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2/51)

02. 

차창 밖으로, 푸른 하늘에 흰 물감으로 그린 듯한 구름들이 선명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사념들이 윤신의 머릿속에 스쳤다. 대부분 지난번 유원지 근방을 세헌과 함께 걸으며 나누었던 대화들이었다.

그와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라는 사람에 대해 내밀하고 세세하게 알게 되면서 윤신은 꽤 많은 것을 습득했다. 개중 가장 자주 인지하게 되는 건 두 사람이 너무나도 다른 인종이라는 거였다. 이 덕분에 그가 왜 크고 작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건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느 책 속 글귀를 통해 덤덤히 고백했듯, 자신은 그의 최전방이다. 어쩌면 거울이고, 아마도 시계추였다. 그는 중심을 제대로 잡고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 너무나도 다른 윤신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선밴 연애에 서툰 건지 고단수인지 모르겠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한 사람에게 몰두하게 만들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사실 그동안 윤신은 자신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까맣게 몰랐다. 그저 때가 되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리라고 어렴풋하게 그려 왔다. 그럴 때마다 막연히 상상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세헌은 공통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썩 떳떳하지 못한 일에 가담하러 와 놓고,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다시 여기 오나 봐라.”

애써 생각을 다른 곳으로 몰아넣듯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약속한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세헌이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찍어 준 자리는 나들목 근처의 대로변이었다. 역사 근방인 데다 마침 주말의 오후였던지라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 이 길을 가는 목적이 있어 보였다. 인파를 역이용할 거라더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큰 소란이 나는 게 아닌 이상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했다.

윤신이 차 안에 앉아 초조하게 핸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던 즈음이었다. 뒤쪽에 누군가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번화가 어딜 가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차림새에 모자만 푹 눌러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윤신의 차 방면으로 와서 창문을 두드렸다.

지잉, 창이 내려가자 바깥의 싸늘한 공기가 훅 끼쳤다. 문밖의 그는 윤신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품에서 편지봉투 같은 모양의 물체를 내밀었다. 뒤이어 모자챙을 슥 건드려 인사를 하곤 재빠르게 가 버리는 통에 뭐라 마주 인사를 건네거나 할 타이밍을 놓쳤다.

“저기요, 잠……! 갔네.”

금세 뒤차로 되돌아간 남자는 바로 이동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룸미러로 그 모습을 확인한 윤신이 차창을 닫았다. 곧이어 여분의 휴대폰에 데이터를 연결해서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얼추 눈으로 훑었다. 세헌이 집무실에서 보여 주었던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맞았다. 그 외에도 각종 지표들과 이미지 파일 따위들이 담겨 있었으나, 거기까진 굳이 보지 않고 창을 닫아 버렸다.

‘이제 어떡하지. 그냥 가면 되는 건가.’

자료가 맞는 걸로 확인이 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까지는 듣지 못했다. 윤신이 메모리를 다시 봉투에 넣어 챙기곤 몇 번 몸을 들썩였다. 그러자 자신도 왜 했는지 모르는 행동을 어떻게 확인 신호로 알아챈 건지 곧 배기음 소리를 내며 뒤차가 떠나 버렸다.

후우, 바짝 긴장하고 있던 윤신의 입술을 가르고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저 조사원에게 정보를 전달받았을 뿐인데도 마음이 무거웠다. 기업의 명운을 결정하거나, 여러 사람의 재산을 다루는 막중한 임무를 주로 맡곤 하는 세헌은 이런 갖가지 부담감을 어떻게 떨치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세헌에게 잘 전달받았음을 알리기 위해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 클라이언트와 중요한 미팅 중일 텐데도, 그가 짬을 내 답장을 보내왔다.

[수고했어. 이따 저녁에 거기에서 봐. 맛있는 거 사 줄게.]

저음인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쪽, 화면 속 글자들 위에 다정하게 입 맞춘 윤신은 적당히 주변을 살피다, 대로변의 차들 사이에 능숙하게 끼어들었다.

* * *

윤신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 레스토랑에서 세헌과 만나기로 한 건 오후 6시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8시 반이었다. 미리 객실 예약을 해 두어서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일이야 없었지만, 그런 만큼 외롭고 쓸쓸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순 없어서 중간중간 일에도 매달려 봤으나 계속 잡생각만 들었다.

처음에는 그가 30분쯤 도착을 미루기에 접견지의 상황이 영 안 좋은가 싶었다. 보통 세헌의 시간은 대단히 짜임새 있게 흘러갔다. 특히 일을 할 땐 더 그랬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거라 여기고 착하게 기다렸다.

한데 한 시간쯤 지체되었을 때 그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거였다.

휴대폰 문자 창을 열어 본 윤신은 그로부터 도착한 바로 그 마지막 메시지를 눈에 그리듯이 담았다.

[아직 기다리고 있어? 난 좀 늦을 것 같아. 먼저 먹고 돌아가는 게 낫겠다.]

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여러 개였다. 하나 하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그러나 기약 없는 기다림이 한 시간 30분이 되고, 두 시간이 되었을 때는 그의 말대로 이만 홀로 돌아가는 편이 나은 건가 싶어졌다. 그래도 세헌에게 곤란한 일이 생긴 듯해 일단 참고 버텨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연락도 닿지 않아 걱정이었다.

뒤늦게 전화를 걸어 봤으나 통화가 안 됐다. 하는 수 없이 탁 비서에게 혹시 아는 게 있는지 상황을 묻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아직 답장은 없었다.

“뭔데, 대체.”

애꿎은 물컵을 손으로 들어서 안의 내용물을 굴리듯 흔들고 있자니, 때마침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테이블 위로 흐느적거리듯 무너뜨리고 있던 몸을 번뜩 곧추세운 윤신이 출입문을 주시했다.

하나 이윽고 슬쩍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줄곧 기다리고 있던 이가 아니었다. 정갈한 옷차림의 레스토랑 매니저였다. 이 식당 대표가 미희와 안면이 있어 세헌도 예전부터 종종 들렀던 곳이라 윤신도 몇 번 같이 방문해 안면을 익혔다.

“변호사님, 저희 레스토랑 마지막 주문이 9시거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끼에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 원씩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객실 하나를 점유하고 몇 시간이나 때웠는데 그냥 일어날 수는 없었다. 윤신은 메뉴판도 보지 않고 대꾸했다.

“아, 죄송해요. 식사류 중에 제일 비싼 걸로 가져다주세요. 코스는 말고 단품으로요.”

“강 변호사님께서 미리 예약하시면서 와인을 함께 주문하셨습니다.”

“그럼 그것도 같이 주세요.”

“준비하겠습니다.”

윤신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가는 매니저에게 눈인사했다. 문이 닫히자 다시 조금 전처럼 테이블 위에 몸을 늘어뜨려 마치 흘린 물처럼 차가운 면 위에 상체를 기댔다.

만에 하나 일신상의 문제가 발생한 거라면 제게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게 아닌 것으로 미루어 미팅 중 신변에 변동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걸 짐작하면서도 끈질기게 귀찮게 할 수가 없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워낙 유동적으로 굴러가는 업무의 특성상, 윤신도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그리고 세헌은 이런 일로 단 한 번도 자신을 몰아세운 적이 없었다. 자신도 그렇게 배려해야 맞는 건데, 이기적으로 굴고 싶어 곤란했다.

마음을 다잡듯 고개를 가로저은 윤신은 옆에 치워 두었던 태블릿 PC를 다시 앞으로 가져 왔다. 곧 있을 이혼 소송에 필요한 자료들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머릿속에 가득 찬 세헌을 최대한 비우려 노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즈음, ‘드르륵.’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별안간 진동했다.

화들짝 놀란 윤신이 바로 화면을 눈에 담았다. 하나 기대로 가득 찼던 얼굴이 금세 맥이 빠져 차갑게 식었다. 발신인은 탁 비서였다.

“탁 비서님?”

- 네, 저예요. 메시지 남기셨더라고요. 좀 처리할 게 있어서 지금 회신드려요.

“주말에 쉬시는데 죄송해요. 실은 강 변호사님이랑 따로 뵙기로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접촉이 안 돼요. 제가 이제 회사법 팀이 아니라 어디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비서님은 뭐 혹시 아시는 거 있나 해서요.”

물음에 대답하기 전, 길게 쉬는 숨소리만으로도 골치 아파 하는 기색이 여기까지 전이됐다.

- 미팅 있었던 건 아시죠?

“대충은요.”

-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송 대표님이 직접 현장에 가셨다네요. 저도 조금 전에 대표님 비상 연락 받고 책상 앞에 앉았어요. 우리 클라이언트가 강 수석님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은행장을 좀 폭행했나 봐요. 하필 운 나쁘게 그 식당에 방송사 중진 기자들이 있어서, 지금 거기가 완전히 뒤집어진 모양이더라고요.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현장에 미희까지 파견이 된 걸 보면 일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조짐이 있는 것 같았다.

제 입장에선 얼굴도 모르는 다친 사람보다 이 일로 난처해질 세헌이 훨씬 더 걱정이었다. 당혹감 때문에 하얗게 질린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문지른 윤신이 말을 이었다.

“혹시 강 변호사님이 다치고 그런 건 아니죠?”

- 그럴 리가요. 어쨌든 지금 강 수석님 통화할 상황 전혀 못 되실 거예요. 정신 없으시다고 전해 들었거든요. 오늘은 메시지 남기시고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는 게 낫겠어요. 고마워요.”

- 뭘요. 혹시 그쪽이랑 접촉되면 따로 말씀이라도 전할까요?

“아뇨. 그러지 마세요. 제가 직접 연락드릴게요.”

- 그래요, 그럼. 주말 잘 쉬세요.

통화를 매조진 윤신은 까맣게 꺼진 휴대폰 액정을 가만히 주시했다. 곧 세헌에게 혼자 식사하고 돌아갈 테니 걱정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후 자신이 적어 내려간 활자들만 하염없이 보았다. 어느 틈에 바깥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들어오는 건 주문한 메뉴를 내온 레스토랑 직원이었다.

테이블 위에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놓아 준 직원이 직접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러고는 차가운 볼에 병을 내려 둔 뒤 공손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입맛이 싹 사라진 상황에서 음식을 보게 되자 풀이 죽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데이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좌절돼서 섭섭했다. 그리고 그게 세헌의 잘못도, 제 잘못도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투정부릴 수 없어 더욱 서운했다.

창밖의 야경을 가만히 내다보자, 그 언젠가의 집 근처 길목처럼 발밑에 불빛이 가득했다. 저걸 응시하고 있자니 혼자서라도 최대한 잘 먹고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육질이 매우 부드러운 고기를 썰어 입에 넣은 윤신은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키고 와인을 입에 댔다.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향긋한 레드 와인은 언젠가 자신이 맛있다고 꼭 다음에도 사 달라고 졸랐던 그 브랜드의 술이었다.

“장소도 근사하고, 이걸 기억해 준 강세헌도 로맨틱한데, 주인공이 여기 없네.”

윤신은 깔끔한 뒷맛을 즐기며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예전엔 분명히 이 술이 달콤하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입에 썼다.

* * *

씻고 나온 윤신은 가운 차림으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앉았다. 협탁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을 확인해 봤으나, 아직도 세헌으로부터 온 연락은 없었다. 별수 없이 서랍에서 자료들을 꺼냈다. 왠지 그가 늦더라도 이쪽으로 걸음 할 것 같아서,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자신의 몸을 가운데 두고, 종이들을 반원 그리듯 여기저기에 놓은 윤신이 가장 검토가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눈에 담았다. 펜을 꺼내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며 읽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혼 숙려 기간 면제 사유서…… 상해 진단서가 필요한데.”

신청인의 의료 기록들을 찾기 위해 왼편의 자료들을 뒤지고 있는데, 스탠드 아래에 둔 휴대폰이 몸을 떨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계속 기대하다 실망만 반복했던 터라 이번엔 마음을 비우고 화면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그 위에 뜬 세헌의 이름이 윤신을 반겼다.

상체를 숙인 윤신이 기계를 훔치듯이 잽싸게 챙겨서 귓전에 댔다. 줄곧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나른하게 파고들었다.

- 윤신아, 안 자는구나.

“어떻게 자요.”

- 집이야? 어느 쪽.

“저는 저희 집이에요. 어디로 오실 거예요?”

- 네가 있는 곳.

대답을 곱씹은 윤신이 제 몸 위에 이불 덮듯 놓여 있는 종이들을 한편으로 다 치워 냈다. 침대 한 면에 자신이 다리를 쭉 뻗고 앉을 만한 자리를 만들어 그곳으로 엉덩이를 옮겨 앉고는, 스탠드를 켰다. 조명의 조도를 조금 낮추자 방 안의 환한 빛깔과 누르스름한 주광색 전등 빛이 뒤섞였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부탁하신 데이터는 잘 찾아왔어요. 댁 서재 책상 위에 뒀고요.”

- 응, 고생했어.

“일은 잘 해결된 거예요? 탁 비서님한테 대충 들었어요.”

- 대강은.

“선밴 다친 덴 없는 거 맞고요?”

- 다행히. 너 많이 기다렸겠다. 그러게 일찍 들어가라니까.

“제가 좋아서 기다린 거예요. 저 마시라고 주문해 두신 와인은 마셔야죠. 제 월급보다 비싼 건데.”

수화기 건너편에서 세헌이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 어땠어? 혼자 마신 와인 맛.

“되게 썼어요. 다음엔 같이 마셔요.”

- 그래야지.

“그리고 다음번엔 상황을 직접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윤신은 말을 비비 꼬아서 괜한 갈등을 빚기보단, 섭섭하고 마음 상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게 익숙했다. 세헌도 그런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서, 이번에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가 잠시간 생각이 잠긴 듯 침묵하다가,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너한테 전화하려는 순간 갑자기 상황이 휘몰아쳐서 그럴 짬이 안 났어. 한숨 돌렸을 땐, 네가 탁 비한테 연락해서 자초지종 물었단 얘길 들었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정확히 무슨 일인 건데요.”

아까 전 발생한 사건을 되새기듯 차분하게 호흡한 그가 퍽 나른한 어투로 대꾸했다.

- 내 클라이언트가 식기를 깨서 흉기로 휘둘렀어. 은행장이 꽤 큰 상처를 입었는데 피 흘리면서 객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하필이면 그 식당에 왔던 기자들이 다 같이 목격했더군. 행장은 병원에 보내고, 난 클라이언트와 같이 경찰을 면담하고, 송 대표가 와서 기자들 설득하고. 아비규환이었어.

상세한 설명을 듣자 소설책 속 이야기가 전개되듯 현장의 그림이 명확히 그려졌다. 사안이 심각했으니 경찰이 왔을 테고, 그의 클라이언트가 한 짓이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을 터다. 보는 눈이 많아 사건을 덮지도 못할 상황이라 미희까지 투입이 됐던 모양이다.

“왜 연락 못 했는지 이제 알겠다.”

- 하아, 네가 변호사라 다행이다.

내심 아쉬워하던 윤신의 마음이 다 풀렸다는 걸 그도 느낀 것 같았다. 몰아서 내쉬는 긴 한숨에 그런 기미가 묻어났다. 그는 한결 가벼워진 음성으로 덧붙였다.

- 가는 중인데,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걸었어. 지금 있는 덴 어디야. 침대?

“네, 제 방 침대……. 잠깐만요. 지금 오시는 중이라고요?”

- 응. 차 안이야. 거의 다 왔어. 한 10분?

“다 왔다고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 윤신은 정신없는 침대 위를 확인하고 잠시간 아연해졌다. 이렇게 사방에 널려 있는 종이들을 보면 온갖 욕구가 죄다 식을 것 같았다. 청결하고 깔끔한 환경을 좋아하는 세헌이 제 방에 눈살을 구기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벌떡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는 중구난방으로 널려 있는 종이들을 차곡차곡 쌓아 치웠다. 그것들을 모아 협탁 서랍에 넣는 동안, 세헌이 문장을 이어 붙였다.

- 누워 있어?

“어…… 아뇨? 이제 누우려고 그랬거든요.”

제일 밑 서랍에 여분의 콘돔과 윤활제까지 모두 확인한 윤신은 그제야 가운을 여미고 침대에 도로 앉았다. 불을 끄고 기다리는 편이 나을까, 켜고 기다리는 편이 나을까 고민하다 방의 조명을 소등했다. 대신 스탠드의 불을 조금 밝게 만들었다.

금세 그윽한 분위기로 탈바꿈한 침실에서 그의 잠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슬슬 묘해졌다. 괜히 휴대폰을 쥔 손바닥에 땀이 차는 느낌이었다. 입술이 마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혀로 살갗을 촉촉하게 축였다.

왜인지 그는 보지 않고도 이 상황을 모두 통제하는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세헌의 말이 그걸 증명했다.

- 불 껐구나. 스탠드는 켜고.

“어떻, 어떻게 알았어요?”

- 네 행동 패턴은 뻔해. 가운 입고 있겠네. 잘 벗겨지는 거.

힐끗, 세헌이 선물한 제 배스 가운을 내려다본 윤신이 헛기침했다. 마치 이에 화답하듯 뱉어 낸 그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짙었다. 그 안에 열정과 욕망 같은 붉은 감각들이 죄다 똬리를 틀고 자리하고 있는 듯해, 윤신의 뺨이 붉어졌다.

“입고 있긴 한데요.”

- 가운 안으로 손 넣어 봐.

“그냥 얼른 와요. 와서 해요.”

- 지금부터 할 거야.

마른침을 삼킨 윤신은 얼굴을 붉힌 채로 머뭇거렸다. 혼자 머무르고 있는 제 방인데도 괜히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 행동하기가 꺼려졌다. 망설이던 윤신이 방 내부를 은은하게 밝혀 주고 있던 스탠드마저 꺼 버렸다. 그러고는 제 가운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부끄러운 마음에 주저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헌이 달콤한 목소리로 윤신을 홀렸다.

- 윤신아, 만지고 싶어.

“선배…….”

- 나 벌써 발기했어. 이대로 둘 거야?

귓전을 휘감듯이 맴도는 그의 음성이 성감을 북돋웠다.

결국 윤신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매끈한 피부가 손바닥에 느껴지자 몹시 창피했다. 얼굴이 자꾸 앞으로 숙어졌다. 목소리도 기어들어 갔다.

“넣었어요.”

- 내 손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귀여워해 줄 때처럼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틀어. 내가 너 어떻게 만지는지 기억하지.

눈꺼풀을 지그시 내려감은 윤신이 세헌이 시키는 대로 제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검지와 중지로 힘주어 압박하다가, 그가 종종 그러듯 둥그렇게 굴렸다.

세헌의 손이 자신을 더듬고 있다고 상상하자, 자연스럽게 흥분감이 차올라 머리가 뒤로 슬며시 젖혀졌다. 허공을 향한 목울대가 뾰족하게 서서 들썩였다. 야릇한 숨을 뱉어 내는 입가가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차갑게 식혀 놓은 방의 공기 때문인지, 제 살갗끼리 마찰한 자리가 유난히 델 듯 뜨거웠다.

“하아, 선배, 아…….”

- 반대쪽도 만져야지. 뻣뻣하게 선 자리는 내가 빨아 줄게.

슬슬 호흡이 가빠졌다. 몸을 들썩일 때마다 침대 헤드의 딱딱한 촉감이 등에 닿았다.

본능적으로 슬쩍 눈을 떠 벌어진 가운 안을 내려다본 윤신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와중 희미하게 꼿꼿이 선 유두를 발견하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 위를 세헌이 빨아 준다고 생각하고, 반대편 유두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렸다. 그의 에로틱한 버릇들을 상상하며 행위를 지속하니, 제 것도 발기했다.

“선배, 간지러워. 으응.”

- 원하는 건 제대로 네 입으로 얘기해. 내가 다 해 줄 거야.

“깨물어 줘.”

- 잘했어.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꽉, 긁듯이 힘껏 쥐었다가 떼어 냈다. 성기가 곤두서며 허리 아래가 압박되기 시작했다. 사타구니 쪽이 답답해진 윤신이 한 손으로 시트를 힘껏 쥐었다. 귓전에 세헌의 목소리가 연달아 이어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충족이 됐으나, 역시 실제 그가 아니라서 미묘하게 아쉬웠다.

“키스하고 싶어.”

- 하면 돼. 입 벌려.

“흐응, 으…….”

- 혀 넣을 거야. 깊숙이. 살갗이 다 벗겨질 때까지 빨아 줄게.

“침 뱉어 줘.”

- 기다려야 상을 주지.

이젠 그가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치밀어 오른 성욕을 해갈하고 싶은 윤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고, 움직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비틀다가,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세헌의 입 속 촉촉한 살덩이라도 되는 양 제 손가락을 입 안에 넣은 뒤, 흥건하게 살갗이 젖을 때까지 열심히 빨았다. 점성이 있는 타액과 보드라운 표피가 맞물릴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일었다.

오른손으로는 왼쪽 유두를 어루만지고, 왼 손가락은 축축한 입 속에 넣어서 깊게 훑는 윤신의 모습이 퍽 야릇했다.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 윤신은 그가 제 혀와 입천장, 입 속 점막들을 유린하던 행위를 상상하며 손가락으로 정신없이 입 안을 찔러 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가락에 고인 타액을 굶주려 있던 것처럼 절박하게 빨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괴로웠다. 이미 곧추서서 얇은 가운을 꿰뚫을 듯 치솟은 성기가 옷자락 아래에서 꺼떡거렸다. 감각은 있는 대로 예민해져 있는데, 그걸 건드려 줄 사람이 곁에 없어 몸을 자꾸 웅크리게 됐다.

“언제 와요. 빨리……. 빨리 와서 어떻게 좀 해 줘.”

- 어떻게 박아 줄까. 뒤에서 하는 건 어때. 수월하게 잘 박혀서 네가 좋아하니까.

“흐읏, 응, 읍.”

- 좆을 박으려면 길을 내야지. 손가락 적셨으니까 그거로 하면 되겠군. 넣어.

헐떡이던 윤신이 앞으로 몸이 고꾸라지듯 풀썩 침대에 쓰러졌다. 기분 탓인지 아직 사정 전인데도 선단에 닿은 가운이 젖는 느낌이 들었다.

섹스는 서로 시간이 날 때마다 꽤 자주 하는 편이었다. 세헌과 하는 관계는 너무나도 좋았지만, 그걸 조르는 건 그와 함께할 수 있는 행위였기 때문이고 본래 성적으론 담백한 편이어서 여태 뒤로 자위한 적은 없었다. 한데 지금은 도저히 견딜 여력이 안 났다.

더는 안 되겠다고 느껴진 윤신은 명령에 따라 축축하리만치 잔뜩 빨아 댄 손가락을 가랑이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엎드려 둔부를 치켜세운 채로, 입구 주변을 꾹꾹 눌러 자극했다. 세헌이 제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을 되새김질하듯 떠올리며, 제일 길쭉한 중지를 밀부에 쿡 박았다.

“아흑……!”

그와 동시에 겨우 어깨로 붙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하나 바닥으로 추락해 구르는 기계에 쏟을 실낱같은 이성 같은 건 이미 사라진 뒤였다.

윤신은 앞으로는 뻣뻣한 성기를 시트 위에 비비면서, 뒤로는 손가락을 깊이 쑤셔 박았다. 세헌이 종종 찾아 찔러 주던 자리를 찾아 누르려고 하는데, 자세가 불편해서 영 수월하지가 않았다. 그저 곧 당도할 그의 것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내부를 넓히는 게 고작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행위라서인지 그가 주는 자극만큼 강렬하지도 못했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게 괴로워서 몸만 달싹였다. 그러나 힘겨워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세헌이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윤신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잦아들어 갔다.

“읏, 얼른, 빨리…….”

바로 그때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제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는 사람의 발소리였다. 꽤 성급하게 다가온 그 기척이 문 앞에서 뚝 끊겼다. 연이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거실의 불빛 때문에 어두컴컴하던 방 안에도 빛이 스몄다.

문간에 우뚝 선 세헌이 밀부에 손가락을 꽂아 넣고 신음하는 윤신을 보며 미간을 흠씬 구겼다. 이윽고 그는 슈트 재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침대로 다가왔다. 셔츠의 단추를 해체할 여유조차 없는 듯했다. 그대로 바지 버클만 풀어 지퍼를 내리고는 이미 한계까지 강직되어 부풀어 있는 성기를 드로어즈에서 꺼냈다.

이윽고 그가 윤신의 등 뒤에 짐승이 교미하듯 몸을 겹쳤다. 끼익,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이 한곳에 쏠려 침대가 삐걱거렸다. 자연스럽게 윤신의 손가락이 음부에서 빠져나갔다.

“키스하고 싶다며.”

으르렁거리듯 낮게 속삭인 세헌은 윤신의 턱을 쥐고 제 쪽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입 안에 고인 모든 타액을 빨아들일 듯 게걸스럽게 키스하면서, 서로의 성기를 겹쳐 흔들었다.

“왜 이제 와요. 읏, 음!”

앞뒤로 마구 살갗을 쓸어 댈 때마다 서로의 감도가 부쩍 예민해졌다. 겹쳐 쥔 두 개의 성기를 몇 번 더 쥐락펴락하던 세헌은 이내 윤신의 옷에 어설프게 걸려 있는 가운을 확, 벗겨 버렸다. 그러고는 윤신의 둔부 쪽으로 얼굴의 위치를 옮겼다.

그는 탄탄한 엉덩이를 두 개로 쪼개듯이 양손으로 쥐었다.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서 윤신의 회음 부위와 밀부의 입구를 축축하게 적셔 갔다. 무릎으로 하중을 지탱한 채 엎드려 있던 윤신의 몸이 물 만난 고기처럼 펄쩍 뛰었다.

“흐응, 선배, 아! 아아!”

세헌이 혀로 음부를 핥을 때마다 추잡한 마찰음이 일었다. 뒤쪽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아서일까. 윤신은 더욱 떠들썩하게 흥분했다. 마치 온몸의 세포들이 모두 동시에 널을 뛰어 춤을 추는 듯했다. 격렬하게 내부의 뭔가가 타오르듯 토정 욕구가 간절해졌다.

마침내 그의 혀끝이 밀부의 입구를 비집고 들어와 안으로 파고들자, 신음하던 윤신이 뒤로 겨우 손을 뻗었다. 세헌의 얼굴을 짚이는 대로 붙들어서 쓰다듬었다.

“읏! 지금, 지금요.”

결 좋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지분거리자, 그가 순순히 사타구니 사이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어설프게 넓혀진 공간의 입구에 강직된 성기의 선단을 맞춘 세헌이 늘씬한 몸의 골반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할 건 해야지.”

도드라진 견갑골에 고개 숙여 키스한 그가 윤신의 머리채를 움켜쥐어 확, 뒤로 잡아당겼다. 고개를 뒤로 젖힌 윤신이 파르르 몸을 떨면서 애원했다.

“넣어 주세요…….”

“착하네.”

이윽고 세헌이 제 것을 윤신의 음부에 힘껏 처박았다. 콰악, 단박에 끝까지 쑤셔 넣는 바람에 서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통인지 쾌감인지 정확하게 분별이 되지 않는 감각들을 목구멍으로 겨우겨우 삼켰다.

“아……! 하윽!”

“읏, 엉덩이에 힘 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의 윤신 위에 아무것도 벗지 않은 세헌이 올라탄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어서 더욱 외설적이었다. 그들의 무릎 아래에 윤신이 걸치고 있던 부드러운 샤워 가운이 흐트러져 있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조금씩 옆으로 쓸리더니 결국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사방에 거칠 게 없어진 세헌이 윤신에게 키스하며 난폭한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은밀한 공간에 제 것을 힘껏 욱여넣을 때마다, 여린 점막이 그의 성기 표면을 감싸며 자극했다. 퍽! 퍽! 핏줄이 돋아 오른 성기로 윤신의 내부 한 자리를 짓이기듯 내리눌렀다. 그가 익숙한 위치를 찌를 때마다 입을 반쯤 벌린 윤신이 자지러졌다.

“아! 아! 거기 좀 더, 아!”

쫀득거리는 내벽이 세헌의 것을 조였다. 그가 뒤로 하체를 한껏 뺄 때마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양 감싸는 통에 윤신의 둔부에 오목하게 보조개가 패었다. 가장 민감한 부위에 필연적으로 작용이 가해지자 세헌이 이마를 흠씬 구겼다.

“윽, 하, 씨발. 쌀 뻔했어. 그렇게 좋아?”

“좋아, 좋아요. 선배만 기다렸어요.”

콱! 그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려 함인지 제 것을 가장 깊은 자리까지 박았다. 성기 뿌리가 윤신의 밀부 입구에 꽉 맞물렸다. 탄탄한 둔부 위에 세헌의 골반이 ‘퍽.’ 소리를 내며 바짝 닿았다. 그의 음낭이 윤신의 피부 위에 비벼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쏟아 냈다.

두 손으로 골반을 틀어쥔 세헌은 그때부터 미친 듯이 제 것을 욱여 댔다. 튼튼한 침대가 삐걱거릴 정도로 거친 행위였다. 자연히 윤신의 머리가 함께 흔들렸다. 정수리가 침대 헤드에 몇 번을 부딪쳤다. 다리는 후들거려 버티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깡마른 몸은 거센 물살을 만난 뗏목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그의 난폭하고 과격한 삽입을 모두 받아 냈다.

“혼자 뒤에 손가락 넣고 하니까 좋았어? 응?”

“부족했어, 아! 아!”

“왜, 잘 쑤시던데. 내 좆이라고 상상했어? 기분 좋았겠네. 넌 내가 박아 주면 자지러지잖아.”

“그랬는데, 안 닿았어…… 으응.”

“어디까지 들어갔어. 여기?”

세헌이 점막의 아득한 자리를 쿡, 쳐올렸다. 윤신은 그의 말대로 자지러졌다.

“흡, 읏! 아니, 거기 말고.”

“아니면 여기?”

“거기 말…… 선배 나 할 것 같아.”

“오늘 많이 기다리게 했으니까 보상은 제대로 해야지. 허리 흔들어. 찔러 줄게.”

슬쩍 하체를 뒤로 뺀 세헌이 내벽의 모호한 자리에 성기를 고정했다. 귀두로 그 위를 둥글게 굴리다가, 이내 한 자리만 공략해서 거칠게 박아 댔다. 콱, 콰악! 선단을 뭉갤 기세로 거침없이 추삽질하자, 계속 흔들거리던 윤신의 성기에서 팟, 하고 정액이 튀었다.

“흐응, 읏! 아흣!”

까무러칠 듯 신음하던 윤신이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마치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야단스럽게 바르작거렸다. 그때까지도 계속 세헌이 성기로 내벽을 문질러 대고 있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며 꺽꺽거리다 생리적인 눈물마저 쏟아 냈다.

“흡, 흐읍……. 죽을 것 같아요. 아…….”

기력이 전부 빠진 윤신의 나신이 앞으로 조금 허물어졌다. 눈물과 땀이 뒤섞여서 시트 위에 뚝뚝 떨어졌다. 마른 등에 몸을 바짝 붙인 세헌이 그 물기들을 혀로 질척하게 핥아 주고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기 위해 거세게 허리 짓 했다.

성기를 꽉 감싸는 압박감을 즐기며 수차례 찔러 넣던 그도, 절정에 거의 다다른 모양인지 허리를 잘게 떨었다.

이윽고 그의 요도에서 미끄덩한 쿠퍼액이 튀었다. 그것들이 비밀스러운 내부를 가득 채우기 전에 성기를 빼낸 세헌이 마른 몸을 반 바퀴 굴려 바르게 누였다. 그러고는 천장을 향해 누운 윤신의 입가를 제 선단으로 툭, 툭 쳤다.

“입 벌려. 다 삼켜야지.”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 준 윤신이 그의 귀두부터 물었다. 기둥을 빨대 빨 듯 빨아들이자, 잇새를 짓이긴 세헌이 목구멍을 찌를 기세로 깊이 푹 넣었다가 빼냈다. 마침내 끝에 다다라 희뿌연 정액을 쏟아 냈다.

“커헉, 읍…….”

꿀렁거리는 정액을 전부 삼킨 윤신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세헌을 올려다봤다. 그는 마치 미술품 감상하듯 그런 윤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얼굴을 기울여서 허겁지겁 입 맞췄다. 입 속에 남아 있는 정액들이 서로의 혀끝에 고였다가, 침을 삼킬 때마다 조금씩 사라졌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겨우 들어 올린 윤신이 세헌의 타이를 풀어냈다. 곧이어 그것을 바닥으로 던져 버리곤, 가까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서로의 몸을 반전시켰다.

털썩, 세헌의 탄탄한 배 위에 올라탄 윤신은 그를 압도적인 우위에서 내려다봤다. 쪽, 세헌에게 키스해 준 뒤 그의 모양 좋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반쯤 벌렸다. 그러고는 제 입 안에서 타액을 모아 그의 입 속에 뱉었다.

그걸 고스란히 세헌이 삼킨 순간, 눈빛을 빛냈다.

“강세헌, 맛있어?”

그는 미간을 설핏 구겼다.

“정액 맛 나.”

“선배 거거든요. 나만 창피한 꼴 보였잖아요. 설욕전 하게 해 주세요.”

“뭘 설욕하시게. 네 ‘사랑해요.’ 한 마디면 난 네가 빨라고 하는 모든 걸 빨걸.”

가끔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한 순간마다 그는 애타는 마음을 보여 준다. 제게 들을 준비가 돼 있었대도 특별히 노련하게 응수하진 못했을 터다. 어찌 됐든 느닷없어서 더욱 마음 한구석이 물 끓듯 일렁거렸다. 눈물과 땀 따위로 잔뜩 젖은 얼굴을 손으로 훔친 윤신이, 그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키스했다.

“사랑해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다치지 마요. 얘기 듣고 너무 걱정했어요.”

“…….”

“이번엔 이 체위로 해요. 대신 패널티를 줄게요. 선밴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나로 느끼는 얼굴, 내 안에 사정하는 표정 내가 다 볼 거예요. 잘생긴 얼굴 이럴 때 써야죠.”

“너 좋으라고?”

“응. 나 좋으라고.”

재미있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세헌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흥미롭군.”

그러고는 이렇게 이어 답했다.

“벗겨.”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윤신은 세헌의 셔츠 단추를 정신없이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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