너 흐트러뜨리고 물어뜯고 싶은데, 넌 내가 부드럽게 해도 만족해?”
“…….”
“난 솔직한 도윤신한테 빠진 거야.”
모든 게 그의 말대로다. 윤신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섹스도 좋지만, 우습게도 거친 행위에 더 잘 느꼈다. 또한 그가 지금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걸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주 잘 알았다. 강세헌이 자신을 길들였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자신은 그가 아니면 안 될지도 모른다. 아주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쑤셔 줘.”
“어떻게.”
“거칠게…….”
잘했다고 칭찬하듯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춘 세헌이 허리를 뒤로 해 단단히 박혀 있는 제 성기를 빼냈다. 뒤이어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윤신의 몸을 팔 힘만으로 뒤집어 버렸다.
윽. 순식간에 무릎 꿇리듯 엎어진 윤신이 미세한 고통으로 허덕거렸다. 세헌은 그런 윤신의 머리채를 확 잡아채더니, 다른 한 손으로 골반을 단단히 쥐어 그대로 제 것을 좁고 예민한 내벽에 난폭하게 꽂았다.
퍽!
내려치듯이 귀두를 밀어붙인 그는 단박에 뿌리까지 삽입했다. 젖은 둔부에 음낭과 치골이 부딪치며 질척한 마찰음이 일었다.
“흐으, 흣. 읍!”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느낀 윤신은 거의 까무러쳤다. 세헌이 윤신의 탄력적인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철썩, 내려쳤다.
“아……! 아! 아!”
신음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격렬하게 허리를 쳐올리는 그의 미간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거의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박아 넣다가 종잇장처럼 흔들리는 윤신의 머리를 젖히게 만들었다. 윤신이 세헌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흥분으로 눈 주변이 빨갛게 된 세헌이 어설프게 벌린 입 안으로 제 혀를 욱여넣었다.
쿡, 쫀득한 내벽을 찌를 때마다 입 속의 살덩이를 함께 농밀하게 얽어 대니 밀부와 입 안이 그의 혀와 성기를 한꺼번에 수축하듯 조였다.
머리끝까지 흥분한 세헌은 이내 윤신의 몸을 침대 위로 완전히 짓눌렀다.
엎드리듯 자세를 잡고 있던 몸이 납작하게 시트에 달라붙었다.
상체의 하중을 이용해서 침대와 자신 사이에 윤신이 바짝 끼워져 압박당하도록 만든 그는, 덜덜 떨리는 윤신의 한쪽 다리를 비스듬히 모로 세워 붙잡았다. 곧이어 밀부에 담긴 제 것으로 거칠게 추삽질해 전립선을 자극했다. 윤신은 자지러졌다.
“으응! 흣! 좋, 너무 좋아.”
“엉덩이 긴장 풀고 허리 더 흔들어. 그래야 기분 좋은 자리에 귀두가 잘 박히지. 벌써 까먹었어?”
아이러니하지만 세헌은 다정하고도 난폭했다.
자상하게 속삭인 그가 피스톤질을 사납게 이어 갔다. 서로의 몸이 과격하게 들썩거렸다. 열락에 빠져드는 두 육체가 빠듯하게 맞물렸다. 그 위로 이곳에 부유하는 뿌연 먼지들이 내려앉았으나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쿨쩍거리는 외설스러운 소리와 그들의 헐떡임이 하나의 주파수로 겹쳐졌다. 그 위에 채 벗지 않은 옷자락이 쓸리는 소리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가 성기를 박아 넣을 때마다 서로의 살갗이 부딪쳐 빚어진 마찰음 따위들이 세력 싸움을 하듯 얹혀 들었다.
퍽, 퍽!
세헌의 하반신이 마치 윤신의 안으로 모두 파고들 기세로 극렬하게 틀어박혔다. 상하 운동에 열중하는 그의 매끈한 이마에 핏줄이 돋아 올랐다.
윤신을 희롱하기 위해서라면 가공할 인내를 보여 주곤 하던 그도 오늘만큼은 영 느긋하게 즐길 여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변주 없이 일률적인 삽입 운동을 반복했다.
길게 넣었다가 짧게 쳐올려 주는 것도, 내부에서 전립선 주변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감질나게 만드는 것도, 아주 느릿하게 애태우다 급속도로 처넣는 것도 모두 하지 못하고 그저 윤신이 좋아하는 자리에 제 것을 박아 대며 난폭한 인터코스를 이어 갔다.
그때였다.
그의 음낭이 윤신의 엉덩이 위에 턱, 하고 부딪쳤다. 자연히 뿌리까지 완전히 꽂혀 드는 바람에 배 속이 꽉 찬 이물감으로 괴로워진 윤신이 헐떡거렸다.
“흐읍, 흣, 선배, 아……. 너무 깊게 들어왔어요. 여긴 아파요. 아파.”
“배 속까지 찌르고 싶어. 더 넣자, 윤신아, 응?”
“더는 못 들어와, 싫, 좋, 싫, 모르겠어요…….”
“빨리 된다고 해.”
안 된다고 해도 할 거면서!
“천천히, 천천히 해요. 후으.”
명암이 분명한 고통과 쾌락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꼭 길쭉하고 날렵한 물체가 제 안에 파고들어 헤집어 놓는 듯했는데, 그런 한편으론 머리가 빙글빙글 돌 정도로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꿰뚫린 윤신은 이러다 새된 교성이 터질까 봐 눈앞이 아찔했다. 자꾸만 아랫입술만 깨물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시트를 입에 물려고 겨우 잡아당겼다. 그러나 독점욕 강한 세헌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바들거리는 목울대를 손바닥으로 받치듯이 잡고 얇은 천에서 얼굴을 떼게 만들었다.
“네가 입 안에 넣고 물고 빨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이러다 나 소리 지를 것 같단 말이야. 흣!”
이에 그가 제 손가락을 윤신의 입에 넣어 주면서 달랬다.
“아프면 이걸 물어.”
“이러면 선배가 아프잖아요. 싫어요.”
“상처 내. 괜찮아.”
쪽. 머리카락 위에 입 맞추며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끈질기게 달래자 힘겨워하던 윤신이 결국 세헌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콱 깨물었다. 손의 통증을 느낀 세헌이 본의 아니게 제 하반신으로 그걸 고스란히 윤신에게 돌려주었다.
콰악!
이렇게 깊이 넣어 버리면 쾌감만큼 괴로워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전립선 주변부만 문질러 주며 어설프게 찔러 넣는 것으론 한참 모자랐다. 연신 뿌리까지 힘껏 처넣는 세헌의 얼굴에 서서히 황홀한 기운이 스몄다.
“읍, 읍! 으읍!”
퍼억! 퍽! 성기가 꽂히면서 윤신의 둔부가 바르르 떨렸다. 끙끙 앓으며 그의 손가락을 한 차례 더 힘껏 깨문 순간. 우습게도 사정하고 말았다. 세헌의 하중 때문에 억눌린 성기의 끝에서 희뿌연 정액이 터져 나와 콘돔에 쏟아졌다.
한숨 같은 신음을 토해 낸 윤신이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그가 제 것을 훅 쳐올렸다.
세헌이 몰아붙일수록 윤신의 몸은 시트에 거칠게 쓸렸다. 그의 골반이 둔부에 부딪칠 때마다 잔뜩 약 오른 성기가 움찔거리는 민감한 내벽을 두루 찔렀다. 자연히 딱딱한 기둥이 전립선을 함께 건드려 댔다. 난잡하기 짝이 없는 음험한 인터코스를 반복하며 두 사람의 움직임에도 점점 더 속도가 붙어 갔다.
조금 전 토정했는데도 윤신은 짜릿해서 목소리가 절로 높아질 것 같았다. 세헌의 손가락 표피에 상처가 나고 있다는 걸 알았으나 깨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단단하고 묵직한 성기로 미친 듯이 박아 대던 그가 열락에 파묻혀 뜨거운 절정에 다다랐다. 그는 윤신의 몸을 뭉개 버릴 기세로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헐떡이는 전신을 짓이기는 것처럼 억누르고, 귓전에 끈적하게 키스하면서 속살거렸다.
“내가 이 안에 찔러 줬으니까 너도 날 기쁘게 만들어 줘야지.”
“흐으, 후, 웁.”
“들으면서 싸고 싶어.”
사정의 신호를 보낸 그는 윤신의 입에서 손가락을 훅 빼냈다.
“사랑해요, 읏.”
늘 들어도 이 말은 질리지가 않았다.
치아에 깨물려 찢긴 세헌의 살갗에서 피가 흘렀다. 그걸 분명히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은 그는 젖은 제 손을 윤신의 왼손 위에 덮듯이 깍지 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젖은 뺨을 쥐고 질척하게 입을 맞추면서 아득한 내부에 사출했다.
미끄덩한 체액이 제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외설스러운 감각을 느끼며, 윤신이 먼저 풀썩 무너졌다. 그 위에 골고루 발린 케이크 크림처럼 함께 쓰러진 세헌이 발그레한 윤신의 뺨에 쪼듯이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정액을 뭉개듯이 성기를 내부에서 들썩였다.
한껏 지친 윤신이 여기에도 뽀뽀해 달라는 듯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가 사양하지 않고 그 붉은 살갗 위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런 상스러운 섹스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고요. 체력 소모도 크고요.”
“더 큰 자극을 위해 한 번 더?”
아직 파묻혀 있는 내부에서 그의 것이 꿈틀, 했다. 식겁한 윤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콘돔도 없고, 시간도……. 선배가 안에 해서 전 반차 써야 돼요.”
“그러게 콘돔 두 개 갖다 누구 코에 붙여.”
잠시 제 뒤의 그를 힐난하듯 지그시 응시하던 윤신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수석님, 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걸 소원으로 쓰기엔 아까웠다. 평소였다면 그냥 할 수 있는 요구들이었으나, 조건부가 서로에게 걸려 있어 말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윤신이 말을 얼버무리자, 그 생각을 모르지 않는다는 듯 세헌이 한 수 물렀다.
“내가 오늘 좀 일찍 퇴근하는 걸로 하지. 도련님 숫자 교육도 좀 하고.”
싫진 않았던 윤신의 음성이 한풀 누그러졌다.
“씻겨도 줘요.”
들어주겠다는 대답 대신 제 뺨에 뽀뽀하는 세헌이 밉지 않아서, 결국 팔꿈치로 그를 툭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